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 2013년)

현대자동차 초청 정명훈, 서울시향 송년음악회

나베가 2013. 12. 28. 22:39

현대자동차 초청 정명훈, 서울시향 송년음악회

 

 

 

 

정명훈 예술감독과 서울시향은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으로 한 해를 마감합니다.
서울시향은 베토벤과 쉴러를 빌어 인류의 평화와 형재애를 노래하며, 음악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프로그램]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Beethoven, Symphony No. 9 "Choral"
 
[협연]
 
소프라노 _ 캐슬린 킴
메조 소프라노 _ 백재은
테너 _ 김재형
베이스 _ 박종민
국립합창단
서울모테트합창단
안양시립합창단
 
[프로필]
 
지휘 _ 정명훈
프랑스 <르 몽드> 지가 '영적인 지휘자' 라고 극찬한 마에스트로 정명훈은 2010년 서울시향의 이탈리아, 독일, 체코, 러시아 등 유럽 4개국 9개 도시 투어로 현지 언론으로부터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라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뉴욕 매네스 음대와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공부한 그는 1979년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거장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의 보조지휘자로 경력을 시작하여, 2년 후 이 오케스트라의 부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등 세계 최정상급 교향악단과 뉴욕 메트로폴리탄, 파리 바스티유, 라스칼라 등 세계 오페라 유수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 지휘를 하였다. 이탈리아 비평가들이 선정하는 '프레미오 아비아티 상'과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상', 프랑스 극장 및 비평가 협회의 '올해의 승리상'에서 최고의 지휘자 상을 포함 3개 부분 석권하였다. 2011년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코망되르 레종 도뇌르 훈장', 일본의 '레코드 아카데미상', 대한민국 정부 최고 문화훈장인 '금관 훈장' 등 최고 권위의 상을 수상했다. 최근에는 이탈리아 베니스 라 페니체 극장 재단 주관한 평생 음악상(Una vita nella musica Award)을 받기도 했다. 1984년부터 세계적인 음반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DG)의 전속 아티스트로서 30여 장의 음반을 레코딩하며 유명 음반상을 휩쓴 그는 2011년 도이치 그라모폰과 아시아 교향악단 최초로 5년 전속 음반계약 체결을 이끌어 내어 아시아 최고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 어깨를 견주는 교향악단으로 만들어냈다.
 
