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전문가들의 감상기

나베가 2006. 5. 15. 01:04

 

 

 
<바그너 전문가들의 '반지' 감상기>



출처 :
http://www.yonhapnews.co.kr/news/20050930/070300000020050930141542K8.html




(서울=연합뉴스) 이윤영 기자 = 바그너의 악극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이 화제  속에 드디어 막을 내렸다.

    발레리 게르기예프 지휘.연출의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 프로덕션으로 선보인  이번 공연은 지난 24일부터 29일(26, 28일 쉼)까지 나흘 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장장 18시간의 릴레이를 펼쳤다.

    국내초연으로 올려진 이번 공연을 두고 공연계와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일찍부터 기대 만큼이나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흘 간 기대 이상으로 객석을 메운 관객(기획사 CMI 집계, 4회 총 유료관객 70%)과 열광적인 반응은 당초의 우려를 어느 정도 씻기에 충분했다.

    특히 평일 오후 5시에 시작하는 공연을 보기 위해 상당수의 직장인 관객이 휴가까지 내가며 공연장을 찾는 열정을 보면서 우리 관객의 수준과 오페라계의 가능성을 다시 보게 됐다는 반응들도 많았다.

    갖가지 화젯거리도 낳았다. 공연을 앞두고 곳곳에서 '반지 강연회'가 열리고 그동안 구하기 힘들었던 관련 서적들도 잇따라 출간되면서 이례적인 공연 예습 '열풍'이 일었다.

    또 공연 중간중간 휴식 시간이 30-45분에 달해 세종문화회관 인근 음식점과  카페들이 '반짝 특수'를 누리고, 긴 휴식 시간에는 관객이 삼삼오오 모여 작품의 연출과 내용에 대한 열띤 토론을 나누는 등의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감상소감은 저마다 달랐지만 어쨌든 작품의 규모나 부수 효과 등 여러가지를 고려할 때 국내 공연계에 큰 의미를 남긴 화제작임에는 틀림없다는 평.

    바그너 전문가들이 본 나흘 간의 '반지 감상기'를 소개해 본다.

    ▲박종호(한국바그너협회 총무이사) = 일단 음악적으로 뛰어났다. 게르기예프는 굉장히 절제되고 세련된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지긴 했는데,  워낙 많은 스케줄을 소화한 탓에 공연 후반부로 갈수록 다들 지쳤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가수들의 노래도 사실 완벽하진 못했다. 하지만 한 극장에서 이 정도의  가수들을 동원할 수 있다는 면에선 세계 최고인 것 같다. 보통 외국 프로덕션의 경우 세계 각국에서 가수들을 데려다 쓰지 않는가. '발퀴레' '지그프리트'에서는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준 가수들도 있었고, '신들의 황혼'에서 지그프리트 역을  맡은  테너의 경우 중간에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노련한 모습을 보여줬다.

    연출은 게르기예프를 직접 만나 물어본 결과 그가 어린시절 자란 코카서스 지방의 원형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것이라 한다. 의상도 중앙아시아 지방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들이었다. 다른 문화권의 원형을 이 작품에 접목했다는  시도가  신선하고 참신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이 작품에서 여러가지 버전의 연출이 있어왔지만 이번처럼 인류학적으로 문화와 문화 사이를 가로지르는 아이디어는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가장 놀라웠던 건 관객이었다. 이만한 작품을, 공부하면서 끝까지 앉아서  봤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다. 외국에서 오페라 문화가 융성할 때 '반지' 공연이  계기가 된 경우가 많았다. 우리에게도 그런 계기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유정우(음악칼럼니스트) = 세부적인 면에서 좋고 나쁘고를 떠나 일단  전체적으로 볼 때 완성도는 상당히 높았다. 워낙 앙상블이 잘 다져진 팀이라 자신들에게  익숙한 레퍼토리가 아님에도 잘 소화해냈다.

    한 나라의 오페라 수준을 얘기할 때 자체적으로 훌륭한 프로덕션을 제작하는 역량도 중요하지만 외국의 메이저 프로덕션을 통째로 들여와 얼마나 똑같이  만들어내느냐도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도 합격점을 주고 싶다. 이러한 작품을 큰 사고 없이 잘 마쳤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다.

    연출이나 가수, 오케스트라의 연주 수준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는 지엽적인 문제다. 큰 덩어리로 볼 땐 상당히 성공적인 공연이었다.

