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 2014년)

KBS교향악단 제677회 정기연주회

나베가 2014. 1. 23. 00:30

 

 


 


 


 

KBS교향악단 제677회 정기연주회

 

 

                Violin Concerto in D minor, Op.47

시벨리우스 / 바이올린 협주곡

 

Jean Sibelius 1865∼1957

 

핀란드 자연이 낳은 음울한 선율. 핀란드의 자연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이 작품의 독특한 환상적 선율과 풍성한 관현악의 울림에 있을 것이다. 시벨리우스의 음악은 핀란드의 자연에서 탄생한 것이고 그만큼 민족주의 색채가 강하다.


전곡 연속듣기

제 1악장 Allegro moderato 2분의 2박자 D단조 자유스러운 소나타 형식.

독주의 바이올린은 북 유럽적이며 애수에 찬 제 1테마가 연주된다. 그리고 제 2테마는 파곳의 연주로 나타난다. 코다에서는 D단조로 전진하다가 끝나게 된다.


1악장 (Allegro moderato)

 

제 2악장 Adagio di molto 4분의 4박자 B플렛 장조 세도막 형식.


2악장 (Adagio di molto)

 

제 3악장 Allegro ma non troppo D장조 4분의 3박자.

이 악장은 교향곡에서만 맛볼 수 있는 론도 형식의 폴로네이즈풍의 곡이다. 독주 바이올린으로 나타나는 제 1테마와 현악기의 유니즌으로 연주되는 제 2테마가 나타나 재현부를 지나고 코다로 들어간 후 끝난다.


3악장 (Allegro ma non troppo)

 

작품 배경 및 구성

애국적 교향시 「핀란디아」로 잘 알려진 잔 시벨리우스의 주요업적은 7개의 교향곡과 5개의 교향시로 집약된다. 「근대 낭만파음악의 아버지」란 칭호를 듣는 그이지만 개인적 감성을 아기자기하게 묘사한 소품과는 거리가 멀다. 협주곡도 알려진 것은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한 곡뿐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20세기의 훌륭한 바이올린 협주곡들인 바르토크, 스트라빈스키 등의 작품보다 훨씬 인기가 있다.

그 이유는시벨리우스가 남긴 단 하나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으면 우리들은 흔히 문학 작품을 읽을 때 빠져드는 고요와 같은 감상에 젖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즉 이 협주곡은 그 격정적이며 까다롭고 어려운 특성을 뚜렷하게 밖으로 드러내지 않은 가운데 북유럽의 순수한 서정을 담은 아름다운 선율에 감싸여 있는 것이다.

물론 1904년 2월 8일 헬싱키에서 초연되었던 이 협주곡 처음의 악보는 다소 실패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의 작품 평가에 무척 엄격하였던 시벨리우스도 이 곡에 대해서는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였으며 다시 수정을 하여 개정된 작품을 1905년에 새로이 선보였다. 그런데 1903년 처음 작곡된 것돠 1905년에 개정한 것은 모두 버머스터(Willy Burmester)를 위하여 작곡된 작품이었다. 그렇지만 시벨리우스는 이 바이올린 협주곡이 두번이나 무시되는 것에 몹시 불쾌해 있었으며 더욱 훌륭한 연주를 위하여 이 곡은 또 다른 음악가에게 헌정되어졌다.

한편 시벨리우스의 전기작가인 타바시스테르나(Erik Tavaststjerna)는 이 같은 시벨리우스의 행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시벨리우스는 버머스터를 위해서나 또 다른 어떤 바이올리니스트를 위해서 이 협주곡을 작곡한 것이 아니며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하여 이 협주곡을 작곡하였다. 오히려 그는 스스로가 일종의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것과 같은 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또한 그는 멘델스존이나 브람스와는 달리 바이올린 독주의 전문적인 테크닉 문제에 대해서도 다른 바이올리니스트의 충고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따라서 자연스러운 그의 상상력 속에서 그는 바잉로린 협주곡의 독주자로서 자신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협주곡의 노스탤지어와 강한 낭만적인 성격에 대한 훌륭한 설명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는 일찍부터 바이올리니스트로서도 재능을 나타내 보였던 시벨리우스가 바이올린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만든 이 협주곡에 대한 훌륭한 해석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에 전해지는 이 협주곡의 개정판은 1905년 10울 19일 베를린에서 당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하릴(Carl Halir, 1859~ 1909)의 바이올린 독주와 작곡가로서도 유명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지휘에 의해 처음으로 세상에 선보여졌으며 이후 이 곡은 시벨리우스의 대표작일 뿐 아니라 근대 바이올린 협주곡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앨범 내지에서 발췌>

