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가을쯤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백스테이지를 오가며 미국 각지에서 몰려든(나를 포함하면 세계 각지에서 온) ‘오페라 중독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날은 후원회 초청행사여서 뉴욕의 오래된 메트 회원들도 상당히 많이 보였는데, 처음에는 다들 극장 뒤쪽의 구석구석을 탐험하는 재미에 빠져 서로 별달리 말이 없었다. 메트에서만 30~40년 넘게 공연을 보러 다닌 노신사와 나이 지긋한 레이디들이 자원봉사 가이드를 맡아 해설을 진행했고, 그들의 말 한마디에는 극장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깊게 묻어나고 있었다. 하긴, 이곳은 국가예산을 받아 지탱하는 유럽식 극장도 아니고 매시즌 기부와 후원금을 걷어서 공연을 하는 곳이니 후원자들이야말로 메트 역사의 산 주인공 아니겠는가. 나도 아주 조금이나마 이 극장의 역사에 기여를 했다고 생각하니 약간 뿌듯해진다. 혹시 아는가, 오늘밤의 주역가수 안나 네트렙코가 드레스에 달고 나올 예쁜 브로치를 내 후원금으로 만들었을지.
저기 옆쪽의 대형 리허설룸에서는 다음 달에 올릴 오페라의 리허설이 한창이었고, 뒤쪽의 드레스룸은 생각보다 작고 소박했다. 그리고 조금 더 복잡한 통로를 거쳐서 나가면 다음 시즌을 위한 무대작업 공간이 나온다. 나는 여기서 마이클 메이어의 <리골레토> 신작을 미리 봤다. 1960년대 라스베거스를 배경으로 한 그 화제작 <리골레토> 말이다. 망치질과 톱질이 난무하는 가운데 우뚝 서 있는 그 현란한 모양의 네온싸인이란...
(메트 오페라의 무대작업 모습) |
(뉴욕을 열광시킨 세 명의 줄리엣들. 왼쪽부터 소프라노 나탈리 드세이, 안나 네트렙코, 홍혜경. 홍혜경은 2011년에 구노의 이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역으로 큰 갈채를 받았다.) |
(모차르트 <돈 조반니> 2중창 ‘이리와 내 손을 잡아요 la ci darem la mano’, 소프라노 홍혜경, 베이스바리톤 브라인 터펠. 2000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실황) |
혹자는 뉴욕에서 무슨 전통을 찾느냐고 말을 한다. 하긴 첼시와 놀리타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폐업과 개업을 반복하는 수많은 레스토랑들을 보자면 여기서 전통 같은 걸 찾는다는 게 뭔가 좀 덧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뉴욕에도 분명 시간의 가치가 오롯이 평가받는, 그런 빛나는 전통이 있다. 메트의 홍헤경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우리의 홍혜경은 뉴욕과 메트 오페라가 전세계에 자랑하는, 평생을 이 극장과 함께 했고, 또 이 극장이 키워낸 세계적인 소프라노이다. 지난 30여 년간 그녀가 차지한 뉴욕 타임즈의 지면만 해도 몇 페이지나 되는가. 올해도, 또 내년(2014/2015 시즌)에도 뉴욕 최고의 무대에서 계속 노래하는 그녀는, 확실히 우리가 전 세계에게 가장 자신있게 내세울만한 최고의 소프라노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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