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 2011년)

다니엘 바렌보임 베토벤 교향곡 전곡연주회/셋째날 / 8.12.금/예당

나베가 2011. 8. 18. 15:03

 

다니엘 바렌보임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회


Daniel Barenboim & West Eastern Divan Orchestra

 

BEETHOVEN SYMPHONY CYCLE

 

 

 

1. 살아 있는 전설 다니엘 바렌보임, 마침내 돌아오다

 

타임 ‘가히 전설적이다’고 표현한 음악가 다니엘 바렌보임 드디어 한국에 돌아온다. 1984년 파리 오케스트라와 한국을 방문한지 무려 27년 만이다. 세계적인 대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바렌보임은 잉글리시 챔버 오케스트라, 파리 오케스트라, 시카고 심포니,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파리 오케스트라 재임시절에는 파리 합창단을 창설하고 현대음악 레퍼토리를 개발하며 오케스트라의 중흥을 이끌었고, 15년간 이끌었던 시카고 심포니를 떠날 때에는 전 오케스트라 단원들에 의해 ‘종신 명예 지휘자’로 추대 받기도 하였다. 현재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음악감독 겸 종신 지휘자이며,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의 수석객원지휘자이다. 특히 음악감독이 공석이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로부터는 '라 스칼라의 마에스트로(Maestro Scaligero)'라는 호칭을 부여받기도 하였다.  지휘자 이전에 피아니스트였던 바렌보임은 이 시절에도 역시 독보적인 존재였다.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멘델스존, 쇼팽 등 방대한 레퍼토리를 가진 천재형 피아니스트로서 피아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전곡,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전곡, 바르톡 피아노 협주곡 전곡 녹음하는 업적을 이루었다. 1954년 첫 음반을 발매한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Westminster, EMI, DG, Decca, Philips, SONY, BMG, Erato, Teldec 통해 발매한 음반만 수백 장에 이른다.

 

그는 또한 음악을 통해 세계를 변화시키는 실천하는 지식인이다. 1999년부터 에드워드 사이드와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를 창단하여 매년 전세계 순회 연주 통해 평화의 메시지를 역설한다. UN 평화대사이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시민권을 동시에 갖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2. ‘평화’를 연주하는 ‘기적의 오케스트라’, 웨스트이스턴 디반의 역사적 첫 내한!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는 유태인 음악가 다니엘 바렌보임과 팔레스타인 출신의 세계적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가 1999년 이집트, 이란, 이스라엘, 요르단, 레바논,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 중동국가 출신의 연주자들로 구성하여 창단한 오케스트라로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동서양의 소통을 지향하며 쓴 ‘서동시집’을 따서 명칭을 지었다. 이스라엘과 아랍계, 각각의 국적을 가진 두 명의 악장이 리드하는 독특한 형태는 웨스트이스턴 디반의 이념을 반영한다.

 

최근 바렌보임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프로젝트가 바로 이 웨스트이스턴 디반이다. 특히, 2005년에 중동의 가장 첨예한 대립지역인 팔레스타인 라말라에서 이루어진 공연은 전세계인들의 마음에 큰 감동을 선사한 바 있다. 평화의 오케스트라, 기적의 오케스트라인 웨스트이스턴 디반이 드디어 한국에 상륙한다!

 

 


3. 대한민국 클래식 역사상 최초 4일간의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이자 클래식을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베토벤. 그의 음악의 최고봉이라고 이르는 교향곡을 다니엘 바렌보임의 지휘로 4일에 걸쳐 모두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차라리 기적이라 하겠다. 한편, 세계적인 레이블인 DG는 지난 11월, 다니엘 바렌보임과 웨스트이스턴 디반의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녹음한다고 발표하기도 하였다.

