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문화교류 스페셜 콘서트 - Music Festival Argerich’s Meeting Point in Beppu
한일문화교류 스페셜 콘서트
Music Festival Argerich’s Meeting Point in Beppu
(Music Director -Martha Argerich)
“음악이 주는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1994년 10월, 아르헤리치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포부를 밝혔습니다.
그리고 3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1998년 ‘벳부 아르헤리치 음악제(Music Festival Argerich’s Meeting Point in Beppu)’가 탄생했습니다. 아르헤리치의 음악적 친구들이자, 세계의 명연주가들의 잊을 수 없는 명연, 젊은 음악가들과의 협연, 그리고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듣는 아이들까지... 음악을 통해 연주가와 청중이 하나되었던 기적 같은 페스티벌이 한일문화교류의 일환으로 오는 4월 드디어 서울에 상륙합니다.
페스티발의 음악감독 아르헤리치를 비롯 한국과 일본의 정상급 실내악 연주자들이 펼칠
음악을 통한 화합의 메시지!
그 감동의 순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프로그램
헨델-할보르센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파사칼리아 김의명(vn).정명화(vc)
도흐나니 바이올린,비올라,첼로를 위한 세레나데 이성주(vn)가와모토요시코(va)정명화(vc)
쇼스타코비치 두대의 피아노를 위한 콘체르티노 op.94
마르타아르헤리치(pf). 이토쿄코(pf)
모짜르트-그리그 두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K.545 C장조
Allegro
Andante
Rondo, Allegretto
마르타아르헤리치(pf), 이툐쿄코(pf)
INTERMISSION
슈만 피아노 오중주 OP.44
Allegro Brillante
In modo d'una marcia Un poco largamente
Scberzo:Molto vivace
Allegro, ma non troppo
마르타아르헤리치(pf), 김의명(vn). 이성주(vn),가와모토요시코(va), 정명화(vc)
공연후기...
클래식매니아가 된 이후로 이 공연처럼 요란스럽게 예매를 해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아예 예매창구에 들어가지도 못해서 발을 동동구르며 애간장을 태워보기도 처음이었다.
애가 타다 못해 사방으로 전화를 해대고, 창에 들어가면 내것좀 예매해 달라고 부탁해본 것도 처음이었다.
결국 한참만에 예매창에 들어갔을때는 내가 원하는 자리는 다 나간것처럼 보였다.
그리고도 그 여러날을 기다리며 LG아트센터에 갈때마다 일숙언니가 예매한 자리가 더 좋은가,
내가 예매한 자리가 더 좋은가 슬쩍 슬쩍 탐색까지...
결국은 내가 예매한 자리를 고수했다.
그렇게 오매불망 기다렸던 아르헤리치!!
이런 나를 하늘이 질투라도 한것인 지...
일주전부터 슬슬 내몸을 감싸고 돌던 감기기운이 부활절 전, 성금요일.. 종일 금식을 하고 난후
나의 몸은 완전탈진 상태가 되어서 토요일날은 일어날수 조차 없었다.
아니, 마치 나의 분신은 땅에 꺼져 없어지고 정신만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거기다가 공연장에서의 최악인 잔기침까지 났다. 아악~
감기약에 좋은건 다먹으며 그렇게 부활절..일욜 아침을 맞았다.
찬미예수!!
부활절의 기쁨보단 오늘 있을 아르헤리치 공연으로 내 머릿속은 꽉차 있다.
아침 일찍 서둘러서 부활절 미사엘 갔다.
부활절이라 미사도 긴데다가 신영세자 세례식까지...아아~~앉아있을 기운도 없었다.
할수없이 간간히 머리를 바닥에 누였다가 일어세우곤 하며 견뎌냈다.
제대의 초가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불처럼 수십개의 반짝거림으로 보였다.
아아~~
당장의 괴로움보다는 아르헤리치 공연에 가지 못할까봐... 아니, 죽어도 가겠지~
가서 견뎌내지 못하고 실수할까봐 ..그게 더 걱정이 되었다.
집에 돌아와 쓰러지듯 누웠다.
그리고 감기약을 두배는(?) 강도 높게 먹고, 공연시간에 임박할때까지 버텨냈다.
드디어 집에서 나설시간 임박!!
일숙언니와 1시간여 전쯤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기에 주섬 주섬 준비를 하고
간단히 점심을 먹고, 또 약을 강도높게....
