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징 스타 II: 문지영과 마에스트로 벤자고 ①
라이징 스타 Ⅱ: 문지영과 마에스트로 벤자고
영웅들의 젊은 날을 기억하라
베른 교향악단 수석지휘자인 마리오 벤자고가 오페라적 열정으로 ‘시칠리아의 저녁기도’ 서곡을 지휘하며
이 공연의 막을 올린다. 뒤셀도르프 교향악단과 함께 슈만 교향곡 3번을 녹음한 바 있는 그가 서울시향과 어떤 무대를
보여줄지 궁금해진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중 가장 밝은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
문지영의 연주로 만나본다.
글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Mario Venzago, conductor
지휘 마리오 벤자고
마리오 벤자고는 2010년부터 스위스 베른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 겸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이며 2007년부터는 핀란드 타피올라 신포니에타의 상임예술가를 겸하고 있다.
그는 예전 빈터투어 무지크콜로기움 오케스트라, 도이치 카머필하모니 프랑크푸르트 (현 도이치 카머필하모니 브레멘), 그라츠 오페라, 바젤 심포니 오케스트라, 바스크 내셔널 오케스트라, 예테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 인디애나폴리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의 수석지휘자 또는 음악감독으로 활동한 바 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는 로열 노던 신포니아의 수석지휘자를, 2000년부터 2003년까지는 핀커스 주커만과 데이비드 진먼의 뒤를 이어 볼티모어 여름 음악제의 예술감독을 지냈다.
그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라 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핀란드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덴마크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 네덜란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타피올라 신포니에타, 로잔 체임버 오케스트라, 서울시립교향악단 등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교향악단들을 정기적으로 지휘하고 있다.
그가 지휘한 음반들은 ‘그랑프리 드 디스크’, ‘황금 디아파종’, ‘에디슨 어워드’ 등 국제적인 상을 수상했다. 2015년 봄에는 CPO 음반사와 브루크너 교향곡 전집을 완성했다.
Ji-Yeong Mun, piano
피아노 문지영
피아니스트 문지영은 2014년 제네바 국제콩쿠르에서 심사위원 전원일치로 1등을 차지함으로서 국제무대에 데뷔했으며 2015년에는 제 60회 부조니 국제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 1등을 수상하였다. 심사위원장이었던 외르크 데무스는 그에 대해 ‘이 시대에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음악성의 자연스러움을 발견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그는 1995년 여수에서 태어나 여섯 살에 피아노를 시작했고 2012년에는 랑랑, 김선욱 등을 배출한 독일 에틀링겐 국제 청소년 피아노 콩쿠르에서 ‘16살의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풍부한 음악적 상상력을 지녔다’ 라는 호평을 받으며 우승했다.
2009년 폴란드 루빈슈타인 기념 콩쿠르, 2014년에는 일본 타카마츠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현재 일본, 독일, 프랑스, 폴란드, 이탈리아, 체코, 아르헨티나, 스위스, 멕시코, 페루, 영국 등 세계 각지에서 독주회와 협연무대를 이어가고 있다.
2010년부터 피아니스트 김대진 교수를 사사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을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작품 설명
라이징 스타 II: 문지영과 마에스트로 벤자고 ①
YOUNG WINNERS II YOUNG WINNERS: JIYEONG MUN MEETS MAESTRO VENZAGO ①
9월 15일 (금)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September 15 – 8PM, Friday / Lotte Concert Hall
지휘 마리오 벤자고 Mario Venzago, conductor
피아노 문지영 Ji-Yeong Mun, piano
베르디, ‘시칠리아의 저녁기도’ 서곡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2번
슈만, 교향곡 제3번
Verdi, ‘I Vespri Siciliani’ Overture
Beethoven, Piano Concerto No. 2 in B flat major, Op. 19
Schumann, Symphony No. 3 in E-flat major, Op. 97
라인 지방을 여행하고 돌아온 작곡가 슈만은 다음 교향곡을 한층 진지한 곡으로 작곡하고 싶었지만 결국 마음이 이끄는 대로 ‘라인’이라는 표제를 지닌 이 교향곡 3번을 작곡하게 되었다. 영웅적인 시작 부분에서 축제적인 피날레까지, 이 작품은 단지 라인강변의 밝은 언덕에서 온 음악엽서에 그치지 않고 유능한 ‘음악적 시인’의 자화상이 되었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중 가장 밝은 피아노 협주곡 제2번 또한 음악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젊은 시절 베토벤의 자화상이다. 급부상하고 있는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 문지영의 두 손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베른 교향악단 수석지휘자인 마리오 벤자고가 오페라적 열정으로 ‘시칠리아의 저녁기도’ 서곡을 지휘하며 공연의 막을 올린다. 그는 뒤셀도르프 교향악단과 함께 슈만 교향곡 3번을 녹음한 바 있다.