 

 

 

 

 

불멸의 역사로 기록될 베토벤 음악의 대제전 이영진 | 음악 칼럼니스트

하루가 멀다 하고 수많은 연주회가 치러지고 있는 2011년 클래식 공연계, 그 클라이맥스가 될 콘서트가 올 여름 거행될 예정이라 음악애호가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떠한 외국 오케스트라도 시도한 적이 없었던 베토벤 교향곡 전곡 콘서트가 열리는 것이다. 그것도 거장 다니엘 바렌보임의 지휘로 말이다.
지휘자로, 피아니스트로 다니엘 바렌보임의 활동상은 실로 초인적이다. 거장 스스로‘음악에 사로잡힌 사람’이라 토로하듯 한시도 쉬지 않고 무시무시한 스케줄을 소화해내고 있다. 예컨대 하루는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나 바그너 악극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를 지휘하고, 다음날에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리사이틀을 가지며, 이를 끝내자마자 바그너 악극 <니벨룽의 반지> 전곡을 공연하는 식이다.그것도 전부 연습 번호를 포함하여 스코어를 완전히 암보한 상태로 말이다. 계획한 프로젝트도 다른 음악가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들이 다대하다. 작년 6월에는 단 일주일 사이 프로그램 전반부에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후반부에 브루크너 교향곡 제4~9번을 혼자서 연주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무엇보다 바렌보임은 현존하는 최고의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 명성이 높다.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 독주곡 등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유일무이한 인물이다. 레코드가 증거물로, 피아노 협주곡 녹음이 세 차례. 오토 클렘페러와 협연한 1967년 녹음(EMI), 지휘와 솔로를 동시맡은 베를린 필과의 1985년 스튜디오 녹음(EMI), 같은 형식으로 연주한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와의 2007년 6월 루르 피아노 페스티벌실황영상(Euroarts)이 그것이다. 피아노 소나타도 1966년에서 1969년사이, 1981년에서 1984년 사이, 2005년에 세 번이나 녹음했다. 베토벤 교향곡 전집(Teldec)은 1999년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와 두 달 만에 레코딩했다. 웅혼한 스케일감과 고동치는 생명력으로 충만한 이 사이클은 그가 존경하는 전세기의 대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뱅글러를 방불케 한다는 격찬을 받았다.
바렌보임은 1942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1950년 여덟 살의 나이로 리사이틀을 열어 피아니스트로 데뷔한 분더킨트였다. 1954년에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이고르 마르케비치의 마스터클래스에 참석했으며, 이듬해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나디아 불랑제에게 작곡을 사사했다. 지휘자로서는 1965년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며 데뷔한 이래 20대 나이에 유럽 정상의 명문 악단의 무대에 잇달아 모습을 드러내며 비상한 천재성을 과시했다. 1968년 런던 심포니, 1969년 베를린 필, 1970년 뉴욕 필을 지휘한 것이다. 1975년부터 1989년까지 파리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재직했고, 1991년에서 2006년 사이 시카고 심포니의 음악감독을 역임했다. 1992년부터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종신 상임지휘자로 재임 중인 바렌보임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용기로 긴장을 용해하는 젊은이들

다니엘 바렌보임의 또 하나 돋보이는 점은 음악에 파묻혀 있어도 현실을 도외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를 축하하려 베를린으로 달려가 베토벤 교향곡 제7번과 피아노 협주곡 제1번 무료 콘서트를 개최한 바 있다. 그에게는 금기와 성역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르헨티나와 이스라엘 국적을 함께 보유하고 있는 유대인임에도 바렌보임은 배타적인 시오니스트가 아니다. 오히려 높은 윤리 의식을 가진 양심적 지성인으로서 이스라엘 정부를 가차 없이 비판한다. “근동 지역에서 매일같이 일어나는 살육에 참을 수 없을 만큼 슬픕니다.”강연 활동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통치 구역인 웨스트 뱅크에서 여러 차례 연주회를 가졌으며, 올해 5월에는 가자 지구에서 베를린 필, 빈 필,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등에서 자원한 단원들과 콘서트를 가졌다.
세계인에게 어떻게든 공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그의 실천 의지를 지지하는 동반자가 바로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이다.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팔레스타인계 미국의 문명 비평가인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4)와 의기투합, 설립한 연주 단체이다. 오케스트라 명칭은 괴테의 저작‘서동 시집’에서 명명되었으며, 단원들은 첨예한 대립관계에 놓여 있는 이스라엘과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등 아랍국 출신의 젊은 클래식 연주가들 중에서 선발했다. 제1회 워크숍은 1999년 괴테 탄생 250주년 기념일, 독일 바이마르에서 개최되었다. 낮에는 리허설을 하고 밤에는 토론을 하는 준비 과정을 거쳐 첫 번째로 베토벤 교향곡 제7번을 공연했다. 그후에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세비야로 거점을 옮겨 매년 여름 합숙하며 연주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2005년 8월 21일 바렌보임과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임시 행정수도로, 당시 이스라엘 군의 무자비한 인종 청소가 자행되던 라말라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콘서트를 강행했다.
국적과 종교와 옷차림이 제각각인 네 명의 솔리스트들은 모차르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혼을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를 연주하며 서로에게 미소를 지었다. 베토벤 교향곡 제5번과 엘가‘수수께끼 변주곡’중‘님로드’연주를 마친 뒤 서로를 포옹했다. 지뢰밭이나 다름없는 벼랑 끝 같은 곳에서“음악으로 평화를 불러올 수는 없다. 그렇지만 상대의 견해를 이해하도록 애쓰자. 폭력 없이 갈등을 봉합하도록 애쓰자”라는 목소리를 드높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2006년 8월에는 역으로 무슬림 왕조의 국왕 무하마드 1세가 건립한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에서 브람스 교향곡 제1번 콘서트를 열었다.


