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해학 : 하이든에서 쇼스타코비치까지 ②
지휘 한누 린투 Hannu Lintu, conductor
트럼펫 알렉상드르 바티 Alexandre Baty, trumpet
[프로그램]
하이든, 교향곡 제103번
바인베르크, 트럼펫 협주곡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1번
Haydn, Symphony No. 103 in E-flat major
Weinberg, Trumpet Concerto in B-flat major, Op. 94
Shostakovich, Symphony No. 1 in F minor, Op. 10
청춘과 노련함의 만남은 본 공연을 관통하는 주제다. 하이든은 세월이 흐르면서 오히려 더 젊고 창의적인 정신을 갖게 되었는데, 그의 교향곡 제103번은 그가 작곡한 최고의 교향곡에 속할 것이다. 한편 작곡에의 열정으로 가득했던 청년 쇼스타코비치가 작곡한 교향곡 제1번은 열정과 상상력, 위트가 넘치는 작품이다. 두 작품의 탐구를 바탕으로 바인베르크의 매력적인 음악세계를 탐험할 만하다. 그는 러시아계 폴란드 작곡가로, 나치와 소련 양쪽의 억압에 맞서며 교향곡, 영화음악, 서커스 음악 등 다양한 음악 활동을 펼쳤다. 환상적이고 기교적이며. 극도로 냉소적인 그의 트럼펫 협주곡은 협연자 알렉상드르 바티와 핀란드 방송교향악단 수석지휘자인 한누 린투의 손에서 멋지게 표현될 것이다.
‘교향곡 같은’ 협주곡
한누 린투ⓒ Kaapo Kamu
핀란드 방송교향악단을 2013년부터 이끌고 있는 한누 린투가 하이든의 교향곡 103번 ‘북 연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번이라는
두 날렵한 교향곡을 한 무대에 데려온다. 서울시향 교육 프로그램의 대명사 ‘바티 브라스 아카데미’를 이끌어온 알렉상드르 바티
트럼펫 수석은 20세기 폴란드 출신 소비에트 작곡가인 바인베르크의 트럼펫 협주곡을 협연한다.
글 유윤종(SPO 편집위원)
한누 린투는 2012년 2번, 2016년 5번 교향곡으로 서울시향과 함께 모국의 거장인 시벨리우스를 다루는 솜씨를 보여주었다.
지난해 5번 교향곡 연주는 ‘금관이 은은하면서도 폭이 넓고 투명한 앙상블이었다면, 목관은 관현악 사운드를 뚫고 또렷하게 전달되었다.
현악은 직물과 같이 짜이며 광활한 대지와 같이 펼쳐졌다’(송주호)라는 호평을 받았다. 그가 2015년 시벨리우스 탄생 150주년을 맞아 자신의 ‘악기’인 핀란드 방송교향악단과 함께 아트하우스 레이블로 내놓은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집은 이 기념연도에 등장한 최고의 화제작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그가 들고 오는 악보는 시벨리우스가 아니라 교향곡 역사상의 규모가 크지 않은 두 묘작(妙作)이다.
‘북 연타’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하이든의 교향곡 103번과, 15곡이나 되는 육중한 교향곡 목록을 20세기 음악사 위에 펼쳐놓은 소비에트 작곡계의 대명사
쇼스타코비치의 첫 교향곡이다.
영화를 피아노로 반주하면서 즉흥적 전개의 역량을 키웠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기지와 유머, 짜릿한 풍자,
속도감은 이 바탕에서 싹튼 것일 수 있다.
그의 첫 교향곡이자 불과 만 18세 때의 작품인 교향곡 1번 F단조 역시 기지와 풍자로 가득한 작품이다.
더불어 ‘옛 시대의 잔해 위에 서서 새로운 시대의 지평을 조감하는’ 신선함 역시 한껏 맛볼 수 있다.
알렉상드르 바티 수석은 서울시향의 뚜렷한 대표 얼굴 중 하나이지만 시민음악회가 아닌 정기연주에서 그가 협연자로 나선 일은 반갑고도 새삼스럽다.
