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쿠르즈(2010.11)

31.스페인/바르셀로나/항구의 아침,성 파밀이아성당(성가족성당)

나베가 2011. 1. 7. 21:45

 

어젯밤...깜짝쇼로 흥분속에 그 어느때 보다도 근사한 정찬을 하고는 또...배안을 누비고 다녔다.

우리 방은 in side라서 그야말로 방에 들어가면 감옥(?)...으흐흐흐...

그래서 졸리워서 쓰러져 잘때까지 헤메기로 했다. 푸핫~

아니, 그보다도 이 근사한 쿠르즈 여행에서 방에 들어가 앉아있을 이유가 없기때문이기도 하다.

 

하긴 모...그래도 잠깐씩 들어가서 누우면 또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어느사이 들어와서 그렇게 말끔히 치워놓는 지 방문을 여는 그 순간 기분좋음이란....

남자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가 말끔하게 치워준 방에 들어가는 이  여자들의 행복감을....ㅎㅎ

 

<바르셀로나에서 이른 아침을 먹으며 창으로 들어온  풍경을 카메라에 담다. > 

 

 

딩굴 딩굴 누워서 룸메이트 언니랑 낮에 있었던 이야기 보따리들을 풀어놓으며 까르르까르르 웃어재낀다.

이야기 보따리는 나이차에 상관없이 여자들에겐 항상 즐거운것이다.

더우기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나와 전혀 생활방식이 달랐던 사람들과 점점 익숙해져 가는 과정을 수다떠는 일은

재미있기도 하고 삶의 활력소, 전환점이 되기도 하는것이다.

 

 

 

 

 

날마다 펼쳐지는 쇼를 보고, 중앙로비의 Bar에서 펼쳐지는 노래를 듣는 일도 재미있다.

날마다 사지도 않으면서 면세점을 드나들고,,,,,

전문 사진사가 여행객들을  일일이 다 따라다니면서 사진을 찍어 전시를 해놓는데...그거 구경하는 재미도 솔솔하다.

가끔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1장에 20유로나 하기때문에....ㅠㅠ

 

 

 

 

전면이 창으로 되어있는 9층의 뷔페식당은 아침에 새로이 정착한 기항지의 모습을 온전히 보여준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아득히 섬 하나 둘씩  시야에 들어오다가 어느 순간 기항지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들어오면

밥을 정신없이 먹고 갑판으로 뛰어나가던가~ 아니면 금새라도 지나쳐 다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라도 될라치면 밥을 먹다 말고 갑판으로 뛰어 올라가 카메라에 그 풍경들을 담기도 하였다.

 

오늘은 갑판으로 올라가기를 포기하고 그냥 창밖 풍경을 즐기며 우아하게 아침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것도 너무나 낭만적이었다.

 

아!! 얼마나 멋진 일이가!!

거대한 배에 몸을 싣고 망망대해 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면서 아침식사를 한다는 것이....

 

 

 

 

 

 

내가 알고 있던 바르셀로나는 아름다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Sagrada Familia) 이 있고,

가우디가 건설한 동화같은 구엘공원이 있다는것....

그리고 황영조선수가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낸 올림픽 경기장이 있는 몬쥬익언덕이  다였다.

그런데 이 어마어마한 컨테이너 박스가 있는 거대한 항구라니.....

아름다운 예술의 도시가 아닌 거대한 무역항을 가지고 있는 경제도시??

 

 

<배가 점점 기항지에 가까워지면서 거대한 항구도시의 모습이 배 유리창 가까이로  다가서고 있다.>

      

 

 

 

     

 

 

 

 

 

 

오래 전에 스페인 여행을 했었다.

그 여행에서 가족다음으로 평생 반려자가 될만큼 너무나 좋은 인연을 만났다.

클래식 매니아...

첫날밤 인사를 나누며 자기 소개를 하는 과정에서 쏟아진 클래식 매니아란 얘기에...

더우기 같은 기획사의 회원이기도 했으니

그날 이후 여행내내 풀어놓은 공연의 감동 보따리는 단박에 가장 친한 친구같은 느낌을 갖게했다.

그 이후 언니와 나는 지금까지도 공연장에서 늘상 만나면서 좋은 인연을 맺고 있다.