 

시벨리우스 Jean Sibelius 1865.12.8∼1957.9.20

핀란드의 작곡가. 본명 Johan Julius Christian Sibelius. 헤멘린나 출생. 9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15세 때부터는 바이올린과 작곡법을 배워 이 무렵부터 점차 음악적 재능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가족들은 음악가가 되려는 그의 희망을 반대하여 1885년 헬싱키대학에 입학, 법률을 전공하는 사이사이 헬싱키음악원에서 베겔리우스에게 음악이론과 작곡을 배웠다. 그 후 음악을 전공하기 위하여 대학을 중퇴하고 당시 음악원 교수로 있던 명피아니스트 부조니에게 사사하였다. 시벨리우스는 본래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뜻을 품었으나 무대에 서면 상기하는 성격 때문에 연주가를 단념했다는 이야기는 그의 내성적인 성격을 잘 말해 주고 있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정부의 장학금을 받아 베를린(1889)·빈(90)에 유학하고, 빈에서는 브람스를 만나 가곡에 호의적인 평을 받았다. 민족적인 소재를 통속적인 묘사에 빠지지 않고 유럽풍인 지적 묘사로 처리한 그의 작풍은 유학시절에 쌓은 지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92년 모교 헬싱키음악원의 작곡과 바이올린교수가 되고, 작곡면에서는 국민적 대서사시 《칼레발라:Kaleval‍‍‍!a》에 의한 교향시 《크레르보》 《엔사가》, 모음곡 《칼레발라》 등으로 국외에서도 알려지게 되었다. 이어 《투오넬라의 백조》를 비롯한 《4개의 전설》, 교향시 《핀란디아》 《제1교향곡》 등으로 명성을 얻고 1897년에 는 국가에서 종신 연금을 주기로 하여 작곡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아감에 따라 국외로의 연주여행도 많아졌으나, 《제2교향곡》을 완성한 1902년 전후부터 4년간은 귓병으로 고생을 하고 1904년에는 헬싱키 교외의 별장으로 옮겨 여기에서 죽을 때까지 반 은둔생활을 하였다. 24년 《제7교향곡》, 이듬해의 교향시 《타피오라》 이후는 거의 작품이 없고, 뇌출혈로 91세의 생애를 마쳤다. 7개의 교향곡 외에도 많은 교향시·바이올린협주곡 등이 있고, 《핀란디아》 《투오넬라의 백조》 등이 특히 널리 알려졌다.

 

 

Mahler, Symphony No.1 'Titan'

말러 교향곡 1번 ‘거인’

Gustav Mahler

 

“나의 시대는 올 것이다.” 구스타프 말러가 생전에 남겼던 예언과도 같은 이 말은 작곡가 탄생 150주년을 바라보는 이 시점(2010년은 말러 탄생 150주년, 2011년은 서거 100주년이다)에서는 이미 완벽하게 실현된 느낌이다. 예를 들어 그의 교향곡 1번은 이제 베토벤이나 차이콥스키 등 기존의 어떤 인기 교향곡 레퍼토리와도 동등하게, 어찌 보면 더 자주 연주되는 곡이 되었다. 그러나 말러 생전에 이 곡은 지금과 같은 인기를 누릴 수 있으리라는 어떠한 징조도 보여주지 못했다. 도대체 이 곡의 어떤 점이 당시 사람들을 당혹케 했으며, 또 지금의 우리를 매혹하는 것일까?

대실패한 초연... 평생토록 이어졌던 장대한 투쟁의 서막

“말러의 특징적인 모습은 이미 그의 첫 번째 교향곡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후에 만개하게 될 그의 삶의 멜로디, 즉 자연과 죽음에 대한 집착이 이미 이 곡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아르놀트 쇤베르크

말러의 교향곡 1번이 언제 착수된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1884년이나 1885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구상은 1884년 당시부터였을지 몰라도 실제 작곡은 대부분 1888년 초에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렇게 설이 엇갈리는 이유는 말러의 지인들이 남긴 자료의 내용이 상반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이 교향곡이 1888년 3월에 완성되었다는 사실 외에 분명한 것은 없다. ‘완성’이라고 했지만 이 당시 말러가 내놓은 결과물은 지금 우리가 아는 것과는 사뭇 다른 형태였다. 2부로 구성된 교향시의 형태였고, 악장 수도 다섯 개였다. 1889년 11월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초연되었을 때는 ‘장송 행진곡 풍으로’라고 명명된 4악장(현재는 3악장) 외에는 별다른 표제가 없었지만, 1893년 독일 함부르크 연주 때는 각 악장 앞에 표제와 설명이 붙었는데 이 가운데 표제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말러는 천국과 지옥을 빗대 인간의 삶을 노래했다. 그림은 보슈의 ‘쾌락의 동산’.

