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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아트센터와 CJ Classic 의 공동기획으로 2003년 3회에 걸쳐 펼쳐지는 ‘화음' 시리즈는 국내 공연장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음악과 그림, 이야기’가 있는 음악회이다. 지난 3월에 선보인 ‘투영’편에서는 서로의 작품관에 영향을 주며 예술관을 발전시켰던 화가와 음악가의 이야기를, 8월 ‘죽음과 상실’편에서는 평생 죽음과 고통으로 얼룩졌던 불운한 삶 속에서도 역경을 딛고 빛나는 예술혼을 남긴 예술가들을 소개하며 그림과 음악이 함께 어우러진 새로운 시청각적 감흥을 선사하였다.
* '사랑(Love)’ = 10월 '사랑(Love)’편에서는 사랑이
탄생시킨 위대한 음악과 그림을 한자리에 모아본다. 친구의 아내였던 '갈라'와 도피행각을 벌여 결혼을 하고, 평생 그녀를 '여신'으로 추앙하며
창작의 모태로 삼았던 화가 살바도르 달리. 죽을때까지 갈라의 초상화만 수백점을 남겼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그들의 사랑과 작품을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 사랑의 슬픔'과 함께 만나본다. 구스타프 말러의 명작 교향곡 5번의 '아다지에토'와 화가 코코슈카의 '바람의 신부'는 같은
여인에 대한 사랑이 빚어낸 걸작이다. '알마 쉬틀러'라는 여인은 작곡가 말러의 아내이자 화가 코코슈카의 연인으로서 두 사람의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녀에 대한 사랑이 빚어낸 말러의 교향곡 5번의 '아다지에토'는 아름다운 선율 뿐 아니라 그 속에 담겨진 말러의 사랑의
메세지로도 유명하다. 코코슈카는 그녀에 대한 사랑과 집착, 연민을 작품속에 그려냈고 헤어진 후에도 꾸준히 그녀에 대한 사랑을 그림으로서
표현하였다. 말러와 코코슈카의 작품을 통해 사랑이 빚어낸 아름다운 예술혼을 감상해 본다.
한편 일생동안 독신으로 지내면서
슈만의 아내인 클라라에게 끊임없이 맑고 순수한 사랑을 헌신했던 브람스. 클라라의 인생의 항로를 따라 그녀를 즐겁게 하기 위해, 위로하기 위해 또
애도하기 위해 많은 작품들을 창작한 브람스의 유명한 현악 6중주를 화음쳄버 오케스트라의 베이시스트이자 유능한 편곡자인 미치노리 분야가 새롭게
선보인다. 화음 10월 공연에서는 화음쳄버 오케스트라의 초대 협연자로 세계 정상의 플루티스트 제임스 골웨이(James Galway)가 함께한다.
카라얀의 지지를 업고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석을 지낸 세계 정상의 플루티스트 제임스 골웨이는 이번 화음 10월 무대에서 메르카단테 플룻 협주곡을
선보일 예정이다.
프로그램************
1. 신앙이 된 사랑 | |
: 크라이슬러 - 사랑의 기쁨, 사랑의
슬픔 / 달리 ‘나의 아내’ (Fritz Kreisler (1875 - 1962)- ‘Liebesfreud ‘, ‘Liebesleid’ / Salvador Dali (1904-1989) -‘My wife’, 1945/ ‘Galatea of the Spheres’, 1952) | |
2. 오직 당신만을 향한 울림 | |
: 말러- 교향곡 5번 중 4악장
아다지에토/ 코코슈카 ‘바람의신부 (Gustav Mahler (1860-1911) - Symphony No.5 ‘Adagietto’ / Oskar kokoschka(1886-1980)- ‘Bride of the Wind’) | |
3. 브람스
- 현악 6중주 (Johannes Brahms (1833-1897) - ‘String Sextet No.1 in B♭
