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2017년)

하델리히의 버르토크 바이올린 협주곡/아우구스틴 아델리크 Augustin Hadelich /7.22.토.8시/예술의 전당

나베가 2017. 7. 20. 00:30


하델리히의 버르토크 바이올린 협주곡

7 22 ()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제임스 개피건 James Gaffigan, conductor

바이올린 아우구스틴 하델리히 Augustin Hadelich, violin

 

하델리히의 버르토크 바이올린 협주곡



바그너, 파르지팔 성 금요일의 음악’ Wagner, Good Friday Spell from 'Parsifal'

버르토크, 바이올린 협주곡 2번 Bartok, Violin Concerto No. 2, BB 117

멘델스존, 교향곡 5종교개혁’ Mendelssohn, Symphony No. 5 in D major, Op. 107 ‘Reformation’


 

“이 왕국에서 시간은 공간이 된다.” 바그너의 파르지팔은 작가 C.S. 루이스부터 영화감독 테리 길리엄까지 수많은 거장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제3막, 숨 막히게 아름다운 ‘성금요일의 음악’이 환생과 부활을 부드럽고 아름다운 선율로 묘사하며 시작해 영적인 투쟁을 담아낸 멘델스존의 교향곡 제5번으로 콘서트를 마친다. 지휘자 제임스 개피건은 바그너가 한때 살았던 루체른의 루체른 심포니의 상임지휘자로 활동 중이다. 그런 만큼 음악에 담긴 내적인 풍경을 깊이 있게 이해할 것으로 기대된다. ‘파프리카 향이 생생한’ 버르토크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에도 전율의 순간들을 기대할 만하다. 바이올리니스트 아우구스틴 하델리히는 20세기 작품 해석에 있어서 ‘소용돌이치듯 자유분방한 표현’을 보인다는 찬사를 받아 왔다.


"이번에 연주되는 멘델스존의 교향곡 5종교개혁은 매우 의미 있게 들릴 것이다.

왜냐면 2017년은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횃불을 들어 올린 지 5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문화 칼럼니스트)


제임스 개피건James Gaffigan 지휘자



물 흐르는 듯한 편안함과 음악적 통찰로 동세대 미국 지휘자 중 가장 돋보이는 제임스 개피건은 최근에 루체른 심포니의 상임지휘자와 네덜란드 방송교향악단의 수석객원지휘자로 임명되어 2011년 가을부터 임기를 시작한다. 객원지휘자로서 그는 미국과 유럽 최고의 교향악단과 오페라극장에서 활약하고 있다.

미국에서 개피건은 필라델피아, 시카고, 세인트루이스, 신시내티, 인디애너폴리스, 미네소타, 댈러스, 디트로이트, 휴스턴 심포니 등을 지휘하며 유럽에서는 뮌헨 필하모닉, 베를린 도이체 심포니, 버밍엄 심포니, 취리히 톤할레, 본머스 심포니, 카메라타 잘츠부르크, 계몽시대 오케스트라 등을 지휘했다.

2010/11 시즌에 라이프치히 방송교향악단, 슈투트가르트 방송교향악단, 뮌헨 필하모닉, 본머스 심포니, 신시내티 심포니 등에 재초청받는 그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도쿄 메트로폴리탄 심포니, 스코티시 체임버, 서울시향 등에 데뷔한다.

1979년 뉴욕에서 태어난 개피건은 줄리어드 예비학교,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공부하고, 셰퍼드 음악원에서 지휘를 공부하였다. 2000년 여름 데이빗 진만은 그를 아스펜 지휘 아카데미에 최연소 학생으로 뽑았고, 2년 후에는 이 아카데미 최초의 로버트 하스 지휘상을 수상하였으며, 이듬해 여름에는 탱글우드 뮤직 센터의 지휘 펠로우로 선출되었다.

