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길을 잠시 멈춰섰다.
캠프사이트가 저멀리 보인다.
임티아스 왈, 15분 거리라구....물론 그보다는 훨씬 더 오래 걸리지만...ㅎㅎ
그때 저만치 헤마옛이 보였다.
비스켓과 뜨거운 망고쥬스를 타가지고 왔다.
그리곤 우리 배낭을 앞뒤로 매고 간다.
마침 배가 고파 허기가 지고 지친 상태였는데, 완전 감동이다.
오후 3시...드디어 캠프에 도착했다.
사이트 현장 사진 한 컷 찍지 않고 이미 다 쳐놓은 텐트로 들어가 실신하듯 누웠다.
바닥에 스텝들이 깔아놓은 얇은 매트위에 그냥 누워있자니 금새 추위가 온 몸을 덮쳐온다.
그때 헤마옛이 라면과 몬텐tea를 끓여서 직접 텐트로 가져다 주었다.
우리가 오늘 처럼 기인 일정에 9시반에 먹은 점심을 거의 먹지를 않아서 신경이 몹시 쓰였나보다.
맛없는 파키스탄 라면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tea만 마시고는 우모복을 덮은 채 잠깐 잠이 들었다.
깨서보니,온몸이 나근 나근 녹아드는게 그렇게도 간절히 보기를 바랬던 가셔브룸1,2 의 뷰포인트에 가고 싶지 않았다.
가지 않겠다고 맘먹어놓고도 막상 4시가 되어 알쏭이 뷰포인트에 간다고 나서는 기척이 들리자 또 맘이 싱숭거려 결국 따라 나섰다.
아침에 그렇게도 좋았던 날씨도 꾸물거리고, 모두들 지쳐서 인 지 이풀도 유라시아도 나서지 않는다.
나와 알쏭만 임티아스를 데리고 뷰포인트로 나섰다.
잠깐 잠을 자고 또 긴장감이 풀어져서 인 지, 정말 눈앞의 오르막을 오르는데 죽을것만 같이 힘이 들었다.
아니, 힘이 드는게 아니라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오를 수가 없는거다.
이제서야 완전히 컨디션을 찾았는 지, 알쏭은 기운이 넘쳐나는듯 하다.
후회가 밀려들었다.
내일 일정과 그 이후의 일정들도 연신 3스테이지로 장난아닌데, 괜한 욕심을 부렸나 싶기도 하고....
끝없이 후회를 하면서 걸었다.
그렇게 수없이 트래킹을 했어도 이렇게 온 몸이 젖은 휴지처럼 주저앉아 기력이 없어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그렇게... 늘 그렇듯.... 죽을것 같지만 죽지않고 실신하기 직전에 뷰포인트에 도착했다.
넋을 잃은 사람 처럼 잠시 혼미함 속에 있다가 생기가 넘쳐나는 알쏭을 보고는 나도 그제서야 풀렸던 몸에 생기가 돋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먹지도 않았는데...갑자기 기운이 넘쳐나다니....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네~
뷰포인트에 도착을 했는데, 왜 사진이 없는거지??
아니, 어느것이 가셔브룸 2인지 모르겠는걸~ㅠㅠ
아니, 구름에 벌써 다 가려진건가??
암튼....
신기하리 만큼 갑자기 기운이 생겨나 모델놀이 들어갔다.
뭐가 그리도 웃겼던걸까....
아마 죽겠다고 ...다 죽어가는 시늉으로 있다가 갑자기 펄펄 날며 희희낙낙한 나의 모델놀이 때문이었을 것이다.ㅋㅋ
우린 온갖 폼을 다 잡으며 배꼽을 쥐고 웃고 또 웃었다.
여기에 임티아스도 가세를 하였다.
기운이 넘쳐나는건 나만이 아니었다.
임티아스가 갑자기 바윗돌을 들며 힘자랑을 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가셔브룸의 빡센 정기가 우리안에 가득 차들어 우리를 감싸주고 있었나 보다.
28살의 세아이의 아빠지만 나이로는 우리딸 보다도 어리다.
