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에 카고백에서 우모복을 꺼내입고 얼굴도 이중 삼중으로 모자를 겹쳐 썼더니 추위가 한결 가신다.
이정도의 추위야 이처럼 준비만 되어있다면 껴입으면 되니, 뜨거운 열사위를 걷는것과는 비교불가다.
빙하위에 나 있는 크레바스가 점점 많아져 거의 이쪽 끝에서부터 저쪽 끝까지를 몇 발자국이 멀다하고 지그재그 길로 걷다보니,
앞으로 전진한다는게 까마득하게 보이기도 한다.
대신 훨씬 더 다이내믹한 풍광과 다른 시각에서 보이는 풍광을 즐길 수 있으니
또 그나름대로 멋진 트래킹이라고 해야하나~~
삶이란게 이렇듯 생각하기 나름이다.
크레바스의 심도가 이젠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아찔하다.
감히 가까이 가기도 두려웠었는데, 이젠 그런 곳을 성큼 성큼 건너 뛰어야 한다.
혹시라도 디디면 무너져 내릴 눈을 밟으면 안되기때문에 절대로 밟은 흔적이 없는곳을 디디면 안된다.
아무리 멀리 걷더라도 내가 건널 수 있는 충분한 거리를 찾아 사람이 건너갔던 곳을 안전하게 디뎌서 건너야 한다.
우와~
저 버섯바위야 말로 엄청난데~
우린 모두 멈춰서서 한 바탕 모델놀이를 펼치며 쉬었다.
덤으로 저 곳에 올라 우리가 걸어온 빙하를 바라보니, 그 풍광이 또 얼마나 대단한 지....
가슴이 시릴정도다.
걷다가 이처럼 넓다란 바위가 나타나면 잠시 앉거나 누웠다가 가곤 했다.
두꺼운 구스다운을 겹쳐 입어서 따듯함이 온 몸을 감싸니 빙하 돌더미 위에 누워 있어도 그만이다.
아!!
세상에 누가 이곳 비아포 빙하에 누워 볼까....
골마다 쌓인 하얀 빙하와 눈을 켜켜이 쌓고 우뚝 서 있는 거대한 암산의 위용은 누워 보니 훨씬 더 대단해 보이고...
파아란 하늘은 찬란하기 그지없다.
설빙하를 벗어나 다시 거대한 암석의 모레인 빙하지대로 들어섰다.
이제 서서히 우리의 캠프지가 가까워 지나보다.
파도치듯 흘러내리는 설빙하를 가운데 두고 이처럼 그 가장자리로 험악한 모레인 암석 빙하지대가 형성되어 있는 걸 보면....
흠짓...하얀 설빙하 지대가 마치 성역처럼 보호되어야 하는 곳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감히 인간이 들어가서는 안되는 곳....
조만간 우리의 캠프지가 눈앞에 펼쳐지겠지? 했던 기대감과는 달리
다시 험악한 모레인 바윗돌 빙석지대가 가도 가도 끝이 없이 펼쳐졌다.
오르고 내리고 ...경사도 마저 얼마나 심한 지....이내 체력이 바닥이 날것만 같다.
어느새 이리 해가 중천에 떠올랐는 지....
전혀 해가 나지 않을것 같았던 날씨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느 순간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한다.
온 몸에 닿는 햇살이 따듯해서 좋았으나 점점 뜨거워 지는 열기는 힘들고 몸을 지치게 만들었다.
얼마나 당해야 정신을 차릴까.....
초반 빙하길에 얼마나 추웠던 지, 얼굴과 머리에 통증을 일으킬 만큼 추웠던 날씨에 단 한모금의 물도 안마셨던 터라
점심시간에 또 물을 버린것이다.ㅠㅠ
아직 갈길은 구만리 인것 같고....
생명수 처럼 남은 물을 아껴서 마셔야 한다.
아니, 벌컥 벌컥 마실 물이 어디 있나~ 다 버렸는데...목만 축여야지. ㅠㅠ
설빙하를 걸을때와는 달리 이 많은 돌들이 저 강력한 태양열에 달구워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곳도 돌밑은 다 얼음덩어리 이거늘....어찌 이리 체감으로 느껴지는 기온이 차이가 날까...
크레바스의 위험은 있지만 설빙하의 비교적 평평한 길을 걷다가 끊임없는 오르 내리막을 돌더미 위를 걸으며 균형을 잡으려니
어쩌면 태양열기때문이 아니라 에너지가 고갈되어서 힘듦과 갈증을 느끼는 지도 모르겠다.