소프라노 _ 캐슬린 킴
2007년 뉴욕 메트로 폴리탄 오페라에 데뷔한 이후로, 소프라노 캐슬린 김은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경이롭다'  '작은 강력 발전기 같다'  '완벽한 콜로라투라' 라는 대중과 평론가들의 평가를 받아가며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2009년 메트로 폴리탄 오페라에서 제임스 레바인 지휘의 <호프만의 이야기>에서 '올림피아'를 시작으로, 파비오 루이 지휘의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에서 '제르비네타'와 <가면 무도회>에서의 '오스카'를 연주했으며, 특히 2011년, 존 아담스의 <중국의 간 닉슨>의 역사적인 메트로 폴리탄 오페라 초연에서 ‘장칭’역으로 세계 오페라계에 그녀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그 외의 연주 활동으로는, 시카고 리릭 오페라단에서 <가면무도회>의 '오스카', 아틀란타 오페라에서 <마적>의 '밤의여왕', 미네소타 오페라에서 <후궁으로 부터의 유괴>의 '블론쉔', 센트럴 시티 오페라에서 헨델의 <리날도>의 '아르미다'와 <가울라의 아마디지>의 '멜리사', 보스톤 리릭 오페라에서 <아그피나>의 '뽀뻬아', 그리고 사라소타 오페라에서 <람마무어의 루치아>의 타이틀 역인 '루치아' 등이 있다. 스페인 빌바오 오페라에서 <연대의 딸>의 '마리' 역으로 2009 년 유럽무대에 데뷔한 캐슬린 김은 계속해서 뮌헨 국립극장에서 <마적> <호프만의 이야기>, 릴 오페라에서 <신데렐라>의 '요정', 글라이드본 페스티발에서 <어린이와 동화>의 '불, 공주, 나이팅게일' 그리고 바르셀로나 리세우 극장에서 <호프만의 이야기>에서 공연하며 세계 주요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오페라뿐만 아니라, BBC Proms 에서 BBC 오케스트라와 <중국에 간 닉슨> 그리고 오슬로 필하모닉과는 모차르트의 'C 단조 미사곡'을 만프레드 호넥의 지휘로 공연했다. 2010년 광복절 기념 객원 독창자를 비롯, 말러 교향곡 8번과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서울시향과 정명훈 지휘자와 함께 해 한국의 클래식 애호가들을 가슴 벅차게 했다. 2013년 4월에는 고국에서 처음으로 솔로 콘서트를 예술의전당에서 열기도 하였다. 캐슬린 킴은 서울 출생으로, 서울예고 수학 중 도미 맨하탄 음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메조 소프라노 _ 백재은
미국 뉴 잉글랜드 챔버 오케스트라, 리지필드 오케스트라, 아칸소 주립오케스라, 엘림 소사이어티, 그리니치 코럴 소사이어티, KBS 교향악단, 서울대 오케스트라, 포항 시립교향악단, 대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창원시립마산교향악단, 수성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인씨엠 오케스트라 등과 와 오페라 갈라콘서트, 정기연주회와 종교 합창곡 <메시아>, <전쟁미사>, <마그니피카트>, <마그니피카트>, <레퀴엠>, <대관식미사>, < c단조 미사 >, <베스퍼>, < b단조미사 >, <독일 레퀴엠>, <천인교향곡>, <대지의 노래>, <엘 아모르 부르호> 등의 작품을 협연하였다. 2008년 국립오페라단 <카르멘>의 카르멘 역으로 국내 데뷔 후 국립오페라단과 함께 <나비부인>, <아랑><시절인연>의 작품을 공연하였다. 이 외에도 미국 Chautauqua Opera, Greensboro Opera, Shreveport Opera, Virginia Opera, 대구오페라 하우스, 성남아트센터, 대전 문화예술의 전당, 베세토 오페라단, 김자경 오페라단 등의 공연 단체와 함께 <카르멘>, <코지 판 뚜떼>, <명랑한 과부>, <카운슬>, <작은아씨들>, <수녀 안젤리카>, <리골레토>, <나비부인>, <호프만의 이야기>, <세멜레>, <오텔로>. <피가로의 결혼>, <신데렐라>, <팔스타프> 등의 작품 에서 주역으로 출연하였다. 2005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국제 콩쿨에서 입상한 후, 2005년과 2006년에 Shreveport Opera 올해의 성악가상, 2009년에는 대한민국 오페라 대상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서울대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베이스 _ 박종민
베이스 박종민은 2011년 세계 3대 콩쿠르로 손꼽히는 제14회 차이코프스키 국제콩쿠르 성악부문에서 1위의 영예를 안으며 그의 천재적인 음악성을 입증하는 동시에 한국 음악계의 쾌거와 한국인의 기상을 드높인 자랑스러운 성악가이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 본격적인 음악의 길을 걷기 시작 이후 한국음협 콩쿠르 1위, 이대웅 콩쿠르 1위, 국립오페라단 콩쿠르 금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 콩쿠르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한 그는 2006년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적>으로 데뷔 <리골레토>, <비밀결혼> 등 다수의 오페라와 콘서트에 출연하며 그의 음악적 재능을 선보이기 시작하였고 차세대 음악계의 기대주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순수 국내 교육만으로 2007년 7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린 제26회 벨베데레 국제성악콩쿠르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며 콩쿠르 도중 심사위원인 라 스칼라 관계자에게 발탁되어 성악의 본고장인 이탈리아로 유학, 3년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최고의 아카데미인 라 스칼라 극장 아카데미를 졸업하였다.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에서 <피가로의 결혼>, <맥베스>, <극장이야기>, <난봉꾼의 행각> 등 다양한 배역을 통해 그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박종민은 정명훈이 지휘한 라 스칼라 성탄음악회에서 모차르트 '구도자(求道者)를 위한 저녁기도'의 베이스 독창자로 큰 호평을 받았으며 이후에도 이탈리아 RAI 국영방송 심포니오케스트라와 베토벤 'C장조 미사' 와 '신인음악회' 등을 협연하는 등 다수의 연주회에 출연하였다. 그는 2008년 11월, 만 20세의 나이로 스페인 최고의 콩쿠르인 제12회 빌바오 국제성악콩쿠르에서 1위 및 평론가상을 수상하였으며, 빌바오 에우스칼두나 극장에서 베르디 <가면무도회>에 출연하였다. 2010년 독일 함부르크 국립극장으로 무대를 옮긴 그는 <마적>, <리골레토>, <아이다>, <돈죠반니>,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 <춘희> 등 다수의 오페라와 콘서트에서 주역으로 활약하고 있다. 지치지 않는 음악적 열정으로 세계무대를 도전했던 베이스 박종민은 마침내 2011년, 제14회 차이코프스키 국제콩쿠르 성악부문 1위를 수상하였으며 제19회 도밍고 오페랄리아 국제콩쿠르에서 작곡가 바그너 특별상을 수상한 그에게 세계적인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는 '비록 베이스 박종민이 작곡가 바그너의 곡을 노래하진 않았지만, 그의 강하고 울림이 깊은 목소리는 그가 훗날 중요한 한 명의 바그너 베이스 가수가 될 것이라는 결론으로 나를 이끌었다' 라며 세계적인 바그너 가수의 탄생을 알렸다.
 
국립합창단
국립합창단은 우리나라 합창음악의 전문성과 예술성 추구를 위해 1973년 창단된 전문합창단의 효시로서, 본격적인 합창예술운동을 위한 선두주자이자 합창음악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 온 한국 최고의 프로합창단이자 세계 최고의 전문합창단이다. 아마추어 수준에서 예술적 차원으로 한국 합창을 끌어 올렸고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합창 대국으로 발전 시키는데 원동력이 되었으며, 배출한 인재들로 인해 한국 성악계에 모든 것을 공급한 모체라는 찬사를 평자들에게서 받았다. 바흐의 마태, 요한 수난곡 등 유명 합창 곡을 대한민국에 소개하였고 르네상스에서부터 현대에 이르는 폭넓은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 유명 합창곡을 모두 무대에 올림으로서 합창음악의 모든 장르를 폭 넓게 소화해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창작곡 발굴에 있어서 칸타타 작곡 위촉과 합창을 위한 창작품 위촉, 공모를 실시하여 우수한 창작곡들이 태어날 수 있도록 하여 발표 및 보급에도 힘쓰고 있다. 이와 같은 한국합창곡 개발과 더불어 한국적 특성과 정감을 표출하는 창법, 해석법의 정립 등에 힘을 기울여 한국합창음악 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다. 합창의 대중화와 합창음악의 예술적 수준을 향상시키며 한국 음악, 특히 한국 성악계의 발전에 공헌하고 있는 국립합창단은 지속적으로 정기.기획공연, 특별공연, 지방순회공연, 오페라 등 연간 60여 회에 이르는 많은 공연을 소화하면서 유럽,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등의 해외공연을 통해 한국 합창의 높은 수준을 과시하며 한국합창의 세계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동안 창단단장 나영수, 2대 배덕윤, 3대 나영수, 4대 오세종, 5대 염진섭, 6대 김명엽, 7대 나영수가 대한민국 국립합창단을 이끌었고, 2011년 7월부터 8대인 이상훈이 이끌고 있다.
 
