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 2012년)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데니스 마추예프 협연).2.27.월 /예당

나베가 2012. 2. 27. 04:16

 

 

 



(2/27) http://www.sac.or.kr/program/schedule/view.jsp?seq=8733&s_date=20120227
(2/28) http://www.sac.or.kr/program/schedule/view.jsp?seq=8734&s_date=20120228

 

연주곡 : P.I.차이코프스키 <로미오와 줄리엣 서곡>(일부)
연   주 :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 발레리 게르기에프(지휘)


 

공연후기.....

 

엄청난 공연이 한꺼번에 몰아닥쳐서 흥분에 휩싸이기를....

그나마 지난주 화요일 부터 시작된 이 2012년의 최고의 공연들이 목요일 마태수난곡 전곡 연주를 하고나서

그나마 이틀을 쉬었으니 다행이다.

그 여운들로 정신이 몽롱할 지경이었으니....

 

어제는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새벽에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안나푸르나 사진을 정리하면서 듣기 시작한 쇼스타코비치 5번때문에....

쇼스타코비치 5번을 듣기 시작하면 마치 블랙홀에 빠져들듯 한없이 휘둘려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비몽 사몽 두어시간 눈을 붙이고 모임이 있어서 허둥대며 집을 나섰다.

오늘은 이렇게 아침에 나와서 밤 12시가 넘어야 들어가게 되니 할일도 많은데다 잠도 못자서리...

결국은 큰 실수를 하게 됐다는...ㅠㅠ

이 역사적인 공연을 위해서 아침부터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메고 다녔건만....충전시킨다고 배터리를 빼놓고는 그대로 온것...ㅠㅠ

 

암튼....

모임이 끝나고 집에 들어가도 곧바로 나와야 했기에 그냥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연 시간까지는 상당한 시간적 여유가 있어 전시장을 한바퀴 둘러볼까 하다가 피곤하여 그냥 도서관으로 향했다.

책을 읽다보니 시간은 또 금새 지나 여전히 바쁜 걸음으로 콘서트홀로 향했다.

티켓을 교부받고...공연을 앞두고 정결례식을 치루듯 진한 커피를 한 잔 마셨다.

팜플릿을 살까...갔더니 뜻밖에도 오늘 연주후 연주자 싸인회가 있다는 거였다.

아놔~~ 카메라 배터리도 없는데...ㅠㅠ

하필 이런 날 카메라를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다니....

암튼 이 역사적인 공연을 스스로 기념하기 위해서라도 싸인을 받기위해 음반을 2장 샀다.

 

오늘의 공연이 특히 내게 역사적으로 길이 길이 기억될 그런 날인것 마냥 흥분이 되는 것은

게르기예프에게 특별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오페라에 대해서  관심이 덜했던 시기에 어느날 게르기예프가 어마 어마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한국에 온것이다.

바로 '바그너'의 무시무시한 오페라- 링사이클 전곡 연주회...

오페라 한 편이 평균적으로4시간 반에서 5시간씩이나 되는 기인 공연이 4편....그 전곡을 연일 이어서 공연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경화협연 연주까지.... 

공연 입장료도 당연히 장난이 아니었다.

지금같으면 고민은 커녕 티켓 오픈 날짜만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땡'하고 종치면 첫번째를 다투며 티켓을 예매했겠지만...

그때만 해도 오페라공연을 많이 볼때가 아니라서....

 

하지만 도대체 어떤 공연이기에 평생 보기 힘들다고 하는 지...

사람들이 휴가까지 내고 공부를 하러 다니면서 이 오페라를 기다릴까...궁금해졌다.

그렇게...나도 레슨까지 옮겨가며 전 곡 공연을 일숙언니와 함께 다 보며 오페라에 빠져들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게르기예프는 장영주와 함께 또 상암경기장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그때 상암경기장에 울려 퍼졌던 차이콥스키 5번을 또 잊을 수가 없다.

11월의 쌀쌀함이 옷깃 속으로 파고 들어올때 쓸쓸히 울려퍼지던 혼의 울림....

 

그런데 이번에 그가 세계 4번째로 꼽는 오케스트라  런던심포니와 함께 내한하는 것이다.

그것도 제2의 호로비츠라고 일컷는 차이콥 콩쿨 우승자-데니스 마추예프와 장영주를 데리고.

그중에서도 오늘의 공연은 최고 기대공연이기도 하다.

 

일단...프로코피예프 피아노협주곡 3번을 실황으로 본다는것.

 마추예프의 광란의 비르투오조를 맘껏 즐길 수 있다는 것....

그리고...로미오와 줄리엣 환상서곡도 너무나 좋고

무엇보다 나를 한없는 심연으로 끌고들어가 잠을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쇼스타코비치 5번을 실황으로 볼 수 있기때문이다.

 

침을 꼴딱이며 연주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아!! 또 짜릿함의 전율이 인다.

파곳과 클라리넷으로  시작되는 도입부....

그리고 하프의 쏟아지는 선율은 어떻고....

서곡이 오페라의 내용을 다 품고 있듯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만남...

