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 2014년)

서울시향/로맨틱 라흐마니노프/2.14.금/예술의 전당

나베가 2014. 2. 14. 00:30

 

 

다큐멘터리 영화 '라비니아의 귀향' 주인공인 하피스트 라비니아 메이어르가 서울시향 플루트 수석 박지은과 함께 모차르트 <플루트와 하프를 위한 협주곡> 협연자로 나서게 됩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메이어르는 두 살 때 네덜란드로 입양됐으며, 2009년 내한연주 기간 중 친부모를 만나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최근 데카와 전속계약을 맺은 그의 한층 폭넓은 활약이 기대됩니다. 또한 서울시향 아르스 노바 시리즈와 익스플로러 시리즈로 한국 팬과 친숙한 스테판 애즈버리가 지휘대에 섭니다. '비교적 온건한' 낭만주의 후기의 대작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을 들려줍니다. 이 곡은 축약된 형태로 드문드문 연주되다 1970년대 앙드레 프레빈 등의 노력으로 재평가되면서 뒤늦게 인기 레퍼토리로 진입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프로그램]
 
야냐체크: 신포니에타
Janacek: Sinfonietta
모차르트: 플루트 & 하프 협주곡
Mozart: Concerto for Flute & Harp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Rachmaninoff: Symphony No. 2
 
[프로필]
 
지휘 스테판 애즈버리  Stefan Asbury, conductor

 


상상력 넘치는 프로그램, 현대음악에 대한 열정적인 옹호로 이름 높은 스테판 애즈버리는 전세계 주요교향악단, 앙상블, 페스티벌이 즐겨 초청하는 지휘자이다. 2007년부터 타피올라 신포니에타의 협력 아티스트였던 스테판 애즈버리는 2001년부터 2005년까지 리믹스 앙상블 카사 다 무지카 포르토의 초대 음악감독으로서 신작을 위촉하고, 재즈, 영화, 음악극을 혁신적으로 혼합한 프로그램으로 주목받았다. 1995년 이후 탱글우드 뮤직센터의 교수진으로 일하였으며 지휘 등의 주요 직책을 맡고 있다. 미국, 유럽, 아시아, 호주에서 애즈버리는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런던 심포니,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쾰른 서독일 방송교향악단,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토리노 RAI 교향악단, 빈 방송교향악단 등을 지휘해왔으며, 뮌헨 비엔날레, 노르망디 가을 축제, 빈 모데른, 빈 축제주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베니스 비엔날레 등에 출연하였고, 해리슨 버트위슬의 <앤젤 파이터>를 2010년 5월 라이프치히 바흐 페스티벌에서 초연하였다. 2010~11년 시즌에는 시카고에서 프로코피예프 <로미오와 줄리엣>을 마크 모리스 댄스 그룹과 협력하여 지휘했으며 함부르크 북독일 방송교향악단, 서울시향,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들과도 다시 지휘했다. 또한 진은숙 작품의 탁월한 해석자로서 바비컨 센터에서 진은숙 작품을 지휘했으며,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에서 여왕의 날 콘서트를 지휘했다. 오페라 분야에서는 브리튼의 <한여름밤의 꿈>을 칼스루에 음대에서 지휘하며, 존 애덤즈의 <꽃 피는 나무>를 퍼스 아츠 페스티벌에서, 올리버 너센의 <괴물들이 있는 곳>을 탱글우드에서, 볼프강 림의 <야콥 렌츠>를 빈 축제주간에 지휘했다. 또한 반 블리멘의 신작을 브뤼셀 라 모네에서 초연하게 된다. 애즈버리는 DG레이블로 진은숙의 작품을 녹음하였으며,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과 녹음한 조너선 하비의 음반은 '음악의 세계 쇼크상'을 수상하였고 서독일방송교향악단과 녹음한 그리제의 '음향의 공간' 전작 녹음은 독일 비평가상을 수상했다. 또한 베를린 도이체 심포니와 윤이상의 작품을, 앙상블 소스페소와 엘리엇 카터의 작품을, 버밍엄 현대음악그룹과 필랍 캐시언의 음악을, 무직파브릭과 레베카 손더스의 음악을 녹음하였다.
 
