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판시팡트래킹&여행(2015.12)

9. 하노이(Hà Noi)의 아침 풍광...호안끼엠 호수(Ho Hoàn Kiem)& 하노이에 대하여....

나베가 2016. 1. 5. 00:21

12월 8일....

하노이의 아침

 

 

 

 

새벽에 일어나 하롱베이로 갈 준비를 서두르고, 아침 일찍 이곳 하노이의 자랑인 호안끼엠 호수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하고 나섰다.

 

호안끼엠 호수(Hồ Hoàn Kiếm, 還劍湖)는

원래는 홍강(紅河)의 잦은 범람 과정에서 생겨난(그리고 홍 강과도 이어져 있었던) 룩 투이 호수(hồ Lục Thuỷ, 緑水湖)가

호안끼엠 호수와 수군호(水軍湖)로 나뉘었다 한다.(수군 호수에는 베트남 수군의 훈련장이 있었지만 이후 호수는 매립되었다).

 

 

그런데 입구의 모습이 야릇하다.

중국의 상징인 붉은색의 한자를 비롯 한자가 빼곡히 적혀있는 저 축조물들은 무었일까...??

혹시 이 공원이 중국과 무슨 연관이 있는 건 아닐까??

 

의아심을 가지고 공원 안으로 들어서니 생각보다 훨씬 큰 규모에 입이 벌어진다.

호수 주변을 싸고 도는 울창한 나무와 잘 가꾸어진 공원이 아침 산책하기엔 여행자로서도 아주 그만이다.

 

 

 

 

 

 

 

와아~

저 거대한 나무 좀 봐~

호수 수면까지 닿는 흐드러지는 나무는 걷는이에게 멋진 풍광을 선사한다.

멋지다!!

 

 

 

 

 

 

 

 

 

 

 

 

 

아!

하늘을 완전 덮은 새하얀 새털구름이야~

이  이른 새벽부터 완전히 홀리는걸~

 

 

 

 

 

 

 저 만큼 '덴 응옥썬'으로 통하는 붉은색 '테훅 다리'가 보인다.

 

 

호안끼엠 호숫가 북쪽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섬에는 18세기에 세워진 사당인 덴 응옥썬(玉山祠)이 있는데,

13세기 원(元) 왕조의 침공을 격퇴한 명장 쩐흥다오(陳興道)와 문창제(文昌帝), 

1864년에 사찰 수리를 맡았던 담당자로 유학자이자 작가였던 원문초(阮文超) 등을 제사지내고 있다.

그리고 호안끼엠 호수의 전설인 거북이 박제로  모셔져 있다. 

사당이 있는 섬 사이에 붉게 칠해진 나무 교량인 테훅 다리(棲旭橋)가 있어 걸어갈 수 있게 되어 있으며

입장료가 있다.

시간이 없어 우린 그냥 패스...

잠깐,,,호안끼엠 호수의 거북

전설에 따르면 다이비엣국(大越国) 후 레 왕조의 태조(太祖)가 된 레러이(黎利)가 호수에서 용왕의 보검을 얻었고

이 검으로 명(明) 왕조와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자신의 왕조를 세웠다.

그 뒤 태조 레러이는 호수 위에서 금빛 거북을 만났는데, 태조에게 스스로를 용왕의 사자라 밝힌 거북은 평화가 찾아왔으니

앞서 용왕께서 주셨던 보검을 돌려주도록 계시했고, 태조는 호수 한복판에서 가까운 작은 섬에 그 보검을 묻었다.

이후 호수는 오늘날과 같은 호안끼엠(還劍)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검을 묻은 섬에는 훗날 거북을 기리는 탑이 세워졌다.

호안끼엠 호수의 전설은 수상인형극으로도 각색되기도 했다

 

호수에 서식하는  자이언트 양쯔자라 및 대형 거북은 전설에 등장한 황제의 이름을 따서 "라페투스 레러이(Rafetus leloii)"라 명명되었다.

이 종은 서식지 소멸로 멸종위기에 놓였으며, 호수 속에 몇 마리나 살고 있는지 개체수도 확인되지 않았다.

