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 2013년)

김선욱 <베토벤 소나타 전곡>. 8

나베가 2013. 11. 20. 23:30

김선욱 <베토벤 소나타 전곡>. 8

 

 

 

 

 

 

 

피아니스트 김선욱
Sunwook KIM, pianist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18세의 나이로 2006년 세계적 권위의 리즈(Leeds)피아노 콩쿠르에서 대회 40년 만의 최연소 그리고 아시아인 최초로 우승을 거머쥐며 세계 음악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콩쿠르 결선에서 마크 엘더 경(卿)이 지휘하는 할레 오케스트라와 연주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은 만장일치의 호평을 받았다.

 
런던 위그모어홀 리사이틀 데뷔 및 로열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 협연(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 with 정명훈 지휘) 및 할레 오케스트라 협연(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제2번 with 마크 엘더 경 지휘), 핀란드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협연(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4번 with 앤드루 맨지 지휘)등 지난 해 유럽을 중심으로 주목할 만한 여러 무대들에서 성공적인 연주를 펼친 김선욱. 지난 1월 피아니스트 엘리자베스 레온스카야의 대타로 갑작스럽게 서게 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무대에서 존 엘리엇 가디너 경의 지휘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4번을 연주해 성공적인 데뷔를 치른 그가 2013년에도 주목할 만한 무대를 계속 이어나간다.
 
2013/14년 예정되어 있는 주목할 만한 협주곡 연주로는 5월 번머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협연(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제2번 with 키릴 카라비츠 지휘), 8월 BBC 프롬스 데뷔 – 번머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협연(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 with 키릴 카라비츠 지휘), 9월 할레 오케스트라 협연(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4번 with 마크 엘더 경 지휘), 10월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협연(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4번 with 유라이 발쿠아 지휘) 및 함부르크 NDR 심포니 오케스트라 협연(진은숙 피아노 협주곡) 등이 있다.
 
또한, 리사이틀 공연으로 지난 2월 파리 살 플레옐의 “피아노 에뜨왈 시리즈” 재초청 연주를 성공적으로 치른 그는 12월 다시 한번 살 플레옐에서 리사이틀을 예정하고 있으며, 그 밖에 라 로크 당테롱 페스티벌 데뷔, 부에노스 아이레스 떼아뜨르 콜론 리사이틀 공연 및 2012년부터 LG아트센터에서 진행하고 있는 베토벤 소나타 전곡 프로젝트를 계속한다. 또한, 2012년 봄 일본에서의 성공적인 데뷔 무대에 이어 도쿄 기오이 홀(Kioi Hall), 오사카 심포니 홀, 나고야 시라카와 홀(Shirakawa Hall) 에서도 다시 연주할 예정이다.
 
실내악 연주에 열정을 보이기도 하는 김선욱은 베를린(필하모니에)과 파리(살 플레옐)에서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들과 함께 브람스를 연주하고, 독일 바이올리니스트 베로니카 에베를레(Veronika Eberle)와는 이태리에서 함께 연주할 예정이다.
 
1988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선욱은 3세 때 피아노를 시작하여 10세에 금호 영재 시리즈를 통해 연주 무대에 데뷔했으며 2년 후 협주곡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리즈 콩쿠르 이후 영국 아스코나스 홀트 매니지먼트사와 계약 후 런던으로 이주한 김선욱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디너 지휘), 로얄 콘세르트헤보우,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과 도쿄 필하모닉(정명훈 지휘), 런던 필하모닉(시나이스키 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아쉬케나지 지휘), 할레 오케스트라(엘더 지휘), BBC 웨일즈 국립 오케스트라, BBC필하모닉, 로열 스코틀랜드 국립 오케스트라, 로잔느 체임버 오케스트라, 아스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정기 연주회 시리즈 등에서 연주하였고,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야노프스키 지휘),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정명훈 지휘),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피셔 지휘), BBC필하모닉(노세다 지휘)의 한국 투어에서 협연자로 연주하였다.
 
또한, 최근 김선욱은 런던 위그모어홀, 파리 살 플레옐 “피아노 에뜨왈 시리즈”, 도쿄 기오이 홀, 오사카 심포니홀, 브뤼셀의 “클라라 페스티벌”과 “여름 페스티벌”, 독일 본(Bonn)의 “베토벤 페스티벌” 및 “루르 피아노 페스티벌”, “멕켄부르크-포르포메른 페스티벌”과 프랑스의 “디나르 페스티벌”, 런던과 밴쿠버의 “쇼팽 소사이어티”, 미국 “아스펜 음악 페스티벌”, 뉴욕의 “인터내셔널 키보드 인스티튜드”, 아일랜드의 “뉴 로스 인터내셔널 피아노 페스티벌”, 폴란드의 “Duszniki Zdrój 인터내셔널 쇼팽 페스티벌” 및 한국의 “통영국제음악제” 등에서 리사이틀을 가졌다.
 

