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난 뒤의 길도 풍광은 여전히 어메이징하다.
이젠 비가 완전히 멎어 햇볕이 찬란하니 느낌은 또 완전히 다르다.
운무속 몽환적인 느낌의 스카르두 길과는 전혀 다른...조금은 정취가 덜하지만 황량한 느낌은 더 커졌다고 할까....
어느덧 마을에 들어섰다.
타임머신을 타고 수십년 전으로 들어선것 같은 소박한 가게들.....
그 앞에 털푸덕이 주저앉아 있는 주인들은 여유롭기 그지없다.
이들의 패션은 세상에서 가장 단조롭고 가장 편안해 보인다.
아래 위 한벌로 되어있는 헐렁한 옷에 추위에 따라서 그 위에 조끼를 입거나 쟈켓을 걸치면 끝이다.
그래도 나름 멋을 낸건 지, 조끼들도 다양하다.
그냥 같은 천으로 된 조끼, 울 조끼, 양복 조끼에 양복 쟈켓을 걸쳤는데도 멋져 보인다.
젊음때문인가?? ㅎㅎ
엄청난 철재 셔터문에 커다란 자물통이 주렁 주렁 매달려 있는 대신 알록 달록 색칠이 되어 있는 가게의 나무 문이 정겨워 좋다.
글자를 아예 몰라서 인 지 문과 벽에 칠해져 있는 낙서들 조차도 흉하지 않고, 덕지 덕지 붙여있는 포스터들도 정겹다.
왜 그럴까....
한없이 초라하고, 촌스럽고, 지저분해 보일것 같은 것들이 정겹게 다가오는 것은....
왠지 정갈하게 한눈에 뵈는 화려한 쇼윈도우 보다 더 보물상자 처럼 궁금한게 많아지는 걸까...
시간여행을 떠나 온 듯한 여행자의 기분때문일까....
잠시 마을을 스쳐지나 또 황량한 스카르두 로드로 들어섰다.
수직 절벽의 바위산들과 인더스 강물의 위용은 끝없이 펼쳐진다.
잠시 스쳐지난 마을 담벼락에서 만난 장난꾸러기 꼬마 녀석들...
카메라를 들이대자 낯 부끄러운 지 친구와 애꿎은 치고 받음이다.ㅎㅎ
녀석들 얼마나 개구진 지 맨발이다.
정말이지 끊임없이 저 출렁다리는 나타났다.
차량으로 달리면서 보자니, 진짜 우리나라 횡단보도 수 만큼 많아도 보인다. ㅋㅋ
이젠 점점 스카르두가 가까워 오는 지 마을도 자주 보이고, 사람들도 자주 눈에 띈다.
타작한 볏짚단도 수북이 쌓여있음도 보이고....
정갈하게 만들어 쌓아 놓은 벽돌도 보인다.
한가로운 마을 사람들도 거리에 가득하고....
조만간 스카르두가 보일것만 같다.
헐~
나의 기대와는 달리 마을을 벗어나니 여전히 거대한 암산과 성난 인더스 강물이 나를 맞는다.
떠내려오는 바윗돌이 커다란 바위에 부딪는 소리와 세찬 물살, 물보라가 이제까지 그 어떤 강물 보다도 더 성난 물결같다.
그래도 끝없이 이어지는 초록숲은 스카르두가 머지않았음을 보여준다.
마을을 벗어나 한참을 또 달렸다.
그런데 어느순간 우리 시야에 펼쳐진 풍광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성난 인더스 강물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마치 잔잔한 호수앞에 서 있는것 같다.
회색빛이었던 강물 색깔도 달라지고, 바윗돌을 굴렸던 협곡은 호수처럼 넓어졌다.
이것이 같은 인더스 강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우리는 차에서 잠시 내렸다.
그 험준했던 다른 행성에서의 탈출....
그리고 우리 눈앞에 느닷없이 펼쳐진 꿈결같은 풍광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사진도 찍고....
가슴에 촉촉함도 적시고....
차를 타고 달리면서 카메라에 담았는데도 인더스 강물의 수풀 잠영이 그대로 찍혔다.
대체 얼마나 잔잔하길래~
과연 흐르고 있는 강물이 맞는거야?
같은 인더스 강줄기라는게 믿기지 않을 뿐이었다.
그 순간
나의 눈에 띄인것이 있었다.
바로 체리...
체리가 계절상 다 끝났다고 했는데....
길섶에서 홀로 체리를 팔고 있는 꼬마 아가씨와 아빠를 만난것이다.
나의 소리침에 샤키는 내려서 체리를 두박스나 샀다.
가격은 모른다.
그저 우린 미친듯이 차에서 체리 한박스를
다 먹어치웠다.ㅎㅎ
그냥 지나칠 뻔 했는데
나의 독수리 눈 덕분에
파키스탄에서 꼭 먹어야 될 과일 중
하나를 실컷 먹었다는 것.
그저 스카르두 가는 여정이 내내 행복하기만 하다.
드디어 스카르두에 도착했다.
오후 4시 40분....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40분까지 달렸으니까 오늘 하루 동안 거의 9시간을 달린 것이다.
그리고 어제 이슬라마바드에서 칠라스까지 또 오전 10시부터 밤 11시반까지 달렸으니까 13시간 반...