개피건은 마이클 틸슨 토마스를 도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부지휘자로 일했고, 동 교향악단의 ’서머 인 더 시티’ 페스티벌 예술감독으로 일했다. 이전에는 프란츠 벨저뫼스트를 도와 클리블랜드의 부지휘자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활약했다. 개피건은 2004년 게오르그 솔티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하였다. 현재 루체른에서 살고 있다..(출처:SPO잡지)



지휘자 제임스 개피건자유와 소통 사이에서
완성되는 인간의 소리


지휘자 제임스 개피건은 이미 한국 관객들에게 익숙한 인물이다. 2011년과 2012년 서울시향을 객원지휘하며
안면을 틀 때는 ‘뉴욕출신의 촉망받는 신예 지휘자’로 소개되었지만, 이제는 이런 수식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이름에 무게감 있는 지위가 겹겹이 더해졌다. 현재 그는 루체른 심포니 수석지휘자, 네덜란드 라디오 필하모닉
수석객원지휘자, 쾰른 필하모닉 수석객원지휘자를 겸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자신이 음악감독으로 있는 루체른
심포니를 이끌고 내한해서 청중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얻은 바 있다. 40대 지휘자 가운데 선두 그룹을 달리고
있는 그의 리더십은 ‘소통과 자유’로 대변된다. 자율성을 보장하면서 능란한 소통을 통해 악단의 개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그의 지휘봉은 늘 오케스트라마다 전혀 다른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다채로운 결과물을
생산해왔다. 음악을 바라보는 자유롭고 열린 시각은 클래식 음악 입문 이전 재즈와 록 뮤직에 열광하며 문화적
다양성의 가치를 일찌감치 깨친 덕분이다. 글 노승림(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음악 칼럼니스트)





바이올린 아우구스틴 아델리크 Augustin Hadelich, violin



그래미상 수상자로도 잘 알려진 아우구스틴 하델리히는 2006년 인디애나폴리스 바이올린 콩쿠르 금메달리스트이며, 2015년 워너뮤직상의 첫 수상자이다.

이외 링컨 센터의 마틴 세갈 상(2012), 영국 보를레티 뷔토니 펠로우십(2011),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2009)를 수상한 바 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출생해 독일인 부모 아래서 자랐으며 미국 시민권자이다.

줄리아드 음대에서 조엘 스미어노프 사사로 아티스트 디플로마를 획득했다.


2016/17 시즌 주요 활동으로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과의 협연, 유럽에서는 드레스덴 필하모닉,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함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쾰른  WDR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이 있다.


그는 시애틀 심포니 오케스트라(지휘 루도빅 모를로)와 함께 녹음한 뒤틀리히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으로 2016 그래미상 ‘베스트 클래식 악기 솔로’부문을 수상하였고, 2016년 가을에는 피아니스트 조이스 양과 바이올린, 피아노를 위한 이중주 작품집을 발매하는 등 활발한 음반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4년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누 린투의 지휘로 녹음한 시벨리우스와 토마스 아데의 바이올린 협주곡집은 그라모폰 상에 노미네이트되고 NPR이 선정한 2014년 베스트 클래식 음반 TOP 10에 드는 등 높은 평가를 받았다.(출처:SPO잡지)




Wagner - Parsifal -- Prelude (Act 3) and Good Friday Music (Proms 2012)


바그너 최후의 악극인 '파르지팔"은 1877년에 착수하여 1882년 1월에 완성 하였다. 이것은 극장에서 상연하기 위한 신성화 된

축전 극 (Buhnen Weihfestspiel) 이라는 작품으로 그의 만년의 종교적 이상을 나타낸 작품이다.

  1882년에 헤르만 레비의 지휘로 바이로이트 극장에서 초연 되었는데, 이것은 신앙을 기반으로 한 그리스도교적인 신비주의에

관한 것이어서 그의 의견에 따라 일반 극장에서의 상연을 금하였다. 그러므로 1913년 말 흥행권 소멸 기간까지 바이로이트

극장에서만 상연하였다.

  이 작품은 중세기의 에센바하의 서사시 성배에서 암시를 받은 것을 묘사한 것인데, 바그너가 번안한 내용은 당시 중세기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트리스탄"과 "반지" 이 후 그의 만년의 종교관에서 나온 것이다. 다시말하면 전체적으로는 그리스도교적인

정신과 중세기의 전설에 기반을 둔 것이며 보다 광범위한 신비적 종교적 종합예술에 대한 작자의 의도는 표시되었으므로

이것을 무대적인 성축극이라 했다.