서울모테트합창단
맑고 깨끗한 울림, 정제된 화음, 깊이 있는 음악으로 순수합창음악의 진수를 선보이며 최고 수준의 합창단으로 평가 받아온 서울모테트합창단은 진정한 프로로서의 바른 정신과 수준 높은 합창음악을 통해 한국 음악문화와 교회음악의 발전을 위 해 지휘자 박치용과 열정적인 음악가들에 의해 1989년에 창단되었다. 자연스러운 발성과 풍부한 배음, 환상적인 하모니로 대변되는 서울모테트합창단의 맑고 깊은 울림은 듣는 이의 마음을 정화시키며 합창단의 고결하고 순수한 정신까지 느끼게 한다. 그리고 깊이 있고 영감에 가득한 음악은 인간의 내면을 위로하며 영혼까지 치유하는 음악의 참의미를 깨닫게 한다. 또한 파트간의 균형과 조화, 단원들의 일체감 넘치는 리듬과 감정의 표출은 합창단의 풍부한 음악성과 지휘자와 모든 단원이 합창단의 정신과 음악적 이상을 함께 나누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정도를 걸어온 서울모테트합창단의 성실성과 음악적 능력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높이 평가 받아왔으며 특히 함께 협연했던 수많은 국내외 유명 연주자들로부터 한국을 대표할 만한 최고수준의 합창단이라는 찬사를 들어오고 있다. 2001년 서울시로부터 <전문예술법인>으로 지정 받아 활동하고 있으며 서울모테트합창단의 성실성과 음악적 능력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높이 평가 받아 왔다. 900여 회가 넘는 연주활동을 통해서도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2002년, 2005년 독일순회연주, 2002년6월엔 6.15 남북 공동성명 2주년 기념하여 평양연주, 10월엔 한국을 대표하는 합창단자격으로 일본문화청이 주최하는 '공연페스티벌'에 초청받아 연주하여 호평 받았으며 '2005통영국제음악제 초청연주', '러시아초청연주' '2008년 러시아와 베트남 초청연주' '2011, 2012 대관령국제음악제'에 초청되어 합창음악의 진수를 선보이며 극찬을 받았다. 이러한 성실한 활동을 인정받아 제37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음악부문 대통령상을 수상(2005년) '2004올해의 예술상 음악부문 우수상' 수상, '게일문화상' 수상(2004) 제6회 대원음악상 연주상' (2011년) 등을 수상 하였다.
 
안양시립합창단
안양시립합창단은 1987년 창단, 독특하고 다이내믹한 발성으로 주목 받아 왔다. 특히 파워풀하고 조화로운 소리로 인해 오페라 합창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 위치에 올랐는데, 전국 10개 도시를 순회하며 연주한 오페라 <안중근>을 비롯, 2001년 일본 동경에서 연주한 오페라 <황진이> 등은 안양시립합창단이었기에 가능한 연주였다는 평을 들었다. 그 외 <카르멘>, <리골레토>, <팔리아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토스카>, <돈 까를로> 등 수많은 오페라에 단골 합창단으로 출연하여 오페라의 완성도를 높였고, KBS교향악단, 서울시향 등 유수의 오케스트라와의 협연과 지방초청연주회로 안양시립합창단의 위상을 높여왔으며 가곡, 성가곡, 팝송 등을 담은 9장의 CD를 출판하였다. 안양시립합창단은 20주년을 지내며 이제까지와는 다른 변화와 새로운 비젼을 위해 수원시립(18년), 대구시립(4년)을 통해 그 능력을 인정받고 '소리의 마술사'라 불리는 이상길 지휘자를 5대 상임지휘자로 영입했으며, 그 변화의 첫 신호로 세계합창연맹(IFCM)으로부터 2008 세계합창심포지움(덴마크 코펜하겐)에 시범합창단으로 초청, When Eastern meet Western이라는 주제로 참가하여 '훌륭한 프로그램으로 동양의 특이하고 환상적인 사운드에 매료되었다' 는 평을 듣게 되어 세계 속에 한국합창단의 존재와 우수성을 나타내는 메신저(대사)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Beethoven, Symphony No.9, Op.125 'Choral'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은 환희와 인류애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4악장에서 독일의 시인 실러의 시에 곡을 붙인 합창이 나오는 까닭에 ‘합창’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작품은 작곡가 베토벤이 완성해낸 마지막 교향곡이자 오랜 세월에 걸쳐 작곡된 역작이기도 하다. 베토벤이 ‘합창’ 교향곡을 완성해낸 것은 그의 나이 53세 때인 1824년 2월의 일이지만 이 교향곡은 이미 1812년경부터 구상되었고, 실러의 ‘환희에 붙여’의 송가에 곡을 붙이려 생각한 것은 그가 고향 본을 떠나 빈으로 가기 이전부터였으니 베토벤은 <교향곡 제9번>을 30년 이상이나 구상하고 있었던 셈이다.

