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글들.../클럽발코니....

[BALCONY Friends] 프라하, 모차르트의 도시①

나베가 2014. 10. 16. 00:30

 

 

대학교 1학년때의 일이다. 어쩌다보니 학교 국제어학원의 동유럽 출신 학생들과 강제우정(?)을 쌓을 기회가 생겼다. 그들은 체코, 폴란드, 러시아 등지에서 온 학생들이었는데 그 중 한 명의 수첩엔 모스크바에서 같이 공부했던 북한 학생들의 주소와 연락처도 적혀 있어 나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기억인데, 어쨌든 당시의 나는 그들에게 약간 무관심했고 심드렁했다. 태어나서 외국이라고는 단 한번도 나가본 적이 없던 시절이었고, 내가 아는 그들의 조국에 대한 지식은 클래식 음악가 몇몇이 고작이었다(폴란드하면 쇼팽, 체코하면 드보르작). 게다가 당시 나는 ‘그래도 우리나라가 니들보다 잘 살잖아’라는 식의 촌스러운 우월감까지 갖고 있었다. 여튼 세월이 흘러 그들의 조국 땅을 한번씩 다 다녀온 지금은 괜실히 이 친구들이 그리워진다. 다들 지금쯤 어디서 무얼하고 지낼까.

이들 중에 프라하에서 온 J가 있었다. 그는 나보다 7살이나 많은 ‘아저씨’였는데 이 까마득한 선배뻘이 나를 스스럼없이 친구로 대해주는 것부터 큰 문화충격이었다. 그는 국제촌놈인 나를 교화(?)시키려고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는데, 프라하의 역사와 문화를 나름 진지하게 설명해줬다. 그러나 역시 내게는 별무소용이었다. 그건 저기 이탈리아 땅끝마을 람페두사섬의 어부에게 뉴욕 5번가 트럼프 타워의 화려함을 설명해주는 것과 유사한 일이다. 어디 근처라도 가봤어야 흠모라도 할 것 아닌가.

그러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도 다녀온 후 3년치 장교 복무의 댓가로 얻어낸 퇴직금을 탈탈 다 털어 프라하로 건너갔다. 아니 정확히는 독일 동부에 자리를 잡았는데, 뭔가 교통비가 덜 들고 유명세도 있는 주변도시를 캐스팅하다보니 프라하가 딱 걸렸다. 그리고 지루한 야간 기차여행을 견대내고는 드디어 프라하 중앙역에 도착했다. 거기서 조금만 걸으면 바츠라프 광장이 나온다. 광장 앞에 서자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그건 위대한 도시였다. 따로 무슨 설명이나 역사적 변설이 필요없었다. 눈 앞에 펼쳐진 물리적 증거만으로도 이곳은 유럽 최고 도시 중의 하나임이 확실해보였다. 아, J가 내게 말하려던 게 이것이었구나....!

 


 

(프라하 역사의 살아있는 증인 바츨라프 광장의 모습)


프라하는 엄연히 ‘국제도시’다. 체코 최고의 성군으로 숭앙받는 카를 4세는 슬라브가 아니라 독일계이고, 프라하가 낳은 세계문학의 별 프란츠 카프카 또한 독일어로 글은 쓴 오스트리아계 유태인 작가였다. 원래 이 도시는 합스부르크 제국이라는 다민족 제국의 일원이었고 그 제국 속에서도 가장 빛나는 별 중의 하나였다. 단일민족국가의 역사를 지닌 우리로서야 이들의 복잡한 다중 정체성을 이해하기 힘들지만 어쨌든 굴곡 있고 복잡한 역사 덕분에 프라하는 슬라브적인 고유성과 합스부르크 비엔나의 국제적인 세련미를 함께 품은 도시가 되었다. 모차르트도 이런 프라하를 너무나 좋아했다.

그의 교향곡 중에 제38번은 부제가 ‘프라하’다. 당시 제국의 수도 비엔나에서의 모차르트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이었다.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고, 심지어 무관심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러나 프라하는 달랐다. 이 도시는 언제나 이 천재에게 무한의 환호와 찬사를 보냈는데, 특히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프라하시 전체를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프라하의 명물 ‘마리오네트 극장’이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를 공연하고 있다)


이 기념비적인 승리에 도취된 모차르트는 1787년 1월 기어이 이 도시를 방문한다. 아마 그해 겨울도 부슬대는 보드라운 눈이 프라하 시내를 장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등장에 열광하는 프라하 시민들을 위해 모차르트는 특별 콘서트를 마련했고, 그때 바로 이 곡 제38번 교향곡을 연주했다.

‘프라하 교향곡’은 3악장짜리 심포니다. 아기자기함과 우수어린 멜랑콜리, 장중함을 함께 갖춰 모차르트 음악의 진수를 보여주는 명곡인데, 특히 <피가로의 결혼>에 등장하는 주요선율을 차용하여 듣는 이의 흥미를 자아낸다. 이건 ‘피가로’에 유달리 열광하던 프라하 청중들을 위한 팬서비스였을까. 오늘 모차르트의 교향곡을 들으며 우리의 프라하 여행을 시작해보도록 하자.

 Mozart Symphony No 38 K 504 D major Prague, Karl Böhm Wiener Philamoni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