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 2014년)

서울시향/한스 그라프의 말러 교향곡 10번/1.23.목/예술의 전당

나베가 2014. 1. 22. 00:30

 

 

 

2012년 생상스 오르간 교향곡을 들려준 지휘자 한스 그라프(휴스턴 심포니 음악감독)가 데릭 쿡의 '연주회용 버전'으로 완성된 말러의 미완성 작품 <교향곡 10번>을 지휘합니다. 서울시향이 2010년 제임스 드프리스트의 지휘로 이 곡을 연주한지 3년만이며, 스베틀린 루세브 악장이 코른골트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합니다. 두 작품의 공통 분모는 '나치가 금지한 작곡가들의 작품'이라는 것. 유태인으로 오스트리아에서 떠들썩한 신동 커리어를 쌓아나간 코른골트는 나치 집권기에 할리우드로 이주한 후 웅장한 '할리우드 사운드'를 수립했습니다. 이 작품은 20세기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일컬어지며, 3악장은 1938년 영화 '로빈 훗의 모험' 사운드트랙에 사용되며 대중들의 귀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프로그램]
 
코른골트: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Korngold: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 35
말러: 교향곡 10번 (데릭 쿡 버전 III)
Mahler: Symphony No.10 (Deryck Cooke 3rd/Final Version)

 

 
지휘 한스 그라프  Hans Graf, conductor
'그라프는 쳄린스키의 서정 교향곡에서 깊고 만져질 듯한 관능을 표현하였다. 숨이 멎을 듯한 텍스쳐의 아름다움과 투명함이 결합된 연주였다.' (가디언)
휴스턴 심포니의 음악감독인 한스 그라프는 존경받는 지휘자이자, 창의적인 프로그래밍, 폭넓은 레퍼토리에 대한 해석으로 이름이 높다. 2006년 휴스턴 심포니의 카네기홀 데뷔 무대를 이끌었으며, 2010년 1월에는 홀스트의 '행성'과 NASA의 영상을 결합하는 비디오 프로젝트로 카네기홀 무대에 다시 섰다. 유럽과 미주 양 대륙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한스 그라프는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 캘거리 필하모닉, 보르도 아키텐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2002년 프랑스 정부의 레종도뇌르 훈장을 받았고 2007년 오스트리아 정부로부터 황금 명예 훈장을 받았다. 뉴욕 필하모닉, LA필하모닉, 클리블랜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등 미국 주요 교향악단을 지휘하였으며 보스턴 심포니와는 정기 공연과 탱글우드 뮤직 페스티벌을 지휘하는 등 꾸준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유럽에서는 빈 필하모닉,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허바우,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슈투트가르트 방송교향악단,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등을 모두 지휘하였으며 피렌체 마지오 무지칼레, 액상프로방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자주 출연하였다. 이후에 로테르담 필하모닉, 런던 필하모닉, 드레스덴 필하모닉, 홍콩 필하모닉, 서울시향 등을 지휘했으며 베를린 도이체 심포니, 힐베르숨 라디오 필하모닉 등과도 정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인디애너폴리스, 디트로이트, 세인트루이스 심포니 등에 재초청 받았다. 베를린, 뮌헨, 빈, 파리, 취리히, 로마의 오페라 극장과 일하고 있는 한스 그라프는 보르도 오페라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취리히 오페라에서 <파르지팔>을, 스트라스부르 오페라에서 <보리스 고두노프>를 지휘했다. 음반 활동으로는 모차르트와 슈베르트 교향곡 전곡 녹음, 뒤티에 관현악 전곡 녹음이 주목할 만하며 쳄린스키의 오페라 <옛날 옛적에>를 세계 최초로 녹음하였다. 휴스턴 심포니와는 버르토크의 <나무 왕자>(Koch), 쳄린스키의 서정 교향곡(낙소스), 말러의 <대지의 노래>(낙소스) 등을 녹음하였으며 이외에도 EMI, 오르페오, 에라토, 카프리치오 등에서 많은 음반을 발매하였다. 린츠 인근에서 태어난 그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운 후 그라츠에서 지휘를 배웠고 이탈리아에서 프랑코 페라라와 세르지우 첼리비다케를, 러시아에서 아르비드 얀손스를 사사하였다.
 
