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2017년)

2017 서울시향/토마스 체헤트마이어의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11.17.금/예술의 전당

나베가 2017. 11. 15. 00:00




토마스 체헤트마이어의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제3

11 17 () 오후 8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바이올린 토마스 체헤트마이어 

Thomas Zehetmair, conductor & violin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3번 

Mozart, Violin Concerto No. 3 in G major, K. 216

쇤베르크, 정화된 밤 

Schönberg, Transfigured Night, Op. 4

멘델스존, 교향곡3스코티시’ 

Mendelssohn, Symphony No. 3 in A minor, Op. 56 ‘Scottish‘



토마스 체헤트마이어는 지휘자로서나 바이올리니스트로서나 모든 음악가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BBC 3 라디오의 음악 방송 진행자인 앤드류 맥그리거는 “체헤트마이어는 다른 음악가들이 문제조차 찾아내지 못한 영역에서 문제뿐 아니라 그 해답까지 찾아내는 연주가이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의 연주를 직접 감상하는 것일 터. 이 공연에서 체헤트마이어는 지휘자이자 솔로이스트로서 모차르트의 경쾌한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을 연주하며, 모차르트의 의도를 정확하게 해석해 낼 것이다. 또한 그는 낭만주의 시대의 매우 다른 명작 두 곡을 통해 지휘자로서의 통찰력과 연주력을 보여줄 것이다.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은 녹아드는 아름다움과 타오르는 열정으로 금지된 사랑을 이야기한다. 멘델스존의 교향곡 제3번 ‘스코티시’는 젊은 시절 멘델스존이 스코틀랜드 고지를 여행하며 눈에 담은 풍경을 빛나는 음악적 수채화로 표현한 작품이다.




토마스 체헤트마이어Thomas Zehetmair 지휘자


동시대 가장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으로 각광받는 토마스 체헤트마이어는 현재 바이올리니스트로, 실내악 연주자로, 또 지휘자로 세계적인 존경과 관심을 받고 있다. 2002년부터 노던 신포니아의 예술감독으로 재직중이며, 런던 필하모닉,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빈 체임버, 브리티쉬 체임버 오케스트라 등을 지휘하였다. 정상급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체헤트마이어는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보스턴 심포니,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등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였으며, 바렌보임, 블롬슈테트, 홀리거, 아르농쿠르, 에센바흐 등 당대 최고의 지휘자들이 그와 함께 했다. 또 수많은 명반을 남긴 그는 최근 노던 신포니아와 함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과 슈만 교향곡이 담긴 앨범을 발표해 평단과 대중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1994년 결성한 체헤트마이어 콰르텟의 슈만 현악 사중주 음반은 2003년 ‘ 올해의 디아파종상 ’ 및 그라모폰 ‘ 올해의 음반 ’ 을 수상하며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명반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다양한 음악활동을 인정받아 2005년 ‘ 독일 음악 비평가 상 ’ 과 2007년 ‘ Karl- Bö hm -Interpretationspreis des Landes Steiermark ’를 수상하였으며, 바이마르의 프란츠 리스트 아카데미와 영국 뉴캐슬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제 5번

[W. A. Mozart, Violin Concertos No.5 in A Major, K.219 ]


모차르트의 생애에서 1775년은 ‘바이올린 협주곡의 해’로 기억된다. 당시 잘츠부르크 궁정악장으로 일하고 있었던 19세의 모차르트는 이 한 해 동안 네 편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집중적으로 작곡했다. 이 네 곡과 그보다 2년 전에 완성된 한 곡을 묶어서 통상 ‘잘츠부르크 협주곡’이라고 부르는데, 아마도 모차르트 자신이 연주하기 위해서 작곡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다섯 편의 바이올린 협주곡에는 어린 시절부터 서유럽 전역을 두루 여행했던 모차르트의 풍부한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 즉 이탈리아와 프랑스,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여러 나라의 다양한 양식들이 고루 녹아 있는 것이다. 모차르트는 이러한 요소들을 특유의 재능과 개성으로 소화한 후 자신만의 숨결까지 불어넣어 독창적인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훗날 알프레트 아인슈타인은 이 협주곡들을 가리켜 “분명 파가니니로 하여금 미소 짓게 했을 것이다”라며 칭송했다.