이번에 연주할 곡은 작곡가의 스승 쇼스타코비치가 ‘트럼펫과 관현악을 위한 교향곡’이라고 평할 정도로 무게감이 큰 바인베르크의 트럼펫 협주곡이다.
바인베르크는 바르샤바 음악원에서 수학했으나 나치의 폴란드 침공 이후 소련에서 새로운 삶을 찾았고, 소련 당국에 의해서는
유대 부르주아 민족주의’를 소환했다는 규탄을 당하기도 했다.
말러처럼 ‘폴란드에서는 이주자, 소련에서는 폴란드인, 세계에서는 유대인’으로 방외인(方外人)의 삶을 살았던 그의 삶이 이 작품에 녹아있다.
3악장 시작 부분의 팡파르에서는 멘델스존과 말러, 두 유대인 작곡가의 호흡을 생생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휘 한누 린투 Hannu Lintu, conductor
2013 8월부터 핀란드 방송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활동해온 한누 린투는 탐페레 필하모닉의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더블린 RTE 내셔널 심포니의 수석객원 지휘자, 헬싱보리 심포니와 투르쿠 필하모닉의 예술감독을 지냈다.
그의 2016/17 시즌 주요 활동으로는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 오케스트라, 스투트가르트 슈타츠 오케스트라, 빈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 토론토 심포니 오케스트라, 발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 디트로이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무대가 있으며, 최근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 굴벤키안 오케스트라, 로잔 체임버 오케스트라, 밀라노 주세페 베르디 심포니 오케스트라, BBC 스코티시 심포니 오케스트라, 아이슬랜드 심포니오케스트라, 서울시향과 협연 계약을 맺은 바 있다. 그는 2015년 도쿄에서 핀란드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뉴 재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곡 사이클을 마친 바 있으며, 2016년 1월에는 오스트리아 투어를 통해 바이올리니스트 레일라 요세포비치, 핀란드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펼쳤다.
린투는 2017년 7월 사본린나 오페라 페스티벌 복귀 무대를 통해 핀란드 작곡가 아울리스 살리넨의 <쿨레르보>를 지휘하고 2017년 5월에는 이 시대 가장 뛰어난 무용수 테로 사리넨, 핀란드 국립 오페라·발레단과의 특별 프로젝트로 시벨리우스의 <쿨레르보>를 지휘했다. 그는 2016년 봄 핀란드 국립 오페라단과 <파르지팔>, <카르멘>, <리어왕>,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협연했다. 또한 그는 핀란드 탐페레 오페라, 에스토니아 국립 오페라와 협연하기도 했다.
그는 온딘, 낙소스, 아비, 하이페리언을 통해 많은 음반을 남겼다. 2015년 여름에 그는 아벡스에서 후미야키 미우라,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멘델스존과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녹음했으며, 최근 녹음 한 작품은 온딘에서 핀란드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작업한 음반들로 이에는 벤자민 슈미드와 함께 한 리게티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포함해 안젤라 휴이트, 발레리 하르트만-클라베리에와 함께한 메시앙의 투랑갈릴라 교향곡이 있다. 한누 린투는 탐페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에네스쿠의 교향곡 2번, 어거스틴 하델리히, 로얄 리버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토마스 아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통해 2011 그래미 어워드의 베스트 오페라 CD 부문과 그라모폰 어워드에 지명되는 등 그의 음반을 통해 여러 차례 수상한 바 있다.
시벨리우스 아카데미에서 첼로와 피아노를 배우고 요르마 파눌라를 사사한 한누 린투는 이탈리아 시에나의 아카데미아 키기아나에서 열린 정명훈의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한 바 있으며, 1994년 베르겐에서 열린 노르딕 지휘 콩쿠르 1위로 입상하였다.
트럼펫 알렉상드르 바티 Alexandre Baty, trumpet
현재 서울시향과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트럼펫 수석주자로 활약하고 있는 알렉상드르 바티는 1983년 프랑스 방데 지방에서 태어나 7세에 트럼펫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뤼에유 말메종 음악 아카데미에서 에릭 오비에를 사사한 바티는 2005년부터 프랑스 파리의 국립 고등음악원에서 클레망 가렉을 사사했다.