 

1968년 호수에서 250kg의 대형 거북이 발견되었는데 당시 이 거북은 전설에 등장하는 거북으로 여겨져 그 박제가 덴 응옥썬 사당에 모셔지기도 했다.

박제의 크기는 길이 210cm에 너비 120cm이다.

 

호안끼엠 호수의 거북은  2000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방월(方越)과 2002년 중국 장쩌민(江澤民) 당시주석(主席)의 방월 때에도

호수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2009년 10월 10일에도 나타났는데, 공교롭게도 2009년은 하노이프랑스로부터 해방된 55주년 기념일이자, 리 왕조가 하노이에 수도를 정한지 999년이 되는 해였다. 

2011년 4월 3일에도 호안끼엠 호수에 다시 대형 거북이 나타났는데, 길이 1m, 지름 80㎝, 무게 169㎏의 이 거북은 발견 당시 피부병을 앓고 있었고

하노이 시는 피부병을 앓고 있던 이 거북에 대한 3개월의 정밀 치료 이후 7월 12일에 다시 호안끼엠 호수로 거북을 돌려보냈다.

 2014년 4월, 몸무게 약 200kg의 자이언트 양쯔자라가 상처입은 채 발견되어 치료 목적으로 포획되었다..(위키백과 발췌)

 

 

 

 

 

 

 

 

아!

정말 흐드러지는 나무가  장관을 이룬다.

잔잔한 호수에 투영된 모습까지...

정말 호안끼엠 호수의 그 어떤 것 보다 멋진 모습이다!

 

 

 

 

 

 

 

 

 

 

 

 

 

 

 

 

 

 

시간이 없어서 호수를 한 바퀴 다 돌수는 없어 반쯤 돌다가 발길을 돌렸다.

시즌이 12월 크리스마스 시즌이라고, 호수 주변엔 거대한 트리 전구가 달린 루미나리에도 보인다.

불이 다 들어오면 장관일텐데....밤엔 불이 켜질라나??

 

 

 

 

 

 

 

 

 

 

 

 

 

처음 들어올땐 호수만 쳐다봐서 공원 숲이 이렇듯 잘 가꾸어져 있는 줄 몰랐는데,

잔디도 울창한 나무도 호수 주변 꽃들도  잘 가꾸어져 있다.

하노이 시민들 뿐만이아니라 여행자들에게도 휴식을 주는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이젠 하노이(河內 베트남어: Hà Nội河內 하내) 에 대해 공부 좀 해볼까?

(DAUM백과사전 발췌)

 

 

하노이(Ha Noi) 는 1954~76년에는 북베트남의 수도였으며, 그 이전에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수도였다.

남중국해에서 내륙으로 약 140㎞ 떨어진 홍 강 서쪽 기슭의 베트남 북부에 자리잡고 있다.

 

지금의 하노이 주변지역에는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으며, 중국인 정복자들이 자주 정치 중심지로 삼았던 곳이다.

1010년 베트남 리[李] 왕조(1009~1225)의 초대 통치자 리타이토[李太祖]에 의해 수도로 정해진 뒤,

1802년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인 구엔[院] 왕조가 수도를 남쪽으로 옮길 때까지 베트남의 주요수도로 남아 있었다.

레[黎] 왕조(1428~1787) 말기에 동킹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나 유럽인들 사이에서 와전되어 통퀸으로 불려지기도 했고,

프랑스 식민지 시기(1883~1945)에는 전지역을 일컫는 이름으로 통킹이 사용되었다.

 

 

 

<신발가게들이 모여있는 거리...>

 

 

 

 

1831년에 구엔 왕조에 의해 동킹 시는 하노이('두 강 사이에 있는 도시'라는 뜻)로 이름이 바뀌었다.

프랑스 점령기에 다시 주요 행정중심지가 되었으며, 1902년에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수도가 되었다.