바이올린 스베틀린 루세브  Svetlin Roussev, violin
스베틀린 루세브는 불가리아 루세의 음악 선생이었던 모친으로부터 음악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1991년 파리 국립고등음악원(CSNMDP)에 입학하여 제라르 풀레와 장자크 칸토로프를 사사하였고, 1994년 만장일치로 바이올린 연주 부문과 실내악 부문에서 1등상을 받았다.인디애나폴리스, 롱티보, 멜버른 콩쿠르 등에 입상하였고, 칸 미뎀 페스티벌에서 ADAMI로부터 '올해의 발견'에 선정되었으며 Natexis-Banques 재단으로부터 후원을 받은 바 있다. 2001년 센다이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는 1등상, 특별 관객상, 바흐 협주곡 최고해석상 등을 받았다.바로크부터 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뛰어난 기교와 집중력으로 연주하는 스베틀린 루세브는 슬라브 작품의 해석에 능하며 불가리아 음악의 옹호자이다. 2006년에는 불가리아 '올해의 음악가'로 선정되었으며, 2007년 불가리아 문화부가 시상하는 '크리스탈 리라'를 받았다. 그는 솔로이스트로서 프랑스 국립 교향악단,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서울시향, 도쿄 필하모닉, 불가리아 국립 교향악단 등과 협연하였으며, 정명훈, 레온 플라이셔, 예후디 메뉴인, 마레크 야노프스키, 장자크 칸토로프 등의 지휘자와 호흡을 맞췄다. 실내악 연주자로서 정명훈, 장마르크 뤼사다, 필립 카사르, 장필립 콜라르, 에릭 르사주, 피터 프랭클, 앙투안 타메스티, 아르토 노라스, 프랑수아 를뢰, 폴 메이어 등과 호흡을 맞추었으며 '루세브-살크-로자노바 트리오'의 멤버이기도 하다. 판초 블라디게로프 음반에 이어 하르트만의 협주곡을 오베르뉴 오케스트라와 녹음하였으며, 프랑스-벨기에 악파에게 헌정하는 앨범, 그리그와 메트너 음반 등이 있다. 그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과 서울시향의 악장을 맡고 있으며, 모교인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의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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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른골트 바이올린 협주곡

     

코른골트가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해에 쓴 바이올린협주곡
글 : 황장원(음악칼럼니스트)

<연주 시간 : 약 24분>

 1897년 구 오스트리아 제국령 모라비아의 브르노에서 태어난 코른골트는 어린 시절 모차르트와 멘델스존에 버금가는 ‘음악 신동’으로 명성을 떨쳤다. 불과 아홉 살 때 자작 칸타타 ‘황금’을 연주하여 당시 빈 궁정 오페라의 음악감독이었던 구스타프 말러를 놀라게 했고, 1910년에는 빈 궁정 오페라에서 황제가 배석한 가운데 발레 ‘눈사람’을 초연하여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후 촉망받는 작곡가로 성장한 코른골트의 명성은 1920년에 발표한 오페라 ‘죽음의 도시’의 대성공으로 절정에 달했으며, 이후 그는 빈 국립 아카데미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1934년에 코른골트는 막스 라인하르트의 제안으로 할리우드의 영화음악 작업에 참여하기 시작했는데, 1938년에 미국에 머무르던 중 히틀러가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합병하자 유태인이었던 그는 유럽으로 돌아가기를 포기하게 된다. 할리우드에서 코른골트는 주로 워너 브러더스사와 손잡고 다수의 영화 음악을 담당했는데, 1945년에 작곡된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는 그 결산이자 축도의 성격을 띠고 있다.

화려하고 열정적인 환상여행
 이 판타지적인 협주곡을 구성하는 세 악장은 공히 코른골트가 1930년대에 쓴 영화음악들에서 비롯되었다. 우선 제1악장이 시작되면 흘러나오는 동경에 찬 D장조의 제1주제는 ‘또 다른 새벽(Another Dawn, 1937)’에서, 잔잔한 제2주제는 ‘후아레스(Juarez, 1939)’에서 가져온 선율이다. 첫 악장은 이 두 주제를 바탕으로 발전해 나가는데, 전체적으로 부드러우면서 화려한 흐름과 탐미적인 분위기가 두드러진다.

 몽환적인 로망스인 제2악장에서 클라리넷이 제시하는 G장조의 주요주제는 1936년에 오스카상을 수상한 ‘앤소니 애드버스(Anthony Adverse, 1936)’에서 인용한 것이며, 신비스러운 중간부에흐르는 선율은 새로 작곡된 것으로 보인다. 마치 꿈결과도 같이 유려하고 감미로운 악장으로 시종 지속되는 바이올린 솔로의 선율미가 일품이며, 비브라폰, 하프, 첼레스타 등 다양한 타악기들이 동원된 반주부가 환상적인 색채를 더한다.

