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2018년)

2018 서울시향 올해의 음악가 /이안보스트리지/2018.3.11.일.5시/예술의 전당

나베가 2018. 3. 4. 22:54




서울시향 2018 올해의 음악가 이안 보스트리지 

3 11(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   휘 마이클 프랜시스 Michael Francis, conductor

테   너 이안 보스트리지(올해의 음악가) Ian Bostridge, tenor (Artist-in-Residence)

합창단 국립합창단 The National Chorus of Korea

 

프로그램

드뷔시세 개의 녹턴

Debussy, Trois Nocturnes

 1. Nuages(Clouds)  

 2. Fêtes(Festivals) 

 3. Sirènes(Sirens) 


브리튼테너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녹턴 *한국 초연

Britten, Nocturne for tenor, 7 instruments and strings, Op. 60 *Korean premiere

 1. Prologue, from Prometheus Unbound (Shelley) 

 2. The Kraken (Tennyson) - bassoon 

 3. from The Wanderings of Cain (Coleridge) - harp 

 4. Blurt, Master Constable (Middleton) - horn 

 5. from The Prelude (1805, Wordsworth) - timpani 

 6. The Kind Ghosts (Owen) - english horn 

 7. Sleep and Poetry (Keats) - flute and clarinet 

 8. Postlude, Sonnet 43 (Shakespeare) 


--------------------휴식 15분 -------------------------------------------


홀스트행성

Holst, The Planets Op. 32

 I. Mars, the Bringer of War 

 II. Venus, the Bringer of Peace 

 III. Mercury, the Winged Messenger

 IV. Jupiter, the Bringer of Jollity 

 V. Saturn, the Bringer of Old Age 

 VI. Uranus, the Magician 

 VII. Neptune, the Mystic 

가사: 영어


 총 연주시간 117분(휴식포함)

  

음악팬들이라면 홀스트 행성에서 좋아하는 악장이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전쟁을 연상시키는 화성의 리듬, ‘금성의 황홀한 정적, ‘목성의 엄숙한 선율 등그러나 홀스트의 이 걸작은 이에 그치지 않고 인간 정신이 미치는 범위를 탐구하는 여정이기도 하다영국 지휘자 마이클 프랜시스가 드뷔시의 정교한 녹턴으로 시작해 무한공간 저 너머로 청중을 초대한다서울시향 올해의 음악가 이안 보스트리지가 브리튼의 녹턴을 통해 더 깊은 밤의 영역으로 들어간다셰익스피어와 셸리테니슨의 시에 곡을 붙인 이 곡으로 별들의 세계를 탐험하게 될 것이다.



마이클 프랜시스Michael Francis 지휘자

프로필

마이클 프랜시스는 지휘자로서의 국제적인 명성을 빠르게 구축했다.

 

이번 시즌에서 프랜시스는 베를린 라디오 심포니, 필하모니아, 미네소타와 퍼시픽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데뷔무대를 가진다. 그는 베를린 코믹 오페라, 서울시향, 밀워키와 인디애니폴리스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다시 지휘 한다. 또한 그는 국제 ARD 대회에서 바바리안 라디오 심포니를 지휘할 예정이다.

 

북미 지역에서 객원지휘할 교향악단으로는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 뉴욕, 신시내티, 휴스턴, 아틀란타와 피츠버그 몬트리옹, 토론토, 오타와 심포니가 있다. 유럽지역 일정으로는 드레스덴 필하모닉, MDR 라이프치히, 헬싱키 필하모닉,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등이 있다. 영국에서는 런던 심포니, 로열 필하모닉, BBC 필하모닉, 웨일즈 BBC 내셔널 오케스트라, BBC 스코티시 심포니와 연주했다. 아시아에서는 NHK 심포니, 타이완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홍콩과 일본 필하모닉을 지휘했고, 말레이시아와 서울시향을 다시 지휘할 예정이다.

 

프랜시스가 녹음한 음반으로는 발렌티나 리시차와 런던 심포니가 녹음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안네 소피 무터와 뉴욕 필하모닉이 연주한 볼프강 림의 빛의 유희, 이안 파커와 녹음한 라벨과 거슈인의 피아노 협주곡이 있다.

 

플로리다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으로서 세 번째 시즌을 맞는 마이클 프랜시스는 2021년까지 계약을 연장한 상태다, 그는 샌디에고 메인리 모차르트 페스티벌의 음악감독이기도 하다. 그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노르최핑 심포니 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이자 상임지휘자로 활동했다.




