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출발하려 했는데, 차질이 생겨버렸다.
늦게 일어나기도 했지만, 갑자기 회사에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겨서 .....
차라리 잘된일이다 싶었다.
작은 녀석 먹을것을 안해놔서....요즘 다시 아토피 피부염이 심해져서 될수 있는한 사 먹이지 않으려하고 있기때문에....
새우 마늘쫑 볶음, 감자조림, 생선조림, 멸치 피망 볶음, 우엉조림, 콩나물무침, 쑥갓무침,
오징어채 볶음, 미역국(밀폐병에 넣어 진공으로..), 매운탕, 하이라이스쏘스(밀폐병에 넣어 진공..), 인절미(냉동보관), 김, 밥(1회용씩 냉동보관) , 김치도 먹을 만큼씩 썰어서 김치냉장고에 넣고, 김밥까지 싸고보니..
우욱!
벌써부터 지쳐오기 시작했다.
"야~이건 휴가가 아냐."
다행히 회사일은 출근까진 안해도 됐다.
오후 4시!
너무 늦은 감이 있었지만, 밤이면 어떠랴.
결혼 10주년때 이후로 이렇게 긴휴가를 둘이만 떠나는건 처음인것 같다.
여행관련 서적 2권, 곽재구의 포구 기행, CD플레이어, 한 보따리의 테잎, CD, 카메라.........
"어디부터 가는거야. 잘~안내해."
"나두 몰라. 그냥 알아서 가는데, 여름 향기에 나오는 무주 리조트하고 보성 녹차밭하고, 메타세콰이어길(담양~순창가는길 17km) 을 꼭 들르자는 거지. 난...." 히히히...
"에이구~ 지도는 안보고 그저 사진만 보구 '아~!' 이랬지?"
14일! 다음날이 광복절이고, 토, 일요일까지 연휴로 이어지는데,,,,그래서 휴가를 잘못 잡은것 같아서 후회를 했는데...서해안 고속도로는 막히지 않았다.
막히지 않을 뿐 아니라, 차라리 늦게 출발을 한 덕분에 우린 선운사 톨게이트를 빠져 나올때까지 기막힌 일몰을 보면서 달릴 수 있었다.
그 아름다운 하늘빛...구름들...
저녁 놀이 완전히 숨어 버릴 때까지의 그 장대한 하늘 빛깔을 어떻게 형용할 수 있을까!
나는 빠렛트의 온갖 색깔들을 생각해내 섞어보기 시작했다.
썬그라스를 썼다 벗었다 하면서 그 색깔들을, 그 느낌들을 가슴에 담았다.
부안을 지나서 즐포를 향해 달리는 도로....
산이 도로를 에워싸고 도로는 그냥 하늘을 향해 솟구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어떤것도 나 이렇게 잘났소 하고 우쭐대는것 없이 산과 푸르른 나무들과 동화되어 납작 엎드린.... 올망 졸망한 집들이 그 어떤 집들보다 아름답고 훌륭해 보였다.
달빛이 유난히 밝아서 였을까...
저희들끼리 달빛아래 놀고있는 듯 한 기막힌 구름들하며, 달빛에 젖은 산 등성이와 산 허리들이 형용할 수 없는 초록빛을 내뿜고 있었다.
가끔씩 반짝이는 불빛들은 주위 산들과 함께 땅에 바짝 엎드려 있어, 마치도 도로가 하늘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는 느낌이 들게 했다.
마치도 조금만 더 달리면 하늘 나라에 닿을것 같은....
"그래! 이 길은 하늘길이야."
와~~ 하늘길! 어쩜 이럴 수가 있지?
지금 몇시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시간에 이길을 달려 보라고 알려줘야지.
아니~~ 음력 날짜도 맞춰야 될꺼야. 그치?
달빛때문에...
당신도 지금 신나지?
아~~ 나두 이길을 운전해 보고 싶다!"
자기야, 나~~너무 예뻐서 가슴이 벅차와......."
밤이 늦었지만...포구가 있을것 같아서 동호 해수욕장으로 갔다.
살갗에 닿는 쏴한 바닷 바람이 '가을 이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했다.
우뚝 우뚝 솟은 송림들이 펼쳐져 있었고 그 사이 사이에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있는...모텔 하나에 횟집들 몇개가 있는 아주 작은 포구였다.
