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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디토씨의 문화여행노트] 드레스덴④ - 드레스덴의 천사들

나베가 2014. 10. 13. 00:30

 

 

 

지난 2012년의 일이다. 바티칸 시국과 독일 정부는 한 미술작품의 제작 500주년을 기념하는 우표를 공동발행했다. 그 특별한 우표의 주인공은 드레스덴 고전회화관(Gemäldegalerie Alte Meister)에 걸려있는 라파엘로의 ‘시스틴의 성모’였다.

 

 


 

(드레스덴을 대표하는 회화작품인 라파엘로의 <시스틴의 성모>)


드레스덴이 아무리 ‘엘베강변의 피렌체’(Elbflorenz)로 불린다지만, 피렌체 출신의 라파엘로가 드레스덴까지 와서 이 그림을 그렸을 리는 없다. 사연은 이렇다.

이 작품은 원래 1512년 라파엘로가 북이탈리아 피아첸차(Piacenza)에 있는 당시 교황 율리우스 2세 가문의 예배당을 위해 그린 그림이다. 지금 관점에서야 이해하기 힘들지 몰라도 당시 교황은 서유럽 세계의 정신적인 지도자임과 동시에 이탈리아 중부에 실제 영토를 가지고 있었던 ‘교황령’의 세속군주 역할도 병행했었다. 실제로 율리우스 2세도 수차례 직접 갑옷을 입고 전쟁터에 나가 베네치아 공화국과 영토 탈환전을 벌였다. 여하튼 이 와중에 에밀리아-로마냐 주 북쪽의 피아첸차가 자발적으로 교황의 편에 서기로 결정한다. 이에 감동한 교황은 라파엘로에게 피아첸차를 위한 아름다운 회화 한 점을 주문했으니, 곧 그 작품이 피아첸차의 베네딕토 수도원에 하사된 ‘시스틴의 성모’이다.

이후 세월이 한참 흘러 작센 왕국의 전성기인 18세기가 도래한다. 1754년, 당시 작센의 선제후이자 폴란드 왕이었던 아우구스트 3세가 거금을 들여 이 작품을 드레스덴으로 가져 온다. 금새 라파엘로의 그림은 독일 낭만주의자들의 커다란 예술적 모티브가 되었다. 종래의 성모자(聖母子)라하면 순종적이고 차분한 인상으로 표현되는 것이 주류였는데, 여기서 성모와 아기 그리스도는 정면을 당당히 응시하며 대단히 의지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부드러운 표정 속에서도 결연한 태도를 보이는 성모가 눈길을 끈다. 일부 학자들은 그래서 아예 이 그림을 페미니즘적인 관점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괴테도 이 작품에 열광한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그림 하나로 온전히 하나의 세계, 예술가가 만들어낸 지극히 완전한 세계가 이루어졌으니, 이 그림을 창조한 사람은 이것 말고 더 그린 것이 없더라도, 이 하나만으로도 필히 불멸의 존재가 되리라!"

그러나 유명한 작품일수록 겪게 되는 운명은 모진 법인가 보다. 영미 연합군의 드레스덴 대폭격에서도 살아남았던 이 그림은 2차 대전이 끝나자 점령군은 소련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 그래서 1945년 드레스덴을 떠나 모스크바 푸시킨 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긴다. 동독의 간곡한 설득이 있었을까, 혹은 뭔가 모종의 정치외교적인 딜이 있었던 것일까. 1955년 ‘시스틴의 성모’는 다시 드레스덴에 반환되어 오늘에 이른다.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답게 그림 곳곳에 도상학적 해석이 필요한 상징들이 숨어 있다. 좌측의 남자는 이 그림의 주문자인 율리우스 2세이며, 오른쪽은 피아첸차의 수호성인인 성녀 바르바라다. 따지고 들자면 한달 내내 써내려갈 이야깃거리들이 그림 한 장 안에 잠들어 있지만, 사실 미술사학자가 아니라면 별로 관심있게 보지도 않는다. 주문자인 교황의 이야기, 성모자의 특별한 모습들, 그림 속의 각종 도상들...글세, 우리의 머리를 어지럽히는 그런 말들보다 우리의 눈은 당연히 그림의 맨 아래, 천진난만한 그 천사들. ‘푸티’(Putti)로 향하게 마련이다.

 


 

(서양회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푸티의 모습)


푸티는 푸토(Putto)의 복수형이다. 푸토는 르네상스기에 유행했던 아기상 혹은 아기천사상을 말한다. 라파엘로의 이 그림에도 귀여운 아기천사(Putti)들이 세상 근심 다 잊어버리고 제멋대로의 포즈로 위를 응시하고 있다. 어느 커피전문점 로고의 모티브가 될 정도로 유명한 이미지이며, 실제로 드레스덴 박물관 측에서도 그림의 위쪽은 잘라버리고 아래의 천사상 이미지만따서 홍보할 정도로 이 도시의 슈퍼스타(?)들이다.

하긴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그림을 자기 가문의 세속영지로 내려보낸 율리우스 2세나, 시골구석 피아첸차의 그림을 얼렁뚱땅 드레스덴으로 넘겨온 아우구스트 3세나, 이걸 또 굳이 모스크바로 가져간 소련이나 - 모두 다 세속의 때가 너무 묻어 있어 일일이 되새김질하기에는 속이 편치 않다. 차라리 인간들의 속된 계산과는 상관없이 ‘똘망똘망’ 맑은 눈으로 어딘 가를 응시하는 두 명의 천사들이 우리에게 참된 위로를 전해주는 듯하다. 이들이야말로 드레스덴을 대표하는 천사들일 것이다.

 

(‘시온의 딸’[6분3초부터], 소프라노 막달레나 코제나, 바리톤 토마스 햄슨, 드레스덴 성십자가 소년합창단)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드레스덴 성십자가 소년합창단)

‘천사’ 이야기가 나왔으니 드레스덴 성십자가 소년합창단(Dresden Kreuzchor)도 떠오른다. 라이프치히의 성토마스 합창단 등과 함께 독일-오스트리아 소년합창단의 전통을 창시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소년합창단 중 하나이다. 그들의 순수한 목소리야말로 참으로 천사를 닮아있지 않은가. 지금은 전 세계 오페라하우스를 누비는 세계 최고의 베이스 르네 파페(Rene Pape) 또한 이 합창단에서 노래를 했었다. 그들의 노래소리를 들으며 라파엘로의 그림이 주는 안온한 위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