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날..후기....
오늘은 아예 종일 문화 투어를 작정을 하고 새벽부터 일어나 집안 일을 서둘렀다.
어제 보려던 세기의 영화감독-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 '순응자'를 10분 늦은 관계로 보지 못해서다.
연이은 딸과의 제주도 여행도 잡혀있고, '순응자'를 보기 위해선 딱 오늘까지밖에 시간이 없어서....
뷰랴 부랴 준비를 마치고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순응자'를 보고 난 뒤 스타벅스에서 여운을 즐기며 딸을 기다렸다.
평소와는 달리 왠지 달콤하고 부드러운 커피가 당겨서 새로 나온 '까페 벨벳'을 시켰다.
새로나온 거라고 초코 머핀을 주는데, 아메리카노와는 잘 어울리겠지만 달콤한 까페 벨벳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세상 남자들 대부분이 왜 작품성이 있는 소설이라든가 영화를 잘 안보는 지....
뜬금없이 생각들었다.
마음이 복잡해져서다.
영화를 보고난 뒤 이것 저것 머릿속에 생각이 가득해지는게 굉장히 마음이 무겁고 복잡해졌다.
역시 클래식 마니아가 영화 마니아보다는 훨 낳은거 같아~
그저 아무 생각없이 내 가슴에 닿는 만큼 느끼면 되잖아~
한없이 평화로워지고 때론 격정으로 스트레스도 날리고...
기막힌 선율들은 내 가슴속 깊은 곳으로 하염없이 들어와 나도 모르는 원초적인 아픔과 상처들까지 치유해 주잖아.
복잡한 생각의 끈을 온전히 놓을 수 있는...온전히 마음을 다 비울 수 있는 절호의 찬스...ㅎㅎ
딸과 만나서 일찌감치 예술의 전당으로 갔다.
오늘 공연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만석일테고, 공연히 시내에서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예술의 전당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한것이다.
음악회에 대한 기대도 당연히 크지만 이처럼 가끔은 딸과 무엇을 하든 시간을 함께 보내는게 더 행복하고 들뜨기 조차 한다.
평소엔 시간에 임박해 와서 대부분 커피 한 잔에 공연만 보고 가지만, 딸과 모처럼 오면 일찌감치 만나 전시회도 보고
맛있는 식사도 하고 커피까지 마신다.
출혈이 크지만...ㅎㅎ
엄마가 좋아하는 미술과 음악 공연을 보며 딸과 감동을 공유하고 또 딸의 생각이나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행복감을 어디다 비할까....
조금은 여유있게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오늘은 프로그램이 어제보다는 덜 익숙한 곡들이라 딸아이가 보기에 어떨까...조금 신경이 쓰이긴 한다만
그래도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이 좀 익숙할테니까...
그래도 '프로코피예프'라던 지, '헌데미트' 라는 작곡가의 이름 조차 생소하지는 않을테니....
이렇듯 마니아가 아닌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올때는 혹시라도 지루해 하면 어쩌나...괜한 신경이 쓰이는 거다.
망원경으로 단원들을 살펴보니, 몇 몇 단원들이 어제와는 달리 교체되었다.
보통은 목관이나 금관, 타악기 주자들이 바뀌는데, 오늘 시카고 심포니는 바이올린 주자들이 바뀌었다.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연 이틀 공연하는 것이 일상처럼 보여지는 이들에게도 연이은 연주는 힘이 드나보다.
첫 곡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1번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프로코피예프 하면 전설적인 그의 피아노 협주곡들이 너무 강렬해서 마니아인 나도 사실 교향곡은 들어본 적도 없는것 같다.
아!!
그런데 이게 왠일이란 말인가~
물론 집에서 유튜브 영상을 통해 들어보긴 했지만 이 매혹적이고도 기막히게 아름다운 선율이라니....
어제의 연주에서도 이들의 연주 실력과 음색에 완전 반해 딴곡처럼 들리기까지 했었지만....
초반부에 울려퍼지는 자즈러드는 바이올린 선율에 얹혀진 파곳의 연주라니....
이런 선율과 음색을 천상의 소리라고 표현할까....
신음소리가 가슴을 연신 뚫고 터졌다.
더우기 건반악기였던 피아노를 처음으로 타악기로 구분할 정도로 피아노가 부서지도록 쳐대는 프로코피예프의 아찔한
피아노 협주곡을 떠올린다면 이 매혹적인 선율의 교향곡은 거의 놀라움에 가까웠다.
더우기 협주곡도 아닌 교향곡이지 않은가!