  

 

동서화합에서 남북통일의 길로
그렇다고 해서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를 단순한 이벤트용 앙상블로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들은 유럽 본토 어느 나라에서든 빼어난 연주 실력을 검증받은 톱클래스의 프로 오케스트라이다. 2008년에는 이탈리아 라벨로 페스티벌과 파리 살플레이엘홀, 베를린 발트뷔네 콘서트 등에서 바그너 악극‘발퀴레’1막을 공연했으며, 독일 쾰른 필하모니와 스톡홀름 베어발트홀 등에서는 브람스 교향곡 제4번 및 스트라빈스키‘병사의 이야기’를 연주했다. 2009년에는 창립 10주년을 기념하여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런던 BBC 프롬스, 바이로이트 등을 순회하는 투어를 가졌다. 로열 앨버트홀에서 올스타 캐스팅으로 짜인 독창진과 베토벤 오페라‘피델리오’를 연주하여 현지 언론으로부터 호평을 들었다.
특별히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는 바렌보임이 베토벤 교향곡을 연주할 때 반드시 기용하는 베토벤 음악전문 오케스트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작년 8월에는 마드리드, 카라카스, 산타도밍고 등에서 연이어 베토벤 교향곡을 공연하여 갈채를 받았다. 거장의 고향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진 교향곡 제9번‘합창’콘서트에서는 열광한 관객들이 장장20분에 달하는 기립박수 세례를 보냈다.
이번 내한 공연 역시 프로그램이 베토벤 교향곡 전곡으로 꾸며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연주회를 마치고 난 후 유럽으로 돌아가 루체른과 베를린에서 교향곡 제9번‘합창’을, 잘츠부르크에서 교향곡 제3번 ‘영웅’을, 쾰른에서 5일간에 걸쳐 재차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공연하기로 되어 있으니, 한국이 2011년 베토벤 대장정의 시발점이 되는 셈이다.
바렌보임과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이 더욱 관심을 모으는 이유는 8월 10일에서 14일 사이 서울에서 베토벤 교향곡 사이클을 완료하고, 15일 저녁 임진각 평화누리‘음악의 언덕’에서 교향곡 제9번‘합창’을 별도로 연주하는 스페셜 콘서트를 가질 계획이라는 놀라운 소식 때문이다. 게다가 14일과 15일에는 소프라노 조수미가 가세할 예정이다. 임진각이라 하면 남북이 나뉘어 대립하고 있는분단의 비극적인 현 상황을 상징하는 장소가 아니던가.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기념일인 광복절 날 그곳에서 베토벤‘합창’교향곡을 연주한다니. 동서화합을 제창하는 이들 콤비가 철조망을 넘어 만국공통어인 음악으로 남북한의 간극을 좁혀 화해와 공존의 장을 모색하자 제의하는 것. 레너드 번스타인의 1989년 동곡 공연에 비견될 역사적인 연주회가 될 것이다.
다가오는 8월 10일에서 15일 사이 다니엘 바렌보임과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임진각에서 연주하는 베토벤 교향곡 전곡 콘서트는 대한민국 공연계에 큰 획을 긋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토해내는 늠연한 웅변에 도취하고 침잠하고 가슴벅찬 환희를 느끼게 되리라.