2009년 부다페스트에서 개최된 요제프 하이든 국제 콩쿠르와 2010년 프라하 봄 국제 콩쿠르에서 1위, 2011년 뮌헨 ARD 국제 콩쿠르에서 2위를 수상함으로써 세계적인 트럼펫 연주자로서의 자리매김을 다시 하게 되었다.
2007년에 루아르 국립교향악단에서 오케스트라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2008년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2009년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 2010년에는 서울시향에서 트럼펫 수석에 임명되었다. 2011/12년에는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수석으로 활동했다. 교향악단에서 활동하는 동안 그는 정명훈, 마리스 얀손스, 발레리 게르기예프, 구스타보 두다멜, 쿠르트 마주어, 리카르도 무티, 에사 페카 살로넨, 피에르 불레즈, 마렉 야츠코프스키 등 세계 정상급 지휘자들과 함께 했다. 2015년에는 지휘자 안드리스 넬슨과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순회연주에서 말러 교향곡 5번의 트럼펫 독주자로서 참여한 바 있다.
독주자 및 실내악 연주자로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그에게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가르치는 일’에 대한 애정이다. 그는 2013년에 서울시향과 함께 ‘바티 브라스 아카데미’를 시작했다.
한국의 어린 트럼펫 학도로 구성되는 이 아카데미는 한국 전체의 관악 수준을 높이기 위해 설립되었으며, 전문 연주자가 되기를 꿈꾸는 27세 이하의 젊은이들에게 문호가 열려있다.
음악의 해학: 하이든에서 쇼스타코비치까지
여유, 풍자, 청춘의 익살
핀란드 방송교향악단 수석지휘자 한누 린투의 손에서 ‘청춘과 노련함의 만남’이라는 이날 공연의 주제가
멋지게 빛날 것으로 기대된다. 노년의 하이든이 더욱 젊어진 정신으로 세상에 내놓은 교향곡 103번,
그리고 청년 쇼스타코비치의 출세작 교향곡 1번은 열정과 상상력, 위트가 넘치는 작품들이다.
서울시향의 트럼펫 수석 알렉상드르 바티가 바인베르크의 매력적인 트럼펫 협주곡을 협연한다.
글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1732~1809)
교향곡 제103번 e♭장조, ‘큰북 연타’ (1795)
<연주시간: 27분>
요제프 하이든은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가 1757년에서 1795년 사이에 남긴 100여 편의 교향곡은 바로크식 콘체르탄테 스타일에서부터 진정한 ‘고전주의’ 스타일까지 폭넓고 다채로운 양식을 아우르고 있어서 18세기 중엽 이후에 이루어진 교향곡의 발전상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다. 특히 그가 공연기획자 요한 페터 잘로몬의 초청에 응하여 두 차례에 걸쳐 영국 런던을 방문했던 노년기에 발표한 12편의 ‘런던 교향곡’들은 고전 교향곡의 가장 원숙한 양식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베토벤의 위대한 교향곡들이 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 수작들이다.
교향곡 103번은 하이든이 런던에서 발표한 열두 편의 교향곡 중 열한 번째 작품이다.
이 교향곡에 ‘큰북 연타(The Drumroll)’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곡의 첫머리를 팀파니 솔로의 롤(roll, 연속된 트릴이나 트레몰로처럼 좌우의 채를 빠르게 교대하며 연주하는 주법)이 장식하기 때문이다. 초연은 1795년 킹스 씨어터(King’s Theatre)에서 열린 ‘오페라 콘서트(Opera Concerts)’에서 약 60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이루어져 대성공을 거두었다. 작품은 소나타 형식과 미뉴에트 악장을 포함한 4악장 구성의 전형적인 고전 교향곡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제1악장 아다지오의 서주와 소나타 형식의 주부로 이루어진 첫 악장은 구성적인 면에서 상당히 흥미로운데, 하이든의 교향곡에서는 드물게 서주의 동기가 주부의 발전부에서 나타나는가 하면, 서주부 자체가 종결부 앞에서 재현되기 때문이다. 먼저 한 마디에 걸친 팀파니의 ‘드럼롤’을 포함하여 39마디의 서주가 차분하게 흐른 다음, 주부로 넘어가면 차례로 제시되는 두 개의 경쾌한 주제를 바탕으로 활기차고도 재기 어린 음률이 펼쳐진다.
