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클래식2017년)

카르미나 부라나/서울시향,캐슬린 킴/17.7.5.수/예술의 전당

나베가 2017. 7. 4. 01:41

카르미나 부라나  Carmina Burana







지휘, 이브 아벨 Yves Abel, conductor
소프라노, 캐슬린 킴 Kathleen Kim, soprano
카운터테너, 김강민 Kangmin Justin Kim, counter tenor
바리톤, 마르쿠스 브뤼크 Markus Bruck, baritone
 
합창 Choir
국립합창단 The National Chorus of Korea
안양시립합창단 Anyang Civic Chorale
서울모테트합창단 Seoul Motet Choir
평화방송소년소녀합창단 The PBC Boys & Girls’ Choir of Seoul
 
[프로그램]
오르프, 카르미나 부라나
 
Orff, Carmina Burana
 
섹스, 술, 구운 백조…. 합창음악이 이토록 흥미진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 가사를 쓴 중세의 독일 수도사들은 개의치 않았던 듯하다. 이 유별난 칸타타에 신성한 요소라고는 없다. 거대한 음향, 에너지, 철두철미한 일탈이 있을 뿐이다. 대중적으로 제1곡 ‘운명의 여신이여(O Fortuna)’가 알려져 있지만, 이 부분만 아는 사람들에게는 이 공연이 엄청난 발견의 기회가 될 것이다. 오페라 지휘자로 인정받아왔으며 북서독일 필하모니 지휘자인 이브 아벨이 색채와 힘, 그리고 적나라한 드라마를 이끌어 내고, 멋진 솔로이스트들과 함께 청중을 압도할 것이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사운드 에너지와 박력 속에 몸을 맡길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

노승림(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음악 칼럼니스트)


지휘, 이브 아벨 Yves Abel, conductor


 이브 아벨은 2005년부터 7년 간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 극장의 주요 객원 지휘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오페라와 교향곡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해왔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런던 ROH 코벤트 가든, 빈 국립 오페라, 라 스칼라 극장, 파리 국립 오페라 등 여러 오페라 무대에서 성공적으로 공연을 이끌어왔으며 리버풀 왕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로테르담 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 네덜란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볼차노 하이든 오케스트라 등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르네 플레밍, 토마스 햄슨, 수잔 그레이엄, 파트리샤 프티퐁, 엘리나 가란차 등 유명 성악가들과 함께 데카, 도이치 그라모폰을 통해 여러 음반을 발매했다. 프랑스 오페라 레퍼토리에 활력을 불어넣은 업적을 인정받아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으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Chevalier de l’Ordre des Arts et Lettres)를 받았다.




소프라노, 캐슬린 킴 Kathleen Kim, soprano

 캐슬린 김은 서울 출생으로 서울예고 재학 중 도미 맨해튼 음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7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데뷔한 이후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작은 강력 발전기 같다’ ‘완벽한 콜로라투라’라는 평가를 받으며 활약하고 있다.

 2009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제임스 레바인 지휘의 ‘호프만의 이야기’ 중 올림피아를 시작으로 파비오 루이지 지휘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의 체르비네타 역과 ‘가면 무도회’의 오스카 역을 노래했다. 2011년 존 아담스 작곡 ‘중국에 간 닉슨’의 메트로 폴리탄 오페라 초연에서 장칭 역으로 출연해 세계 오페라 계에 다시 한번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유럽 무대에는 스페인 빌바오 오페라에서 ‘연대의 딸’의 마리역으로 2009년 데뷔한 이후 뮌 뮌헨 국립극장, 릴 오페라, 글라이드본 페스티발, 바르셀로나 리세우 극장 등에서 활약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BBC Proms에서 BBC 오케스트라, 오슬로 필하모닉 등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했다. 2010년 서울시향 광복절 기념 객원 독창자로 출연한 것을 비롯해 말러 교향곡 8번과 베토벤 교향곡 9번 연주를 정명훈 지휘 서울시향과 함께 했다. 2013년 4월에는 고국에서 처음으로 솔로 콘서트를 예술의전당에서 개최했다.







