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에는 아래 사진처럼 무인 판매대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보통 1~2천원대에 가볍게 사서 요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양으로 소포장해서
길섶에 내놓은 것이다.
우리도 귤 한 봉지를 사서 가방에 챙겨 넣었다.
표지판을 보니,우리가 좀 전에 모델놀이를 펼친 넓다란 평원이 바로 '동너분덕(남주해금강)'이었다.
동너분덕은 거대한 바위 덩어리가 바다로 향해 돌출한 기암괴석으로 옥빛바다 위에 신선바위,문섬,범섬,섶섬이 미려하게 자리잡은 모습과
새연교를 한 눈에 볼 수 있어 남주 해금강이라고 일컬어진다 한다.
그 아름다움이 해금강이라고 불리고도 남음이다.
드디어 외돌개가 가까이 선연하게 보인다.
국가 지정문화재 명승 제 79호인 외돌개는 돌이 홀로 서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높이는 20여m,폭은 7~10m에 이른다. 화산이 폭발하여 분출된 용암지대에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돌기둥으로 시스텍(Sea stack)의 일종이다. 시스텍은 파도의 침식으로 이곳 바위들은 검고 구멍이 많은 현무암에 비해 회색이며 구멍이 작고 조밀한 조면안산암(천지연조면안산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지연조면안산암은 서귀포 남성리 일대, 천지연폭포 일대,서귀포 항 입구 등에 분포하며 지금으로부터 약 12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주변 해안은 파도의 침식으로 인한 만들어진 해식절벽과 해식동굴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외돌개는 고려말 최영장군이 원나라 세력(목호)을 물리칠때 범섬으로 달아난 잔여세력들을 토벌하기 위해 바위를 장군 모습으로 변장시켜 물리쳤다고 해서 '장군바위'라고도 한다.
쇠머리 코지다.
이곳도 아까 동너분덕 처럼 넓다란 평원으로 이곳에 서서 바라보는 경치가 장관이다.
차갑지만 세찬 바닷바람을 맞는 기분은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황홀하다.
온 몸의 찌꺼기들이 깨끗이 씻겨지는 듯한 기분....
역시 바람의 진면목은 시원한 여름 바람보다는 세찬 겨울 바닷 바람이 아닐까...ㅎㅎ
쇠머리 코지를 나서 서너분덕으로 들어섰다.
기인 내리막길이다.
그 초입으로 한창 돌담공사가 진행중에 있었다.
돌담 안으로 넓은 정원이 조성되고 그 뒤로 높은 언덕배기로는
대단위 리조트가 들어서고 있었다.
어??
작년 이맘때 왔을땐 공사진행중인거 몰랐는데....
언제 시작해서 저렇게 엄청난 공사가 진행된거지?
높은 빌딩이 아닌 나즈막한 리조트인것이 그나마 다행이긴 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해변에 자꾸 리조트들이 들어서는 것이 씁쓸한 기분을 준다.
조만간 올레길 주변이 다 망가지는 것은 아닐까....싶음에...
그러면서도 내가 혹시 저 리조트에 머물게 되면 또 환상의 뷰라고 환호하겠지??
어쩔 수 없이 개발과 함께 경제 개발이 이루어지고, 더 낳은 삶으로 세상이 변해가겠지만...입에 단것만 물리면 그 휴유증이 크다는걸...우리 모두가 알아야 하는데....
잠시 서서 리조트 건설 현장을 바라보다가 이내 돌담을 쌓고 있는 아저씨들을 보았다.
오직 돌만 가지고 쌓는 담이 한 치 오차도 없이 기가 막히다.
문득 로마에 갔을때 기막히게 쌓아 올려진 붉은 벽돌담과 건축물들을 보고
혀를 찼었는데...로마인들만이 기막힌 기술을 가지고 있는건 아니었어~ㅎㅎ
그나마 제주에 돌이 많아 참 다행이란 생각을 잠시 하며 지나쳤다.
