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베토벤 교향곡 4,3번
“세계 전역에서 갈등과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데, 갈등과 전쟁의 이유는 바로 대화의 불통 때문입니다. 음악 자체는 갈등을 해결할 순 없죠. 하지만 서로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갖게 해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 있어요. 남·북한 사람 모두 모인 곳에서 연주하고 싶고, 그러면 무척 행복할 겁니다.”
분쟁 지역에서 평화의 음악을 전하는 지휘자 대니얼 바렌보임(Daniel Barenboim·사진)이 내한 연주를 앞둔 9일 서울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음악이 갈등과 분쟁 해결에 미치는 힘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유대계인 바렌보임은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WEDO)와 함께 10∼14일(13일 제외) 나흘 동안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베토벤 교향곡 9곡 전곡을 연주한다.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는 팔레스타인계 석학인 에드워드 사이드와 함께 바렌보임이 1999년 이스라엘과 중동지역 젊은 연주자를 모아 설립한 ‘평화의 오케스트라’다.
지휘자 바렌보임 “음악이 갈등 풀 순 없지만 대화 물꼬 틀 순 있죠”
<경향신문;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유태인 바렌보임과 팔레스타인 출신 미국인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가 1999년 창단한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는 대립과 갈등을 겪는 중동지역의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돼 ‘기적의 오케스트라’ ‘평화의 오케스트라’로도 불린다.
2005년에는 중동의 가장 첨예한 대립지역인 팔레스타인 라말라에서 공연, 전 세계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 바 있다.
공연에 앞서 9일 서울 서초동
JW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바렌보임은 “1984년
파리 오케스트라와 내한한 이래 다시 한국을 방문하는 데 오래 걸렸다”며 “하지만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와 함께 내한해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갈등이 일어나고 있고 그 갈등은 한국에도 있다”며 “이는 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으로, 음악이 갈등 자체를 없앨 순 없지만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도록 도울 순 있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한국 공연을 결정한 건 임진각에서 공연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남북한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는 연주회를 열고 싶었지만 가능하지 않았고, 임진각에서의 공연이라도 좋다고 판단해 한국에 왔습니다. 그러나 이 콘서트는 언젠가는 남북한 사람들 모두가 함께 음악을 들을 수 있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번 내한 공연에서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연주한다. 특히 임진각에선 ‘모든 인간은 한 형제’라는 가사로 된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을 연주한다. 바렌보임은 “음악은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경험을 전달하는 메시지의 수단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베토벤 곡은 18~19세기 작품임에도
현대적 메시지를 지니고 있으며 9개의 교향곡이 각각 다른 작곡가가 쓴 것처럼 저마다의 언어를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엔 홍보대사이기도 한 바렌보임은 자신을 ‘평화의 메신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념에 의해 하고자 하는 일을 할 뿐”이라고 했다.
“제가 하는 일들은 정치인들처럼 대중의 인심을 사거나 사랑을 받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선 자신이 기뻐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현대사회의 해악 중 하나는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해 고민이 많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겉모습보다