이는 프랑스가 세력을 확장하려고 하는 중국 남부와 지리적으로 가깝고 광물자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 점령기(1940~45)에도 행정중심지 역할을 했다. 일본이 항복한 뒤, 1945년 8월 호치민[胡志明]이 이끄는 베트남 독립동맹이 권력을 잡고

하노이 시는 베트남 민주공화국(북베트남)의 수도로 정해졌으나, 1946년부터 다시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1954년 5월 7일 디엔비엔푸에서 프랑스가 패배하자, 하노이는 다시 북베트남의 수도가 되었다.

 

 

 

 

 

 

 

 

베트남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던 1965, 1968, 1972년에 미국의 폭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었다.

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이 무너지자 북베트남은 베트남 전지역으로 세력을 넓혔으며,

1976년 7월 2일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이 선포되면서 하노이는 그 수도가 되었다.

 

수백 년 된 기념물과 궁전의 대다수가 침략과 내란으로 파괴되었지만, 사적지와 명승지가 몇 군데 남아 있다.

명승지로는 호안키엠 호('되찾은 검의 호수'라는 뜻)가 있고, 사적지로는 BC 3세기에 지은 코로아 성채, 공자의 유교 서원(1070),

모트코트('한 개의 기둥'이라는 뜻) 탑(1049), 층 여사제들의 사원(1142) 등이 있다.

 

 

  

 

 

 

 

 

 

 

 

 하노이에는 하노이 대학교·혁명박물관·군사박물관·

국립박물관 등이 있으며,

주요 상업도시였으나

1954년 이후에 공업·농업 중심지로 바뀌었다.

 

공구·발전기·발동기·합판·직물·화학제품·성냥 등이 제조되며, 주변지역에서는 벼·채소·곡물 및 공업용 농작물이 재배된다.

 

교통 중심지로서 도로를 통해

하노이와 다른 주요도시들이 연결되며,

철도를 통해 하노이의 하이퐁 항[海防港], 중국 윈난 성[雲南省]의 쿤밍[昆明], 호치민 시(옛 이름은 사이공)와 연결된다.

 

홍 강을 통해 대양 항해용 작은 배들이 하노이까지 오며,

많은 작은 강을 통해 배편으로 베트남 북부 대부분의 지역과 연결된다.

 

공항이 2개 있다. 

 

 

 

 

 

 

 

 

 

 

 

 

 

 

 

 

 

 

 

 

 

 

 

 

 

 

 

역사....

(위키 백과 발췌)

 

하노이에 사람이 거주한 것은  기원전 3000년 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최초의 주거지 중의 하나로 알려진 것은 기원전 200년 경의로꼬아성채이다.

하노이가 베트남의 중심 도시가 된 것은 7세기 무렵의 일이다.

당나라 시대에는 윈난 남중국해를 연결하는 교역로 상에 위치하여 하노이에 설치된   안남도호부는 당에 의한 남방 지배의 거점이 되었다.

당나라 말기에 새로운 남방 교역로의 개척으로 안남도호부의 중요성은 유명무실해졌고,

 홍 강 이 당시에 새로 개척된 해상교역로의 유효범위가 아니었기 때문에 점차 중요성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11세기에  리 왕조는 이 땅을 수도로 삼고 농업 지대를 통치하는 거점으로 삼았다.

리 왕조의 성립 이후,  1802년에  응우옌 왕조가 성립되면서 후에 로 수도를 옮길 때까지 왕도로서 번영하였다.

그 후  탄 론, 통킹등으로 불리다가 1831년 현재의 명칭이 되었다.

1873년에는 프랑스에 점령되어 1887년 이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중심지가 되었다.

 

 

 

 

 

 

 

 

1940년 일본군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진주하게 되면서 하노이도 사실상 일본 점령 하에 놓이지만

1945년 8월에 일본군이 항복함으로써 일본 점령이 끝난다. 1945년 9월 2일에 하노이에서 베트남 민주공화국 (북베트남)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 후 1946년부터 1945년 까지 독립을 위한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일어나면서 하노이도 전장이 되어 한때 프랑스군이 점령했다.

