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록된 칠레 제1의 항구도시-발빠라이소(Valparaiso).....
산띠아고를 건설한 뻬드로 데 발디비아가 1544년 이곳을 '산띠아고의 바다 현관'으로 정한 이후
몇 세기 동안 산따아고로 들어가는 입구 역할을 톡톡히 해왔으며,
파나마 운하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남미에서 가장 바쁜 항구였다고 한다.
언제나 수많은 사람이 왔다가 떠나고 다양한 물건들이 머물다 가는 항구에는 항구만이 가진 독특하고 아련한 정취가 있게 마련이다.
특히 오래된 항구에는 옛 영화를 기억하는 늙은 뱃사람의 후일담이 어느 선술집에선가 들려올것만 같은 것이다.
이것이 발빠라이소가 옛 시절의 향수와 사람 사는 속내를 느낄 수 있는 도시로 지금도 사랑받는 이유겠지~
이름도 기가 막히지~
발빠라이소가 '천국과 같은 계곡'이라는 뜻을 가졌다니.....ㅎㅎ
발빠라이소는 항구를 둘러싸고 마흔 개가 넘는 언덕에 색색의 페인트 칠을 한 낡은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쎈뜨로나 항구 주위는 평지지만 나머지는 가파른 언덕길이나 돌계단으로 이어진 급한 경사지역으로 100년 이상 이곳 사람들의 발이 되어준 아센소르가
아직도 명물로 남아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버스를 타고 오르막 길을 마악 들어섰는데 아센소르가 눈에 띠는거다.
와우~순간포착 성공....ㅎㅎ
100년 전에 이런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니 정말 남미에 와서의 놀라움은 끊임없는 연속이다.
버스가 선다.
칠레의 민중시인이자 사회주의 정치가인 파블로 네루다가 발파라이소에 잠시 머물던 집이다.
보수적인 대통령 곤살레스 비델라가 사회주의를 박해... 네루다에게 체포 영장이 발부되었을때, 친구들은 몇 달동안 이곳 발빠라이소의 한 집 지하에 그를 숨겼던 것이다.
지금은 그의 박물관이 되어있다.
네루다의 집에서 내려다 본 기막힌 발빠라이소의 전망.....
네루다의 집 건물이다.
사방이 창으로 되어있는 네루다의 집은 발빠라이소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기막힌 전망을 가지고 있다.
파블로 네루다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1904.7.12-1973.9.23) 은 칠레의 민중시인 이자 사회주의 정치가이다. 본명은 네프탈리 리카르도 레예스 바소알토(Neftalí Ricardo Reyes Basoalto)라는 이름으로, 아버지의 강압에서 벗어나고자 사용한 필명이 나중에는 법적인 실명이 되었다.
생애
7, 8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13세 때에는 신문에 작품을 발표했다. 14세 때 체코의 시인 J.네루다의 시를 탐독하고, 1920년부터는 '파블로 네루다'를 필명으로 쓰기 시작했다. 소년 시절부터 눈부신 문학적 재능을 발휘한 그는 1921년에 <축제의 노래>등을 발표하여 시단의 인정을 받았으며, 1923년에는 시집 《변천해가는 것》을 출판하여 시단에서의 위치를 다졌다.
초기 시의 대표작으로서 가장 많은 독자가 있을 뿐만 아니라, 중남미의 시단에서도 인정받은 작품은 1924년에 출판된 《20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이다. 이 시집에는 고통과 오뇌, 고독과 절망이라는, 네루다 시의 전형적인 테마가 가득히 담겨 있다. 1933년에는 시집 《지상(地上)의 거주지》를 내어 명성을 떨쳤다.
1934년부터 1939년까지 에스파냐에 주재하고 있을 때, 인민전선정부가 탄생하고, 이어서 내란과 프랑코 독재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인간적 연대(連帶)를 역설하는 정치 시인으로 변모하여 정력적으로 반(反)파시즘의 시를 썼다. 귀국한 후 1945년에는 상원 의원이 되고, 공산당에 입당했다. 그러나 공산당이 비합법 단체로 인정되자 지하로 잠입하고, 이어서 망명을 하고 고난의 나날을 보냈다.
1950년에는 멕시코에서 아메리카 대륙의 역사를 노래한 웅장한 서사시집 《위대한 노래》를 발표했다. 여기에 수록된 장시 〈나무꾼이여, 눈을 떠라〉로 1950년 스탈린 국제평화상을 받았다. 52년에는 귀국하여 시 창작에 몰두했다. 70년에 아옌데 인민연합 정권이 수립된 후 주(駐) 프랑스 대사가 되었고, 1971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73년 9월의 군사 쿠데타로 아옌데 정권이 무너지자, 병상에서 격렬하게 항의하는 시를 쓰다가 세상을 떠났다. 저서에는 이 밖에 시집 《기본적인 오드》, 《세계의 종말》, 《불타는 칼》 등이 있다.
