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정이 길지는 않으나 뜨거우면 700m 의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기에 힘겨웁기에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5시 기상, 6시반 식사 ,7시 출발 일정이다.
아침으로 어젯 저녁 먹다 남은 닭도리탕에 밥을 비벼서 김치와 밑반찬과 함께 먹었다.
헤마옛이 밥만 하기가 그랬는 지, 이것으로도 충분한데, 씨리얼을 따끈한 분유와 함께 내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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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여정이 끝나고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간 것일까....
K2 트래킹이 끝나고 아스꼴리에서 나오는 날부터 치니, 트래킹 한 지가 벌써 6일이나 지났다.
오랫만에 다시 해발고도 3,500m가 넘는 곳으로 700m의 고지를 올라갈 생각을 하니 살짝 긴장감이 돈다.
괜한 걱정일까... 무릎도 살짝 안좋은것 같기도 하고....ㅠㅠ
집을 나서니 사뭇 깍아지른 절벽이 위압적이다.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한 랜드슬라이딩 구간도 괜스레 맘이 쓰이고....
마을을 빠져나가 하이스쿨을 지나 엊그제 우리가 방문했던 익발의 후원학교로 들어섰다.
감동적인 순간을 맛보고 조금이나마 후원을 해서 그런 지, 쉬이 지나쳐지 지가 않는다.
아이들도 이런 마음은 마찬가지인 지, 우리에게서 쉬이 시선을 떼지를 못한다.
까마득히 내리 꽂는 내리막으로 내려와 강을 건너며 보니, 그때까지도 아이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서있다.
얼마나 우리가 깊은 계곡으로 내려섰는 지, 렌즈를 까지끝 당겨서 찍어도 아이들이 깨알만하다.
녀석들...
혜마옛은 무엇이 그리 기분이 좋은 지, 우리가 밍글로 블록에 가서 잡아 먹을 닭 2마리를 들고는 히히낙낙이다.
아니, 폼을 잡으며 한 컷 찍어달라고 까지 한다.
이제까지 집에서 우리를 손님 대접하다가 다시 아름다운 산 속살로 들어가니, 이제서야 제 본연의 일을 찾은것도 같아 기분이 저리 좋은가 보다.
강건너 높디 높은 오르막을 올라 바위산 계곡으로 들어가면 밍글로 블록(Mingro Brok 3,556m) 이란다.
강을 건너 치솟은 바위산 가까이로 들어서니, 암산의 위용이 더 대단하다.
뾰족 뾰족 솟은 침봉들의 향연이 파노라마 처럼 펼쳐지고, 그 가운데 매끄럽게 내리 뻗은 산자락은 또 미끄럼틀 같기도 하다.
여전히...그 사이 사이로는 노오랗게 익은 밀밭들의 향연이 수직으로 뻗어오른 초록색의 미류나무 사이로 그림처럼 아름답다.
저 멀리 아득하게 마셔브룸도 보인다.
마셔브룸(Masherbrum 7,821m)은 다른 이름으로 K1 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파키스탄 길기트발티스탄 주의 산으로 세계에서 22번째, 파키스탄에서는 11번째로 높은 산이다.
글쎄~
다음에 차라쿠사에 가게되면 가까이서 저 봉우리의 위용을 느낄 수 있겠지?
클랐네~
대체 파키스탄에 몇번이나 더 와야된다는 거야~ ㅋ~
파키스탄 대자연의 웅장함에 괜한 투정도 부려본다.
깊은 골짜기로 들어섰다.
골짜기 양옆으로 우뚝 솟아 오른 암산의 위용에 가위가 눌릴 지경이다.
이곳의 산은 우리나라에서 늘상 보던...아니 이제까지 내가 세상에서 보던 그런 산의 모습이 아니다.
이곳 카라코람의 산은 그냥 수직으로 솟아 오른 거대한 돌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놀라운 것은 그 사이로 이렇듯 초록 숲이 형성되어 있는 아름다운 초원이 있다는 거다.