그러나 베트남의 승리로 전쟁이 끝나면서 하노이는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베트남 전쟁 중에는 다리나 도로 등의 교통과 관련된 사회간접자본이 미군의 집중적인 폭격을 받았다.

미국이 철수하고 1976년남북 베트남이 통일됨으로써 하노이는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날씨....

(위키백과 발췌)

 

하노이의 날씨는 전형적인 북 베트남의 날씨로 여름은 덥고 습하며, 겨울은 비교적 시원하고 건조하다.

5월에서 9월에 이르는 여름철에 대부분의 비가 내리고 연간 강수량은 1,682mm이다.

11월에서 3월에 이르는 겨울철에는 비교적 건조하고, 봄에는 약간의 비를 동반한다. 하노이의 최저 기온은 6–7 °C 정도이며,

겨울에도 한파가 없다.

여름은 38–40 °C에 이르는 무더운 날씨이다.

 

 

 

 

하노이(1898-1990)의 기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평균최고기온℃ (℉) 19.3 (66.7) 19.9 (67.8) 22.8 (73) 27.0 (80.6) 31.5 (88.7) 32.6 (90.7) 32.9 (91.2) 31.9 (89.4) 30.9 (87.6) 28.6 (83.5) 25.2 (77.4) 21.8 (71.2) 27.0 (80.6)
일평균기온 ℃ (℉) 16.5 (61.7) 17.5 (63.5) 20.5 (68.9) 24.2 (75.6) 27.9 (82.2) 29.2 (84.6) 29.5 (85.1) 28.8 (83.8) 27.8 (82) 25.3 (77.5) 21.9 (71.4) 18.6 (65.5) 23.98 (75.16)
평균최저기온 ℃ (℉) 13.7 (56.7) 15.0 (59) 18.1 (64.6) 21.4 (70.5) 24.3 (75.7) 25.8 (78.4) 26.1 (79) 25.7 (78.3) 24.7 (76.5) 21.9 (71.4) 18.5 (65.3) 15.3 (59.5) 20.9 (69.6)
강수량 mm (inches) 18.6
(0.732)
26.2
(1.031)
43.8
(1.724)
90.1
(3.547)
188.5
(7.421)
239.9
(9.445)
288.2
(11.346)
318.0
(12.52)
265.4
(10.449)
130.7
(5.146)
43.4
(1.709)
23.4
(0.921)
1,676.2
(65.992)
습도 78 82 83 83 77 78 79 82 79 75 74 75 78.8
평균강수일수 8.4 11.3 15.0 13.3 14.2 14.7 15.7 16.7 13.7 9.0 6.5 6.0 144.5
일조시간 68.2 45.2 43.4 81.0 164.3 156.0 182.9 164.3 162.0 164.3 126.0 108.5 1,466.1

출전: 세계 기상 기구 (국제 연합)

 

 

 

 

 

 

 

 

 

교육....

(위키 백과 발췌)

 

하노이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수도로 인도차이나 최초의 서구식 대학들이 세워진 곳이다.

현재의 하노이 의과대학의 전신인 1902년 의 하노이 메디컬 컬리지를 비롯하여 하노이 국립대학의 전신인 인도차이나 대학이 1904년에 세워졌다.

현재의 하노이 예술대학의 전신인 인도차이나 예술대도 1925년에 건립된 것이다.

 

1954년에 공산주의 정당이 정권을 넘겨받은 이후에는 구 소련의 지원으로 많은 대학들이 세워졌다.

그 중에서도 하노이 공과대학은 베트남 최대의 공대로 남아 있다.

 

 

 

 

 

 

 

 

하노이는 베트남 최대의 교육 중심이다. 과학자들의 62%가 이 곳 하노이에서 일하거나 거주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매년 시행되는 대학입학 시험은 2차 교육과정을 마친 학생은 누구나 응시 가능하다. 하노이의 대부분 대학들은 공립대학이며,

최근에는 일부 사립대학도 문을 열어서 학사운영을 하고 있다.

 

 

 

 

 

 

1988년에 건립된 탕 롱 대학은 프랑스와 하노이에 거주하고 있는 베트남인 수학교수에 의해 건립된 최초의 사립대학이다.