 

프로그램

베토벤_교향곡 제6번 F장조 Op. 68 ‘전원’
BEETHOVEN_Symphony No. 6 in F Major Op. 68 ‘Pastorale’

 

베토벤_교향곡 제7번 A장조 Op. 92
BEETHOVEN_Symphony No. 7 in A Major Op. 92

 

베토벤 / 교향곡 제7번 A장조, 작품 92
 

2 Mov. Allegretto

 

 

베토벤 교향곡 6번 F장조 Op.68 '전원‘
BEETHOVEN_Symphony No. 6 in F Major Op. 68 ‘Pastorale’

“자연은 사람을 속이는 법이 없지.” “숲 속에 있으면 그렇게 기쁘고 행복할 수가 없다네.” 베토벤이 한 말이다. 이 밖에도 베토벤은 자연을 사랑하고 예찬하는 말들을 많이 남겼다. 그는 세속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좋아하는 자연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 위안을 얻었다.
베토벤은 1802년 빈 근처의 하일리겐슈타트에서 귓병 때문에 요양했다. 당시 자신감을 잃고 절망한 나머지 동생에게 보내는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썼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베토벤은 1808년 여름에 다시 이곳을 방문해서 자연에서 받은 감명을 작품에 담았다. 그것이 바로 교향곡 6번 ‘전원’이다.
요제피네에 대한 열정은 이 작품을 쓸 무렵에는 식어 있었다. 교향곡 3번을 쓸 무렵의 나폴레옹 같은 인물도 없었고, 쾌적하지 못한 빈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은 실망과 환멸을 안겨주었다. 사랑의 종말, 어수선한 인생사는 전원으로의 도피로 이어졌던 것일까.
항상 마음의 고뇌와 격렬한 감정, 몸의 병 때문에 고생을 하던 그에게는 자연이야말로 평안함과 풍족함을 가져다주는 천국이었을 것이다.
하일리겐슈타트에서 베토벤의 일과는 아침이 밝아옴과 동시에 일어나 오후 2시까지 일을 한 후 저녁때까지 산책을 하는 것이었다. 가끔은 모두가 잠든 후까지 산책만을 할 때도 있었다고 하며 그는 이때의 감상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신이시여. 숲속에서 나는 행복합니다. 여기서 나무들은 모두 당신의 말을 합니다. 이곳은 얼마나 장엄합니까!”
‘전원 교향곡’은 자신을 잃어 절망한 나머지 유서를 쓰기까지 했던 베토벤이 자신에게 새로운 삶의 욕구를 심어 준 자연에 대한 사랑 고백인 셈이다. 그가 이 곡을 특별히 ‘전원’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지만, 후세의 사람들이 창작 당시의 베토벤의 상황과 곡에서 받은 느낌으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베토벤 자신은 '전원생활의 회상'이라고만 했고, ‘듣는 사람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덧붙였다.
베토벤이 38세 때인 1808년 12월 22일 교향곡 5번 ‘운명’과 함께 안 데어 빈 극장에서 초연됐고, ‘운명’과 같은 해의 작품이어서인지 이 두 교향곡에서는 어딘가 비슷한 예술적 연관성이 엿보이기도 한다. 교향곡 5번이 인간을 표현하고 남성적이며, 지극히 집중적인 곡임에 비해 이 곡은 자연을 표현하고 여성적이며 넘쳐흐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곡이라는 설명으로 두 곡을 상반되게 보는 평론가도 많다. 하지만 전개부 구성이나 곡 전체의 구성 모두 두 곡이 놀랄 정도로 비슷하다는 점을 비교하여 듣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연주: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 주빈 메타

1악장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전원에 도착했을 때의 즐거운 감정이 깨어남’
표제에서와 마찬가지로 전원(시골)에 도착했을 때 느끼는 즐거운 감정을 나타냈다. 베토벤 교향곡 사상 최초의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빠르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이다. 그만큼 힘을 빼고 느긋하게 연주한다.
첫머리의 주제는 오스트리아의 민요에서 유래한 듯하지만 슬로베니아나 모라비아에서도 비슷한 민요가 존재했다고 한다. 교향곡 5번 ‘운명’ 첫머리와 마찬가지로 페르마타가 사용됐다. 시종 즐겁고 밝은 분위기이다.