    연출에서 특히 4부작 내내 무대에 서 있던 석상에 대해 논란이 많은데, 고대 신화에 대해 관객이 거리감과 두려움, 경외심을 갖도록 하는 하나의 장치다. 막이  바뀔 때마다 자세가 약간 비틀려 있다든지 하는 것도 그때그때 변화를 줘서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기 위한 수단이다. 게르기예프 스스로 이야기하길, 4부작을 관통하는 철학적 바탕은 없다고 하더라. 그나마 이번 공연에서 4부작을 관통하는 일관성이 좀 더 부여된 것이고, 러시아 오리지널 공연에선 4부작이 전혀 별개였다.

    이 석상들이 주는 의미나 전체적인 연출의 의도는 관객 개개인이 가진 지식으로 유추하면 그게 다 정답이다. 연출가가 친절하게 자신의 연출 의도를 미리 밝힌다 할지라도 공연 후 전문가들의 해석은 다 다르게 나오는 법이다.

    거의 매일 객석을 꽉 채우며 공연을 관람한 청중의 수준도 감탄할 만한  것이었다. 일부에선 성급한 박수 문제를 언급하며 아쉬움을 토로하는데, 미국이나  이탈리아 공연에서도 다 박수는 미리 나온다. 바그너 작품에서 심오함, 철학적인 것을  강조하지만 어차피 오페라는 엔터테인먼트다. 이 정도의 청중 수준이면 상당히 훌륭한 것이었다고 자평해도 될 것이다.

    ▲박원철(한국바그너협회 이사) =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일관성의 부족'이었다. 음악적인 면을 떠나 일단 연출 면에서 일관성이 없었다. 바그너가 악보에 지시한 부분들도 지켜지지 않은 것 같아 좀 아쉽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아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한국 관객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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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간의 대장정, 막 내린 '니벨룽 반지'
거대한 석상·황홀한 빛과 소리
잊지못할 대작의 감동을 남기다


평생 한 번 보기 어려운 대작이라 해서 엄청난 화제를 모았던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가 막을 내렸다. 9월 24일 ‘라인의 황금’, 25일 ‘발퀴레’, 27일 ‘지크프리트’에 이어 30일 ‘신들의 황혼’까지 나흘간의 대장정이 끝난 것이다. 공연 시간만 총 18시간에 이른 대작의 마지막 순간, ‘신들의 황혼’이 완전히 저물었을 때 객석의 박수와 환호는 아우성처럼 길게 이어졌다.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이 자체 프로덕션을 갖고 와서 선보인 이번 공연은 ‘니벨룽의 반지’ 한국 초연이라는 역사적 의의 뿐 아니라 전체적인 완성도 면에서도 잊지 못할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지휘자 겸 연출가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무대 디자이너 조지 티시핀과 함께 만든 무대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강력하고 효과적이었다. 공연 내내 등장하는 거대한 석상은 그 존재만으로도 두려움과 경외감을 자아내는 압도적 장치였다.

고대 거석 문화를 연상시키는 이 석상들은 공중에 떠 있거나 서거나 눕는 등 자세와 위치를 바꾸며 극의 전개를 암시했다. 다른 세트 없이 오직 이 석상들의 움직임으로 장면을 구성하는 방식에 대해 단조롭다는 비판도 없지 않지만,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무대를 뛰어넘는 시각적ㆍ상징적 강렬함이 더욱 두드러졌다고 본다.

이번 공연은 조명의 승리라고 할 만하다. 극의 흐름에 따라 색채를 달리 하며 펼쳐지는 빛의 향연은 황홀했다. 세부적인 면에서의 아쉬움, 이를테면 ‘라인의 황금’의 마지막에 보여야 할 신들의 요새 발할라 성과 무지개 다리, ‘발퀴레’에서 지그문트가 물푸레나무에 박힌 마법의 검(노퉁)을 뽑는 순간이나 군신 보탄이 창을 던져 지그문트의 노퉁을 부러뜨리는 순간, 용맹한 여전사들 발퀴레의 비행 등 하이라이트가 될 만한 몇몇 장면들이 시각적으로 전개되지 않고 넘어가는 바람에 어리둥절하거나 못마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 평점을 깎아 내릴 정도는 아니다.