아~~~
이럴줄 알았어~
전철을 타고 시간을 보려하니, 핸드폰을 빠뜨리고 온것이었다.
언니와 약속을 했는데....
전화번호는 당연히 기억못하지. 그저 내겐 일숙언니란 글자만 보였으니까....
그렇게 또 내심 머리를 쥐어박으며 1시간여를 졸면서 역삼역에 내렸다.
다행히 약속시간전에 도착했다.
티켓부스에 들르기 전에 우리가 늘 가던 '스타벅스'에 눈길이 갔다.
와아~~
거기에 언니가 먼저 와서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언니는 내가 당연히 핸폰 메시지를 보고 온줄로 알고 있었지만...ㅎㅎㅎ
커피와 베이글과 수다로 40여분은 한순간 지나갔다.
아니...근데, 나 아픈거 맞나??
언제 아팠냐 싶게 몸도 머릿속도 기침까지 거뜬했다.
중독이야!!!
공연중독인지, 커피중독인지...
너무 여유를 부렸는데, 티켓부스가 사람들로 밀려서 그만 공연시간에 임박해서 들어가게 되었다.
아!! 그렇게도 자리에 욕심을 내고 끌탕을 했던 자리...
한대의 피아노만 생각했다가 두대의 피아노가 자리를 하니, 내자리는 환상의 자리가 되어있었다.
한번은 아르헤리치의 얼굴에 촛점을, 두번째는 얼굴도 손도...
그뿐만 아니라 다른 연주자들의 모습도...그들의 숨소리까지 같이 느낄수 있을만큼...
첫곡...
둘째곡....
처음 보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의명씨의 연주도 인상깊었고, 언제나 늘...그저 푸근한 정명화씨도 볼수 있어 좋았다.
최근에 자주 본 이성주씨도, 일본인 비올리스트 가와모토 요시코의 비올라 소리도 좋았다.
용재오닐과 킴 카슈카시안으로 요즘 비올라에 매료되어 있던터라 유독 비올라 소리가 내 귓전에
더 빨리 와닿은것 같기도 하다.
암튼....
연주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아르헤리치를 기다린다....
아~~
나이가 들었음에도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풀어헤친 머리가 보였다.
씩씩한 발걸음으로...일본인 이토쿄코와 함께.
아쉽게도 이토쿄코가 오른쪽에 아르헤리치가 왼쪽에 앉았다.
그러나 그 아쉬움도 순식간...
건반위를 내달리는 쇼스타코비치의 선율은...
'아!! 음악하는 사람들이 말하는게 바로 저거였구나!' 싶음이 그저 가슴을 때리며 전율을 일케했다.
강한 터치속에서도 물흐르듯이 부드럽게 넘어가는...
티없이 맑은 개울이 흐르고, 수십마리의 은빛 은어가 튀어오르는 것도 같았다.
'보석처럼 반짝이네~'
어느새 개울은 은하수가 되어 흐르고 있었다.
두번째곡...두 연주자의 자리가 바뀌었다.
이렇게 또 모든 관객들을 배려하는 모습에 감동은 배가 되고, 익숙한 모짜르트의 선율은
은하수의 흐름속에서 수없이 톡톡 튀는 별똥별을 보는듯 했다.
연주는 끝났고, 그녀는 머리가 땅에 닿듯, 마치 팔을 아래로 내려뻗치는 체력장검사를 하는듯
깊게 인사를 하는것이... 매우 인상적이고 후덕한 이웃집 아줌마같은 느낌을 갖게 했다.
귀엽기도 하고... 난 웃었다.
욕심같아선 2부내내 아르헤리치의 연주만을 듣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슈만의 피아노 5중주를 들으며 그녀의 또다른 모습을 볼수 있었던 것도 너무 좋았다.
함께 하는 연주자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간간히 쌩끗 쌩끗 웃는 모습이
또 그렇게도 순진무구할수가 없다.
5명 연주자들의 열정이 내게로 그대로... 호흡까지도 느껴진 시간이었다.
특히 앵콜연주때의 연주자들의 모습에선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행복함에 겨워함이 느껴져왔다.
그래...너무나 행복해!!
연주회가 끝나고 나는 팬사인회가 없음을 아쉬워했다.
그러는 날 보고 착한 일숙언니....
