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 비아포 히스파닉 빙하(2015.7~

32.악마의 터널을 뚫고 천상화원을 지나 주트말(Jutmal)에 닿다.

나베가 2016. 4. 14. 00:30





새벽 4시반부터 벌인 서바이벌.....

이제까지와는 달리 유빙덩어리까지 만나고 더없이 넓고 깊은 사방이 막힌 모레인 빙하의 크레바스를 만나 절망의 늪에 빠져있기를....

오늘도 역시 '이제까지...최악'이란 단어를 또 쓰게 된....


그 끝에 또 거짓말 처럼 만난 천상의 화원에 올랐다.

어쩌면 이러다가 이것이 공식 패턴이 되지 않을까도 싶은....







기막히게 피어있는 노오란 야생화 밭에 털푸덕이 앉아 있자니, 눈으로 들어오는 순백의 설산이 기막히다.

오늘 도대체 몇 시간 동안이나 시커먼 유빙과 빙하더미와 모레인 빙하의 크레바스와 사투를 벌였던가~

눈앞의 백색의 설산이 눈이 부시도록 찬란하고도 낯설게 느껴진다.








다 죽어가다가도 야생화 천국에 올라서서 다시 흥분에 겨워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는 나와는 달리

우리의 가이드 후세인과 올람에게선 지친 표정뿐이다.

카메라가 그들에게 향하면 여지없이 포즈를 잡고 즐거워 했던 후세인과 올람이었건만....

하긴 어찌 안그럴까....







천국에서의 쉼도 잠깐....

다시 가파른 하산길로 접어든다.

온몸에 진이 다 빠졌는 지,얼마 못가서 또 쉬는 포터들이 생겨났다.

아직 갈 길이 먼데....

오늘 여정이 무척 길다고 했는데...

어쩌면 좋을까....







한 참을 걷다가 쉬는 시간을 가졌다.

이참에 물도 마시고 화보촬영도 한다.

특별히 뷰포인트를 찾을것도 없다.

여정 시작부터 끝도 없이 펼쳐진 설산의 파노라마가 늘 그자리에 있고,

그 앞으로도 여전히 끝도 없이 펼쳐지는 험준한 빙하가 늘 있으니까.


그러니 그냥 쉬는 곳이 늘 뷰포인트다.


















얼마만에 벌인 모델놀이 였든가~

함께 모여 이처럼 오래 화보촬영을 하며 여유시간을 갖었던 지가 언젠 지 기억에도 없는것 같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온 언덕배기를 다 뒤엎은 보라빛 이 꽃은 이처럼 고산지대의 맑디 맑은 곳에서만 자라는 지....

이곳을 다 뒤엎은 양 피어있다.

정말 너무나 아름답다.










오호~ 그려~

순간 뒤를 돌아보는 후세인을 한 컷 담아본다.






후세인만 찍어줄 수 없지~

뒤따라 오던 올람도 같은 장소에서 한 컷 찍어 준다.

검은 지옥의 빙하가 다 가려지고 하얀 설산과 꽃만 찍으니 기막힌 뷰다.






기막힌 뷰라고 찬미를 하고 났더니, 이내 또 내 시야에 들어온 이 풍광이란....

지옥의 빙하의 모습을 배경으로 꽃이 들어가니 왠지 비현실적인 사진이 된것 같다.







매일이 드라마틱한 여정을 걷지마는 그래도 이 비현실적인 풍광속에 내가 있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 지....

두번 다시 보고 싶지도 않은 풍광이라기 보다는 '너의 이런 모습'을 보러왔다는 것을 상기해 보며 자꾸 카메라 샷을 날린다.


이처럼 꽃길을 걸으면서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자니, 끔찍한 지옥의 길이라는 생각보다는

대단하다!

장관이다!

등등 벌써 내 몸에 강력한 기가 흐르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러다가도 이내 시선을 돌리면 야생화 만발한 푸른 초원이 나를 감싸안는다.

온 몸이 '이쁘다...'란 말에 감염이 되어서 중증환자가 되고 있는것만 같다.













하긴 이곳 천국에 와서 '이쁘다' 중증환자가 되지 않으면 어찌될까...

아무리 내뱉어도 지치지 않고 듣기 좋은 말이고

더없이 좋은 에너지를 만땅 내 몸에 채워줄텐데.....

이보다 더 한 보약이 있을 수 없지. 













화보촬영 한 컷 찍고 앞서 나간 후세인이 벌써 저 끝에 가있다.






















야생화에 매료되어 모두 흩어져 있더니만 어느새 모두 모여 저 끝을 일렬로 걷는다.

나만 아직도 이 멀직한 뒤에 있으니 서둘러야 겠다.









어느새 시간이 11시반을 넘겨 정오에 가깝다.

새벽 4시반 조금 지나 출발해서 벌써 11시반을 넘겼으니,7시간을 넘게 걸은것이다.

오늘은 날씨도 좋고 장소도 천상의 꽃길이니 점심을 이곳에서 먹는다.

포터들도 각자 점심들을 챙겨와 삼삼오오 먹는다.