깍아지른듯 솟아 오른 빙하의 밑을 보면 여지없는 얼음덩이가 푸른 빛을 내며 서슬 퍼렇게 있고,
돌과 돌 사이에는 시꺼멓고 반짝거리는 얼음덩어리들이 공포심을 일으켜 가슴을 저리게 만든다.
험악한 빙퇴석 지역에 또 쉬다가라고 넓직한 바윗돌이 나타났다.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무조건 가서 누웠다.
온 몸이 녹아드는게 금방이라도 깊은 수면에 빠져들것만 같다.
글쎄~
깜빡 졸았을라나~~
뒤따라 올라온 알쏭이 카메라를 들이미는 바람에 깼으니까...
얼마나 힘들면 후세인은 이 소란에도 깊은 수면에 빠져 들어 있을까....
한 숨을 자고난 듯 쉬고나서 또 끝없는 빙퇴석 길을 걸었다.
길도 험하지만, 오늘의 여정이 만만치가 않다.
아침 6시반에 출발했는데, 아직까지 캠프지가 나타날 기미도 보이지 않으니.....
사실,4000m 가까운 고산 빙퇴석 길을 걸으면서 이렇게 롱 트랙을 가는건 이례적인 일이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걷다가 모두들 빙퇴석 아래로 포옥 파묻힌 곳에 모두 모여 앉았다.
모두들 얼마나 힘든 지, 온 몸의 기가 다 빠져나가 금방이라도 쓰러져 버릴 사람들 같다.
우리 팀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후세인과 사다르도 그렇다.
이제야말로 빙퇴석 끝점에 왔다.
그런데 이건 또 뭔일이란 말인가~
발자욱을 디디면 반쯤 미끄러져 내려오는 수직 절벽처럼 보이는 흙사면 길이라니....
절벽 끝에 올라 우리가 걸어온 빙하를 내려다보니 가히 기막히다.
하얀 설빙하는 시야에서 보이지도 않고, 온 바닥이 갈라진 저 험준한 빙퇴석 빙하만 보이다니....
신기하게도 풀 한포기 없는 흙사면 길을 올라 정상에 다다르니 또 푸른 초원이다.
힘이 얼마나 들었는 지, 아직까지 가지 못한 어린 포터가 한 명 있었다.
갑자기 후세인이 사진을 찍어 달랜다.
무슨 기념촬영일까....
그렇지. 이제 오늘의 힘든 여정은 여기서 끝난 거야~
아직 캠프지는 보이지 않지만 어쨋든 빙하를 건너왔잖아~
이 높은 꼭대기에 올라서도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은 또 이어졌다.
하지만 이제까지와는 너무나도 다른....그야말로 완전 다른 세상이다.
이름하여 천국의길....
빙하를 걸으며 보았던 암산을 덮은 엷은 초록들이 바로 이런 풍광이었던 것이다.
그저 풀이 자란 것이겠거니...했었던게
올라 와서 보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꽃들이 다 이곳에 흩뿌려져 있는 듯한 풍광....
언제 지쳤었냐싶게 기운이 펄펄났다.
연신 터지는 탄성을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 엎어지고, 저기 엎어지고....
찍히고 찍으며 모델도 되었다가 포토그래퍼도 됐다가....
앞으로 걸어갈 수가 없다.
하긴 고지가 코앞이라는데 뭐하러 급히 갈까....
천국에서 실컷 놀다가는 거지.
아직 햇살도 찬란하잖아~
집으로 돌아 가기엔 아직 너무 이른 시간인걸~~ ㅋㅋ
이렇게 아름다운 천상의 화원인데 당연히 아이벡스가 살겠지~
이곳에도 언제 늙어서 죽은 건 지, 아이벡스의 마른 뿔이 길섶에 있었다.
모두 뿔을 머리에 이고 아이벡스도 되어본다.
그려~우린 아이벡스인겨.이곳에서 뭐가 되보지 못하겠어~
내가 되어 보고싶던 거 다 되어 보는거지.
천상인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긴 천상에서 정신 차리고 있을 이유가 없잖아~
그냥 온전히 다 내던지는 거야~
세상것은 온전하게 다 비워내고 한없이 가벼워진 몸으로 훨 훨~ 나비처럼 날아보는 거야~
이러는 우리를 보고 가이드 후세인은 너무도 만족스러워 하는 표정이다.
왜 아니겠는가~
지옥에서 천상으로 무탈하게 인도해서 데리고 왔는데....
온 몸에 기가 다 빠져나가 다 죽어가던 팀원들이 천상에 와서 이렇듯 환호하고 좋아하는데....