하프 라비니아 메이어르  Lavinia Meijer, harp

 


'라비냐 메이예르는 절정의 비르투오시티로 연주하며, 감미로운 음색을 보여준다. 저음역에서 댕댕거리지 않고, 고음역에서 건조해지지 않는다.' (클래식스 투데이, 2008. 11)
세계 무대에서 떠오르는 스타 하피스트 라비냐 메이예르가 지난 2012년에 이어 두 번째 서울시향의 무대에 선다. 네덜란드에 입양된 한국 출생의 아티스트로 한국과는 남다른 인연이 있는 라비냐 메이예르는 위트레히트와 암스테르담 음악원에서 에리카 바르덴부르크를 사사하고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전세계에서 하프 연주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네덜란드 하프 콩쿠르 1위, 브뤼셀 국제 하프 콩쿠르 1위, 빈 국제 하프 콩쿠르 2위, 미국 국제 하프 콩쿠르와 이스라엘 국제 하프 콩쿠르 3위에 입상하였으며, 미스피에르손 상, 로열 콘세르트허바우의 브리덴크란스 상을 수상하였고, 볼레티-뷔토니 상도 받았다. 2009년에는 뛰어난 네덜란드 음악가에게 주는 네덜란드 음악상을 수상하였다. 카를로스 미칸스, 야콥 테르 벨드하위스, 로데리크 데 만, 가렛 번즈, 폴 패터슨 등의 작곡가가 그에게 작품을 헌정하였으며 전자음악, 극음악, 재즈 등 클래식 레퍼토리 외에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고 있다. 야나 부스코바, 이사벨 모레티, 다프네 보덴, 나탈리아 샤메이바, 마리아 그라프, 스카일라 캉가, 수전 맥도널드 등 유명 하피스트의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하였으며, 톤 코프만, 아너 빌스마 등의 거장도 사사하였다. 그는 네덜란드 라디오 체임버, 헤이그 레지덴티, 콘세르트허바우 체임버 오케스트라, 코리안 심포니 등과 협연하였으며 2007년 카네기홀 무대에 데뷔하였다. 채널 클래식스와 계약을 맺고 출시한 '디베르티스망' 음반에 대해 <클래식스 투데이>는 '단 한 장의 하프 솔로 앨범을 산다면, 바로 이 음반'이라고 평하며 연주와 음질 모두에 최고점수를 부여하였다. 두 번째 음반 '비전'은 브리튼, 패터슨, 번즈, 윤이상, 다케미츠의 곡을 수록하였으며, 최근에는 슈포어, 포레, 생상스 등을 수록한 세 번째 음반 '환상곡과 즉흥곡'이 발매되었다.
 
플루트 박지은  Gloria JeeEun Park, flute

 


음악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탁월한 음악성, 파워풀한 연주력으로 평가받고 있는 플루티스트 박지은은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수석주자, 국내 최초의 목관 악기 야마하 아티스트로 활동함과 동시에 한양대 겸임교수로서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국내에서는 음협 콩쿠르, 가톨릭 콩쿠르, 이화 경향 콩쿠르, 조선일보 콩쿠르, 월간음악 콩쿠르, KBS 서울 신인음악 콩쿠르 관악부문 등에서 1등으로 입상하였으며, 돕스 페리 여성 클럽 콩쿠르, 야마하 어워드, 허드슨 밸리 뮤직 클럽 콩쿠르 1위, 뉴 인터내셔널 뮤직 페스티벌 콩쿠르 대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는 물론 해외 유수 콩쿠르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은 연주자이다. 또한 아티스트 인터내셔널 어워드의 뉴욕 데뷔 어워드의 우승자로서 카네기홀 뉴욕 데뷔 리사이틀을 성공리에 가진 바 있다. 예원학교 재학 중 도미하여 줄리어드 예비학교와 맨하튼 음대 학사학위, 예일대학교 음악대학원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2003년 귀국과 동시에 충남교향악단의 수석 주자로 활동했다. 1996 National Band of America Section Leader와 수석, 뉴 인터내셔널 뮤직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내셔널 오케스트라 인스티튜트 수석을 역임하였고, 지니 백스트레서, 랜섬 윌슨, 린다 체시스, 보니 리히터를 사사하였다.