이안 보스트리지Ian Bostridge 테너

프로필

이안 보스트리지는 유럽, 일본과 북미의 주요한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 경력을 쌓아왔으며, 잘츠부르크, 에딘버러, 뮌헨, , 슈바르젠부르크, 올드버러 페스티벌에 정기적으로 출연하고 있다. 그는 비엔나 콘체르트하우스, 뉴욕 카네기홀, 암스테르담 콘체르트헤바우, 필하모니 룩셈부르크, 런던 바비칸 센터와 위그모어 홀의 상주음악가로도 활동했다.

 

오페라부문에서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오페라와 브리튼 한여름 밤의 꿈의 리산더역을, 에딘버러 페스티벌에서 모차르트 마술피리의 타미노역을, 영국 국립 오페라와 헨델 세멜레의 주피터역을 브리튼 나사의 회전의 피터 퀸트역을, 로열 오페라 하우스, 코벤트 가든과 모차르트 돈 조반니의 돈 오타비오역과 아데 템페스트의 칼리반역을 공연했다. 바이에른 국립오페라극장과 몬테베르디 포페아의 대관식의 네로역, 스트라빈스키 난봉꾼의 행각의 톰 레이크웰역과 브리튼 루크레티아의 능욕의 남성 합창역을, 비엔나 국립오페라극장에서 돈 오타비오를 밀라노 라 스칼라극장에서 피터 퀸트역을 불렀다. 그는 브리튼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아셴바흐역을 영국 국립오페라, La Monnaie, 브뤼셀, 룩셈부르크에서 불렀다.

 

2017/18시즌 하이라이트로는 시애틀 심포니와 루도비크 모를로의 지휘로 베를리오즈의 여름밤을 공연하며, 미국 동/서부를 돌며 리사이틀 투어를 한다. 헨델의 Jeptha의 타이틀 롤을 파리 국립오페라극장과 공연하며, 서울시립교향악단 상주음악가로 활동하고, 안토니오 파파노의 지휘로 슈타츠카펠레와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을 공연한다.

 


그가 녹음한 많은 음반은 주요한 국제적인 상을 수상했으며, 그래미상에 15번 후보에 올랐다. 워너 클래식스에서 발매한 '셰익스피어의 노래'는 2017년 그래미상 베스트 클래식 솔로 보컬 앨범으로 선정되었다.  2004년 신년에 영국왕실로부터 CBE(Commander of British Empire) 훈장을 받았다. 2016년에는 저서 겨울 나그네로 폴 로저 러프 쿠퍼 상을 수상했다.



클로드 드뷔시 (1862-1918)
세 개의 녹턴 (1897-99)


1894년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초연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드뷔시는 일약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단숨에  발돋움했다.

1901년 3곡의  완전한  형태로 ‘세 개의  녹턴’(첫  두  곡은 1900년 초연)을  초연하며  드뷔시는 ‘목신의  오후’에 이어  자신만의  독창적인  관현악적  재능을  다시  증명했다.
프랑스가 흠모했던 드뷔시 고유의 관현악 어법은 독일-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형성된  후기 낭만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됐다. 

여전히  바그너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유럽은  시끌벅적한 대편성 오케스트라 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런 흐름에 반대하며 드뷔시는 ‘뮤즈는 언제나  신중하고  행동을  삼가는 법’이라고  말하곤 했다. 

때문에  그의  관현악  스타일은  독일  교향악  전통에서  엿볼  수  있는  목표  지향적인  진취성보다는  침묵마저  느껴지는  정적인  분위기가
압도적이며, 길게 이어지는 전개부 위로 여러 아이디어들이 섬세하고도 미묘하게 병합되어 흐르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목신의 오후’가 말라르메의 시에서 얻은 감동에서 탄생했듯 ‘세 개의 녹턴’ 또한 런던에서 활동하던 동시대 미국 화가 휘슬러의 ‘녹턴’이란 회화를 보고

떠오른 영감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뒤카는 드뷔시 ‘녹턴’을 휘슬러의 ‘녹턴’에 비유하며 “그윽하고 애절한 시적 감수성으로 가득
하다”고 평했으며 드뷔시 또한 ‘녹턴’ 초연 훨씬 전인 1894년 외젠 이자이에게 보낸 편지에 휘슬러가 ‘녹턴’에 사용한 회색 컬러가 인상적이었다는 내용을 적은 바 있다. 마침 당시 드뷔시는 이자이에게  헌정할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  중이었는데  결국  완성시키지  못했고  악보  또한  유실됐다.