오랫만에 하는 트래킹이라 초반의 오르막을 오르느라 힘이 좀 들었지만,
이렇듯 푸른 초원에서 사진도 찍고, 또 어디서 굴러 떨어진 줄 모르겠는 커다란 바윗덩이 위에도 올라 사진 찍고...
이렇듯 여유만만 즐기며 오르자니 또 힘든 줄 모르겠는 거다.
그러나 새로운 풍광에 또 휩쌓여 히히낙낙 모델놀이 하며 오르는 우리와는 달리 포터들에게선 힘듦이 역력히 보인다.
카라코람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험준하고 가파른 돌덩이 길에 자욱을 뗄때 마다 폴폴 흙먼지가 이는 고운 흙길에...
어디 한 군데 만만한 길이 없으니, 저 무거운 짐을 지고 3,000m의 뙤약볕 길을 오른다는게.... 어디 아무나 쉬이 할 수 있는 일인가~
높디 높은 산자락 언저리에 먼저 올라 뒤이 올라오는 포터들을 보자니 또 다시 안스런 맘이 인다.
그러나 반면 입에서는 또 탄성이 그칠줄을 모른다.
어찌 이렇게도 가파르게 양옆으로 수직으로 솟아 오른 산봉우리가 있단 말인가!
그런가 하면 앞을 딱 막고 있는 또 다른 거대 벽!
마치 사방이 수직 암산으로 막힌 그 한가운데서 적을 만나 진퇴양란에 빠진 듯한 기분이 문득 든다.
그래서 오직 살기위한 길이란 위로 오르는것 밖에 없는것 같은....
워낙에 가파라서 힘도 드는데다 오늘 일정이 길지 않기때문에 그늘막만 있으면 쉬었다.
아래로 내려다 뵈는 풍광이 그 어디서도 보기 힘든 기막힌 풍광이기도 하고...
이제 꽤 높은곳까지 올랐나 보다.
눈에 거대벽 뒤의 풍광이 보이기 시작한다.
침봉처럼 날카로운 암산의 설벽들과
그리고 왠지 카라코람과는 어울릴것 같지 않은 이쁜 나무들과 초원....
눈앞에 펼쳐진 풍광에 흥분해 한바탕 달려나가 또 포즈잡고 인증샷 한 컷 날려준다.
황량함 뒤에 느닷없이 나타난 푸른 초원에 매료되어 한바탕 모델놀이 펼치고 올라가니, 이내 우리 점심 장소다.
겨우 2시간 남짓 걸어올아 아직 10시도 채 안됐는데...점심시간 이라니...ㅠㅠ
아직 배도 부른데...
그래도 점심시간이라니 초간단 메뉴로 점심식사를 마쳤다.
아침에 한 밥과 이 동네 어디서 구한 순무와 고추장 그리고 젓갈이 다다.
이 3,000m나 되는 고산 지대 어디서 순무가 자라고 있는걸까....
포터들도 순무를 깍아 먹느라고 모두들 정신이 없다.
우리도 밥반찬이라기 보다는 순무를 깍아 고추장에 찍어 먹으며 초간단 점심을 해결했다.
그리고 늘상처럼 자리위에 벌렁 누워 대 자연의 기를 호흡하며 만끽했다.
아놔~
그런데 이게 당췌 그늘에 들어가면 조금만 있어도 춥고, 그래서 자리를 햇볕으로 끌고나가 누우면 또 뜨거워서 누워 있을 수가 없다.
이게 당췌 생각처럼 낭만적인 오수를 즐길 수가 없는거다.
몇번을 햇볕으로 나갔다 그늘로 들어갔다 옮기기를 하다가는 낮잠을 포기하고 주변 풍광을 카메라에 담으며 여유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1시간의 오수시간을 보내고 다시 출발했다.
이후로도 간간히 나타난 초원은 우리를 계속 흥분 시켰고, 깊은 골짜기 대신 거대 벽 뒤로의 설산이 점점 우리 눈앞을 채웠다.