그러고 보니, 사다르가 있는 이곳 팀들이 아스꼴리에서 온 포터들이다.

노오란 꽃이 수놓아진 초록 풀밭의 포터들이 너무나 싱그러워 보인다.

그야말로 '풀밭에서의 점심식사'란 제목의 모네 그림이 따로 없다.

어디 이 순간을 보면서 오늘 우리가 건너온 지옥의 여정을 생각할 수 있을까....























먼저 도착해 점심을 먹고 있는 포터들의 모습을 한 바탕 카메라에 담고서 우리의 점심장소로 왔다.

파아란 하늘과 푸르른 초원 가운데로 들어찬 백색의 설산이 유난히 찬란해 보인다.

이 기막힌 풍광...이곳에서...

이 찬란한 곳에서 점심을 해 먹는다니....






                                                 <일행이었던 워크딕님 블로그에서 가져온 사진임>



오늘 점심은

쿡이 도시락 처럼 준비해온

삶은 계란과 감자, 치즈와 견과류에

워크딕님이 가져온 한국 라면을 끓여 먹기로 했다.


그것도 아껴야 해서 식구수 대로 끓이는게 아니라

2개만 끓여 조금씩 나누어 먹기로 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쿡이 라면을 끓이지 못해서

컨디션이 엉망였지만,

오늘도 라면은 내가 끓였다.


건조김치를 넣으니

칼칼한 맛이 좋다.


















점심을 먹고나서 천국의 길을 계속 걸었다.







와우~

저 까마득한 아래로 이제와는 또 사뭇 다른 풍광이 보여진다.

나무라고 해야하나??

멀리는 그저 푸른 초원으로만 보였던 풍광이 몽글 몽글한 초록 뭉턱이 보이는 것이 나무같은 느낌이 든다.








와아~

세상에 ~

또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이라니....

이럴땐 또 꼭 하늘까지 합세하더라구~

파아란 하늘을 가운데로 갈라지듯 뻗어나간 하얀 뭉게 구름하며 그 아래 초원위의 검은 소라니....

더우기 청보라빛 꽃이 초록위에 가득메워 푸른빛 마저 도는것이 기막히다.







이제까지는 보이지 않던 로즈마리 꽃이 있어 향기까지 풍기고 예상대로 나즈막한 나무도 있다.






이곳은 정말 저 검은 소들의 땅이란 생각이 문득 든다.

파아란 하늘 야생화 만발한 푸른 초원에서 저리 맘껏 뛰놀다니....

우리야 잠시 천국을 스쳐 지나지만 저 검은 소들은 이곳에서 자라는 풀을 뜯으며 이곳에서 산다.

그러니 진정 천국의 주인인 거지.




















아!!

하늘이 너무 이뻐서 발목을 또 잡혔다.

어쩌면 푸른 초원 뒤로 하얀 뭉게구름이 저리도 피어 올랐을까....

그 앞을 지나는 검은 소는 뭔일이지?







앞서가는 후세인과 올람의 뒷모습도 풍광과 어우러져 예술이다







푸르른 초원위에 저리 동물이 들어갔다고 이렇게도 다른 풍광을 만들어 내다니...

정말 그림이 따로 없다.



















아!!

그러나 그도 잠시였다.

끝없이 펼쳐질것만 같았던 푸른 초원 끝 무너져 내린 그 아래로 거대한 빙하계곡이 또 흐르고 있었다.

얼마나 물살이 샜으면 저리 엄청난 초원의 한 귀퉁이를 완전히 쓸어 가버렸을까....


빙하의 모습만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절망적인 것이 아니었다.

빙하가 녹아 흘러내리는 계곡의 물도 그 크기와 위력에 점 점 더 강도가 세어졌다.

어제 건넌 빙하계곡하고는 게임이 안될정도로 엄청났다.

우리가 스카르두로 들어설때 보았던 분노의 인더스 강물 처럼 성난 파도가 모든걸 다 삼켜버릴것 같은 위세다.  


오늘도 또 똑같이 사다르와 핫산, 올람...등이 여전히 빙하계곡에 빠져서 모든 팀원들을 위기에서 건져내 주고 있었다.

내가 나타나자 키친보이 올람이 성큼 다가와 나를 덥석 업는다.

올람이 업고  포터 후세인이 올람을 부축였는데도 몸이 갈피를 잡지 못한다.

물이 흙탕물이라서 바닥을 가늠할 수 없으니 더욱 힘든것이다.


                       <아래 사진:워크딕님 블로그에서 퍼온 사진임>

                   

                     


성난 빙하물은 얼마나 그 크기가 강렬했으면 업혔음에도 불구하고  내 옷을 적셨다.

물살에 밀려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자꾸 기우뚱 하는 것이 왠지 물살에 빨려들어갈 것 같아 여간 불안하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아차 하며 넘어질뻔 한 순간 바위를 잡고 간신히 버텼고, 포터들이 달려와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으나

결국 막판에 올람이 나를 업은 채 넘어졌다.

그래도  다 건너와서 넘어져서  괜찮았다.