올레길을 걷자고 들어선 것은 아니었기에 조금 더 걸어 갤러리 까페까지만 가서 커피 한 잔 하고 돌아 나오자며 걸었다.
엄마가 오지 트래킹 마니아다 보니 딸아이가 성큼 성큼 앞서 걷고 있는 엄마를 보며 지레 겁을 먹는다.
엄마 말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놔~
언제 이렇게 신뢰를 잃었지??
"진짜야~ 요기 코너만 돌면 나올거야~
굉장히 근사해. 작품들도 좋고....
커피만 마시고 가자."
긴가 민가 던졌는데, 정말 코너를 도니 바로 까페가 하나 나오고, 이어서 내가 찾던 갤러리 까페가 나왔다.
굉장히 도회적이고 세련된 건물에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처럼 유리 퍼즐 작품이 걸려있었던 까페의 분위기를 잊을 수 없어
다시 찾은 것이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때는 4월...가랑비가 살살 뿌리던 날이었다.
정말 그때의 낭만적 분위기를 잊을 수 없었는데....오늘은 여영 그 분위기가 아니다.
앞에선 한참 데크 공사가 진행중이었고, 건물 앞으로 놓여진 파라솔 조차 모두 내려져 있으니 마치 영업을 하지 않는것 처럼 보인다.
더구나 오늘은 폭설로 한바탕 제주가 몸살을 앓고 난 뒤 월요일이라서 그런 지, 손님도 하나 없는것 같다.
느낌이 이러니 들어갈 맘이 생기지 않는다.
영업은 하고 있는것 같은데...
창밖으로 공사 현장을 보고 싶지도 않고....
이곳 바로 못미쳐 밑에 있는 까페로 들어섰다.
하얀집 팬션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 60 Beans라는 까페다.
작은 대문으로 들어서니 여기 저기 조각작품들이 놓여있는
넓다란 정원이 눈동자를 크게 한다.
자그마한 연못에 금붕어들도 발길을 잡고...
길다란 유리창을 통해 비치는 내부의 모습도 이쁘다.
이내 탄성이 인다.
"오오~ 여기 디게 이쁘다~~"
날씨가 춥지 않으면 밖의 테이블에 앉아도 좋겠지만, 지금은 한겨울이니 실내로 들어섰다.
이미 밖에서 부터 예견했지만 정말 아기 자기한게 주인장의 삶의 모습이 상상이 된다.
벽에 걸려있는 그림들과 벽난로, 곳곳에 있는 작은 소품들 하나 하나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이쁘고 앙증맞고, 멋지고 재밌다.
패브릭의 컬러도 파스텔톤으로 세련되고 편안한 느낌을 물씬 준다.
이중에서도 가장 압권인 것은 100년 되었다는 피아노다.
커피와 쿠키를 주문했다.
역시 이쁜 까페에 사랑하는 사람과 앉아서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마시는 커피는 정말 최고다.
몇 테이블에 있던 손님들이 다 나가자 주인장이 우리에게로 와서 말을 건넨다.
알고보니, 주인은 아니고 까페를 맡아서 운영하는 관리인이다.
이렇게 이쁜 까페가 언제 생겼냐고 물으니 벌써 4년이 되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내가 예찬하던 갤러리 까페보다도 먼저 생겼다는....
주인장과 친분이 있어 처음에 맡아서 하다가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갔다가 다시 맡아서 하게된건 이제 4개월 되었단다.
정말 너무 좋다고 했더니, 관광객으로 왔을때와 살려고 왔을때는 다르다고 한다.
가장 힘든것은 '외로움' 이라고....
귀농해서 사는 사람들에게 벌써 3번째 듣는 말이다.
안면도에 갔을때 한 팬션 주인에게서 들은 말이 첫번째고,
대천 해수욕장에 갔을때 팬션 주인이자 까페 주인이었던 예쁜 아주머니에게서도 들은 말이다.
그때만 해도 나도 이렇게 멋진 곳에 집을 짓고 까페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들의 삶이 너무나 부럽게만 보였기 때문이다.
