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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디토씨의 음악여행수첩⑬ 오토리노 레스피기 <로마의 분수>

나베가 2014. 10. 2. 00:30

 

 

 

 

친절한 디토씨의 음악여행수첩⑬ 오토리노 레스피기 <로마의 분수>

로마(Roma)의 매력을 몇 마디 짧은 문장으로 요약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원래는 천년을 이어간 로마 제국의 수도였고, 이후에는 유럽 기독교 문명의 정신적 지주였던 교황의 본거지였으며 현재는 통일 이탈리아 공화국의 수도이다. 고대문명에서부터 르네상스와 바로크까지의 문화유산이 시내 곳곳에 산재되어 있고, 근대 격동기의 흔적과 통일 이후 이탈리아 수도로써의 면모 등 다채로운 표정들이 한 공간에서 동시에 엿보인다. 이 때문에 로마는 다소 어지럽게 널려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그저 첫인상일 뿐, 좀 더 들여다보면 로마의 아름다움은 정말 놀랍기만 하다.

그 중에서도 우리의 눈길을 한 눈에 사로잡는 건 시내 곳곳에 산재한 아름다운 분수들이다. 저 유명한 트레비 분수를 비롯하여, 나보나 광장의 4대강 분수, 스페인 광장의 바르카치아 분수 등 거리와 광장마다 크고 작은 분수가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주변경관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로마시민과 여행객들에게 큰 안식과 위안을 준다. 이들 모두는 이름난 조각가들이 만든 위대한 바로크 예술품이기도 하다.

 

 

 

(베르니니가 나보나 광장에 만든 <4대 강 분수 Fontana dei Quattro Fiumi>)

중부 볼로냐 태생의 오토리노 레스피기는 오페라를 주로 작곡했던 다른 이탈리아 음악가들과는 달리 아름다운 기악곡과 관현악 작품을 많이 썼다. 특히 그는 1913년부터 로마의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 교수가 되어 이 도시에 머물렀는데, 로마가 주는 위대한 예술적 영감에 사로잡혀 <로마 3부작>이라는 걸작 관현악 곡을 남겼다. 3부작은 ‘로마의 분수’, ‘로마의 소나무’, ‘로마의 축제’로 이어진다. 특히 로마의 4대 분수를 소재로 한 첫 작품 ‘로마의 분수(Fotane di Roma)'는 초연의 실패로 세간의 기억에서 완전히 잊혀질 뻔 했던 것을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적극적인 조력에 의해 다시 빛을 본 사례다.

레스피기가 묘사한 로마의 분수는 모두 4개로, 그는 각 악장마다 짧은 서문을 덧붙여 음악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레스피기 <로마의 분수> 전곡, 이스트반 케르테츠 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제1곡 ‘새벽 줄리아 골짜기의 분수 La Fontana di Valle Giulia all’alba‘는 로마의 전원풍경을 표현한다. 레스피기는 여기서 “소떼들이 로마의 새벽안개 속으로 사라져 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고 설명하는데, 역시 로마를 소재로 한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 제3막에서도 새벽 안개를 가르며 나타나는 목동의 노랫소리가 등장해 우리의 흥미를 끈다.

제2곡 ‘아침의 트리토네 분수 La Fontana di Tritone al maltino’는 해가 떠 아침이 밝아오는 로마의 힘차고 화려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분출하는 물줄기 속에서 서로를 뒤쫓고 있는 물의 요정 나이야드와 해신 트리톤의 무리를 부르는 기쁨에 넘치는 소리와 같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음악은 이제 절정으로 치달아, 저 유명한 제3곡 ‘낮의 트레비 분수 La Fontana di Trevi al meriggio’로 이어진다. 고대 로마 장군들의 개선장면을 보는 듯한 화려한 금관악기의 포효가 너무도 인상적이다. 레스피기는 이 악장에 대해 “빛나는 수면 위에 바다의 신 넵튠의 마차가 말에 끌려 인어와 트리톤의 행렬을 거느리고 지나간다. 멀리서 다시 울리는 트럼펫의 연주가 약해지면서 행렬은 점차 멀어진다.”라고 적고 있다.

마지막 제4곡은 스페인 광장에 있는 메디치 빌라의 분수를 묘사한다. 이곳은 프랑스가 로마에 세운 일종의 문화 전진기지이다. 프랑스 문예 아카데미(아카데미 드 프랑스)가 있는 곳인데, 프랑스는 예부터 재능 있는 청년 예술가들에게 로마 대상(Grand Prix de Rome)이라는 이름의 장학금을 수여해 이곳 로마의 메디치 빌라에서 공부하게 했다. 처음에는 미술학도에만 장학금을 주다가 19세기부터는 음악까지 수혜범위를 넓혔다. 화가 다비드, 앵그르 그리고 파리의 오페라 가르니에 극장을 설계한 건축가 가르니에가 모두 로마 대상 출신이며, 작곡가로는 비제, 구노, 마스네, 베를리오즈와 드뷔시 등 프랑스가 낳은 위대한 천재 음악가들이 모두 장학금을 받고 여기 로마에서 공부했다.

레스피기는 ‘황혼의 메디치 빌라의 분수 La Fontana di Villa Medici al tramonto’라는 제목 하에 어스름하게 내려앉는 황금빛 저녁 노을의 아름다움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저 멀리서 아련히 울려 퍼지는 목관의 고혹한 울림과 나긋한 현악기의 선율이 듣는 이에게 진한 노스탤지어를 느끼게 한다. 레스피기는 “석양의 향수에 젖은 한때다. 종이 울리는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나무들의 흔들리는 소리에 넘실댄다. 그리고 모든 것이 부드럽게 조용한 밤 속으로 사라져 간다.”고 적고 있다.

 

(영원한 로마 분수의 대명사, 트레비 Fontana di Trevi)


<로마의 분수>는 로마의 하루를 아름다운 분수와 함께 엮어내고 있다. 그것은 영원의 도시(La citta eterna)라 불리는 로마에 대한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헌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