칼·오르프(CARL ORFF)는 1895년 7월 10일 뮌헨에서 출생한 현대 독일의 대표적인 작곡가의 한 사람이며 교육자이다. 일찍부터 음악적인 자질을 발휘하여 피아노, 오르간, 첼로를 배웠으며, 어렸을 때는 자작의 인형극에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 16세 때인 1911년에는 벌써 50곡 이상의 가곡과 니체의「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의한 합창, 관악 오케스트라, 2대의 오르간, 2대의 피아노, 2대의 하프를 위한 대작을 완성하였다.

 

1913년 일본의 가부끼에 따른 최초의 오페라「희생」을 작곡했다. 1914년 뮌헨 고등음악학교를 졸업 후, 1915년 -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그 후 뮌헨·만하임·다름시타르 가극장의 지휘자를 역임하였으며, 1921년에는 뮌헨에서 카민스키(HEINRICH KAMMISKY1886∼1946)에게 사사했다.

 

1924년 도로테킨터(DOROTHEE G NTHER)에 의하여 창설된 고전교육·음악·무용을 위한 <귄터학교>의 음악 교육부에서 교편을 잡음으로써 교육자로서 출발했다. 1930년 - 1933년에는 뮌헨 바하협회의 지휘자로써 재직하여, 바하의「마태 수난곡」을 무대극으로 연주했다.

 

1937년 그의 대표작인 무대 형식에 의한 칸타타 3부작「승리」의 제1부인「카르미나 부라나」를 완성,

초연하고, 1939년「달」(DER MOND), 1943년에는「승리」의 제2부인「카툴리·카르미나」, 1953년에는 제3부인「아프로디테의 승리」를 초연했다.

 

1943년에는 오페라「재치여인」(DIE KLUGE), 1949년에는 오페라「안티고네」(ANTIGONAE)등을 계속 발표하여 오페라 및 극음악 작곡가로서의 지위를 확고하게 구축하였다. 1950년 - 1955년에는 뮌헨 고등음악학교 작곡가 주임교사가 되었으며, 1955년에는 튀벙겐 대학, 1972년에는 뮌헨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후에 바이에른 미술원 회원이 되었으며, 1982년 3월 29일 그의 고향 뮌헨에서 사망하였다.

 

지휘자 및 교육자로서도 명성이 높았던 독일의 대표적인 현대 작곡가 칼 오르프(Carl Orff)는 일찍이 음악적 자질을 발휘하여 16세에 이미 50여 곡의 가곡과 수많은 합창곡을 완성하였다. 1930년경부터 독자적인 작곡 양식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 1936년에는 그의 대표작이자 출세작인 “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를 내놓게 되었는데, 이 작품은 1942년에 작곡된 “카툴리 카르미나(Catuli Carmina)", 1951년에 작곡된 “아프로디테의 승리(Trionfo Di Afrodite)”와 더불어 무대 형식에 의한 칸타타의 3부작 “트리온피(Trionfi:승리)”의 제1부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주제가 되는 소재를 전개시키지 않고 반복함으로써, 간결한 형식과 하모니, 그리고 일관된 리듬이 두드러지고 있으며, 대위법적 수법을 완전히 배제하여 단순한 구성을 끝까지 고집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이 작품의 매력이다. “카르미나 부라나”에 의해 확립된 칼 오르프 특유의 작곡 양식은 이후 그의 모든 작품을 규정짓고 있으며, 동시에 새로운 무대 음악으로서 현대음악의 한 분야를 개척한 것이 되었다.

 

“카르미나 부라나”는 라틴어로 “보이에른(Beuern:현재의 바이에른)의 시가집”이란 뜻이다.

중세(11-13세기) 유랑승이나 음유시인들이 노래한 도덕, 사랑, 유희, 종교 및 외설 등에 관한 시가집이 1803년 뮌헨 남쪽에 위치한 바이에른 지방의 베네딕트보이에른 수도원에서 발견된 연유로 “카르미나 부라나”란 이름이 붙여졌는데 칼 오르프는 이 시가집에서 24곡의 가사를 채택하여 새로운 대작을 만들어낸 것이다.