편성 : 피콜로1, 플루트2, 오보에2, 클라리넷2, 바순2, 콘트라바순1, 호른4, 트럼펫2, 트롬본2, 팀파니, 큰북, 심벌즈, 트라이앵글, 현악5부, 소프라노 1, 알토1, 테너1, 베이스1, 혼성4부 합창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변화무쌍한 교향곡

1824년 5월 7일, 빈의 케른트너토르 극장에서 교향곡 ‘합창’이 초연되었을 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 변화무쌍한 교향곡에 청중들은 놀라움과 경외감을 느꼈다. 그러나 정작 베토벤은 자신이 만들어낸 이 위대한 교향곡이 초연되는 그 순간 단지 참관자의 역할만을 수행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날 음악회의 실질적인 지휘자는 미하일 움라우프(Michael Umlauf, 1781-1842)였고 악장을 맡은 바이올리니스트인 이그나츠 슈판치히(Ignaz Schuppanzigh, 1776-1830)도 지휘자로서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베토벤은 지휘자 옆에 자리를 잡고 악보를 보면서 연주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중요한 부분에서 지시를 내리기도 했으나 불행히도 음악 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었다. 당시 합창단의 소프라노 파트에서 노래한 그레브너 부인은 베토벤의 모습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는 연주에 맞추어 악보를 읽어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한 악장이 이미 끝났는데도 페이지를 계속 넘기곤 했다. 공연 때 한 악장이 끝날 때마다 한 남자가 그에게 다가가서 어깨를 건드리고 청중석 쪽을 가리켰다. 박수 치는 손 모습과 손수건이 휘날리는 광경을 보고 그는 머리를 숙였고, 그러면 더욱 큰 함성이 일었다.”

제1악장 Allegro ma non troppo, un poco maestoso 소나타 형식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한 분위기의 현의 화음으로 시작되어, 바이올린이 살짝 제1주제의 운을 뗍니다. 주제는 점차 힘을 모아 증대된 후, 전 오케스트라에 의해 장엄하게 펼쳐지죠. 제2주제는 목관에 의해 은은한 울림으로 연주된 후, 제1주제로 장렬한 클라이맥스를 이룹니다. 내내 침통한 분위기가 극적으로 전개됩니다.

 

제2장  Molto vivacce 스케르초입니다. 강렬한 현의 터치와 팀파니의 울림으로 시작됩니다. 바그너는 이 극적인 부분을 두고“절망에 쫓겨 새로운 행복을 휘어잡으려고 노력하는 듯하다”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빠른 진행을 보입니다.

제3악장 Adagio molto e cantabile 자유로운 변주곡으로 숭고한 서정이 돋보이는 악장입니다. 제1바이올린이 다른 악기들의 받침 속에 조용히 제1주제를 연주하고 관악기가 조용한 화성의 메아리를 이루지요. 동경으로 가득 찬 제2주제를 제1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연주합니다. 곡은 변주와 함께하는 내내 천국의 나래처럼 잔물결을 이루며 평화로운 인상을 줍니다.

 

제4악장  Presto  - 알레그로 아사이는 변주곡 형식이라 할 수 있는데,4명의 각 성부별 독창과 합창으로 이루어진 ‘환희의 송가’입니다. 고뇌를 이겨내고 환희에 도달한다는 음악 내용이 그야말로 압도적이죠. 처음에는 불협화음이 사용된 괴상하고 격정적인 빠른 리듬으로 시작됩니다. 도입부는 마치 ‘사람은 많은 투쟁을 경험하며 그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것을 가르치는 듯합니다. 이어서 지금까지 나온 제1악장의 투쟁과 노려, 제2악장의 열정, 제3악장의 평화의 주제들을 숨 가쁘게 회고하며 두루 연주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좀 더 다른 것이다”라는 의미에서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에 의한 부정이 차례로 이루어지면서 드디어 절망 이후에 찾아오는 환희의 주제가 펼쳐집니다. 이 주제는 기품을 지닌 채 거침없이 흐릅니다. 3회 변주되어 차츰 악기의 수를 증가시키며 두터움과 색채를 더해가죠. 리드미컬한 팡파르가 멎는 순간, 바리톤이 힘차게 서장을 장식합니다.