다섯 곡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곡은 [제3번 G장조]와 [제5번 A장조]이다. 특히 마지막에 작곡된 ‘제5번’은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이 곡은 19세 청년의 작품답게 순수하고 젊은 감각이 넘치면서도 동시에 모차르트의 내면에 간직된 시적 감성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듯한 은은한 향취를 머금고 있어서, 이전 작품들에 비해 한결 유려하고 숙성된 걸작이라는 인상을 풍긴다.




Hahn - Mozart - Violin Concerto No.3


1775년 말에 완성된 이 곡은 일련의 작품군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작품답게 당당한 규모를 지니고 있다. 아울러 구성 면에서도 가장 완숙한 모습을 보이며, 이전까지의 프랑스적인 색채에 더하여 오스트리아적인 색채가 한층 진하게 묻어난다. 나아가 전편에 걸쳐 나타나는, 일견 단순한 듯하면서도 젊음의 생기와 활력이 넘치는 맑고 우아한 양식은 그 이듬해 모차르트가 탄생시키게 되는 새로운 양식을 예견케 한다. 여기서 잠시 일련의 협주곡들에 대한 미국의 저명한 음악학자 로빈스 랜던의 말을 귀기울여보자.

“선율 위에 선율이 쌓여간다. 새로운 악장들이 잇따라 이어지면서도 서로 행복하고 평안하게 조화를 유지하는데, 그렇다고 어떤 엄격한 형식적 패턴을 따르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구상과 그 표현의 비할 데 없는 우아함, 관현악법의 온화함 - 비교적 이른 이 단계에도 성숙한 모차르트의 특징인 자연스러운 광채가 드러난다 - 순수한 선율이 주는 풍부한 기쁨 등이 듣는 사람을 즉시 사로잡고 만다.”


참신한 시도를 통일감과 세련미로 아우르다

[바이올린 협주곡 제5번 A장조]는 앞서 나온 네 곡에 비하면 세부보다는 전체의 통일감이 강조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동시에 구성적인 면에서 매우 새롭고 독특한 면모도 보여준다. 특히 첫 악장에서 관현악에 의한 제시부와 독주악기에 의한 제시부 사이에 독주악기에 의한 아다지오의 전주를 삽입한 부분은 매우 참신한 시도로 주목할 만하다. 또 같은 악장에서 독주악기에 의한 제시부가 시작될 때는 처음에 관현악이 연주했던 음형을 독주악기 주제의 대위 선율로 사용하는 색다른 수법도 등장한다. 또한 피날레 악장에서 이전까지 썼던 론도 형식 대신 미뉴에트를 사용한 것도 흥미로운 점이다.


                             이 작품은 3악장의 ‘터키 스타일’으로 인해 ‘터키풍’이란 별칭이 붙었다. <출처: Wikipedia>




제1악장 : Allegro aperto, A장조, 4/4박자, 협주풍 소나타 형식
알레그로 뒤에 붙어있는 ‘아페르토’는 ‘확실한’ 혹은 ‘당당한’이라는 뜻이다. 단아하고 솔직담백한 곡상을 지닌 이 악장의 성격에 썩 어울리는 악상지시어라고 하겠다. 먼저 관현악의 투티가 으뜸화음을 강하게 연주하면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가 미세하게 움직이면서 반주하는 가운데 제1바이올린이 여린 스타카토로 으뜸화음을 조심스럽게 펼쳐 가는데, 이 도입부의 나긋나긋한 흐름은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 설레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런데 그 직후 음악은 바로 주제부로 진입하지 않고 템포를 늦추어 솔로 바이올린이 부드러운 아리오소 선율을 연주하는 부분으로 들어간다. 이례적인 시도로 주목받는 이 매혹적인 부분이 지나고 나서야 솔로는 힘차게 도약하는 3화음으로 이루어진 제1주제를 연주하게 되며, 짤막한 투티를 거쳐 한결 여유로운 제2주제도 다루게 된다.