G. Verdi I Vespri Siciliani Overture C. Abbado Palermo 01/05/2002
주세페 베르디 (1813-1901)
‘시칠리아의 저녁기도’ 서곡 (1854)
‘시칠리아의 저녁기도(만종)’는 베르디의 오페라 중 이른바 ‘3대 명작(리골레토, 일 트로바토레, 라 트라비아타)’ 바로 다음에 나온 작품으로 1854년에 작곡되었다. 베르디는 이 오페라를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의뢰받아 썼고, 따라서 작품은 프랑스의 ‘그랑 오페라(Grand Opera)’ 스타일로 완성되었다. 외젠 스크리브와 샤를 뒤베이리에의 대본에 기초한 5막 구성의 이 오페라는 ‘제1회 파리 만국박람회’ 기간인 1855년 6월 13일에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26일에는 파르마의 레지오 극장에서 이탈리아 초연이 이루어졌고, 이듬해 2월에는 밀라노 스칼라 극장에서도 상연되었다.
오페라 속 이야기는 실제 사건에 기초를 두고 있다. 1282년의 부활절 다음날이었던 3월 31일 월요일에 시칠리아의 수도 팔레르모에서 일대 반란이 일어났다. 이 반란은 당시 이탈리아 남부를 지배하고 있던 프랑스계 앙주 왕가의 압제에 불만을 품은 시칠리아인들이 일으킨 것이었고, 이내 섬 전체로 번지면서 프랑스인들에 대한 학살이 벌어졌고 앙주 세력은 섬에서 축출되었다. 이후 앙주의 반격과 아라곤(스페인 북동부의 왕국)의 개입에 따른 전쟁으로까지 비화된 이 사건은 저녁 종소리를 신호로 촉발되었기에 역사에 ‘시칠리아의 만종 반란’으로 기록되었다.
베르디의 오페라는 이 역사적 사건에 프랑스 총독과 그의 잃어버렸던 아들 아리고의 사연, 아리고와 시칠리아 공녀 엘레나의 안타까운 사랑, 시칠리아의 독립을 도모하려는 프로치다와 엘레나의 모의 등의 허구를 가미하여 구성한 것으로, 이탈리아 남부의 정열적인 분위기가 생생하게 투영된 뜨겁고 폭발적인 서곡이 특히 유명하다. 이 서곡은 시칠리아 춤곡풍의 느린 서주(1막 ‘엘레나의 카바티나’ 선율이 사용됨)에 이어 만종 직후의 전투와 학살을 상징하는 제1주제, 첼로로 연주되는 서정적인 제2주제(3막의 2중창 선율)가 차례로 등장하고, 마지막에는 격렬한 코다로 마무리된다.
Piano Concert No.2 in Bb major, Op.19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2번>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은 제1번보다 앞선 1793년 작곡을 시작하여 1795년 일단 마무리 되었다. 초연은 1795년 3월 29일 빈의 부르크 극장에서 베토벤 자신의 피아노로 연주되었다. 그리고 12월 18일에도 연주되었고, 그 후 여러 번 연주된 기록이 있다. 그러나 베토벤은 자신이 만든 최초의 피아노 협주곡이 이전까지 만들어진 다른 사람들의 피아노 협주곡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개작을 하기 시작한다. 기록에 의하면, 1798년 세 번째 프라하 여행 도중 개정을 시작하여 새로 개정된 악보로 프라하에서 연주한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1801년 독주 피아노 파트를 또 개정하여 그해 10월에 마침내 최종적으로 출판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출판 순서가 뒤로 밀리는 바람에, 이 곡보다 1년 뒤에 작곡을 시작하여 1801년 3월에 출판된 작품이 출판순서가 앞서는 바람에 제1번이 되었고, 이 협주곡이 제2번이 된 것이다.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지만, 특히 초기 피아노 협주곡에서 베토벤은 쉽게 출판을 결정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여러 번 개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곡이 끝내 마음에 차지 않았는지, “이 곡은 내 작품 가운데 가장 좋은 곡이라고 할 수 없다.”라며 마음에 들지 않음을 내비쳤다. 구성을 보면, 관현악에서는 팀파니와 클라리넷은 사용하지 않았으며, 금관악기도 부드러운 호른만 사용하였다. 따라서 협주곡 제2번은 제1번 협주곡보다 규모에서 뿐만 아니라, 스케일에서도 단아한 느낌이다. 그러나 베토벤 특유의 투쟁적인 면이나 대조적인 성격, 전개상의 격렬함 등은 역시 하이든이나 모차르트 등 선배들의 작품과는 확실히 다르다.