다라이에 갓 잡은 물고기와 조개류..들을 상상했던 우리는 주위를 한바퀴 돈다음, 해변으로 내려갔다. 아주 멀리 사람들이 조개를 잡는 지 웅성거림과 후레쉬 불빛들이 떠다녔다.
정말이지 하늘이 칠흙같이 까맣다는 말을 나는 여기서 실감할 수 있었다.
후레쉬 불빛을 따라 우린 갯펄이 시작되는 곳까지 걸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보석처럼 빛나는 수많은 별들이 금방 머리위에 내려와 얘기하자 할것만 같았다.
한참을 걸어 들어왔는데도 갯펄에 가서 조개를 잡는 이들이 아직도 까마득하게만 보였다.
우린 그냥 모래 사장 끝에서 마냥 하늘의 기를 받듯이 별빛을 받고 서 있었다.
책을 보니, 이곳이 옆의 '구시포'해수욕장까지 연결되어 '명사십리'라고 불리운다고...
그렇게 해변이 길다고~~~
사람이 없어 한적한 선운사를 상상하고 갔는데...
2개의 호텔과 하나의 여관에 모두 방이 없었다.
그제서야 우린 오늘이 14일. 연휴의 시작임을 다시 느꼈다.
입구에 민박이 하나 있었다.
말이 민박이지, 수용인원이 500명이나 된다는 허술한 건물만 민박이었다.
이 아름다운 산 자락에 이런 건물을 짓도록 허가를 내준 것이 한심하기만 했다.
'민박'이란 모름지기 그 동네 사람이 그냥 사는집 아닌가?
선운사에서 밤을 보내고 싶어서 그냥 '거금'을 주고 그거마저 하나밖에 안 남았다는 그곳에 짐을 풀고....풍천장어와 동동주로 그렇게 선운사의 밤을 보냈다.
서둘러서 일까?
사람이 별로 없어 선운사 숲길을 제대로 걸을 수 있었다.
풀내음...나뭇잎, 풀잎들 후들거리는 소리...온갖 풀벌레 떠드는 소리....
계곡물 바윗돌과 부닺히며 노는 소리.....
한걸음 멀리서 울려 퍼지는 스님 염불하는 소리....
이 모든걸 느끼면서 걸을 수 있다는건 너무나 낭만적인 일이었다.
이곳에 왔던것이 한 7년전쯤인가?
셋째 시누이네 식구하고 같이 왔었었는데....
그녀석들이...벌써 커서 총들고 나라지키고 있으니....
지난번에는 못봤었는데, 거대하게 뻣은 나무가 좋아서 들어가보니, 추사 김정희 친필 비석이 있었다. 가히 대단하다는 말밖엔~ 한동안을 그곳에 서서 글자 한획 한획을 느꼈다.
대부분의 절들이 있는 곳은 그 절까지 가는 숲길들이 기막히다.
선운사는 특히나 역사를 자랑하는 듯 서있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장관이다.
뿌리가 다 드러나 마치 어린왕자에 나오는 '바오밥' 나무 같은것을 비롯한 괴목들이 많다.
"와~ 저건 몇살이나 되었을까?"
"물어봐."
"야~ 너 몇살이야?"
"넌 안들리지?"
"응."
"난 들었어. 995살이래."
히히히...
절 주변을 돌고...쉬엄 쉬엄 ...벤치에도 앉았다가 ...하며, 등산로가 시작되는곳 까지 갔다.
커피를 한잔 마시고, 발길을 돌렸다. 그곳에서 우린 한 안내판을 보고 드디어 궁금증을 풀게 되었다. 이곳 계곡물이 마치 오염된것 처럼 검게 보이는 것이 밤나무. 상수리나무...등등에서 나오는 '탄닌'때문이란걸.
그럼 그렇지. 오염될만한 것이 없는데....
어쨋든 검은 물은 정말 찝찝해 보여.
점심을 먹기엔 좀 일렀지만...파전에 어제 맡겨둔 동동주를 먹으러 갔다.
"아우~ 난 술 안마셔. 어제밤 술을 마셨더니 평소엔 얼굴이 한손에 쏘옥 들어가는데, 오늘 세수하는데 두손에도 다 안들어가는것 같아. "
"거짓말 하고 있어. 니가 무슨 얼굴이 한손에 쏘옥 들어가냐~ 파전 중자 크기만 하구만~"
"뜨아~우리 둘 여행하는 거 맞아? 어떻게 파전에 비유할 수가 있어? 남들은 다 예쁘다고 하는데 ...." 푸하하하~~
" 누가 뭐래? 난 크기를 말한것 뿐이야."