제2악장 서로 연관된 두 개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 형식을 취한 완서악장으로, 하이든 특유의 유머러스한 표정이 두드러진다. 관현악기들의 다채로운 용법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중간부에 이르면 독주 바이올린의 장식적인 솔로가 부각되는 변주도 나타난다.
제3악장 미뉴에트 악장으로 중간부에서는 랜틀러(landler, 오스트리아 민속무곡)풍의 음악이 나타나며, 후반부에서는 미뉴에트 주제가 대위법적으로 전개된다.
제4악장 론도 소나타 형식을 취한 피날레 악장으로, 호른이 은근한 울림을 꺼내놓는 도입부로 출발한다. 이어서 바이올린의 경묘한 움직임이 돋보이는 제1주제가 나타나고, 얼마 후 이것을 발전시킨 제2주제가 나타나 절묘한 흐름을 이어간다. 음악적 소재를 섬세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다루어나가는 하이든의 솜씨가 돋보이는 유쾌하고도 열정적인 악장이다.
Haydn Symphony 103 Pierre Boulez Chicago SO 03 12 2006
Haydn Symphony No 103 E flat major Drumroll Marc Minkowski Les Musiciens du Luvre
미에치스와프 바인베르크 (1919~1996)
트럼펫 협주곡 b♭장조, op. 94 (1967)
<연주시간: 24분>
미에치스와프 바인베르크는 폴란드 바르샤바 출신이지만 나치를 피해 소련으로 이주한 작곡가이다. 그는 쇼스타코비치에게 인정받은 후 모스크바에 정착하여 26편의 교향곡, 17편의 현악 사중주, 7편의 오페라 등을 발표하며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쳤는데, 한창 때는 상당한 명성을 쌓아 올렸지만 만년에는 보다 급진적인 후배들에게 밀려 거의 잊히다시피 했다. 하지만 그의 사후에 재조명 작업이 활발하게 일어나 주요 작품들의 연주 및 리코딩 회수가 늘어났고, 지금은 러시아 교향악 전통의 명맥을 실질적으로 이어 나간 계승자로 평가받고 있다.
바인베르크의 작품세계에서 협주곡은 수효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간과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중 가장 견실하고 다채로운 수작이 바로 ‘트럼펫 협주곡’이다.
이 곡은 작곡 당시 소련에서 각광받았던 모더니즘의 조류가 반영된 듯한 점묘적 텍스춰부터 이른바 ‘사회주의 리얼리즘’ 이전의 경직된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냉소적이고 기괴한 요소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면면을 아우르고 있는데, 쇼스타코비치는 이 작품을 ‘트럼펫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곡’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제1악장 에튀드(연습곡) 먼저 트럼펫이 글리산도풍의 스케일 연주를 꺼내놓으며 출발하는데, 오케스트라에서도 나타나는 이 스케일 연주는 무심한 듯한 표정으로 집요하게 반복되기에 익살맞게도, 냉소적으로도 다가온다. 이후 트럼펫 솔로가 주도하는 쾌활한 흐름이 펼쳐지는데, 그 움직임은 마치 서커스 같기도, 술 취한 것 같기도 하다. 중간부로 접어들면 보다 내밀한 움직임이 나타나다가 열띤 춤곡이 펼쳐지고, 이후에는 첫 부분의 흐름이 심화되다가 단호하게
마무리된다.