뿐만 아니라, 독주 피아노 파트를 보더라도 당시 선배들의 협주곡에 비해 그 규모와 스케일이 다른데, 베토벤이 이렇게 대 편성의 관현악을 상대로 맞설 수 있는 독주 피아노 파트를 터득한 것은, 20대 중, 후반이던 당시 프라하, 프레스부르크,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부다페스트, 베를린 등지에서 성공적인 공연을 하면서 피아노의 특성과 오케스트라의 관계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곡의 카덴차는 제1악장 하나만 남겼는데, 이 카덴차는 자신의 피아노 제자이기도 했던 루돌프 대공을 위해 쓴 것으로 알려진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곡은 빈의 궁정 고문관인 ‘니클라스 폰 니켈스베르크’에게 헌정되었다.
1st Allegro con brio
제1악장은 협주풍 소나타 형식이다. 그리고 베토벤의 대부분의 교향곡이나 협주곡 등 대편성의 관현악곡에 지시된 ‘콘 브리오’는 악기의 기법에 의한 화려함 보다, 첫머리 도입부의 강력하고 명료한 제1주제를 내뿜는 광채를 암시한다. 제1주제는 새로운 선율을 도입부로 피아노가 가세하면서 독주 제시부가 시작되고 이어 제2주제가 시작된다.
2nd Adagio
제2악장은 자유로운 변주곡풍이지만 가장 베토벤적이라고 말하는 악장이다. 이 작품 이후에 등장하는 후대의 피아노 협주곡들을 보면, 협주곡의 제2악장을 자유로운 변주곡 형태로 작곡하는데, 이는 이때 베토벤이 만든 영향이라고 한다. 여기서 주제는 관현악으로 연주되는데, 우아하고 서정적이다.
3rd Rondo. Allegro molto
제3악장은 처음 경쾌한 주요주제가 피아노로 제시된다. 이어 제2부주제가 단조로 세 번 반복되는 것이 특징이다. 전체의 형식은 아주 단순 명쾌하고, 느낌은 우아하면서도 단아하다.
Beethoven, Piano Concerto No. 2 Op. 19 in B flat major. Evgeny Kissin
Martha Argerich - Beethoven Piano Concerto In B Flat Major No.2 Opus 19 (Full Concert)
Symphony No.3 in E major, Op.97 'Rhein'
슈만 / 교향곡 제3번 "라인"
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1856
로베르트 슈만 (1810-1856)
교향곡 제3번 ‘라인’ e♭장조, op. 97 (1850)
‘교향곡 제3번 E♭장조’, 일명 ‘라인 교향곡’은 슈만의 교향곡 중에서 베토벤의 영향이 가장 두드러진 작품이다. 즉 작품의 주된 조성(E♭장조)과 전반적인 악상의 흐름은 ‘영웅 교향곡’을, 5악장 구성과 표제적 성격은 ‘전원 교향곡’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곡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면은 회화적 이미지의 환기이다. 특히 중간 악장들은 라인강 유역의 이런저런 풍경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라인강은 고대 로마 시대 이래로 독일 역사와 전설의 주요 무대였다. 유명한 ‘로렐라이의 전설’, 중세의 영웅 서사시 ‘니벨룽의 노래’ 등이 모두 이 강을 따라 흐르고 있다.