푸하하하~~~
불현듯 3년전, 아들 녀석이 시험을 엉망으로 봐와서 회초리를 들었던 때가 생각이 났다.
"이 녀석아~ 29개가 뭐냐. 어떻게 29개씩이나 틀리냐. 엉?
너 1개에 1대씩 맞아봐. 근데 하루에 다 맞으면 너 죽으니까, 3일에 나눠서 맞아. 알았어?"
아들녀석 커다란 눈을 껌벅거리면서....
" 안되는데요."
" 뭐? 뭐가 안돼?"
" 안 나눠지는데요."
뜨아~~~~
나는 그날 우리 아들에게 완전히 KO패했다.
융통성 없고, 고지곧대로이고, ....어떻게 닮아도 그렇게 닮을 수가 있을까....
크기를 말했을 뿐이라니....크크크큭~~
포구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어서, 곰소만에 있는 '곰소항'을 들르기로 했다.
책자에 그곳엔 아주머니들이 길가에 앉아서 배에서 갓 내린 횟감들을 팔고 있다고 해서..
곰소항은 횟집과 각종 생선들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한게 규모가 제법컸다.
근데 썰물때라서 배도 없고, 아줌마들도 한명도 없을뿐만 아니라, 햇살이 너무 따가와서 민소매로는 돌아 다닐 수도 없이 지치게 했다.
엉겁결에 감식초를 한잔 얻어마신 죄로 오징어를 한축 사가지고, 포구에 대한 미련은 더이상 갖지 않기로 하고 내장사를 들려 담양으로 가기로 ...코스를 잡고 그곳을 떴다.
변산반도를 한바퀴 돌을 수도 있었지만 예전에 한번 갔었던 변산에 대한 남편의 기억은 아주 복잡한...그래서 몹시 싫은 기억으로 가득한가 보다.
그래서 담양으로 가기로...그곳에 '메타쎄콰이어 길'이 있기때문에...대나무골공원도 있고...맛있고 푸짐한 한정식도 먹고....
내장산에는 가는 길이 두갈래 길이 있었다,
하나는 '내장사' 에서 백양사로 가는길,
또하나는 '백양사'에서 내장사 가는길...
내장사길로 가서 차로 한바퀴 돈다음, 산허리에 기막힌 길이 보여 그냥 그길로 들어섰다.
내장산 단풍이 유명한데... 단풍 길을 상상해 보며, 고개를 넘었다.
정상에서 솔잎냉차를 마셨는데 맛과 향이 아주 기막혔다.
카메라를 처음 찾아 사진을 찍었다.
고개를 내려올 작정이었는데, 너무 신기하게도 고개 정상에 그냥 마을이 이어지고 있었다.
백양사에 내려서 역시 절 입구까지 주욱 놔있는 숲길을 걸었다.
고여있는 계곡물에는 물보다 고기들이 더 많아 징그러울 정도였다.
숲길을 걷는데도 너무 더워서 남편은 내가 붙을까봐 자기 근처도 못오게 했다.
1m는 떨어져 겨우 새끼손가락 하나 그것도 빌려서 잡고 걸었다.
너무 많이 걸어서일뿐만 아니라, 끈 나시만 입었더니, 핸드백 끈이 스쳐서 어깨가 아프고 빠져나갈듯 지쳐왔다.
"자기야, 이 가방 좀 들어줘."
"아니~뭔 가방이 이렇게 무거워~"
"무거워? 지갑하고 CD플레이어만 들었는데... 그럼 요즘 나오는 손가락크기 만한 mp3하나 사주라.." (mp3겸용 CD라서 조금 두껍고 무겁다)
갑자기 남편의 흰 눈자위가 화~악 보이도록 눈을 흘겼다.
"반짝 반짝 작은별 아름답게 비치네..."
나는 제스쳐를 해가며 엉뚱하게 노래를 불러재꼈다.
낄낄낄.....
내장산은 역시 가을단풍인가?
이른 아침 선운사 길하고는 비교가 안될만큼 백양사길은 무덤덤했다.
'메타세콰이어길'과 대나무골'을 찾아야 했다.
메타세콰이어길이야 88고속도로옆 담양에서 순창가는 24번 도로로 가면되는데, 대나무골을 찾는게 문제였다. 이정표를 잘못봐서 두번이나 길을 잘못 들었다. 어느듯 대나무골을 지나쳐 메타세콰이어길에 들어서 달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남편은 그냥 지나칠 양인듯 보였다.