"에이그~ 그 나이에 무슨 팬싸인회...연주 듣는것만으로도 벅차지~근데, 머리는 어떻게좀 했으면 좋겠어"
"왜?? 언니, 멋있잖아~ 난 그녀가 웃을때 언뜻 모나리자의 모습을 느꼈는데...ㅋㅋ"
"몸은 괜찮지?"
"그럼요~ 거뜬해~ 아주 거뜬~ㅋㅋ"
공연이 끝나고 인사할때...
검은 천으로 카메라를 가리고 후레쉬 끄고 몰래 한두장씩 찍던 사진도
오늘은 아무 생각이 없었기에...그저 넋놓고 박수만 치다가....그냥 공연이 끝나버렸다.
팬사인회도 없고 크레디아 발코니 게시판에도 사진이 없다.
ㅠㅠ
<나중에 게시판에 올라온 사진 퍼서 맨 밑에 사진있음. ㅎㅎ>
BIOGRAPHY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 Martha Argerich, Piano
1941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난 아르헤리치는 5살때 처음으로 빈센초 스카라무자로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1955년 가족과 함께 빈으로 이주, 이곳에서 프리드리히 굴다의 지도를 받았으며 니키타 마갈로프, 스테판 아쉬케나제로부터도 배웠다.
1957년 볼자노와 제네바의국제 콩쿨에서 우승했고 1965년 바르샤바 쇼팽 콩쿨에서 우승함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갈 수 있었다. 아르헤리치는 19세기와 20세기의 비르투오조 피아노 작품 연주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비르투오조’ 작품의 스페셜리스트라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의 레퍼토리는 바흐에서 베토벤, 슈만, 리스트, 드뷔시, 라벨을 거쳐 바르톡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특히 80년대 초반 이후 그녀의 프로그램에서 보다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은 바로 베토벤의 음악들이다.
아르헤리치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기돈 크레머의 록켄하우스 페스티벌 그리고 뮌헨 피아노 섬머 등지에서 연주를 해왔다. 1992년 루체른 페스티벌에서는 샤를르 뒤트와가 지휘하는 파리 국립 관현악단과 프로코피에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 3번을 협연했으며 1992년 신년 이브 콘서트에서는 아바도, 베를린 필과 슈트라우스의 ‘부를레스케’를 연주했다. 1993년 8월에는 미샤마이스키와 함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리사이틀을 갖기도 했다.
아르헤리치와 도이치 그라모폰사와의 관계는 1967년부터 긴밀하게 이루어져 왔다. 그동안 그녀는 수많은 음반들을 녹음했는데 바흐, 브람스, 쇼팽, 리스트, 프로코피에프, 라벨 그리고 슈만등의 독주곡, 아바도와의 쇼팽, 리스트, 라벨, 프로코피에프 협주곡, 뒤트와와의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시노폴리와의 베토벤 협주곡, 로스트로포비치와의 슈만, 쇼팽 실내악곡, 미샤 마이스키와의 바흐 첼로 소나타 그리고 베토벤 첼로 소나타 등이 대표적인 음반들이다.
특히, 기돈 크레머와 함께 한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집은 그녀의 주요 프로젝트중 하나다. 또한 그녀는 크레머와 더불어 슈만의 소나타, 바르톡, 야나첵, 메시앙 등의 작품과 함께 오르페우스 챔버 오케스트라의 반주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녹음하기도 했다. 조인트 앨범인 프로코피에프의 소나타와 멜로디는 1992년 ‘동경 레코드 아카데미’, ‘디아파종’, 1993년 ‘에디슨 어워드’를 수상했다.
피아니스트 쿄코 이토 Kyoko Ito, Piano
후쿠오카 현 출신. 동경예술대학부속 음악고교 졸업 후 동경예술대학으로 진학하였고 대학 재학중에 일본음악 콩쿠르 제3위 입상하였다. 프랑크푸르트 음악대학 졸업하고 10년간의 외국생활 중 1977년 부조니 국제 콩쿠르 3위 입상, 거장 시노폴리나 아르헤리치와의 협연을 비롯해 국내외에서 연주활동과 함께 음악 프로듀스, 강연, 집필 등 그 활동영역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다. 북쿠슈시민문화상과 신일철음악상 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 의 명 Joseph Kim, Violin
1970년 미국 커티스 음악원을 거쳐 줄리어드 음대 졸업한 김의명은 동양인으로서는 최초로 미국의 메이저 오케스트라인 뉴저지심포니(1972~1978)의 악장으로 시작하였다.
