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배낭을 꾸려 한달이라는 믿을 수 없는 여행을 떠난것이 아프리카 여행이었다.
서울엔 이미 예약이 다 끝나서 하루가 꼬박 걸려 인천까지 가서 황열병 예방 접종을 맞고 오던 날...
팔뚝에 붙여진 반창고를 오는 내내 보며 흉한게 아니라 무슨 훈장이라도 되듯 자랑스럽게 봐라 보았던 때가
갑자기 머리를 스친다.
그래~그런거야.
무엇을 꿈꾸고 그것에 첫 발을 내 딛는다는건 자신에게 있어서 그 어떤것 보다 값진 훈장이지.
그 첫발이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것....
매 순간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용기를 가질 수 있으며 도전을 멈추지 않게 한다는 것....
분명 그것은 그 누구도 갖기 힘든 훈장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시작한 환상적인 세계로의 나의 발디딤은 계속되었고, 급기야 감히 입에 담기도 어려운
빙하탐험이라는 것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번 비아포 히스파 빙하 트래킹은 카라코람 히말라야에 있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산인 K2 를 비롯해서 8000m급 산이 4개가 한곳에서 펼쳐지며
수십개의 7500m급 산군이 밀집해 있는 곳중 한 곳의 빙하계곡을 통과해 훈자까지 나오는 코스다.
시작은 K2 bc 를 들어가는 길목과 같아서 아스꼴리까지 들어가서 시작해 졸라로 올라가는 중간에 빠진다.
이번에도 작년 K2와 같은 숫자의 4명 정식 팀원과 가이드 1명과 쿡 2명을 포함 30명이 넘는 숫자의 포터와 4마리의 말이 동원되어
거대한 캬라반을 꾸려 떠났다.
이 팀원은 트래킹이 진행되는 동안 먹거리들이 줄면서 중간 중간 하산을 했고, 본격적인 빙하위로 접어들면서는 25명이 끝까지 함께 했다.
히스파라까지가 최대 위험수위라는걸 뒤엎고, 네팔 지진의 여파였는 지 히스파 빙하는 인간의 접근을 거부하고 있었다.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사고가 있었다면 우리는 두려움때문에 포기를 했을 지도 모르겠다.
수십 킬로미터나 된다는 크레바스들이 사방으로 널부러져 있었고
히스파라를 넘을땐 치명적인 하얀 설원에 숨어있는 크레바스들이 숨쉴틈없는 긴장감으로 몰아 넣었고
본격적인 히스파 빙하에 접어들어선 공포속에서 사투를 벌였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이
눈으로는 공포스러운데 가슴으로는 해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가득했다는 거다.
그건 번뜩이는 눈빛으로 사방을 헤메이며 탈출구를 찾는 스텝들의 행동과 한결같은 마음으로 서로 도우며 위험을 건너는
포터들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곳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때문에 눈물을 한없이 흘렸다.
내가 무엇이라고....
나를 위해 목숨을 거는 저들의 행위를 보고 고마움을 뛰어넘는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다.
세상이 존재하는것은
이렇듯 목숨을 걸고 자기 자신의 소명에 책임을 다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때문이란걸 알았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아름다운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번 여행에서 비아포 히스파 빙하의 장엄하고 험준한 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에 감동을 받은것이 아니라
우리로선 이해하기 조차 힘든 자신의 소명을 천사같은 모습으로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천국을 발견했다.
그것은 이제까지 내가 본 것중에 최고로 아름다운 모습이었고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었다.
이번 여정의 처음부터 2부 여정의 페어리메도우까지 우리의 가이드를 맡았던 후세인 이다.
후세인은 2014년 파키스탄 여정중 마지막으로 칸데에 머물때 보았던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당시엔 우리의 가이드도 포터도 아닌 칸데의 명가수로서 우리의 파티에 참석했었다.
일부러 초청해서 스텝들과 씨족마을인 칸데 식구들이 익발 하우스에 모여 춤과 노래를 벌이며
머릿속에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사람.....
원래는 가이드가 아닌 쿡이었었다.
처음 스카루두 숙소에 후세인이 나타났을땐 믿을 수가 없었다.
쿡이며 명가수였던 후세인이 우리의 가이드라는게....
그러나 2014년 박정헌과 SBS 촬영팀과 함께 이곳 비아포 히스파 빙하를 함께 건넜고,
2015년 우리 팀을 이 위험속에서 무사고로 끝까지 잘 이끌어 준 최고의 수훈자다.
