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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디토씨의 음악여행수첩⑩ 존 칸더 <뉴욕 뉴욕 New York, New York>

나베가 2014. 10. 5. 00:30

 

 

 

친절한 디토씨의 음악여행수첩⑩ 존 칸더 <뉴욕 뉴욕 New York, New York>

2012년 가을의 일이다. 그해 뉴욕 양키즈는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 1위를 가볍게 차지하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앙키즈하면 다국적의 화려한 스타들이 펼치는 놀라운 플레이로 유명하지 않은가. 특히 2012년 시즌은 ‘브롱스 폭격기’(bronx bombers ; 양키 스타디움이 브롱스에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라는 별칭에 걸맞게 무려 245개의 홈런을 담장 밖으로 날려 보내며 상대팀 마운드에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던 양키즈였다.
메트로폴리탄의 가을 시즌 베르디 오페라에 한참 군침을 흘리고 있었던 나는 전격적으로 ‘뉴욕 출정(?)’을 결의하고 오페라 티켓팅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공연 일정을 살피다보니 양키즈 경기도 볼 수 있는 시간이 딱 하루가 나왔다. 양키즈가 플레이오프 1차 관문인 디비전 시리즈(AL Division Series)를 무사통과한다면 뉴욕에 도착하는 당일날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2차전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티켓값이 엄청나게 비싸긴 하지만(자리에 따라 오페라 공연보다도 더 비싸다), 뉴요커도 아닌 내가 언제 또 양키 스타디움에서 플레이오프를 즐기겠는가.

 

 

(2012년 10월, 플레이오프 2차전이 펼쳐진 양키스타디움의 모습)
반년 만에 다시 찾은 양키 스타디움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시즌 초인 4월의 그 널널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꽉꽉 들어찬 사람들이 양키즈의 절대승리를 목 놓아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경기는 양키즈의 허무한 패배. 3-0으로 단 한 점도 내지 못한 채 무너졌다. 하긴 가을 들어 ‘브롱스 폭격기’는 이미 고장이 난 상태였다. 디비전 시리즈부터 1할대로 주저앉은 타선은 이날도 극심한 부진을 보였다. 1차전 패배에 이어 이날의 완봉패로 분위기를 완전히 상대에 넘겨준 양키즈는 결국 상대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게 네 경기를 내리 지면서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탈락하고 만다.

그때 뉴욕 거리를 양키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후드티를 입고 돌아다녔다. 나름 양키 클럽하우스에서 산 정품인데, 야구장용으로 제작되어서 하나만 걸치고 있어도 따뜻하다. 단점이라면 통풍이 잘 안되어서 실내용으로는 영 아니라는 것. 여튼 낮에도 그 복장으로 맨해튼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더니 다들 나를 엄청난 양키즈 팬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뉴욕 어디에나 있는 드럭스토어 듀웨인리드에서 생수와 초콜릿을 사서 나오려는데, 갑자기 계산대의 히스페닉계로 보이는 ‘언니’가 바코드를 찍으며 흘끔 나를 쳐다봤다.

“근데 양키즈는 왜 그리 못해요?”

엉, 나보고 한말인가?

“당신 양키즈 옷 입고 있잖아요. 양키 올해 엉망이네요.”

아이고, 놀래라. 맨해튼에서 양키즈의 위상은 이토록 대단하단 말인가. 모두가 대동단결해서 양키즈의 일거수 일투족에 집중하고 있단 말인가?!!

다음 날 일행을 라 과디아 공항에서 배웅해주고 다시 택시를 타고 맨해튼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택시 기사는 아프리카계 이민자인 듯 했는데, 문법책에서나 등장하는 딱딱한 영어문장을 쓰는 것이 내 영어와 아주 잘 맞았다. 우리는 신나게 떠들며 맨해튼으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올드팝을 좋아하는 그가 갑자기 ‘New York, New York'을 틀었다. 그건 양키즈의 테마 음악이며, 양키즈가 이길 때면 항상 양키 스타디움을 가득 채워 양키 팬들을 가슴 뭉클하게 하는 노래이기도 했다.

Start spreading the news, I'm leaving today
I want to be a part of it - New York, New York
(이 소식 널리 알려, 난 오늘 떠날 꺼야.
이 도시와 하나가 되고 싶어, 뉴욕 뉴욕~!)


뉴욕의 택시에서 들으니 괜히 또 각별해졌다.

“아, 어제 양키즈가 졌더군요”

“그 경기 양키 구장에서 직접 봤어요. 지라르디 감독은 퇴장까지 당하고. 올해는 분위기가 영...”

“하하, 괜찮습니다. 양키즈라면 내년에 또 올라갈텐데요 뭘.
택시를 운전한 이후로도 매년 플레이오프에 갔었어요.“

아, 그렇다. 양키즈 정도 되는 구단이면 매년 플레이오프에 올라가지 않던가. 백년 넘게 우승을 못하고 있는 시카고 컵스의 팬들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뉴요커들 아닌가. 이 정도 되면 양키즈의 플레이오프도, 매년 뉴욕에서 만날 수 있는 ’가을의 전설’이라고 불러도 좋을까.

 

(뉴욕의 가을은 정말 ‘최고’다.)
New York, New York,
I want to wake up in a city, that never sleeps
(뉴욕 뉴욕, 난 절대 잠들지 않는 이 도시에서 깨어나고 싶어)

 

(존 칸더 John Kander 곡, 프랭크 시내트라 노래 “New York, New York")
‘New York, New York'은 마틴 스코시지 감독의 같은 제목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제가이다. 원곡을 부른 사람은 따로 있지만, 역시나 프랭크 시내트라가 노래해 세계적인 히트곡이 되었다. 스코시지나 시내트라나 둘 다 이태리계 이민자이니, 인종의 용광로이자 세계 최고의 코스모폴리탄 뉴욕이라는 도시에 딱 맞는 남자들이다.

 

 

 

(캐리 멀리건이 노래하는 글루미한 분위기의 ‘New York, New York', 영화 <쉐임> 중에서)
느긋하지만 호쾌한 스윙풍의 재지(Jazzy)한 선율 속에 직설적인 욕망이 깃든 노랫말 또한 다분히 ’뉴욕적‘이지 않은가. 조만간 또 가을의 뉴욕에서, 또다시 양키 스타디움을 찾아 양키즈의 승리를 기원하며 이 노래를 애타게 한번 기다려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