콘텐츠가 더 중요합니다.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 구성은 에드워드 사이드와의 우정의 결과로, 우리가 음악으로 공존할 수 있는 축을 찾은 것입니다. 음악은 연주와 동시에 대화를 나누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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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교향곡 4번 Bb장조 Op.60
교향곡 4번은 베토벤이 교향곡 5번 ‘운명’을 작곡중이던 1806년 가을에 작곡했다. 슈만은 이 작품을 ‘두 명의 북유럽 거인 사이에 있는 가냘픈 그리스 소녀’라고 묘사했다. ‘영웅’과 ‘운명’이라는 두 영봉 사이에 위치한 골짜기같이 눈에 덜 띈다는 의미이다. 물론 박력 면에서는 3번과 5번에 뒤지는 것이 분명하지만, 베토벤 교향곡들 가운데서 가장 완전한 형식을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당시 교향곡 3번 ‘영웅’을 통해 진보의 발걸음을 옮기던 베토벤이 생각 끝에 다시 교향곡 2번 쪽으로 움직였던 것일까. 보수적인 냄새를 풍기는 서주가 붙은 아다지오의 소나타-알레그로 형식으로 시작되는 이 곡에선 옛 선배들의 숨결이 느껴진다. 교향곡 2번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그래서 음반으로도 2번과 4번이 커플링되는 일이 많다) 2번에 비해 4번은 날카로움과 전위적인 면이 덜하다. 1악장 느린 부분에서 마치 마술사가 토끼와 비둘기를 갑자기 소환하듯이 신비감을 안겨주다가 4악장 피날레에서는 격렬하고 빠른 연주로 쾌감을 선사한다. 각 악장의 성격이 개성이 두드러지고 다채로워서 하나로 아우르기가 쉽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차분한 관조적인 분위기로 수렴하다가 생기 넘치고 다이내믹하게 발산하는, 기어 변속이 자유로워야 한다. 그래서인지 베토벤의 다른 교향곡들(특히 3, 5, 6, 7, 9번)에 비해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세월이 갈수록 점점 매력이 커지는, 그런 종류의 명곡이라고 생각된다. 1806년을 전후해 베토벤은 현악 4중주 ‘라주모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4번, 바이올린 협주곡, 오페라 ‘피델리오’를 작곡하는 등 열성적으로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베토벤이 즉흥적이고 환상적인, 낭만적인 성격을 드러낸 이 곡은 ‘교향곡 5번’보다 착수는 늦게 하고 완성은 먼저 한 작품이었다. 단시일에 붓 가는 대로 써 내려간 이 작품. 베토벤은 왜 ‘운명’의 작업을 중단하고 이 곡을 썼을까. ‘엘리제를 위하여’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한 테레제. 그녀의 동생 요제피네는 27세 연상의 폰 다임 백작과 결혼, 네 명의 자식을 두었으나, 백작과 사별하고 1804년 가을부터 1806년까지 베토벤과 점차 사랑이 깊어졌다. 1807년 사랑은 끝이 나고 1810년 요제피네는 슈타켈베르크 남작과 재혼했다. 따라서, 이같은 전후사정을 살펴보면, 1805년부터 1806년에 걸쳐 나온 작품에 사랑의 감정 부드럽고 낭만적인 정서가 흐르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슐레지아의 리히놉스키 후작의 관사에 머물면서 쾌적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베토벤은 교향곡 4번 작곡에 심혈을 기울이며 인생에 대한 기쁨을 간결하고 밝게 묘사할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과거의 것을 완전히 소화한 베토벤은 이 작품에서 자신감이 넘치며, 개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베토벤이 가장 평온한 시기에 썼다고 로망 롤랑은 썼지만, 아이 넷 딸린 미망인 요제피네와의 사랑이 그리 평온했을 리 없다. 이 둘이 교환한 서신을 보아도 마냥 행복하다고만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이 교향곡 4번을 해석하는 데에는 행복해 보이면서도 때로 그늘이 드리우는 모습을 표현할 수 있느냐가 하나의 관건이라고 볼 수 있겠다.
1악장 Adagio - Allegro vivace (아다지오 - 알레그로 비바체) 아다지오 서주는 다음의 빠른 주요부 주제의 모습을 이미 담고 있다. 첫머리 바이올린 진행에서 제2주제와의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 주요부는 소나타 형식이고 고전주의 형식의 간결함을 보여주지만, 흡인력 면에서 베토벤의 독자성을 발견할 수 있다. 서주 최후의 격렬함을 이어받아 바이올린이 제1주제를 활발하게 내어놓고 목관으로 제2주제가 경쾌하게 지나간다. 클라리넷과 바순 사이의 카논, 목관과 저음현악기 사이 카논이 존재하며 힘을 증대시키며 제시부를 마친다. 발전부는 제1주제를 중심으로 처리하고 있으나 새로운 음의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느껴진다. 팀파니가 두드러지는데, 정점에 도달하는 순간 재현부가 시작된다. 마지막으로 코다가 나오며 악장을 마무리한다.
2악장 아다지오(Adagio) 발전부 없는 소나타 형식. 밝고 평온하다. 제2바이올린의 반주 위에 제1바이올린이 달콤한 제1주제를 연주한다. 제2주제는 클라리넷으로 나타나며 코다에서 나오는 팀파니 독주는 새로운 시도라 할 만하다.
3악장 알레그로 비바체 (Allegro vivace) 스케르초라고 적혀있지는 않지만 스케르초에 해당한다. 엄밀히 말해 미뉴에트와 스케르초의 중간 스타일이다. 밝고 즐거우며 목관악기가 서정적인 트리오를 두 차례 불러일으킨다.