이후 뉴올리안즈 필하모니(1981~1988)악장 역임, KBS교향악단(1988~1990)악장을 역임하고 웨스트체스트 심포니, 아마데우스 챔버 오케스트라, 재퍼슨 챔버 오케스트라, 뉴멕시코 심포니 객원 악장으로 활동한다.
일본 삿뽀로 교향악단의 객원 악장으로 수차례 초청 순회 연주를 가졌고, 뉴저지 심포니와 카네기홀에서 솔로로 데뷔하였다. 제페슨 챔버 오케스트라, 뉴올리안즈 필하모닉, 웨스트체스터 심포니, 뉴저지 심포니, 서울시립교향악단, KBS 교향악단 등 국내외 유명 교향악단과 협연을 가졌다. 또한 미국 그랜드 티틴 여름 여름 음악제〔Grand Teton Music Festival〕악장으로 1990년부터 매년 초청되어 연주 활동을 하였다.
1988년 귀국한 이래 지금까지 꾸준한 독주활동 및 실내악 활동을 계속하는 한편, 1995년 음협 제정 “한국 음악상” 수상하였고, 1996년 대한민국 문화대사 역임하기도 하였다.
2001년에는 금호 현악사중주단의 국제적인 활동으로 대통령상 수상하기도 한 바이올리니슨트 김의명은 현재 J. K Chamber Orchestra 음악감독이자, New Asia String Quartet(뉴아시아 현악사중주단)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는 한편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관현악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 성 주 Lee Sung Joo, Violin
중견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의 연주에 대해 일찍이 세계 언론은 ‘명료한 음악’, ‘대가의 감각’이라고 호평했다.
1976년 영 콘서트아티스트 오디션에 선발되어 뉴욕 카프만 홀 데뷔 연주로 본격적인 연주 활동을 시작한 이성주는 1975년 시벨리우스 국제 콩쿠르, 워싱턴 국제 콩쿠르(1위), 뉴욕 비에냐프스키 콩쿠르(1위), 1978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1980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1981년 나움버그 국제 콩쿠르 등에 입상하며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고, 1977년 음악 전문지 ‘뮤지컬 아메리카’로부터 미국 최우수 젊은 연주가로 선정되며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 후 솔리스트로서 세인트루이스 심포니, 볼티모어, 시애틀, 포트웨인, 미시간, 코너티컷, 웨스트체스터 필, 홍콩 필 등 수많은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탁월한 기량을 선보였으며, 1984년과 1988년 두 차례에 걸쳐 헨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유고슬라비아, 체코, 프랑스, 서독,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탈리아 등 유럽 7개국 연주를 통해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다. 링컨센터, 케네디 센터에서의 독주회를 통해 개성이 뚜렷한 연주자라는 평가를 받은 그는 1977년과 1982년 두 차례 대한민국 음악제에 초청됐고, 플래그스태프, 아스펜, 입스위치 페스티벌 등에 초청되어 독주 및 실내악 연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1994년 귀국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중인 이성주는 국내 주요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비롯해서 피아니스트 임종필과 함께 전국 9개 도시 순회공연, 5개의 시리즈로 진행한 이성주와 떠나는 음악여행 등을 통해 클래식 음악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었다. 또한 그는 현악 앙상블 ‘조이 오브 스트링스’를 창단해 음악감독으로서 다양한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이성주의 레코딩은 슈만 바이올린 소나타 전집을 뮤지컬 헤리티지 소사이어티에서 출반하였고 SKC 레이블로 바이올린 소품집이 출반되었다.
비올리스트 요시코 가와모토 Yoshiko Kawamoto, Viola
요시코 가와모토는 3세부터 재능 교육 연구소(Talent Education Research Institute) 에서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그녀는 토호 가쿠엔의 어린이 음악 수업을 들었으며, 토호 여자 고등학교와 토호 가쿠엔 음악학교에 진학하였다. 그리고 토시야 에토(Toshiya Eto), 아이코 스즈키(Aiko Suzuki)와 함께 바이올린을 공부했으며, 야수오 스에요시(Yasuo Sueyoshi)와 고이치로 하라다(Koichiro Harada.)와는 실내악을 공부하였다.