연주: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 주빈 메타

2악장 안단테 몰토 모소 ‘시냇가의 정경’
시냇가에서 본 자연의 모습을 묘사했다. 저음 현악기에서 시냇물이 조용히 흘러가는 모습을 암시하는 듯한 미세한 움직임을 묘사한다. 여기서 관악기들이 새의 울음소리를 묘사하는데, 플루트는 나이팅게일, 오보에는 메추리, 클라리넷은 뻐꾸기를 나타내고 있다.

연주: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 주빈 메타

3악장 알레그로 ‘농부들의 즐거운 모임’

스케르초에 해당하지만 즐겁게 농부들이 춤추는 무곡처럼 들리기도 한다. 오스트리아 고유의 춤곡이 들려온다. 연주하는 사이 술에 취해 잠든 악사도 있고 소박한 악기를 가져온 악사도 있다.

연주: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 주빈 메타

4악장 알레그로 ‘천둥, 폭풍우’

3악장 끝에서 쉼 없이 연결된다. 저음현이 멀리서 들리는 천둥소리를 나타낸다. 춤추던 농부들은 놀라서 대피하고 천둥소리가 갑자기 커지며 번개가 내리치고 폭우가 쏟아진다. 베토벤 특유의 박력과 다이내믹이 유감없이 펼쳐진다. 잠시 후 천둥소리는 멀어지고 밝은 태양이 얼굴을 내민다. 역시 쉼 없이 5악장으로 연결된다.

연주: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 주빈 메타

5악장 알레그레토 ‘목동의 노래, 폭풍우가 지난 뒤의 감사’

클라리넷과 호른이 목동 피리소리를 내고 그에 이어 바이올린이 우아한 선율로 노래한다. 가볍고 청량한 제2주제에 이어 제1주제가 여러 번 모습을 드러낸다. 베토벤 교향곡 마지막 악장에서 흔히 보이는 강렬함은 없지만 평화롭고 목가적인 모습으로 한 폭의 그림처럼 마무리된다. 그 모습에서는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인간은 결국 자연으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베토벤 교향곡 제7번 A장조 Op. 92
BEETHOVEN Symphony No. 7 in A Major Op. 92