제5악장 Presto - 'O Freunde nicht diese Tone' Allegro assai

 

 

 


O Freunde, nicht diese Toene! Sondern lasst uns angenehmere anstimmen,
und freudenvollere
오, 벗들이여! 이 선율이 아니고 더욱 기쁨에 찬 노래를 부르지 않겠는가!
Freude, schoener Goetterfunken 환희여, 아름다운 신들의 찬란함이여
Tochter aus Elysium, 낙원의 여인들이여
Wir betreten feuertrunken, 우리 모두 황홀감에 취해
Himmlische, dein Heilitum! 빛이 가득한 성소로 돌아가자
Deine Zauber binden wieder, 엄한 현실이 갈라놓았던 자들을
Was die Mode streng geteilt; 신비로운 그대의 힘은 다시 결합시킨다.
Alle Menscen werden Brueder, 그대의 고요한 나래가 멈추는 곳
Wo dein saufter Fuegel weilt,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
Wem der grosse Wurf gelungen, 위대한 하늘의 선물을 받은 자여
Eines Freundes Freund zu sein, 진실된 우정을 얻은 자여

Wer ein boldes Weib errungen, 여성의 따뜻한 사랑을 얻은 자여
Mische seinen Jubel ein! 다 함께 환희의 노래를 부르자
Ja, wer auch nur eine Seele 그렇다, 비록 한 사람의 정이라도
Sein nennt auf dem Erdenrund! 땅 위에 그를 가진 사람은 모두

Und wer's nie gekonnt, der steble 그러나 그 조차 가지지 못한 자는
Weinend sich aus diesem Bund. 눈물 흘리며 조용히 떠나 가라
Freude trinken alle Wesen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An den Bruesten der Natur; 자연의 가슴으로 횐희를 마치고
Alle Guten, alle Boesen 모든 착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Folgen ihrer Rosenspur, 환희의 장미핀 오솔길을 간다.
Kuesse gab sie uns und Reben, 환희는 우리들의 입맞춤과 포도주
Einen Freund, geprueft im Tod; 그리고 죽음조차 빼앗아 갈수 없는  친구를 주고

Wollust ward dem Wurm gegeben, 땅을 기는 벌레조차도 쾌락은 있어
Und der Cherub steht vor Gott! 천사 케루브는 신앞에 선다
Frob, wie seine Sonner fliegen 환희여, 수많은 태양들이
Dureb des Himmels praechtgen Plan, 무한한 하늘의 궤도를 즐겁게 나르듯

Laufet, Brueder eure Bahn, 형제여, 그대들의 길을 달려라
Freudig, wie ein Held zum Siegen,영웅이 승리의 길을 달리듯
Seid umsclungen, Millionen! 백만인이여, 서로 껴안으라
Diesen Kuss der ganzen Welt! 전세계의 입맞춤을 받으라
Brueder! Ueber'm Sternenzelt 형제여! 별의 저편에는 사랑하는
주님이 계시는 곳이다
                                           
Muss ein lieber Vater wornen. 억만의 인민이여
Ihr stuerzt nieder, Millionen? 엎드려 빌겠느뇨?
Abnest du den Schoepfer, Welt? 세계의 만민이여, 조물주를 믿겠느뇨?
Such' ihn ueber'm Sternenzelt! 별의 저편에서 사랑하는 주님을 찾으라1
Ueber Sternen muss er ihronen. 별들이 지는 곳에 주님은 계신다.



이 곡은 베토벤 예술의 최고 절정을 이루고 있으며, 고금의 교향곡 중에서 가장
뛰어난 걸작품의 하나이다.  베토벤이 항상 공감하고 애독했던 독일의 위대한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Fridrich Schillers)의 장시 환희의 노래 에 의한 합창 붙임을
가진 교향곡이며, 네 사람의 독창과 대합창이 교향곡에 사용된 최초의 음악이다.

23살의 젊은 베토벤은 <환희의 노래>를 읽고 음악으로 옮기려고 마음먹었었다.
그러나 실제로 환희의 노래 가 교향곡에 담겨 완성된 것은 31년 뒤인 1824년이다. 베
토벤이 처음으로 교향악과 칸타타의 결합을 시도한 것은 1808년의 합창 환상곡
작품 80번에서였으며 이 시도가 후에 합창 교향곡이란 위대한 작품을 만들게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 곡을 작곡할 때 베토벤은 완전히 귀머거리가 되어 음향의 세계와 단절된 상태
에서 무한한 고통과 싸워야 했고, 육체적인 건강의 악화와 가난 때문에 그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그러한 환경에서 그는 고뇌를 맛본 환희를 영원히 노래 부르고 음으로써 표현한
것이다. 그는 예술에 의해 인간의 고난을 극복했으며 역경에 놓일수록 그것을 이겨
나가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Beethoven, Symphony No.9 in D minor 'Choral'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Elisabeth Schwarzkopf, soprano

Elisabeth Höngen, conralto

Hans Hopf, tenor

Otto Edelmann, bass

Chor der Bayreuther Festspiele

Orchester der Bayreuther Festspiele

Wilhelm Furtwängler, conductor

1951.07.29

 

Wilhelm Furtwängler/BFO - Beethoven, Symphony No.9 in D minor Op.125

1951년 7월 29일 바이로이트 축제 공연의 이 실황녹음은 푸르트벵글러 타계 이듬해 1955년에 LP음반으로 발매되었습니다. 녹음자가 푸르트벵글러에게 공연에 대해 묻자 “(연주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좋았던 만큼 (녹음은) 안 좋군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푸르트벵글러는 이 실황녹음 공개를 끝내 거부했죠. 그러데 이 음반은 발매 후 상이란 상은 싹쓸이하고 지금도 베토벤 교향곡 9번 음반 중 가장 강력히 군림하고 있습니다.