그리고 기막힌 둘의 사랑..(아~~ 정말 하프 연주 장난아니었어~)

두 집안이 원수라는 관계때문에 겪어야 할 고통....

격정...싸움...죽음...등이 고스란히 소리로 승화되어 내안에 들어와 살랑였다.

 

게르기예프의 모습은 또 어떤가!

그는 반쯤 몸을 앞으로 숙이고 마치 나비가 날개짓을 하듯 그렇게 팔랑이며 지휘를 했다.

지휘봉없이 손바닥을 쫘악 펴고 마치 피아노를 치듯  열 손가락을 다 움직이면서 미세한 떨림과 섬세함을 지휘했다.

얼굴 표정은 다른 대가들 처럼 크게 드러나지않는다.

대신 온 몸과 손가락 마다의 떨림으로....러시아인의 우직한 모습과 추위와 사투를 벌이며 삶을 예술로 승화시켜가며 사는 그들의 예술성이

그의 온몸에 배어있는 것만 같다.

격정으로 치달을때의 팀파니의 명징한 울림...

"아!! 팀파니가 저렇게까지 크게도 울리는 구나~~

저렇게 온 몸으로 팀파니를 연주하는 거구나~' 생각했다.

 

이 첫곡을 들으면서 홀연히 남자가 홀로 앉아 하프를 연주하던 모습...그 소리가 가장 인상깊다.

마치 하프협죽곡을 듣고 있는것 같기도 하고...

이들의 사랑이 결국 비극으로 끝났지마는 이들의 사랑으로 두 집안의 원수관계가 끝을 맺게 되었고...

죽었지만...결국 이둘의 사랑은 천상에서 이루어졌을 것이 분명함으로 하프의 소리는 그 어떤때 보다도 매혹적이었다.

 

아~ 무대 가운데로 피아노를 설치하는라 분주하다.

순식간에 정비가 되었고 데니스 마추예프도 피아노앞에 앉았다.

나는 마추예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오케와의 연주를 보아서 마추예프의 비르투오조가 어느 정도인 지 안다.

그가 연주할 프로코피예프 피아노협주곡 3번....

나는 이 곡을 세계 최고 피아니스트-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연주로 보면서 완전 반했고.

클라우디오 아바도-루째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유자 왕의 연주로 중국에 까지 가서 보았다.

아바도에 완전 몰입...그 격정에 휩쓸려 하마터면 1악장이 끝나고 박수 칠 뻔 했다는....ㅋㅋ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의 실황을 본 터라 프로코피에프 피협 3번에 대한 애정도 무조건 적이다.

 

참을 꼴딱이며 망원경을 마추예프에게 고정시켰다.

게르기예프와 눈인사를 하듯 시작 전 씽긋웃는 그 표정이...오오~~

 

게르기예프의 손가락은 미세하게 떨기 시작했고, 매혹적인 오보에 소리가 무대를 휘감기 시작할 즈음...

불현듯 나타나 휘몰아 쳐대는 피아노 소리....

그야말로 선율이라기 보다는 타악기적으로 쳐 댄다.

불협화음이면서도 매혹적인...프로코피예프는 미지의 신비스러움을 가득 품고있다.

미친듯이 질주하고

미친듯이 표효하고...

미친듯이 토해낸다.

그러다가 한 줄기 빛이 쏟아져 내리듯 신비스럽고 모호하고 매혹적인 선율...소리...몽환적인 색채를 띄우는 것이다.

완전 빨려들어가지~아주 치명적인 위험요소를 내포하고 있을것만 같은...그렇지만 결코 멈출 수 없는~~

맞았어~ 위험하다고 했지~

미친듯이 광란의 질주를 하잖아~

진짜...피아니스트 손가락이 고도의 훈련이 되어있지 않다면 분명 이상이 생길거야~

아~~ 연주자에게 휩쓸려 함께 질주하다보면 꽝~ 하고 1악장이 끝날때 왜 박수갈채를 치지않겠어~~ ㅋㅋ

 

피아노를 처음으로 건반악기에서 타악기로 이용해서 작곡했다는 프로코피예프....

모든 예술가가 다 천재라고 생각하지만, 특히 프로코피예프가 만들어 내는 엄청난 에너지와 물안개 피어오르듯....

온갖 소리들이 그를 통해서 생성된다는....우리는 상상할 수도 없는 소리들을 그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연을 그대로 소리로 만들어 낸다는데

놀랍기만 한것이다.

미치도록 앙증맞고,

미치도록 사랑스럽고,

너무나 흥겹고, 즐겁고

그런가 하면 그 거대함이 한계를 초월할듯 하다.

 

이렇게 멋지고 대단한 곡을 그냥 실황연주가 있다고만 하면 공연장으로 달려오는데,

오늘 처럼 세계에서 손꼽는 오케스트라에 지휘자에 최고의 연주자의 실황을 보고 있자니 행복감과 함께 안타까움마저 든다.

 

앵콜연주 또한 그가 즐겨하는 레파토리....

그리그의 페르퀸트중에서 <산속마왕 궁전>이라는 곡을 연주했는데, 그야말로  이 곡은 아무나 연주할 수 없는...