 독주자에게 가장 민첩하고 화려한 연주력을 요구하는 제3악장은 힘차고 쾌활한 지그(jig, 영국에서 유래한 3박자 계열의 빠른 춤곡)로 출발하며, 감미로운 제2주제는 ‘왕자와 거지(The Prince and the Pauper, 1937)’의 주요 모티브에 기초한 선율이다. 민속무곡 풍의 활기차고 재기 넘치는 음률이 돋보이지만, 동시에 시적이고 서정적인 미감도 깃들인 피날레 악장이다.

 작곡가가 초연자인 야샤 하이페츠의 연주에 보낸 찬사를 빌리자면, 이 곡을 이상적으로 연주하기 위해서는 독주자 안에 ‘카루소와 파가니니가 공존’해야 한다. 스코어는 과거 코른골트의 멘토였던 구스타프 말러의 미망인, 알마 말러-베르펠에게 헌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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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러 교향곡 10번 (데릭 쿡 버전 lll)

       

    1914년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 그 파국의 전야에 쓰여진 말러의 미완성 교향곡
    글 : 황장원(음악칼럼니스트)

    <연주 시간 : 약 72분>

     1911년 5월 18일, 말러가 세상을 떠난 후 미완의 토르소로 남겨진 ‘교향곡 제10번’은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에 서있었다. 문제는 말러가 남겨놓은 악보가 너무도 불완전하다는 데 있었는데, 전체 다섯 개 악장 가운데 첫 악장을 제외하면 그 자체로는 연주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마지막 여름휴가였던 1910년 8월 이후 작업을 진척시키지 못한 말러는 자필악보를 파기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운명했다.

     그러나 그의 유산 상속자였던 아내 알마는 남편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하여 작품을 ‘완성’시키려 했던 것이다. 결국 사위에게 위탁한 보필 작업을 통해서 제1악장과 제3악장의 초연을 성사시킨 알마의 시도 이래, 여러 작곡가들과 음악학자들이 이 교향곡의 다섯 악장 모두를 보필하는 작업에 도전해왔고, 그 중 영국의 데릭 쿡(Deryck Cooke)이 만든 ‘연주 가능본’이 가장 충실하고 설득력 있는 판본으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 이 작품의 ‘5악장 판본’은 데릭 쿡 외에도 클린턴 카펜터, 조 휠러, 레모 마제티 주니어, 루돌프 바르샤이 등에 의해서 만들어진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중에서 말러 애호가들을 ‘충분히’ 만족시킬 만한 판본은 하나도 없다. 누가 감히 말러의 작품을 대신 ‘완성’시킬 수 있단 말인가? 그런 까닭에 다수의 저명한 말러 전문가들은 ‘5악장 판본’을 인정하지 않았다. 레너드 번스타인, 클라우스 텐슈테트,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같은 지휘자들이 제1악장만을 다룬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으리라.

     하지만 최근으로 오면서 ‘5악장 판본’에 대한 전향적 시각이 차츰 확산되는 추세인 듯하다. 과거에는 제1악장만을 인정했던 엘리아후 인발, 미하엘 길렌과 같은 지휘자들이 데릭 쿡의 판본을 수용한 것이 그 단적인 사례이다. 사실 말러의 작은 유품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는 팬들의 입장에서는 그가 남긴 마지막 작품의 단편들을 불완전한 형태로나마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으리라. 무엇보다 그의 음악이 늘 그러하듯, 여기서 생애의 마지막 노정을 걷고 있던 무렵 그의 생각과 감정, 예술혼이 투영된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알마의 외도
     1910년 여름, 말러는 남티롤 지방의 토블라흐에서 마지막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교향곡 제10번’을 작곡하면서 9월에 뮌헨에서 거행될 ‘교향곡 제8번’의 초연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알마는 요양차 그라츠 근처의 온천지 토벨바트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그녀는 젊은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로피우스가 알마에게 춤을 청한 직후 두 사람은 마치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에 나오는 발터와 에바처럼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알마는 유부녀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

