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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디토씨의 음악여행수첩]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

나베가 2014. 10. 14. 00:30

 

 

친절한 디토씨의 음악여행수첩①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
해마다 부활절 주간이면 생각나는 땅 그리고 음악이 있다. 교회를 다니는 것도 아닌데 이 시절을 유달리 챙기는 이유는 사실상 이 음악 때문일 것이다. 그건 이탈리아의 작곡가 피에트로 마스카니가 남긴 단 하나의 걸작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Cavalleria Rusticana>다.

긴 이름의 제목이지만 풀어보면 ‘촌스런 기사도’라는 뜻이다. 이탈리아 최남단의 섬 시칠리아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서 치정사건이 발생하고 남자 두 사람이 결투를 벌이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촌스럽다. 약간의 경멸과 시칠리아 특유의 우울한 숙명주의를 품고 있는 이 타이틀은 시칠리아 태생의 대작가 조반니 베르가의 원작에서 그대로 따온 것이다.

오페라는 단막이고 한 시간을 약간 넘어가는데, 어느 한 소절 버릴 곳 없이 참으로 아름답다. 그러나 다 포기하고 딱 한 곡만 택하라면 역시나 인터메쪼 신포니코(Intermezzo sinfonico), 즉 간주곡일 수 밖에 없다.

간주곡은 오페라의 갈등이 극한까지 치달아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 그러니까 무대 위의 모든 아티스트와 객석의 관객들이 그야말로 한 덩어리가 되어 심박수가 최고도로 올라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스윽’하고 등장한다.

한낮(mezzogiorno)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태양이 작렬하는 남이탈리아. 그 중에서도 가장 남단에 위치하여 북아프리카와 딱 붙어 있는 시칠리아는 끓어오르는 태양이 대지와 하늘의 모든 수증기를 태워버리는 곳이다. 그런데 4월만 되면 시칠리아의 오렌지인 ‘아란챠 로사’가 알알이 익어가고, 아몬드 나무에서는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바싹 마른 대지 위로 지중해 특유의 짭쪼름한 공기를 뚫고 희미한 미풍이 연인의 속삭임처럼 달큰하게 불어오는 것도 바로 이 시절이다.


 

(해마다 부활절 즈음이면 시칠리아의 대지 위로 뜨거움을 달래주는 달큰한 오렌지 향기가 피어오르곤 한다.)
사실 간주곡은 이 계절 이 봄날의 설래는 미풍과도 같다. 그건 작은 속삭임이요 부드러운 탄식이지만 이내 우리의 가슴을 시리게 만든다. 무릇 지중해에서 가슴 앓이를 해보지 않은 자와는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라 했던가. 마스카니는 이 짧은 관현악 하나로 지중해의 그 가슴시린 비원을 절절히도 표현해냈다.

 

(주세페 시노폴리 지휘, 필하모니아 관현악단)
예민한 감성의 지휘자로 유명한 주세페 시노폴리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태생이다. 평소 높은 지성과 치밀한 분석력이 뒷받침된 악곡 해석으로 유명하지만, 그가 빚어내는 간주곡의 애절함은 과연 이 남자가 이탈리아 사람임을 일깨워준다. 매년 이맘때면 챙겨듣는 연주다.

 

 

(시칠리안 바로크는 21세기의 가장 위대한 재발견이다. 시칠리아 노토의 대성당은 시칠리아식 바로크 건축의 진수로 평가받는다.)

시칠리아 팔레르모의 마시모 극장은 벌써 내년도 스케줄을 발표했다. 4월에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공연한다는데, 이곳 태생의 위대한 현대화가 레나토 구투소(Renato Guttuso)가 남긴 1974년 무대 스케치를 리바이벌 할 것이라고 한다. 나른한 분위기의 시칠리안 바로크 건축물 사이로 내년에도 다시금, 어김없이 이 간주곡이 그 대지 위로 울려 퍼질 것이다.

(다음 주는 북이탈리아 밀라노의 그랜드 호텔로 떠납니다. 그 곳의 한 작은 방에서 탄생한 또 하나의 명곡 이야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