1999년부터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김대진을 사사한 김선욱은 2008년2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였으며, 리즈 콩쿠르 외에 2004년 에틀링엔 콩쿠르(독일), 2005년 클라라 하스킬 콩쿠르(스위스)에서 우승을 한 바 있다. 한국에서 김선욱은 대원예술인상(2005), 제3회 금호음악인상(2007)을 수상한 바 있다.

 

 

Piano Sonata No.30 in E Major, Op.109
베토벤 / 피아노 소나타 30번, Op.109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0번 (Piano Sonata No.30 in E major, Op.109)

이 곡은 베토벤의 세개의 후기 소나타 중 첫번째 작품으로 1악장의 서정적인 선율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1815년 말에 동생 칼이 죽고 베토벤은 그의 아들인 조카 칼의 후견인이 되는데 칼의 후견인 문제를 둘러싸고

 칼의 어머니와 장기간에 걸친 소송 사건이 일어나 베토벤은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치게 됩니다. 베토벤은 생애를

 통해서 몇 번인가 격렬한 연애 경험을 했으나 실제로 결혼은 하지 않았습니다. 소년시절의 어두운 가정, 충족

되지 않는 사랑, 이런 것들이 조카 칼에 대하여 베토벤으로 하여금 집착을 가지게 했습니다. 재판은 일단 베토벤

의 승소로 끝나기는 했지만, 이 문제로 그도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이후 1816년에는 창작의 슬럼프에 빠져

고난의 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연작 가곡집 "아득한 연인에게 부처" 작품98(1816)과

 "피아노 소나타" 작품101을썼습니다. 창작의 부진으로부터 재기하게 되는 것은 1817년을 지나 1818년의

작품 106인 피아노 소나타 제29번 "해머클라비어"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1817년 가을, 베토벤은 "해머클라비어" 소나타 작품106 의 스케치를 시작하여 다음해에 완성했는데 여기서

부터 그의 진짜 빛나는 후기가 시작됩니다. 1813년에 착상하여 1823년까지 걸린 "미사 솔렘니스"의 작곡과,

이 동안 병행하여 작곡한 3곡의 피아노 소나타 작품109, 110, 111 및 "교향곡 제9번", 그리고 일련의 현악

 4중주곡 (제12번부터 제16번까지) 이 종교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울림 속에서, 베토벤 만년의 깊은 사색을 

내고 있습니다.

 



 

 

마지막 3곡의 소나타 (Op.109, 110, 111)은 각각 1820년, 21년, 22년에 차례로 완성되었습니다.

1820년 9월 20일 출판사에 보낸 편지에 베토벤은   "3곡의 소나타가 곧 완성 될 것입니다.

처음 것은 조금만 손질하면 되고 나머지 2곡은 한시라도 빨리 끝낼 생각입니다."

라고 적은 것으로 보아 마지막 소나타 3곡에 대한 작업은 거의 같은 시기에 이루어진 듯합니다.

 30번 Op.109 는 조카의 일로 고통받고 있는 마음을 스스로 위로하려는 듯 서정적인 흐름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소나타 형식의 1, 2악장에 비해 변주곡 형식의 3악장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이 무렵부터 베토벤은 종종 앓아 눕게 되는데, 그래도 조카 칼을 돌보면서

창작 활동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826년에 자살 미수 사건을 일으킨 조카 칼을 데

 그나이센도르프에 있는 동생 요한의 집으로 요양을 갔다가 제수와의 사이가 좋지 않아 추운

겨울 날씨에 우유마차를 타고 빈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병이 나서 1827년 3월 26일 빈에서 세상

 떠났습니다.

 

Piano Sonata No.31 in Ab major, Op.110
베토벤 / 피아노소나타 31번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Wilhelm Kempff, Piano



이 소나타의 처음 착상은
1820년의 행복하고 평화로운 여름날에 얻었다고 하는데
완성된 날짜는 베토벤 자필로
1820년 12월 25일이라 씌어 있다.
이 소나타는 아무에게도 헌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날짜는 알수없지만
베토벤이 신트라에게 부친 편지에 의하면
이 내림가 장조 소나타와 다음의 다 단조 소나타는
브렌타노 부인에게 헌정하는 것이라고 쓰여 있음에도
완성된 작품에는 웬일인지 헌사(獻辭)가 없다.