제2악장 : Adagio, E장조, 2/4박자
모차르트 특유의 동경 어린 기운이 스며있는 간결한 아다지오 악장이다. 나직한 어조와 아름다운 장식으로 주제선율을 노래하는 바이올린 솔로를 관현악이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도 같은 음형으로 느긋하게 받쳐준다.

제3악장 : Rondeau (Tempo di menuetto - Allegro), A장조, 3/4박자
이 악장에는 이 곡의 별명인 ‘터키풍’의 유래가 된 단조의 중간부가 삽입되어 있다. 여기서 A장조 3/4박자의 온화하고 우아한 미뉴에트는 잠시 중단되고, 갑자기 a단조 2/4박자, 알레그로 템포의 열정적인 ‘터키풍’ 악상이 펼쳐진다. 바이올린 솔로의 화려하고 분망한 움직임을 관현악이 스타카토를 가미한 ‘터키풍’ 또는 ‘집시풍’이라고 불리는 억양 강한 리듬으로 받쳐주는데, 이런 모습은 당시 유행했던 ‘터키 취향’이 반영된 것이라 하겠다. 참고로, 당대의 '터키풍 유행'은 글룩, 하이든, 그레트리의 오페라들에도 영향을 미쳤고, 모차르트에게서도 [피아노 소나타 제11번(K.331)]의 종악장인 ‘터키 행진곡’, 오페라 [후궁 탈출] 등과 같은 추가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이 이채로운 중간부를 제외하면 이 피날레 악장은 대체로 미뉴에트풍의 우아하고 기품 있는 흐름으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매혹적인 장면인 종결부는 수줍은 미소를 연상시키는 조용한 마무리로 장식되어 있다.


황장원 음악 칼럼니스트

음악에서 보다 많은 것을 듣고, 보고, 느끼기 위해서 머리와 가슴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체험과 상상력, 감동을 중시하는 클래식 음악 칼럼니스트. 현재 서울시향 프로그램노트 필자, 네이버캐스트 ‘음악의 선율’ 필진이며, 서울 예술의전당, 성남아트센터, 대구 수성아트피아, 무지크바움, 풍월당 등지에서 클래식 음악감상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쇤베르크, 정화된 밤

[Arnold Schoenberg, Verklärte NachtTransfigured Night Op. 4 ]


음악평론가 막스 그라프는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쇤베르크가 나에게 현악 6중주 악보를 가져왔더군. 사운드는 새로웠고 하모니 또한 범상치 않았지. 나는 내 판단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구스타브 말러에게 악보를 보여주었어... 말러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동요하기 시작했고 이내 아르놀트 로제에게 자신의 사무실(당시 빈 오페라 하우스)에서 음악가들과 함께 연주해달라고 요청했지. 그는 나와 쇤베르크를 사적인 연주회에 초대했고 우리는 모두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어. 말러는 로제에게 반드시 이 작품을 연주해야 한다고 말했고, 로제는 다음 실내악 연주회 때 연주하기로 했지. 시끄럽게 야유해대는 빈 청중들에게 위대한 불쾌감을 안겨주기 위해서 말이야.”