문학세계
파블로 네루다는 20세기 가장 대표적인 시인들 중 하나로 손꼽히며, 그의 시는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었다. 그의 문체는 매우 다양한데, 성적인 표현이 많은 사랑 시들 (흰 언덕 같은)과 초현실적인 시들, 역사적인 서사시와 정치적인 선언문들이 포함된다. 콜롬비아의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어떤 언어로 보나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다"고 했다. 1971년 네루다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지만 후에 그의 정치적인 행태 때문에 논란거리가 되었다.
1945.7.15, 브라질 상파울루의 파깸부 운동장에서 그는 십만 명의 사람들에게, 사회주의 혁명가인 루이스 카를로스 프레스테스를 기념하는 낭송회를 가졌다. 노벨상 기념 강연후 칠레에서는, 살바도르 아옌데의 초대로 에스타디오 나시오날(Estadio Nacional:국립 경기장)에서 7만 명 앞에서 낭송회를 가졌다.
사회주의 운동
네루다는 생에 많은 외교관 자리를 역임했으며, 칠레 공산당의원으로 활동하였다. 보수적인 칠레의 대통령 곤잘레스 비델라가 사회주의를 박해했을 때, 네루다의 체포 영장이 발부되었다. 친구들은 몇 달동안 칠레의 항구 발파라이소의 한 집 지하에 그를 숨겼다. 그후 네루다는 산 을 넘어 탈출하여 아르헨티나에 들어갔다.반공주의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쿠데타 당시, 암으로 입원한 네루다는 심장마비로 죽었다. 피노체트는 좌파시인 네루다의 장례식을 공개거행할 것을 반대했으나, 수천명의 칠레사람들은 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의 통행금지를 어기고 공개적으로 애도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이 네루다의 장례는 칠레 군사독재정권 최초의 항거였다.네루다라는 필명은 체코의 작가이며 시인인 얀 네루다에서 얻어졌으며, 나중에는 그의 법적인 이름이 되었다. 네루다와 같은 시기에 활동한 칠레의 민중 예술인으로는 빅토르 하리 (1932년-1973년)가 있다.하라는 피노체트의 군사독재정권의 국가폭력으로 살해되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네루다는 아내에게 “그자들이 사람을 죽이고 있어. 산산조각이 난 시신들을 건네주고 있다고. 노래하던 빅토르 하라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신 몰랐어? 그자들이 하라의 몸도 갈기갈기 찢어놓았어. 기타를 치던 두 손을 다 뭉개놓았대.” 라고 말하며 분개하였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 한 편.....
말
말은
피 속에서 태어났고,
어두운 몸속에서 자랐으며, 날개 치면서,
입술과 입을 통해 비상했다.
멀리서 그리고 가까이서 여전히, 여전히 그건 왔다
죽은 아버지들과 유랑하는 종족들에서, 돌이 된 땅들에서,
그 가난한 부족들로 지친 땅, 슬픔이 길이 되었을 때
그 사람들은 떠나서 새로운 땅과 물에 도착하고 결혼하여
그들의 말을 다시 키웠느니. 그리하여 이것이 유산이다;
이것이 우리를 죽은 사람과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새로운 존재들을 연결하는 대기大氣.
대기는 아직 공포와 한숨을 차려입은 처음 말해진 말로 떨린다
그건 어둠에서 솟아났고 지금까지 어떤 천둥도
그 말,
처음 말해진 그 말의 철鐵같은 목소리와 함게 우르릉거리지 못했다-
그건 다만 하나의 잔물결, 한 방울의 물이었을지 모르나
그 큰 폭포는 떨어지고 또 떨어진다.
그러다가, 말은 의미로 채워진다.
언제나 아이와 함게, 그건 생명으로 채워진다.
모든 게 탄생이고 소리이다-
긍정, 명확성, 힘,
부정, 파괴, 죽음-
동사는 모든 힘을 얻어
그 우아함의 강렬한 긴장 속에서
실존을 본질과 혼합한다.
인간의 말, 음절, 퍼지는 빛의 측면과 순은세공,
피의 전언을 받아들이는 물려받은 술잔-
여기서 침묵은 인간의 말의 온전함과 함께한다,
인간에게, 말하지 않는 건 죽는 것이니-
언어는 머리카락에까지 미치며,입은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말하고,
문득, 눈은 말이다
나는 말을 취해서 그걸 내 감각들을 통해 보낸다
마치 그게 인간의 형상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이;
그것의 배열은 경외감을 느끼게 하고 나는
말해진 말의 울림을 통해 나의 길을 찾는다-
나는 말하고 그리고 나는 존재하며 또한, 말없이,
말들의 침묵 자체의 가장자리를 가로지르며 접근한다.