산속 마왕이나 살것만 같은 그런 곳에나 어울리는....ㅋㅋ 정말 광란의 질주였다.

속도와 강약이 레벨 1부터 100까지는 족히 되는...미친듯이  질주했던....

거기다 유머감각까지 있다. 손가락 아프다고 호호 불면서 나가는.....귀여운 시츄에이션....ㅋㅋ

 

몇번의 커튼 콜이 있은 뒤 느닺없이 어린 소녀가 하얀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섰다.

뜻밖에도 지휘자가 지휘대에 오르고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악보를 편다.

헐~~

나중에 안 일이지만 게르기예프의 나름대로의 한국인에게 주는 깜짝 선물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체의 언급도 없었던 그야말로 깜짝 등장...

어린 초등생이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을 거침없이 연주했다.

게르기예프가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한국의 영재라고....

하지만 워낙에 강렬했던 폭풍질주 괴력의 마추예프의 연주 뒤에 이어진 어린 소녀의 연주였으므로

힘이 없어보였다는...ㅎ.

그러나 게르기예프가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마련한 선물이라니 그의 자상함이 또 남달라 보인다.

 

평소같으면 인터미션에 곧바로 후기를 몇자 적어놓곤 하는데...

왠지 오늘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가만히 앉아있을 수 밖에...

로미오와 줄리엣 때문만도...마추예프의 프로코피예프 때문만도 아니었다.

말할 수 없는....그냥 듣기 시작하면 빨려들어가는 쇼스타코비치 5번 때문에....

이 무대를 가득 메울...음반으로 듣는것과는 비교도 될 수 없는 그 무한의 소리빛깔과 꿈틀대는 에너지를 느낄 생각에....

 

지휘대에 올라서자 마자 게르기예프는 곧바로 연주를 시작했다.

그랬다.

내가 생각했던 그 소리...에너지....그 모든 것들이 기인 겨울동안 땅속에서 에너지를 비축하고 있다가

생명을 움트이듯...그렇게...하나 하나씩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산고를 치뤄내듯한 아픔이었지만 희망이었고, 기쁨이었고,엄청난 에너지였다.

 

그러다가  한줄기 바람이 스치고 지나치듯  쓸쓸함을 일으킨다.

가슴을 아프도록 휘익 스치고 지나가 버리는 그 한 줄기 바람이 어쩌면 그렇게도 매혹적인 지....

그 선율을 찾아 밤새 방황이라도 할것 같아~~

 

엄청난 기운이...그 에너지가 폭발한다.

이 때문에 혁명이라는 부재가 붙은건 아닐까....싶지만...굳이 혁명이라는 제목에 갖다 붙이고 싶지않다.

한 나라에서는 이 폭발하는 예술가의 에너지가 정치적인 혁명의 에너지로 읽어내 좋아하고,

또 한때 우리나라에선  내한 연주에 이 곡이 혹시라도 악영향을 미칠까... 금지하는 헤프닝이 있었다고 하니....ㅠㅠ

 

거대한 활화산의 폭발이 있은 뒤

고혹적인 플릇 독주...

그리고 악장의 바이올린 솔로....

천상의 울림-첼레스타의 흐터짐은

이 곡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이유들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스러져 감...

소멸....

 

2악장에서의 악장의 바이올린 솔로 연주는 너무나 아름답고 매혹적이라서 그곳이 어디든 그저 눌러있고 싶은...

분명 기막히게 아름다운 곳일거라는 생각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목관악기들의 앙증스런 대위법적 연주....

현의 강렬한 피치카토....

마림바, 작은 북의 멋드러진 경쾌함...

금관의 팡파레....

 

아! 드디어 3악장 라르고다.

가만히 앉아있노라니 어느순간 내안의 모든것이 다 사라져 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거다.

매혹적인 선율에 실려....내 안에 가득찼던 뭔가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둥둥 떠 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점점 가벼워져 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잠시 뒤 부웅 떠오르지 않을까....

그러나 떠 오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서서히 소멸되어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내 안의 것만 온전하게 다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내 자신이 소멸되어 지는....

그런데 그게 슬프거나 두려운것이 아니라 그렇게 편안하고 매혹적일 수가 없는거야~

우습잖아??

이 곡이 제목이 혁명인데 말이야~

 

쇼스타코비치는 어려운 정치적인 시국에 휩쓸려 살면서 어쩌면 모든거 다 떨쳐내 버리고

흔적조차 없이 스러져 버리고 싶었던건 아닐까....생각들었다.

 

다 사라져 버리고 난 새로운 세상에서 온전한 자신의 내면의 소리만을 들으면서.

3악장 피날레..하프의 한음 한음 천 천 히 울려 퍼지는 그 울림이 마치 그의 깊은 내면의 울림같아 보였다는.....

세파에 시달리지도 않고, 때묻지도 않은 오직 순결한...

1악장의 첼레스타의 흐터짐과 함께 짜릿함을 주는 기막힌 피날레다

 

와아~~ 4악장의 폭풍 해일!!