Arnold Schoenberg - Transfigured Night for String Sextet, Op. 4




아르놀트 로제는 말러의 매제이자 빈 필하모닉의 악장으로서 당시 현대음악의 수호자와도 같은 존재였다. 청중이 시끄럽게 하면 마치 박수를 받은 것처럼 연주를 멈춘 뒤 작품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곤 했던 음악적 자존심도 매우 높았다. 1902년 3월 18일 빈 무직페라인에서 로제 4중주단과 두 명의 현악 연주자가 이 작품을 초연했을 때 아니나 다를까 청중은 동요하기 시작했지만 역시나 끝까지 음악을 지켜냈다. 후일 쇤베르크는 초연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이 작품은 줄거리를 설명하지 않은 채 인간의 감정만을 담담히 그려낸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순수음악으로 평가되었다고 생각한다. 연주 중에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었다면 그것은 시를 잊어버리게 할 만한 요소가 작품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빈에서의 초연을 잊을 수 없다. 휘파람 소리가 들리고 소란스럽다 못해 주먹다짐까지 일어났었다. 그 덕분에 이 작품은 유명해질 수 있었다.”


1899년 9월 단 3주 동안에 작곡된 이 [정화된 밤]은 두 대의 바이올린과 두 대의 비올라, 두 대의 첼로를 위한 현악 6중주로서 실내악-교향시 장르를 개척한 과감한 시도이자 보기 드문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스메타나의 [현악 4중주]로부터의 영향도 엿보이는 이 작품은 반음계적인 후기 트리스탄 화성과 교향곡에 육박하는 텍스추어로 인해 격렬한 반응을 일으킨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초연 당시 청중은 시에 담겨 있는 드라마보다도 음악에 있어서의 현대적인 화성에 충격을 받았는데, 이는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9도의 자리바꿈 화음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쇤베르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언급한 바 있다. “9도의 자리바꿈 화음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연주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센세이셔널한 반응 덕분에 이 작품은 쇤베르크의 비관적인 기대를 저버리고 그의 출세작으로서 널리 연주되기 시작했다.



[정화된 밤]은 달 밝은 숲 속을 배경으로 두 연인이 주고 받는 대화를 음악으로 표현하였다.



[정화된 밤]은 그 전개 방식에 있어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전통적인 분석들이 적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느껴지는 주제 발전 방식과 바그너의 화성과 브람스의 형식을 통합, 이를 넘어서는 독창적인 음악어법을 구사했다는 모습이 그러하다. 그러나 쇤베르크의 방식은 R.슈트라우스의 후계자라고 말할 수 있는 에리히 코른골트(Erich Korngold, 1897~1957)나 그의 스승인 알렉산더 폰 제믈린스키(Alexander Zemlinsky, 1871~1942)보다 훨씬 혁신적이고 과감했다.

이 작품은 분명 바그너적인 스타일로 시작하지만 폭넓은 도약음정과 3화음에 의거하지 않은 선율법, 브람스 현악 4중주를 연상케 하는 엄격한 형식미와 9도의 자리바꿈 화음의 사용은 보수적인 코른골트나 제믈린스키와는 현격히 대비되는 현대적이고 도전적이며 진취적인 어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표제음악적인 성격과 실내악을 통합하는 동시에 실내악과 교향악의 경계를 모호하게 넘나드는 실험정신까지 배어있는 [정화된 밤]은 실내악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강력한 흡인력과 오케스트라적인 효과를 담고 있었기에 작곡가는 1917년에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버전을 완성했고 1941년에 이를 개정했다

쇤베르크는 독일 시인 리하르트 데멜(Richard Dehmel, 1863~1920)의 연작시집인 ‘여인과 세계’(Weib und Welt, 1896) 가운데 ‘두 사람’(Zwei Menschen)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정화된 밤]을 작곡했다. 두 사람이 달이 밝은 숲 속을 걷고 있다. 여인은 행복을 갈구한 결과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죄를 지었다고 고백한다. 남자는 여자의 죄의식을 씻어주며 사랑으로 아이를 받아들이겠다고 한다.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리하르트 데멜 1905년 Richard Dehmel, 1863~1920