여러 음악학자들은 드뷔시의 ‘녹턴’  중 한 곡이 이 협주곡 스케치를 기반으로 작곡되었다고  주장하는데,  이로  인해  당시  편지에  언급한  휘슬러의  회화가  함께  거론되는  것으로  보인다.
드뷔시 본인이 직접 남긴 다음의 작품 소개는 휘슬러의 회화와 분명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녹턴’이란  제목은  이  작품에서  일반적으로,  그리고  특별하게  보자면  장식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흔히들  말하는 ‘녹턴’의  양식이라기보다는  빛이  전달하는  다양한  인상과  특별한 효과들의 표현을 제시한다.”


녹턴은 ‘구름’과 ‘축제’ ‘사이렌’이란  부제의  세  편의  소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첫  곡 ‘구름’과  마지막  곡 ‘사이렌’은

편성이  독특하고  금관 연주가  다소  제한적이다. ‘구름’에서는  트럼펫이, ‘사이렌’에서는 트롬본이 생략되어 있다.

 ‘구름’에서는 약음기를 낀 현악기와 목관 악기가  자아내는  부드러운 2성  대위법을  배경삼아  잉글리시  호른이  센  강의  뱃고동  소리를  표현한다.

거의 변함없이 반복되는 선율을 빈번하게 훼방 놓는 악기는 프렌치 호른이다. 중반부에 이르면  플루트와  하프가  서정적인  독주를  시작하고, 

 이  선율은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정감어린 독주로  이어진다.  잉글리시  호른이  다시  조용한  음성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다가  트레몰로를
배경으로  피아니시모로  잦아든다.  조용히  맥박  치는  현악기들의  피치카토는  드뷔시가  묘사한
‘회색조로 희미해져 가는 구름의 느리고 엄숙한 고뇌’를 연상시킨다.


첫 곡과 마지막 곡에서의 결핍을 보충이라도 하듯 두 번째 곡 ‘축제’는 자극적이면서도 세속적인 금관 사운드로 점철되어 있다.

서늘하면서도 단호한 현악 파트의 서주 위로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팡파르와  팀파니  소리가  등장하고,  이어지는  목관의  재잘거림은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키다가 갑자기 정적에 빠진다. 이윽고 조심스럽게 다시 등장한 팀파니 소리에 맞춰 공화국 근위대를
상징하는  세속적인  금관  사운드가  지축을  울리며  다중적이면서도  복잡한  리듬으로  행진한다.
음악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 속에 화려하게 폭발한다. 연이어지는 팡파레는 축제가 끝났음을 알리며 멀리 사라져간다.


마지막  곡 ‘사이렌’은  소프라노 8명과  메조소프라노 8명으로  구성된  여성  합창이  부르는  가사없는 보칼리제로 진행된다.

 엄청난 밀도로 복잡하게 얽힌 관현악 효과가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드뷔시는 이  작품에 대해 “바다와  그 바다가  품고 있는 쉴  새 없는 리듬을 표현하며, 달빛 아래 은색으로  출렁이는  물결  사이로  웃으며 지나가는  사이렌의  신비로운  노래”를  표현했다고 적고 있다. 그렇게 떠내려가던 음악은 두 대의 하프가 자아내는 성긴 하모닉스 위를 부유한다.




Debussy Nocturnes - Victoria Symphony - Tania Miller, conductor

벤저민 브리튼 (1913-1976)
테너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녹턴, op. 60 (1958) *한국 초연


벤저민  브리튼은 4편의  성악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을  작곡했다.  이  가운데 ‘테너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녹턴 Op. 60’은

 ‘우리의  사냥꾼  조상들(Op. 8, 1936)’, ‘일루미네이션(Op. 18, 1939)’, ‘테너와  호른과  현악기를  위한  세레나데(Op. 31, 1943)’에  이어  가장  마지막에  작곡된 작품이다.
‘녹턴’은 3번째 곡 ‘세레나데’와 형식상 유사한 점이 많다. 밤과 어둠, 특히 악몽을 테마로 한 점도 그렇고 각 악장별 비율과 전개방식도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실제로 ‘세레나데’는 ‘녹턴’이란 제목으로 시작되기도 한다. 다만 ‘세레나데’와 달리 ‘녹턴’은 각 악장이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휴지 없이 하나의 작품처럼 아타카(attaca)로 연주된다. 각 악장의 가사는 밤을 주제로 한 영어로 된 시들을 엄선해 차용했다.