제2악장 에피소드 첫 악장과는 대조적으로 진지한 표정이 두드러지는 완서악장이다. 먼저 현악에서 강렬한 대위법적 흐름이 나타나고, 이어서 탐미적인 플루트 솔로의 선율을 트럼펫이 이어받는데, 그 악상의 정서적인 이미지와 오케스트라의 오묘한 뉘앙스 간의 대비가 절묘하다. 중간부에 이르면 전장의 암운이 드리우는 듯한 분위기가 떠오르고, 플루트와 트럼펫이 환상적인 어우러짐을 연출하는 장면 이후 한 동안 불길하고 긴장된 분위기가 이어지다가 조용히 마무리된다.
제3악장 팡파르 이 피날레 악장은 일종의 패러디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무엇보다 유명한 멘델스존의 ‘결혼 행진곡’ 선율이 변형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비제의 ‘카르멘’에 등장하는 팡파르도 인용되고, 림스키코르사코프와 스트라빈스키의 메아리도 들려온다. 중간에 놓인 카덴차는 우드블록과 사이드드럼을 수반하여 독특한 장면을 연출하고, 이후에는 목관 솔로를 비롯한 오케스트라의 악기들과 대화하는 듯한 모습으로 어우러진다. 마지막에는 사색에 잠긴
듯한 표정을 내비치다가 타악기의 화음과 함께 익살스럽게 마친다.
M. Wainberg : Trumpet Concerto op. 94 (Giuliano Sommerhalder)
Alexandre Baty 연주 듣기....
Haydn Trumpet Concerto - Alexandre Baty
2014.12.21 알렉상드르 바티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 협연 영상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1906~1975)
교향곡 제1번 f단조, op. 10 (1925)
<연주시간: 28분>
이 작품은 쇼스타코비치의 첫 번째 교향곡이면서, 이제 막 음악원을 졸업한 약관의 작곡가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준 출세작이었다. 그가 레닌그라드 음악원에 졸업작품으로 제출한 이 교향곡은 일단 1926년 5월 12일 레닌그라드에서 니콜라이 말코가 지휘한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국외에서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게 되는데, 당시 이 작품에 관심을 보여 직접 지휘했던 이들 중에는 브루노 발터,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오토 클렘페러,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같은 거장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곡을 통해서 쇼스타코비치는 ‘현대판 모차르트’로 주목받게 되었으며, 장차 ‘20세기 최고의 교향곡 작곡가’로 대성할 초석을 확실히 다졌던 것이다.
이 교향곡에는 청년 시절 쇼스타코비치의 천재적인 면모가 골고루 나타나 있다. 즉, 전통적인 형식과 구성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가운데, 신선하고 강렬한 악상에 빼어난 감수성이 담겨있고 오케스트레이션(관현악 기법) 솜씨는 탁월하다. 불과 19세의 청년이 이런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타고난 재능 외에도 음악원에서의 학습이 크게 작용했을 텐데, 특히 그를 지도했던 두 스승의 영향이 컸다고 하겠다.
먼저 작곡 스승이었던 막시밀리안 스타인베르크 교수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제자이자 사위로서 젊은 시절에는 학우였던 스트라빈스키를 능가한다는 평가까지 받았던 인물이다. 스타인베르크는 제자를 ‘위대한 러시아 작곡 전통’으로 인도하기 위해 애썼고, 쇼스타코비치는 스승에게 자신의 ‘작품 1번(Op. 1)’인 ‘관현악을 위한 스케르초’를 헌정했다.
하지만 그에게 더욱 큰 애정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인물은 음악원장이었던 알렉산더 글라주노프였다. 글라주노프는 어린 쇼스타코비치에게 흡사 아버지와도 같은 관심을 쏟으며 지속적으로 지도했는데, 특히 작곡에 있어서 숙련된 기량을 강조하는 그의 자세는 애제자에게 고스란히 이식되었다.
또 ‘교향곡 제1번’의 초연을 주선한 것도 글라주노프였는데, 그 공연장은 바로 44년 전 글라주노프 자신의 첫 교향곡이 초연된 장소이기도 했다.
글라주노프 역시 그 작품을 통해서 러시아 음악계의 기린아로 급부상했던 바, 두 사람의 인연에 관해 일종의 ‘평행이론’을 제기하는 학자도 있다.