     말러가 50번째 생일을 혼자서 보낸 일주일 후 알마는 토블라흐에 도착했다. 그리고 7월이 저물어 가던 어느 날, 그로피우스가 알마에게 보내는 연서 하나가 도착했다. 그런데 실수였는지 고의였는지, 겉봉에 적힌 수신인은 ‘말러 감독’이었고, 피아노 앞에서 봉투를 뜯어본 말러는 경악했다. 말러는 아내의 외도를 추궁했지만, 알마는 오히려 남편의 강압과 무관심 때문에 피폐했던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 보이며 항변했다. 큰 충격을 받은 말러는 “모든 게 내 잘못이오!”라고 소리치며 흐느꼈고, 그 후 부부는 착잡한 심경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얼마 후 더 심각한 사건이 터졌다. 알마의 응답을 기다리던 그로피우스가 급기야 토블라흐로 찾아왔던 것이다. 삼자대면이 이루어졌고, 말러는 모든 결정을 알마에게 맡기고 자리를 떴다. 알마는 (당분간) 말러의 곁에 남기로 했지만, 말러는 그 사건 이후로 아내를 그로피우스에게 빼앗길 지도 모른다는 노이로제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는 아내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녀가 작곡한 가곡을 연주하고 출판을 주선하는가 하면, 유명한 정신분석가 프로이트를 찾아가 상담을 받기도 했다. ‘교향곡 제10번’의 작업은 거기서 중단되었고, 심장질환을 앓고 있었던 말러의 생명력은 그렇게 소진되어 가고 있었다.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가는 여정
     이 교향곡의 자필악보에는 여기저기 말러가 끼적인 메모들이 남아 있다. 그 메모들은 ‘필생의 연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 사로잡힌 한 예술가의 절망과 갈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말러에게 있어서 알마가 어떤 존재였는지는 그가 프로이트를 만난 직후에 그녀에게 보낸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당신은 언제나 나의 빛이자 중심이었소! 다른 모든 것들을 비추는 내면의 빛 같은 존재였지.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한 점의 구름 없이 명쾌하게 깨달음에서 오는 지복이 내 모든 감정을 무한한 곳으로 끌어올리고 있다오…. 에로스가 인간과 신들의 통치자로 군림하는 한, 나 또한 새로운 정복을 향한 시도를 멈추지 않을 것이오. 한때는 나의 것이었던 마음, 그리고 내 마음과 하나가 되지 않고서는 하느님의 축복에 이를 수 없는 마음을 정복하고야 말겠소.”

    제1악장
     느리고 장대한 첫 악장은 비올라의 쓸쓸한 모놀로그 주제로 출발한다. 이어서 F#장조의 칸타빌레 주제가 떠오르는데, 넓은 음폭과 풍부한 화음을 지닌 이 장엄한 선율은 브루크너를 연상시킨다. 계속해서 피치카토 반주를 수반한 스케르찬도 주제가 나와서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악장은 이상의 세 가지 주제가 번갈아 등장하면서 느릿하게 흘러가다가, 후반부로 접어들면 어느 순간 a♭단조의 코랄이 터져 나와 충격을 안겨준다. 그리고 절정부에 이르면 9개의 음을 3도 간격으로 쌓아올린 강렬한 불협화음이 엄습한다. 이 고통스런 화음의 지속은 트럼펫이 길게 뽑아내는 비명과도 같은 A음으로 수렴되는데, 혹자는 이 A음이 알마(Alma)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제2악장
     첫 번째 스케르초 악장으로 끊임없이 변전하는 박자와 복잡다단한 리듬들이 극도로 혼란스런 텍스처와 독특한 구조를 만들어낸다. 중간부의 트리오는 전원풍의 랜틀러로 이루어져 있고, 뒤로 갈수록 주제들 간의 구분과 경계는 모호해지며, 마지막에는 모든 주제가 한 데 모이다가 호른의 힘찬 용솟음 속에서 밝게 마무리된다.

    제3악장
     전곡 가운데 가장 짧은 악장으로 ‘연옥(Purgatorio)’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말러 자신의 가곡 ‘지상의 삶’을 연상시키는 기계적인 반주가 흐르고, 주제는 R.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의 주인공을 나타내는 모티브와 유사하다. 악보에는 ‘죽음! 변용!’, ‘신이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등의 메모가 적혀 있어서 당시 말러의 어지러웠던 심경을 대변하고 있다.

    제4악장
     두 번째 스케르초 악장으로 왈츠 풍이며 일종의 ‘죽음의 무도’라고 할 수 있다. 구성적으로 제2악장보다 더 복잡하며, 정서적으로도 더욱 심화되어 있다. 특히 ‘대지의 노래’의 첫 악장에 나오는 ‘기쁨도 노래도 시들고 사라지네’ 대목의 악구가 선명하게 떠오르는 부분이 의미심장하다. 이 악장의 표지에는 ‘악마가 나와 함께 춤춘다. 광기여, 저주받은 나를 데려가다오!’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또 마지막 페이지에는 유명한 ‘머플드 드럼(소음한 큰북)’의 첫 번째 타격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 적힌 문구는 ‘그대만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아! 아! 아! 안녕, 나의 칠현금 연주(Saitenspiel)여, 안녕히!’이다. 알마는 이 큰북 타격이 1908년 뉴욕에서 보았던 소방수의 장례식에서 울려퍼진 북소리와 관계가 있다고 했다. 아파트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던 말러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고 한다.