첫 악장을 제외한 나머지 악장들은 모두 오블리가토를 위한 독주악기가  포함되고  마지막  악장은  앞서  등장한  모든  오블리가토  악기들이  총출연한다.  악장별 가사의 출처와 오블리가토 악기는 다음과 같다.


1. 셸리: <프로메테우스의 해방> 중 ‘시인의 입술 위에서 나는 잠들었네’
2. 테니슨: <크라켄> / 바순
3. 콜리지: <카인의 방황> 중 ‘잎으로 만든 노끈을 휘감고’ / 하프
4. 미들턴: <스페인 사람의 한밤의 산책> 중 ‘한밤의 종’ / 프렌치 호른
5. 워즈워스: <프렐류드> 중 ‘내가 침대에 누웠던 바로 그날 밤’ / 팀파니
6. 오웬: <친절한 유령들> / 잉글리시 호른
7. 키츠: <잠과 시> / 플루트 & 클라리넷
8. 셰익스피어 소네트 43번 / 모든 오블리가토 악기


음악적으로는 전체 악장이 이어져 있지만  스토리텔링은 악장별로  분열적이리만큼  분산되어 시작과 끝을 가늠하기 힘들다.

각성과 몽환, 현실과 환상 사이에 어정쩡하게 반쯤 깬 인간의 의식으로 보는 환영의 세계를 표현하는 듯하다. 음악의 흐름 사이사이로 독특한 효과가 이목을 끄는데 1악장 오프닝에서 요동치는 현악 모티프도 그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C장조와 D♭장조  사이에  조성적 긴장과  갈등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이는 평온한  수면과  불안한 악몽이라는 잠의 양면성을 대조하고 있다.


이안 보스트리지는 이런 조성적 갈등이 다른 한 편으로 브리튼이 테너 피터 피어스와 나눈 동성애적  사랑을  은유한  것이라고  말한다. 

 피어스와의  파트너십은  브리튼에게  영감의  원천이자  동시에 사회로부터 배척당할 위험이 있는 콤플렉스였다.

이런 이중적인 감정이 녹턴에서도 드러나는데 특히 죽음을 암시하는 마지막 악장의 테마는 마찬가지로 동성애자였던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의 마지막 악장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고 보았다. 잠과 죽음은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결고리이다. (Ian Bostridge, A Singer’s Notebook 참조)


성악과  오케스트라가  결합한  편성으로  브리튼이  모범으로  삼은  작곡가는  구스타프  말러였다.
특히  오웬의  시로  작곡된 6악장에서 잉글리시  호른의  사용은  말러의 ‘대지의  노래’를 연상시킨다. 그는 이 작품은 뉴욕에서 단 한 번 만났을 뿐인 말러의 미망인 알마 말러에게 헌정하며 자신이 말러의 영국인 상속자임을 분명히 명시했다.



Ian Bostridge; "Nocturne"; Op 60; Benjamin Britten



구스타브 홀스트 (1874-1934)
행성 op. 32 (1914-16)


홀스트는 ‘행성’을  작곡하던  당시  덜위치와  세인트  폴  여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음악  교사였다.

런던  왕립  음악원을 졸업한 뒤 트롬본 연주자로 활동하던 그는  교사가 된 이후에는 주말과 공휴일을 이용해 음악을 작곡했다.

이때 작곡된 대부분의 작품이 합창곡을 위시한 성악곡들인 반면 관현악곡은 ‘행성’이 유일하다.

 
이 시기  사실  홀스트는 깊은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오페라 ‘시타’를 비롯해 야심차게 대작들을 생산하여 콩쿠르에 지원했지만 탈락했고