 

머릿속이 복잡한 자를 위한 칸타타

詩人의 음악 읽기 카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

김갑수 시인·문화평론가




독일 지휘자 오이겐 요훔은 카르미나 부라나를 초연했다. 1952년에 모노로, 67년엔 스테레오(사진)로 두 차례 녹음도 남겼다. 둘 다 뛰어나지만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67년 음반은 오늘날까지도 베스트셀러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박목월 시에서 바람은 ‘니 머라카노, 머라카노’ 하면서 불고, 김춘수 시에서 어린 소년의 북소리는 ‘살려다오, 죽여다오’ 하면서 둥둥 울린다고 표현됐다.

한겨울밤 내리는 눈은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 쌓인다고 미당 서정주는 썼다.

총선은 끝났고 당장이라도 나꼼수의 김용민을 만나 이 시들을 들려주고 싶다. 특히 ‘괜찮다, 괜찮다…’ 하는 구절을 읊어주고 싶다. 몇 해 전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무턱대고 포옹했는데 정말 하마같이 컸다.

지금 주저앉은 그 덩치를 보듬어 안고 괜찮다, 괜찮다 말해 주고 싶다.

낙백(落魄)이라는 낱말을 아는가. 넋을 놓는 것, 처지가 형편없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일생에 한번쯤은 낙백을 한다. 그러나 그래도 어떻게 시간은 간다. 정히 괴롭다면 공지영의 오래된 에세이집 상처없는 영혼을 읽어 보라. 두 번째 이혼을 감행하고 외국으로 피신해서 정말로 수치심에 몸서리를 치며 써내려간 글이다. 피로 써내려간 것 같은 문장, 바로 그것이다.

정말로 낙백했을 때 위로를 주는 음악이 있을까. 경험에 비추어 보면 그러한 것은 없었다.

약혼식 올리고 유학 떠난 그녀를 8년 반이나 오매불망 기다렸는데 돌아온 말이라고는 같은 학교의 어떤 ‘형’을 사랑한다는 거였다. 아, 미국유학! 그때 나는 어디서든 영어만 들려오면 가슴이 찢어져 미친듯이 울부짖고는 했다. 음악? 음악이 무슨 개뼈다귀라는 말이냐!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다.

영화 ‘파리, 텍사스’에서 절망한 주인공 트레비스가 말한다.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고 몇 년이 흘러갔다고. 낙백은 그런 것이다.

낙백한 영혼이 긴 잠에서 깨어나 기력을 찾아갈 때 들을 만한 음악이 있다. 장담한다. 경험담이니까.





너무나 유명한 곡이라 설명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원시전례의 분위기로 타악기와 복수의 독창자 및 합창으로 구성된 무대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란 원래 중세 유랑승들의 방종한 행각을 담은 시로 200여 편 남아있는데 1936년 오르프가 현대적 해석으로 새롭게 창작한 곡이다.

 

모두 3장 구성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운명의 여신, 달처럼 변하고 예측할 수 없는 여신, 수레바퀴처럼 회전하면서 인간의 운명을 관장하는 여신에게 드리는 기도가 그 내용이다.

 

이 유명한 곡에서 세 가지 측면을 말하고 싶다. 먼저 고도의 단순성. 하나의 강렬한 리듬패턴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는데 그 흥분한 듯 고양되어 진행되는 단순함이 일종의 오토마티즘이라고 할까, 매우 헝클어진 반지성적 정서반응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미치광이 백수 광부의 외침을 떠올려 보자.

또 하나 이 곡의 파쇼적 성격이다. ‘집단적 굴종의 테마’라 부르며 ‘카르미나 부라나’를 비판하는 음악학자들이 있다. 집단성을 표상하는 합창이 독주자를 압도하면서 복잡한 사적 내면성을 비웃는 것 같다.