제1부 - ‘젊은 시절의 추억, 꽃과 과일, 가시덤불의 음악’

          1악장: 끝없는 봄

          2악장: 블루미네(Blumine)

          3악장: 순풍에 돛 올리고

제2부 - ‘인간희극’(Commedis humana)

          4악장: 좌초!

          5악장: 지옥으로부터(나중에 ‘지옥에서 천국으로’로 고침)

그러나 말러는 1896년의 베를린 연주 때부터는 ‘블루미네’ 악장을 곡에서 빼버렸고 표제도 지워버렸다. 단순히 일종의 상징으로서만 제목을 달았던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사람들이 이 표제들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오히려 음악의 이해에 혼란을 빚고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훗날 말러는 이러한 표제들은 “음악이 표현하고 있는 바를 적합하게 나타내지 못하며 (...) 중요한 것은 오직 음악의 느낌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로도 관현악법은 몇 차례 더 수정되었다.

초연은 대실패로 막을 내렸다. 말러는 상당 기간 실의에 빠진 채 지내야 했다. 당시 청중과 비평가들은 말러의 음악어법에 크게 당황하여(곡의 총보를 완성한 직후 말러는 “사람들이 이 곡을 들으면 놀랄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막상 자신의 예측이 들어맞은 데 대해서는 그리 기뻐하지 않았다) 비난을 퍼부었다. “불협화음, 지루한 오르간 포인트, 개개 음 사이의 부조화”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오페라 감독으로서 말러의 거동처럼 불분명하고 모호하다”는 인신 공격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당시 말러의 충격적인 교향곡과 연주를 풍자한 삽화.

하지만 이 교향곡에 대한 가장 신랄한 평은 당시 ‘비평의 교황’으로 오스트리아 음악계에 군림했던 에두아르트 한슬리크(Eduard Hanslick)에게서 나왔다. “우리 가운데 어느 한쪽이 미쳤음에 틀림없지만, 그것은 내 쪽이 아니다.” 한 마디로, 이 곡의 초연은 이후 말러가 평생토록 직면했던 몰이해와의 장대한 투쟁을 알리는 서막이 되었다. 왜 이런 반응이 나온 것일까? 그것은 말러가 자신의 첫 교향곡에서 이미 기존 교향곡 체계에서 벗어나려는 대담한 시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각 악장을 상세히 살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Claudio Abbado conducts Mahler Symphony No.1 'Titan'

Claudio Abbado, coductor

Lucerne Festival Orchesta

2011.08.19

 

음반 가운데는 이 곡에 ‘거인’(Titan)이라고 표제가 붙은 것도 있다. 이 제목은 초연 때 붙은 것으로, 독일의 소설가 장 파울이 썼던 같은 제목의 소설에서 따온 것이라고 전해진다. 그러나 말러는 소설의 내용을 음악으로 옮기려 했던 것이 아니라, 다만 자신의 교향곡이 지닌 대담함을 압축적으로 드러내고자 했을 뿐이다. 비록 훗날의 작품들과 비교하면 다소 미숙한 점도 있지만, 이것이 음악사의 흐름을 바꾼 ‘거인’의 힘찬 첫 발자국에 어울리는 작품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쓸 때 볼프강 슈라이버의 저서 <말러>와 김문경의 <말러>를 참고했다. 말러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께는 좋은 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서양 음악사를 바꾼 ‘거인’의 힘찬 첫 발자국

Leonard Bernstein conducts Mahler Symphony No.1 'Titan'

Leonard Bernstein, conductor

Wiener Philharmoker

1st mov. 00:50- l 2nd mov. 16:23- l 3rd mov. 25:20- l 4th mov. 35:37-

1악장: 느리게. 질질 끌듯이. 자연의 음향으로 - 처음에는 매우 차분하게

D장조 4/4박자이다. 일단 서주를 지닌 소나타 형식에 가깝지만 엄밀하게 전통적 형식을 따른 것은 아니다. 서주에서는 7도에 걸친 유니슨(같은 음높이를 동시에 울리는 것으로 노래할 때 제창에 해당하는 연주 방식)으로 진행되는 현악기의 오르간 포인트를 배경으로 무대 뒤에서 울리는 트럼펫 소리가 자연을 긴 동면에서 깨운다. 이 서주는 4악장에서 다시 등장하게 된다.