major, op.18) 4. 제임스 골웨이 협연 - 메르카단테 플룻 협주곡 (James Galways with Hwaum Chamber - Mercadante ‘Flute Concerto in E minor’) | |
- 사랑이 만들어 낸 위대한 예술! 연인과의 사랑이 작품의 모태가 된 세기의 걸작들과, 그 사랑위로
흐르는 감동적인 선율이 당신을 사로잡는다. 친구의 아내를 맹목적으로 사랑 하고 끝내는 도피행각을 벌임으로써 부모에게 절연장도 받게 되지만, 평생
한 여인을 신처럼 추앙하며 살았던 살바도르 달리. 그는 아내의 죽음 이후 삶의 의미를 잃고 체념 속에서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그가 신격화해서
그려낸 갈라의 모습들 위로 크라이슬러가 써 낸 사랑의 곡들이 연주된다. 당대 최고의 음악가, 화가, 건축가의 연인으로서 누구 에게도 완벽한
애정을 주지 못했던 세기의 여인 알마. 연인 알마를 향한 불타 오르는 사랑이 빚어낸 걸작, 말러의 아다지에토의 아름다운 선율위로 코코슈카가
알마와 사랑을 나눈 직후 그렸다는 명작을 함께 감상해 본다. 새로운 편곡으로 만나보는 브람스의 현악 6중주에서는 클라라를 향한 순수하고 애절한
그의 사랑을 그려볼 수 있다. 한편 화음 시리즈의 마지막 무대인 10월 공연에는 화음쳄버 오케스트라의 초대 협연자로 세계 정상의 플루티스트 제임스 골웨이가 함께한다. 카라얀의 지지를 업고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석을 지낸 세계 정상의 플루티스트 제임스 골웨이는 10월 무대에서 모차르트의 플룻 협주곡 D 장조를 비롯한 아름다운 한국의 선율을 선보일 예정이다. 정통 클래식 뿐 아니라 팝과 한국 가곡 등 크로스 오버 음악으로 다시 한번 최고의 자리에 오른 거장 제임스 골웨이를 10월 8일, 화음 시리즈 '사랑' 편에서 확인해 본다. | |
공연 프리뷰****************
음악과 그림의 아름답고도 슬픈 만남
투영, 죽음과 상실, 사랑에 대하여
음악과 미술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 어떤 기대와 설레임을 갖게 한다. 그것은 서로 다른 두 세계의 아름다움이 만난다는
사실에, 마치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처럼 약간의 두려움과 설레임이 공존하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그것은 매우
근사한 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음악과 미술의 만남은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의미는 우리가 알지 못할 뿐이지 이 두
영역의 예술가들은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받았을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의지해서 자기의 예술을 완성으로 이끌기도 했기
때문이다. 서양, 특히 유럽에서 바로크 시대 예술가들이 주로 종교를 주제 삼았다고 한다면,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예술가들은 자연을 주제 삼고,
자신의 감정과 환상을 영감으로 삼았다. 그러나 또한 그들 화가와 음악가들은 서로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기도 했다. 화가들은 그림에서 받은
감동을 화폭에 옮겼고, 음악가들은 그림에서 받은 감흥을 바탕으로 작곡을 하기도 했다. 낭만주의 음악가들은 자신들의
내면에서 일렁이는
다채로운 감정의 스펙트럼뿐만 아니라, 동시대 혹은 이전 시대의 화가들의 그림에서 음악의 자양분을
얻었다. 리스트가 그러했고, 라흐마니노프가
그러했다.