베트남의 주요 대학들이 하노이에 있기 때문에 하노이의 대학에 입학하고자 하는 다른 지방의 학생들(특히 북부쪽)은

입시를 위해 이곳 하노이로 와서 보통 몇 주씩 머물면서 시험을 준비한다.

 

 이러한 학생과 학부모의 이동은 6월과 7월에 매년 일어나는 현상이다.

최근에는 교육부가 이러한 입학시험을 주관하고 있으며, 합격 점수는 대학이 결정한다.

비록 국가가 운영하는 공립유치원이 있기는 하지만 현지인과 외국인들의 수요를 충족하기 어렵기 때문에 많은 수의 사립유치원이 병행 운영되고 있다.

하노이의 초등학교는 대부분 국영이며 학교의 시스템은 미국의 12학년제와 비슷하고,

1학년~5학년은 초등과정, 6학년~9학년은 중등과정, 10학년~12학년은 고등과정이다.

 

 

 

 

 

 

 

 

 

교통...

(위키백과 발췌)

 

 

시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교통 수단은 스쿠터이다. 2002년경부터 시 버스망을 충실히 정비하여,

2004년에는 41개 노선 687대를 정비했지만, 아직도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남서부 지역에 사무실 빌딩과 고층주택이 들어섰고

북부에 공업단지가 정비되고 있어 종래의 옛 도시와는 다른 신도시가 생기기 시작하고 있다.

신도시 개발로 인해 사람들의 흐름도 바뀌고 있다.

 

 

 

 

 

항공

 

노이바이 국제공항

노이 바이 국제공항이 시 외곽에 있다.

이 곳에서 하노이 시내까지는 약 30분이 소요되며 택시로 이동할 경우에는 요금이 35만동이며 달러화도 받으므로 17달러로 시내까지 갈 수 있다.

하노이 시내버스 7번 노선이 이 공항을 기점으로 운행되나, 이 버스는 시내 중심가로 가지 않고 하노이 대우 호텔을 거쳐 시 외곽에 위치한 낌마까지 운행한다.

 

노이 바이 국제공항에서는 국내선으로  호찌민,다낭, 후에 등 주요 도시를 운항하고 있으며,

국제선으로는  캄보디아, 라오스의 인접 국가와  대한민국,일본,중국의 주요 도시 뿐만 아니라  

오스트레일리아시드니, 프랑스의  파리,독일프랑크푸르트,러시아의 모스크바를 운항하고 있다.

 

 

                  

 

 

 

철도

하노이 역은 베트남 제일의 상업도시인  호찌민 시로 향하는 통일철도 외에도  

중국 쿤밍 시,난닝 시 방면으로 향하는 국제 열차편도 운행하고 있다.

2009년 4월6일 하롱 익스프레스가 개통했다. 하노이 지알람 역에서 하롱베이 하롱 역까지 운행한다

 

 

 

 

 

 

 

 

역시 그 곳에 가 봐야 그제서야 그곳에 대한 지식이 머릿속에 가슴에 담긴다.

베트남은 전쟁터의 수많은 파월 장병들로 내 어릴적 가장 먼저 머릿속에 박힌 나라다.

위문 편지를 수없이 썼고,파월 장병들이 연류된 유명한 유행가 가사와 영화...

그리고 이후 많은 한국인 근로자들이 해외 파견으로 나간 나라....그에 따른 수많은 애환들...

그리고 최근 관심을 갖게된 여행지들...그 외엔 제대로 베트남에 대해 아는게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베트남에 대해서 누군가가 말하면 훨씬 더 머릿속으로 가슴으로 들어올 터다.

 

 

 

 

 

 

 

아침 식사를 하고 우리를 픽업할 차량을 호텔앞에서 기다렸다.

우리만 타고 가는 전용 차량이 아니고 많은 여행객을 싣고 가는 차량이라선 지 약속 시간 보다 꽤 늦는다.

이참에 우린 또 시시각각 변하는 거리의 풍광을 카메라에 담으며 여행을 하는 것이다.

