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글들.../클럽발코니....

친절한 디토씨의 음악여행수첩⑧ 쟈코모 푸치니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나베가 2014. 10. 7. 00:30

 

 

 

 

친절한 디토씨의 음악여행수첩⑧ 쟈코모 푸치니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피렌체의 산타마리아노벨라 기차역에 내리니 벌써부터 마음이 급해져온다. 이 도시에 허락된 시간은 겨우 1박2일인데 사실 할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당장에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그러니까 피렌체 두오모로 달려가서 꼭대기 종탑까지 올라가봐야 하고, 우피치 미술관에서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산드로 보티첼리의 명화들을 ‘영접’해야 한다. 어디 그 뿐인가.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한달음에 올라가 유유히 흐르는 아르노 강과 베키오 다리의 아름다운 풍광도 즐겨줘야만 한다. 그것도 황혼녘이 베스트 타이밍이니 시간도 잘 맞춰야 할 것이다.

여기서 끝날 일이 아니다. 기왕 피렌체에 왔으니 골목마다 숨어 있는 전통의 명장가게에서 천연가죽으로 만든 수제지갑도 하나 골라보고, 전설의 마에스트로 프랑코 미누치 부자의 편집숍을 찾아 그들이 디자인한 예술작품 수준의 넥타이 한 장도 사보고 싶다. 골목을 돌아들 때마다 보이는 와인 바(Bar)들은 또 어떤가. 여기는 토스카나. 키안티 클라시코와 슈퍼 토스카나 등 최고의 와인들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땅 아닌가. 이 향긋한 와인에 피렌체식 티본 스테이크인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를 곁들이면 정말이지 천국이 따로 없을 것만 같다. 그런데 이 모든 걸 1박 2일 동안 다 해보고 싶다고?

 

 

(이탈리아 정치계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젊은 총리 마테오 렌치. 그는 피렌체 태생의 남자, 즉 피오렌티노다.)

르네상스를 꽃피운 찬란한 문화도시 피렌체. 중부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주에 위치한 이 도시는 온갖 매력으로 가득 찬 보물창고와도 같은 곳이다. 건축과 미술기행은 물론이고, 와인 및 식도락, 패션기행 등 어떤 테마의 여행도 가능하며, 그것들 모두가 일주일 이상씩을 필요로 할 정도로 보고 듣고 또 즐길 거리가 넘쳐흐르는 땅이다. 그런데 이렇게 ‘공급’이 넘치다보면 사실 마음부터 지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게다가 사시사철 관광객들이 들끓고 비수기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머무는 내내 사람들에 치여, 볼 것도 먹을 것도 모두 놓치고 피로감만 호소하다 돌아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럴 때는 마음을 고쳐먹고 한 박자 쉬어가도록 하자. 우선 아르노 강가로 나가보자.

사실 이 도시는 오페라의 발상지이며, 이탈리아 최고 수준의 오페라하우스와 오케스트라가 있는 곳이다. 봄이면 시내 도처에서 만발하는 꽃 향기와 함께 한없이 고혹적인 클래식 선율이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곤 한다.

토스카나 서부의 작은 도시 루카(Lucca)에서 태어난 쟈코모 푸치니는 주세페 베르디의 뒤를 잇는 이탈리아 오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이다. 그는 피렌체 출신의 대문호 단테의 <신곡>에서 소재를 취한 오페라 <쟈니 스키키 Gianni Schicchi>를 발표한다. 주인공 쟈니 스키키는 법과 도덕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영악하고 대담한 만능 해결사. 그는 피렌체 어느 부잣집의 유산상속 분쟁에 휘말려 유언장을 조작하는 일에 나서는데, 머뭇거리는 쟈니 스키키의 등을 떠미는 것은 오히려 딸 라우레타이다.

“사랑하는 아빠,
남자친구와 빨리 결혼하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포르타 로사 거리에 가서 반지도 살래요.
아빠가 이 결혼 허락 안 해 주면
나 베키오 다리 위에서
아르노 강으로 확 뛰어들고 말꺼야!”


이 노래가 바로 소프라노 아리아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O mio babbino caro’이다. 영화 <전망 좋은 방>을 비롯하여 피렌체를 다룬 거의 모든 영화에 등장하는 이 도시의 시그니처 클래식과도 같은 노래. 물결치듯 유려하게 펼쳐지는 선율 위로는 지극히 타산적인 내용의 가사가 흘러 나온다. 현실적이지만 아름답고, 영악하지만 사랑스러운 아리아. 이런 복잡한 매력이야말로 우리가 피렌체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이유 아닐까.

 

(푸치니 <쟈니 스키키> 중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

피렌체 최고의 카페라는 질리(Gilli)에 앉아 앞에 펼쳐진 광장을 멍하니 바라본다. 하늘은 높고 살랑이는 봄바람에 실려 온 공기는 너무도 달콤하다. 굳이 오페라하우스를 찾지 않아도 좋다. 꼭 콘서트 홀에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짙은 에스프레소 한잔을 시켜놓고 가져간 미니 플레이어로 푸치니의 음악을 들어보자.

 

 


(피렌체를 배경으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21세기의 리누치오-라우레타 커플)


결국 라우레타는 아버지 쟈니 스키키의 맹활약으로 거액의 결혼지참금을 마련한다. 남자친구 리누치오의 손을 붙잡고는 피렌체 교외 피에졸레 언덕으로 올라간다. 행복에 젖은 두 사람 앞에 황혼녘의 피렌체 풍경이 아른거린다. 리누치오가 연인을 바라보며 노래한다.

“내 사랑 라우레타, 영원히 함께 하고 싶어.
저길 봐. 피에졸레는 아름답고 피렌체는 황금빛이야!“
(Lauretta mia, staremo sempre qui...
Guarda, Firenze è d'oro Fiesole è bella!)



(푸치니 <쟈니 스키키> 피날레. 소프라노 파트리치아 치오피, 테너 로베르토 사카)

푸치니의 음악은 피렌체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꿈’이다. 그 선율에 스며든 황금빛 황홀함과 만나는 순간, 우리의 피렌체 여행은 가장 완벽한 감동에 휩싸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