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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디토씨의 음악여행수첩⑯ 슈만 <트로이메라이 Träumerei>

나베가 2014. 9. 29. 00:30

 

 

 

 

친절한 디토씨의 음악여행수첩⑯ 슈만 <트로이메라이 Träumerei>

커피란 원래 자유의 벗이고 지성인의 말동무며, 예술가의 생명수다. 이를 제대로 증명하고 있는 곳이 독일의 고도 라이프치히. 동독 시절 최대의 상공업도시였고, 동독 자유화를 염원하는 촛불시위가 처음 일어난 곳도 라이프치히이다. 당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었던 쿠르트 마주어가 이 월요 촛불시위에 앞장 선 사실은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다.

라이프치히는 예로부터 영주의 지배간섭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도시(Freistadt)였다. 모직물 공업과 무역업이 발달해 수많은 산물과 상인들이 이곳 라이프치히를 들고 나갔는데, 그 때문에 라이프치히 시민들은 종교와 내세에서의 구원 대신 실질과 자유를 숭상했고, 왕과 귀족의 간섭대신 실력주의를 높이 여겼다. 명문 라이프치히 대학이 깨어있는 젊은이들을 끌어 모았고, 독일 최초로 창간된 일간 신문은 라이프치히 시민들의 여론을 형성했다. 이런 도시에 ‘자유사상의 친구’인 커피가 일찍 전파되고 금새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라이프치히 곳곳에는 지금도 이름 높은 명문카페들이 많이 눈에 띄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 '커피나무'라는 이름의 커피바움(Coffe Baum)이다. 정식명칭은 춤 아라비쉔 커피바움(Zum Arabischen Coffe Baum)인데, 관습적으로 붙는 zum을 빼버리고 해석하면 ‘아랍의 커피나무’가 되겠다. 라이프치히의 번화가 한 길가에 있는 카페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최고의 명소이다. (그렇다고 커피맛이 최고는 아니라는 게 재밌는 점.)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수많은 음악가들도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거나 이곳에서 활약했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를 필두로 펠릭스 멘델스존, 리하르트 바그너 등이 라이프치히 태생이며 로베르토 슈만도 츠비카우에서 태어났지만 대도시 라이프치히로 ‘상경’해 피아노를 배우고 작곡과 평론활동을 했다.

커피바움은 로베르토 슈만의 대표적인 단골 카페였는데, 그는 실제로 이 카페에서 많은 곡들을 썼다고 한다. 커피바움에는 슈만의 이름이 붙은 메뉴가 두 개 있다. ‘슈만의 꿈’(Schumanns Traum)은 에스프레소 커피에 우유와 시럽을 넣은 부드러운 커피이며, 여기에 진하고 달콤한 케익인 ‘슈만 토르테’(Schumanntorte)까지 곁들이면 더할 나위가 없다.
 

 

 

(커피바움에 있는 슈만의 방 Schumannzimmer)


슈만의 <어린이 정경>은 모두 13곡으로 이뤄진 피아노 곡이다. 당시 유행하던 거장풍의 현란한 기교를 모두 덜어내고 그저 담백하고 투명한 음색으로 어린이들의 동심 세계를 그려낸 아름다운 음악이다. 어린이들이 들어도 좋겠지만 어른들이 들으면 더욱 감동적이다. 마치 닿을 수 없는 이상세계를 그려낸 꿈같은 음악이라고나 할까. 어릴 때는 그저 당연하게만 느껴졌던 그 단순하고 담백한 세상은 세월이 지나 어른이 이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머나먼 세계라는 걸 깨닫게 된다. <어린이 정경>은 그런 상실감에 대한 음악이며, 또 돌이킬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영롱한 헌사이기도 하다.

특히 일곱 번째 곡인 ‘트로이메라이’는 너무나 유명하다. 선율은 단순하고 음악은 선형적이다. 속된 말로 피아노만 배우면 누구나 칠 수 있다. 그러나 이 곡에 깊은 감정을 담아 제대로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트로이메라이는 어린이의 아름다운 꿈이면서, 동시에 지나간 유년시절을 그리워하는 어른들의 노스탤지어를 표현한 음악이기도 하다.

러시아가 낳은 위대한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역시 소련 당국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 음악생활을 해야 했다. 그는 평생 조국 러시아를 그리워했으나 미-소 양진영의 냉전은 이 대가의 귀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1986년, 그가 83세가 되어서야 소련 당국은 그의 귀국연주회를 허락했고, 노대가는 모스크바에서 열린 특별콘서트의 앵콜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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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슈만 <트로이메라이>, 피아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호로비츠의 영롱하고도 슬픈 피아노 소리 위로 유년시절의 추억, 조국을 등져야했던 슬픔, 그리움, 삶의 회한들이 알알이 사무치게 전혀져 오는 것 같다. 그날 그 공연에 앉아있던 모두가 눈물을 훔쳤고, 지금 우리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것은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연주였으며, 이 세상에서 가장 가슴시린 트로이메라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