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 올람과 사다르 사비르가 빙하를 안방 삼아 앉아 있는 모습이 판타스틱하다.
세상에~
빙하에서 저리 편한 자세로 앉아 있다니...
이들은 뭔가 인체구조가 우리와는 확실히 다른게 분명해~
키친보이 올람은 또 뭐가 저리 좋은 지...손까지 흔든다.
덩치는 큰데 천방지축으로 마냥 기분좋은 어린아이 같다.
한바탕 사진을 찍고, 또 찍히고...했더니
워크딕님과 알쏭님이 까마득히 앞서 가고 있다.
에고~
확실히 날씨가 무척 추운 날이다.
크레바스에 붙은 눈이 녹아 흘러내리다가 그대로 얼어붙어 고드름이 되어 매달려 있다.
하긴 또 이따가 해가 나면 금새 녹아내릴 지도 모른다.
워낙 내리쬐는 태양열이 강해서 순식간에 없었던 내가 생기고, 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리기도 하니까...
비교적 완만하고 평탄했던 빙하 길이 점 점 더 험악해져 간다.
날카로운 암산 골에 쌓인 빙하의 두께도 점 점 더 두꺼워져 가고....
그 위용에 발걸음이 자꾸 멈춰지니 어제보다는 훨씬 덜 지치는것 같다.
세상에~
이 길을 건너왔다니....
건너올땐 바짝 긴장감을 가지고 오직 발밑만 보고 건너니 잘 몰랐는데, 건너와서 보니
헉 소리가 절로 난다.
더우기 단단한 설빙하가 아니라 눈 크레바스라서 더 위험하다.
어디에 숨은 크레바스가 있고,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눈 지반이 약해서 그냥 무너져 내릴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캠프사이트가 다가오는 지, 슬슬 빙하 가장자리 모레인 빙하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헐~
모레인 돌산을 하나 넘으면 우리의 캠프사이트가 나올줄 알았더니, 이게 왠일인가`
거대한 빙퇴석 모레인 지대가 가위가 눌릴정도로 끝을 모르고 펼쳐져 있다.
거기다 까마득한 오르막이다.
너나할거 없이 오르다가 모두 한바탕씩 쉬고 있다.
걷기는 힘들어도 빙퇴석 너덜지대는 또 바위가 많아 앉아 쉬기는 좋다.
이참에 간식도 먹고, 파워 에너지겔로 고갈된 체력도 보충하고 온 몸과 마음도 쉬어준다.
어쩌면 진짜 이 순간에 내 몸이 완전하게 치유가 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머릿속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으니 완전히 비워지고....
몸도 그동안 과식으로 쌓였던 온갖 지방과 노폐물들이 온전하게 태워지고 있으니...
그러면서 매일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
거기다 매 순간 감동의 연속....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먹는것 부터 그 어떤 욕심도 들어찰 수가 없으니
그러고 보면 이건 거의 순례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바탕 쉬고나서 배낭을 매고 일어섰다.
한참을 올라왔는데도 여전히 고지는 까마득하다.
순례자의 길이라 마음 먹으면 좀 낳으려나~~
그려~
묵주기도까지 하니 좋네~
얼마를 올라왔을까....
뒤를 돌아보니, 올라온 길이 까마득하다.
그리 험하고 판타스틱했던 설빙하는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고, 그리 험준했던 빙퇴석 모레인 빙하 조차도 고운 자갈길 처럼 보인다.
우와~
이건 또 뭐야~
꼭대기에 올라서 보니 오른쪽에 딱 버티고 있는 산의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다.
완벽한 톱니날...아니,마치 팬화로 그려낸듯한 날카로운 능선과 그 골을 메우고 있는 하얀 눈...
그리고 한켠으로 켜켜이 쌓아 올려진 듯한 바위의 결이 ...기가막히다.
더우기 그 아래로 까마득하게 쌓여진 돌무더기와 이어져 내린 모습이....
이제까지 보았던 거대한 암산과 날카로운 첨봉으로 위상을 펼쳐냈던 산군들과는 확연히 비교된다.
12시반쯤 오늘 캠프지인 카르포고로에 도착했다.
오늘도 중간에 점심은 먹지 않고 그냥 행동식으로만 하고 계속 걸었다.
카르포고로는 이제껏 캠프지와는 사뭇 다른것이 보통은 산에 둘러쌓여 있거나 언덕 아래의 바람을 피해 안전지대에 캠프지가 있는데,
이곳은 돌산 꼭대기에 캠프사이트가 있다.
그야말로 좌우로 다 돌산 절벽이다.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키친텐트와 주방텐트를 메인 장소에 치고, 우리들 텐트는 사방에 흩어져
보기에도 아찔한 곳에 가까스로 쳤다.
위험해서 나올때 조심해야 하지만 전망과 스릴감을 동시에 즐길 수 있으니, 나름 또 판타스틱하다고나 할까....ㅋㅋ
이정도를 가지고 두려움을 가질 우리들이 아니다. ㅎㅎ
절벽 아래로는 포터들이 잘 수 있는 안전한 캠프사이트가 있었다.
나즈막하게 돌로 둘러쳐져 있어 저곳에 모두 모여 또 비닐 한 장 치고 잘것이다.
