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레스트 검프에서 느낀 감동은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내면에서 들리는 소리를 실천했다는 것이다.
바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주변의 소리에 흔들림이 없었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매번 이겨낼 수 있었다는것. 칭찬에 으쓱함도 없었고, 그래서 자신을 주변인들의 평가에 맞추느라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 또한 초심의 행복감을 결코 잊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들처럼 끊임없는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으므로)그는 늘 행복했고, 물욕에서 헤어나 정말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편에 설 수 있었다.
모든 재산을 없는 이들을 위해 썼고, 유일한 군대 친구 와의 약속땜에 월남전에서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새우잡이가 되었고, 또 다리를 잃은 군장교와의 약속으로 (우스개 소리였음에도 ..)생의 끝에서 폐인이 된 장교도 구하고 (물론 전쟁터에서 목숨을 살린것 말고도-죽어라고 폭행을 당했어도 전혀 분개도 않는) 그의 머리로 억만 장자가 되고 ....
행복함은 한결같을 때 느낄 수 있다.
성공, 아니 무엇을 해낸다는 것 자체가 한결같이 앞으로 나아갈 때 가능한 것이다.
자신의 바로 앞에 닥친것에- 옆으로 고개를 돌릴 줄도 모르는 바보같은 상태가 되었을 때 그것이 최선을 다 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도올 김용옥에게 "어떻하면 공부를 잘 할 수 있습니까?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요."
라고 물었단다.
그분이 화를 벌컥내며, 방법은 무슨 방법. 제발 잔꽤좀 그만 부리라고..
첫째도 '미련하라'
둘째도 '미련하라'
셋째도 '미련하라'(도올의 격앙된 쇳소리를 상상해 보도록)
포레스트 검프의 삶이 바로 이런 삶의 모습이지 않은가.
사랑하던 여인을 끝까지 처음의 모습 그대로 사랑하지 않는가. 그렇게 망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방탕한 생활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지만)...
그토록 단순하지 않았다면 그가 행복할 수 있었을까. 그녀와의 만남이 지옥이었을 것이다.[퇴학에, 빠에서 누-드로 노래를 부르고 (놀림거리로 떨어져 있음도 보는데..)동거에..]
여인이 떠나고, 몽롱한 괴로움에서 문득 '달리고 싶다'는 맘에 그저 뛰고, 또 뛰고, 이왕 여기까지 뛰었으니까 더 뛰자 싶어 또 뛰고....그렇게 해서 미대륙을 횡단하는 기적을 낳는...(번역이 코믹하긴 했지만)
방송매체를 뜨겁게 달구고 있을 때 그의 인터뷰는 많은 절망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의말은 단지"뛰고 싶어서 뛸 뿐입니다" 였다.
환경을 위한다거나, 빈곤 퇴치를 위한다거나.... 우리들 같으면 그랬을 것이다.
온갖 허영으로 덮어쓴 채, 메스컴의 노예로 전락해서 나를 잃어 버렸을 것이다.
또한 많은 추종자들이 생겼을때 그래서 그 영웅심리에 계속했더라면 죽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멈춰서서(코믹하지만) 이제 지치고 피곤하니 그만 뛰고 집에 가겠다고 유유히 사람들 속을 헤쳐 나갔다. 자기네는 어떻하냐는 소리를 뒤로한채.....
"뛰고 싶어서 뛸 뿐입니다"
그래. 내 내면 깊숙이서 시키면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영웅이라고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자만이 남을 위해서 뭔가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삶이 행복한 자만이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자다.(남의 잣대가 아닌)
우리는 왜 달리는가.
끝까지 달려가 보았는가.
내 의지로 달리고 있는가.
"바보는 단지 아이큐가 조금 낮을 뿐이라고"
온갖것을 다 끓어않고 단 한가지에도 충실하지 않는 우리들의 삶에
가장 하고싶은것!
내가 당장 할수 있는것!
에 충실하고 미쳐보라는 경종을 울리는 것 같다.
우리들의 위선에 비수를 꽂는 영화다.
그의 어머니가 참으로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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