어쩌면 가이드는 이 천상의 화원보다 우리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는게 진정 천상인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다 내려갈때까지 난 이곳에 오래토록 머물렀다.
그리고 캠프 사이트로 가기위해 힘든 발걸음을 내딪었다.
아!!
저 아래도 천상낙원이구나~~
한 눈에 보이는 평원에 우리가 묵을 캠프사이트가 콩알만하게 보인다니...
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광경이 도대체 얼마나 광활하다는 걸까....
눈에 닿는 거리와 높이의 수치를 어찌 예측이나 할까....
포터들 못지않게 믿을 수 없는 균형감으로 이 기막힌 험로를 건너온 말들이
이 천상 낙원에서 자유로이 풀을 뜯고 있다.
저들의 등위에 실려졌던 무거운 짐들을 다 떨구어 버리고 저리 광활한 초원을 누비고 있으니, 어디 저들이 짐을 실어 나르는
말 포터로 보일까....
며칠 뒤면 늠름한 자태로 트랙을 달릴 멋진 경주마로 보이는걸.....
시팡(3,870m)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4시...
아침 6시반에 출발했으니 오늘 하루에 걸은 시간이 꼬박 9시간 반을 걸었다.
워악 길이 험하고 크레바스가 심해서 지그재그 길를 하염없이 걸었고, 상상하기도 힘든 빙퇴석 길을
그것도 3500m 의 고도에서 9시간 반이나 걸었다는건 정말 힘든 여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험란한 지옥의 여정이 이 캠프사이트 시팡의 천상에 들어서는 순간 한 방에 다 잊혀져 버렸으니....
인간이 겪는 고통이라는게 어쩌면 한 순간...
하염없이 가벼운건 지도 모르겠다.
사실 고산에서 이렇게 무리한 일정으로는 잘 진행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군부대 퍼밋이 나오지 않아 출발이 하루가 늦어 오늘 무리하게 진행을 한것이다.
원래 내일 바인타브락에서 하루 고소 적응일로 쉬어야 하는데, 내일 일정을 당겨서 오늘 많이 걷고, 내일은 2시간만 걷고는
쉴 예정이란다.
암튼 모두가 하루반 일정을 무탈하게 잘 해내었으니 정말 대단하다.
텐트에 들어와 짐을 흐트러 놓은 채로 매트를 불지도 않은 채 깔고 누워 있었다.
그제서야 온 몸이 노곤 노곤한게 바닥으로 사그러 드는것 같다.
그런데 점심이 부실했다는 걸 알아선 지 쿡이 라면을 끓여놨다는 거다.
그러나 라면은 끓인 즉시 먹어야된다는 걸 모르고 미리 끓여놓고 우릴 부르러 와서 퉁퉁 불어 터진 것이다.
입에 들어가면 그냥 스르를 녹아 없어질 정도....
세상에 이 아까운 피같은 신라면을....ㅠㅠ
다음에 라면을 끓일땐 반드시 나를 부르라고 다짐을 주고는 라면을 먹었다.
그런대로 아직은 김치가 있어서 먹을만은 했다.
그나저나 이 뜨거운 열사에 플라스틱 통에 담긴 김치가 쉬어 꼬부라져서 조만간 김치는 버려야 할것만 같다.
이래 저래 아까운 음식들....
지류물은 맑은데 강물은 여전히 뻘흙이라 잿빛이다.
올람이 맑은 지류물을 환할때 길어다 주어서 일찌감치 모두들 정수를 하고, 옷가지들도 나무위에다 내다 널어 거풍을 했다.
늘 처럼 포터들을 한바퀴 돌며 아픈데가 있는 지, 약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 지 체크를 하며 사진도 찍어 주었다.
사탕도 좀 주고....ㅎㅎ
이 소박한 행복을 알까....
이 환상적인 풍광에 모두 사로잡혀선 지 기분들이 업되어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저녁으로는 치킨요리 퍼레이드였다.
치킨 프라이드, 치킨 카레, 양배추 샐러드,김치,그리고 우리들이 가져온 밑반찬.
하긴 파키스탄에 오면 도착하는 날 부터 가는 순간까지 매일 먹는게 치킨이고 가장 많이 듣는 소리중 하나도 치킨이다. ㅋㅋ
내일은 2시간만 걷고 종일 쉰다하니 마음이 여유롭다.
일기도 미뤄놓은 채 그냥 잠자리에 누웠다.
Max Bruch의 Adagio appassionato for violin & orchestra in C sharp
Salvatore Accardo, Violin
Leipzig Gewandhaus Orch./Kurt Masur C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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