텐트에 들어가자 마자 누웠다.
그렇게 화창하던 날씨가 꾸물거리더니 비가 온다.
아직 한낮인데도 비가 와서 그런 지 매우 춥다.
에어매트도 깔지 않고 에이전시에서 깔아놓은 기본 매트 위에 침낭을 펴고
이번에 새로 사서 가지고 간 이머전시 비비쌕을 처음으로 펴서 침낭을 넣었다.
그리고 들어가서 누워있으니 얼마나 따듯한 지....그 포근함과 따듯함이 천국이 따로 없다.
닭이 이 고도에서는 살수가 없다해서 지난 번에 다 먹은줄 알았더니,잡아서 가져온 닭이 있었는 지 오늘 닭요리를 한댄다.
저녁때 백숙을 해먹자고 했었는데, 비도 오는데다 꼼짝 하기도 싫어서 대충 설명만 해주고 알아서 하라고 하곤 잠시 눈을 붙였다.
힘이 들었는 지 오늘도 이 짧은 순간에 또 꿀잠을 잤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 텐트밖으로 내다보니, 까마득한 아래로 하얀 눈속에 에메랄드빛 물이 보인다.
그 어떤 에메랄드빛이 이보다 더 이쁠까...마치 보석같이 반짝이듯 보였다고 할까....
그 빛깔이 너무 이쁘고 신기해서 한동안을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저 물이 있어 이곳이 캠프사이트로 이용될 수 있는건 지도 모르겠다.
오 마이 갓!!
바닥을 보니, 비가 새들어 왔다.
너무 피곤해서 아무것도 깔지 않은 채 누웠더니, 에이전시에서 깔아준 기본 매트위로 비가 젖어들은 거다.
다행히 이머전시 비비쌕에 침낭을 넣어서 침낭이 젖지 않았고 다른 것들도 다행히 젖어들지 않아 천만 다행이었다.
정신없이 방수 타프를 바닥에 깔고, 그 위로 가방등을 다 옮긴다음 젖은 비비쌕의 물기를 닦아내느라 한바탕 전쟁을 치뤄냈다.
한밤중에 자다가 이런 사태를 당했으면 어쩔뻔 했을까....
더구나 내일부터는 스노우 레이크로 가는 정말 위험한 코스의 시작이라 눈이 녹기전에 가야해서 4시반에 출발인데...
이 난리통을 맞딱뜨렸다면 어땠을까....가슴이 다 철렁 내려앉는다.
모든게 신의 도움인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낮잠을 잔것도 그렇고...
처음으로 비비쌕을 사용한 것도 그렇고....
저녁으로 내어놓은 백숙이 제대로 되어 아주 맛있었다.
마늘만 듬뿍 넣으라고 했는데, 양파까지 다져 넣었는데도 맛이 진한것이 정말 좋다.
고산 트래킹에 있어 속 다스림은 물론 영양보충으로 마늘을 듬뿍 넣은 백숙만한게 없는것 같다.
캠프사이트엔 이내 어둠이 찾아 들었다.
내일은 새벽 4시에 아침을 먹고 4시반 출발이라 하니, 아예 오늘 밤에 내일 입을 옷을 다 입은 채로 모두 자기로 했다.
그렇게 다 챙겨입었는데도 춥다.
갑자기 추위에 떨 스텝들과 포터들이 안스러워 진다.
내일 스패치도 없이 눈밭을 걸을 포터들을 생각하니 더욱 그렇다.
우리는 있는 비닐을 모두 모아 스패치로 쓰라고 포터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나는 3켤레의 양말만 남겨두고 양말 5켤레를 가지고 나와 후세인과 올람 A,B에게 주고 내 짐을 지는 포터 2명에게도 주었다.
그리고 포터들을 위해 준비해간 비교적 튼튼한 일회용 비닐 장갑을 그들이 끼는 허술한 장갑속에 끼라고
후세인에게 시연을 보이며 한박스를 주었다.
이렇게라도 하고나니, 그나마 조금 마음이 편안해 진다.
텐트에 들어와 잠자리에 들으려 하다보니, 추위에 떨며 잘 스텝들이 또 마음에 걸린다.
나는 이머전시 비비쌕까지 있으니 핫팩이 없어도 잘만하다.
핫팩 3개를 들고 나가 후세인과 올람A,B에게 나누어 주고, 오버 트라우져를 입을거니 내 스패치는 후세인에게 빌려주었다.
이제서야 그나마 맘이 좀 편안하다.
그나 저나 이렇게 비가 오니, 내일 스노우 레이크에는 얼마나 더 눈이 쌓일까....
지금 현재 상황으로도 예년에 비해 상당한 눈이 쌓여있을것이 예상되어 숨은 크레바스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거라는데....
아아~
지금 그게 걱정이 아니야~
당장 오늘밤 이 텐트가 멀쩡해야 할텐데....
바닥이야 방수 매트를 탄탄하게 잘 깔았으니까 그렇다쳐도 혹여라도 텐트위에서 또 물이 새들어 올까봐 걱정이 된다.
나름 대비책으로 여분의 비닐을 가방위에 씌웠지만.....
베를리오즈 / ♬환상 교향곡 (Symphonie Fantastique, O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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