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K2bc,낭가파르밧.45일(2014

120.파키스탄/간다라 불교문화가 숨 쉬는곳...탁실라(Taxila)..탁실라 박물관과 모흐라 모라두유적지

나베가 2015. 5. 25. 13:10

<탁실라,Taxila 박물관>

 

 

이슬라마바드로 가는 중에 있는 탁실라 유적지에 잠시 들리기로 했다.

먼저 들린곳은 탁실라 박물관....

 

우리가 들어가자 마자 안내원이 너무 친절하게 다가와 일일이 다 설명을 해주는 것이다.

잘 알아듣지도 못할뿐더러 지나칠 정도로 베푸는 친절에 살짝 부담이 된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람이 없는 방으로 들어가 팁을 요구하는 것이다.

사진을 찍도록 해준다는 것...ㅠㅠ

 

기분이 살짝 그렇긴 했지만...

약간의 팁을 주고, 그 사람을 배려(?) 해가며 눈치껏 사진을 몇장 찍었다.

책도 하나 사주고....

 

어쨋든 학창시절 귀가 닳도록 듣고 배운 '간다라 미술' 작품들과 보물들을 직접 볼 수 있었다는건 큰 감동이다.

 

 

인도 북서쪽의 고대도시...탁실라(Taxila)

파키스탄의 라왈핀디 북서쪽으로 약 35㎞ 떨어진 유적지이다. 고대에 이곳은 3개의 큰 무역로의 교차점에 위치하여 크게 번영했다. 무역로 중 하나는 그리스 작가 메가스테네스가 '왕도'(王道)라고 표현한 동부 인도에서 오는 길이고 또하나는 서아시아에서 오는 길이며 나머지는 카슈미르와 중앙 아시아에서 오는 길이다. 이들 무역로의 중요성이 사라지면서 이 도시도 몰락했고, 5세기에 마침내 훈족에 의해 파괴되었다.

 

 

 

역사

 

탁실라는 인도와 그리스·로마 문헌에 언급된 것과 두 중국인 순례자 법현(法顯)과 현장(玄奘) 법사의 기술을 통해 알려졌다. 문자 그대로는 '깎아지른 바위의 도시', 즉 '타크샤의 바위'라는 뜻을 가진 타크샤실라(그리스 저자에 의해 탁실라로 음역됨)는 힌두교 비슈누 신의 한 화신인 라마의 동생 바라타에 의해 설립되었다고 인도의 서사시 〈라마야나 Rāmāyaṇa〉에 기록되어 있다. 도시 이름은 바라타의 아들로 그곳의 첫번째 왕이었던 타크샤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전승에 의하면 자나메자야 왕이 뱀을 제물로 바치는 성대한 제사를 드릴 때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 Mahābhārata〉를 처음으로 낭송했다고 한다. 왕은 이 서사시에 나오는 영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불교문헌, 특히 자타카는 이 도시를 간다라 왕국의 수도로서 또 학문의 대(大)중심지로 언급했다. 간다라(간다리)는 BC 5세기에 만들어진 아케메네스(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 1세의 비문에 사트라피, 즉 속주(屬州)로 적혀 있다. 따라서 간다라의 수도인 탁실라는 1세기 이상을 아케메네스 왕조의 지배를 받았던 것이 분명하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BC 326년 인도를 침략했을 때 탁실라의 지도자 암비(옴피스)는 이 도시를 넘겨주고 모든 것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처분에 맡겼다. 이 마케도니아 정복자를 수행한 그리스의 역사가들은 이 도시를 '부유하고 번영하는, 또 잘 통치되는 곳'으로 기술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은 지 10년이 못 되어 탁실라는 찬드라굽타 마우리아가 세운 마우리아 제국에 합병되어 그의 지배기간중 지방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서쪽에서 온 정복자들에게 지배되어온 탁실라의 역사에서 짧은 기간에 지나지 않았다. 3세대에 걸친 마우리아 통치 후에 이 도시는 박트리아의 인도그리스 왕국에 의해 합병되어 BC 1세기초까지 인도그리스인의 통치를 받았다. 그 뒤를 이어 중앙 아시아에서 온 사카족, 즉 스키타이족과 파르티아족이 AD 1세기 후반까지 이곳을 지배했다. 초기 그리스도교 전설에 의하면 파르티아 시대에 사도 토마가 탁실라를 방문했다고 한다. 그외에 이곳을 다녀간 사람으로서 티아나의 신(新)피타고라스파 철인 아폴로니오스가 유명하다(AD 1세기). 그의 전기 작가 필로스트라토스는 탁실라가 대칭적 구도로 설계된 요새화된 도시이며 규모면에서는 니네베에 필적한다고 기술했다.