  전체의 테마는 신에게 봉사함으로서 영혼의 정화와 육체의 쾌락의 포기를 설득함과 동시에  자기의 유혹에 빠진 죄를 긍휼한

사랑으로 인류의 구제를 고양한 것이다.

 

파르지팔은 망토를 입고 쿤토리와 같이 구르네만츠의 뒤를 따른다. 이 때 그 유명한 "성 금요일의 음악"이 연주 된다.

   성배가 있는 사원 한쪽에서 디투렐의 관이, 또 한 쪽에서는 병상에 누운 암포르타스의 가마가 기사들에 의해 운반된다.

암포르타스왕은 선왕 디투렐의 관을 열라고 한다. 그리고 비통한 기도를 올린다음 기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가슴에 있는

불치의 상처를 보이면서  이 죄인을 죽여달라고 소리친다.

  구르네만츠와 쿤토리와 같이 은밀한 사원으로 들어온 파르지팔은 앞으로 나가 "유익한 무기, 그대에게 상처를 준 이 창만이

그대의 상처를 낫게 하리라..." 하면서 성창의 끝을 암포르타스의 상처에 대자 상처는 씻은 듯 없어지고 암포르타스는

건강해졌다.  암포르타스는 성창을 높이 들고 성창을 크링졸로부터 빼앗은 것을 사람들에게 보인다. 파르지팔은 성단에 올라가

성배를 받쳐들고 무릎을 꿇자 성배는 찬란히 빛나 사원 안을 비춘다. 성배수호의 기사, 위병 소년들의 우렁찬 합창이 끝나자

흰비둘기가 파르지팔의 머리위를 나른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쿤토리는 소리없이 쓰러져 파르지팔의 발 밑에서 숨을 거둔다.

그들은 마음속 가득히 기쁨을 느낀다. 모든 근심이 사라진 이 성에는 비로소 평화가 찾아 온다.

여기에 나오는 "성 금요일의 음악"은 이러한 정경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리하르트 바그너 (1813~1883)
파르지팔 중 ‘성 금요일의 음악’ (1882)

<연주시간: 11분>


바그너의 마지막 대작인 ‘파르지팔’은 고난의 바다와도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깨달음을  향한  여정을  그린  악극(Musikdrama,  바그너식  융합형  오페라)이다.  바그너  자신이 ‘무대신성축전극(Bühnenweihfestspiel)’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붙인  이  작품에서 ‘깨달음’
은  기독교적인 ‘죄악과  구원’  사상과도,  불교적인 ‘업보와  윤회’  사상과도  관련을  맺고  있다.

 
악기편성:현 5부

오보에 3. 잉글리시호른.플루트 3.클라리넷 3.베이스 클라리넷,바순 3.콘트라바순.호른 4.트럼펫 3.트롬본 3.튜바 1.팀파니.


‘성 금요일의 음악’은 이 ‘파르지팔’에서 제3막의 가장 감동적인 장면에 흐르는 곡이다. 이 장면에서 성창(聖槍, Holy Spear)을 수호하며

오랜 방황의 역정을 거친 끝에 비로소 성배(聖杯) 의 영지에 도달한 주인공 파르지팔은 노기사 구르네만츠와 야성녀 쿤드리의 도움
으로 ‘성배의 왕’으로 추대되는 세례의식을 치른다.
금관의 장엄한 울림으로 출발한 곡은 ‘성배 모티브’와 함께 한 차례 정점에 도달한 후 정화된 분위기  속에서  경건하게  흐르다가, 

이윽고  오보에의  감미로운  선율을  타고  향기롭게  피어나기 시작한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리는 ‘성 금요일’에 새롭게 태어나는 자연을 암시하는 음악이 흐르는  동안, 파르지팔은 주위를 둘러보며

“오늘 따라 저 들판이 유독 아름답게 보이는군요.”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준다.

 “언젠가 마법의 정원에 들어섰을 때 꽃들이 거친 줄기로 나를 휘감으려 했어요. 그런데 다음 순간 저는 그처럼 신선하고 부드러운 줄기와 꽃봉오리를 
본 적이 없었고, 그들은 젊음의 향기를 내뿜으며 제게 부드러운 사랑의 말을 건넸죠.” 이에 구르네만츠는 그것이 “성 금요일의 마법”이라고 알려주며,

구세주의 사랑과 희생의 의미를 깨우쳐준다. 이제 ‘연민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은  순수한  바보’인  파르지팔은  구원을  갈구하는 

이들이 기다리는 성배의 제단으로 향한다.