가와모토는 대학시절에도 많은 콘서트를 가졌으며 1989년에는 Igrek Quartet의 멤버로 제 6회 도쿄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실내악부분에서 입상했다. 1989년과 1990년에는 탱글우드 음악제에 초청 받았으며, 그레이스 잭슨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1년에는 도쿄 메트로폴리탄 교향악단에 들어가 비올라로 전환하며, 1992년 제네바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비올라부분 최고상(1등 없는 2등)을 수상한다. 1993년 도쿄 메트로폴리탄 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에서 협연자로 데뷔 무대를 갖게 된 가와모토는 미국의 말보로 음악제와, 스위스 다보스 음악제 그리고 일본의 도쿄 여름 음악제와 기리시마 음악제에 참가 하는 등 일본과 해외를 넘나들며 많은 음악가들과 공연을 하였다. 1996년 요시코 가와모토는 무라마츠상을 받고, 1997년에는 우수한 비올라 연주와 실내악 콘서트 활동으로 유망 신인으로 부각되며 일곱번째 NSC 신인 음악가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1997년 7월, 그녀는 카잘스 홀에서 “하세코 클래식 스페셜 - 요시코 가와모토 비올리스트”라는 리사이틀을 갖게 되면서 많은 관심을 받게 된다.
그녀는 2003년 7월 이 콘서트에 다시 참여하였으며 그녀의 연주는 비평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가와모토는 다른 악기들과 조화를 이루며 융통성 있게 연주하며, 또한 다른 악기들을 더욱 견고하게 이끌어주는 훌륭한 비올리스트이다.” (아사이 신문 - 미유키 시라이시)
2002년 요시키 가와모토는 도쿄 메트로폴리탄 교향악단을 떠나 도쿄 알티 현악4중주와, AOI 레지던스 4중주의 멤버가 된다. 또한 사이토 키넨 오케스트라, 오자와 음악 학교, 미토 실내악, 그리고 벳부 아르헤리치 음악제에서 정기적으로 연주를 한다.
그녀는 현재 전 세계의 기대와 관심을 받는 엄청난 재능을 지닌 차세대 비올리스트로 활발한 연주 활동을 하며 개리 베르티니와 주안 푸르네 그리고 페터 마크와 같은 일류 지휘자들과 공연을 한다.
나가노 신이치로와 함께한 “비올라 바로크 음악”과 “바흐-비올라 다 감바와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 등의 음반이 있다.
첼리스트 정명화 Chung Myung Hwa, Violincello
초등학교 졸업 선물로 어머니에게서 받은 첼로로 50여 년을 함께 살아 온 정명화는 이제 원숙한 예술가의 반열에 우뚝 서있다. 서울에서 출생한 정명화는 서울시향과 협연으로 국내 무대 데뷔한 후, 1961년 뉴욕의 줄리어드에서 레너드 로즈를, 1965년부터 남부 캘리포니아 대학의 마스터 클래스 과정에서 3년간 피아티고르스키를 사사하였다.
1971년 동생 정명훈을 반주자로 동반하고 참여한 제네바 국제 음악 콩쿨에서 1등으로 입상하면서 정명화의 이름은 유럽 무대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1967년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재단상 수상을 시작으로 미국에서 이미 많은 상을 수상한 정명화는 1969년 주빈메타 지휘의 LA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데뷔한 후 루돌프 캠페, 안달 도라티, 줄리니 등 명 지휘자들과의 협연으로 정상의 첼리스트로서의 위치를 다져왔다. 그는 유럽의 거의 모든 국가의 유수 오케스트라와 독주자로 협연하였으며, 이스라엘,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에서 연주했고 세계적인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며 UN본부, 백악관 등에서 특별 연주를 했다.
뉴욕 타임즈는 정명화의 기교적인 안정감과 개성 있는 음색이 많은 첼로 연주자를 제치고 그가 정상에 올라설 수 있는 이유이며 '멋과 재능, 그리고 기교의 연주가'라고 하였고, 로마의 Il Messaggero지는 그의 첼로 음악을 ‘빼어나고 우아한 구사’라 극찬하였다.
특히 정명화, 정경화, 정명훈으로 구성된 정 트리오의 활약은 1978년 시작부터 세인들의 관심을 끌며 방송과 언론으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각자의 연주 활동과는 별도로 바쁜 공연 일정을 보내야 했다.