Rachmaninov, Symphony No.2 in E minor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Sergei Rachmaninov

1873-1943

Eivind Gullberg Jensen, conductor

Radio Filharmonisch Orkest

 

Eivind Gullberg Jensen conducts Rachmaninov's Symphony No.2

아이빈 굴베르그 옌센(1972~ )은 노르웨이 출신의 젊은 지휘자로 최근 인기가 치솟고 있으며, 장차 오슬로 필을 이끌어가기를 노르웨이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유연하고 균형 잡힌 지휘가 일품입니다. 현재 하노버 라디오 필하모닉의 수석지휘자로 맡고 있습니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보통 피아니스트 또는 피아노 음악 작곡가로 기억된다. 물론 그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후기 낭만주의 비르투오소 피아니즘의 연장선상에서 현란한 연주 기교가 부각되는 피아노 음악을 다수 남겼다. 오늘날 공연장에서 주로 접하게 되는 그의 작품들을 꼽아보면 이런 이미지는 더욱 굳어진다. ‘전주곡’, ‘회화적 연습곡’, ‘피아노 소나타 2번’, ‘피아노 협주곡 2번’, ‘피아노 협주곡 3번’,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등 대개 피아노 독주곡 내지는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 작품이다.

반면에 라흐마니노프가 관현악 분야에 남긴 대작들은 오랫동안 무시당하거나 폄하되어 왔다. 다소 무모했던 교향곡 1번은 차치하더라도, 가장 잘 알려진 교향곡 2번도 과거에는 축약된 형태로 연주되기 일쑤였고, 만년의 수작인 교향곡 3번은 아직도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들어 마지막 대작인 ‘교향적 춤곡’에 대한 관심이 다소 높아진 것이 그나마 다행이랄까? 사실 라흐마니노프는 연주가이기보다는 작곡가이기를 원했던 인물이었기에 작금의 상황은 부당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 교향곡 2번 E단조는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의 포부가 얼마나 원대했는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위기 속에서 거둔 결실

라흐마니노프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교향곡 2번 E단조는 제1차 러시아 혁명 직후에 작곡되었다. 1906년 봄, 귀족이자 지주였던 라흐마니노프는 국내 정세에 불안을 느껴 아내와 어린 딸을 데리고 러시아를 잠시 떠나 있기로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탈리아로 갔다가 여름에 독일의 드레스덴으로 거처를 옮겨 그곳에서 3년 동안 지내게 된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주의 또 다른 이유는 작곡할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이었다. 그 직전까지 그는 성공한 음악가로서 너무도 바쁜 나날을 보냈었다. 1901년에 발표한 재기작 ‘피아노 협주곡 2번’이 글린카 상을 수상하면서 작곡가로 인정받기는 했지만, 그 이전부터 부각된 지휘자로서의 역량은 그를 작곡보다는 연주 활동에 얽매이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영광스런 볼쇼이 극장의 지휘자 자리에까지 올라 두 시즌을 성공리에 치러냈으나 정치적인 이유로 퇴임 압력을 받게 되자 그는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연주자로서뿐 아니라 작곡가로서의 야심을 가지고 있었던 라흐마니노프.

드레스덴에서 그는 원했던 대로 작곡에 매진하여 실로 풍성한 결실을 거두었다. 교향곡 2번을 필두로 ‘피아노 소나타 1번’, 걸작 교향시 ‘죽음의 섬’, 미국 순회연주를 위해 준비한 ‘피아노 협주곡 3번’ 등을 완성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교향곡 2번’의 의미는 각별했다. 과거 ‘피아노 협주곡 2번’이 그랬던 것처럼, 현실에서의 불안과 위기를 예술적으로 극복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작곡 불능 상태에까지 빠지게 만들었던 ‘교향곡 1번’의 실패 이후 실로 10여 년 만에 재도전한 교향곡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작품이 그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둔 후 다시 한 번 글린카 상의 영예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그는 명실상부 차이콥스키의 후계자이자 러시아를 대표하는 교향곡 작곡가의 반열에 올랐던 것이다.