한편으로 이 교향곡에는 ‘20세기 초반의 소련’에서 살았던 한 청년이 가졌을 법한 ‘시대정신의 투영’이라고 할 만한 요소나 분위기도 엿보이는데, 이와 관련 쇼스타코비치는 훗날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이렇게 회상한 바 있다. “우리 가정은 제1차 세계대전, 2월 혁명, 10월 혁명과 연이어 터지는 사회적 사건들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이 연대에 썼던 내 작품에서 이미 무언가 실생활을 담아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드러나는 것은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이 때 쇼스타코비치가 거론한 것은 다른 작품들이었지만, 그의 유소년기를 결산하는 동시에 청년기의 지향점을 드러낸 ‘교향곡 제1번’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교향곡 제1번’은 작곡 당시 쇼스타코비치의 나이를 떠올리면 놀라울 정도로 성숙하면서도 개성이 충분히 드러난 작품이다. 무엇보다 쾌활하고도 짓궂은 장난기, 예리하고 신랄한 풍자적 어조, 특유의 내향적 서정성 등 그의 성숙기 작품들에서 더욱 심화되어 나타날 개성적 어법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런가 하면 나중에 미국에서 이 곡을 접한 그의 이모는 이 곡에 쇼스타코비치가 어린 시절에 피아노로 연주하곤 했던 악상들의 단편이 담겨 있다고 증언했는데, 그 악상들은 라퐁텐이 각색한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나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와 같은 동화 속 이미지와 연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제1악장 알레그레토의 도입부를 가진 소나타 형식 악장으로, 약음기를 끼운 트럼펫에 바순이 가세하는 근대적인 악상으로 출발한다. 주부로 진입하면 클라리넷 독주로 행진곡 풍의 제1주제가 나타나는데, 그 유희적인 모습은 쇼스타코비치가 영화관에서 피아니스트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에 즉흥적으로 연주했을 법한 보드빌이나 극장음악을 연상시킨다. 이 첫 주제가 다양한 기법으로 전개된 후, 왈츠풍의 제2주제가 등장하는데 이 서정적인 선율은 플루트 솔로에서 첼
로, 클라리넷, 오보에, 호른, 바순 등으로 이어지며 다채로운 이미지를 빚어낸다. 발전부 이후에서는 짓궂은 유머, 그로테스크한 열정, 오묘한 시정 등이 골고루 나타나는데, 그 과정에서 스트라빈스키와 프로코피예프의 영향도 드러난다.
제2악장 경쾌한 질주에 냉소적 뉘앙스가 실린 ‘신세대의 주제’와 온화한 흐름에 풍부한 감정이 담긴 ‘구세대의 주제’가 대비를 이루는 스케르초 악장으로서, 종종 부각되는 피아노의 활약이 인상적이다.
제3악장 오보에에서 첼로로 이어지는 우울한 선율로 시작되는 이 느린 악장은 차이콥스키를 연상시키는 절절한 서정성을 담고 있다. 아울러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연상시키는 선율에서 파생된 ‘숙명적 동기’가 트럼펫, 튜바 등으로 반복해서 부각되며 의미심장한 장면을 연출한다.
제4악장 폭넓은 표현과 다양한 흐름을 아우르는 이 피날레 악장은 저음부의 강렬한 3연음에 이어 목관의 구슬픈 선율이 부각되는 렌토의 도입부로 시작된다. 주부에서는 몇 차례 템포의 완급을 거치면서 격렬한 공격성을 띤 악상과 환상적인 서정성을 지닌 악상이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바이올린의 솔로, 플루트의 트릴, 글로켄슈필의 상쾌한 울림, 피아노의 트릴, 호른의 러시아적 선율 등 실로 다채로운 기법이 동원되는 가운데, 투티에 의한 열광적 클라이맥스 직후에는 팀파니 솔로의 인상적인 연주가 부각되는데 이것은 앞선 악장에서 부각됐던 ‘숙명적 동기’의 변형이다.
