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진정한 비아포 빙하에 들어섰다.
거대한 양 산봉우리를 사이로 광활하게 흘러가고 있는 빙하.....
그 직전에 피어있는 화사한 핑크빛 꽃이 앞으로 닥칠 험란한 여정에 우리를 잠시 쉬어가게끔 위로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봉우리 끝마다 바늘끝 처럼 날카로운 카라코람의 위용을 낱낱이 드러내며 당당히 서 있는 저 암산들....
걷는 내내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고 감탄사를 연발케 한다.
본격적으로 빙하에 발을 딛기 전 인증 사진도 한 컷쯤 남겨두자.
처음 보는 허브의 꽃도 한번 흔들어 향기를 흐트러뜨린다.
아!!
언덕배기에 올라서 비아포 빙하를 바라보니, 온통 바윗돌이 뒤덮은 모레인 빙하다.
K2여정때도 말들이 흘린 핏자국이 사방에 난자할 정도로 잔인한 험한 모레인 빙하를 건넜지만....
이처럼 끔찍하게 온 빙하를 다 뒤덮은 돌더미 빙하는 아니었던것 같은데...
아~과연 저 길을 걸으며 내 발목이...내 등산화가 온전히 배겨날까...
세상에~
주변에 온통 돌더미뿐인 이런곳에서도 홀로 꽃을 피우고 있네~
돌더미(사실, 워낙 광활해서 멀리 보니 돌같아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다 엄청난 바윗돌이라는... )들을 피해 돌이 슝슝 박힌 흙사면 길을 걷는다.
한순간 와르르 무너져 내릴 수도 있고, 위에서 돌이 느닷없이 떨어져 내릴 수도 있는 산사태 위험지구의 흙사면 길...
한순간도 한눈 팔새없이 빠른 걸음으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앞서가던 워크딕님이 발걸음을 멈추고 까마득히 솟아오른 암봉끝을 바라보고 계신다.
나도 따라 암봉끝을 바라보았다.
언제 떨어져 내린것인 지, 아래로는 뚝 뚝 떨어져 내린 날카로운 바윗돌들이 널부러져 있고,
금방이라도 또 떨구어 내버릴 자세로 거대한 암벽은 아찔하게 서 있었다.
산사태 위험지구를 벗어나 잠시 쉬었다.
내리쬐는 뙤약볕은 잔인할 정도로 우리를 힘들게 했다.
아침에 출발할때 비가 와서 무겁다고 3리터 담은 물을 다 버리고 1.5리터만 들고 나왔더니,
앞으로 한참 남은 여정에 맘대로 물을 먹어버릴 수도 없다.
이 한없이 가벼운 판단에...스스로를 한없이 질책해 보지만....
뒤따라 오던 버럭이도 물이 없어 헥헥댄다.
이것을 눈치 챈 가이드 후세인은 위험지구의 까마득한 아래로 내려가 빙하에 고인 물을 담아다 준다.
석회가 잔뜩 끼어있는 짙은 회색물이어도 그런걸 따질 여력도 없어 보인다.
본격적인 빙하위로 접어들어 걷기 시작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크레바스는 사방에서 우리를 위협하고....
돌과 바위, 얼음덩이가 뒤범벅이 된 빙하길을 곡예하듯 피해서 걸으려니 여간 힘이 드는게 아니었다.
멀리서 보면 쫙 쫙 벌어진 빙하들의 높낮이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지만 그 가까이로 가면 엄청난 높이와 깊이로 우릴 위협했다.
돌더미 사이로 보이는 얼음덩이들은 혹여나 미끄러질까봐 또 한없이 조심하며 걸어야 한다.
3000m가 넘는 고산에서의 뜨거운 열사위를 걷는 일은 2배나 우리를 힘들게 했다.
비교적 잔잔하게 빙하물이 고여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잠시 쉬었다.
험로에 발도 쉬어줄겸 등산화를 벗고 양말을 벗은채 빙하물에 발을 담그었다.
생각보다는 괜찮네~ 하며 발을 담그고 있다가 순간 통증이 느껴져 발을 꺼냈는데도 발의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우와~
이거 빙하물...만만히 볼일이 아니야~ㅠㅠ
가까스로 통증을 가라앉힌 뒤
양말을 신고는
아침에 플라스틱 약통에 담아가지고 나온
미수가루에 물을 붓고 흔들어서 마셨다.