탁실라를 파르티아족으로부터 빼앗은 것은 쿠줄라 카드피세스 지휘하의 쿠샨족이었다. 위대한 쿠샨 통치가 카니슈카는 이곳에 3번째 도시 시르수흐를 세웠다(2번째는 시르카프로서 인도그리스 시대에 세워졌음). 4세기에 사산 왕조의 샤푸르 2세(310~379)가 탁실라를 정복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그곳에서 발견된 수많은 사산 왕조 동전이 입증해준다. 사산 왕조 지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동진의 법현이 대략 5세기초에 이 도시에 왔을 때는 불교성지와 사원이 융성한 곳이었다. 그후 곧 훈족에 의해 약탈당했고 이후로 다시는 재건되지 못했다. 당나라 현장(玄奘)이 7세기에 이곳에 와서 도시가 폐허화되었음을 보았고, 그후로는 이곳에 대한 언급이 없다.

발굴작업은 인도 고고학의 아버지 알렉산더 커닝엄 경이 1863~64, 1872~73년에 시작했는데, 사라이칼라로 알려진 현지의 유적터가 고대 탁실라임을 확인했다.

그후마셜 경이 이 작업을 계속하여 20여 년 간 고대 유적터와 그곳의 기념물들을 모두 발굴해냈다.

 

  

 

 

 

 

 

 

고고학

탁실라의 건축유적에는 비르 토루(土壘) 지역, 시르카프의 궁궐터, 잔디알과 피팔라 사원, 기리 요새, 모라모라두와 자울리안 사원, 다르마라지카·발라르·쿠날라 탑(고분) 등이 있다. 기념물에 사용된 여러 다른 유형의 석공술에서 각각 만들어진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가장 초기의 유적은 비르 토루의 유적들이다. 궁궐터는 아시리아의 궁궐터와 동일한 유형으로 설계되어 몇몇 입구가 있고 그 외곽에는 성이 둘러처져 있다. 가장 오래된 건물들은 잡석을 쌓아 만들었고 그후 계속해서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다. 그곳에서는 거대한 불교 사원, 몇몇 작은 신전 및 구획으로 된 거주용 집들이 발견되었다. 2개의 머리를 가진 독수리상이 있는 신전은 돌출된 코린트식 벽기둥이 앞면에 있고 중간 벽면에는 움푹 들어간 곳이 몇 개 있어서 흥미롭다. 그밖에 테라코타와 도자기, 작은 청동기들, 구리와 철로 만든 물건들, 염주알, 보석, 인도-그리스, 파르티아, 초기 쿠샨 왕조의 동전 등 많은 골동품들도 발견되었다. 궁궐터 내부의 구식 구조물과 남쪽 구역의 돌로 쌓은 성벽 사이의 단층 관계는 1944~45년에 영국의 고고학자 R.E. 모티머 휠러 경의 발굴에 의해 밝혀졌다.

치르 토페(Chir tope)로 잘 알려진 다르마라지카 유적은 지면을 주변보다 높여 바탕을 조성하고 지은 원형 구조물이다. 커다란 탑을 작은 기도실들이 둘러싸고 있다. 주탑(主塔) 주변의 건축물에는 뚜렷이 다른 3가지 양식의 석공술이 쓰인 점으로 보아 건물 건축작업이 여러 시대에 걸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카로슈티의 은판(銀板)으로 두루마리 비문과 석가의 사리가 들어 있는 작은 금궤가 한 기도실에서 발견되었다. 비문에는 "위대한 왕이며 왕중의 왕, 하늘의 아들인 쿠샤나"(쿠샨의 정복자 쿠잘라의 아들인 비마 카드피세스인 듯함)에게 건강을 내리게 하려고 BC 136년에 노아차 시 출신의 우르사카라고 하는 한 박트리아인이 사리를 사원에 모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유적터에는 또한 부처와 보살의 여러 조각들도 있다.

인공 구릉 위에 세워진 잔디알 사원은 그리스의 고대 사원들과 매우 유사하다. 이 사원의 이오니아식 원주와 돌출된 벽기둥은 거대한 사암(砂岩)으로 만들어졌다. 스키타이-파르티아 시대에 세워진 이 사원은 필로스트라토스가 〈티아나의 아폴로니오스의 생애 Life of Apollonius of Tyana〉에서 언급한 사원일 것이다. 잔디알 사원은 불교 사원이 아니지만 절 하나와 두 군데의 탑터가 발견된 자울리아 유적은 불교유적이다.

탁실라는 지방행정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학문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비하르의 날란다에 있는 것과 같은 강연장과 거주지역을 갖춘 대학 도시는 아니었다. 탁실라에서 교사는 제자들을 유숙시켰고 그들은 하숙비를 스승과 가족에게 현금이나 용역의 형태로 지불했다. 불교 사원에서는 학생과 승려가 원하면 음식을 제공했다.

B. N. puri 글

 

 

 

 

탁실라 박물관(Taxila Museums)은 간다라 미술의 보고라고 일컬어지는 박물관이다.

