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타고 유적지 [Site of Carthage]
지중해를 누볐던 페니키아의 식민도시 한때 지중해 제해권을 놓고 로마와 대결했던 카르타고와 전설적인 명장 한니발은 알지만, 과거 카르타고가 있었던 지역이 현재의 튀니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Tunis)에서 교외 전철을 타고 40여분을 가면 ‘카르타고’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이곳이 바로 과거 카르타고가 있던 지역이자 당시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유적지이다. 카르타고는 기원전 9세기경 페니키아인이 튀니지 만에 건설한 식민도시다. 무역도시로 상당히 번성하여 기원전 6세기경에는 오늘날의 스페인, 시칠리아까지 진출하고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로마와 맞서는 위치가 되었다. 결국 로마와 카르타고는 120여 년 동안 3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을 치르게 되고, 기원전 146년 3차 포에니 전쟁의 패배를 끝으로 카르타고는 멸망하였다(명장 한니발이 등장하는 때는 2차 포에니 전쟁으로 '한니발 전쟁'이라고도 한다). 강적 카르타고의 재기를 두려워했던 로마는 그 땅에 아무것도 새롭게 자라나지 못하도록 소금 등을 뿌려 도시를 그야말로 초토화시켰다고 한다. 200여 년이 흐른 뒤 로마인들은 이곳에 새로운 카르타고를 건설했고, 이 또한 로마제국 하에서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7세기 이슬람의 침입으로 카르타고는 다시 폐허가 되었고, 지금까지 작은 마을로 겨우 명맥만 이어오고 있다. 영화를 뒤로 한 채 흔적만 남은 유적들 20세기 후반에야 국제사회의 노력으로 발굴된 카르타고 유적지에는 참혹한 역사 때문인지 제대로 보존된 건물이 드물다. 고대 카르타고 유적은 대부분이 터만 남아 있고, 그나마 보존상태가 좋은 것은 로마시대 카르타고 유적들이다. 고대 카르타고 유적이 주로 남아 있는 곳은 비르사(Byrsa) 언덕 주변으로, 옛 건물들의 주춧돌과 돌기둥들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이곳에서 기원전 2세기경에 지어진 집들과 발달된 수로시설을 갖춘 주거지역이 발굴되었다. 토페트(Tophet) 광장은 페니키아의 신 바알(Baal)과 타니트(Tanit)를 모시던 성역으로, 유아들을 제물로 바쳤던 어두운 과거 때문에 유명하다. 실제로 근처 지하무덤에서 어린아이 유골 수천 개와 묘석들이 발견되었다. 아이 얼굴이 조각된 작은 묘석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고대 카르타고와 로마 시대 카르타고 |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음을 알리는 표지>
<카르타고 유적지에 남은 유일한 카르타고의 흔적-지하에 있었기에 남겨진 것으로 생각되는 무덤인데 카르타고 시절에 만들어진 무덤으로 추정
바다를 끼고 있어 유적지는 더욱 근사했다.
훗~
천년의 세월을 품고 있는 이 대역사의 산실앞에서 겨우 한다는 말이 근사(?)하다고??
그래서 난 역사학자도 인문학자도 못된다.
지극히 감각적이고 촉각적인...온몸으로 전해져 오는 느낌....
역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색채와 질감에 감동하고 그것을 탐닉한다.
그래서 주변에 아름다운 숲이 있어 초록이 감싸고 있거나 가슴을 뻥 뚫어주는 바다가 있고 꽃이 피어있으면
더욱 흥분해서 빠져드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나 뿐만이 아닌 우리나라 사람들의 타고난 근성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현대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합리주의적인 삶보다는 그저 인정으로 사는것에 더 편안한...
흥을 즐기고 그래서 흥분도 잘하는.....ㅎㅎ
그래서 일까...현지 가이드는 이 역사의 산실앞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장황하게 설명을 했다.
그 설명은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우리 일행들....집중력 흐트러지기 시작....
참다못한 우리의 가이드....
"이제 됐습니다~ 그만 하셔요~"
그러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렇듯 설명이 너무 길어지면 못참는데, 이들은 이런 자세하고도 장황한 설명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을 하는거라고.....ㅋㅋ
헐~ 웃을일이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하는건가??
모,,,,쪼끔??
아니여~ 우린 이미 다 공부하고 옹겨~ 아님...한국가서 인터넷 치면 다 알게되어 있엉~
우린 단지 빨리 빨리에 익숙해져서 그렇지~
푸하핫<<
카르타고 유적지에 남아있는 것은 카르타고의 유적이 아니라 로마의 유적이다. 카르타고를 완전히 멸실시킨 로마제국도 카르타고의 지리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카르타고 멸망후 100여년이 지난 아우구스트 황제시절부터 카르타고를 재건하게 되었다. 카르타고인들의 뛰어난 상인기질과 토목기술이 발휘되어 카르타고는 빠르게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안토니누스 황제(AD138~161간 재위)시절에 최고의 번성기를 맞이하였다. 이 시절에 안토니누스 황제는 카르타고에 아주 화려한 목욕탕을 지어 주었는데 지금 남아있는 카르타고의 유적은 주로 안토니누스 목욕탕의 유적이다.
<안토니우스 목욕탕의 1층 평면도>
헐~ 목욕탕은 규모가 굉장히 클뿐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이 즐기는 사우나, 맛사지, 탈의실,
그리고 회의실과 연회장까지 있었다니 놀랍기만 하다.
하긴 로마인들의 목욕탕이 단순히 씻는것에 그치지않고 하나의 질높은 삶을 영위하는 수단이었음을 알 수 있는것은
그들이 지배했던 모든 나라에 화려한 목욕탕의 유적이 남아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여행중 로마유적의 대부분이 목욕탕의 유적이라고 봐도 될정도....ㅎㅎ
로마인들은 이 목욕탕에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130km나 떨어진 곳으로부터 수로를 연결하였다고 한다
코린트 양식의 화려하고 커다란 기둥의 잔해를 봐도 이 목욕탕의 규모가 얼마나 크고 화려했었는 지를 알 수 있다.
Out Of Africa / Carafulia / Adya Classic
'지중해 쿠르즈(2010.11)' 카테고리의 다른 글
13.튀니지/바르도 박물관 (0) | 2011.01.03 |
---|---|
12.튀니지/튜니스/카르타고 유적지-2 (0) | 2011.01.03 |
10.튀니지/튜니스의 할크알와디 /마지카호에서의 아침 (0) | 2011.01.03 |
9.시칠리아/팔레르모대성당 내부,마시모 오페라극장,카타콤 (0) | 2011.01.02 |
8.코스타마지카/시칠리아/팔레르모/프레토리아,팔레르모대성당,콰트로칸티 (0) | 2011.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