Symphony No. 1 in F minor (Opus 10) by Dmitri Shostakovich
음악 속의 다른 작품 인용... 타인의 선율로부터
‘숨은 기호’를 입히다
분명 가요가 나오는 라디오 채널에서 비발디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귀에 익은 클래식 선율에 귀가 번쩍 뜨여
잘 들어보니 비발디의 선율에 이어 곧바로 가수 이현우의 노래가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헤어진 다음날’이란 제목의 이 노래.
겨울날 방 안에서 따스한 불을 쬐는 모습을 담았다는 비발디 '사계'의 겨울 2악장과 은근히 잘 어울린다.
시간이 흐르면 실연의 아픔도 사라질 거라는 메시지일까? 감미로운 바이올린 선율에 곁들여진 현악 오케스트라의 리듬은
실연으로 상처 입은 마음과는 상관없이 단조롭게 흐르는 시간의 맥박처럼 들려온다.
글 최은규(음악 칼럼니스트)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번
19세 청년 작곡가의 과감한 바그너 풍자
구소련의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그의 첫 교향곡에서부터 대작곡가 바그너의 작품을 인용했다.
그것도 대가의 음악을 풍자하려는 의도로 말이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번 3악장에 노골적으로 인용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동경’의 동기, 그리고 4악장에 암시된 ‘니벨룽겐의 반지’ 중 ‘운명’의 동기는 마치 이 교향곡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처럼 들린다. 3악장에서 첼리스트가 바그너의 ‘동경’의 동기를 연주할 때의 그 낭만적인 분위기, 4악장에서 ‘운명’의 동기를 암시하는 금관악기의 불길한 사운드 덕분에 이 곡은 전형적인 후기 낭만주의 음악 같기도 하다. 그러나 3악장에서 트럼펫의 팡파르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순간 작곡가의 진정한 의도는 ‘바그너 숭배’가 아닌 ‘바그너 비
판’이란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4악장의 ‘운명’의 동기가 이 악장 후반의 팀파니 팡파르에 의해 준엄한 심판을 받는 순간, 마치 바그너의 시대는 다 지나갔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들릴 것이다. 19세 작곡가의 졸업 작품 치고는 참으로 과감하지 않은가!
쇼스타코비치는 1926년 5월에 상 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졸업 작품으로 발표한 교향곡 1번에서 기존의 음악을 몽땅 뒤집어엎을 기세로 자신만만한 풍자를 감행했다. 이 교향곡은 장난기 가득한 트럼펫과 클라리넷 솔로로 가득하며 풍자와 해학이 넘칠 뿐 아니라 바그너를 비롯한 기존의 음악을 뛰어넘는
새로운 음악을 선보이겠다는 젊은 작곡가의 패기로 가득하다.
결국 쇼스타코비치의 이 과감한 시도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어, 초연 당시 지휘를 맡은 니콜라이 말코는 “교향곡 역사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넘긴 느낌이 든다.”는 말로 교향곡 1번을 높이 평가했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11번‘피의 일요일’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혁명가쇼스타코비치가 다른 작곡가의 선율을 넣은 곡은 단지 교향곡 1번뿐만이 아니다. 사실 쇼스타코비치는 ‘인용 기법’의 달인이었다.
‘제1차 러시아혁명’으로 불리는 1905년의 ‘피의 일요일’ 사건을 주제로 한 그의 교향곡 11번의 악보는 갖가지 혁명가들로 도배가 되어있다시피 하다.
이 교향곡에 인용된 혁명가와 노동가는 무려 8곡! 이처럼 많은 노래가 인용된 교향곡도 드물다.