놀랍게도 아름다운 초원은 그 높은 고산 깊은 속살에도 계속 이어졌다.
K2의 그 황량한 빙하 모레인 길을 걸으며 포터들과 스텝들이 그렇게 이곳을 얘기하며 우리를 위로하고자 했던....
Green Glass...천국 밍글로 블록....
다음 여정인 밍글로 블록에 가면 그렇게도 아름답다고.....
온 천지가 Green Glass이고 수십 수백가지 야생화들이 만발해 있다고...
사실 그들이 말했던 것 처럼 수백가지의 야생화들이 피어있는 아름다운 곳은 아니었다.
아니, 시기가 늦어 이미 야생화는 다 지고 난 뒤라서 그저 초록 숲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힘든 빙하 돌덩이 길을 걷고 있는 우리를 얼마나 위로해 주고 싶어 했는 지....
황량하고 척박한 암산과 설산, 사막의 땅에 살고 있는 그들에게 있어서 이곳 밍글로 블록이 또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 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1시간 남짓 걸어올랐을까....
밍글로 블록에 도착했다.
그랬어~
초록숲 한 가운데가 밍글로 블록였던게야~
구름 한 점 없는 파아란 하늘에 일부러 조각을 해도 저리 날카롭게 하기가 힘들 만큼 날카롭고 섬세한 침봉들의 파노라마가 펼쳐지고,
그 아래로 푸르른 나무가 가득 우거진 숲에 융단 처럼 깔려 있는 푸른 초원.....
그 사이 사이 흐르고 있는 수정처럼 맑은 도랑....
호젖하게 노닐고 있는 소들...
누가 하고 간 건 지 거목에서 처낸 잔가지들이 숲에 널부러져 있어 그거 몇 가지 주어다 떼면 포터들이 따듯하게 밤을 보낼 수 도 있는...
그야말로 이곳 카라코람에서 이곳 밍글로 블록은 그들이 자랑에 열광한것 처럼 분명 천국이었다.
힘겹게 오르던 포터들은 어느새 우리보다 훨씬 앞질러 자리를 잡고 텐트까지 예쁘게 쳐놓은 상태였다.
아직 해는 중천에 떠 찬란하게 내리 쬐고 있었다.
적어도 트래킹을 마친 지금 이 순간, 이 작렬하는 태양열은 얼마나 또 매혹적인가...
조금이라도 꿉꿉할까...해만 나면 햇빛에 거풍을 하지만, 오늘은 최 정점을 찍듯 뜨거운 열기다.
그늘과 햇볕으로 오가며 해바라기를 하고 누워 있었다.
누워서 보이는....
파아란 하늘과 그 하늘을 바탕으로 흐드러져 있는 나뭇 잎들과 수직으로 솟아오른 날카로운 침봉들이 기가 막히게 판타스틱하다.
이렇게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오늘 밤하늘이 보이는 듯 하다.
주먹만한 별들이 깜깜한 하늘에 총총 박혀있는....
아!!
벌써부터 완전 기대되는군~
오늘밤은 라토보BC에서 처럼 자리 깔고 누워서 봐야지.
점심을 초간단으로 먹여서 인 지 또 라면을 끓여 내왔다.
라면을 먹자 마자 버럭이는 어느새 사라졌다.
첨봉만 보면 오르고 싶어하는 날 다람쥐-버럭이...
벌써 어느 침봉인가 오르고 있을 터다.
한동안 해를 쫒기도 하고, 피하기도 하면서 천국-밍글로 블록을 만끽 했다.
무작위로 솟아나는 수많은 아름다운 상념들을 파아란 하늘에 흩 뿌리며...
세상에 이렇게 좋을 수가 있을까....싶다.
아!! 정말 좋다!
워낙에 암산이 높이 솟아 있어 또 순식간에 추위가 엄습한다.
추워지기 전에 도랑가로 가서 세탁도 하고, 씻었다.
나무 사이에 빨랫줄을 걸고 세탁물을 주렁 주렁 널었다.