그렇기에 이 스페인..그 언니와 함께했던 바르셀로나는 나에겐 더욱 더 소중한 곳인 지도 모르겠다.

 

여행이 주는 감동이란

아름다운 곳을 보고, 오래된 고대도시, 박물관, 수많은 예술작품들만을 보는 것이 아니다.

이렇듯 어떤 인연이 나와 맺어져 삶의 길이 어떻게 펼쳐질 지 모른다는 것....

어쩌면 낯선곳을 보고, 낯선 삶의 모습에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연습....

나의 모습을 허허롭게 열어놓고 다른 사람의 모습과 그들의 삶이 들어오도록 하는 것...

그래서 나의 생각의 틀에 갇혀있는 편견들을 깨뜨리고 인식의 전환점의 기회를 만드는것....

 

용기를 배우고...

먼저 다가가는 것을 배우고....

있는 그대로 자유롭게 나를 놔두는것을 배우는것....

 

 

 

 

 

 

 

 

 

날씨가 흐려서 일까...

처음 기억이 너무 대단하게 자리를 잡고 있어서 일까....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모습은 처음 내가 봤을때 보다는 그렇게 거대하지도 그렇게 감동적이지도 않았다.

아마도 주변의 심란한 분위기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공사중이고, 가우디가 살아생전에 지었던 정면의 모습과 그 다음 이어서 짓는 건물의 모습이 너무 상반되어서

좀 낯설기도 하고, 또 주변 풍경이 이 건축물과  어울리지 않는...

그런걸 보면 무엇이든 홀로 아름다움을 발할 수는 없는것 같다.

함께 어우러져야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Sagrada Familia)

 

에스파냐의 세계적인 건축가 가우디(Antonio Gaudi y Cornet)가 설계하고, 직접 건축감독을 맡았다. 그의 나이 서른 살 때인 1882년 3월 19일(성 요셉 축일) 공사를 시작해 1926년 6월 죽을 때까지 교회의 일부만 완성하였다. 나머지 부분은 현재까지도 계속 작업 중에 있고, 교회 전체가 완성되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다.

건축양식입체기하학에 바탕을 둔 네오고딕식이다. 원래는 가우디의 스승이 건축을 맡았으나, 1883년부터 가우디가 맡으면서 계획이 완전히 바뀌었다. 전체가 완성될 경우 교회의 규모는 가로 150m, 세로 60m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중앙 돔의 높이는 170m 정도이다.

구조는 크게 3개의 파사드(건축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로 이루어져 있다. 가우디가 죽을 때까지 완성된 파사드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경축하는 탄생의 파사드뿐이다. 이 파사다드는 가우디가 직접 감독하여 완성한 것이다. 나머지 두 개의 파사드는 수난과 영광의 파사드이다. 수난의 파사드는 1976년에 완성되었고, 영광의 파사드는 아직 착공도 되지 않았다.

3개의 파사드에는 각각 4개의 첨탑이 세워져 총 12개의 탑이 세워지는데, 각각의 탑은 12명의 사도(제자)를 상징한다. 모두 100m가 넘는다. 또 중앙 돔 외에 성모마리아를 상징하는 높이 140m의 첨탑도 세워진다.

재료는 석재인데, 가우디가 죽은 뒤 1952년까지는 작업이 중단되었다. 1953년부터 건축을 재개하였으나, 돌이 부족하여 그 뒤에는 석재 대신 인조 석재와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있다. 탑의 모양은 옥수수처럼 생겼고, 내부의 둥근 천장은 나무처럼 생긴 기둥이 떠받치고 있다. 천장은 별을 닮은 기하학적 무늬로 가득 차 있다.

건축에 필요한 자금은 후원자들의 기부금만으로 충당되기 때문에 진행 속도에 한계가 있어 언제 완성될지는 알 수 없다. 가우디 건축의 백미()로 꼽히며,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이다

 

 

 

               

 

 

 

 

 

 

 

 

 

 

 

 

 

 

 

 

 

 

 

 

 

 

 

 

 

 

                 

 

 

 

 

 

 

 

               

 

 

 

 

 

 

              

 

              

 

 

 

 


"가우디는 바그너와 세잔 및 그 외의 예술가과는 반대로, 바르셀로나에서 혼자 혁명을 시작했다. 이리하여 우리는 지도 위에 카탈루냐의 위치를 표시하듯 미술사에서도 카탈루냐 지방의 위치를 표시함으로서, 다른 국가와 다른 분야의 천재들이 했던 모든 것, 앞서간 예술가들이 했던 모든 노력을 단 혼자의 재능으로 일궈낸 가우디를 발견하게 된다."