1992년 5월 30일, 정 트리오는 유엔마약퇴치기구(UNDCP)의 친선대사로 임명되어 5년 여의 활동을 하는 동안 비엔나 본부와의 협조 하에 마약퇴치를 위한 음악회를 열었고, 이후 정명화는 1999년 12월 한국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임명 되었다. 정명화는 개인적으로뿐만 아니라 정 트리오와 함께 데카, EMI, 도이치 그라마폰 등을 통해 앨범을 출반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후학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매년 독주회나 협연 등을 통한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다.
Music Festival Argerich’s Meeting poin in Beppu
“마르타와 제가 벳부에서 만나 연주한다는 것이 너무 재미있습니다. 벳부는 세계의 음악이 만나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 지휘자 정명훈
“젊은 사람들과의 협연을 정말 좋아합니다. 매우 신선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거든요.”
-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온천휴양지로 잘 알려진 일본의 오이타현 벳부에서는 매년 마르타 아르헤리치를 만날 수 있다. 1994년 첫 내한공연 이후, 한국의 무대에서 볼 수 없었던 그녀가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에서 매해 축제를 이끌고 있었던 것이다. 페스티벌은 바로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1994년부터 음악감독으로써 무대를 이끌어 오고 있는 마르타 아르헤리치 뮤직 페스티벌. 올 해 벌써 9회를 맞이하는 페스티벌은 4월 중순 벳부의 봄을 수 놓을 예정이다. 올해는 유리 바쉬메트, 세르게이 나카리아코프, 폴 메이어 등과 함께 세계의 팬들을 기다린다.
“이 뮤직 페스티벌에서 저는 연주가와 청중이 서로 음악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또 가능한 한 많은 분들과 음악의 즐거움을 나누고 싶습니다. 젊은 혹은 원숙한 음악가의 연주를 듣는 것, 그 사람들과 함께 연주하는 것은 제게 있어 큰 자극이 되는 일입니다. 특히 재능을 가진 장래가 유망한 젊은이가 이 음악제에서 얻은 경험을 이후 활동에 잘 살려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 현재처럼 위태로운 세계의 상황 속에서 저희들도, 음악이라는 인류공통의 평화로운 수단을 통해 하루 빨리 평안한 세계가 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 아르헤리치 뮤직 페스티벌 음악감독,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
음악을 하나의 징검다리로 삼은 만남의 장이 되길 바라며…
1994년 10월, 아르헤리치는 “평화의 수단으로 공유할 수 있는 음악의 기쁨을 체험하는 것으로부터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기자회견에서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3년간의 프리 콘서트(pre-concert)를 거쳐, 1998년 ‘벳부 아르헤리치 뮤직 페스티벌’이 탄생했다. 친한 친구이자 사랑하는 동생이기도 한 피아니스트 이토 쿄코가 사는 도시 벳부에서 말이다. 아르헤리치 뮤직 페스티벌을 말할 때 이토 교코와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우정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둘은 1977년 독일에서 처음 만나, 1994년 일본에서 열린 ‘마르타 아르헤리치 실내악 페스티벌’에서 재회한다. 아르헤리치는 오이타현에 위치한 온천 휴양지인 벳부에 깊은 인상을 받고, 같은 해 벳부 B-Con 플라자 필하모니아 홀의 명예 음악 감독이 된다. “왜 벳부였는가?”란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아르헤리치는 “그것은 교코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죠” 라고 대답한다. 연주자와 관객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뮤직 페스티벌을 만들겠다는 아르헤리치와 이토의 소망은 1998년 국제적 페스티벌 ‘벳부 아르헤리치 뮤직 페스티벌’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특히 후진양성을 위한 활동과 사회공헌 활동을 기획해 온 아르헤리치는, 일본인 음악가들이 연주활동을 펼치는 환경을 보다 향상시키고, 최상의 음악을 제공하기 위해 연주자와 청중의 쌍방향성을 키울 수 있는 음악제를 지향하고 있다. 이런 음악가로서 모범이 되는 아르헤리치의 모습에 세계에선 일류 음악가들이 속속들이 이 지역을 방문하여 매회 역사적인 명연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지휘자 세이지 오자와, 정명훈, 피아니스트 임동혁, 비올리스트 유리 바슈메트,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기돈 크레머,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등이 함께 했다. 또 이 음악제를 계기로 모국 아르헨티나와 스위스에서도 비슷한 음악제가 시작되는 등 일본뿐 만이 아닌 세계의 음악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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