천재의 창작 과정에서는
늘 크나큰 흥미로움과 놀라움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이 소나타와 같이 베토벤의 작품 중에서도
고상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이 흘러 넘치는
제1악장이나....

또 그의 생애의 고뇌가 그대로 드러나는 듯한
감동적인 아리오소와 푸가 등의 작품에서는
그 창조적인 과정을 스케치 단계부터 상세히 짚어볼때
이런 느낌이 한층 강하게 든다.



제1악장 Moderato cantabile molto espressivo

1악장 (Moderato cantabile)
Wilhelm Kempff, Piano

‘con amabilita’라고 쓰여진 주제에 의해
구름 한 점 없이 활짝 갠 날씨의 화창함과
그 다음 악절에 이어지는 사랑의 노래,
이와 같이 아름다운 악상으로 시작되는 작품은
베토벤의 다른 작품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것이다.

베토벤의 스케치 노트에 의하면
이 아름다운 주제의 골격과 그 변화를
처음부터 단번에 써내려 갔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 30의 3번,
사 장조의 주제와 유사한 데에서
지난 날의 행복한 추억과 관련이 있는것이 아닌가 하고 상상한다

제2 주제는 음계의 하행 동기이며,
제1악장 전체의 행복한 기분 속에서
경과적인 의미를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전개부에서는 제1 주제의 이 ‘사랑의 주제’가
단조에 의해 제시되고,
그 후 여덟 번에 걸쳐 주제 반복이 이루어진 채
그대로 재현부에서 주제의 복귀가 이루어지는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스케치 노트에 의하면,
베토벤은 주제의 착상과 더불어 단조에 의한
전개부의 시작을 생각하고는 거침없이 단번에
재현부까지 써 내려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왼손 반주 부분의 음형에 대해서는
하나하나마다 변화를 주어,
이 부분에 대해 매우 고심하고 숙고하였음을
몇 번이나 다시 쓰여진 자필 원고를 통해 알 수 있다.

주제 반복 후 재현부는
제시부와 거의 같은 형식으로 쓰여져 있는데,
주목할 곳은 코다 부분이다.
이 몇 마디 되지 않는 선율에 대한 베토벤의 집착은
단순히 넘길 만한 것이 아니었다.


잊기 안타까운 이 행복한 기분을
어떻게 하면 마음을 끌 만한 선율로 나타낼 것인가에 대해
베토벤은 몇 번이나 고민을 거듭하며 다시 고쳤다.

그럼에도 그것은 처음 생각과는 달리
마음을 매료시키는 최선의 작품이 되지 못했던것 같다.

행복했던 기분을 충분히 나타내지 못한
평범한 악절은 몇 번이나 지워졌다가 다시 쓰이면서
보다 간결해지게 되었다.
여기에서 베토벤은 한번 쓴 악보를 고쳐 쓰는 데 있어서도
비범한 재주를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제2악장 Allegro Molto

2악장 (Allegro molto)
이것은 독립된 2박자의 스케르초이며,
불안한 기분과 당돌하고 제멋대로인 감정이
착잡하게 어우러진 삽입적인 악장이다.

이 주제의 착상은 제1악장의 제2 주제 동기를
검토함으로써 추측할 수 있다.
또, 마르크스에 의해 그 당시 유행했던
풍자적 민요 `난 쓸모 없는 놈이야’라는 노래의 반복 구절을
베토벤이 의식하여 거기에 짜 맞춘 것인지
어떤지도 확실하지 않다.

트리오는 한번 보면 전혀 다른 동기의 결합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잘 분석해 보면 스케르초 동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제1악장 제1 주제 종결부의 발전 선율에서,
또 제시부의 마지막에서도 그 동기 부분을 발견할수 있다
.