40대인데 고생을 해서 겉모습은 우리나라의 60대 노인처럼 나이가 들어보이지만,
페어리 메도우 일정을 마치며 만난 대학생인 아들을 보니 얼마나 반듯하게 잘 키웠는 지....
아버지의 힘든 삶이 결코 헛되지 않은...보는 우리가 다 가슴이 뿌듯했었다.
야생에서의 가이드 능력이 뛰어나며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날만큼 가슴이 따듯한 사람이다.
쿡 보조인 키친보이 올람B 이다.
쿡도 똑같이 이름이 올람이라서 ....ㅎㅎ
올람B는 2014년 파키스탄 여행중 칸데의 밍글로 블록과 낭마밸리 여정중 함께했던 키친보이이다.
낭마밸리에서 내 텐트앞에 살인미소의 핸섬보이 모신과 나타난 올람은 덩치는 커다란데 얼마나 귀여운 지....
몇 시간 동안이나 낭마밸리의 구석 구석과 K6 산군의 낭마 빙하까지 누비며 화보촬영을 하고 놀았었다.
그렇게도 여유롭고 환상적인 소풍의 기억이 생생한데 이번 이 험준한 비아포 빙하 여정에 우리의 쿡 보조-키친보이로 함께 한다니
그 반가움이 얼마나 큰 지....
히스파 라를 넘을때 너무나 추워서 내 캐시미어 머플러를 얼굴에 씌워주었더니, 얼마나 좋아하며 끝까지 벗지않고 저리 쓰고 다니는 지....
우리의 모습과 달리 너무나 성숙한 모습인데 하는 행동은 천진난만하기 이를데 없다.
하긴 올람B의 나이...이제사 27살...
칸데마을 사람들은 20세가 되기 전에 이미 결혼을 하여 우리의 3-40대의 삶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힘이 장사여서 우리로 하여금 '헤라클레스' 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며
피켈을 들고 험악한 히스파 빙하의 사방을 누비며 찍어 탈출구를 만들었던 장본인이다.
꽤를 사릴줄 모르며 키친보이로서만이 아니라 비아포 히스파 빙하 트래킹에서의 우리의 보조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해낸 수훈자다.
미소가 보여주듯 천사같은 올람이다.
그나 저나 7년이나 키친보이를 했다는 올람B도 빨리 쿡이 되어야 할텐데.....
2015년 파키스탄 전체 여정에 있어 우리의 쿡이었던 올람A이다.
올람A의 나이는 30대....
말이 없고 듬직한 성품으로 우리의 음식을 만들어 주며 올람A역시 가이드 후세인을 도와 보조 가이드 역할까지 훌륭하게 해낸 수훈자다.
말이 워낙 없어 처음엔 꽤나 어른처럼 느껴졌었는데, 들꽃을 한 웅큼 따다 귀에 꽂고 폼을 잡고 있는 올람을 보니
올람 역시 여유와 위트가 물씬 풍기는 젊은이다.
처음 내 앞에 쿡으로서 나타난 올람A를 보고는 사실 실망감과 서운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2014년 K2여정에서 쿡을 맡았던 임티아스와 헤마옛이 당연히 우리와 함께 할 줄 알았었기 때문이다.
주방에 들어가 식사를 도우며 한국음식 하는 법을 가르쳐 놓았는데....
그래서 이번 여정때 그들과 해먹으려고 한국 음식 재료를 단단히 준비를 해왔거늘.....ㅠㅠ
사실 전반적으로 한국 원정대 팀을 따라다니며 쿡을 맡았던 임티아스와 헤마옛이 훨씬 음식을 잘했고, 한국 음식 가르치기도 수월했지만,
대신 올람A,B가 훨씬 더 순수한 맛은 있어 여정 내내 더없이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한국음식이라곤 라면 하나도 끓이지 못하지만 푸딩은 황홀할 정도로 아주 잘 만든다.
포터들을 이끌고 있는 대장 사다르-사비르다.
위험천만의 이번 여정을 무사히 성공시킨데 후세인과 함께 가장 수훈자임에 틀림이 없다.
2015년까지 비아포 히스파 빙하를 10번이나 건넜지만 이번 처럼 험악한 일은 처음 겪은 일이라고 했다.
그래도 여러번의 사다르의 경험과 놀라운 체력으로 이번 여정을 기막히게 이끌어 냈다.
너무나 힘들었던 여정때문이었는 지
처음 가죽 재킷을 입고 너무나 당당하고 멋지게 나타났던것과는 달리 후반부에는 두통과 복통으로
우리가 모두 느낄정도로 고통스러워 했다.