이 거대함을...이 거대함에 한번이라도 휩쓸려 봐야 이 곡을 제대로 들었다고 할 수 있을거야~

도대체 그의 역량은 어디까지일까...생각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팀파니의 울림....

세상에 있는 모든 팀파니스트들이 이곡을 연주할때 가장 짜릿하고 온몸에 전율을 느끼지 않을까....

 

그런가 하면 스러저가는 퍼스트 바이올린은 또 어땠는가~

정말 기가 막히게 연주했다.

이 극명한 대비....

 

나는 연주가 끝나자 마자 기립박수 치며 소리를 고래 고래 지르며 환호를 했다.

정말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이 나를 에워쌌다.

아!! 세상의 많은 클래식 매니아들이 이 곡을 꼭 실황으로 들어봤으면....뜬금없이 다른 사람들이 안타까워 지는 것이었다.

이 곡은 반드시 죽기전에 클래식 매니아라면 꼭 실황으로 들어야 한다고....

아니...감성이 살아있는 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실황연주를 꼭 봤으면 좋겠다고...소망했다.

 

앵콜연주 또한 기막힌 선곡이었고 멋드러졌다.

로미오와 줄리엣중 몬테규가와 캐플릿가....

 

목이 메어올 만큼 감동에 겨워서 벅찼다.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을 가슴에 안은 채  싸인을 받기위해 줄을 섰다.

지휘자 게르기예프가 아마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씻고 옷을 완전히 갈아입고 나오느라 그런 지...

무려 25분을 기다린 뒤 사인회장에 나왔다.

예상적중일까??

그는 옷을 싸악 갈아입고 사인회장에 나타났다.

비교적 앞줄에 있었는데도 사인을 받고나니 11시다.

당연히 마을버스는 끊겼다.

 

택시를 타고 강남역에 가서 M버스를 탈까...하다 남부터미널까지 걸어가서 전철을 탔다.

집에 오니...1시

그렇게 열광을했으니 배가 고프지~

정신없이 그 시간에 밥을 먹었다.

씻고...소화 시켜야 하니...또 오늘도 잠 못이루고....

에잇~ 쇼스타코비치나 들어야지~~

헐~ 쇼스타코비치 5번...위험한데....

오늘도 잠 못자면 ...ㅠㅠ

행복한 고민이다~

 

 

 

 

Prokofiev, Piano Concerto No.3, Op.26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

Sergei Sergeevich Prokofiev

1891-1953

Martha Argerich piano

Charles Dutoit cond.

NHK Symphony Orchestra

London, August 29, 2001

 

 

20세기는 러시아 작곡가들에게 유난히 힘들고 어려운 시기였다.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자신의 조국을 떠나 제3의 나라로 떠나는 음악가들도 많았고, 러시아에서 혁명의 소용돌이를 살아낸 음악가들도 있었다. 그 어떤 선택을 하든지 타국에서나 고국에서나 겪어야 하는 문제들은 경중을 가릴 수 없이 힘든 것이었다. 프로코피에프 역시 이런 힘든 시기에 러시아에서 태어나고 활동한 음악가였기에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미 러시아에서 인정받는 작곡가였던 스트라빈스키나 라흐마니노프는 미국으로 거취를 옮겼고, 쇼스타코비치는 러시아에 남아 음악 활동을 하는 등 각기 다른 선택을 했다. 프로코피에프의 선택은 조금 특이하다. 1912년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초연이 성공한 후 러시아에서의 음악적 기반을 뒤로 하고 러시아를 떠난다. 미국과 파리 등지에서 활동하던 중 1931년에 러시아로 다시 귀환하는 선택을 한다. 당시 스탈린은 망명한 많은 음악가들의 귀국을 권유했고,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 컸던 프로코피에프는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을 알면서도 다시 조국으로 돌아갔다.

 

프로코피예프는 6살에 체스를 배워 음악과 함께 일생 동안 열중했으며 실력은 세계 챔피언과 맞겨룰 정도였다고 하네요.


작곡자의 음악적 특징

프로코피에프의 작품들에 나타난 그의 음악적 성향은 동시대 작곡가들과는 분명히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세기 음악의 방향을 바꾸어놓을 만큼 큰 영향을 끼친 쇤베르크의 12선법과 스트라빈스키의 원시적 대담함 등의 혁명적인 특징을 나타내진 않지만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평범치 않은 화성법을 통한 음악적 모더니즘을 시작했다는 면에서 프로코피에프 역시 독창적인 음악가라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적 특징은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은 단순함의 미학을 기초로 한다. 또한 이런 단순함이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선율의 풍부함 때문이며, 이것은 대체적으로 선율적 요소가 최소화되는 경향이 있는 다른 현대음악과 구별된다. 또한 명확하고 운동력 있는 리듬의 표현은 그의 음악을 매우 활발하게 하는 요소이며 그의 음악적 성향을 대표하는 중요한 것이다. 프로코피에프 자신도 이런 음악적 특징들을 인정했고, 더 명확하게 다섯 가지 요점으로 자신의 음악을 정리하기도 했다. 그 다섯 가지는 다음과 같다.