Jansons conducts Rachmaninov's Symphony No.2

Mariss Jansons, conductor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2010.01.31

도도한 흐름, 광활한 스케일, 그리고 긍정적 전망

이 교향곡은 라흐마니노프의 예술성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무렵의 작품이다. 대하(大河)와도 같은 도도한 흐름과 대양(大洋)과도 같은 광활한 스케일이 유장한 호흡 위에서 폭넓게 펼쳐지는 첫 악장은 그가 품고 있던 작곡가로서의 야망과 상상력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음을 증언하며, 관현악의 화려하고 변화무쌍한 색채와 박진감 넘치는 전개가 일품인 스케르초 악장은 그의 뜨거운 열정과 진취성을 표상한다. 또 슬프도록 아름다운 서정성이 흘러넘치는 완서악장은 그 특유의 애잔하고 감미로운 선율미의 극치를 보여주며, 힘찬 행진곡으로 출발하는 종악장은 절묘한 구성미와 눈부신 클라이맥스를 아우르고 있다. 그의 멘토였던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만큼이나 유려하고 애절하며 강렬하지만, 그보다는 한결 강인하고 의연하며 무엇보다 긍정적인 전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곡은 진정한 ‘거인의 교향곡’이라 하겠다. 

1악장: 라르고 - 알레그로 모데라토

라르고의 서주로 시작되는 장대한 악장. 특히 서주는 장장 한 시간에 걸친 대하드라마의 초석에 해당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첫머리에서 첼로와 베이스로부터 흘러나오는 모토 주제가 악장 중간 중간에 다시 등장해서 클라이맥스의 구축에 기여할 뿐 아니라 이후의 악장들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울러 주부에 등장하는 주요 주제들도 이 모토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이 악장의 흐름은 때론 사색적이고 때론 신비로우며 무엇보다 드라마틱하다. 유장한 호흡 위에서 이러한 면면들이 유유히 번갈아 부각되는 과정을, 고도의 집중력과 끈기를 가지고 거시적으로 조망할 때 비로소 이 곡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종결부에서 새롭게 부각되는 또 하나의 주제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은 거대한 대양과 같은 큰 스케일의 웅장한 감동을 준다.

2악장: 스케르초. 알레그로 몰토

앞선 악장에서 누적된 긴장과 피로를 일거에 날려버리는 활기찬 스케르초 악장이다. 현이 새기는 경쾌한 리듬 위에서 호른이 영웅적인 주제를 연주하는가 하면, 앞선 악장과 연관된 감성적인 선율이 등장하기도 한다. 또 중간에는 긴박하고 기묘하며 자극적인 트리오가 놓여 있다. 다만 전반적으로 무척 흥미진진한 흐름 속에서도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진지한 표정은 지속되는데, 특히 말미에 연주되는 금관에 의한 코랄은 그가 자주 인용했던 ‘디에스 이레’(진노의 날) 선율과 관련을 맺고 있다.

3악장: 아다지오

라흐마니노프의 멜로디 메이커로서의 재능이 최고조로 발휘된 호사스럽고 감동적인 악장이다. 클라리넷에서부터 마술처럼 흘러나와 면면이 이어져나가는 주제선율은 차이콥스키의 ‘비창 교향곡’에 등장하는 칸타빌레 주제에 버금갈 만큼 황홀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혹자는 ‘설탕과 꿀, 초콜릿으로 뒤범벅된 음악’이라고 불평하기도 했지만, 그 감미로운 선율과 절묘한 흐름은 지휘자와 악단이 깊은 감정을 담아 노래하되 과도한 센티멘털리즘에 탐닉하지 않는 한 듣는 이의 가슴에 잊을 수 없는 감흥과 환상을 새겨놓게 된다. 그런데 그 근원은 역시 첫 악장 서주에 나왔던 모토 주제이다. 다시 말해서 이 악장은 그 모토의 완성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원형은 악장의 말미에서 슬며시 모습을 드러낸다.

4악장: 피날레. 알레그로 비바체

축전적인 피날레 악장. 활짝 개인 배경 위로 위풍당당한 행진곡 리듬, 금관의 힘찬 팡파르, 현의 서정적인 선율 등이 시원스레 부각되며, 발전부에서는 앞선 악장들에서 나왔던 요소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이 모든 요소들이 한 데 어우러지며 화려한 향연을 펼쳐 보이며 찬란한 클라이맥스에 도달하면, ‘거인의 드라마’는 한없이 상승할 것만 같은 분위기 속에서 ‘피아노 협주곡 2번’의 피날레에도 등장했던 단호한 리듬으로 막을 내린다.