너무 멋지다고...
이런거 하고 싶다고 했더니....
쌍손을 흔들며 하나같이 만류했던 것이 바로 '외로워서 못산다...' 였었다.
무엇이 그리 외로울까....
대화의 단절...??
아니 소통의 단절이 더 맞겠지??
살아온 환경이 너무 달라서...그곳 현지 사람들과의 소통이 어려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별다른 탈출구도 없고....
여행객들은 잠시 머물다 휘리릭 순간 사라져 버리고.....
딸과의 여행이 너무나 좋아보인다며...
몇번이나 말을 건넨다.
엄마가 아프면 여행도 못다니니 지금 많이 다니라는 말도 딸에게 건네고....
자기 엄마는 많이 아프셔서 못다니신다고....
대부분 사람들은 할 수 있을때는 그 귀중함을 모르기에 그냥 보내버린다.
보기에 좋아보여 부럽다 하면서도 선뜻 난 그렇게 하지 못하며 시간을 보내 버리는 거다.
그리곤 후회를 한다.
그때 왜 그렇게 했을까 하고...
사실, 자신의 상황에 맞춰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여행이란 꼭 멀리 갈 필요도 없으니까....
어쩌면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일이면 맘이 일때 즉시 해야 할 수 있는 건 지도 모른다.
이집에서 운영하는 하얀집 팬션은 성수기에는 몇달 전에 예약을 해야한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따듯한 날 이곳에 머물며 올레 7길을 걸어도 좋고, 굳이 올레길을 완주할 필요없이 주변 산책만 매일 해도 너무 행복할것 같다.
황우지 해변도 걷고....
황우지 선녀탕에 발 담그고 놀아도 좋고....
동너분덕, 쇠머리 코지에 나가 앉아 신선한 바람도 하염없이 맞아보고....
갤러리 까페에 가서 그림도 보고...또 이집과는 다른 커피맛도 즐기고....
햇살아래 책도 보고...
좀 더 걸어가 회도 한 접시 먹고....
그러고 보니 정말 위치 하나는 기가 막히다.
이러니 아까 그곳에 그리도 어마어마한 리조트가 들어서는 거겠지~
까페 60 Beans에서 되돌아 나와 올레 7길 초입에 있는 솔빛 까페로 왔다.
친구가 이집 쥔장과 친분이 있어서 처음 올레길을 걷고자 왔을때 나 역시 생긴 친근감으로 올때 마다 들린다.
이집에서 유명한 것은
당근과 귤(한라봉??)을 갈아서 만든 '봉자쥬스'와
제주의 명물인 '오메기 떡'이다.
다른 것은 안 먹어봐서...ㅋㅋ
오메기떡을 직접 만든것은 아니고
주문을 받은것이라고 하는데
정말 다른집과는 달리 쑥향이 기가 막히다.
봉자 쥬스는 정말 맛있는데...
이번엔 쥔장이 아닌 할머니가 미리 만들어 놓은것을
주셔서 맛이 덜했다. ㅠㅠ
아놔~
그나 저나 이곳에서 시간을 너무 보내서
오늘 두번째로 가려던 산방산 용바위 해변을 못가게 되었다는 거다.ㅠㅠ
첫날,
호텔로 가면서 본
산방산의 위엄에 놀라서
본능적으로 그곳으로 들어서
차를 세웠지만,
해변으로 들어가려면
입장시간이 4시까지라고 해서
돌아 나왔었는데,
오늘도 바로 옆인 줄 알고
늦장을 부렸더니,
네비에서 알려준 시간이
너무 빠듯한 거다.
그래서 오늘도 괜한 헛걸음 치느니
일찌감치 호텔로 가서
주변 산책을 하기로 했다.
호텔 산책로는 아주 잘 정비가 되어 있었다.
바다를 끼고 나무 데크로 나 있는 길을 걷고 있으니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해변쪽에서 바라보니,호텔 규모가 정문쪽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규모도 더 커보이고 훨씬 더 근사해 보인다.