 

철학자 에릭 호퍼와 ‘합창 교향곡’

철학자 에릭 호퍼(1902-1983)를 아시는지요? ‘길 위의 철학자’로 불렸던 미국의 인문학자입니다. 학교라고는 문턱도 밟아보지 못했던, 그야말로 독학의 철학자입니다. 그에게 학교란 다름 아닌 ‘책’이었지요. 부두노동자, 벌목꾼 등으로 일하면서 읽고 썼습니다. 이 정도는 돼야 ‘무학의 통찰’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 겁니다. 철학자로 명성을 얻었던 계기는 1951년 펴냈던 <맹신자들(The true believer)>이라는 저서였지요. 당시의 세계는 2차 세계대전과 나치즘의 충격을 채 지우지 못하고 있었고 미국과 소련을 주축으로 냉전 체제가 막 형성되고 있던 차였습니다. 쉰 살의 부두노동자였던 호퍼는 이 책으로 단숨에 명성을 얻습니다. 영화 <카핑 베토벤> 포스터.

그는 이 책에서 “광신적 기독교 신자, 광신적 이슬람교 신자, 광신적 민족주의자, 광신적 나치가 서로 다른 것은 분명하지만, ‘광신’이라는 점에서는 한 부류”라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광신은 어디서 올까요? 아마 좌절에서 비롯할 겁니다. 그래서 호퍼는 “대중운동은 좌절한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경향이 짙다”며 “대중운동의 지도자들은 그 열망을 꿰뚫어보고 대중을 선동한다”고 말합니다. 국내에도 번역돼 있는 책입니다. 저는 그 책의 서평에서 “대중운동의 동력을 ‘좌절한 영혼’에서 끌어내려는 논지에는 다소 무리가 엿보이지만, 광신적 도그마에 반대하는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그 호퍼가 아홉 살 때의 일입니다. 당시 그는 시각장애인이었지요. 다섯 살 때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호퍼는 평생 동안 시각장애인으로 살진 않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15세에 시력을 회복했지요. 하지만 아홉 살의 호퍼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아들을 택시에 태워 뉴욕의 콘서트홀로 데려가지요. <에릭 호퍼 자서전-떠돌이 철학자의 삶에 관한 에피소드 27>(방대수 옮김)에 등장하는 내용입니다. 호퍼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평상시에는 차분했던 아버지가 이날만은 이상하게 들떠 있었다. 아버지는 음악을 사랑했고, 우리가 들으려 했던 베토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게 ‘베토벤이 귀가 멀었을 때 작곡한 교향곡 9번은 천상의 멜로디로 된 태피스트리(tapestry, 회화적 직조물)’라고 얘기해 주었다. 특히 3악장은 숭고하다고 이야기하면서 그중 일부를 콧노래로 부르기도 했다. 콘서트가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는 기억에 없다. 3악장이 연주될 때 아버지는 내 팔을 움켜잡았고, 나는 날개라도 달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습니다. 아홉 살 호퍼는 그날 뉴욕의 콘서트홀에서, 대단히 결정적인 음악적 경험을 했습니다. 이렇듯이 음악은 단순히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닙니다. 호퍼는 그날의 기억을 죽는 날까지 간직했다고 하지요. 성인이 된 그는 자신이 외롭고 버림받은 기분이 들 때마다, 아버지가 불러줬던 3악장을 콧노래로 따라 불렀다고 합니다. 그의 자서전에 등장하는 회고를 조금 더 따라가 보겠습니다. “1941년 마침내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하게 되었을 때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축음기와 교향곡 9번이 담긴 레코드 몇 장을 산 것이었다. 그러나 그 레코드 가운데 어느 것도 내가 기억하고 있는 3악장을 제대로 연주해내지 못했다. 너무 빠르고 성의가 담기지 않은 연주여서 그 애끓는 슬픔이 제대로 전해 오지 않았다.”

그 어느 음반도 아홉 살 때의 감흥을 전해주지 않았다는 것이 호퍼의 회고입니다.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앞 못 보는 아이의 갈망, 아무런 경계심과 의심 없이 활짝 열려 있던 아홉 살짜리의 순수한 영혼…. 어디 그뿐이었겠습니까. 말하자면 그날 호퍼에게 전해졌던 모든 감각적 경험은 베토벤 교향곡 9번으로 귀결되고 있었지요. 예컨대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아버지의 따스한 체온, 스킨십으로 전해 오던 아버지의 흥분감, 앞 못 보는 아들을 향한 안타까운 부성애 같은 것들이었겠지요. 하지만 어느덧 마흔 살이 된 호퍼에게 그것은 어느 정도 ‘역사화된 기억’, 다시 말해 약간은 흐릿하게 지워진 경험이었을 테니, 당연히 음악의 감흥이 옛날 같지 않았겠지요.

물론 거기에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호퍼가 아버지와 함께 베토벤 교향곡 9번을 뉴욕의 콘서트홀에서 들었던 때는 1910년대 초반이었지요. 이때만 해도 음악이란 당연히 연주회장에서 듣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현장에서의 생동감’이야말로 음악의 실존이었습니다. 하지만 호퍼가 음반을 샀던 1940년대는 어땠나요? 네, 그렇지요. 스테레오 녹음은 아직 막을 올리기 전이었지만, ‘리코딩’이라고 불리는 기계적 재생이 바야흐로 보편화되고 있던 시기입니다. 그런데 실제 연주와 녹음할 때의 연주는 미묘한 차이가 있지요. 리코딩을 염두에 뒀을 때는 연주자들이 포르테시모나 피아니시모 같은 극단적인 셈여림을 피하게 됩니다. 음악의 템포도 어중간하게 될 수 있고, 휴지부에서도 충분히 연주를 멈추지 않은 채 후딱 다음 프레이즈로 넘어가게 됩니다. 특히 녹음기술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던 1940년대에는 오늘보다 이런 현상이 더 두드러졌을 거라고 짐작됩니다. 그래서 호퍼가 남긴 글, “너무 빠르고 성의가 담기지 않은 연주여서 그 애끓는 슬픔이 제대로 전해 오지 않았다”라는 문장은 적확합니다.