바그너는  이  장면에  흐르는  음악을  성악  파트를  제외한  형태로  편곡하여 ‘성  금요일의  음악’이라는  제목의  관현악곡으로  출판했는데,  이는 (독점권을  보유한 30년  동안)  바이로이트  밖에서의 ‘파르지팔’ 상연을 금지한 조치에 대한 보완책이기도 했다. .(출처:SPO잡지)
 


벨라 버르토크 (1881~1945)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 bb 117 (1938)

<연주시간: 36분>


헝가리  작곡가  버르토크는 20세기  전반부를  대표하는  모더니스트의  한  사람으로서,  동구권 민요의 채집과 자연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당대의 그  누구보다도 독창적인 작풍을 확립한 인물이다.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은 그가 남긴 대작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며, 많은 이
들로부터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추앙되는 걸작이다.


이  협주곡을  의뢰한  사람은  네덜란드로  망명한  헝가리  바이올리니스트  졸탄  세케이였다.  처음에 버르토크는 변주곡 형식을 취한 단악장 구성의 협주곡을 생각했지만, 세케이가 원한 건 3악장  구성의  정식  협주곡이었다.  결국  협주곡은 3악장으로  완성되었지만,  버르토크는  애초의 구상도 포기하지 않았다.  즉 그는  중간 악장을 변주곡으로 작곡했으며, 마지막 악장도 첫 악장의  소재들에 기초한 변주곡의 성격을 띠도록 했던 것이다. 작곡은 1937년 8월에 시작되어 1938년의 마지막 날에 마무리되었고, 완성된 작품은 1939년 3월 23일 암스테르담에서 세케이의 독주와 빌렘 멩엘베르흐가 지휘한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버르토크가  이  협주곡을  작곡하던  무렵에  헝가리  정부는  친나치  정책을  노골화하고  있었다.
파시즘을  완강히  거부했던  버르토크는  그처럼  우울한  상황을  견디기  힘들었던  나머지  망명을 고려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조국의 음악문화에 대한 그의 애정은 여전히 강렬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런 복합적인 감정의 발로에서였는지 몰라도, 그는 원래 이 협주곡의 첫 악장에
‘베르분코시의  템포로’라는  지시를  붙여놓기도  했다.  베르분코시는  헝가리의  민속춤곡의  일종으로 주로 병사를 모집할 때 연주되었다고 한다.


통상 연주시간이 17분 안팎에 달하는 제1악장을 쓰면서 버르토크는 베토벤이나 브람스의 위대한 바이올린 협주곡처럼 하나의 장대한 여정을 아우르는 극적인 악장을 의도했다. 곡은 하프의 탄주(B장조)와 저현의 피치카토가 어우러져 빚어내는 오묘한 화음들의 사랑스러운 연결로 출발하며, 얼마 후 바이올린 솔로가 도리아 선법에 기초한 주제선율을 민요풍 억양으로 꺼내놓으며 가세한다. 이 제1주제가 질주하고 고조되는 과정을 거친 후 한결 차분한 흐름 속에
등장하는 제2주제는 ‘12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악장 전체를 통틀어 형태를 바꾸어 가며 서른두 번이나 반복되는 이 주제에 관해서 버르토크는 이런 언급을 남긴 바 있다.

 “12음을 모두 사용하면서도 조성에 입각한 음악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쇤베르크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후 음악은 찬란한 드라마와 섬세한 서정성, 복합적 리듬과 아방가르드적 음향을 두루 아우르며 절묘한 진행을 보이다가,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를 연상시키는 카덴차를 거친 후 헝가리 특유의 강약격 리듬으로 내달리다가 장중한 울림 속에서 B음에 안착하며 마무리된다.


제2악장은 G장조 또는 리디아 선법의 주제에 기초한 여섯 개의 변주로 이루어진다. 다분히 즉흥적인 변주들이 다채로운 양상으로 펼쳐지는 가운데 제5변주에서는 신랄한 ‘스케르찬도’가 나타나고, 서정적인 주제는 제4변주의 후반부와 종결부에서 회상된다.