두 사람

두 사람이 황량하고 스산한 숲을 거닐고 있다. 달이 그들을 따라오고 있고, 그들은 달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달은 높은 떡갈나무 위를 활공하고 하늘에는 빛을 가릴 만한 구름 한 점 없이 검고 뾰족한 나뭇가지들만이 걸려있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홀몸이 아니에요. 하지만 당신 아이는 아니랍니다. 나는 죄를 짓고 당신 곁에 있게 되었네요. 나는 잘못된 길을 선택했었기에 행복을 바라지는 않아요. 그러나 아이 엄마로서의 행복과 의무 때문에 내 삶의 의미를 갈망하고 있어요. 그러니 뻔뻔한 것이죠. 전율하는 내 몸을 얼굴도 모르는 사내에게 맡겼을 때, 나는 축복받았다는 생각까지 했거든요. 그러나 이젠 삶이 나에게 복수를 하나 봐요. 이렇게 당신을 만났잖아요. 아, 당신을요.

그녀는 비틀거리며 걷는다. 고개를 들어보니 달이 뒤따른다. 그녀의 어두운 얼굴에 빛이 새겨지기 시작한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 아이는 당신의 영혼에 짐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세상이 얼마나 밝게 빛나고 있는가를 보시오. 주위 모든 것이 빛나고 있지 않소. 당신은 나와 함께 차가운 바다 위를 떠돌고 있지만, 우리들 사이에는 따사로운 서광이 비치고 있소. 당신으로부터 나에게로, 나로부터 당신에게로 말이오. 그 열기로 인해 낯선 이의 아이는 정화되어 나의 아이로 태어날 것이오. 당신은 나에게 그 빛을 비추어주었고, 나까지 아이로 만들어주었다오.

그는 그녀의 허리를 격렬하게 안는다. 그들의 숨결은 입맞춤으로 이어진다. 두 사람은 저 숭고하고 찬란한 밤을 함께 걷는다.



음악은 풍부한 감성과 탐미적인 아름다움, 폴리포니적인 견고함과 두터운 텍스추어를 바탕으로 한 현악기들의 긴장감 높은 앙상블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은 시의 내용에 따라 크게 다섯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쉬지 않고 연주된다. 첫 부분(Sehr langsam)에 등장하는 D단조의 느린 서주부는 일종의 달빛 주제로서 반음계적 어법의 하강음형을 띄고 있는 만큼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의 서주부와 닮아있다. 더불어 전체 구조에 있어서도 리스트의 단악장 소나타는 역시 단악장으로 구성된 [정화된 밤]의 청사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20마디가 지나자마자 화성은 급격하게 바그너풍의 성격으로 변화하며 애매모호한 화음의 아르페지오가 등장, 트리스탄 전주곡의 시작부와 같은 느낌을 준다.









극렬한 긴장감을 수반한 아첼레란도에 이어 여성의 대사에 해당하는 두 번째 부분(Etwas bewegter)이 시작된다. 남자의 아이가 아니라는 대목이 비올라에 의해 연상되며 음악은 보다 죄의식 강한 자책감으로 빠져든다. 그러다가 당신을 만났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음악은 E장조로 바뀌며 열정적인 주제가 등장한다.

여자의 말이 끝난 뒤의 장면을 묘사하는 세 번째 부분(Schwer betont)은 음산하고 그로테스크한 스케르초다. 명확하진 않지만 남자가 여자의 고백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예견하는 듯한 느낌도 포함되어 있다. 여자의 힘없는 발걸음과 혼란한 심리를 반영하는 듯 화성은 여전히 애매모호하고 창백하다. 감미로우면서도 교향악적인 패시지가 펼쳐지며 남자에 해당하는 D장조의 네 번째 부분으로 이어진다.