1951년 7월 29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합창 교향곡’을 지휘하는 푸르트벵글러.

자, 오늘은 아홉 살 호퍼가 벅찬 감동을 받았던 베토벤의 교향곡 9번 D단조 Op.125를 듣겠습니다. 아시다시피 ‘합창’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입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실러의 ‘환희에 붙여서’에 의해 4악장에 합창을 수록함”으로 돼 있습니다. 4악장에서 네 명의 독창자와 혼성합창단이 등장하는데, 교향곡에서 인간의 목소리를 사용하고 있는 첫 번째 사례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환희에 붙여’ 혹은 ‘환희의 송가’라고도 불리는 실러(1759-1805)의 시는 1785년에 처음 쓰였지요. 18세기 후반의 청년 지식인들에게 열렬히 사랑받았던, 우리로 치자면 1970년대의 ‘아침이슬’과 비슷한 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교향곡 9번에서 베토벤이 사용한 텍스트는 1785년의 오리지널 버전은 아니지요. 실러가 이후에 가필했을 뿐더러, 베토벤이 작곡 과정에서 부분적 수정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낙원에 들어선다는 본래의 주제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베토벤은 이 시에 곡을 붙이려던 계획을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던 1792년 무렵부터 가졌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구체적이고도 명확한 작곡 스케치가 발견되는 것은 1817년의 노트에서입니다. 당시는 베토벤에게 상당히 어려웠던 시절이었지요. 이때 그의 귀는 완전히 들리지 않았습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베토벤이 유난히 애착을 가졌던 조카 카를은 점점 불량소년이 되어갔고, 행실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카를의 생모(그러니까 베토벤의 제수)와 양육권을 둘러싼 법정 공방까지 벌여야 했습니다. 게다가 당시 빈의 음악계와 청중은 베토벤의 음악을 그다지 탐탁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베토벤의 음악은 지나치게 심오하고 무거웠던 까닭입니다. 당시는 오스트리아 빈에 반동적 기운이 팽배할 때였지요. 1815년에 빈 회의를 주도했던 오스트리아의 재상 메테르니히의 권력은 점점 공고해졌고, 베토벤이 지지했던 공화주의는 위축되고 있었습니다. 정치적 상황이 반동으로 치닫게 되면 문화와 예술은 어떻게 될까요? 점점 사탕발림으로 변해 갑니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카핑 베토벤>에서 ‘합창 교향곡’이 연주되고 있는 장면.

“백만의 사람들이여, 포옹하라! 이 입맞춤을 전 세계에!”

교향곡 9번 ‘합창’은 바로 이런 시기에 만들어집니다. 초연은 1824년 5월 7일, 빈의 케른트너토어 궁정극장에서 있었지요. 아그네츠카 홀란드가 연출한 영화 <카핑 베토벤>을 기억하시나요? 이 영화에 바로 그날의 초연 장면이 등장합니다. 물론 영화 자체는 픽션이지만 초연에 대한 묘사만큼은 당시의 상황을 매우 그럴 듯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베토벤은 그날 초연 무대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던 까닭에 지휘봉을 들 수가 없었지요.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지휘자 미하일 움라우프(1781-1842)의 지휘봉을 따라가며 연주했습니다. 연주가 다 끝나고 객석에서 열광의 파도가 휘몰아칠 때, 누군가 객석을 향해 베토벤을 돌려세웠다고 합니다. 기록에 따르면 알토 독창자였다고 하지요. 그때 베토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열렬하게 환호하는 청중의 모습, 그리고 허공을 향해 날아가는 손수건들이었다고 합니다.

Christian Thielemann/WPh - Beethoven, Symphony No.9 in D minor Op.125

Annette Dasch, soprano

Mihoku Fujimura, alto

Piotr Beczala, tenor

Georg Zeppenfeld, bass

Wiener Singverein

Wiener Philharmoniker

Christian Thielemann, conductor

Großer Saal, Musikverein, Wien

2010.04

1악장: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운 포코 마에스토소

‘합창’의 전체 연주시간은 약 70분입니다. 마음먹고 들어야 하는 대곡(大曲)입니다. 1악장은 베토벤의 다른 교향곡들과 달리 매우 흐릿한 느낌으로 시작합니다. A와 E음이 오래도록 지속음으로 울려 나옵니다. 시작부터 이렇게 지속음을 끌고 가는 장면은 훗날 말러의 교향곡 ‘거인’에서도 나타나고, 브루크너의 교향곡에서도 빈번히 등장하지요. 신비하고 몽환적인, 뭔가 불안한 느낌이 감도는 도입부에 이어서 오케스트라가 총주가 매우 단호하고 장대한 느낌의 첫 번째 주제를 연주합니다. ‘빰밤 빰밤’ 하고 터져 나오는 첫 주제, 잘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잠시 경과부를 거친 다음, 드디어 목관이 연주하는 두 번째 주제가 등장합니다. 첫 주제가 장엄하고 생동감 있는 것에 비해 두 번째 주제는 소박하고 정적입니다. 이 두 개의 주제를 염두에 두고 이후에 펼쳐지는 변화에 귀를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음악에 그냥 마음을 맡겨도 좋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첫 번째 주제를 장대한 분위기로 재현하는 마지막 장면까지,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것!