쇼스타코비치는 이렇게까지 많은 노래들을 자신의 교향곡속에 인용해야 했을까? 그러나 이 교향곡의 내용과 흐름을 잘 살펴보면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혁명가의 선율 덕분에 ‘피의 일요일’의 사건과 의미가 더욱 확실하게 전달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1905년 1월 9일, 안개가 자욱했던 일요일 오후에 페테르부르크의 노동자들은 황제가 머무르던 ‘동궁’으로 향했다. 차르였던 니콜라이 2세에게 그들의 어려운 사정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당시 러시아 노동자들은 전 세계에 몰아닥친 생산과잉 현상으로 일자리를 잃고 살아갈 길이 막막해지자 차르에게 자신들의 사정을 알리고자 평화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러시아 수비대장이 이끄는 2만의 병력은 시위하는 시민들을 향해 발포했고 무려 1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을 음악 속에 생생하게 담아내기 위해 쇼스타코비치는 그의 교향곡 11번에 여러 혁명가들을 인용했다. 뿐만 아니라 특수한 모티브들도 사용했는데, 예를 들어 제1악장에서 현악기가 연주하는 ‘광장’의 모티브가 그것이다. 이 모티브는 대학살이 일어날 일요일 아침, 앞으로 닥쳐올 비극적인 사건을 예견하듯 썰렁한 동궁 앞 광장의 모습을 음악으로 그려낸다.
마침내 노동자 들의 평화시위가 시작되는 제2악 장에서 혁명가 ‘우리의 대부이신 황제여’의 선율이 들려온다. 실제로 1905년의 시위에 참여한 20여만 명의 노동자와 그의 가족들은 ‘신이여! 차르를 보살피소서!’라는 노래를 불렀고 길가에 늘어서서 구경을 하던 사람들은 차르의 초상화를 보고는 성호를 그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사건을 기억하는 러시아인이라면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속에 인용된 “우리의 대부이신 황제여”의 선율을 들으면서 1905년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떠올렸으리라.
수많은 작곡가들이 인용한 중세 성가 ‘심판의 날’아마도 수많은 클래식 작곡가들에 의해 가장 많이 인용된 선율은 ‘심판의 날(Dies Irae)’ 선율일 것이다. ‘심판의 날’은 중세 그레고리오 성가 중에서도 특수한 미사곡, 즉 죽은 자를 위한 ‘레퀴엠’ 미사곡 중 부속가에 해당한다. 가톨릭 교회의 전통에 익 숙한 서양인이라면 ‘심판의 날’ 선율을 들으며 “진노의 날과 심판의 날이 임하면 다윗과 시빌의 예언에 따라 하늘과 땅이 모두 재가 되리라!”는 가사 내용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프랑스의 작곡가 베를리오즈는 바로 그 점을 활용해 그의 대표작인 ‘환상 교향곡’ 5악장에 죽음과 심판을 나타내는 의미로 ‘심판의 날’ 선율을 인용했다. 사랑하는 여인과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자 애증으로 괴로워하던 주인공이 환각상태에서 연인을 죽인 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 사후세계에서 연인의 기괴한 모습을 발견한다는 이 교향곡의 표제는 ‘심판의 날’ 선율과 매우 잘 어울린다.
이 교향곡의 마지막 5악장에서 주인공은 온갖 마녀와 유령들이 벌이는 광란의 파티를 목격하는데, 그 때 어두운 음색을 지닌 바순과 튜바가 ‘심판의 날’을 연주하며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곡가 리스트 역시 그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죽음의 무도’ 도입부에 ‘심판의 날’을 인용했고, 라흐마니노프는 그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에서 ‘심판의 날’ 선율로 죽음을 암시했으며, 말러 역시 그의 교향곡 제2번 ‘부활’의 5악장에서 ‘심판의 날’의 첫 네 음을 인용해 ‘죽음’과 ‘심판’을 암시했다.
이처럼 클래식 명곡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작품에 숨어있는 선율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오는 8월 30일과 31일 서울시향의 ‘음악의 해학: 하이든에서 쇼스타코비치까지’ 공연을 관람할 예정이라면, 그 날 연주될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1번에 3악장에 인용된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 도입부의 ‘동경’의 동기만큼은 미리 알아두면 좋을 것이다. 무한한 동경을 담은 첼로의 선율에 이어 날카로운 트럼펫 팡파르가 이를 부정하는 순간, 우리는 바그너의 시대가 가고 쇼스타코비치의 시대가 왔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바인베르크의 트럼펫 협주곡 3악장이 숨겨둔 멘델스존 ‘축혼 행진곡’을 포함해 수많은 앞 세대 작곡가들의 인용을 찾아보는 것 또한 이날 공연에 또 다른 재미를 던져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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