- 고전주의에서 출발한 형식의 보존과 변형 : 규칙적이고 구조적인 프레이즈, 명확성

- 새로운 화성언어를 통한 혁신적 발상 : 불협화음의 사용 많음, 잦은 박자 변환, 넓은 음역 등

- 토카타적 전개 방법 : 끊임없는 리듬의 움직임, 피아노의 타악기적 처리

- 선율적 요소 : 서정성과 서정을 표현하기 위한 노력

- 유머와 해학을 바탕으로 한 풍자적 요소


피아노 협주곡 3번

프로코피에프의 피아노 협주곡뿐만 아니라 모든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인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은 현대 작품의 다채로운 표현 기법이 곳곳에 펼쳐진 곡이다. 이러한 표현 기법이 고전과 현대를 넘나들며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점이 프로코피에프 음악의 핵심이며, 그를 현대음악의 한 획을 긋는 작곡가로 평가받게 한다.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이 작곡된 시기는 보통 1917년부터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 그가 선율을 스케치하고 구상을 한 시점은 1911년으로 1921년 완성되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처음 구상했을 때는 ‘거대한 비르투오소 협주곡’을 작곡할 계획을 가지고 시작했다. 그러나 1악장의 주제와 2악장의 변주에 이어지는 3악장은 본래 현악4중주로 작곡했던 악구를 사용하면서 협주곡 3번의 규모는 상당히 확장되었으며 그의 표현대로 “완전히 온음계적인” 곡으로 만들어졌다.


이 작품은 1920년대 초부터 일어난 신고전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나 전체적인 구성이 고전적 협주곡에 기초하고 있었던 만큼 이미 시대의 사조에서 한 발 앞섰으며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대위적인 기법을 기반에 두고 있었던 점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20세기 음악어법을 사용하면서도 러시아의 국민성이 잘 드러나는 생명력 넘치는 도입부가 될 것이다. 이 러시아적 양식은 고전적 특징, 복잡한 화성 진행, 현대 음악어법과 함께 이 협주곡의 다양성을 확립하는 데 큰 몫을 담당한다.


악기의 편성은 독주 피아노, 2대의 플루트, 2대의 오보에, 클라리넷, 2대의 바순, 2대의 트럼펫, 3대의 트럼본, 큰북, 팀파니, 캐스터네츠, 탬버린, 심벌즈, 현악 5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연주시간은 약 30분 정도이다.  

 

Martha Argerich piano

Claudio Abbado cond.

Berliner Philharmoniker

1. Andante - Allegro

2. Andantino

3. Allegro ma non troppo

Paik Kun Woo piano

Lorin Maazel cond.

New York Philharmonic

1. Andante - Allegro

2. Andantino

3. Allegro ma non troppo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은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간판 레퍼토리입니다. 1991년 낙소스 레이블로 폴란드 국립방송교향악단과 전곡을 녹음해 디아파종 금상을 수상한 출세작이기도 하며 2003년 프로코피예프 서거 50주년을 맞아 서울시향과 이듬해인 2004에는 로린 마젤이 이끄는 뉴욕 필과 전곡을 협연하였습니다. 협주곡 3번은 특히 인연이 깊은 곡입니다.

 

악장별 분석

1악장 : 안단테 - 알레그로

클라리넷 독주로 연주되는 서주를 시작으로 플루트와 바이올린의 이중주로 진행되는데 이 두 악기는 유니즌으로 연주된다. 제1주제는 다소 지나치게 빨리 지나가버리는 선율과 모티브마다 조성이 변화하는 점 때문에 조성감이 분명치 않다. 그럼에도 선율이 분명하게 들리는 것은 유니즌을 통한 선율 강조 기법 때문이다. 각 악기군이 서로 전투처럼 대립하며 클라이맥스를 형성하다 이어지는 제2주제에서 현악기의 피치카토 반주 위에 조용한 오보에 독주가 등장하며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격정적인 제시부와 대조되는 서정적인 발전부가 진행되는 것은 상당히 인상적인 부분이다. 이어지는 재현부에서는 제시부의 모든 요소들이 응축되어 더욱 화려하게 진행되다 끝맺는다.


2악장 : 안단티노

변주곡 형식인 2악장의 테마의 구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플루트와 클라리넷이 연주하는 1부분과 바이올린이 주제를 담당하며 현이 주를 이루는 2부분, 다시 1부분으로 돌아오는 총 3부분의 구성인데, 선율의 변화뿐만 아니라 악기의 사용으로도 구조를 느낄 수 있도록 한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다. 제1변주는 도입 부분에서 화려한 피아노의 글리산도 음형을 앞세워 시작하며, 목관이 주제를 마지막에서 받기 전까지는 오롯이 피아노가 주제를 화성적으로 다루며 진행한다. 제2변주는 화려한 장식적 변주로 이루어지지만 제3변주에서 다소 정적이며 단호한 분위기로 변한다. 이때 솔로는 12/8박자를, 오케스트라는 4/4박자를 사용하며 주제의 리듬을 변형해서 연주한다. 제4변주는 호른과 바이올린, 오보에가 주제를 받아가는 과정에서 모티브가 마치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듯 연주되는 것이 판타지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제5변주에서 다시 템포가 빨라지며 클라이맥스로 치닫다가 갑자기 잦아들면서 p의 악상으로 돌아간다. 피아노의 8분음표 단위의 반주 위에 오케스트라가 다시 테마의 선율을 노래하며 2악장을 마무리한다.