탁실라 주변에서 발굴된 불상과 동전, 항아리, 보석 등이 전시되어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모흐라 모라두에서 발굴된 일곱 스투파의 복제품이 나타나며, 우리 진열장에 간다라 불상과 조각품이 진열되어 있다.

모흐라 모라두 대탑에서 출토된 좌불상은 간다라 미술의 최고 걸작이다.

탁실라 죠우리안 사원지의 제 21실에서 출토된 이 청동 불좌상은 일반적으로 석조나 소조가 많은 간다라에서는 특이한 예이다.

둥글고 높은 유계. 미소를 머금은 온화한 얼굴이 그 특징이다.

 

 

 

 

 

 

 

 

 

 

 

 

 

 

        

 

 

 

      

 

   

 

 

 

박물관을 나와 이번엔 직접 유적지로 가 보기로 했다.

처음 간 곳은 모라 모라두(Mohra Moradu) 유적지.

인적이 없는 한적한 곳에 쓸쓸하게 있었다.

 

역사적으로 엄청난 보물일진데, 잘 보존되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방치되고 있다는 느낌....??

아무래도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도 관리인이 얼마나 친절하던 지....

사진도 맘껏 찍으라고  일일이 설명하며 데리고 다니고....

 

박물관에서 팁의 요구를 받았던 터라 혹시 이 사람도 그런건 아닐까....맘이 아주 편하진 않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끝까지 친절을 베풀어 준다.

나오면서 미안함 맘이 들 정도였다.

 

팁을 조금 주고 올걸 그랬나....싶은 불편한 맘이 살짝 들었다고나 할까....ㅠㅠ

 

 

 

 

 

 

 

 

 

 

 

 

 

 

 

 

 

 

 

 

 

 

 

 

스투파(STUPA)는 엄청난 보물인 지라 문을 해 달아서 잠가놓았다.

관관객이 오면 관리인이 자물쇠를 열고 보여준다.

 

 

 

 

 

자연속에 포옥 파묻혀 너무나도 조용히 있는 모습이....

정말 세속을 떠나 시간 여행을 온 듯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당시 그들의 생활상과 종교의식, 그리고 섬세한 예술성이 내안에 파고들어 왠지 복잡함 속에 빠져있는 나를 건져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유적지를 찾는 지도 모르겠다.

뭔진 모르지만 그냥...자신의 뿌리를 찾는 듯한 느낌....??

 

 

 

 

 

 

 

 

 

 

 

 

 

 

 

 

이 외에도 유적지가 많다고 했는데, 그냥 돌아가기로 했다.

이것도 선견지명 같은거 였을까...

나오는 길에 교통 체증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 지....

교통체증을 넘어 이건 전쟁상황이라고 할 정도....완전 아수라장...

도로가 자동차로 완전 뒤엉켜서 엉망징창이었다.

심지어 차선은 고사하고 왕복 차선 마저 없어져 버렸다.

우리 차 옆으론 수십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트럭들이 들이밀고....

급한 사람들은 내려서 다 걸어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 한 명도 없고....

 

빠져 나가긴 고사하고, 탈출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 상황에서 보기만해도 가위가 눌리는 호화찬란 장식물의 거대 트럭들을 비집고 우리의 기사...

1보 전진 또 1보 전진....

아무리 옆에서 위협을 해도 눈 하나 끔쩍 않고 파고 들더니, 몇 시간 만에 그곳 탈출 성공...

 

아수라장 통을 빠져 나와 보니, 한 쪽 도로가 완전히 지진이 난 것 처럼 거대한 암홀이 생겼다고나 할까....

어찌 도로 하나가 이처럼 폐쇄가 되었는데도 경찰이 나와서 통제를 안하는것인 지 납득할 수 없었지만, 어쨋든 우린 그곳을 탈출했으니까...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독립기념일을 근거로 일어난 시위는 아직도 진행형이라 폐쇄된 도로가 많았다.

우리 숙소까지 찾아가는데, 또 삼만리....ㅠㅠ

 

K2여정의 끝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듯

그에 못지않은 힘겨움으로 찾아온 숙소는 게스트하우스임에도 불구하고 최상의 안락함이 기다리고 있었다.

 

 

 

 

 

와아~~

럭셔리한 커튼에 화려한 카페트, 하얀 시트의 럭셔리 침대...

 

빵빵 나오는 에어컨에 냉장고도 있고, 그 안에는 익발의 선물로 과일이 가득 들어있었다는 것....

 

 

예쁜 탁자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는 창으로 가 커튼을 제치니,

너무나도 아담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 풍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방이 정말 이쁘고 럭셔리 했는데...흥분해서였는지 방 안 사진이 하나도 없다,ㅠㅠ)

 

 

 

 

 

Paganini - Cantabile And Walt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