공연후기-무용

스페인 플라멩코-푸에고(카르멘 모타) 2005.1

나베가 2006. 5. 15. 01:57
카르멘 모타의 스페인 플라멩코 <푸에고>
   
일자 : 20050104~ 20050109
시간 : 평일 오후 7시 30분, 주말 오후 3시 오후 7시
장소 :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
티켓 : R석10만원 S석 8만원 A석 6만원 B석 4만원 C석 3만원
Club BALCONY Member ↓10%
문의 : 티켓파크 1588-1555
연령 : 연령제한없음
기획 : (주)에스이엠기획 566-7137
후원 : 주한스페인대사관, SBS 프로덕션, 네이버, 대한화재
장르 : Dance
출연 : 카르멘 모타,호아킨 마르셀로 외
관련사이트 :

  카르멘 모타(Carmen Mota)의 푸에고 (Fuego) 국내 첫 내한 공연

스페인의 대명사가 된 민속춤, 플라멩코.

우리에겐 흔히 민속춤으로 알려져 있는 ‘플라멩코’는 유럽의 위대한 음악형식 중의 하나로 이미 세계적인 인지도를 획득, <월드뮤직>으로 자리잡은 장르이다. 
‘플라멩코’의 고향으로 알려진 안달루시아 지방은 스페인 문화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신비함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지리적으로는 스페인의 토착문화와 서구 유럽, 그리고 동방 문화의 통로가 되는 곳으로, 북쪽의 피레네 산맥과 동쪽의 안달루시아 지방을 통해 유입된 스페인 문화와 아랍인들의 침공을 피해 달아난 모로코, 이집트, 그리스, 인도, 파키스탄인들에 의해 형성된 아랍권 문화가 총집합되어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여건에 의해 집시들의 터전이 된 안달루시아 지방의 집시들은 영혼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 매일밤 축제를 열었고, 이러한 전통은 곧 ‘플라멩코’의 태동이 되었다.

이러한 전통 속에 형성된 <플라멩코>는 단순히 우리가 생각하듯 케스터네츠를 들고 리듬을 맞춰가며 추는 열정적인 춤 이상의 문화로써 음악과 춤, 노래가 공존하는 영혼의 집합체이다. 이것은 집시들의 뜨거운 피와 스페인의 붉은 태양이 만나 발생할 수 밖에 없었던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다.
따라서, ‘플라멩코’라는 문화는 집시들의 슬픔을 승화시키는 축제와 핍박 받는 영혼이 재료가 되어, 문화의 전이와 유럽 계급 문화에 대한 저항 정서, 그리고 스페인의 뜨거운 태양이 만들어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004년 6월, 21C 퓨전 플라멩코의 창시자로 알려진 ‘호아킨 코르테스’가 국내에 퓨전 플라멩코를 알리는 포문을 열었다면, 2005년 내한하는 <카르멘 모타의 푸에고>는 세계시장에서의 플라멩코의 경쟁력을 점쳐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다.  

아일랜드 지방의 민속춤인 아이리쉬 댄스가 세계화를 위해 드라마를 가미하여 구성을 다양화하였다면 <카르멘 모타의 푸에고>는 민속춤의 전통과 현대를 가장 완성된 공연 형태로 보여줌으로써 플라멩코의 진보와 세계화를 이뤄낸 작품이다. 이러한 까닭에 우리는 <푸에고>를 통해 현재의 스페인, 그 곳에 공존하는 현대와 고전의 향기를 체감, 스페인 문화의 정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카르멘 모타의 푸에고>는 라스베가스식의 화려한 조명과 무대 의상을 접목시켰다. 극중에는 독일의 대표적 음악가 칼 오프페(Carl Orff)의 극음악 카르미나 브라다(Carmina Burana)의 극적 구성이 가미하여 한층 더 드라마틱한 음악을 선사한다. 아울러 프로그레시브 락의 진정한 고수라 칭송 받고 있는 마크노플러가 이끌던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 그룹의 멜로디도 놓쳐서는 안 될 요소이다.

스페인의 국보급 안무가 카르멘 모타, 그리고 청각 장애인 호아킨 마르셀로!

이번 내한 공연은 카르멘 모타의 프로덕션에서 야심만만하게 제작한 작품이다. 이 프로덕션을 이끌고 있는 카르멘 모타는 세계적으로 플라멩고의 전통으로 인정받고 있는 카르멘 아마야(Carmen Amaya)의 수석 무용수였다. 과거의 무용수로서의 명성을 뒤로하고 은퇴한 그녀는 현재 플라멩코의 세계화를 위해 자신의 이름을 단 <카르멘 모타의 푸에고>라는 프로덕션을 설립하여 스페인에서 플라멩코의 열정이라는 이름과 동일시되는 국보급 안무가로, 또한 정치 경제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꼽히고 있다. 