제3악장은  제1악장의 변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다시금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제1악장의 도입부 주제를 변형시킨 제1주제와 역시

 ‘12음’으로 이루어진 제2주제가 등장한다. .(출처:SPO잡지)


Bela Bartok : Violin Concerto No. 2, BB 117 / Kyung-Wha Chung,Simon Rattle,City of Birmingham Symphony Orchestra


유명한 바이올린의 명수 '예후디 메뉴인'(Yehudi Menuhin)은, 그의 중요한 레퍼터리로써 이 곡을 정기적으로 연주했고, 바르톡의 작품 중에서 특히 뛰어난 이 곡의 소개에 힘을 썼다. 바르톡의 바이올린협주곡은 두 곡이 있으나, 한동안 제1번은 간행되지 않았고, 제2번만이 출판되었다. 제1번은 오랜 동안 헌정자의 곁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이 곡이 유일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제1악장(Allegro non troppo), 제2악장(Andante tranquillo), 제3악장 (Allegro molto)으로 구성되있다.

현대 음악의 대표적인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높이 평가되며, 악상은 깊고, 아름다운 민족적인 정서는 가라앉으면서 커다란 윤기를 나타내고 있다. 수법은 정확 치밀하여 알반 베르크의 「바이올린협주곡」에 앞서고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


20세기 가장 위대한 헝가리 작곡가이자 현대음악의 대표 주자였던 버르토크는 민속음악 전문가이자 뛰어난 교육자였다. 그는 헝가리 민속음악의 주제, 선법, 리듬 패턴 등을 통해 음악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버르토크는 이에 그치지 않고 민속음악적 요소와 동시대 음악의 영향을 종합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완성했다. 리듬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부터 악기의 음색을 취급하는 방법, 음악가라면 누구나 사용하는 음계 같은 기초적인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독특하고 도전적인 실험을 시도하여 손대는 장르마다 새로운 종류의 표현과 시정(詩情)을 담아냈다.

자연에서 비롯된 버르토크의 음악은 청량하고 시큼한 불협화음으로 넘쳐나며, 듣는 이로 하여금 자연 세계의 기이함과 무차별적인 폭력을 떠오르게 하는 소리와 텍스추어로 가득하다. 이러한 음악이 생경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 처음 충격의 진입 장벽만 넘고 나면 놀랍도록 아름다운 소리의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참신하고 대단히 자극적인 풍경을 만나고, 섬세한 음악과 거친 강세가 귀를 때리는 음악이 공존하는 것을 보며, 때로는 그 무한한 생산력과 자기 재생력 앞에서 일종의 종교적 경외마저 느끼게 된다.

버르토크의 음악에서 가장 큰 특색은 항상 조국 헝가리의 민요를 창작의 토대로 삼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헝가리 민요는 브람스나 리스트가 이용했던 이국 취미적인 것이 아니라, 마자르(Magyar) 민족혼이 담긴 노래로서 근원적인 것이었다. 버르토크는 유럽의 새로운 기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했지만, 그것들은 모두 이 근원적인 노래를 모체로 하여 받아들인 뒤, 자신감에 충만한 독자적 어법으로 작품을 전개시켜 나갔던 것이다.  그의 음악이 이른바 민족주의라는 좁은 테두리에 구애받지 않고, 넓고도 깊게 호소하는 인간적인 힘을 가진 것도 그 때문이다.  

툭하면 현악기의 줄이 끊어지는 ‘버르토크 피치카토’

날카롭고 거친 불협화음을 즐긴 버르토크의 작품을 연주할 때 현악기의 줄이 ‘툭’ 끊어질 때가 왕왕 있다. 바로 강한 피치카토 주법 때문이다. 피치카토(pizzicato)란 이탈리아어로 ‘꼬집다’는 뜻이다. 바이올린이나 첼로 등 현악기에서 손가락으로 현을 뜯어 소리를 내는 연주 기법을 말한다. 버르토크는 새로운 피치카토 주법을 개발했는데, 줄을 두 손가락으로 잡고 뜯어서 지판(指板)에 줄이 부딪치면서 ‘딱’ 하는 소리가 들리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를 ‘버르토크 피치카토’라고 부른다. 버르토크는 현이 악기 지판에 수직으로 강하게 부딪칠 정도로 온 힘을 다해 잡아 뜯으라고 지시했다. 이렇게 현을 혹사시키다 보면 조율한 음정이 불안해진다. 더욱이 버르토크의 작품은 활로 거칠게 현을 긋는 대목이 많아 줄이 끊어지는 불상사가 빈번히 발생하는 것이다.