그러나 음악과 미술의 만남이라는 형식의 공연이 우리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이유는 영화가 아무리
발전하고, 쏟아져 나오고 있어도 그것과는 별개로 음악과 미술은 고유의 영역과 본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서로 만나서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직은 피상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기획 공연이 없었던 것도
그 이유이다. 음악과 미술의 만남은 어쩌면 완벽한
결합이 될 수도 있다. 이미 바그너 이래로 종합예술은 시도되어왔고 그러한 시도의 결과로서 우리는 다양한 모습의 오페라나 공연을 만났지만, 순수한
음악과 미술의 만남은 여전히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음악과 미술의 만남은 서로의 본성을 잃지 않으면서, 서로를 흡수하고, 서로를 상승시키는
그러한 성격의 것이
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보고 듣는 이의 상상력이 필요함은 다시 환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20세기초에 들어오면서 음악과 미술은 본격적으로 각자의 벽을 넘어서 서로의 영역에 스며들기 시작했으며, 또한 새로운
창작을
위해 함께 고개를 맞대기 시작했다. 그런 대표적인 예를 쇤베르크와 칸딘스키의 만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쇤베르크는 음렬기법으로서 새로운
현대음악어법을 창시했지만, 한때는 그림으로 생계를 유지했던 일도 있었던 화가로서 생활을
한 적도 있으며, 표현주의 화가들과 함께 전시도
했다. 칸딘스키는 쇤베르크의 음악과 그림을 높게 평가했으며, 특히 음악을 조형언어로 구현하는데 열정을 기울였던 칸딘스키는 쇤베르크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우리는 음악가들과 화가들의 이러한 만남을 첫번째 공연인 ‘투영’에서 만날 수 있다. 쇤베르크와 칸딘스키 뿐만 아니라, 사티와 피카소,
그리고 스트라빈스키와 샤갈의 만남도 공유해 볼 수 있다. 이들의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어떻게 이들의 세계가 어우러졌는지를 이번 기획공연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두번째 공연의 주제인 ‘죽음과 상실’, 세번째 공연의 주제인 ‘사랑’에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예술가들이 이러한 주제
속에서 어떤 가슴앓이를 했고, 어떠한 진주를 품었는지 만날 수 있다. 가장 커다란 상실 앞에서 예술가는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자신도 언제
숨겨두었었는지를 알 수 없는 그 존재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두 번째 공연에서 만나게 될 현악 사중주 ‘죽음과 소녀’를 작곡한 슈베르트는
이런 글을 썼었다.
“내가 사랑을 노래하려고 하면, 사랑은 슬픔이 되었고, 내가 슬픔을 노래하려고 하면 슬픔은 사랑이 되었다. 사랑과
슬픔은 내 안에 공존하면서 나를 이루는구나.”
예술가로서의 슈베르트 자신의 본질을 드러낸 글로서, 사실 그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영역의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 슬픔이나, 사랑이나 모두가 아름답게만 느껴질 뿐이며, 죽는 날까지 빛을 잃지 않는 아름다움으로 숨쉰다.
우리는
그런 아름다움을 ‘죽음과 상실’, ‘사랑’에서 만날 수 있다.
조금은 단순한 생각이지만,음악이나 미술이나 모두
심상(心象), 즉 마음의 이미지이다. 그것이 상호작용을 갖는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필연적인 일일 것이다. 음악가는 그림이 주는 마음의 이미지를
다시 음악으로 구성하고, 화가는 음악으로부터 받은 마음의 이미지를 그림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서로 독립적인 아름다움을 갖게
된다. 그림이 마음에 남기는 이미지는 연주 영역에 있는 음악가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과거 대작곡가들의 작품에 대한 해석은 수 백년이 지난
근대에 와서야 제대로 성숙되고 무르익었으며, 그들 중 대개의 연주자들은 작품에 대한 하나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오랜 시간 여러 영역에
걸쳐서 노력을 기울였다는 공통적인 언급들을 하고 있다. 이것은 음악이 하나의 뚜렷한 심상
이미지로 자리잡을 때에 깊이 있는 해석이
나온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규모있는 현악 작품들을 꾸준하게 연주하고 있는 화음쳄버 오케스트라는 이번에 야심적으로 음악과 미술의
만남을 기획했다. 그 동안 화음쳄버 오케스트라는 자주 연주되는 현악 작품들 이외에 새로운 현악 작품들을 국내에 많이 소개해오고 있다. 특히
이들의 서정적이며, 풍부함과 풍요로움을 지닌 사운드는 상상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쉽게 청중은 제각각 신선한 심상의 이미지를 만날 수가
있었다.
화음쳄버 오케스트라의 미술과의 만남은 이번이 첫번째 시도이지만, 화음쳄버의 전신인 실내악단 화음(畵音)은 이미 오랫동안
갤러리에서의 연주와 작년부터 시작해서 꾸준하게 이어가고 있는 ‘자화상 시리즈’를 통해 음악과 미술의 연결고리를 이어오고 있으며, 그러한 살아있는
경험이 연주자들에게도 녹아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번 ‘투영’, ‘죽음과 상실’, ‘사랑’이라는 세 주제로 진행될 공연은 음악과 미술의
만남인 동시에 새로운 심상의 이미지를
청중들에게 심어줄 것이라고 기대된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연주되는 음악에 대해서, 그림에 대해서,
새로운 인식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예술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로 나아가는 ‘온전한 심상’을 이번 기획공연을 통해서 얻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김동준/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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