여성의 대사 부분 다음으로 긴 네 번째 부분(Sehr breit und langsam)은 남자의 말에 등장하는 장면과 심리가 정확하게 묘사되며 신비롭고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울렁거리는 현악 패시지를 통해 차가운 바다의 반짝이는 물결을 묘사하고 그 위에 비추어지는 달빛과 사랑의 기운을 솔로 바이올린이 낭만적으로 표현한다. 두 사람의 마음은 점점 따뜻하게 달구어지고, 바르카롤적인 분위기는 트리스탄 2막의 사랑의 장면처럼 폭넓은 음색의 팔레트로 발전, 정화된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받아들인다는 대목에서는 고도로 설계된 반음계와 화려한 빛을 발산하는 F샤프 장조로 변조되어 분위기를 공감각적으로 바꾸어놓는다.

마지막 다섯 번째 부분(Sehr ruhig)에서는 D장조의 달빛 주제가 화사한 저역현의 반주를 통해 새롭게 정화된, 그리고 보다 열망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현악 앙상블의 섬세한 움직임을 통해 끝없는 피아니시시모의 피날레로 사라져버린다.

박제성 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써 온 음악 칼럼니스트 공연, 방송, 저널활동, 음반리뷰, 음악강좌 등 클래식 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서울문화재단 평가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쇤베르크, 정화된 밤 [Arnold Schoenberg, Verklärte NachtTransfigured Night Op. 4] (클래식 명곡 명연주)





멜델스존, 교향곡 제3번 ‘스코틀랜드’

[Symphony No. 3 in A minor op. 56 ‘Scottish’ ]


1829년에 처음으로 영국을 방문한 멘델스존은 이 점잖은 신사의 나라 영국을 그 어떤 나라보다 좋아했다. 런던 필하모닉을 지휘하며 그 자신의 [교향곡 1번]을 영국인들에게 선보인 그는 피아노 독주회와 자선음악회를 열며 영국 청중을 매료시켰다. 당시 멘델스존이 주도한 음악회에선 소프라노 마리아 말리브란과, 피아니스트 이그나츠 모셀레스, 플루티스트 루이스 드루에 등, 한 자리에 모으기도 힘든 스타 음악가들이 출연해 대성황을 이루었다.

몇 개월간 영국에서 음악활동을 하던 멘델스존은 7월 중순에 카를 클린게만과 함께 스코틀랜드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계획했다. 멘델스존 일행은 글래스고와 에딘버러 등을 여행하며 스코틀랜드의 삶과 문화를 체험했다. 비록 멘델스존은 스코틀랜드의 백파이프 소리와 민속음악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8월 7일에 핑갈의 동굴을 방문했을 때는 깊은 영감을 받아 [핑갈의 동굴] 서곡의 도입부 악상을 떠올리기도 했다. 또 메리 여왕이 살던 궁전을 방문해 강한 인상을 받은 멘델스존은 1829년 7월 30일자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Mendelssohn - Symphony No. 3 in A minor, Op. 56 (Scottish) Kurt Masur, Gewandhausorchestra


음악적 영감을 던져준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

스코틀랜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왕인 메리 여왕은 15세의 어린 나이에 프랑스 궁정으로 시집갔지만 병약한 국왕이 2년 만에 서거해 17개월간 프랑스 여왕직을 보유했던 인물이다. 이후 메리는 스코틀랜드로 돌아가 25년간 스코틀랜드 여왕으로 있었으나 나중에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에게 처형되며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다. 멘델스존이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의 궁전에서 회상해낸 사건은 질투가 심한 메리 여왕의 남편 헨리 스튜어트가 메리 여왕의 신하 리치오와 메리 여왕과의 사이를 의심해 리치오를 죽인 사건이었다. 이 사건의 흔적을 담고 있는 메리 여왕의 성은 멘델스존에게 강한 충격으로 다가와 스코틀랜드 교향곡의 실마리를 던져주었다


멘델스존이 [스코틀랜드 교향곡]을 완성하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시기의 멘델스존은 다른 여러 작품들을 마무리해야 했을 뿐 아니라 완벽을 추구하는 그의 성품이 작용하면서 [스코틀랜드 교향곡]의 작곡은 한없이 늦춰졌던 것이다. 그 사이 멘델스존은 이 작품을 그대로 둔 채 [이탈리아 교향곡]에 손을 대기도 했지만 [스코틀랜드 교향곡]의 악보는 한동안 내버려 두었다. 마침내 [스코틀랜드 교향곡] 전곡의 완성을 본 것은 1842년 1월의 일이었다. 결국 이 교향곡은 멘델스존의 성숙기 교향곡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완성된 셈이다.