 ▶“버르토크라는 이름은 예술과 정치에서 원칙과 개혁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를 상징한다.” ―졸탄 코다이

만약 버르토크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을 연주할 때 독주자의 바이올린 현이 끊어졌다면 어떻게 될까. 독주자는 줄이 끊어진 바이올린을 악장에게 주고 악장의 바이올린을 빌린다. 악장은 부악장의 것을 ‘빼앗아’ 연주한다. 이렇게 해서 맨 뒷줄 단원에게까지 가는 일도 있을 수 있다. 줄이 끊어진 바이올린을 든 단원은 어쩔 수 없이 연주 시늉만 하는 ‘핸드 싱크’를 해야 한다. 그러다 연주가 잠깐 중단되는 악장 사이에 호주머니에서 여분의 줄을 꺼내 교체하기도 한다. 최은규 음악 칼럼니스트는 “버르토크는 현을 세게 퉁기는 강한 피치카토를 통해 타악기의 음색을 구현하려고 했다”며 “그는 악기의 새로운 소리를 찾는 작업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었다”고 설명했다.

버르토크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은 바이올리니스트 졸탄 세케이(Zoltán Székely, 1903-2001)의 의뢰를 받고 1937/38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파시즘의 광기가 휩쓸던 이 당시 버르토크는 매우 어려운 지경에 놓여 있었다. 그는 여러 차례 자신은 반파시스트라고 입장을 표명했으며, 그 때문에 생명까지 위협당하는 위험에 빠져 있었다. 그런 와중에 이 작품의 초연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1939년 3월 23일 졸탄 세케이의 바이올린과 빌헬름 멩겔베르크의 지휘,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올려졌다. 작품을 의뢰하고 초연을 한 졸탄 세케이에게 헌정되었다.


Augustin Hadelich plays Bartók Violin Concerto Nr. 2 LIVE


1악장: 알레그로 논 트로포

소나타 형식. 도입부 주제와 제1주제, 제2주제의 세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도입부 주제는 5음계적이고, 제1주제는 5음계적으로 시작하여 점차 경과음이 추가되어 12음계적으로 되며, 제2주제는 12음의 선율적인 형태를 취한다. 이 주제들은 변형되어 3악장의 주제로 사용된다.

2악장: 안단테 트란퀼로

변주곡 형식. 주제와 7개의 변주, 주제로의 복귀의 9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3악장: 알레그로 몰토

소나타 형식. 18세기 헝가리 춤곡인 베르분코슈(Verbunkos) 스타일을 바탕으로 한 춤곡 풍의 활발한 악장이다. 1악장의 주제가 변형되어 주제로 사용된다. 빠르기와 박자, 발상의 전개들이 상위된 형태로 변주되어 제시되며, 전개부의 몰토 트란퀼로의 제1주제는 고음의 독주 바이올린으로 매우 인상적으로 전개된다.

민족적이고 현대적인 음악을 함께 추구했던 버르토크

버르토크는 헝가리 남부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모두 교사였다. 아버지는 음악에 관심이 없었고 어머니는 음악 애호가였다. 일곱 살 때 가장을 잃은 그의 가족은 고향을 떠나 포조니란 곳으로 갔다. 당시 헝가리 문화의 중심지였던 포조니는 음악적 환경이 좋았다(지금은 체코 영토). 어머니에게서 피아노 기초를 배운 버르토크는 이곳에서 자신의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나타낸다. 17살(1899)에 그는 빈 음악원에 합격했다. 들뜬 마음으로 유학생활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누군가 유학을 가지 말고 헝가리의 음악을 연구하자고 설득했다. 그보다 네 살 위였던 이 음악도는 나중에 훌륭한 작곡가가 되는 도흐나니(Ernst von Dohnányi, 1877-1960)였다. 버르토크는 이 설득에 넘어가 빈 음악원 유학을 포기했고 부다페스트 음악원에 입학했다.