    제5악장
     첫 악장만큼이나 규모가 큰 악장으로 느리게-빠르게-느리게의 세 부분으로 나뉘며, 앞선 악장의 마지막에 나온 북소리를 이어받으며 시작된다. 처음에는 장례식을 연상시키는 무거운 분위기가 지속되며 3악장의 ‘살로메 모티브’가 단편적으로 부각된다. 이어서 플루트 솔로가 투명한 음색으로 서정미와 신비로움이 깃들인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작품의 결말을 암시하는 듯하다. 중간부로 넘어가면 말러의 마지막 투쟁이 펼쳐진다. 3악장에 나왔던 소재들이 어지러이 뒤엉키고, 1악장의 불협화음이 다시 터져 나온다. 절정부에서는 1악장의 모놀로그 선율이 호른에서 울려퍼진다.

     이제 투쟁과 갈등은 멀어진다. 말러는 이 마지막 대목에 화해와 평화를 향해서 나아가는 ‘위대한 사랑의 송가’를 써넣었다. 말러가 알마를 향해 썼던 최초의 연가인 교향곡 5번의 ‘아다지에토’, 나아가 그 근원인 바그너의 ‘사랑의 죽음’을 환기시키는 이 에필로그는 말러가 꿈꾸었던 ‘궁극의 승리’를 형상화한 듯하다. 그 코다의 시작 부분에는 ‘그대를 위해 살고! 그대를 위해 죽으리!’라고, 마지막 비상 부분에는 ‘알름쉬(Almsch, 알마의 애칭)’라고 적혀 있다.
     

     

    Mahler, Symphony No.10 in F# major

    말러 교향곡 10번

    Gustav Mahler

    1860-1911

    Eliahu Inbal, conductor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2011.06.30

     

    Eliahu Inbal conducts Mahler, Symphony No.10 (Deryck Cooke ver. Full)

     

    미완성의 작품을 없애라는 유언을 거부한 미망인 알마

    1910년 7월, 말러는 알프스의 휴양지 토블라흐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9번 교향곡의 끝손질을 마무리하고 구상하고 있던 다음 교향곡의 작업에 본격적으로 들어갔다. 그는 다섯 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의 쇼트스코어(약보)를 이미 만들어놓고 있었고 오케스트레이션 스케치도 지어놓고 있었다. 풀스코어(총보) 완성의 바로 전 단계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즈음 말러의 생활은 아내 알마와 젊은 발터 그로피우스의 애정행각 때문에 엉망이 되어 있었다. 말러에게 알마는 정신적 동반자였다. 그녀를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과 함께 말러의 건강을 심하게 뒤흔들어 놓았다. 정신분석학을 개척한 의사 프로이트를 찾아가기까지 했다. 이처럼 심신이 고달팠음에도 그의 창조력은 이상할 만치 고양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이듬해 55세 생일 직전인 5월 18일 훗날 ‘10번 교향곡’이라고 불리게 될 작품을 미완성으로 남겨둔 채 죽고 만다.

    말러는 알마에게 악보를 없애라고 유언을 남겼지만 미망인 알마는 폐기하지 않았다. 이런 그녀의 처사에 대해 브루노 발터를 비롯하여 말러를 우상으로 여겼던 몇몇의 비난과 저항이 있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발터는 말러 타계 이듬해 <대지의 노래> 초연을 이끌었고, 나중에 말러 음악 해석의 권위자가 된 지휘자이다. 알마는 말러의 직접적인 후계자인 빈의 삼총사 쇤베르크, 베르크, 베베른 중 한 사람이 미완성의 이 작품을 완성해야 한다고 내세웠지만, 제아무리 존경하는 선배의 유업이더라도 또 그냥 버려두기에는 아까운 작품이더라도 거기에 보필을 한다는 것은 같은 길을 걷던 그들이 할 일은 아니었다. 창작가의 작품은 그의 분신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작품의 완성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작곡가가 아니라 음악학자들이었다.

     

    알마 말러(1879-1964)는 말러 사망 5년 뒤 1916년 발터 그로피우스(‘바우하우스’를 설립한 현대 건축계의 거장)와 결혼하였다. 1920년 그로피우스와 이혼한 뒤 1929년 작가 프란츠 베르펠과 결혼하였다. 그래서 그녀가 공식으로 남긴 이름은 알마 마리아 말러 그로피우스 베르펠이다. 말러의 친구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와도 염문을 뿌리기도 했던 알마는 숱한 남성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는데, 그 불은 현대 음악, 미술, 문학, 건축에서 불후의 명작으로 타올랐다.