제3악장 Adagio ma non troppo
3악장 첫 부분. Adagio ma non troppo

3악장 둘째 부분. Fuga;Allegro ma non troppo

3악장 (Adagio ma non troppo)
Wilhelm Kempff, Piano


아다지오는 레시타티브에 의한 서주부와
2중의 아리오소 도렌테와 푸가라는 구조를 제시하고 있다.
베토벤이 제1악장의 착상을 얻었을 때에는
이 작품에 개인적인 감상의 고백
즉, 그 자신의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 담아 둔
생애의 고뇌에 대해서 호소한다는 점 등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침 그 즈음 5년이나 걸쳐서 펜을 움직이고 있었던
장엄 미사작곡의 영향도 받은 베토벤은,
이 악장에서 신과의 직접적인 대화,
죽음의 고뇌와 그것에 대한 영원한 안식을 감지하고,
늙어버린 자신이 갈망하는 정신적 평화,
그러한 정신 내면 세계의 관조가 실로 심각하게 가슴을 죄듯이
슬픔에 넘치게 되면서 아리오소의 음악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곡은 가슴속의 가장 깊숙한 문을 열듯이 전개된다.
또, 레시타티브가 갖는 무언의 호소력에 이끌려
베토벤은 고뇌하고, 자신의 비운을 탄식하고,
나아가 그 속에서 빛을 구하며 용기를 갖고 투쟁에 뛰어든 인생,
그것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던가 등을 생각하며
체념에 잠긴 채 조용히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

아리오소 도렌테 Klagender Gesang(Arioso dolente)
이 비운의 부분은 대단한 고심 끝에 서서히 써 내려갔다.
연속된 실타래와도 같은 이 슬픔의 선율은
그 즈음의 베토벤의 정신 상태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음악학자들은 베토벤이 이 아리오소의 착상을
무엇에서 암시받았는가에 대해
여러 가지 예를 들며 연구한 끝에
그것이 바흐의 수난곡이라고 보고 있는데
실제로 그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러나 이 음악은 베토벤이 쓴 작품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슬픔으로 가득 찬 악상이며,
그 당시 베토벤의 입장을 생각해 볼 때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그 어떤 요소가 있다.

희망은 모두 무참히 부서져 버리고
절망으로 가득 찬 마음에서 서서히 끓어오르는
삶을 향한 의지 이 푸가의 주제는 삶을 향한 발걸음이다.

그러나 이 주제가 실은 이미 제시된
제1악장 도입 부분의 음형,
평화로운 사랑의 주제에 쓰인 음형을 변형하여 태어났다는 것은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이것은 창조상의 우연의 일치는 아니다.

베토벤이 이 4도 음정의 동기에
대단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음은 과거 여러 작품에서
그 예를 발견할 수 있다.

즉, 비창 소나타나 대공 트리오
또는 제9번 교향곡의 느린 악장의 주제 등이 그 예이다.
그것은 베토벤이 좋아했던 동기였으며,
여러 시기에 걸쳐 확립했던 아이디어로서
자신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했던 선율 동기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진짜 괄목할 만한 것은,
그런 창조 의식에 의해 구성된 구조와
천부적으로 타고난 재능,
그의 내면의 영감에 의한 무의식적 창작력이
정신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하나가 되어,
결정적인 순간에 작품의 꼭 필요한 부분에
틀림없이 구현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베토벤이 보여준 그러한 창조력에
깊이 감동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푸가는 3성의 푸가로 쓰여져,
주제는 대주제를 갖고 교묘하게 전개된다.
자필 원고에 의하면 베토벤은 다 단조에 의한
저음부의 ff에 의해 주제를 제시한 후,
내림라 장조의 주제 제시를 지나 내림마 음에 의한
오르겔풍크트(Orgel-punkt;페달음)에 이르며,
주제의 스트레타(stretta)를 형성하는 부분에서는
그것을 몇 번이나 다시 쓰며
다양한 시도를 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푸가가 종결되는 듯한 순간에
그것은 딸림7화음을 이끎음으로 하는
이명동음적으로 다시 읽혀져 사 단조로 이끌어지는데,
첫 원고에는 이끎음이 올림다 음으로 쓰여 있다.

그러나 베토벤은 처음부터 아리오소와 푸가를
이중의 구성으로 삼을 것을 염두에 둔 듯,
자필로는 처음으로

    음의 연타에 의한 사 단조 도입을 고안하였으며,
    거기에 `Ermattet Klagend
    (탄식을 하다 힘을 다 쏟아버리듯)’이라고 써 넣은 것이 보인다.

    그것은 마지막에 우나 코르다에 의해
    숨이 끊어질 듯 하게 되어 마침내 숨이 완전히 끊어져 버렸다고
    생각되는 종언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부활이 일어난다.

