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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디토씨의 음악여행수첩⑪ 엔리코 카니오 <사랑에 빠진 병사 'O surdato 'nnammurato>

나베가 2014. 10. 4. 00:30

 

 

친절한 디토씨의 음악여행수첩⑪ 엔리코 카니오 <사랑에 빠진 병사 'O surdato 'nnammurato>

어릴 때 듣던 이태리 민요집 LP는 정말 근사했다. 노랫말은 알아들을 수 없어도, 달콤하고 시원시원한 선율이 그야말로 귀에 쏙쏙 들어와 박혔다. 게다가 음반 뒷면의 해설은 뭔가 추상적이었지만 얼마나 멋스러웠는지. ‘지중해의 작렬하는 태양’, ‘아름다운 정열의 땅’, ‘바다 사나이들의 뜨거운 노래’ 등등으로 현란한 수식어가 붙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음반해설을 쓴 그 선생님이나 그걸 읽고 있던 까까머리 중학생인 나나 둘 다 나폴리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는 건 매한가지였다.

나이가 들면서는 알게 모르게 점차 나폴리 민요와 멀어져갔다. 대학생이 되고는 좀 더 우아한 이탈리아 오페라에 푹 빠져들었고, 논리적이고 치밀한 독일 음악도 내 영혼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었다. 나폴리 민요? 좋기는 한데, 뭐 딱히 손이 가지는 않는 음악이었다.

그러다, 나폴리를 갔다. 그건 분명 내 인생 최고의, 가장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사정없이 내려쬐는 태양, 단 한점의 습기도 용납지 않는 바짝 메마른 대지 위로 까무잡잡한 피부의 건장한 남자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노래하듯 대화하는 땅. 와일드하지만 상스럽지 않고, 정열적이지만 결코 거칠지 않으며, 소심한 도시적 강박관념 따위는 앞바다 산타루치아에 그냥 내던져버리는 진짜 남자들이 살아가는 ‘진정한 마초들의 도시’. 게다가 거기에는 세계 최고의 피잣집과 세계 최고의 에스프레소 카페가 있지 않은가!

그때 다시 나폴리 민요가 내 마음 속으로 스윽하고 밀려 들어왔다. 나폴리에서 듣는 나폴리 민요, 즉 칸초네 나폴레타나는 음반으로 듣는 것과는 천지차이였다. 나폴리 현지의 가수들은 음반 속 유명 테너들의 뻣뻣한 노래와는 차원이 달랐다. 마시멜로처럼 부드럽고, 백설탕처럼 달콤하고, 지중해의 미풍처럼 애절하고 또 아름답게 노래했다. 북이탈리아 출신 테너들의 그 ‘도련님 스타일’과는 확연히 다르게, 남부 나폴리 방언의 느낌을 제대로 살려 치렁치렁하면서도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진짜 나폴리 칸초네를 들려줬다.

 

 

 

(에두아르도 디 카푸아 <그대에게 입맞추리 I' Te Vurria Vasà>, 노래 지지 피니치오 Gigi Finizio)

나폴리 칸초네는 전부 ‘나폴리 방언’으로 쓰여져 있다. 하긴 나폴리 사람들한테 ‘이 노래 나폴리 사투리로 되어 있지요?’라고 아는 척하면 버럭 화부터 낸다. 그건 사투리가 아니라 엄연히 하나의 언어, 나폴리어(La lingua napoletana)라는 거다. 나폴리어는 무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지금도 나이 지긋한 나폴리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입에서는 걸쭉한 나폴리 사투리(아, 나폴리어)가 연신 흘러나온다. 저기 시장통과 길거리 카페 한켠에서, 동네 피잣집에서 연신 쏟아져 내리는 그 말 모두가 문화재고 세계 문화유산이라는 말이다. 이런 도시가 도대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폴리 산타루치아 해변 앞의 파르테노페 거리에서)