3악장 :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다섯 부분 론도로 A-B-A’-C-A”-Coda의 형태를 갖고 있다. 현악4중주곡을 염두에 두고 스케치해 두었던 소재를 사용한 3악장은 전체적으로 현악기의 활용이 두드러진다. 중간에 나오는 쓸쓸한 느낌을 주는 조용한 부분(C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를 통틀어 돌진하는 인상을 주는 빠른 패시지들이 주를 이루며 작은 음량으로 표현되는 부분마저도 스타카토나 삼연음, 악센트 등을 통한 극적인 표현을 빼놓지 않는다.

 

이 해설은 신재민님이 2011.06.23 포향시향 제112회 정기연주회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협주곡 3번’ 협연을 앞두고 다음카페 ‘시향사모’ http://cafe.daum.net.ilovepopo 회원들을 위해 지난해 6월 8일자로 올린 설명문을 포털에서 받아 전재한 것입니다. 신재민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Symphony No.5 in D minor, Op.47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5번 <혁명>

Shostakovich, Dmitrii Dmitrievich

1906~1975


USSR Ministry of Culture Symphony Orchestra

Gennady Rozhdestvensky, Cond  


교향곡 5번 <혁명>은 쇼스타코비치가 31세 때인 1937년에 완성한 곡으로 그의 교향곡 15곡 중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며, 가장 많이 연주되는 레퍼토리 중 하나입니다. 어떤 작곡가이든 교향곡에서만큼은 5번이라는 숫자에 대해 그 배경을 떠나 베토벤에 대한 경외감을 갖게 마련인 모양입니다. 이 곡도 예외가 아니어서 쇼스타코비치의 ‘운명 교향곡’이라고도 불립니다.

 

  1악장 Moderato-Allegro non troppo-Moderato

 


  2악장 Allegretto scherzo

 


  3악장 Largo

 


  4악장 Allegro non troppo

 

 

쇼스타코비치의 회상록 <증언>에서

1937년 11월 21일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 운명에서 분수령이 된 날이라 할 수 있었다.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홀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소비에트 사회의 최상층 인사들 즉 음악가, 작가, 배우, 화가, 그 밖의 온갖 유명인사들이 모여들었다. 명예가 손상된 이 작곡가의 <교향곡 제5번> 초연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작곡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궁금해하고 가십과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어떤 센세이션과 스캔들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 음표가 울리고 나자 그곳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후에 있었던 주요 쇼스타코비치 작품들의 소비에트 초연이 거의 항상 그랬듯이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은 거대한 도덕적 압력 하에서 중대한 선택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한 정직하고 사려 깊은 예술가가 행한 노력을 나타내고 있었다.


곡은 신경을 극도로 곤두세우는 박동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작곡가는 열에 들떠서 미궁에서 나가는 탈출구를 찾고 있었다. 마지막 악장에 이르자 그는 결국 어떤 소비에트 작곡가의 표현처럼 자기가 ‘이념의 가스실’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뿐이었다.


*<증언>(Testimony : the memoirs of Dmitri Shostakovich)은 음악학자인자 저널리스트인 솔로몬 볼코프(Solomon Volkov)가 쇼스타코비치의 구술을 토대로 1979년 미국에서 출간한 작곡가의 회상록입니다. 국내에는 2001년 <드미트리히 쇼스타코비치 회상록>(이론과실천)이란 책명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작품 이해를 위한 시대적 배경

1930년대의 소련은 스탈린 1인 숭배 체제 하에서 3천만 명이 숙청당하는 공포정치의 시대였다. 어떤 음악을 써야 할지 작곡가보다 당이 더 잘 알던 시대였다. 문화예술은 암흑 속에서 낙관주의를 설파해야 했다. 당의 지침에 순응하지 않는 예술가에게는 어김없이 ‘형식주의’ ‘타락한 자본주의’ 등의 딱지와 함께 생명의 위협이 가해졌다. 이념과 체제의 잣대로 음악을 재단하던 시대였다. 촉망받는 젊은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다.


1936년 1월,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은 “음악이 아니라 횡설수설하는 음표 더미들”이라는 당 기관지 <프라우다>의 비판을 받았다. 쇼스타코비치는 ‘인민의 적’으로 낙인찍혔다. 쇼스타코비치는 그 해에 완성한 교향곡 4번 C단조의 초연을 포기해야만 했다. 짙은 고독과 염세적인 분위기에 싸인 이 곡은 ‘타락한 부르주아 음악’으로 평가될 게 예상됐고, 그것은 곧 작곡가의 신변을 위협할 게 분명했다. 1937년 11월에 발표한 교향곡 5번은 스탈린의 압제에 대한 쇼스타코비치의 대답이었다.