슈만이 뒤셀도르프로 이주한 것은 1850년이었지만, 사실 그와 라인의 인연은 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직 피 끓는 청춘이었던 1829년, 그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유학을 한 적이 있었다. 하이델베르크로 향하던 도중에 그는 프랑크푸르트에 들렀는데, 거기서 접한 마인강(라인강의 지류)의 풍경에 매혹되었고 결국 라인강에까지 이르게 된다.
9월에 드레스덴을 떠나 뒤셀도르프로 이주한 그는 음악감독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는 한편, 충만한 의욕을 두 개의 대작을 통해서 표출했다. 먼저 10월에는 ‘첼로 협주곡 A단조’의 작곡을 진행시켜 11월의 시작과 함께 완성했고, 그 후 곧바로 ‘라인 교향곡’에 착수하여 12월 초에 완결 지었다.
1악장: 활기차게
이 영웅적인 악장은 슈만 교향곡의 첫 악장들 중에서 유일하게 서주부가 생략된, 그러나 구성적으로는 가장 탄탄한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전 관현악의 총주로 힘차게 등장하여 탄력 넘치는 리듬과 열기 가득한 흐름에 실려 시원스럽게 질주하는 제1주제는 마치 라인의 도도한 물결과 거기에 깃든 독일인의 정신을 나타내는 듯하다. 반면 목관이 제시하는 왈츠풍의 제2주제는 보다 차분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거침없이 내달리는 음악의 흐름에 숨 돌릴 여유를 제공한다.
2악장: 스케르초. 아주 온화하게
독일-오스트리아의 민속 춤곡인 렌틀러 풍의 기분 좋은 스케르초 악장이다. 온화한 기운을 머금고 느긋하게 흘러가는 춤곡의 선율에서 라인에 기대어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소박하고 풍요로운 생활상이 묻어나는 듯하다. 중간 중간 아기자기한 삽입구와 넉넉한 호른의 울림이 가미되어 다채로운 느낌을 더한다.
3악장: 빠르지 않게
마치 간주곡처럼 자리한 이 완만한 템포의 악장은 멘델스존의 <무언가>를 발전시킨 듯한 인상을 준다. 더없이 부드럽고 상냥하게 다가서는 이 야상곡이 발산하는 은은한 광채는 달빛 아래 강변을 산책하는 연인의 모습을 비춰주는 듯하다.
4악장: 장려하게
초연 당시의 악보에 ‘장엄한 의식의 반주 같은 스타일로’라고 적혀 있었던 이 느린 악장은 슈만이 클라라와 함께 쾰른의 대성당에서 접했던 의식(쾰른 대주교의 추기경 즉위식)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엄한 화음과 코랄 선율 등 종교적 분위기로 가득한 이 악장에는 슈만이 드레스덴 시절에 공부했던 바흐의 대위법의 영향이 짙게 나타나 있기도 하다. 당시로서는 교향곡에서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구현하는 것이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부정적인 반응을 얻기도 했지만, 어쩌면 슈만은 ‘라인 정신’의 종교적 승화를 의도했던 것이 아닐까.
5악장: 활기차게
축전적인 분위기로 가득한 피날레 악장이다. 활기찬 주제가 단순 명쾌한 베이스의 움직임을 타고 흐르는 가운데 도처에서 울려 퍼지는 팡파르가 축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종결부에서는 앞선 악장의 주제가 다시 나타나서 활약하고, 첫 악장의 주제도 가세하여 실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 후 마무리된다.
Schumann: Symphony No.3 in E flat major - P. Järvi / NHK Symphony Orchestra
독일: 뒤셀도르프-쾰른-본
‘아버지 라인’을 찬양한 슈만, 라인 강에 몸을 던지다
라인강변에 세워진 고딕양식의 장엄한 쾰른 대성당.
슈만이 왔을 때 아직 첨탑은 세워지지 않았다.
라인 강은 도나우 강과 함께 로마 제국의 북쪽 국경선으로 문명세계인 로마제국과 비문명세계인 게르마니아를 나누던 경계선이었다. 하지만 로마제국이 멸망한 다음에는 역사의 무대에 올라선 게르만 민족의 젖줄이 되었다. 독일 사람들은 이 강을 ‘아버지 라인’이란 뜻으로 파터 라인(vater rhein)이라고 부르는데, 이 강의 중간쯤 65킬로미터 구간에 해당하는 라인계곡은 절경을 이룬다.