멘델스존이 [스코틀랜드 교향곡]을 완성하기까지 13년이란 긴 시간이 걸린 것은 그의 완벽주의 성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이 작품을 특히 어렵게 생각했던 탓도 있다. 스코틀랜드의 이국적 풍경과 월터 스코트의 소설, 스코틀랜드의 민속음악 등이 멘델스존의 영감을 자극했다 할지라도 이 모든 요소들을 통일적인 음악 아이디어로 표현해내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멘델스존이 1831년에 남긴 메모를 보면 그 어려움을 익히 짐작할 수 있다. “이 교향곡은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멀리 달아난다. 스코틀랜드의 안개에 싸인 것 같은 분위기를 표현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오랜 기간 고민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스코틀랜드 교향곡]은 그 뛰어난 작품성으로 인해 음악평론가들의 찬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멘델스존 음악의 주된 특징인 선율의 아름다움과 고전적 균형감, 유연한 흐름이 돋보일 뿐 아니라 스코틀랜드의 안개에 싸인 분위기를 담은 여린 음량이 음악의 분위기를 주도 하고 있어 이 작품은 ‘피아니시모 교향곡’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안개 속 스코틀랜드 풍경과 같은 음악적 분위기

멘델스존의 [스코틀랜드 교향곡]은 모두 4개의 악장으로 되어있으나 베토벤 [교향곡 제9번]과 마찬가지로 2악장과 3악장의 순서가 바뀌어 2악장이 빠르고 3악장은 명상적이다. 전 악장은 각 악장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연주되어 통일성이 느껴진다. 각 악장 사이의 긴밀한 연속성과 민속적인 색채, 풍부한 오케스트라 음향은 이 교향곡의 진정한 매력이다. 그 때문에 이 교향곡엔 어린 시절의 멘델스존이 보여주었던 동화적이고 가벼운 음향보다는 신중하고 진지한 면이 더 강조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진지함이야 말로 이 작품의 개성이다.



                     멘델스존에게 음악적 영감을 던져준 에딘버러에 위치한 메리 여왕의 성. <출처: Oliver-Bonjoch at en.wikipedia>



[스코틀랜드 교향곡]에 사용된 주제 선율들은 전반적으로 아름답고 풍부하기 때문에 처음 들어도 친근감을 준다. 1악장 도입부의 멜로디는 신화적으로 숭고하며, 이어지는 빠른 음악은 밀도 높은 텍스추어를 보여주며 풍부한 음향을 뿜어낸다. 소박한 민요선율이 돋보이는 빠른 2악장에선 클라리넷의 재기발랄한 노래가 인상적이다. 멘델스존이 스코틀랜드 민속음악을 친근하고 맛깔스럽게 제시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작곡가 바그너도 크게 감탄한 바 있다. 2악장이 소박하고 친근한 반면, 명상적인 3악장은 브람스의 음악을 연상시킬 정도로 중후하다. 아마도 이 음악에서 멘델스존은 스코틀랜드의 흘러간 역사를 상기해냈는지도 모르겠다. 4악장에선 다시 활기찬 민속 춤곡 선율이 이어지며 듣는 이들을 한껏 고양시킨다. 리드미컬한 현악기의 주제는 생기발랄한 느낌을 전해주고 클라리넷과 오보에의 음색은 간혹 스코틀랜드의 백파이프 소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최은규 음악평론가,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및 동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수료하고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했다. 월간 <객석> 및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 전당, 부천필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멜델스존, 교향곡 제3번 ‘스코틀랜드’ [Symphony No. 3 in A minor op. 56 ‘Scottish’] (클래식 명곡 명연주)