달리 대장이 되는게 아니다.
통솔력과 함께 이 모든 스트레스를 감당해 낼수 있는 자가 바로 포터들의 대장 사다르가 되는거다.
히스파 빙하의 탈출로를 찾느라 동분서주함은 물론이고
거대한 바윗돌을 굴리며 쏟아져 내리는 빙하계곡의 물살속에서 포터들과 우리들을 안전하게 건네준
누구보다 솔선 수범하여 위험에 뛰어든 대장이었다.
히스파라를 넘으며 위험천만의 숨은 크레바스를 무사히 넘고나서 잠시 쉬고는
또다시 출발하기 직전 알라신께 기도를 바치는 모습이다.
그 어떤 기도문 보다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던 모습이다.
2014년 K2 여정과 칸데 밍글로 블록과 낭마밸리의 여정을 함께 했던 유라시아다.
이번 여정을 처음으로 주창했고 끝까지 팀을 이뤄낸 수훈자이다.
이번에도 2014년과 마찬가지로 우리보다 먼저 출국해서 2014년 3부 여행지였다가 날씨가 나빠서 포기했던
칸데의 K7 차라쿠사와 익발탑을 다녀와서 스카루두에서 우리와 합류해 여정을 끝내고,
또 남아서 파키스탄의 다른 지역을 여행하고 두달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2016년에도 여전히 파키스탄의 험준한 트래킹을 꿈꾸며 암벽과 빙벽훈련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2014년 K2여정을 함께 했던 알쏭이다.
이번 여정에 처음으로 합류한 워크딕님이다.
오래전 K2,곤도고로라패스를 넘은것은 물론이고 이번 파키스탄 여정이 벌써 3번째인 트래킹의 고수...
아니, 2007년 차라쿠사 등반 원정대원으로 참가했던 전문 산악인 출신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수많은 여행을 했고,
사막 마라톤이라는 꿈의 세계에 도전을 해서 완주를 해낸 슈퍼맨으로
매사에 빈틈이 없는 철저하신 분이다.
2014년에 K2를 비롯 46일간 파키스탄의 3부 여정을 마치고, 다시 오겠노라고 약속했던 파키스탄에 몸을 실은
선택의 달인-복많은 여인네 나다. ㅎㅎ
아쉽게도 워낙 파키스탄 사방에 터진 산사태로 로드블럭이 되어
목숨을 건 비아포 히스파 빙하트래킹을 끝내고 난 뒤, 2부 여행이었던 '파수,심샬,밍글샤르 트래킹'이 무산되고
2014년 낭가파르밧 여정을 그대로 되밟고 돌아온 안타까움과 아픔이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파키스탄은 내게 있어 치명적인 유혹을 받고 있는 곳이다.
한동안 이번 여행의 발자취를 던져 놓았었지만,
다시 그곳으로 들어가니 심장이 떨어져 내릴듯 쿵쾅거리며 그리움이 치닫고 있는걸 보니
분명 또다시 이곳으로 발을 내딛지 않을까 싶다.
아직도 세계로의 발디딤의 꿈을 여전히 꾸고 있으며
몸을 만들기 위해 매주 등산과 유연성과 균형감각을 키우기 위해 요가를 배우고 있다.
사진을 보니, 지쳐서 질질 끌려가는 나와는 달리 가이드 후세인의 눈알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듯 번뜩인다.
이 위험한 상황에서 우리 모두를 안전하게 탈출시키기 위해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그에겐 얼마나 절박한 상황이었는 지 뒤늦게 느낀다.
눈물이 핑 돌게 만드는 사진속 발견이다.
어쩌면 이번 여정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사람인 지도 모르겠다.
이 시대의 진정한 헤라클레스 핫산이다.
인당 25kg의 짐을 절대 오버하지 않는 이들에게 있어서 우리가 보기에도 더 무거운 짐을 지었고,
사다르 못지않는 리더쉽으로 포터들을 이끌었다.
비아포 히스파 빙하트래킹을 마치고 마지막 밤에 벌인 파티는
이번 여정의 험준함과 함께 평생 잊지못할 축제로 영원히 남을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압권이었던것은 당연히 핫산이었다.
그의 춤은 지구가 태동하듯 땅이 울릴 정도였고, 파티내내 1시간이 넘도록 벌인 악기삼아 식자재 통을 두두렸던 힘은 가히
인간의 힘을 초월하였다.
뭐랄까....