 

 

 

인용한 글은 1927년 푸란스시코 푸욜이 카탈루냐 출신인 가우디를 추모하면서 쓴 에세이의 마지막 문단이다. 약 일 년전인 1926년 6월 7일 가우디는 전차에 치어 3일 후인 10일 7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가우디는 너무 초라한 행색 탓에 아무도 이 거장을 알아보지 못해 너무 늦게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말년에 건축 작업에만 몰두한 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가우디는 로마 교황청의 특별한 배려로 성자들만 묻힐 수 있다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지하에 묻혔다. 가우디는 건축의 성자이면서, 실내 디자인과 장식 조각, 심지어 의자와 화장대에 이르기까지 제작한 20세기의 독창적인 예술가이다. 그의 전 작품에 드러나는 우아하고 기괴한 곡선과 다양한 자연의 이미지를 건축에 사용한 그의 '집'들은 피카소의 그림과 견줄 수 있는 건축 작품이기도 하다. 그의 거대한 영혼과 작품은 당대보다도 세월이 지날수록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비록 실물을 보지 못했지만 그의 위대한 '작품'들은 도판으로 보아도 들어가고 싶고, 거닐고 싶고, 심지어 만지고 싶다. 건축물들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린다. 그의 대표작인 ‘카사 바르토’, ‘카사 밀라’, ‘구엘 공원’, ‘구엘 별장’, ‘사그라다 파밀리아’ 는 미켈란젤로나 피카소, 바그너처럼 작품으로 남아있다. 건축은 인간이 살아가는 실용적인 공간이다. 벽에 걸어두고 보는 그림이 아니고, 음반으로 연주되는 음악이 아니지만, 가우디는 건축물을 보는 이에게 영감을 주는 작품으로 만들었다.

 

가우디는 평생의 역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교회를 건축할 때 예술가로서 날개를 달았다. 그 자신도 이 건축물에 감탄하면서 전통적인 고딕 양식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 가우디가 이 대단한 건물의 감독직을 수락한 것은 1883년 가을이었다. 이후 사망할 때까지 40여 년 간 이 작업 만에만 몰두했다. 이 건축물은 서적상이자 발행인인 호세 마리아 보카베리야가 주도한 일이었다. 그는 성가족이 봉헌된 사원을 바르셀로나에 짓기로 결심하고 기금을 모아 당시 교구 건축가인 프란시스코 데 파올라덴 빌랴르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빌랴르가 건축의 기술 고문인 마르토렐과의 불화로 사임을 하자 가우디가 일을 맡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1955년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

 

 

가우디는 "신앙이 없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쇠약한 인간이며, 손상된 인간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신을 위해 사용한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있었다. 말년에 가우디는 건축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것을 멀리하고 수도자처럼 살았다. 건축가로서의 명성과 열정이 종교적인 신성과 결합하여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 건축물은 가우디 사후에도 계속 건축되고 있다. 가우디는 성가족 교회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세 개의 파사드를 만들었다. 동쪽은 탄생의 파사드, 남쪽은 영광의 파사드, 서쪽은 수난의 파사드이다. 가우디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첨탑이 빠진 탄생의 파사드만 완성된 상태였다. 이 파사드의 중앙 문은 사랑, 오른쪽은 믿음, 왼쪽은 소망의 문이다. '사랑, 믿음, 소망'이라는 신의 음성이 들려오는 문 앞에 서 있는 가우디를 상상한다. 그의 영혼이 깃든 건축물들을 통해 영원불멸의 신성을 잠시 엿본다.  <참고자료;네이버 캐스트>

 

Verdi
La Forza Del Destino
운명의 힘
La vergine degli angeli
2막 2장 자비로운 성모여
Rosa Ponselle(1897-1981), soprano
Ezio Pinza(1892~1957), bass
Rec: 1928 Vic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