2014년 월드컵도 끝이 났다. 독일이 아르헨티나를 1-0으로 이겼다. 나는 독일 대표팀이 별로다. 소속 클럽에서 별 볼일 없이 한 시즌을 보낸 선수도 대표팀에만 들어오면 갑자기 펄펄 난다. 굵직한 스타들이 모여있지만 그들 사이의 내부갈등이 외부로 노출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팀웍은 너무 좋고, 내부규율은 확실하고, 선수들은 늘 차분하고 냉정하게 경기한다. 그래서 독일 축구는 침체기에도 월드컵 4강 정도는 쉽게 올라가고, 요즘처럼 분위기가 좋을 때는 우승도 차지한다. 나는 지나치게 성실하고, 너무 차분한 독일 대표팀이 그래서 좀 징그럽다. 축구란 피치 위를 뛰는 플레이어나 그걸 지켜보는 사람이나 한껏 달아올라 활활 불타올라야만 제 맛 아닐까. 그래서 나는 다소 불안정하더라도 뭔가 뜨거움이 느껴지는 ‘배드보이’ 플레이어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배드보이 축구선수하면 역시 디에고 마라도나다.

나폴리에는 마라도나가 있었다. 아르헨티나가 낳은 최고의 축구천재 마라도나는 1984년 홀연 나폴리의 프로 축구팀 ‘SSC 나폴리’에 나타났다. FC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이미 당대 최고의 축구선수였던 그였지만 당시 마라도나는 선수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이었다. 축구 실력은 최고였으나 자제심이 없었고, 상대의 거친 태클에 부상을 당한 이후로는 코카인에도 손을 대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급기야 마라도나는 경기 중 집단 난투극에 휘말렸고 바르셀로나는 문제아 마라도나를 지체 없이 퇴출시킨다. 갈 곳 없는 마라도나가 발길을 돌린 곳은 남부 이탈리아의 가난한 변방구단 나폴리였다. 그리고 그는 이 도시에서 드디어 ‘기적’을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마라도나 등장 이전에 남이탈리아 축구팀이 이탈리아 리그 우승을 차지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1부 리그 세리에A의 우승 트로피는 언제나 부유하고 윤택한 북이탈리아의 클럽들 - 토리노의 유벤투스, 밀라노의 AC밀란과 인테르, 로마의 AS로마 등이 나눠가졌다. 그러나 마라도나의 ‘나폴리 강림’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나폴리는 10위권을 맴돌던 수준에서 단숨에 1위로 치고 올라갔고, 두 차례의 리그 우승을 비롯하여, 코파 이탈리아, 이탈리아 슈퍼컵, UEFA컵에서 줄줄이 우승을 차지했다. 이 모든 것은 마라도나라는 단 한명의 플레이어 때문에 가능했고, 마라도나는 나폴리에서 그야말로 ‘신’으로 등극한다.

 

 

(나폴리 시절의 디에고 마라도나. 옆에 유벤투스 유니폼을 입은 선수는 프랑스의 전설적인 미드필더이자 현재는 유럽축구협회 회장인 미셸 플라티니.)

 

 

 

(<사랑에 빠진 병사>,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사랑에 빠진 병사>, 노래 살 다 빈치 Sal Da Vinci)

마라도나의 후계자로 불렸던 ‘조용한 천재’ 리오넬 메시는 결국 월드컵을 품에 안지 못했다. 아르헨티나에게도 분명 기회는 있었다. 그러나 절호의 1:1 찬스를 놓친 건 스트라이커 곤살로 이과인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는 SSC 나폴리 팀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다.

 

 

 

 

 

(아직도 나폴리 곳곳에서 목격되는 마라도나 제단 Maradonna Altar)

2005년도에 마라도나가 나폴리를 찾았다. 나폴리인들은 ‘메시아가 재림했다’며 마라도나의 등장에 광분했다. 다시금 나폴리 전역에 ‘사랑에 빠진 병사’와 ‘비바 디에고’의 함성이 울려퍼졌다. 디에고 마라도나, 그는 한 인간으로서는 불완전하고 흠결 많은 남자였다. 그러나 나폴리와 나폴리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혁명가이자 구원자였으며, 그것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어찌보면 나폴리야말로 이 키 작고 땅딸한 병사(마라도나)와 깊고 영원한 사랑에 빠진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