차를 타고 달린 시간만 22시간이다.
그래도 예상시간 30시간보다는 훨씬 빨리 달렸다.
차가 워낙 좋아서....
무엇보다 산사태도 만나지 않았고....
스카르두에 들어서서 맞는 이 풍광은 정말 환상적이다.
거대한 암산 앞으로 일자로 줄긋듯 자라고 있는 숲이다.
오늘 우리가 묵을 숙소는 작년과 같은
스카르두 시내에서 가장 좋은 호텔 - 마셔브룸 호텔이다.
좀 나가면 물론 최고의 샹그릴라 리조트가 있지만...ㅎㅎ
호텔에 도착하자 마자 칸데에서 화보촬영을 하며 놀았던
올람이 반겨 깜짝 놀랐다.
세상에~전혀 생각지 못했던 올람이라니....
너무 반가워 한바탕 호들갑을 떨며 포옹으로 맞았다.
그리고 이제까지 함께했던 샤키와 기사와 함께 단체사진을 찍었다.
특히 처음 백발 노인 처럼 나타나 긴장시켰던 기사는
정말 멋있기만 한게 아니라 차도 좋은데다가
운전 실력 또한 판타스틱해서 기막힌 KKH와 SKARDU ROAD 여정을 만들어 주었다.
.
작년엔 먼저 투숙한 일본관광객에 밀려서 뷰가 좋은 창가쪽 방을 잡지 못했는데, 올해는 다행히 창가쪽 방을 잡았다.
짐을 던져놓고 먼저 발코니로 나섰다.
그림같은 스카르두의 비경이 이제까지와는 또 다른 풍광으로 눈을 호사시킨다.
작년에는 물이 없었는데, 발코니에서 내려다만 봐도 범람한 물줄기가 숲 사방으로 뻗어 흐르고 있었다.
순간 싸~한 느낌이 온 몸을 감싸온다.
올해 파키스탄에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게야~
홍수가 났었나??
작년엔 인더스 강물이 절대 그러지 않았거든.
단 한순간도 인더스 강물에 시선이 떨어진 적이 없었거든.
이곳에 이렇게 비가 많이 왔다는 건 발토로 빙하를 비롯 비아포, 히스파 빙하쪽엔 엄청난 적설량이 쌓였단 건데....
과연 우리가 들어설 수 있을까??
이제까지의 감탄사와는 달리 순간 싸~한 느낌이 온 몸을 감싸온다.
짐을 대충 풀어 놓고 커피를 꺼냈다.
이번엔 커피의 향기를 더 제대로 느끼고 싶어서 원두를 갈아오지 않고 야외용 커피 그라인더를 새로 사서 왔기때문에 기대가 한층 높다.
역시 원두를 꺼내자 마자 향기가 코끝을 찌른다.
원두를 갈아 드립으로 내리니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이 충만해진다.
험준한 오지 트래킹이 아니라 왠지 럭셔리 여행을 온 기분이다.
탁자에 놓인 체리와 원두커피...방안 가득한 커피 향...전창으로 들어오는 환상적 스카르두의 풍광....
작년 K2여정 처럼 일찌감치 출국해서 칸데의 차라쿠사와 익발 탑을 오르고 여기서 합류한 유라시아와 반갑게 조우를 했다.
작년에 제대로 준비를 안해와서 호통을 쳤더니 방안에 펼쳐놓은 짐이 장난이 아니다.ㅎㅎ
그런데 전 여정이 얼마나 힘들었는 지 바짝 말라 10년은 나이가 더 들어 보였다.
토종 식성인 그가 여정 내내 소박한 파키스탄 음식만으로 지냈으니 못먹고 힘들어서다.
드디어 내가 왔다고 좋아죽는다.
나만 눈 빠지게 기다렸다고....ㅋㅋ
내일의 여정을 위해서 30kg넘는 카고백 짐과 배낭짐을 분리해서 카고백 짐을 두개와 간략한 배낭짐으로 패킹을 했다.
그때 우리 방으로 칸데에서 명가수로 초대받아 파티를 함께 벌였던 '후세인'이 찾아왔다.
자기가 이번 여정의 가이드이며, 올람 두명이 쿡과 키친 보이라는 것이다.
내가 알기로 후세인은 쿡인데 이 험란란 비아포 히스파 여정의 가이드라니....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히 임티아스나 혜마옛이 우리의 쿡일거란 예상을 완전히 뒤엎은 스텝진....
조금은 실망스러웠으나 자신 만만해 하는 후세인을 믿어보기로 했다.
한국에서 부터 과로와 수면부족으로 일으켰던 위장장애가 계속 먹은 밀가루와 고기류 음식때문인지 더 심히 불편해
저녁식사에 가지 않고 간단히 체리만 몇 알 먹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그나 저나 우리의 트래킹 군부대 퍼밋이 나오지 않아 낼 출발이 불확실하다니 걱정이다.
암튼 내일이 월요일이니 모든게 잘 되었으면 좋겠다.
Bellini (1801 - 1835)
Norma
(act2) Duetto (Norma, Adalgisa)
Mira o Norma
들어보세요 노르마 (조수미.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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