"자기야, 대나무밭 규모가 3만평이 넘는다는데~~"
메타세콰이어가 터널을 이루고 있는 길 시작점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차를 세워놓고 사진 촬영을 (전문가들)하고 있었고, 때로는 누워서 책을 보고있는...그림같은 풍경들과 함께 기가막힐 정도로 환상이었는데.....대나무골의 그 아쉬움때문에 제대로 탄성도 지르지 못했다.
사진을 몇장찍고...나의 이 숨기지 못하는 표정때문에 ...
남편은 다시 차를 돌려 대나무골을 찾아갔다.
헉! 이게 웬일인가! 나는 남편의 표정에 신경을 써야만 했다.
끝도 보이지 않게 서있는 차량들...더우기 나오는 차량들과 뒤엉켜져 엉망이....
그래도 남편은 소리없이 주차를 하고 걸었다.
터벅 터벅.......
정말 한참을 걸어 올라가니....기막힌 대나무 숲이 나왔다.
대의 굵기가 지름 10cm이상되는것들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뻣어있는것이...
장관이었다.
듬성 듬성...3만평에 심어져 있을것을 예상했는데, 지나다닐 만큼의 길을 빼곤 겨우 손이 들어갈 만큼의 공간으로 하늘이 안 보일 만큼 대나무로 꽉 차 있었다.
위에 올라가니, 음악이 흐르고...주인장이 찍은 사진들 전시가 있었고....한켠으로 소나무 산책길이 나 있었다. 맨발로 걸으라는 문구와 함께...
정말 빨간색의 황톳길을 소나무 향을 맡으며 걸으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어떤 기가 스멀 스멀 스며드는것 같았다.
약수물로 세수를 하는 남편에게서 지친 모습이 보였다.
워낙 걷기도 싫어하고 산을 못오르는 사람이지만(배가 나와서 )....잠시 건강이 걱정이 되었다.
어느새 앞서 온 차들은 반이 빠져나가고 비어있었다.
"평일에 오면 참 좋겠어. 눈이 왔을때도 환상이겠다. 그치? 그 잔디가 쫘악 깔린 야영장도 좋고...차도 숲 바로 앞까지 댈수 있고..."
30여년을 이 대나무 숲을 가꾸며, 4계절 사진을 찍으며 산다는 주인장(언론인이며 사진작가)이 대단해 보였다.
'외도'를 관광지로 탈바꿈 시켜놓은 한 부부와 함께 이렇듯 꿈을 실현하며 사는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게했다.
저녁을 먹고...강천사 국립공원에서 잘까 하다가 - 사실 더이상 절은 들르고 싶지 않은것 같기도 하고- 그때 '여수'가 생각났다.
" 그래!~ 자기야, 자기 여수 가봤어? 여수 갈래? 여수를 거쳐서 보성에 갔다가 무주로 가는거야"
시계를 보고...지도를 보더니...
" 가자! "
밤에 운전하기 피곤하고 지쳤을텐데도, 다시 남편의 얼굴에선 화색이 돗았다.
이곳 산을 떠나서 바다로 향한다는 그 맘이 그렇게 신이날까?
88고속도로는 편도 1차선 길이었다.
낮이 서서이 물러나고 어둠이 깔려드는 시간...도로옆 바짝까지 숲이 우거진 작은 길을 달리는 기분은 낮 동안의 지친기분을 한순간에 날려버릴 만큼 우리를 상쾌하게 만들었다.
" 옆에 봐. 아까 그 메타세콰이어 길이잖아."
" 어? 그렇네. 정말 장관이다. "
메타세콰이어 나무 한켠은 마치도 88고속도로 가로수 처럼 보였다.
17km라니....겨울에 눈이 온다면, 이곳은 몽땅 크리스마스 트리로 가득할것만 같았다.
남해 고속도로로 들어서니, 다시 4차선이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여수의 규모에 우리는 놀랐다.
'돌산대교'
돌산공원에서의 야경을 놓칠수는 없었다.
밑에서 봤을때는 웬지 촌스러워 보였던 돌산대교가... 시시각각 온갖색으로 변하는 ....다리밑의 옥빛색깔과 어우러져 기막힌 느낌을 주고 있었다.
검은 바다....
나즈막히 떠있는 수많은 반짝임들....
뭔지 모를 그리움까지....
........................
8.14~8.15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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