 ◀부다페스트 음악원에 입학할 무렵의 버르토크. 자필 이름과 1899.9.9라는 사인이 보인다.

1902년 버르토크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초연을 듣고, 새로운 작곡법에 대한 커다란 시사를 받아 교향시 <코슈트(Kossuth)>(1903)를 작곡했다. 1905년 그는 파리에서 열린 루빈스타인 콩쿠르에 참가하여 피아노 부문에서 빌헬름 바크하우스(Wilhelm Backhaus, 1884-1969)에게, 작곡 부문에서 아틸리오 브루뇰리(Attilio Brugnoli)에게 패했다. 바크하우스는 버르토크를 이긴 것을 평생 자랑했고 프로필로 사용했다. 1907년에 부다페스트 음악원의 피아노 교수가 되었는데, 이 무렵부터 음악원 시절의 친구인 졸탄 코다이(Zoltán Kodály, 1882-1967)와 함께 헝가리 민요의 채집과 연구에 몰두하고, 민요를 토대로 민족적인 음악 어법의 개척에 노력을 집중했다. 1911년, 두 사람은 신작 발표를 위해 신 헝가리 음악협회를 창설했지만 저널리즘의 공격과 경제적인 곤란 때문에 이듬해 해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버르토크는 실의와 고립 속에서 1차 세계대전을 맞이했다.

전쟁 후의 혁명과 격동기는 버르토크에게도 고뇌의 시기였지만, 이 동안에 완성된 바이올린 소나타 1번(1921)을 비롯한 일련의 작품에 의해 차츰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되었다. 동시에 유럽의 신음악과 쇤베르크의 영향을 밑거름으로 하여 창작한 피아노 소나타와 피아노 협주곡 1번(1926)은 새롭고도 강렬한 양식이 도입된 작품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어지는 1927년에서 1930년까지는 국제적인 연주 여행과 활발한 창작으로 풍부한 결실을 거둔 시기였다.

▶버르토크(오른쪽)와 바이올린 협주곡 2번 초연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한 졸탄 세케이, 1920s

1930년 이후 다시 민요 연구에 박차를 가해 새로운 창작 활동 준비를 했다. 1934년 무렵부터는 원숙한 최성기를 맞아, 현악 4중주 5번(1934)을 비롯한 일련의 대표적인 작품을 완성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버르토크는 파시즘에 적극 대항했는데, 1939년 개전 소식을 접하자 망명을 결심하여 이듬해 10월 부인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 망명 생활은 몹시 궁핍했고, 강의나 작곡 의뢰도 있었지만 어려서부터 잔병치레가 많은 체질로 건강이 나빴던 버르토크는 이에 응할 수가 없었다. 1943년에 겨우 원기를 회복하여 최후의 활동에 들어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1943)을 비롯하여 몇몇 작품에 착수했지만, 1945년 9월 26일 피아노 협주곡 3번의 마지막 마디를 미완성으로 남긴 채 백혈병으로 뉴욕에서 눈을 감았다. <버르토크, 그 삶과 음악스티븐 존슨 지음 이석호 옮김출판사 포노>


펠릭스 멘델스존 (1809~1847)
교향곡 제5번 ‘종교개혁’ d장조, op. 107 (1830/32)
<연주시간: 27분>



이 작품은 번호와는 달리 멘델스존의 두 번째 정식 교향곡으로서, 1830년의 ‘종교개혁 300주년’을 위해서 작곡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단 ‘종교개혁’의 연도에 대해서 잠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는데, 독일의 마르틴 루터가 가톨릭의 부패에 항거하여 유명한 ‘95개조 반박문’을
제시한 해는 1517년(이 기준에 따르면 올해가 ‘종교개혁 500주년’이다)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여기서 말하는 ‘300주년’의 기준이 되는 1530년은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기초문헌인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이 발표된 해이다.


1830년 여름 베를린에서는 프로이센 국왕의 명에 따라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발표 3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개최될  예정이었다. 