하얏트 호텔 해변길은
원래 올레 8코스 이기도 했었는데, 낙석이 심해져서 출입을 금지시키고 우회코스를 마련해 놓은것 같다.
호텔에서 내려와 바로는 상관이 없는데....
저 수직벽 코너를 돌면 험해서 갈 수가 없다고 그곳까지 갔다가 나온 사람이 말을 건넨다.
올레 7코스만이 멋진 코스가 아니었단걸....
그러고 보니 8코스도 여간 환상의 길이 아니란걸 느낌으로 알겠다.
하긴 섬인 제주에서 해안선을 따라 나 있는 올레길 중 어디가 뷰가 좋지 않을까마는....ㅎㅎ
계단을 내려오니, 검은 바윗돌이 채석장 처럼 깔려 있고, 그 끝으로는 잔잔한 파도를 일으키는 하얀 백사장이 보인다
주상절리의 검은 절벽에 반원 처럼 휘어진 하얀 백사장이 기막히게 아름답다.
더우기 이 해변엔 우리 딸과 나...
딱 둘뿐이다.
진짜 겨울 바다 느낌.... 제대로다.
쓸쓸함...
고요...
해변을 나와 반대편 해변쪽으로 가기 전...벤치에 앉아 잠시 쉬었다.
해변 바위에 앉아있든, 백사장을 걷든, 호텔 앞 벤치에 앉아 있든....
하나같이 아름다운 풍광이다.
궂이 어디 목적을 두고 떠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 졌지만 그래도 흐드러진 자태가 아름다운 억새 맞은 편으로 노오란 유채가 피어있다.
아~ 이렇게 추운 날씨인데...유채가 피었네~
그러고 보니 2월 말에 왔으면 유채꽃을 더 많이 볼 수 있었겠단 생각에 살짝 아쉬움이 인다.
2년전에 친구인 희숙씨 집에 일주일을 머물며 보냈을때는 발길 닿는 곳 마다 유채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는데....
올레 길을 걸으며 한 웅큼 따온 유채꽃으로 샐러드도 만들어 먹었었어~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나서 입가에 미소가 인다.
딸아이에게 희망사항을 말한다.
담에 올때는 유채꽃이 만발했을때 오자고....
호텔 야외에 있는 커다란 작품이다.
노오란 유채가 만발했을때 보면 자연과 어우러져 더욱 환상적인 느낌을 받을것만 같은 판타스틱한 작품이다.
나비가 주는 매혹적인 느낌부터...그 표현방법이나 색채감이 형언할 수 없는 꿈을 꾸게 만드는것 같다..
호텔 발코니에서 바라보면 정면으로 보이는 해변으로 내려왔다.
아까 그곳은 아방궁 같은 곳이라면 이곳은 넓다란 해수욕장이다.
고운 모래의 백사장도 좋고....
하얗게 거품을 일으키며 달려드는 파도도 멋지다!
어느새 날씨가 어둑 어둑 해진다.
바람도 더욱 세차지고....
가로등불도 하나 둘씩 들어오기 시작한다.
호텔로 들어가야 겠다.
어제는 피자와 파스타를 먹어서...
오늘 저녁은 전복 돌솥밥과 김치찜을 먹었다.
김치찜에 들어있는 고기를 비롯 양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먹으려면 밥을 2공기 이상 먹어줬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또 양이 양인지라 짜게 먹은것 같다는...
김치찜의 양은 절대 1인분이 아니라는....
암튼 하얏트 호텔에서 김치찜을 먹을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맛은 있었다.
방에 들어와 향이 좋은 차를 마셨다.
오늘도 역시 고요와 적막감이 더없이 좋다.
오늘밤은 좀 일찍 자야겠다.
내일은 좀 일찍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
(P. Baraough, J.Keller, Francis Lai)
프란시스 레이// '사랑은 우리보다 훨씬 더 강한 것 (영화 남과 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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