베토벤은 교향곡 6번이 작곡된 뒤 3년이 지난 1811년에 교향곡 7번의 작곡에 착수했다. 그 3년동안 베토벤은 여러 가지 일들을 겪었다.
우선 전쟁으로 인한 혼란이다. 1809년 4월 9일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는 전쟁에 돌입했고, 5월 12일 나폴레옹 군대가 빈을 침입했다. 베토벤의 후원자들은 빈에서 다른 곳으로 피란갔고, 베토벤은 재정적인 후원을 받지 못한 채 정신적으로도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작곡도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가뜩이나 귀를 앓고 있었던 베토벤은 연이어 울리는 포성에 귀를 보호하기 위해 지하실에 웅크리고 베개를 머리에 대고 있기도 했다 한다.
1809년 10월 전쟁이 끝나고 11월 프랑스군이 퇴각하지만 베토벤의 건강 상태는 좋지 않았다. 귀족들은 1810년 1월에 빈으로 복귀했다. 이 시기의 심정을 그린 피아노 소나타 ‘고별’을 작곡하면서 베토벤의 창작력은 서서히 회복되고 심리 상태도 안정을 찾게 됐다. 연금도 다시 지급 받았다.
전쟁 다음으로 겪은 일은 사랑이다. 1809년부터 베토벤은 테레제 말파티(브룬스비크 백작의 딸 테레제와는 다른 여성이었다)라는 여인과 알게 됐다. 베토벤은 테레제와 결혼을 고려하고 있었으며 현악 4중주 10번 ‘하프’에 나타나는 밝은 악상도 그녀와 관련 있다고 한다.
테레제를 위하여 쓴 유명한 소품 '엘리제를 위하여‘와 Op.38의 두 가곡이 1810년 봄 작곡됐고 이 해 여름에 작곡된 현악 4중주 11번 ’세리오소‘는 40세 가까운 남자와 18세 여자의 결혼이 실현 불가능해지면서 내면적이고 심각한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 이 사랑도 결국 파국으로 끝났다.
1811년 여름, 베토벤은 휴양을 위해 경치가 좋은 온천지 테플리츠에 갔다. 그곳에서 베토벤은 아말리아 제바르트라는 가수와 다시 만나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베토벤은 마음에 들었는지 이듬해에도 다시 방문하여 제바르트의 신세를 졌다.
실연의 아픔을 달래기에 테플리츠는 좋은 곳이었다. 즐겁고 밝은 분위기를 점차 되찾은 베토벤은 1806년경부터 해오던 이전의 스케치를 꺼내 작곡을 시작했다. 교향곡 7번도 그 중 하나로 1811~1812년 베토벤은 대부분 밝은 장조곡들만을 쓰고 있다.
이렇게 나온 베토벤의 교향곡 7번은 디오니소스적인 도취와 흥겨움으로 넘친다. 경쾌하게 밟는 명쾌한 리듬이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흥분시킨다. 바그너는 이 곡을 두고 “성스러운 경지에 이른 춤”이라고 했다.
이 곡을 들어보면 강하고 뚜렷한 의지가 느껴진다. 귓병 때문에 생긴 절망감을 떨치고 교향곡 3번을 쓴 것과 바깥세상에서 느낀 실망감 때문에 교향곡 5번을 썼던 것과 마찬가지다. 전쟁과 실연으로부터의 정신적인 극복과 관계가 있다. 따지고 보면 실연은 내면을 파괴하는 전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초연 때는 ‘전쟁교향곡’이라 불리는 ‘웰링턴의 승리’ Op.91도 함께 연주됐다. 두 곡의 연주는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2악장이 앙코르로 연주됐다.

1악장 연주: 로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 지휘: 카를로스 클라이버

1악장 포코 소스테누토-비바체
포코 소스테누토(조금 속도를 늦추어)로 연주하는 서주는 뒤에 나올 주요부의 주제로 발전시켜간다. 충실하고 당당하게 곡의 성격을 하나하나 보여준다. 주요부는 소나타 형식인데 발전부는 매우 대위법적이다. 재현부에 이어지는 코다는 지속저음(바소 오스티나토)을 동반한다.


2악장 연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 카라얀

2악장 안단테 몰토 모소 ‘시냇가의 정경’
자유로운 3부형식. 끊임없이 서정적인 성격이 흐른다. 1부에서는 대위선율을 수반한 부드럽고 아름다움이 듣는 이를 조용히 뒤흔든다. 마치 비장한 장송행진곡 같이 흐르면서 점층적으로 커지는 음의 덩어리가 가슴을 두드린다. 2부에서는 훨씬 밝아짐 대조적인 행복감을 나타낸다. 3부는 1부의 변주같이 느껴지는데, 푸가토도 두고 있다. 많은 면에서 교향곡 3번 ‘에로이카’의 ‘장송행진곡’과 비슷하다.

3악장 연주: 로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 지휘: 카를로스 클라이버

3악장 프레스토

까부는 듯한 스케르초에 해당한다. 트리오가 두 번 나오는데, 이 트리오에서는 밝고 따스하며 민요적인 분위기가 나타난다. 오스트리아 지방 순례의 노래에서 따왔다고도 하는데, 베토벤은 강약대비나 휴지, 스타카토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4악장 연주: 로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 지휘: 카를로스 클라이버

4악장 알레그로 콘 브리오

힘찬 화음에 이어 연주되는 제1주제는 러시아 민요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베토벤은 라주모프스키 현악 4중주를 작곡하기 이전에 이미 러시아 민요집을 갖고 있었다). 제2주제는 약동하는 듯하며 유머러스하다. 발전부는 제1주제의 전개로 이루어지고 재현부는 제1주제가 조를 바꿔 재현되고 제2주제가 첼로로 재현된다. 장대한 코다로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