 

추천음반

우선 왕년의 명반으로 쿠르트 잔데를링(DG), 유진 오먼디(Sony), 앙드레 프레빈(EMI)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가운데 오먼디는 스테레오 시대 들어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전집을 최초로 녹음한 지휘자로서, 그의 유명한 1959년 레코딩은 다소간의 축약이 있긴 하지만 ‘필라델피아 사운드’를 바탕으로 펼쳐 보이는 찬연한 파노라마가 돋보이는 영원한 고전이다. 아울러 디지털 시대의 대표적 명반인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의 음반(Decca)에서도 로열 콘세르트헤보우 특유의 풍윤한 사운드가 돋보이는데, 특히 완서악장의 농밀한 흐름이 일품이다.

러시아 지휘자와 악단의 음반들 중에서는 마리스 얀손스(EMI)와 미하일 플레트뇨프(DG)가 주목할 만하다. 이 가운데 얀손스가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을 지휘한 음반에는 악단의 강건한 사운드와 견고한 기능미, 지휘자의 탄탄한 조형감각과 늠름한 표현력이 멋진 조화를 이룬 수연이 담겨 있다. 한편 이반 피셔와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음반(Channel Classics)은 기존 명반들과는 사뭇 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한결 여유롭고 담박한 흐름, 정갈한 사운드와 실내악적 앙상블이 두드러지며, 순수하고 자연스런 미감을 지닌 완서악장이 은은하고 진솔한 감명을 자아낸다.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감상실 ‘무지크바움’ 실장과 한국바그너협회 사무간사를 역임했다. 무지크바움, 부천필 아카데미, 성남아트센터, 풍월당에서 클래식음악 교양강좌를 맡고 있다. <객석>, <스테레오뮤직>, <그라모폰>, <라무지카> 등에 칼럼을 기고했고 현재 서울시향 프로그램 노트를 담당하고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클래식 2012.03.21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7650

 

 

 

Mozart, Flute and Harp Concerto K.299

모차르트 플루트와 하프를 위한 협주곡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

 

 

 

모차르트가 스물두 살 때 작곡한 ‘플루트와 하프를 위한 협주곡’은 아마도 그가 남긴 모든 협주곡 가운데 가장 친숙해지기 쉬운 곡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런 유희성 다분한 장르에서는 좀처럼 도달하기 어려운 드높은 예술적 경지에 올라 있어서 ‘신이 내린 작곡가’, ‘음악의 천사’라는 그의 전형적 이미지를 환기시키는 가장 대표적인 명작의 하나이기도 하다.

파리 사교계 분위기가 떠오르는 화사한 작품

이 작품의 스타일은 18세기 후반 프랑스 상류층의 ‘살롱 음악’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이 협주곡이 작곡된 것은 1778년 4월로 추정되는데, 당시 모차르트는 파리에 머무르고 있었다. 답답한 고향 잘츠부르크를 벗어나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 떠났던 이른바 ‘만하임-파리 여행’의 일환으로 그 해 4월 5일 파리에 도착한 모차르트는 그곳의 사교계 인사들과 접촉하면서 프랑스의 수도에서 프로 음악가로 안착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했다. 그 과정에서 모차르트는 오랜 친구인 그림 남작으로부터 아르투아 지방의 영주이자 음악애호가인 드 귄 백작을 소개받았고, 그 백작에게서 새로운 협주곡의 작곡을 의뢰받게 된다.

드 귄 백작은 그 자신이 딸과 함께 연주할 협주곡을 원했다. 백작은 아마추어 플루티스트였고, 모차르트에게 작곡 레슨을 받기도 했던 그의 딸은 하프를 능숙하게 다루었다. 하지만 전문 연주가들은 아니었던 만큼 연주하기에 지나치게 어려워서는 곤란했다. 따라서 독주부는 능숙한 아마추어 연주자라면 큰 무리 없이 연주할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에 맞춰졌고, 전체적으로 파리 사교계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갈랑 풍’(galant style)의 경쾌하고 화사하며 우미한 취향의 곡이 탄생했다. 다시금 ‘맞춤 작곡’의 명수였던 모차르트다운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되었던 것이다. 이 곡은 파리 사교계를 연상시키는 ‘갈랑 풍’의 우미한 곡이다.