    정신은 결코 죽음에 이르지 않았다.
    거기에는 비스듬한 하나의 빛이 하늘로부터 내려 꽂힌다.
    사 장조에 의한 혼(魂)의 승화이다.
    그 후 푸가 주제의 자리바꿈(Umkehrung)은
    이 세계를 잠시 벗어난 혼을 정화하며 서서히
    정신의 부활이 진행되고,
    한번 잃어 버렸다고 여겨졌던 생명은
    처음에는 어렴풋이,그러다가 점차 소생하듯이
    (nach und nach wieder aufle-bend)
    우나 코르다를 없애고 부활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푸가 주제의 의연한 출현에 의해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고결한 정신은 어떠한 것에 의해서도
    파괴될 수 없다는 것을 상징하듯,
    주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장려한 승리의 소리를
    높이 울려 퍼뜨리며 곡은 종지부를 찍는다.

    Piano Sonata No.32 in C minor, Op.111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번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그의 작품중에 특히 낭만주의적 성향이 두드러 지는 곡은 대표적으로 후기에 속하는 5곡라고 할수 있습니다. 1815년이후에 발표되어진 op.101번(no.28)~op.111번(no.32)라고 할수 있습니다. 베토벤은 엄격히 말하자면 낭만주의시대의 작곡가는 아니지만 그의 후기 작품속에서는 이미 낭만주의 시대로 발돋움 하려는 시도가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베토벤이 남긴 피아노 소나타는 모두 32곡. 그 중에서 30, 31, 32번 세 곡이 ‘후기 피아노 소나타’로 불린다 (op. 109, 110, 111). 이 세곡은 베토벤의 만년에 만들어진 작품이며,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의 마지막 부분을 용해시켜 놓은 듯한 농도 높은 걸작이다. 베토벤은 후기로 갈수록 고전주의 형식을 붕괴를 시도했으며, 피아노 소나타에서도 그러했다 (14번 ‘월광’에서 처음에 느린 악장을 도입하고 긴 반복음형을 사용하고 제시부와 전개부의 경계를 흐리게 하면서 이미 시작되었다).

전통적인 3악장 소나타 형식을 벗어나, 30번과 31번은 4악장, 32번은 2악장 형식을 취했다. 단순히 악장의 수뿐만이 바뀐 것이 아니라, 확장 기법이나 푸가 등의 형식이 나타나며, 연주 기법에서도 낭만주의의 태동을 예고하는 점들이 보인다. 중기의 작품들이 거대한 형식을 지니고 있고, 베토벤 자신의 비극적인 삶에 대한 격렬한 투쟁 의지의 표출이었다면, 후기의 소나타는 좀더 인생을 달관하고, 숙고하고, 명상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베토벤의 후기 소나타들은 베토벤의 인생과 ‘후기’라는 특징 때문에, ‘함머클라비어’와 함께 많은 피아니스트들에게 대표적으로 도전이 되는 작품으로 꼽힌다. 그것은 기교적인 측면이라기 보다는 후기 작품 속에 내재해 있는 베토벤 자신의 내면 세계와의 고투, 깊은 종교적 성찰 등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며, 따라서 어느 정도의 인생 경험과 예술적 경험의 필요성이 어렵지 않게 공감된다.

 

 

천상의 아름다움 속으로 날아오르는 마지막 악장


1822년 이 작품이 출판되었을 때 악보를 구입했던 사람들 가운데 이 곡을 조금이나마 이해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 확실하다. 애초에 출판업자인 슐레징거는 작곡가가 3악장을 보내줄 때까지 조판에 들어갈 수 없다고 주장하여 베토벤을 몹시 화나게 했다. 결국 베토벤이 3악장을 덧붙일 의도가 전혀 없음 확인하고 나서야 악보 인쇄에 들어가긴 했지만, 처음 완성되어 나온 악보는 오기 투성이에다가 곳곳에 임시표를 너무 많이 빼먹어서 작곡가를 재차 격분케 했다. 베토벤은 자신의 제자이자 조수인 안톤 쉰들러를 시켜 오스트리아 빈에서 판매되고 있는 이 악보의 모든 사본을 수거했고 손수 오자 표기 리스트를 만들어 붙였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출판된 지 30여년 이상이나 연주 불가능이라는 딱지를 붙인 채 방치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후 독일의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한스 폰 뷜로와 러시아의 대 피아니스트인 안톤 루빈스타인에 의해 처음으로 청중 앞에서 연주되기 시작한 이후, 작곡된 지 100여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이 [피아노 소나타 32번]은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반드시 극복해야 할 숭고한 대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지는 1악장에 이어진 2악장. 그 2악장은 마치 인간의 세계를 초월한 천상의 세계를 노래하는 천사의 노랫소리며 울림이다. 그것으로 모든 천지창조, , 나아가서 우주와 내면의 세계까지 완성된 것이며 더 이상의 무엇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