4악장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allegro ma non troppo) 소나타 형식이다. 밝고 전진하는 제1주제로 시작된다. 제2주제는 오보에로부터 느긋하게 나오며 플루트가 이어 받는다. 발전부는 제1주제를 처리하고 있고 제1주제가 분명히 등장하며 재현부가 시작되고 두 개의 주제를 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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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_교향곡 제3번 Eb장조 Op. 55 ‘영웅’ BEETHOVEN_Symphony No. 3 in Eb Major Op. 55 ‘Eroica’ 교향곡 3번 ‘영웅’는 교향곡의 선배들인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을 받고 그들을 모방하던 시기에 벗어나 독창적인 색채가 짙어지던 시기의 베토벤(1770~1827)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강한 개성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큰 스케일과 양식의 균형이 자리잡고 있는 걸작이 탄생하면서 베토벤 교향곡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베토벤은 1789년 시작된 프랑스 혁명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한낱 사관 신분에서 시작해 이탈리아를 평정하고 1799년부터 프랑스 국내 질서 회복과 대외 문제의 해결에 나선 나폴레옹을 높이 평가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전제군주정치의 폐해를 실감하던 그는 나폴레옹을 공화적이고 민주적인 이념의 화신으로 의식하게 되었다. 그러던 베토벤은 프랑스 공사 베르나도트 장군으로부터 나폴레옹에게 신작을 헌정하는 것이 어떠냐는 권유를 받게 되었다. 흠모하던 영웅을 위해 대곡을 작곡하려는 마음으로 베토벤은 1803년부터 이 곡의 작곡에 착수해 1804년 초 완성했다. 베토벤은 이 곡에 원래 ‘보나파르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다 나폴레옹이 제1집정관에 오르자 베토벤은 로마의 위대한 집정관들을 떠올리며 기대에 부풀었었다고 제자인 페르디난트 리스는 전하고 있다. 그간의 경과를 보면 프랑스 혁명 정부는 붕괴 직전의 아슬아슬한 상황까지 몰렸지만, 의용군을 만들어 대 프랑스 동맹군을 격파하고 네덜란드, 남부 네덜란드, 라인란트, 스위스, 이탈리아 등을 정복했다. 프랑스의 역대 왕들이 품어 왔던 영토의 야욕을 순식간에 해결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폴레옹이 새로운 시대의 최고 권력자로 떠올랐다. 여기까지가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작곡을 북돋운 상황이다. 그러나 상황은 기대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1804년 나폴레옹은 스스로를 황제로 칭하며 즉위했다. ‘나폴레옹 제정’의 시작은 기치를 올려가던 공화국 자체의 종식을 의미했다. 믿었던 나폴레옹에 배신감을 느낀 베토벤은 불같이 화를 내며 책상에 놓여있던 총보의 표지를 찢었고 표지는 새롭게 ‘신포니아 에로이카’로 붙여졌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러나 사실은 표지를 찢은 것은 아니며 표지에 글자를 지운 흔적이 있다고 한다. 1806년 출판된 악보에는 ‘신포니아 에로이카’라는 제목과 ‘어느 영웅을 회상하기 위해’라고 적혀 있다. 교향곡 3번의 편성은 호른을 3대 사용하는 것 외에는 교향곡 2번과 같다. 늘어난 호른은 곡에 중량감을 부여하고 있다. 1805년 4월 7일 테아터 안 데어 빈 극장에서 초연됐다.
1악장- 알레그로 콘 브리오(Allegro con brio) 소나타 형식. 전체적으로 웅혼하고 당당한 느낌을 준다. 확신에 찬 빠른 템포로 대담하고 활기차게 연주된다. 관과 현에 의한 2개의 힘찬 화음이 서주로 나타나고 성격적인 테마가 저음역 현악기로 개시되며 주제를 종횡무진 다채롭게 활용하고 있다. 발전부는 정성스럽게 대위법으로 짜여지고 큰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제시부의 재료를 다시 보여주는 재현부를 지나 충실한 코다에서 당당한 악장을 마무리한다.
연주 :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 크리스티안 틸레만 | 2악장- 아다지오 아사이(Agadio assai) 유명한 ‘장송행진곡’이다. 위대한 용사를 추모하는 듯한 느낌이 흐른다. 현제 주제가 나타나며 장중한 걸음걸이로 나아간다. 중간부는 C장조로 밝아지며, 영웅의 생전 업적을 기리는 듯하다. 체르니는 이 ‘장송행진곡’이 넬슨 제독이나 애버크롬비 장군의 죽음을 추도하면서 쓴 것이라고 했는데,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다. 베토벤은 별다른 구체적인 의미 없이 1악장과 대조적으로 이 ‘장송행진곡’을 썼을 수도 있고, 영웅이 출현하게 돼 그 때문에 전사한 많은 사람을 추도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는 자신의 어두웠던 과거를 단절하고 나아간다는 의미를 부여했을 수도 있다. 마지막 코다도 인상적인데, 극적인 효과를 나타내다가 체념한 것 같이 점차 진정되어 가는, 종교적으로 정화된 듯한 마무리다.
3악장- 스케르초 알레그로 비바체(Allegro Molto) 베토벤이 교향곡 3악장에서 미뉴에트 대신 스케르초를 시도했다는 사실은 다 아실 것이다. 1부는 현악기의 빠른 스타카토 리듬으로 시작해 점차 힘을 증대시켜 나아간다. 중간부 트리오 호른의 낭랑한 선율이 매우 아름답다. 이후 다시 1부가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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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 크리스티안 틸레만 | 4악장 알레그로 몰토 짧은 경과부와 푸가의 발전부를 가진 자유로운 변주곡 형식인데, 이런 피날레는 전대미문의, 베토벤의 독창적인 면모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피치카토 선율로 된 제1주제와 오보에, 클라리넷에 의해 제시되는 제2주제는 1799~1801년 작곡된 발레음악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끝곡과 1801년 ‘12개의 콩트르당스’ 7곡에서 대위법적으로 결합돼 사용되고 있다. 1802년 피아노를 위한 15개의 변주곡과 푸가 Op.35에서도 이 두 개의 주제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훗날 ‘에로이카 변주곡’이라 불렸다. 전체적으로 푸가토와 대위법적인 기교들이 나타나 정점을 향해 전진한다. 중간에 긴장이 한 번 풀리고 마지막에 다시 한 번 압도적인 승리를 연상시키는 코다로 악장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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