     

    Pierre Boulez conducts Mahler, Symphony No.10 (Deryck Cooke ver. 1. Adagio)

    Pierre Boulez, conductor

    Cleveland Orchestra

    DG, 2010

     

    데릭 쿡이 ‘연주용 판본’을 완성하다

    10번 교향곡의 역사는 1차 세계대전 후에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알마의 부추김으로 이 작품의 1악장과 3악장이 1924년 10월 12일 빈 국립가극장에서 빈 필에 의해 프란츠 샬크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초연을 바로 앞두고 말러 자필의 작품 전체 필사본이 출판되었다. 자필악보 필사본이 출판되면서 이 유작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으나, 나치 시대가 오면서 말러의 음악은 가려지고 이 작품도 거의 잊히고 만다.

    1960년 말러 탄생 100주년을 맞아 10번 교향곡의 새로운 전기가 왔다. 영국의 음악학자 데릭 쿡(Deryck Cooke)이 필사본을 연구하여 해독하는 데 성공, 자신의 판본 악보로 구성해낼 수 있었다. 쿡은 자신의 작업에 대한 주위의 우려에 대하여 남겨진 악보가 단순한 스케치가 아니라 완전히 전체 모습을 갖춘 레이아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완성이란 것은 작곡가 자신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음을 분명히 해두었다. 말러가 이 곡을 완성시켰더라면 평소 그의 작곡 성향으로 보아 분명 많은 부분을 다시 보완하고 수정했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런 점에서 쿡은 자신의 작업이 완성이라든가 재구성이라기보다는 ‘연주할 수 있도록’ 또는 ‘악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방법을 ‘모방 작곡’으로 일컬었다. 1960년 오스트리아에서 발행한 말러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데릭 쿡은 연주가 가능한 악보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악보(2악장과 4악장은 축약된 형태)에 의한 녹음이 1960년 12월 19일 BBC 라디오 방송을 통해 나가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알마는 10번 교향곡을 완성시키려는 음악학자들의 노력에 대해 그동안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한동안 말러 저작권의 소유자로서 이 작품의 연주를 금지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방송을 듣고 그녀는 생각을 바꾸었다. 쿡의 성과에 호의를 나타내고 마음대로 보필해도 괜찮다고 조건 없는 승인을 해주었다. 쿡은 이 작품의 ‘연주용 판본’(performing version)을 완성하여 1964년 8월 13일 베르톨트 골드슈미트의 지휘로 초연에 올렸다. 데릭 쿡이 완성한 최초의 연주용 판본에 이르러서야 말러의 미완성 10번 교향곡은 세상의 음악애호가들에 남겨진 유산의 일부가 되었던 것이다.

    쿡이 자주 언급했듯이 그가 이 악보를 만든 의도는 초고 그대로는 오케스트라 실연이 불가능했던 악보를 연주 가능하도록 하는 데 있었다. 성실하고 엄격한 쿡은 첫 연주용 판본을 완성한 후 이를 여러 차례에 걸쳐 보완하고 수정했다. 참고문헌을 찾고 말러의 표기법을 해독하는 것, 쇼트스코어에 쓰인 대로 특정 악기를 지정하는 것과 몇 군데 부가적인 음을 채우는 것 등 어렵고 고된 작업이었다. 1976년에 출판된 쿡의 풀스코어 개정판(두 번째 연주용 버전)은 말러가 오케스트레이션 초고에 남겨놓지 못한 부분과 그가 밝혀낸 부분이 나란히 인쇄되어 출판되었다. 이런 노력은 어느 부분이 첨가된 부분인지를 명확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완성 작품의 연주에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말러 음악에 대한 쿡의 기여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쿡의 주석을 읽어보면 브루노 발터 등의 완강한 저항은 적절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말러가 작품을 완성했더라면 10번 교향곡은 물론 다른 형태가 되었을 것이다. 그가 각 악장을 좀 더 줄이거나 늘렸을지도 모른다. 또 말러의 정교한 관현악법과 연주지시를 흉내 낸다는 것이 가당치 않은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쿡의 풀스코어를 통하여 연주되는 음악을 경험함으로써 우리는 말러가 최고의 창조력을 지닌 혁신적인 작곡가였음을 보다 더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쿡의 작업을 검토한 많은 음악학자들은 그의 작업을 인정했다. 어쨌든 쿡이 말러가 남긴 마지막 작품이 연주될 수 있도록, 그것도 그럴듯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쿡의 작업이 완전한 것이냐 아니냐는 문제가 아니다. 말러의 스케치를 직접 들을 수 있도록 작업을 했다는 것에 데릭 쿡의 공로가 있고, 그의 작업에 대한 판단은 그 다음의 일이다.