나는 한마디 말이나 빛나는 잔을 들어올리며 말과 건배한다;
나는 거기 들어 있는 언어의 순수한 포도주나
마르지 않는 물을 마신다,
말의 모성적 원천을,
그리고 컵과 물과 와인은
내 노래를 솟아오르게 한다
왜냐하면 동사는 원천이며 생생한 생명이므로- 그건 피이다
그 참뜻을 표현하는 피,
그리하여 스스로 뻗어나가는.
말은 잔에 잔다움을, 피에 피다움을,
그리고 생명에 생명다움을 준다.
파블로 네루다 시집 『충만한 힘』 정현종 옮김 문학동네(2007)
파블로 네루다의 집을 찾아가는 그 언덕 길과 다시 쁘랏거리로 들어설때까지의 드라이빙이 파스텔톤의 향수가 어린 추억의 옛 항구...발빠라이소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흥분된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것은 늘 시간의 부족함...
이곳에서 하루쯤 머물 수 있었다면 이 골목을 두 발로 다 걸으며 사진도 맘껏 찍고...
고즈넋한 전망좋은 까페에도 들어가 술 한잔 들이키며 이런 저런 생각에도 잠겨보고... 좋았을텐데....
쁘랏거리...
쁘랏 거리는 언덕위의 작은 집들과는 대조적으로 멋진 석조 건물들이 이어진다.
마치 작은 월드스트리트 처럼 금융회사들의 빌딩들이 많은 곳으로, 칠레 최초의 증권 거래소 건물도 이 거리에 있다.
칠레 해군 총사령부(Comandancia en Jefede la Armada)
소또마요르 광장(Plaza Sotomayor)
뿌랏 부두와 마주하고 있는 넓고 멋진 광장이 소또 마요르 광장이다.
부두로부터 도시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광장 중앙에는 태평양 전쟁에서의 해군 영웅들을 기리는 이끼께 영웅 기념탑 (Monumento de los Heroes de lquique)이 서 있다.
소또마요르 광장을 빠져나와 아센소르 아르띠예리아(Ascensor Artilleria)입구에서 내렸다.
아!! 그럼 그렇지~
여기 와서 아센소르를 안타보면 안돼지~ㅎㅎ
바닷가 뒷편으로 높은 산이 이어진 발빠라이소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교통수단으로
발빠라이소 시내에만도 아센소르가 15군데나 있다.
아센소르를 타고 올라가면서 찍은 발파라이소 전경....
우와~~ 기막히다~
탈때는 그냥 타고 내릴때 돈을 내고 철제 회전문을 통과해서
나온다.
허어걱!!
아센소르에서 내려 쁘랏부두가 한 눈아래 내려다 뵈는 발빠라이소의 풍광은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오게 만든다.
아르띠예리아 언덕의 골목을 거닐며 그림도 보고,
기념품등도 보며 거닐다 다시 버스를 타고 골목길을 달린다.
차창으로 들어오는 파스텔톤 작은 건물들로 꽉 들어찬 골목길 풍광이 하나같이 기막히다.
어떻게라도 카메라에 담고 싶은데...
창가 안쪽에 앉아 작은 골목길을 달리며
그 골목길 건물들을 카메라에 담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아~~
안타까움은 극에 달해
그저 한 숨이 탄성과 함께 뒤섞여 나오기를 수없이....
나른한 오후...
현관앞 벤치에 두 부부가 앉아 있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버스가 잠시 멈춰섰을때 얼른 카메라를 들이밀었는데....
그걸 눈치채고는 저 멀리에서도 포즈를 취해주는 저 생기발랄한 센스좀 봐~
아!!
너무나 여유롭다!
다시 아르띠예리아 언덕에서 내려와 쁘랏부두가 앞 도로를 달린다.
가로수로 심어진 야자수 나무가 멋드러진다.
버스는 이제 발파라이소를 빠져 나가고 있다.
태평양이 발 아래에서 반짝이는 휴양도시 <비냐 델 마르>로 가는 중이다.
안타깝게도 우린 가는 도중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야 한다.
도저히 비냐 델 마르까지 갔다가는 오늘 밤 떠나는 야간 버스를 탈 수가 없기때문...ㅠㅠ
바닷가 뒷편 산 언덕배기 끝까지 빼곡한 발빠라이소의 파스텔톤 아름다움에 빠져들어 잦아들었던
<비냐 델 마르>에 대한 안타까움이 다시 극성을 부린다.
아~~ㅠㅠ
베토벤 / 피아노 소나타 월광, 열정, 비창 / 글렌 굴드
'남미 일주 44일 배낭( 2012.3~2012.4'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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