1악장과 3악장의 비극적인 분위기를 일소하는 4악장의 당당한 화음과 강력한 타악기의 향연은 아무리 혹독한 억압에도 꺼지지 않는 민중의 승리를 표현했다고 해도 좋고, 운명을 대하는 개인의 낭만적인 의지를 그렸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어느 경우든 스탈린 체제의 전진과 승리를 찬양하는 것은 작곡가의 의도와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관변 비평가들은 "낙관적 비극의 전형을 그렸다" "더 밝은 미래의 비전을 들려주었다" 등의 찬사와 함께 쇼스타코비치를 복권시켜 주었다.


이 곡은 초연 당시 1시간이 넘도록 박수를 받았다. 연주시간 45분보다 더 긴 시간이었다. 쇼스타코비치는 회상록 <증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곡의 피날레에서 나는 생기에 찬 낙관적인 비전을 보여주고자 했다. 앞의 세 악장에서 드러난 비극적인 느낌들에 대한 해결책을 추구한 것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이러한 모호한 표현으로 체제와 그럭저럭 타협하며 살아간 기회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자신은 훗날 제자 로스트로포비치에게 이렇게 강조했다.

 

 

“우리는 모두 음악의 전사들일세. 어떠한 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아 인간을 옹호해야 하는 전사들….”

 

전쟁이 끝난 뒤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9번을 발표했다. 스탈린은 이 곡이 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기리는 기념비적 작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베토벤의 9번이 그러했듯 쇼스타코비치의 최대 걸작이 나올 걸로 은근히 기대했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는 이러한 기대를 비웃기나 하듯 단순하고 귀엽고 유머가 넘치는 교향곡을 내놓았다. 스탈린은 격분했고 1948년 주다노프의 비판이 이어졌다.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이 죽은 1953년까지 스탈린 1인 숭배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저열한 선전영화의 음악을 만들어야만 했다.


음악은 인간의 마음과 의지 그 자체를 표현하는 가장 추상적인 예술이다. 문학은 언어로, 미술은 구체적인 회화나 조형물로 말하기 때문에 체제를 옹호했느냐 비판했느냐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그러나 음악, 특히 가사 없는 교향곡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한 개인이나 집단이 판단하려고 할 경우 오류를 범하기 쉽다. 음악이란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들릴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무한히 다양한 뉘앙스와 표현의 섬세함, 바로 그 점이 음악의 매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작곡가보다 당이 음악을 더 잘 알던’ 스탈린 시대에는 이러한 일이 자주 일어났다. 공포 정치 속에서도 살아 있는 인간의 의지를 묘사한―적어도 쇼스타코비치의 회상록 <증언>에 의하면―교향곡 5번을 소련 공산당이 찬양한 것은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이 시대를 웃으며 살아가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다. 지휘자 게르기에프는 이렇게 말한다.


“스탈린은 절대 권력을 휘두른 독재자요 폭군이었다. 하지만 스탈린이 억누를수록 쇼스타코비치는 더욱, 더더욱 강해졌다. 스탈린의 압제는 이런 의미에서 쇼스타코비치의 모든 음악에 흔적을 남긴 것이다.”

 

  프라하 뮤직 페스티벌에 참석한 레닌그라드 필의 전설적 지휘자 므라빈스키,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리니스트

  오이스트라흐(왼쪽부터).


시대를 넘어 불행한 작곡가 쇼스타코비치

쇼스타코비치는 참으로 불행한 작곡가이다. 쇼스타코비치가 불행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가 살았던 생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서 불행하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어쩌면 쇼스타코비치는 살아생전보다 오히려 죽고 나서 더 불행한 작곡가인지도 모르겠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소련 공산정권의 불길과 맞서 싸우는 소방관으로 캐리커처된 쇼스타코비치.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들은 어떤 이데올로기와 연관을 짓지 않고서는 설명되어 있지 않다. 표제가 붙어 있는 것들을 제외하고서라도 처음과 마지막 교향곡인 1번과 15번이 비교적 이런 상황에서 자유로울 뿐, 하나같이 ‘혁명’ ‘전쟁’ 등과 같은 주제들이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쇼스타코비치의 곡이라고 한다면 단연 그가 작곡한 <재즈 모음곡 2번>의 6 번째 왈츠일 것이다. 이 곡은 <번지 점프를 하다>와 같은 영화뿐 아니라,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유작인 <아이즈 와이드 샷>에도 삽입되었고, 최근에는 국악기인 해금 연주로 편곡되기도 한 곡이다. 약간 우울한 정서를 포함하고 있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작품이지만, 그의 간략한 전기를 담은 글들을 읽다 보면 어느새 그 곡은 고뇌하고 있는 한 예술가의 슬픔이 묻어 있는 곡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한 작곡가에게 이토록 어떤 확정된 이미지가 입혀진 작곡가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것도 어떤 이념으로 말미암아 치장된 작곡가는 그것이 어떤 이념이든 간에 그의 음악이 다양하게 해석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없기에 불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쇼스타코비치에게만큼은 이런 현상이 더욱 심화되어 있으며, 그 때문에 쇼스타코비치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다. 이는 작곡가에게도 불행한 일이지만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도 불행한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이미지올로기’로 향해 가는 이 시대에서 어찌 쇼스타코비치가 불행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쇼스타코비치의 아들 막심은 한 인터뷰에서 이제 아버지의 음악이 좀 더 자유롭게 순수음악적으로 해석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쇼스타코비치가 남긴 음악에서 좀 더 다채로운 즐거움을 찾을 수는 없는 것일까?