실제로 히틀러 전성기에 발표되어 각광받았고 오르프는 제3제국 공인 음악가이기도 했다(하지만 나치 부역자에서 그는 면제된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 곡의 육체성이다. 예술적 승화 이전의 상태. 그 생경한 날것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므로 곡에 반응하는 태도 또한 요즘으로 치면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을 즐기듯 몸으로 느끼는 것이 옳다.

아, 잘 표현을 못하겠다. 낙백한 자에게 왜 ‘카라미나 부라나’가 힘을 줄 수 있다는 건지. 앞서 말한 단순성·집단성·육체성이라는 명제가 절망한 인간에게 어떻게 치유책이 될 수 있는지. 그냥 쉽게 말해서 아무리 복잡한 생각에 빠져있어도 그 생각을 무력화시키는 힘을 지닌 곡이라는 것. 그리고 함께 떠오르는 것이 있다.

오르프의 아내였던 작가 루이제 린저의 회상.

 

‘나는 날마다 남편의 죽음을 대비해야 했다.’

 

카를 오르프는 한밤중에 집을 나와 죽음의 속도로 차를 몰아대는 취미가 있었다. 엔진이 터져나갈 듯 최고 속력으로 아우토반을 달리다 새벽녘에 돌아와 기진해 쓰러져 자곤 했다는데 그는 왜 그래야만 했을까.

죽음의 질주로 견뎌야 했던 스트레스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 긴장이 ‘카르미나 부라나’를 배태했을 것이다.

세간에 발가벗겨져 손가락질 받게 된 김용민이건 울며불며 맥주컵을 씹어 어금니를 모조리 망가뜨린 한때의 내 꼬락서니건 또는 모르는 누구건 겪어 보면 안다. 절망은 멋이 아니다. 그냥 죽음이다. 그 죽음에서 깨어나면 다른 인간이 되어있는데 아주 더럽다. 강한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강인한 인간을 참 더럽다고 생각한다. 다시는 절망하지 않는 내성 같은 건데 순결을 잃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까. 에효….
‘카르미나 부라나’의 거창한 도입부는 이런 대사로 시작한다.

 

“오, 운명의 여신이여!”




5. 곡의 해설

서(序)

제1곡 ;「운명의 여신이여」합창. 마지막곡인 25번째 곡으로 반복되는「운명의 여신이여」는 온음표에 의한 박자가 느린 서주가 있는 다음에 갑자기 템포가 빨라지면서 주제가 변함없이 집요하게 되풀이된다.

가사 ; 오 운명이여 / 늘 변하는 달과 같이 / 돌아오르다가 기우는 / 그대 운명이여 / 얄궂은 운명은 / 때론 가혹하게 / 때론 친절하게 우리를 대한다 / 우리의 욕망을 희롱하고 / 얼음과 같이 녹고 마는 / 권력과 빈곤을 주기도 한다 / ……

제2곡 ;「운명의 타격」합창. 먼저 베이스가 짧은 주제를 노래하고 합창이 가담한다. 같은 곡이 세 번 되풀이된다.

가사 ; 운명이 갖다준 상처를 / 눈물 가득고인 눈으로 애도하네 / 운명은 갑자기 되돌아와서 / 나에게 주었던 선물을 거두어 갔네 / 사람들의 말은 사실인가 / '무성한 머리도 곧 그 숱이 줄어든다' / ……

서(序) 1, 2곡은 모든 것이 운명에 지배되는 것이므로 운명 앞에는 모든 것이 복종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는 운명의 힘의 위대함을 노래하고 있다.

제1부 ;「봄」

제3곡 :「아름다운 봄의 얼굴」합창

제4곡 :「태양은 모든 것을 부드럽게」바리톤 독창. 매우 자유롭고 부드러운 감정으로 노래한다.

제5곡 :「봄이여 잘 왔도다」합창

제6곡 : 무용. 성악없는 리드미한 춤곡으로 박자의 변화가 매우 격렬하다.

제7곡 :「숭고한 숲」합창

제8곡 :「점원이여, 볼연지를 주세요」소프라노 독창과 합창

제9곡 :「원무」합창, 작은 합창, 합창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제10곡 :「세계가 나의 것이 된다 하더라도」합창. 만약 이 팔로 영국 여왕을 껴안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세계를 버리겠다는 코믹한 노래이다.