대부분의 스페인인들은 어릴 때부터 플라멩코 축제를 통해 플라멩코를 그들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그에 반해 ‘호아킨 마르셀로’는 그가 가진 선천적 장애로 인해 문화와는 단절된 생활을 하였던 케이스였다. 그러던 그는 무용가로서는 꽤 늦은 나이인 21세부터 안무를 시작하였고, 지금은 세계적인 무용단의 수석 안무가로 성장한 인물로 드라마틱한 인생의 여정을 밟아온 인물이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도 그가 보여주는 삶과 열정, 가슴으로 듣고 영혼으로 추는 플라멩코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공연] 플라멩코의 혼을 느꼈는가

스페인 춤꾼 카르멘 모타의 ‘푸에고’ 공연단이 1% 부족해보였던 까닭은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흔히 플라멩코(Flamenco)는 스페인의 민속춤으로 불린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에 정착한 집시들이 동굴이나 마당에서 피맺힌 소리와 열정적 몸짓으로 영혼의 슬픔을 달랬던 플라멩코. 그것이 현대적으로 거듭나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를 짐작하기는 쉽지 않았다. 어쩌면 조선시대의 춤을 변형한 공연을 떠올리기 힘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는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노래(칸테)와 춤(바일레), 기타의 반주(토카) 등이 어우러진 플라멩코의 무대는 익숙하지 않다. 기껏해야 캐스터네츠 반주가 있는 몸짓 정도로 여겨질 뿐이다.


△ 세계 시장을 목표로 플라멩코의 현대화를 시도한 <카르멘 모타의 푸에고>.

뮤지컬과의 접목, 퓨전 플라멩코

플라멩코의 혼을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이 지난 1월4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카르멘 모타의 푸에고-사랑, 불꽃처럼 일어서다> 공연장을 찾았다. 스페인의 전설적 플라멩코 춤꾼 카르멘 모타가 2002년에 만든 푸에고는 대중적인 공연으로 세계 각국을 누비고 있다. 지난해 6월 퓨전 플라멩코의 창시자로 불리는 호아킨 코르테스의 무대에서 절정적 도취(두엔데)를 경험한 관객들이라면 플라멩코의 퓨전과 정통을 선보이는 푸에고의 공연을 기다렸을 것이다. 플라멩코가 댄스 뮤지컬로 거듭나 색다른 감흥을 안겨줄 것이라 기대하면서.

현대적인 스타일의 플라멩코를 ‘보여주는’ 푸에고의 공연은 스페인 안달루시아와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만남으로 막을 올렸다. 세계 시장을 목표로 공연을 만들었다는 것을 실감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라스베이거스나 브로드웨이를 닮은 화려한 조명과 세련된 의상이 무대를 휘감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붉은 태양을 무대에 옮기려는 의욕이 지나쳐 보였다. 전통음악과 록, 클래식을 넘나드는 음악을 배경으로 18명의 무용수는 감각적인 동작을 1부 내내 연출했다. 아무리 의상이 바뀌어도 몸동작은 이전과 차이를 실감하기 어려웠다.

사실 퓨전 플라멩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집시들의 음악과 춤의 언어를 세계인이 즐기도록 하려면 정통만을 고집할 순 없는 노릇이다. 호아킨 코르테스가 흥미로운 일탈로 뉴욕 무대에서 스타로 등극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카르멘 모타 역시 뮤지컬 양식을 플라멩코에 접목하려고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등에서 예술감독으로 활약한 웨긴 폭스를 영입했다. 그는 관능적이고 도발적인 색감으로 관객의 탄성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집시의 핍박을 상징하는 두엔데가 없는 플라멩코에 빠지기는 쉽지 않았다. 아무리 팔과 다리, 허리 등으로 플라멩코의 동작을 완벽하게 풀어내도 집시들이 토해내는 ‘피의 울림’이 가슴에 파고들지 않는다면 소용없는 일 아닌가. 미국식 공연 문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푸에고의 공연에서 별다른 차별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스페인의 선술집을 연상시키는 2부 무대에서 정통 플라멩코를 만나기는 한다. 하지만 퓨전 플라멩코의 현란한 몸동작에 취한 상태에서 빠져나오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때론 요란한 환호 소리에 두엔데의 폭발력이 사그라지기도 했다.

역시 플라멩코는 특유의 마성이 발휘되는 두엔데로 빛을 낸다. 푸에고 공연단의 남자가수(칸타오르)가 엘리스마 창법으로 뿜어내는 두엔데는 우리의 판소리를 떠올리게 했다. 크고 작은 ‘꺾임’에 한(恨)이 맺혀 있기 때문이리라. 푸에고의 공연에서 어렴풋이 드러난 플라멩코의 현재와 미래는 너무 멀리 떨어져 보였다. 정통 플라멩코가 재즈와 살사, 심지어 블루스까지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테크닉’으로 연출한 미래에 돌을 던질 수는 없다. 다만 우리의 정서에 깊이 파고들 수 있는 두엔데를 실감나게 경험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