     

    Bernstein conducts Mahler, Symphony No.10 (Deryck Cooke ver. 1. Adagio)

    Leonard Bernstein, conductor

    Wiener Philharmoniker

    1975

    1악장 아다지오를 3파트로 나누어 올린 동영상입니다. 연속 재생이 되나 파트에서 파트로 넘어갈 때 잠시 끊김이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작품의 구성과 성격

    10번 교향곡은 매우 특이한 F샤프장조의 조성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 ‘푸르가토리오’(Purgatorio, 연옥)라고 이름 붙인 짧은 간주곡 형태의 악장이 놓여 있다. 이 악장의 양쪽에는 두 개의 긴 스케르초 악장이 있고, 가장 바깥쪽 악장들은 아다지오 템포이다. 즉 이 교향곡은 대칭 구조의 다섯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악장과 5악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교향시를 이루고, 그 안쪽 2악장과 4악장은 10분 남짓한 스케르초이다. 이와 같은 대칭 구조는 작품에 긴장감을 가져오고 완성도를 높여준다. 이 다섯 악장은 그 순서가 분명히 지시되어 있는데, 학자들은 말러가 이 곡을 완성했더라도 어느 악장이 완전히 빠지거나 두 악장이 연결될 수는 있어도, 순서 자체는 변경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악장들이 가진 성격 때문에 다른 순서로는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알마가 말러가 자신에게 보낸 편지를 정리하여 출판한 책 <구스타프 말러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들>의 표지.

    두 번째 악장의 스케치에는 ‘2악장 스케르초 - 피날레’라고도 써져 있는데 필체를 자세히 살펴보니 ‘피날레’라는 단어는 나중에 덧붙여진 것으로 밝혀졌다. 작품을 완성할 자신이 없었던 말러가 두 악장만으로 곡을 마치려고 했던 모양이다. 두 느린 악장이 처음과 끝에 배치되어 있어 9번 교향곡을 연상시키지만 그 외의 공통점은 없다. 조성 배치도 9번 교향곡보다는 덜 파격적이다. F샤프장조인 1악장에 이어 완전히 다른 조성을 가진 악장은, e단조로 시작되어 d단조로 마치는 4악장 정도다. 마지막 악장 역시 그대로 이어져 d단조로 시작되기는 하지만 F샤프장조로 돌아오면서 종결된다.

    첫 악장 아다지오의 구조는 정확히 정의 내리기 어려울 정도로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 크게는 두 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고, 이 주제 외에 비올라로 전달되는 주제도 지적할 수 있지만, 첫 번째 주제의 변형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두 주제는 변주되면서 여러 번 등장하는데 말러가 그때까지 보여주었던 어떤 변주곡 형태와도 다르다. 굳이 얘기하자면 쇤베르크, 베르크, 베베른 등이 주도한 빈 악파의 표현주의와 많이 닮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이어지는 스케르초는 두 주제가 번갈아가며 등장하는 전형적인 말러의 스케르초 악장 구성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 세 악장은 자전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처음에는 3악장의 표지에 ‘연옥’이 아니라 ‘연옥 혹은 지옥’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나중에 지옥 글자를 줄로 그어버린 것으로 나타났다. 악보의 첫 페이지는 아래 부분이 찢겨져 있는데, 매우 개인적인 내용이 적혀 있어 말러나 알마가 찢어버린 것으로 추측된다. 4악장의 악보에는 ‘죽음이 나와 함께 춤을 춘다’라고 적혀 있으며, 이 문장 아래에는 죽음에 관한 섬뜩한 몇 문장이 덧붙여 쓰여 있다. 4악장의 마지막에는 엄청난 드럼의 타격이 있으며, 이 타격으로부터 그대로 마지막 악장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악장은 느린 도입부를 거쳐 다소 활동적인 중간부를 지나 다시 도입부의 주제가 돌아오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오스트리아 빈의 그린칭 공동묘지에 있는 말러의 묘비와 쇤베르크가 그린 말러의 장례식 장면

     

    가져온곳/블로그>라라와 복래

     

     

    코른골트(Erich Wolfgang Korngold 1897.5,29~1957.11.29)

    1897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1957년 미국에서 세상을 떠난 현대음악 작곡가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는 최근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는 천재 작곡가이다. 그는 유명한 음악 비평가의 아들로 태어나 6살의 나이로 작곡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의 아버지가 구스타프 말러와 절친한 사이였기에 어린 시절부터 말러의 조언을 많이 받게 되었고 점점더 유명해져 니키쉬, 바인가르트너, 브루노 발터등 유명한 지휘자들에 의해 코른골트의 작품들이 공연되었다고 한다.