그래도 우리의 가이드이기도 하고 또 한 가정의 가장이라서 인 지 엄청 어른처럼 느껴진다는...
근데 또 지금 이 순간은 엄청 귀엽군~ㅋㅋ
한번 빙하에 누워 신세계를 맛본 이후로는 후딱하면 빙하위에 누웠다.
빙하를 뒤덮은 돌 위라서 엄청나게 차고,베기고 아플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편안하다.
아마 온 신경이 눈으로 가서 다른 감각들은 기능을 상실해서 일지도 모른다.
엄청난 위용의 설산과 암봉들 그 한 가운데 내가 파묻혀 있는것 같으니까....
구름이 점점 짙게 내려앉았다.
선명한 가셔브룸2 를 보기위해 여기까지 힘들게 올라왔거늘....
아쉽긴 했지만...대신 가셔브룸의 신비스런 기운을 만땅으로 채워가니까....
그리고 배가 아프도록 웃고 또 웃었으니까...그럼 됐지~
기운도 펄펄 살아났겠다...내리막길이니 훨훨 날듯이 하산길을 걸었다.
중간쯤 왔는데, 아쉬웠는 지 이풀도 어느새 따라 나서 카메라 포터와 오고 있었다.
구름이 덮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은 했지만, 그래도 간다.
아마 나도 그랬을 것 같다.ㅎㅎ
가셔브룸 베이스캠프에서 뷰포인트까지 다녀오는데 딱 1시간 10분 걸렸다.
수고한 임티아스에게 약간의 팁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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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때 김치 칼국수를 해먹기로 했는데, 그냥 이풀이 가져온 건조 김치를 넣고 김치국을 끓여먹기로 했다.
펄펄 넘쳐나던 기운이 또 텐트에 들어서 누우니 꼼짝하기 싫다.
그러나 김치국을 내가 안 끓이면 누가 끓일까...
일을 사서 한다. ㅠㅠ
스팸을 넣고 건조김치에 염소탕 국물, 내가 가져간 고추가루와 라면스프를 조금 넣으니 시원한것이 여간 맛이 좋질않다. ㅋ~~
내가 주방으로 가니, 벌써 염소탕을 끓여 놓았길래 염소탕은 내일 기인 일정의 아침으로 든든하게 먹기로 했다.
헤마옛이 좋아 죽는다.
우리 모두가 너무 좋다고...내년에 김미곤팀이 낭가파르밧 등정을 위해 와도 그들 따라가지 않고 우리랑 간댄다. ㅋㅋ
오늘은 작은 짐만을 가지고 와서 식당이 없어 주방에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 식사후 커피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주제는 내일 알리캠프의 일정....
과연 날씨가 이렇게 나빠지는데 알리캠프를 갈것인가 말것인가....였다.
결론은 닥쳐보기로 했다.
알리캠프까지 3스테이지로 15시간이나 걸린다고는 하지만, 우리 모두의 컨디션이 좋고, 중간에 캠프사이트도 하나 있다하니,
만약 모든게 여의치 않으면 중간 캠프에서 자고 바로 콩코르디아로 하산하기로 했다.
구름이 잔뜩 낀 잿빛 하늘에 어느새 보름달이 되어버린 달빛이 뿌옇게 새어나왔다.
5000m의 고지에 날씨가 흐리니 여간 추운게 아니다.
더우기 바람까지 세차다.
잠깐 밖에 서있는데도 너무 추워서 옴짝 할 수가 없다.
텐트에 들어와 추위대비 또 완전무장으로 온 몸을 감싼다.
K2bc에서 처럼 가장 따듯한 옷을 몽땅 다 껴입고, 거기에 털모자, 털양말,우모복까지 입고...
핫팩 배와 등에 붙이고, ,뜨거운 물을 가득 담은 1리터들이 병 2개를 양 겨드랑이에 껴고 누우니 금새 추위는 달아나 버렸다.
벌써 9시 10분이다.
빨리 자자.
내일 늦어도 3시반에는 일어나야한다.
아침식사가 5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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