하지만 모차르트 고유의 천재가 빚어낸 음률은 듣는 이로 하여금 이 곡을 ‘쉬운’ 작품이라기보다는 ‘세련된’ 작품으로 인식하게 한다. 특히 느린악장에서 들려오는 플루트와 하프의 청아하고 오묘한 대화와 그들을 자연스럽게 받쳐주는 현악군의 절제된 반주에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천상의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이 떠오른다.

한편 복수의 독주악기가 관현악과 어우러지는 이 곡의 편성은 바로크 시대의 ‘콘체르토 그로소’(합주 협주곡)나 작곡 당시 파리에서 유행했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협주 교향곡)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 곡에 교향곡적인 요소는 현저히 약화되어 있으며, 소극적인 오케스트라를 배경으로 두 개의 독주악기가 각자의 존재감을 충분히 드러내면서 서로 부드럽게 어우러진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고전풍 협주곡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당시에는 플루트도 하프도 오늘날과 같은 기능을 아직 갖추지 못한 불완전한 악기였다. 그럼에도 모차르트는 두 악기의 개성과 매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하면서 단아한 관현악의 울림과 자연스럽게 조화시켰다. 작품은 세 개의 장조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 악장 모두에 카덴차를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모차르트가 직접 작곡한 카덴차는 유실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따라서 후대의 작곡가들이나 독주자들에 의한 카덴차가 사용되고 있다.

모차르트는 하프와 플루트가 가진 매력을 최대한 뽑아내 조화시켰다.

Grafenauer/Graf/Marriner/ASMF - Mozart, Flute and Harp Concerto

Irena Grafenauer, flute

Maria Graf, Harp

Sir Neville Marriner

Academy of St. Martin-in-the-Fields

1악장: 알레그로

C장조, 4/4박자. 독주악기와 관현악이 한 데 어우러져 C장조의 펼친화음로 이루어진 화려한 주제를 연주하며 시작되는 이 악장은 당시 파리에서 유행했던 협주곡의 스타일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피아노와 포르테를 오가며 힘을 계속적으로 뺐다가 더했다가 하며 진행하는 수법, 그 흐름을 산뜻하게 이끌어가는 경쾌하고 탄력적인 리듬 등이 두드러진다. 두 독주악기가 빚어내는 정교한 직물 같은 선율의 짜임새가 절묘하기 이를 데 없고, 얼핏 단순한 듯 유창한 흐름 속에서도 은연중에 섬세하게 변화하는 화성들이 다채로운 색채와 분위기를 자아낸다.

2악장: 안단티노

F장조, 3/4박자. 그야말로 ‘천상의 음률’이라고 할 만한 매혹적인 악장. 관악기들은 배제된 채 현악기들만으로 진행되는 오케스트라의 반주 위에서 두 독주악기가 매혹적인 음색으로 긴밀한 대화를 이어나간다. 주로 플루트가 선율을 주도하는 가운데 하프가 그에 다채로운 장식과 보다 깊은 뉘앙스를 가미하는 식으로 진행되며, 오케스트라의 비올라가 두 파트로 분리되어 두 악기를 한층 효과적으로 보조한다. 아울러 이 악장에서는 카덴차의 비중이 매우 크다고 하겠는데, 독주자들의 역량과 더불어 그들의 작품에 대한 견해가 드러나는 장이기 때문이다.

3악장: 론도. 알레그로

C장조, 2/2박자. 가보트 풍의 론도 악장으로, 프랑스적 감성이 가장 두드러지는 악장이다. 전반적으로 나긋하고 상쾌한 흐름 위에서 두 독주악기의 솔로와 앙상블이 때론 평화롭게, 때론 장난스러운 느낌으로 면면히 이어지며, 관현악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활기를 더해준다.

 

추천음반

우선 왕년의 명인들이 남긴 명반들 중에서는 랑팔/라스킨/파이야르, 골웨이/로블레스/마리너 등도 유명하지만, 필자는 슐츠/자발레타/뵘(DG)의 음반을 조금 더 앞쪽에 놓고 싶다. 빠른 악장들에서 슐츠와 자발레타가 선보이는 생기발랄한 표정과 절묘한 직조감, 느린악장에서의 아취 깊은 뉘앙스, 그리고 뵘이 이끈 빈 필의 반주까지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다.