    열살때 ,칸타타<황금>을 작곡해서 말러에게 보여주었고 , 이 천재에게 경악한 말러는 쳄린스키에게 교육을 주선하기도 했다. 1910년에는 그가 열한살때 만든 발레음악<눈사람>이 빈 궁정가극장에서 초연되어 파문을 일으켰으며, 그 해에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2번은 명 피아니스트"아르투르 슈나벨이 유럽 순회연주의 레퍼토리로 삼을 정도였다.

    그의 명성은 열아홉 살 때,작곡한 오페라 <죽음의 도시>가 1920년 퀼른과 함부르크에서 브르노 발터에 의해 초연되면서 절정에 달했지만, 나치에 의해 격하당한 그는 1934년 미국 헐리우드로 건너가서 영화음악에 매달렸고 두번 오스카 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1943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2차대전이 끝나자 코른골트는 자신의 본업이었던 순수음악 작곡에 몰두하게 되는데 그 결실이  <바이올린 협주곡op.35번>이다. 후기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아 풍부한 멜로디 라인을 선보였던 그의 음악은 영화음악과 관계하면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으나 오늘날 급격히 재조명되고 있다.

    대표작에 <눈사람(1908)>오페라 <폴류크라테스의 반지(1916)> <비올란타 (1916)> <죽음의 도시(1920)><헬리아네의 기적(1927)> <피아노 소나타 2번(1910)> <첼로협주곡 op,37번>과 <바이올린 협주곡D장조 op.35(1945)> 그리고 <피아노 독주를 위한 돈 키호테>등 다수의 영화 음악이 있다. 1975년 〈죽은 도시〉가 뉴욕 시에서 성공리에 재공연되었다.

     

    [바아올린 협주곡 D장조 Op.35 작곡 배경과 해설]

    19세기 말에 태어난 에리히 코른골트는 빈의 천재 소년 작곡가로서 이력을 시작한  그가 11세에 작곡한 <눈사람>은 빈에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으며, 19세에 작곡한 오페라 <비올란타> 등은 브루노 발터의 지휘로 초연되면서, 모차르트 이래 가장 유명한 천재 작곡가였던 그의 화려한 경력의 전환점이 된 것은 나치의 부흥이었고 이미 영화음악 작업을 해보았던 그는 ‘퇴폐음악’ 작곡가라는 탄압을 피해 1934년헐리우드 영화음악 작곡가로서 제2의 인생을 살게 된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 35>는  헐리우드 영화음악의 고전음악적 특징을 확립하고, 아카데미상을 2회 수상할 정도로 탁월한 재능을 선보인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코른골트는  순수음악 작곡에 몰두하게 되는데   (1945년) 그해 작곡한 작품이다.

    코른골트의 바이올린 협주곡의 사랑스런 로망스는 차이코프스키에게 영향을 받았다 . 작품의 주요 멜로디들은 자신의 영화음악에서 발췌된 것으로, 전체적으로 후기 낭만주의적 전통과 영화음악적 특성들이 잘 결합되어 있다. 무엇보다 독주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요구되는 비르투오시티는 작곡가가 당대 최고의 연주자 브로니슬라프 후버만을 꼽고 작곡 하였기에 바이올린의 고난도 기교가 요구되는 작품이며 그 화려함을 보여준다.

    이곡에서 바이올린은 전악장에서 "사랑스럽게 속삭이고, 거대하게 빛나며, 풍부한 음색”과 “세련된 우아함”으로 때론 섬광처럼 번득이는 바이올린의 비르투오시티는, 오케스트라의  영화음악적 특성인 장쾌한 환타지와  그 빛을 더욱 유감없이 발산하는 대단히 아름다운곡이다.  (결국 이 곡의 초연은 야샤 하이페츠가 맡았다.)

    지금듣고 있는 이곡은 2004년 10월 런던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바이올리스트 안네 소피 무터와 그의 두번째 남편인 앙드레 프레빈의 지휘로, 런던 심포니와의 협연으로 녹음되었다. 역시 스튜디오 녹음답게 좀 더 근접 마이킹된 음향으로, 각 파트별 표현이 보다 세부적이며 솔로 또한 더 꽉 차고 샤프한 울림. 최고의 스튜디오에서 초일류의기자재로 유감없이 잡아낸, 밸런스 좋고 당당한 음이라 하겠습니다.

     

    코른골트: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Korngold: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 35
    듣기

    http://cafe.daum.net/yeongeonara/Rf0w/26?q=%C4%DA%B8%A5%B0%F1%C6%AE%3A%20%B9%D9%C0%CC%BF%C3%B8%B0%20%C7%F9%C1%D6%B0%EE%20D%C0%E5%C1%B6&r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