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7.25.토....
5시반 기상, 6시반 아침식사, 7시 출발....
날씨가 화창하다.
오늘은 이 천상을 떠나 다시 저 험준한 모레인 빙하를 건너 하얀 설빙하로 들어가야 한다.
시팡으로 들어설때의 그 험준함을 떠 올린다면 오늘의 여정이 결코 만만찮음을 각오해야 할것이다.
아침으로는 참치 야채국에 우리가 가져간 천연양념에 김가루,깨소금,참기름을 넣고 비빔밥을 해서 양배추 김치와 먹었다.
토스트한 식빵과 도너츠도 한쪽씩 먹고, 디저트 처럼 먹는 숭늉...
아침 식사를 하는데 의자에 앉은 엉덩이가 시릴정도다.
어제 그처럼 햇살이 따사로왔던 것을 생각하면 매치가 안될정도로 아침 기온이 차다.
오늘 입을 옷을 어떻게 챙겨야 할 지 몰라 올람에게 물었더니, 아침에는 매우 춥고, 걸을땐 날씨가 좋으면 춥지 않을것이라고 하더니...
역시 고도 4000m 의 날씨가 매섭다.
일단 베이직 옷은 여름옷으로 입고, 그 위에 바람막이를 입었다.
그리고 점심 먹을때 추울것을 대비해서 배낭에 패딩을 챙겨넣고, 오늘은 7시간을 걷는다 하니
2리터의 물을 1리터는 포카리 스웨트로, 1리터의 물은 생수로 챙겼다.
그리고 행동식으로 미숫가루를 플라스틱 약병에 담고, 파워 에너지겔 2개와 캔디, 견과류와 말린과일을 챙겨넣었다.
어제 하산한다는 다리 통증 포터가 약을 먹으니 괜찮다고 하산하지 않고 그냥 포터일을 계속 하겠다고 한다.
아침 약을 챙겨주려는데 배낭에 넣은 줄만 알았던 약봉지가 없다.
벌써 집중력이 떨어진것이다.
뷰랴 뷰랴 내 짐 포터에게 갔더니 다행히 막 짐을 묶기 직전이다.
얼른 약 상자를 꺼내 소염진통제를 꺼내 주느라 또 허둥댔다.
결국 또 나만 일행들에 뒤쳐진 출발....아무래도 걸음걸이가 빨라진다.
헐~
그런데 이건 또 뭔일....
썬그라스를 텐트 걸이에 걸어둔채로 나온것이다.
정신없이 또 뛰어가 묵기 직전인 텐트속에서 선그라스를 찾았다.
다행히 부서지지 않은 상태다.
불현듯 밤새 꿈자리 마저 심란했음을 상기하고는 스스로에게 '조심하자'고 경각심을 갖는다.
이럴땐 묵주기도가 최고다.
아~~
캠프지를 벗어나 언덕배기에 오르니 기가 막힐 정도의 험준한 풍광에 그만 탄식의 소리가 터진다.
어떻게 언덕배기 하나를 두고 이렇듯 극과 극의 풍광이 펼쳐질 수 있는건 지....
맑은 물이 흐르고 야생화 만발한 푸른 초원에서 거대한 빙퇴석이 난자한 빙하라니....
빙하로 접어들으니 급경사의 돌 사면길이 나오며 위험의 시작을 알린다.
추위와 함께 온 몸을 감싸고 도는 긴장감은 뼛속까지 한기를 느끼게 만든다.
가운데 설빙하를 중심으로 좌측은 끝도 보이지 않는 설산의 파노라마가 펼쳐지고....
우측은 거친 돌산의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빙하위에는 어디서 굴러떨어져 내린 것인 지, 집채만한 바윗덩이들이 딩굴며 위압감을 준다.
"이게 사람사는 지구가 맞는가!
직접 와보지 않은 사람에게 아무리 얘기를 해 준다하더라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오늘도 정면으로 맞바람을 맞으며 걷자니, 매우 춥다.
바람막이에 두꺼운 패딩을 껴입었어도....손까지 시렵다.
그렇다고 출발시점부터 겨울옷 차림을 하고 나서면 뜨겁게 태양이 내리쬐는 한 낮에는 죽으니 그럴수도 없고...
추위를 대비한 옷이며 장갑...등등을 배낭에 다 챙겨넣자면 4000m가 넘는 고지에서 그 무게감으로 죽음이니...
밤 마다, 아침 마다 점을 수없이 치지만 그뿐이다.
기다리는 후세인에게 '매우 춥다고...' 했더니, 이내 또 자기 우모복을 벗어주려고 한다.
나도 패딩을 입었다고 했더니, 자신의 얇은 바지를 만지며 무릎이 시렵다고 한다.
세상에....얇은 바지로 무릎까지 시려울 정도면서 우모복 마저 내게 벗어주겠다니....
어저께도 알쏭에게 벗어 주더니만...나는 그런 후세인이 고맙고 애처로워 무릎을 손으로 비벼 주며 열을 내주었다.
후세인의 표정이 이내 환해지며 고맙다고 한다.
경치의 변화도 크게 없으니, 가도 가도 끝이 없어보인다.
왠지 벌써부터 지쳐온다는 느낌이 든다.
춥고....
힘들고...
졸립다.
너무 졸리워서 다리의 힘도 빠지는 듯하다.
아~왜 이렇게 졸립지??
그래~
힘들고 지치는게 어디 우리뿐이랴~
무거운 짐을 진 포터들은 얼마나 힘이 들까...
더우기 이 추위에 옷도 얇고, 장갑도 없이...