제시부의 첼로 주제는 말러의 초기 연가곡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 중 두 번째 곡 ‘오늘 아침 들판을 건너가네’ 선율에 기초한 것이다. 2주제는 등장하지 않으며, 발전부에서 서주가 재등장한 후 호른 선율에 뒤이어 연주되는 첼로의 선율이 일종의 대용품 구실을 한다. 이 첼로 주제가 1주제와 결합-발전하면서 발전부를 구성한다. 재현부에서는 발전부의 내용이 다시 반복된 후, 고함소리와 함께 연주가 끝난다. 이 악장의 특징적 모티브는 목관악기들의 잦은 변화에 찬 4도 도약인데, 초기 말러 학자인 파울 베커의 말에 의하면 이는 뻐꾸기 소리를 상징(모방이 아니라)하는 것이라고 한다.

2악장: 힘찬 움직임으로, 그러나 너무 빠르지 않게 - 트리오. 적당히 편안하게

A장조 3/4박자. 일종의 스케르초로 말러가 자주 애용했던 렌틀러 형식으로 되어 있다. 렌틀러가 교향곡의 정규 악장으로 도입된 것은 이 곡이 처음이다. 왈츠가 도시 중산층의 춤이라면 렌틀러는 시골 서민의 춤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도 그런 성격은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 거칠고 활기찬 스케르초와 유연하고 사랑스러운 트리오가 좋은 대비를 이룬다.

3악장: 장중하고 위엄 있게, 너무 끌지 말고

D단조 4/4박자. 팀파니의 희미한 연타에 뒤이어 등장하는 더블베이스 선율은 귀에 익으면서도 낯설다. 유명한 동요 ‘마르틴 형제’(영어권에서는 ‘존 형제’)를 단조로 연주한 것으로 일종의 패러디다. 이 대목과 뒤이어 등장하는 ‘카바레 풍’의 밴드 선율이 당시 평론가와 청중을 얼마나 분노케 했는가는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가장 진지한 음악 장르인 교향곡에서 패러디라니! 게다가 이 저속한 선율은 또 뭐란 말인가!” 3부 형식으로 작곡된 이 악장의 중간부에서 약음기를 낀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선율은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 중 네 번째 곡 ‘그녀의 푸른 두 눈동자’에서 따온 것이다.

4악장: 폭풍 같은 움직임으로

만약 이 교향곡을 처음 듣는 이가 방심한 채로 3악장의 끝부분까지 들었다면 4악장 첫머리의 포르티시모 총주에서 예외 없이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말러의 친구가 증언하는 바에 따르면, 초연 당시 “근처에 앉은 한 귀부인은 마지막 악장 첫머리에서 너무 놀란 나머지 들고 있던 것을 전부 떨어뜨렸다”고 한다. 이 악장은 2/2박자로, 비교적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이 ‘폭풍 같은’ 1주제(‘지옥’ 주제)가 서정적인 제2주제와 대비를 이루면서 제시부를 구성하며, 제시부의 끝에서는 1악장의 서주가 회상된다. 발전부에서는 앞의 두 주제가 다시 등장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주제(‘천국’ 주제)가 등장하며 제시부의 끝에서 인용되었던 1악장의 서주가 재등장하는데 말러는 이 부분을 가리켜 ‘영웅의 젊음에 대한 암시’라고 했다. 2주제로 시작되는 재현부의 마지막에서 드디어 ‘천국’ 주제가 개가를 울리며, 이는 그대로 코다(악곡 또는 악장을 끝내는 결미부를 일컫는 말)에서의 영광으로 이어진다.

 

추천음반

클라우디오 아바도/베를린 필의 녹음(DG)은 대단히 상쾌하고 깔끔한 표현력이 일품인 연주다. 최근 녹음 가운데서는 거대한 스케일과 정밀한 세부 표현이 뛰어난 마리스 얀손스/로열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의 녹음(RCO Live)이 뛰어나다. 데이비드 진먼/취리히 톤할레의 녹음(RCA)은 실내악적인 투명함의 극치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무시할 수 없는 명연이다. 레너드 번스타인/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우의 녹음(DG)의 폭풍 같은 광포함 역시 잊을 수 없는 연주이고, 세이지 오자와/보스턴 심포니의 녹음(DG)은 따뜻한 관현악 음색과 각 성부를 명쾌하게 풀어내는 통제력이 돋보인다.

 

황진규(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 음악 전문지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스트라드> <인터내셔널 피아노> <콰이어 앤 오르간> <코다> <라 무지카> 등 여러 잡지에 리뷰와 평론, 번역을 기고해 왔다. 말러, 브루크너, 쇼스타코비치, 닐센의 음악을 가장 좋아하며, 지휘자 가운데서는 귄터 반트를 특히 존경한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클래식>명곡 명연주 2009.10.21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1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