포터가 아닌 기인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귀국해 벌이는 고대시대의 병정같았다고나 할까...
헤라클레스는 이날 밤 그에게 붙은 별명이었다.
안타깝게도 거대한 바윗돌 조차도 휩쓸고 흘러내리는 빙하계곡에 들어가 모든 스텝과 포터, 우리들을 건네주다가
바윗돌에 맞아 무릎부터 발목까지 완전히 다쳐 고생을 많이 했다.
그가 훈자에서 우리와 헤어질때까지 나는 정성을 다해 그의 다리를 치료해주며, 안타까움에 더욱 돈독한 정이 들었던 포터다.
이하 이번 여정에 함께 했던 포터들......
대학을 다니고 있는 포터다.
이들에게 있어서 포터는 힘들지만 매우 높은 돈벌이가 되기때문에 방학을 이용해서 할 수 있는한 이 일자리에 뛰어든다.
아무래도 단련된 어른들보다 힘듦이 보이기도 했지만, 젊기때문에 그만큼 또 맡은 일을 잘 해내었다.
험준한 히스파 빙하의 위험지구를 건널때는 나이든 포터의 짐을 대신 지어서 건네주는 모습을 보며
매우 감동을 받았었다.
포터들과 함께 우리의 카라반에 합류했던 말....
말 한 마리는 포터 2명의 임금을 받는다.
트래킹 시점부터 다친 다리의 통증때문에 초반에 하산을 하려던 포터였다.
그러나 내가 병원에서 여유있게 처방받아간 소염 진통제를 트래킹이 끝날때까지 처방해주어 무탈하게 트래킹을 마치고 훈자에서 헤어졌다.
2014년 K2여정에서도 함께했던 포터다.
힘이 정말 장사다.
바인타 브락에서 처음으로 포터 일부가 하산을 했다.
떠나기 전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단체 기념촬영을 한것이다.
포터들 중에서도 눈에 띄게 솔선수범하며 위험의 순간에 빛을 발했던 포터다.
마른 외모에 비해선 힘이 장사다.
하긴 여기 포터들치고 힘이 장사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가이드 후세인과 쿡 올람A, 올람B, 그리고 사다-사비르, 그리고 우리들...
바인타 브락에서 초반에 하산한 포터다.
훈자 모자에 목에 두른 에메랄드빛 스카프가 유난히 멋스러워 눈에 띄었던 포터다.
우리의 빙하트래킹이 끝나고 히스파 마을까지 걸어들어 오면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는 짚차로 훈자까지 이동하는게 원래의 일정이었다.
그러나 히스파마을에서 부터 일어난 산사태는 거의 길을 없애버린 수준에 도달했다.
매순간이 산사태 위험지구고, 성난 계곡 끝까지 거대하게 흘러내리고 있는 흙사면 길을 빙하와는 또다른 위험에 목숨을 걸고 또 걸었다.
차라리 이 후반부 여정이 무거운 짐을 지고 걷는 포터들에겐 훨씬 더 체력적 소모가 컸을 지도 모른다.
히스파 마을에서 차를 타고 순식간에 나갈 수 있는 길을 이틀 꼬박을 걸었다.
드디어 산사태로 로드블럭이 된 곳을 다 통과해 기다리고 있던 짚과의 랑데뷰....
이제서야 위험에서 한 숨을 크게 내쉬었다.
무탈하게 트래킹을 끝내준 포터들이 너무 고맙고 고마워서 일일히 포옹을 하며 카메라에 그들을 담았다.
결코 잊어서도 안되겠지만 영원히 잊고싶지 않아서....
언어 장애가 있던 포터였지만, 표정은 헤맑기 그지없다.
모두의 얼굴이 시작할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반쪽이 되어버렸다.
헤맑은 두 눈만이 검게 타버린 이들의 얼굴에서 반짝인다.
포터들중 노령에 속한 포터여서 험준한 히스파 빙하에서 힘듦을 보여주었지만
포터들이 한결같이 도와주며 위험한 순간들을 넘겼다.
내 짐을 맡았던 포터다.
역시 대학생이다.
영어도 잘하고 얼굴 전체에서 착함이 가득하다.
포터일이 다른 어른들 보다는 덜 익숙해서인 지 정말 고생스러워 가장 많이 마른것 같다.
입술이 터져서 매우 고생을 했다.
Carl Doy / Piano by Candlelight Carl Doy (New Zealand pianist)
Saint-Saens Le Cygne (The Swan) Cellow Soloist David Chicke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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