그저 모든게 재밌을 뿐이다.

 

 

 

 

 

 

 

어젯 밤과는 유달리 다르게 느껴지는 풍광은 노천 까페에서 느껴지는 흐드러지는 풍광과는 또 전혀 다른

일상의 부지런함이 느껴진다.

이렇게 이른 아침인데도 거리를 누비는 부지런한 소박한 장사꾼들이 베트남 하노이에서만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과일과 야채, 뻥튀기류를 보기 좋게 담은 바구니 2개를 엮어 어깨에 매고 다니는 여인들...

야채를 가득 담은 바구니를 자전거에 싣고 앞에까지 주렁 주렁 매달고 다니는 여인....

자전거 뒷자리 바구니에 파인애플을 싣고, 그 밑으로도 주렁 주렁 매달아 더없이 재미난 모습을 한 여인...

화초를 자전거 뒷자리에 한가득 싣고 가는 여인....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여인은 자전거 앞 바구니부터 뒷 좌석은 물론 자신이 앉을 의자에 까지 노오란 오렌지를 가득 담고

왔다 갔다 하는 여인이다.

신기함과 재미를 떠나 세상에서 가장 싱싱하고 맛있는 오렌지를 팔고 있는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소박한 장사꾼들의 모습에 열광하고 있던 차에 이번엔 이른 아침부터 구시가지 인력거 투어를 하고 있는

대 부대의 여행객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거리의 풍광을 담느라 카메라 셔터를 눌렀고,

우리는 또 이들을 담느라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서로들 즐거워 했다.

우리와 눈이 마주치자 서로 손을 흔들며 피차에 여행자로서의 즐거움과 흥분됨을 만끽했다.

 

 

 

 

 

 

 

 

 

 

 

 

 

 

 

 

 

 

 

 

 

 

 

 

글쎄~

이렇게 여유로운 인력거 투어행렬이 놀이 공원 말고 이처럼 구시가지 도로에서 벌어진다는 것이 이곳말고 세상 어디에서 또 가능할까....

같은 시간,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데, 이렇듯 여유를 만끽하며 살아가는 곳도 있다니...

차량이 다니지 않는 곳에서라면 모를까 차도에서 이같은 행렬이 벌어진다면 난리법석이 나겠지~

 

 

 

 

 

 

 

 

 

 

 

 

 

 

 

 

 

 

이때 노란 국화꽃을 한다발 들고 가는 여인이 눈에 띄었다.

장사꾼이 아닌 이른 아침에 꽃을 사가지고 가는 여인이다.

왠지 이 여인으로 하여 하노이 사람들의 삶의 여유가 더욱 더 느껴진다. 

 

역시 꽃을 든 여인은 아름답다.

자기 집에 꽃을 꽂기위해 이른 아침 한 다발 사가지고 가는 여인은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헐~

이건 뭐야~

할머니가 카트에 박스 가득 바게트 빵을 담고 가는 모습은 빵이 하도 커서 마치 포탄을 싣고 가는 모습같다. ㅋㅋ

하노이 사람들의 아침 주식이 쌀국수말고도 빵을 먹는 사람들이 많음을 알게 한다.

아무래도 프랑스 지배를 받은 영향일 것이다.

 

 

 

 

 

 

 

 

 

 

 

 

 

 

 

 

 

 

오호~

여긴 또 완전히 색다른 모습이네~

고기를 그냥 좌판에서 팔다니....ㅠㅠ

건조한 사막지대도 아닌데, 상하지 않을까...

더우기 예쁜 옷가게 앞에서 이리 팔고 있다니....

가게 주인이 한 바탕 난리를 필것도 같은데...

 

우리 나라 사람들과는 삶의 방식과 생각이 정말 많이 다른것 같다.

우리나라 보다는 가난한 나라일 지 몰라도...

왠지 거리 곳곳에서 배어나오는 삶의 모습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배려하는 사회같아 가슴 한 켠을 뭉클하게 한다.

 

 

 

 

 

 

 


 

잊지못할 아름다운 영화음악 연주곡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