제2부 ;「주막에서」

제11곡 :「노여움으로 마음이 가라앉지 않고」바리톤 독창

제12곡 :「지난날 내가 살던 호수」테너 독창과 남성 합창. 해학적인 독창이다.

제13곡 :「나는야 승원장이다」바리톤 독창과 남성 합창.

제14곡 :「주막에서는」남성 합창. 대편성의 오케스트라와 합창에 의한 활기있는 곡으로 전곡 중에서 가장 길다.

제3부「사랑의 이야기」

이 제3부의 각 곡은 다음과 같은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어디에서나 사랑의 신은 날아오는 것으로, 연애는 땅바닥에 굴러 다니는 것이다.(제15곡) 실연으로 말미암아 큰 상처를 입은 사나이가 있었는데(제16곡), 그는 때때로 붉은 옷을 입은 아름다운 처녀와 만나(제17곡), 먼저의 실연으로 탄식하면서도 이번에는 이 처녀의 아름다움에 동경의 마음을 품게 된다(제18곡). 젊은이와 처녀가 있다면 거기에 사랑의 싹틈은 자연의 법칙(제19곡). 젊은이는 그 처녀에게 구애하게 되는데(제20곡), 맨 처음 처녀는 그 사랑과 정절에 고민한다(제21곡). 그러나, 새로운 사랑에 기뻐하는 젊은이의 열렬함에(제22곡), 이윽고 처녀의 심중에 사랑이 싹터서(제23곡), 그들은 그들의 노래를 환희로써 노래하게 된다.

제15곡 :「사랑의 신은 어느 곳에서나 날아오다」어린이 합창과 소프라노 독창

제16곡 :「낮 밤 모든 것이」바리톤 독창

제17곡 :「붉은 옷의 처녀가 서있다」소프라노 독창

제18곡 :「나의 마음은 탄식으로 가득하다」바리톤 독창과 합창

제19곡 :「젊은이와 처녀가 있다면」무반주 남성 합창

제20곡 :「오너라 오너라」합창

제21곡 :「방황하는 나의 마음」소프라노 독창

제22곡 :「즐거운 계절」소프라노 독창, 바리톤 독창, 합창과 어린이 합창

제23곡 :「사랑스러운 사람이여」소프라노 독창. 불과 4마디의 아름다운 카덴짜풍의 노래다.

제24곡 :「아아, 어디에 비길 수 없이 아름다운 것이여」합창 고대미의 이상형인 남자 브란찌프로와 여자 헬레나에의 찬가를 스스로의 환희 속에 노래한다.

제25곡 : 제24곡에 바로 연결되어 연주되는 이 합창은 제1곡의 반복이다.

 




운명의 여신

 

아, 운명이여!

그 변덕이 마치 달과도 같아
차오르다가도 이지러지누나!

가증스러운 인생
시련을 주었다가 위로하기도 하지

온갖 굴욕과 영광
마치 얼음처럼 사라져버리네

운명, 기괴하고 공허한 것.

스스로 바퀴를 돌리며 악의에 차
언제나 나에게 고통을 주네

그늘에 숨고 베일에 가리운 채로
항상 나를 시험하나니

이제 승부에서 벗어나
너의 사악함으로부터 등을 돌리리라.

운명은 나를 배반하여
내 몸의 건강과 영혼의 미덕을 빼앗아가네

남음도 모자람도
너의 뜻에 묶여 항상 노예상태라네

이젠 물러서지 않고 흔들리는 끈을 잡아 당기리

운명은 항상 강자를 쓰러뜨리나니
모든이가 나와 함께 눈물을 흘리네...





중세 시가, 르네상스 야외극과 현대극의 결합


원래 ‘카르미나  부라나’는 ‘보이렌의  노래’라는  뜻으로  총 250여  편에  달하는  중세시대  노래와  운문들이  수록된 시가집의 명칭이다. 이 시가집은 1803년, 뮌헨  근교  보이렌 지방의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두루마리  사본의  형태로  발견되었는데,  이것을 1847년에  바이에른의  문헌학자인 요한 안드레아스 슈멜러가 편집한 후 현재의 명칭을 붙여 처음 책으로 출판했다.