게르기예프가 지휘한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좀 더 박진감 넘치고 작열하는 사운드를 기대했던 일부 애호가들로서는 성에 차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 너무 크고 오케스트라 피트도 좁고 긴 데서 오는 음향적 한계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 과격하면서도 강약의 대비가 뚜렷한 스타일로 잘 알려진 게르기예프가 예상과 달리 앙상블을 매우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 준 원인도 있다.

그러나 ‘라인의 황금’에서 사악한 난쟁이 알베리히가 지배하는 어둠의 세계로 내려갈 때, ‘신들의 황혼’에서 영웅 지크프리트의 죽음을 알리는 장송행진곡 등에서 들려 준, 심장이 터질 듯 격렬하고 웅장한 사운드는 이 오케스트라가 지닌 위대한 전통과 저력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었다.

가수들의 노래는 가수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대체로 무난했다. ‘발퀴레’의 지클린데(소프라노 믈라다 후도레이)와 브륀힐데(메조소프라노 올가 사보바), ‘지크프리트’의 지크프리트(테너 레오니드 자코자예프), ‘라인의 황금’의 알베리히(바리톤 에뎀 우메로브), ‘신들의 황혼’의 브륀힐데(소프라노 올가 세르게예바)와 하겐(베이스 알렉세이 탄노비스키)은 훌륭한 열창으로 특히 많은 갈채를 받았다.

처음 이 작품의 한국 공연 소식이 들렸을 때, 많은 사람들이 선뜻 믿으려 들지 않았다. 흥행의 참패를 우려하는 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공연은 이뤄졌고, 객석은 거의 찼다. 놀라운 일이다.

더 감탄스런 것은 이 어렵고 거대한 작품을 지휘, 연출, 무대, 가수에 이르기까지 100% 자국인의 힘으로 완성한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의 저력이다.

특히 이번 무대에서는 중앙아시아의 고대 스키타이 문명을 비롯해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지구 전역에서 차용한 원시 문화의 야성적 흔적들이 무대 장치, 소품, 의상 등에 무리 없이 녹아 있어, 러시아가 바그너와 이 오페라를 독일의 것이 아닌 인류 보편의 유산으로 흡수해 자기화했음을 자랑스럽게 보여 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100% 우리 힘으로 이 작품을 올릴 날은 언제 올까. 우리는 아직 ‘니벨룽의 반지’ 중 단 한 편도 전막 공연을 올려보지 못 했다.

 

 

 

 


 

한국 오페라에 새역사 '니벨룽의 반지'




출처 :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S2D&office_id=023&article_id=0000149935§ion_id=103§ion_id2=242&menu_id=103
[조선일보 2005-10-01 15:32]    

배우·악단·관객들이 해냈다

[조선일보 김성현 기자]

29일 밤 서울 세종문화회관. 바그너의 4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마지막 편 ‘신들의 황혼’은 오후 5시에 시작해 밤 10시30분이 넘어서야 막을 내렸다.

4회 18시간에 이르는 ‘공연 폭풍’을 몰아쳤던 명(名) 지휘자 게르기예프의 셔츠는 땀에 흠뻑 젖어있었고, 끝없는 기립 박수가 울려나오는 가운데 객석은 “해냈다”는 기쁨으로 가득했다.

24일 1부 ‘라인의 황금’으로 시작한 ‘마라톤 오페라’는 13t에 이르는 무대 장치, 300여 명에 이르는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 관계자의 입국 등 갖가지 숫자와 기록을 남기고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공연의 주인공은 객석에도 있었다. 김경원 전 주미대사, 구삼열 아리랑TV 사장, 안동림 전 청주대 교수 등 하루도 거르지 않고 18시간의 ‘마라톤’을 함께 뛴 열혈 애호가들과 “오페라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며 새롭게 재미를 붙인 수천여 관객들이었다.

이들은 매일 밤 극장 옆 식당과 카페에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세종문화회관 주변 카페는 자정에 이르도록 공연평을 나누는 관객들로 넘쳤다.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는 한 대학교수는 제자 10여 명과 함께 4회 공연 모두 가장 값싼 좌석을 구입한 뒤, 북유럽 신화와 문학에 대해 공부하는 ‘반지 원정대’가 되기도 했다.

올해 초 ‘니벨룽의 반지’의 한국 초연 소식에 음악인과 공연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과연 가능하겠느냐”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니벨룽의 반지’를 미리 공부까지 해가며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이 있었다. 오페라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힌 기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