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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디토씨의 문화여행노트] 드레스덴③ - 성모, 드레스덴에서 부활하다

나베가 2014. 10. 12. 00:30

 

 

 

드레스덴을 처음 찾았을 때부터 괜실히 눈에 밟히는 건축물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프라우엔키르헤(Frauenkirche), 즉 성모교회였다. 작은 덩치에 비해 돔이 무척이나 큰 가분수의 외모에, 더욱 이상한 건 구시가지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괜히 이 교회만이 환한 백색으로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깊은 사연을 깨닫게 된 건 조금 시간이 지나고서 였다. 2차 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의 겨울. 나치 독일의 전세가 기울고 연합군측의 승리가 확실시 되는 상황에서 영국과 미국의 공군 항공대는 독일 주요도시를 중폭격기로 초토화시키는 작전을 감행한다. 함부르크와 베를린 외곽, 뮌헨 등 군수공장이 잔뜩 몰려있던 전략도시가 1차 목표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연합군은 공장이나 군부대가 없는 쾰른, 드레스덴에도 폭탄을 비오듯 퍼부었다. 말인즉슨, ‘천년제국의 정신적 수도를 초토화시켜 독일 놈들의 기를 확실히 꺾어버리겠다’는 것이었다.

특히 영국 공군은 전쟁 초기 영국 주요도시에 퍼부어진 나치의 무차별 야간폭격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다. 운명의 1945년 2월 13일. 영국의 랭카스터 폭격기 편대가 갑자기 기수를 드레스덴으로 돌려 무차별적인 폭격을 퍼붓기 시작한다. 이 평화로운 문화도시에 고성능 폭약과 소이탄 등이 비오듯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다. 단 몇 시간만에 2만 여명의 드레스덴 시민이 사망하고, 시가지는 완전히 잿더미로 변했다. 종전 14주를 남겨놓고 자행된 이 대규모 공습은 엄청난 분노를 일으켰으며, 심지어 종전 후 승전국인 영국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대사건이었다.

 

 


 

(연합군의 폭격으로 기둥만 남은 성모교회의 참혹한 모습)

드레스덴 시민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기 위해 성모교회를 파괴된 그 모습 그대로 보존했다. 또한 불타고 무너져버린 성모교회의 돌과 벽돌조각을 하나씩 주워 모아 돌들의 위치를 기록하고 거기에 번호까지 매겨 별도로 보관했다. 동서독 통일 후 각계에서 성모교회 재건사업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고, 곧 국제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해외의 경우 이른바 ‘가해자’인 영국에서 가장 많은 성금이 답지했다고 한다. 결국 여러 해 동안의 치열한 노력 끝에 성모교회는 2005년 옛 모습 그대로 다시 부활했고, 그때의 재건기념 음악회 실황이 영상과 음반으로 남아 있어 간접적으로나마 그날의 감동을 느껴볼 수 있다.

 


 

(성모교회 내에서 열린 음악회의 모습)

 

 

 

(멘델스존 오라토리오 <파울루스>, 모차르트 <엑슐다테, 유빌라테> 외.
드레스덴 프라우엔키르헤 특별음악회 실황)

이후 드레스덴을 찾아 성모교회를 올려다볼 때마다 묘한 감회에 젖곤 한다. 완전히 잿더미가 된 교회를, 남은 벽돌조각 하나하나까지 다 챙겨 모아 두었다가 반세기가 지난 뒤에 완벽한 모습으로 재건하는 독일인들의 그 집념과 차분함. ‘전범국 나치 독일과 승전국 영국’의 관계를 뛰어넘어, 인류애의 관점에서 영국인들이 먼저 사과하고, 독일인들은 차분히 전쟁의 참혹함을 되새기며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그 성숙된 모습들.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들은 왜 이토록 사려깊은 것인가. 약간은 부러움이 뒤섞인 경외감으로 ‘드레스덴의 영혼’과도 같은 성모교회를 우러러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