이 단순함이 이렇게 흡족하고 행복감을 주다니...
행복이란게 별거 아니야~
4시쯤 주방으로 가서 아까 오르면서 동네서 구해 온 순무로 김치를 담그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먹거리들을 좀 챙기는건데, 무거우니 멸치 액젖이나 내가 그들에게 준 천연 조미료등을 가져올 리가 없다.
그래도 파와 양파를 듬뿍 넣고 내가 가져간 맛있는 태양초 고추가루를 넣고 담그었더니 맛있다.
턱수염이 자란 부분에 피부염이 심하게 난 포터가 도움을 요청해 항히스타민제를 주고, 소금물로 씻으라고 소금까지 주어 보냈다.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또 금새 컨디션을 회복한 이들의 환한 얼굴과 고마워하는 모습을 볼때 마다 얼마나 행복하고 뿌듯한 지...
이제까지 생각했던 여행...아니 삶의 또 다른 행복감과 만족감이랄까.....
저녁으로 컬리 플라워 튀김이 나왔다.
네팔 쿡이 이 컬리플라워 튀김을 정말 소고기 튀김처럼 맛있게 해주어 그리 해달라고 했더니, 제법 잘 해내었다.
거기다 오늘의 메인 요리는 치킨 커리(벌써 닭 한 마리를 잡아 먹은 거...ㅠㅠ)다.
그런데 그 맛이 얼마나 좋은 지,이제까지 요리중 가장 맛있었다는....
한바탕 맛있다고 호들갑을 떨고는 후식으로 이곳 어디서 구해온 진한 천연 요구르트에 훈자의 그 유명한 살구쨈을 넣어 먹으니 또 맛이 기막히다.
엊그제 칸데에서 담근 김치를 가져오지 않아 좀 전에 새로 담근 순무김치까지 있으니 풍족한 먹거리에 흡족함과 행복감이 하늘을 찌른다. ㅋㅋ
텐트에 들어와 있는 우리들을 불러낸다.
나가 보니, 주변 나뭇가지들을 주어다 캠프파이어를 한다고 ....
칸데 사람들이 나무가 우거진 이곳에 올라와 쳐낸 가지들중 굵은 나뭇가지들은 마을로 가지고 내려가고,
이렇게 잔 가지들은 트래커들과 포터들을 위해서 내버려 둔다고 한다.
어둠이 내리니 멀리 하얀 설산이 점점 선명해진다.
주변 풍광과 어우러져 근사하다.
역시 밤은 또 한편 축복의 시간이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으니 포터들 슬슬 또 발동이 걸리기 시작한다.
각종 식자재 등장하여 악기로 둔갑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노랫가락 슬슬 울려퍼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또 춤꾼이 이어 등장하고...
연일 계속되는 이들의 흥에 겨운 노래와 춤사위를 보고 있자니,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게 사는 이들의 행복한 모습에 나도 한없이 이들을 닮아가는 것을 느낀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랄까.....
삶이란 무엇일까!
무엇이 잘 살고, 누가 부자이고, 가난한 것일까....
며칠 동안 칸데에 머물면서 그들의 너무나 행복하고 화목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는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닐까....생각 했다.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까마득해져 버린 어릴적 시절이 살포시 오버랩 된다.
1남 5녀의 우리 형제들이 건넌 방에 모여 오순도순 서로 도우며 깔깔대며 살던 시절...
모이기만 하면 깔깔대서 시끄럽다고 아버지한테 혼난 기억이...
온 식구가 드나들적 마다 배웅하느라 시끌법적했던....
결코 그 시절이 가난하단 생각을 해본적이 없고 그저 행복했던 시절로 기억되듯이....
부와 행복이란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외적인 것에 있지 않다는 걸 파키 3부 여정에서 뼛속까지 느낀다.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Sinfonie Pastorale]
Ludwig van Beethoven (1770 - 1827)
2. Andante molto mosso
'파키스탄·K2bc,낭가파르밧.45일(2014'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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