라틴어를 중심으로 중세독일의 방언, 옛 프랑스어 등으로 작성된 이 시가집에는 중세유럽 전역에 살았던 대학생, 수도승, 방랑학자, 골리어드(Goliard, 편력시인) 등이 지은 시가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풍자적이고 교훈적인 시, 사랑의 노래, 술과 도박의 노래, 성직자의 재담 등으로 다양하다.


오르프는 이 시가집을 1934년의  성목요일에 입수했는데, 첫 페이지를 열자마자 거기  담겨있는 내용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 첫 페이지에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운명의 수레바퀴를 관장하는  운명의 여신’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그 밑에는 ‘마치  달과  같이 변덕스러운  운명의 여신에 의해 좌우되는 인간의  운명’을 한탄하는 시가 적혀 있었다. 그  즉시 그의 머릿속에 노래와 춤이 어우러진 새로운 작품에 대한 구상이 떠올랐고, 그는 그날로 첫 페이지에 작품의
첫머리를 장식할 합창곡을 위한 간략한 스케치를 그려 넣었다.

결국 그는 이 시가집에서 20여 편의 시를 발췌하여 총 25곡으로 이루어진 극적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를 완성하게 된다.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는 3명의  독창자(소프라노, (카운터)테너,  바리톤)와  어린이  합창단을  포함한  대규모  합창단,  타악부가  증강된  대편성  관현악단을  요구하는  장대한  작품이다.  다만  거대한  규모와  편성에도  불구하고  음악은  한  순간도  복잡하거나  난해하게  들리지 않는데, 그것은 이 작품이 리듬, 선율, 화성, 구성 등 모든 측면에서 극단적인 간결성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듬은 민요의 박자와 유사한 획일적 형태로 되어 있고, 선율은 반음계를 포함하지 않는 선법적 형태로 짜여 있으며, 화성도 단순한 화음으로 일관하고 선율의 대위법적 처리는 배제되어 있다.  또  주요  동기들도 발전이 아닌  반복  수법을  통해 다루어지고있다. 이러한 특징은 작품에 ‘보수적’이라는 평가가 내려지는 빌미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그 단순성에  기초한  현란한  색채와  호쾌한  다이내믹이야말로  청중으로  하여금  직관적  감흥과 감각적 쾌락을 만끽하게 하는 비결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  작품의  외형은  고딕  성당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장미창(Rose  Window)을  상기시킨다. 즉 본론을 구성하는 다채로운 악곡들은 창의 내부를 수놓은 스테인드글라스처럼, 그 앞뒤에  놓인  대규모  합창곡들은  그것들을  둘러싼  창틀처럼  보이는  것이다. 

여기서  스테인드글라스는 다양한 인간사를, 창틀은 운명의 수레바퀴를 상징한다고 하겠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오르프는 인간의 모든 희로애락이 운명에 종속되어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편으로 교권주의가 지배하던 ‘암흑기’를 살아간 사람들의 자유에 대한 욕구와 갈망, 제도에 대한 저항정신을 형상화한 것이기도 했다.


운명의 희롱과 함께 굴러가는 세상사
오르프의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는 웅장한 합창이 운명의 여신이자 세상의 여왕인 ‘포르투나(fortuna)’를  소개하며  시작된다.  열광적인  표정과  역동적인  몸짓으로  점철된  제1곡 ‘운명의 여신이여’는 거대한 ‘운명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너무나도 유명한 이 첫 곡은 특유의 어둡고 강렬한 마력으로 대번에 청자를 휘어잡는다. 이어서 여신의 손아귀에 있는 인간의 운명을 한탄하는 제2곡이

비슷한 분위기로 이어진 다음, 작품은 크게 3부로 구성된 본편으로 진입한다.