유명한 로렐라이 언덕은 바로 이 구간에 있다. 한편 라인강 하류에 서로 가까이 있는 본과 쾰른은 2천 년 전에는 로마제국의 도시였던 반면에 뒤셀도르프는 몇몇 게르만 부족이 살던 조그만 마을이었다.
글·사진 정태남(이탈리아 건축사, 문화 칼럼니스트)
슈만, 하이네의 고향에 오다
뒤셀도르프는 현재 독일에서 함부르크 다음으로 중요한 항구도시이며 국제적인 경제 도시이다. 이곳에서 가장 매력적인 장소 중의 하나는 라인강 제방 산책로이다. 여름이 되면 사람들은 이 산책로에서 느긋하게 삶의 기쁨을 맛보는데, 마치 지중해 도시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곳에서는 낭만주의 시대의 두 인물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와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하이네는 1797년에 이곳에서 태어나 15세까지 성장했고 그의 생애 마지막 25년은 프랑스에서 보냈다. 민요 ‘로렐라이’는 그가 1824년에 쓴 서정시 ‘디 로렐라이(Die Lorelei)’에 질허(F. Silcher)가 곡을 붙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작센지방 출신인 슈만은 이곳에서 생의 후반을 보내면서 ‘첼로 협주곡 A단조’, ‘라인 교향곡’ 등 여러 훌륭한 작품을 썼다. 그런데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공교롭게도 1856년에 세상을 떠났다. 또 공교롭게도 뒤셀도르프에는 이 두 사람과 관련된 건물이 같은 거리에 있다. 라인강 제방 산책로에서 동쪽으로 약 200미터 떨어진 빌커 거리(Bilker Strasse)의 12번지는 하이네 연구소. 15번지는 슈만의 집이다.
하이네 연구소 의 2층 창문은 모두 ‘디 로렐라이’로 장식되어 있다. 이 시(詩)는 로렐라이가 바위 언덕 위에 앉아 황금빛 머리를 빗으며 노래를 부르면 뱃사공들은 그녀의 노래와 아름다움에 홀려 배가 바위에 부딪혀 난파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연구소에는 슈만에 관한 자료도 있다. 그의 생애를 보면, 공교롭게도 1830년, 1840년, 1850년이 삶의 전환점이 되는데 그것도 모두 공교롭게도 9월이다. 슈만은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다가 음악에 상당히 조예가 깊은 법학교수 티보가 있던 하이델베르크로 대학을 옮겼다. 하이델베르크 체류
중 그는 라인계곡 주변으로 여행하면서 고대 독일의 어떤 신처럼 고요하고 근엄하고 당당하게 흐르는 라인 강을 맑은 영혼으로 감상했다고 했다.
그는 16개월간의 하이델베르크 생활을 마친 1830년 9월에 오로지 음악가의 길을 걷기 위해 라이프치히로 향했다. 그것은 티보교수가 그에게 그가 갈 길은 법학이 아니라 음악이라는 것을 깨우쳐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슈만은 30세가 되던 해 1840년 9월에는 그의 피아노 스승 비크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그의 딸 클라라와 결혼했다. 그가 연가곡 ‘시인의 사랑’을 작곡한 것은 결혼하기 네 달 전 그녀를 향한 사랑이 불타고 있을 때였다. 이 작품은 하이네의 ‘서정적인 간주곡(Lyrisches Intermezzo)’에서 발췌한 16개의 시를 음악으로 승화한 명작이다. 그 후 슈만은 라이프치히를 떠나 드레스덴에서 활동하다가 뒤셀도르프 시의 음악감독으로 초빙 받고 결혼 10주년이 되던 1850년 9월에 가족과 함께 하이네의 고향 뒤셀도르프로 이주해 왔다.
라인강에서 탄생한 교향곡 제3번
뒤셀도르프 문화계는 그를 따뜻하게 환대했다. 이곳 사람들은 작센 사람들에 비해 매우 개방적이고 사교적이었으며 또한 부유했다. 이런 환경에서 희망에 찬 나날을 보내던 슈만은 9월 후반에 쾰른으로 여행하는데, 연가곡 ‘시인의 사랑’ 중 6번째 곡 ‘라인에서, 거룩한 흐름에서’에서 묘사된 고딕양식의 쾰른 대성당을 실제로 가서 보고 싶었던 것이다.