다만...넘어진 올람하고 물에 빠져 모든 일행들을 건네주는 사다르와 기타 포터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빙하 계곡을 건너와 넓다란 바위 위에 누웠다.

눈을 감으니 오늘 겪었던 모든 여정들이 순간 오버랩되며 공포감과 미안함...등등 모든게 뒤엉켜지며 갑자기 맘이 울컥해졌다.

그때 워크딕님이 모자에 물을 적셔서 내 얼굴을 덮어 주셨다.

갑자기 이제껏 참았던 모든 힘듦과 감정들이 폭발하듯 눈물이 쏟아졌다.

가려진 모자 덕분에 나는 나도 모르는 감정을 폭발해내듯 실컷 울었다.





오늘 이 순간에도 왜 또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한 장면이 자꾸 떠오르는 지 모르겠다.

영국인들의 화려한 삶과 그들 밑에서 일하는 아프리카인들의 너무나도 상반된 삶의 모습이 지금의 나의 상황에 자꾸 오버랩이 되는 것이다.

며칠 동안 계속 그런 감정이 나를 힘들게 했다.

처음엔 영국 여왕이나 귀족이라도 된듯 행복한 마음에 들뜨기도 했었지만,

날이 갈 수록 험악해진 우리의 여정에 저들이 우리에게 대하는 모습이 얼마나 끔찍한 지....

자신들의 목숨까지 바칠 기세로 우릴 보호해 주는 모습을 보니 고마움과 감동을 넘어 가슴이 아파오는 것이다.


내가 무엇이길래....

돈이 무엇이길래...

삶이 누구에게는 왜 이렇게 힘들어야만 하는 것일까....


순간 남편의 모습도 스쳐지났다.

혹시 이와는 상황은 달라도 이토록 치열한 삶의 힘듦을 겪어내고 있는건 아닐까....





오늘은 더 이상 다치간까지 갈 포터들의 체력도 없고 마침 캠프장도 바로 옆에 있어서 이곳 주트말에서 묵기로 했다.

갑자기 결정난 이 상황에 맞추어 포터들이 캠프 사이트 구축에 열을 올린다.

그 사이 우리들 앉으라고  흙먼지가 뽀얀 의자를 가져와 먼지를 닦아내곤 앉아서 기다리라고 한다.

사방이 바윗덩이라 그냥 아무데서나 앉아 있어도 되는데,이렇게 극진한 모습을 보니 또 참아내고 있던 마음이 울컥한다.







                                               <일행이었던 워크딕님 블로그서 퍼온 사진임>



이내 사이트는 구축되었고

나는 텐트로 들어가 쓰러져 누웠다.


그런데 포터들이 내 텐트로 찾아 들었다.

오늘 여정이 끔찍했던 만큼 포터들의 컨디션이 난조를 부린것이다.


대부분은 힘든 여정에 스트레스와 과로, 뙤약볕에서의 힘든 여정에서 비롯된 두통때문에 찾아온다. 그 외에도 감기와 다치거나 염증,입술이 심히 부르터져 찾아오는 사람 등등 가지 각색이다.

지난 K2와 칸데 여정에서도 굿닥터였는데...이곳도 이동 진료소 정도는 되겠다.


그래도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나니 언제 피곤했나 싶을 정도로 컨디션이 나아진다.



나는 마침 아파서 내게 찾아온 핫산에겐 1000루피, 아스꼴리에서 온 힘센 포터에게 500루피의 팁을 노고에 감사함의 표시로 몰래 주었다.

그리고 종횡무진 애쓴 사다르와 그외 빙하계곡에 빠져 고생한 포터에게도 찾아가 몰래 500루피씩의 팁을 주었다.

날로 심해지는 이들의 역경과 노고를 모른채 하고 있기가 힘들었다.

누군가라도 고마움을 전해야 할것 같았고 또 내가 이들에게 고마움과 격려의 표시로 해줄 수 있는건 오직 이것 뿐이었다.


무엇으로 이들에 대한 아픔과 고마움을 전할 수 있을 지...

펑펑 울음을 터트리는 순간엔 정말 내가 가진것 모든것을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 키친텐트에 가서도 스텝 3명에게 1000루피씩의 후한 팁을 주었다.

사실 이들의 1스테이지 일당보다도 높은 팁을 주니 후세인이 놀라서 이게 뭐냐고 묻는다. 

어제 오늘 너무나 힘든 여정이었고, 너무나 고마워서 주는 팁이라고 하니,  어쩔줄을 몰라한다.


이것으로 목숨을 건 사투에 어찌 비할바겠냐만 그래도 이렇게 하고 나니, 어제의 고맙고 미안했던 맘도 덜어지고 맘이 편하다.

앞으로 일정도 많이 남았고 이들에게 지불해야할 공동 팁도 남았지만 사사로운 쇼핑을 안한다면 충분했다.

다른건 일체 안하기로...

한국에서 거의 매일 마시는 커피 안마시고 모두 너희에게 여정이 끝나면 스타벅스 커피 한 잔씩 사주겠다고 굳게 맘도 먹어본다.(스타벅스 커피값의 팁)


 



헨델//오라토리오 '삼손' 2막 미가의 아리아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