본편의 제1부는 다시 ‘봄날에(제3~6곡)’와 ‘풀밭에서(제6~10곡)’의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에서는  자연의  신비에  대한  감탄,  봄을  맞이한 인간들의  감회와  환희가  그려지고,  짧은  관현악곡인 ‘춤곡(제6곡)’에  이어지는  후반부에서는  봄날이  한창인  들판에서  서로를  희롱하며
따스한  봄날을  만끽하는  젊은  남녀들의  모습이  다채롭게  그려진다. 

 내용상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떠올리게  하는  제1부는,  힘찬  팡파르로  출발하여 ‘영국여왕과  잘  수만  있다면 온 세상이 내 것이라도 포기할 수 있다’고 호기롭게 외치는 격앙된 합창곡으로 마무리된다.


제2부 ‘선술집에서(제11~14곡)’는 이 칸타타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대목이다. 제11곡 ‘분노의 마음 달랠 길 없고’는 인생의 실패를 경험한 한 사내(바리톤)가 자신의 무기력을 탓하는 내용이다. 이 박진감 넘치는 곡은 말을 타고 달리던 사내가 선술집 앞에 내리면서 끝난다.

선술집 안에서는 요리사가 백조구이를 준비하고 있다. 제12곡 ‘지난 날 나 살던 호수’는 화로 위에 걸려 회전하며 구워지고 있는 백조가 부르는 노래로 낭만주의를 풍자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테너(카운터테너)가 팔세토(falsetto, 가성)로 구슬프고도 우스꽝스러운 노래를 부른다.

제13곡 ‘나는야 대수도원장님’에서는 타락한 성직자가  등장한다. 익살과 해학이 넘치는 이 곡에서는 바리톤이 반주 없이 중세 그레고리안 성가에서 따온 선율을 즉흥적으로 노래하며, 그 중간 중간  관현악과  합창이  요란한  외침으로  끼어든다. 

제14곡 ‘우리가 선술집에 있을  때’는  술집에 모여든 인간군상을 생생하게 묘사한 장대한 합창곡이다. 이 곡은 마치 맥주축제로 유명한 오르프의 고향, 뮌헨의 술집 분위기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하다.


제3부 ‘사랑의 정원(제15~23곡)’에서는 한 쌍의 남녀 간에 사랑이 싹터 연인으로 발전하기까지의  과정이  아기자기하고도  관능적으로  그려진다. 

큐피드의  활약을  암시하는  어린이  합창의  귀여운  노래로  출발하여 외로움을  토로하는  소프라노의  노래,  사랑을  동경하는 바리톤의  노래가  이어지고,  두  남녀  사이에  벌어지는  사랑의  줄다리기가  재치 있게  묘사된다.  특히 ‘내 마음 속에는(제18곡)’, ‘오라, 오라, 오라(제20곡)’, ‘지금은 즐거운 시간(제22곡)’ 등에서의 과장된  제스처와  익살맞은  표정이  돋보이고,  소프라노  독창이  펼쳐지는 ‘균형자  위에서(제21곡)’와 ‘가장 달콤한 연인이여(제23곡)’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마침내 제24곡 ‘브란치플로르와 헬레나’에서 합창은 두 사람의 결합을 축하하면서 고대의 이상적인 미의 표상들을 찬양한다. 그런데 그 절정의 순간에 합창이 사랑과 미의 여신인 ‘고귀한 비너스’를 부르짖자, 갑자기 무시무시한 음향이 터져나오며 ‘포르투나’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다.


오르프 자신은 이 작품을 ‘악기 반주를 수반하고 무대 장면에 의해 보완되는, 독창과 합창을 위한 세속 가곡’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이  작품은  주로  콘서트홀에서  합창곡 형식으로 연주되는 경우가 많지만, 원래는 화려하게 꾸며진 무대에서 무용을 곁들여 공연하도록 되어 있다. 오르프에게 음악이란 ‘소리, 언어, 동작의 삼위일체’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 작품을 통해서 비로소 독자적인 작풍을 개척했다고 판단한 오르프는 자신이 이전에 발표했던 작품들을 모두 거두어들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의 작품목록은 ‘카르미나 부라나’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