간신히 성사된 초연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1913년 낙담한  홀스트는  우연한  기회에  점성학자인  클리포드  백스와  함께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으며,  그의  소개로  점성학을  접할  수  있었다.  백스와  더불어  홀스트의 ‘행성’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점성학자이자 신지학자인 앨런 레오이다.  그의 점성학  저서 ‘통합의 기술’은 인간의 영혼에 행성이 미치는 영향을 점성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홀스트가  자신의 일곱 개의
모음곡에 행성의 이름을 제목을 사용한 것은 이 책의 영향으로 보인다 (홀스트의 모음곡 중 ‘해왕성, 신비로운 자’는 바로 이 저서의 챕터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영국을 방문한 쇤베르크와 스트라빈스키는 각각 다섯 개의 오케스트라 소
품 Op. 18과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연주하며 그들의 콘서트를 찾아간 홀스트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특히  홀스트의  모음곡 1번 ‘화성,  전쟁의  전령’의  노골적인  불협화음과  파격적인 박자는 기존의 관현악 전통에서 벗어난 급진적인

‘봄의 제전’의 도입부에서 받은 인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바그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림스키코르사코프 등 여러 작곡
가들의 관현악 어법을 체득한 그는 1차 대전이 시작되기 직전 첫 곡 ‘화성’의 스케치를 시작하여 전체  작품을 1914년에  완성했다.

 1918년  런던  퀸즈  홀에서  에이드리언  볼트의  지휘로  초연된 이 작품은 대성공을 거두며 홀스트에게 영국을 대표하는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안겨주었다.
홀스트는  자신의  모음곡 ‘행성’이  유년시절부터  노년시절까지  이어지는  인간의  삶을  묘사하므로 첫 곡부터 차례로 연주할 것을 지시했다.


현악기들의 콜레뇨(활대로 현을 치는 주법)가 잔혹하고 음산한 기운을 뿌리다가 팀파니와 더불
어 곧 폭발해버리는 제1곡 ‘화성, 전쟁의 전령’은 전체 작품에서도 가장 처절한 긴박감과 비장함이 돋보인다.


조용하고 우아하면서도 서정적인 선율로 첫 곡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제2곡 ‘금성, 평화의 전령’은 승천을 그리는 듯한 호른 독주와

이어지는 바이올린 및 오보에 독주의 아름다운 선율이 평화로운 풍경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독주 악기들의 선율은 명료하게 들리지만 배경을 이루는 관현악 파트의 텍스처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제3곡 ‘수성, 날개 단 전령’은 유쾌한 스케르초로 전체 모음곡 중 가장 빠른 템포로 연주된다.

두 가지 각기 다른 조성(B♭장조와 E장조)과 다른 리듬이 동시에 진행되며 서로를 자극하는데 이런 대결 패턴은 홀스트의 다른 작품에
서도 엿볼 수 있는 작곡가의 주특기이다.

 
제4곡 ‘목성, 쾌락의 전령’은 ‘화성’과 더불어 <행성> 중 가장 대중적인 곡이다. 현악 파트의 치밀하면서도 역동적인 움직임과

호른 6대의 위풍당당한 울림이 활달하면서도 유쾌한 분위기를 줄곧  유도한다. 

웅장한  사운드가  끝나고  뒤이어  등장하는  서정적인  선율은  나중에  조국찬가 ‘내 조국이며, 나 그대에게 맹세하리’의 테마로 다시 사용됐다.


제5곡 ‘토성, 노년의 정령’은 앞의 ‘목성’과 대조적으로 어둡고 정적인  분위기가 지배한다. 

공허한  오프닝  화음과  묵직한 더블베이스의 진행이 노쇠함과 패배자의 절망을 그리지만

곧 트롬본이 현자를 의미하는 지혜의 목소리를 B단조 테마로 담아낸다. 결국에는 자신의 종말에 대한 인정과 화해, 그리고 평온함이 도래한다.


제6곡 ‘천왕성, 마법사’에서부터 음악은 현실 너머의 세계를 표현한다. 위력적인 금관 사운드를
시작으로 기괴하고 음란하면서도 사뭇 유머러스한 동기들이 마법의 주문을 시도했다가 사고를
치고 점차 심각해지는 상황을 수습하지 못하는 애니메이션 환타지아의 마법사의 제자를 연상시
킨다.

제7곡 ‘해왕성, 신비주의자’는 비현실적인 영혼의 소리를  추구한다. 피아니시모로 연주되
는 파편화된 선율과 테마 사이로 구체적인 테마는 찾아볼 수 없다. 최소한의 다이내믹을 유지한
채 피안의 세계를 표현하는 하프, 첼레스타 소리 사이로 하이 G음의 여성 합창단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지만  가사는  없다.  오케스트라  소리가  멀리  사라져가는  와중에도  여성  합창단의  목소리
만은 끝까지 남아 종말을 지킨다.


Gustav Holst - The Planets, Op.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