쾰른 대성당은 1248년에 착공된 지 6백년이 지난 당시 첨탑이 아직 세워지지 않은 미완공 상태였지만, 슈만은 라인 강변에 솟은 그 장엄한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다시 한 번 쾰른을 비롯한 라인지방으로 여행하기 앞서 11월 2일에 새로운 교향곡의 1악장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12월 9일에 교향곡 전체를 완성했다. 이것이 바로 ‘교향곡 3번’, 일명 ‘라인 교향곡’이다.
‘라인’이란 별칭은 그가 붙인 것이 아니지만, 그는 이 교향곡을 작곡하던 중에 고결한 라인강과 사람들의 역사와 정기가 그의 마음속을 스쳐 흐르고 있었다라고 했다.
이 작품은 베토벤의 교향곡 6번 ‘전원’처럼 다섯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시각적인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사실 슈만은 처음에 제2악장을 ‘라인의 아침’라고 제목 붙였다가 출판할 때는 이를 없앴지만 이 악장은 라인 강의 흐름을 얼핏 연상하게 한다.
또 제4악장은 쾰른 대성당의 장엄함과 종교의식의 엄숙함을 연상하게 한다.
1851년 2월 6일, 슈만은 뒤셀도르프에서 이 작품을 자신의 지휘로 초연하여 아주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어서 쾰른과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연주도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기쁨의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에게 고질적인 정신분열증세가 가끔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시 당국과 갈등을 빚기 시
작했는데, 기질적으로 오케스트라나 합창단 같은 조직을 이끄는 일이 그에게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결국 사퇴했고, 그 후에는 가벼운 연주여행을 하거나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으면서 비교적 소강상태를 유지했다. 그러던 중 1853년 9월에 20
세의 한 젊은 음악가가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의 소개장을 들고 찾아왔다. 슈만 부부는 그의 음악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슈만은 그를 ‘음악 신보’에 소개하면서 유럽음악계에 그의 등장을 예고했다. 그가 바로 브람스이다.
독일 낭만주의 거장의 마지막 날들
슈만은 해가 바뀌자 급격히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고 2월에는 때로는 달콤하고 때로는 위협적인 환청을 듣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7일 아침에는 집을 나와 그대로 라인 강에 몸을 던졌다.
다행히 곧 구조되었지만 그의 눈은 초점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 마치 로렐라이에 홀려 강물에 빠진 뱃사공처럼. 그 후 본(Bonn) 외곽 엔데니히의 정신병동으로 옮겨져 외부와 격리된 상태에서 투병하게 되는데, 힘겹게 일곱 자녀를 홀로 키워야했던 클라라는 약 2년 5개월이 지난 다음에야 남편 문병이 가능했다. 병상의 슈만은 그녀를 알아봤는지 뭐라고 몇 마디 중얼거리고는 이틀 후인 7월 29일 오전 4시에 영원히 눈을 감았다.
그의 시신은 라인강이 흐르는 베토벤의 고향 본의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슈만이 찬양했던 ‘아버지 라인’은 유유히 흐른다. ‘교향곡 3번’의 당당하고 활기찬 선율과 함께…
공연전 우리는.....
늘 이렇게 8층의 롯데 콘서트 홀 앞 테라스에서 멋진 시간을 갖는다.
석촌 호수가 한 눈에 훤히 들어오고....
귓가를 멤도는 음악은 또 얼마나 매혹적인가~
초가을의 산들 바람을 느끼기엔 이만한 곳이 없다.
준비해온 음식을 먹다보면...
어느새 환상적 일몰이 주변을 물들이고...
그리고 이내 찾아든 어둠....
그 순간부터 우리를 감싸는 현란한 불빛들...
흥분할밖에....
자칫 음악회의 본질을 망각하고...
이 여유로움에 더 빠져들면 어떡하지??
그려~
또 뒤바뀌면 어때~
행복한 비명속에서 음악회의 감동은 분명 더 빛날게야~
삶도 함께 반짝이겠지?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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