멘델스존은  이  행사를  겨냥하여  종교개혁을  주제로  한 일종의  표제  교향곡을 쓰기로  하고 영국 여행  중이던 1829년  초부터  구상에  착수했다.

하지만 작업은 예상보다 지연되었는데, 그가 런던에서 마차 전복사고를 당해 병석에 누워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작곡은 그 해 말 베를린으로 돌아온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고, 결국 ‘종교개혁 교향곡’은 1830년 5월 12일에 완성되었다.
아쉽게도 6월 25일에 열린 ‘종교개혁’  기념행사에서는 이  곡이 연주되지  않았고,  초연은 2년이 지난 1832년 9월 15일에 가서야 베를린 징아카데미의 콘서트에서 멘델스존 자신의 지휘로 이루어졌다.

이전까지 멘델스존은 이 작품에 대단한 기대를 걸고 있었으나, 정작 초연 후에는 매우 실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1악장을 가리켜 ‘뚱뚱하고 털이 빳빳한 동물’에 비유했는가 하면, 다시는 이 곡을 연주하지 않았다.
비록 작곡가 자신은 실망감을 피력했지만, 이  장엄한 교향곡은 이른 나이(작곡 당시 21세)부터  대가적인  면모를  드러냈던  멘델스존의  천재성이  엿보이는  수작이다.  전편에  걸쳐  탁월한 선율감각, 투명한 관현악법, 적절한 양식감 등이 돋보이며, 특히 짜임새 있는 대위법이 주종을 이루어 낭만시대에 새로운 음악적 방향을 시사한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제1악장은 D장조의  느린  서주로  출발하는데,  시편의  인시피트(D-E-G-F#)를  팔레스트리나 풍의  대위법으로  처리한  부분에 ‘드레스덴  아멘’이  부드럽게  응답한다.  이 ‘드레스덴  아멘’은 19세기 초부터 드레스덴의  궁정예배에서  사용된  독특한  상행 모티브인데, 바그너는 <파르지팔>에서 이것을 ‘성배의 모티브’로 전용하기도 했다. D단조의 주요부에서는 강력한 포르테의 투티로 제시된 제1주제가 주도하는 투쟁적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 첫 악장은 구교와 신교의 갈등과 대립을 상징한 것이라 한다.


제2악장은  멘델스존  특유의  우아하고 경쾌한  분위기가  두드러지는  스케르초 악장으로  목가적인  시골의  풍경과  정서를  환기한다. 

제3악장은  간주곡  풍의  느린  악장으로서 ‘오케스트라에 의한 무언가’라고 할 만큼 가곡풍의 선율미와 회상조의 분위기가 두드러진다.


제4악장은 루터교 코랄 ‘내 주는 강한 성이요(Ein' feste Burg ist unser Gott)’의 선율에 의한 일련의  변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멘델스존은  소나타  형식과  푸가  형식을  결합함으로써 작품 이면의 이념과 음악을 이상적으로 융화시킨 경지를 지향했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SPO잡지)



Mendelssohn Symphony No 5 D major minor Reformation John Eliot Gardiner Bayerischer Rundfunk



1830년 종교 개혁 300주년 축제를 위해 작곡된 두번째 교향곡이나 출판이 늦어져 제5번이 되었다. 제1악장엔 루터파 교회의 합창인 '드레스덴 아멘'이, 제4악장엔 코랄 '내 주는 강한 성'의 악절이 포함되어 '종교 개혁'이란 표제가 붙게 되었다. 멘델스존 집안은 유태인으로 유태교에 속하고 있었으나, 아버지 때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여 '멘델스존-바르톨디'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다. 이 교향곡은 루터가 카톨릭교에서 신교를 만든 종교개혁 이래 300년째가 되는 축전에 임해서 작곡한 것이며, 1832년 11월 멘델스존의 지휘로 베를린에서 초연되었다. '드레스덴 아멘'이라 일컬어지고 있는 아멘이라는 말에 가락을 붙인 짧은 찬송가 구절을 으뜸선율로 하고, 또 루터가 만든 코랄 '내 주는 강한 성'을 도입하여, 축전을 축하하는 기쁨의 감정(제2악장), 경건한 기도(제3악장), 신교도의 종교 개혁에 대한 장엄하고 엄숙한 마음 속의 찬미(제4악장)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