플라스틱 약통이니 무게감도 없고
흔들어서 마시기에도 더없이 좋다.
갈증해소와 에너지를 동시에 줄 수 있으니
트래킹 행동식으로는 그만이다.
한참을 가다보니, 모레인 빙하 아래로 터널까지 형성하면서 허연 속살을 드러낸 빙하가 보인다.
고여있는 빙하물의 에메랄드 빛이 이 무채색 천지의 황량함에 반짝이는 햇살처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우린 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으며 쉬었다.
시작도 끝도 느낄 수 없는 ...얼만큼 걸었는 지 조차 느낄 수 없으니 이처럼 뭔가의 유혹에 끌려 쉬지 않으면 정말 위험할 수 있으니
신이 조화를 부려놓은건 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끝없는 바윗돌 모레인 빙하를 걸었다.
너무 험한 곳에서는 내 목에 걸린 카메라를 가이드인 후세인이 메어 주었다.
아까 위험을 무릅쓰고 빙하까지 내려가서 버럭이에게 물을 떠다 준것도 그렇고,
K2여정때는 느끼지 못했던 자상함과 따듯한 인간애가 느껴진다.
그리고 나보고 서둘지 말고 '천천히 걸으라' 고 충고한다.
아마 내가 사진을 찍느라고 멈춰서고 나서 매우 급히 걷는걸 봐서 그러는것 같다.
빨리 걸어서 지치는 거라고....천천히 걸으면 지치지 않고... 그게 가장 잘 걷는거라고....
아!
이제 돌더미 빙하 트래킹도 끝나고 먼발치 초록이 보인다.
꽃이 만발했는 지, 보라빛이 초록 사이에 뒤섞여 있다.
끝이 보이지 않던 돌더미 빙하 트래킹....
작렬하는 뙤약볕까지 합세해 파죽지세를 만들더니, 언제 그랬냐싶게 활짝 살아나서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다.
고개를 들어 반대편을 바라보니, 여전히 빙하위에 솟아있는 암봉은 위압적이다.
한편으론 당당하게 서있는 암봉들의 향연이 판타스틱하기도 하고...
저만치 캠프 사이트가 보인다.
벌써 도착한 포터들이 우리의 모든 사이트를 완벽하게 구축해 놓은 것이다.
나는 언제 지쳤었냐 싶게 기운이 펄펄나서 '어디 다치거나 아픈데 없냐구' 물으며 포터들 캠프사이트를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그들을 카메라에 담아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들의 얼굴에선 행복이 묻어난다.
트래킹이 일찍 끝나서 잠시 쉬었다가 모두 모여 드립커피를 내려 마셨다.
커피 한 잔씩 마시려면 모두가 힘을 합세해야만 했다.
내가 인터넷으로 구입한 그라인더가 야외용이라 무거운 받침이 없어 컵을 받치고 갈을려면
힘을 주고 누르고 있어야 해서 힘센 사람 두명이 필요했다는...ㅋㅋ
매번 이런 우리들 모습을 보고 우리 스텝들이 '뭔 저짓을 해서 커피를 마시나~~' 이럴것 같다고 하며 한바탕 웃었다.
그래도 역시 커피 향은 우리들 피로를 한 순간에 날려줄 만큼 매혹적이다.
저녁으로는 치킨커리가 나왔다.
컬리플라워 볶음도 나오고, 오이와 양파 토마토 샐러드도 나왔다.
알쏭이 가져온 김가루와 스카르두에서 담근 김치 2종류에 버럭이가 가지고 온 멸치와 마른새우를 고추장에 찍어먹으니 풍요로운 저녁식탁이다.
저녁이 되니 매우 쌀쌀해 패딩을 입었다.
역시 우리 옆에는 거대한 빙하가 흘러내리고 있다는게 실감이 난다.
내일 마실 물을 충분히 정수해서 병에 담고, 점심거리와 행동식을 배낭에 담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Giulio Caccini - Ave Maria : Dona nobis pac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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