2악장: 스케르초. 몰토 비바체

2악장은 1악장의 심각함을 완전히 뒤집는 스케르초 악장입니다. 현악기들이 급작스러운 느낌의 연주로 분위기를 전환하면서 팀파니가 호방하게 막을 올립니다. 이어서 바이올린이 잘게 쪼개지는 듯한 음형들을 다소 빠른 템포로 연주하지요. 그 부분이 주제입니다. 그 주제는 2악장이 끝날 때까지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팀파니가 옥타브 연타로 거기에 호응합니다.

3악장: 아다지오 몰토 에 칸타빌레

3악장은 철학자 호퍼의 아버지가 “숭고하다”고 말했던 바로 그 악장. 바이올린이 아름다운 선율의 주제를 아련한 느낌으로 연주하면서 시작합니다. 관악기가 메아리처럼 간간히 울려 퍼집니다. 이어서 음악의 템포가 조금 빨라지면서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어울려 역시 아름다운 선율의 두 번째 주제를 연주하지요. 이 두 개의 주제를 계속 변주하다가 마침내 우리가 기다려 왔던 4악장, 급격한 느낌의 프레스토 악장으로 들어섭니다.

4악장: 프레스토 - 알레그로 아사이

관악기들의 소란한 음향이 한 차례 울려 퍼지고, 첼로와 베이스가 뭐라고 말을 건네 오는 듯합니다. “자, 지금부터 하는 얘기를 들어보십시요.” 오페라나 오라토리오에 등장하는 해설자의 레치타티보(recitativo)와도 같은 악구입니다. 이어서 그 유명한 ‘환희의 송가’ 테마가 목관에 의해 잠시 나타났다가, 첼로와 베이스, 이어서 현악기 전체, 마지막으로 오케스트라 총주로 점점 확장되면서 얼굴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드디어 노래가 등장합니다. 베이스(바리톤이 부르기도 함)가 던지는 첫 번째 노랫말, “오 벗이여, 이런 음들이 아니라네! 더 기쁘고 즐거운 노래를 부르세”를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이 가사는 실러의 시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베토벤이 새롭게 첨가한 노랫말입니다. 합창은 “백만의 사람들이여, 포옹하라! 이 입맞춤을 전 세계에!”라고 노래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을 내서 전체 악장을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교향곡 9번의 벅찬 감동을 맛보기 위해서는 당신의 시간과 열정을 투자해야 합니다.

 

추천음반

1. 빌헬름 푸르트벵글러(Wilhelm Furtwängler)/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1951, EMI.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처음으로 열린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연주했던 실황이다. 영국의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리마스터링했다. 가장 권위 있는 ‘합창’으로 평가받는 기념비적인 녹음이다. 독창자로는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소프라노), 엘리자베스 횡겐(알토), 한스 호프(테너), 오토 에델만(베이스)이 포진했다. 음색은 전반적으로 어둡고 무겁다. 고난을 뚫고 환희로 나아가는 드라마틱함, 아울러 중후한 낭만성이라는 측면에서 단연 1순위에 놓이는 음반이다. 나치 시절을 힘겹게 살아내야 했던 푸르트벵글러의 생애가 오버랩되는 연주이기도 하다. 모노녹음이다.

2. 페렌츠 프리차이(Ferenc Fricsay)/베를린 필하모닉, 1957. DG. 베를린 필하모닉이 연주한 ‘합창’을 대표하는 지휘자는 물론 카라얀일 것. 하지만 헝가리 태생의 지휘자 페렌츠 프리차이는 카라얀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합창’으로 또 하나의 드라마를 남겼다. 말하자면 이 녹음에는 카라얀 이전의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느낄 수 있었던 향취가 담겼다. 게다가 프리차이 특유의 소박하면서도 강인한 음악성, 그가 짧은 생애를 통해 보여줬던 음악적 진정성은 듣는 이의 마음을 온전히 음악에 집중케 한다. 독창진도 좋다. 이름가르트 제프리트(소프라노), 마우렌 포레스터(알토), 에른스트 회플리거(테너),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바리톤)가 포진했다.

3.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베를린 필하모닉, 1976, DG. 카라얀이 남긴 ‘합창’ 녹음은 여러 편이다. 어느 것이나 들을 만한 연주다. 오늘 추천하는 1976년 리코딩은 독창진이 특히 돋보인다. 안나 토모바 신토프(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콘트랄토/알토), 페터 슈라이어(테너), 호세 반 담(바리톤)이 포진했다. 카라얀 특유의 섬세하고 유려한 장기가 잘 드러나는 연주일 뿐 아니라, 1980년대의 녹음에 비해 오히려 강렬한 맛이 한층 부각되고 있다. 2악장에서 팀파니가 전해주는 음향적 쾌감, 또 3악장에서 들려주는 선율미도 빼어나다. SACD로도 출시돼 있다.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 시절에는 음악을 멀리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 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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