평소에는 우리보다 늦게 출발해도 이내 우리를 앞질러 휘익~ 사라지는데, 오늘은 우리 시야에 계속 머문다.
털푸더기 앉아있는 모습이 모두들 힘겨워 보인다.
먹는것까지 하염없이 부실하니.....
그래도 이내 일어나서 일렬로 줄을 지어 우리를 앞서간다.
서로들 의지하는 모습이지 않을까....
저만치 앞서 내 짐을 진 포터가 앉아 쉬고 있다.
2개의 가방으로 나누었어도 저 큰 카고백 무게만도 족히 25kg은 될텐데, 거기에 자신의 짐과 먹거리까지 지고 가니
저 무게감이 족히 30kg은 넘을것 같다.
아마 모든 포터들의 짐무게가 30kg은 될것이다.
오른쪽 초록산 뒷편으로 하얀 만년설산이 뒤덮인 바인타 브락이 보이기 시작한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온갖 야생화로 뒤덮여 있을 앞산은 이젠 또 관심밖이고 눈부시게 하얀 설산의 바인타 브락에 온 시야를 다 내놓는다.
기념촬영도 한 컷 찍고...
아래 사진의 왼쪽부터
바인타브락 I(Baintha Brakk 1, 7,285m), 바인타브락 II(Baintha Brakk 2, 6,960m), 라톡 I(Latok 1, 7,151m)이다.
이중에서도 바인타브락 II(Baintha Brakk 2, 6,960m)는
1983년에 우리나라 '유한규''임덕용'이
세계 초등한 봉이다.
그때까지는 영국등반대가 6번, 일본등반대가 2번 도전했다가 실패했던 '악마의 이빨’ 이라고 불리는 난봉이다.
사실 첫 도전은
2년전인 1981년에 이정대와 유한규가 처음 도전했었지만, 실패했고. 유한규의 선배인 '이정대' 대원의 목숨을 앗아갔다.
후배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안전벨트에서의 로프를 풀어버린 이정대.
그 선배의 마음의 빚을 갚기위해 유한규(1956년생)는 재 도전하여 기어이 세계 초등이라는 기염을 토해낸것이다.
바인타브락 I 보다는 높이는 낮지만 보기에도 악마의 이빨처럼 생긴것이 위압적이다.
우리나라에는 우리가 모르는 훌륭하고 용기있는 산악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대단한 용기를 가진 민족이 아닐 수 없다.
바인타브락 I(Baintha Brakk 1, 7,285m), 바인타브락 II(Baintha Brakk 2, 6,960m)
어제 묵은 바인타브락 캠프지의 아름다움에 그저 천상낙원이라는 생각만으로 가득했던 맘이
갑자기 숙연해지는 듯한 기분이다.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던 바인타브락의 연봉을 지나쳐 다시 끝없는 빙하 위를 걷는다.
이제는 빙하위에 길다란 내를 만들며 빙하물이 흐르고 있다.
어디서 부터 흘러내려오는 것인 지, 고개를 들어 한 참을 쳐다봐도 끝이 안보인다.
여전히 얼음기둥에 커다란 바윗돌을 이고 있는 버섯 바위는 사방에서 보이고....
빙하끝으로는 거대한 바윗덩이들이 금방 산사태를 일으킨 듯 널부러져 있다.
힘겨움과 졸음을 떨구어 내고....
빙하가 흘러내리는 내를 피해가며 하염없이 걷는다.
눈을 들어도 변함없는 시야...
얼만큼 걸었는 지도 가늠할 수 없고, 시간의 흐름도 느낄 수 없으니 더 지치는 것이다.
빙하 길을 아이젠 없이 걸으려니 조심해야 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지쳐서 오직 시선을 바닥에 두고 걸었다.
혹시 시간이 멈춰버린게 아닐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어 묵주기도를 끊임없이 바치며 시간의 흐름을 점쳤다.
묵주기도 5단을 바치면 15분, 환희의 신비부터 영광의 신비까지 온전히 다 바치면1시간이 지난거다.
시계를 자꾸 들여다 보는것 보다 훨씬 덜 지쳤다.
으음~ 이제 1시간이 지났구나~
이제 2시간이 지났구나...
묵주기도를 몇 바퀴를 돌렸을까....
이젠 그도 지친다.
비교적 완만한 설빙하를 걷자니, 조금은 긴장감이 덜하니 춥고 지쳐서 마냥 졸리운건 지도 모르겠다.
고도가 점점 높아져서 미약한 고산증세 일 수도 있고....
순간 파워 능력으로 힘을 주기 위해 잠시 멈춰서서 에너지 겔을 하나 먹었다.
이젠 묵주기도를 하는 대신 온전히 머릿속을 다 비우고, 좀 더 구체적으로 주변을 살펴보기로 했다.
산군의 변화도 느껴보고, 시간의 흐름도 느껴보려고...
아닌게 아니라 놀라울 정도로 또 봉우리들의 모습이 달리 들어온다.
바늘 끝처럼 날카롭기도 하고, 둥글 둥글 부드럽기도 하고, 암산의 깊은 골과 켜켜이 쌓여진 빙하의 모양새에도 눈길을 주다 보니,
조금은 졸리움에서 헤어났다고 할까.....
이제 다시 빙하에 시선을 두고 걸었다.
빙하의 흐름대로 검은 골이 생긴 모습이 위압적이긴 하지만 또한 장관이다.
슬슬 빙하의 거친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빙하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인 크레바스도 사방으로 보인다.
Max Bruch / Kol Nidrei Op.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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