근래의 음반들 중에서는 파위/랑글라메/아바도(EMI)와 갈루아/피에르/안드레아손(Naxos)이 돋보인다. 전자에서는 하프가 다소 소극적인 감이 없지 않지만 파위의 화려한 명인기와 비범한 표현력이 빛나고, 후자에서는 전반적으로 능란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연주와 갈루아가 펼쳐 보이는 다채로운 표현들이 인상적이다.

한편 시대악기 연주들도 경청해둘 필요가 있는데, 그 중 가장 개성적인 아르농쿠르 음반(Warner)의 느린악장에서 볼프와 요시노가 빚어낸 명징하고 오묘한 미감은 특필할 만하다.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 음악 감상실 ‘무지크바움’ 실장과 한국바그너협회 사무간사를 역임하였다. 무지크바움, 부천필 아카데미, 성남아트센터, 풍월당에서 클래식음악 교양강좌를 맡고 있다. <객석>, <스테레오뮤직>, <그라모폰>, <라무지카> 등에 칼럼을 기고했고 현재 서울시향 프로그램 노트를 담당하고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클래식>명곡 명연주 2011.05.25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5387

 

 

모차르트: 플루트 & 하프 협주곡/듣기

http://blog.daum.net/beutiful_life/15710068

 

 

야냐체크의 신포니에타(1926)

 

 

 글 :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연주시간 : 23분>

 모라비아(체코) 동부 출신의 야나체크가 1926년에 작곡한 ‘신포니에타’는 다섯 악장으로 구성된 디베르티멘토 형식의 곡으로, ‘신포니에타(Sinfonietta)’란 통상적인 (후기 낭만파) 교향곡에 비해 간소한 규모나 형식을 취한 관현악곡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이 곡의 악기편성은 제목에 어울리지 않는다. 즉, 정규 편성의 현악・목관・타악 파트들에 더하여 네 대의 호른, 열두 대의 트럼펫, 두 대의 베이스 트럼펫, 네 대의 트럼본, 두 대의 테너 튜바, 한 대의 베이스 튜바로 이루어진 대규모의 금관 파트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 이례적인 작품은 ‘글라골 미사’, 현악 4중주곡 제2번 ‘비밀 편지’와 더불어 야나체크의 ‘만년의 3대 걸작’에 속하는데, 창작 동기는 ‘소콜(Sokol, 체코슬로바키아의 국민체육운동)’과 관련이 있다. 야나체크는 1925년 피세크에서 열린 소콜 체전에 참석했다가 군악대의 연주를 듣고 영감을 받아 이 곡을 쓰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그의 조국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의 결과로 독립을 쟁취한 직후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있었고, 야나체크는 그런 조국에 대한 긍지와 기대를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이 곡에 대해서 “이 시대의 자유민, 그의 영적인 아름다움과 환희, 그의 힘과 용기, 그리고 승리를 향한 투쟁의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곡은 1926년 6월 26일, 바츨라프 탈리히가 지휘한 체코 필하모닉의 연주회에서 초연되었는데, 당시 작곡가는 각 악장에 별도의 제목(괄호 안)을 부여하기도 했다.

제1악장
알레그레토(팡파르)는 25대의 금관과 팀파니의 앙상블로 연주되는 팡파르이다.

제2악장 
안단테(성)는 재빠르게 움직이는 오스티나토(반복음형) 위에서 펼쳐지며, 두 개의 주제에 의한 다섯 개의 변주로 이루어져 있다.

제3악장 
모데라토(여왕의 수도원)는 약음기를 부착한 현악기를 사용한 은밀한 느낌의 곡으로, 야나체크 특유의 오묘한 시적 정취가 물씬 풍긴다.

제4악장 
알레그레토(거리)는 관악기가 중심이 되는 폴카로 출발하여 투티에 의한 스트레타로 마무리된다.

제5악장 
안단테(시청사)는 지속되는 저음 위에서 멜랑콜리한 주제가 전개된 후에, 작품 맨 처음의 팡파르가 다시 나타난 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