 


이 교향곡은 그가 31세 때인 1937년에 완성된 곡으로 다이내믹한 음향에 델리킷한 감정표현을 볼 수 있는 명작이다. 더구나 이곡은 베토벤 이래 전통을 고수하는 문제의 야심작이다. 따라서 투쟁에서 승리로 이끌어 가는 베토벤의 이념과 일맥 상통하는 점이 있고, 인간선의 설정과 밝고 명량하며 환희의 세계를 지향하는 경지를 그린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80년대 한국. 대학가에서 은밀히 유통되던 카세트 테이프 가운데 ‘혁명’이라는 게 있었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의 교향곡 5번 D단조.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 사람의 작품으로 제목까지 불온하기 짝이 없으니 당시에는 몰래 들어야 하는 음악이었다. 은밀한 호기심으로 이 곡을 듣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곡을 ‘인터내셔널가’에 버금가는 이념 음악으로 신비화하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 1970년대 후반, 뉴욕 필을 이끌고 방한 공연을 준비하던 번스타인. 청와대가 레퍼토리에 쇼스타코비치의 5번 교향곡이 있는 걸 알고, 레퍼토리 교체를 요구하자, 번스타인은 그럼 한국 방문을 취소하겠다고 으름짱을 놓았다. 결국  청와대가 이에 굴복했던 음악이기도 하다.

 

제1악장 모데라토.

매우 느리게 전개되는 서두 부분에서는 청중이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멜로디의 악상이 등장한다. 주제부는 당시의 사회 분위기, 정치적 공포감을 표현하기 위해서 급하지 않게 진행된다. 갑자기 등장하는 폭풍과도 같은 알레그로가 개입되면서 사악한 무리들의 겁탈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음악은 다시 온화롭고 다정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청중에게 묻는다. 우리는 왜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지 못하는가? 다시 등장하는 악마의 무리들이 공격을 시작하고 그 폭력성은 절정에 이른다. 우리의 영웅은 갈가리 찢겨져서 없어지고, 그가 만일 사악한 무리들이 없는 세상에서 살았다면 얼마나 다른 삶을 살았을까를 말해주는 진혼곡의 소리가 들려오게 된다.

 

 제2악장 알레그렛토 스케르쪼.

당대의 평론가들은 본 악장이 말러풍의 왈츠와 유사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말러는 그의 음악적 전통에 충실한 랜틀러였겠지만 아버지의 음악은 절대로 왈츠가 아니다. 그렇다면 2악장은 영혼이 없는 사악한 무리들의 강한 폭력이고 파괴를 일삼는 기계적 인간들을 표현하는 것이다. 바이올린 솔로의 등장은 이러한 무리의 군화에 짓밟혀 신음하는 어린아이들의 절규이다. 플루트가 바이올린 솔로의 패시지를 다시 연주하면서 그 절박함은 다시금 강조된다. 사악한 무리들의 행진이 다시금 시작되면서 악장은 결국 악한 무리들의 승리를 암시하며 끝나게 된다. 

제3악장 라르고.

 5번 교향곡의 3악장은 실로 아버지의 모든 교향곡을 통틀어 가장 아름답고 수려한 멜로디의 작품이다. 아버지는 여러 목소리를 한꺼번에 표현하려는 의도로서 바이올린을 3개의 파트로 나누기도 했다. 주인공은 집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내일이면 강제 노동수용소로 끌려갈 한 남자일 수도 있고 내일이면 처형당할 불쌍한 영혼일 수도 있다. 마지막 밤을 집에서 보내는 남자 곁에는 아이의 숨소리가 들리고 아내의 따뜻함도 느껴진다. 그러나 그는 울지 않는다. 대신 그 남자는 깊은 원망을 갖는다. 왜 내가 희생을 당해야만 하는가! 아버지는 절대로 감상에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등장하는 첼로 독주는 청중의 가슴을 적시고 악장의 클라이맥스를 지나서 영웅의 격한 감정은 조용히 사라진다.

 

제4악장 알레그로 마 논 트롭포.

폭풍의 기세 속에 영웅은 승리한다. 이러한 기세 등등함은 3악장과 유사한 느린 악절의 등장으로 이어지는데 조용함이라기 보다는 뒤를 잇는 그 무엇에 대한 전조일 뿐이다. 전쟁을 예견하며 드럼과 저음 호른의 연주가 뒤를 잇는다. 만일 전쟁이 아니라면 그것은 아버지를 위협하는 사악한 무리들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말한다. "너희들 마음대로 나에게 아무 것도 할 수는 없다." 행복도 아니고 승리도 아니다. 단지 강한 인간의 의지인 것이다.

예프게니 므라빈스키(Evgeny Mravinsky)





레너드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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