1829년 20세의 멘델스존(독일)은 런던에서의 연주회를 끝내고 스코틀랜드를 여행했다. 7월말 수도 에든버러의 홀리루드 성 유적을 찾아간 그는, 263년의 옛날 메리 여왕의 총신 D. 리지오가 살해된 어두운 사건을 연상하고 있었다. 제1악장 첫머리의 악상은 그때의 스케치라고 한다.

그러나 그 후 바쁜 창작과 연주 활동 때문에, 이 곡이 완성되기까지는 아직 13년의 세월을 요했다. 1842년 6월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런던에서도 상연되었는데, 그 기회에 메리 여왕의 9대째 손녀가 되는 빅토리아 여왕에게 바쳤다. 그의 5개의 교향곡 중 가장 사랑받는 작품이다.

전악장은 끊음새 없이 연주된다. 악기 편성은 표준적인 2관 편성이지만 4관의 호른이 다소 두드러지고 있다.

제1악장

소나타 형식. Andante con moto 3/4의 회고적인 환상을 담은 서주가 느리게 흐른다. 오보에와 비올라가 연주하는 슬픈 선율은 이윽고 Allegro un poco agitato 6/8의 주부에 들어가며, 우미하고 애수를 담은 제1주제(악보 1)가 제1바이올린으로 제시된다.

주제는 목관으로 반복된 뒤 힘찬 경과부로 계승된다. 클라리넷이 가련한 제2주제(악보 2)를 제시, 밝은 경과구로 발전하여 제시부를 마친다.

전개부에서는 두 주제가 교묘하게 구사된 뒤, 형식대로 재현부에 들어간다. 격렬한 코다는 서서히 힘을 늘려 폭풍과 같은 정점을 쌓은 뒤 급히 힘을 빼고 정지한다. 서주의 악상이 재현해서 그대로 다음 악장으로 이어진다.

제2악장

Vivace non troppo F장조 2/4 단순한 소나타 형식. 자잘하게 새기는 현을 배경으로 스코틀랜드의 무곡풍 제1주제(악보 3)가 클라리넷으로 연주되고 활발하게 반복되어 간다.

이어 소박한 악상의 제2주제가 현으로 연주된 제1주제와 좋은 대비를 보여 주는데, 악장 전체의 기분은 제2주제가 지배한다.

천진난만하고 명랑한 분위기 속에 전개부, 재현부로 나아가 간결하게 끝난다. 내용적으로는 오히려 스케르초라고 하겠다.

제3악장

Adagio d단조 2/4 단순한 소나타 형식. 통상의 교향곡 형식과는 달리 스케르초풍의 제2악장을 받아 Adagio가 놓인다. 짧고 신비한 서주 뒤, 피치카토를 수반하고 바이올린이 가요풍의 제1주제(악보 4)를 노래한다.

이어 엄숙한 걸음을 연상케 하는 제2주제를 클라리넷이 연주하고 투티로 옮겨간다. 극히 짧은 전개부 뒤, 극적인 재현부에 들어가 회고적인 감정 속에 끝나고 그대로 끝악장에 이어진다.

제4악장

Allegro vivacissimo a단조 2/2 소나타 형식. 바이올린에 의한 제1주제(악보 5)가 힘있게 진행된다.

목관에 우미한 제2주제가 나타나 행진곡풍의 악상으로 계승된다. 전개부 · 재현부를 거쳐 장대한 코다에 들어가는데, 여기서는 먼저 목관군이 제2주제를 재현한 뒤 Allegro maestoso assai A장조 6/8으로 바뀌고, 스코틀랜드 민요를 연상케 하는 상쾌한 선율이 환상적으로 반복되어 현란한 분위기 속에 전곡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