아름다운 멜로디와 화음, 그리고 기동성 있는 리듬과 비트가 특징인 이 곡을
기막히게 연주 잘하는 시카고 심포니와 세기의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의 지휘로 듣고 있으니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또 뜬금없는 생각이 스친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연주도 기막히지만 이들의 악기는 모두 몇 백년씩 된 명기들이 아닐까...하는 그런 생각...
그래서 소리가 전혀 다르다는....
어제 공연보다 프로그램이 덜 당겼었던 나의 생각은 완전 빗나갔다.
이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고전적'에 이미 혼이 나가버렸으니까....
처음으로 접한 프로코피예프의 이 매혹적인 교향곡을 무티와 시카고 심포니의 기막힌 연주로 들었으니 더 바랄것도 없다고... 순간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 곡은 낯설기가 더하다.
힌데미트 곡은 바이올린이나 비올라...등 현악 연주로는 자주 접했어도 이 처럼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접하긴 또 생소하다.
더우기 오케스트라의 꽃인 목관악기가 싸악 빠진 현과 금관파트만의 오케스트라 연주다.
그래서 그런 지 유튜브 영상으로 몇 번을 들어도 귀에 쉬이 들어오질 않았다.
그런데 역시 이 곡도 가슴을 철렁 내리기는 마찬가지다.
이게 영상물이나 오디오로 접하는것과의 현격한 차이이기도 하지만 실황에서의 울림은 낯선 곡일 수록 더 심하다.
예당을 메우는 금관파트의 당당한 울림이라니...
이 금관파트의 울림이나 오케스트라의 총주의 엄청남을 어찌 영상물로 느낄 수 있을까....
평소에 쉬이 접할 수 없었던 오늘 1부의 프로그램은 시간이 흘러도 오랫 동안 감동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인터미션이 지나고 2부를 맞았다.
그의 이름만으로도 광활한 시베리아가 떠올라 가슴이 늘 시린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이다.
금관의 총주로 예술의 전당이 떠나갈듯 4번 교향곡은 시작되었다.
이어 클라리넷과 오보에 플룻, 파곳이 펼쳐내는 환상적 하모니는 또 한없이 이 오케스트라 연주에 빠져들게 만든다.
기막히다라는 탄성과 함께....
느닷없이 로열 콘체르토 허바우의 목관주자들이 또 떠올랐다.
작년 내한해 베토벤 전곡 교향곡연주를 펼쳤을때 6번 교향곡 전원의 연주를 잊을 수 없게 만든....
아예 작정하고 자리 배치도 가운데로 몰아서 마치 4중주를 펼치듯 연주했던 이들 목관주자들-클라리넷, 오보에,플릇,파곳....
우리나라 연주자들도 잘한다고...
매번 감동하지만 막상 세계적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고 보고 있노라면 절로 혀가 차지는 것이다.
특히 오케스트라의 꽃으로 피어나는 독주나 앙상블 연주에선 더욱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다.
어디 이들 목관주자들 뿐이겠냐만....전체적인 소리가 다른데...
암튼 어제 오늘 연주에서 파곳 연주자가 유난히 뛰었다는것...
사실 평소에는 파곳은 잘 드러나지 않는데 기막힌 연주와 소리에 필이 꽂혔다고나 할까...
2010년 내한했던 로열 콘체르토 허바우 연주에서도 유난히 파곳 연주에 귀가 쫑긋했었는데....
아~ 그러고 보니, 그때 프로그램도 분명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이었던것 같아.
드디어 나왔어.
2악장...오보에의 가슴시린 연주...
이렇게 아름다운데 왜 가슴이 이렇게 시리지??
시베리아의 하얀 순백의 벌판에 울려퍼지는 듯한 순결함이 ....
그 차디참이 가슴에 통증을 느낄 만큼 시려와~
가슴이 아프도록 아름다운 선율....
고통과 아름다움은 항상 함께 존재함을 깨우쳐 주기라도 하듯......
이 천상의 선율에 가슴엔 이미 눈물이 흥건히 고여있는 거다.
아!!
3악장은 또 어떤가~
2악장에서 이리 가슴 시린 눈물을 흥건히 고이게 만들어 놓고는 또 환상적으로 울려대는 현의 피치카토라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리 저리 오가는 현의 피치카토의 향연은 그야말로 또 다른 탄성을 일케 만든다.
3악장이 끝날때까지 숨 조차 크게 쉴수 없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할정도다.
4악장에서는 마치 또 다른 시작을 알리듯 총주로 대담하게 울려댄다.
그동안 가슴이 시리도록 절절했고 아찔했던 모든 감정들을 송두리째 날려버리듯 대담한 울림이 아닐 수 없다.
그 속에 울려퍼지는 목관악기들이 기막힌 선율들....
모든 감정들이 뒤엉키며 휘몰아 치는 4악장은 그야말로 환희의 절정을 맞는다.
4악장에 대해 차이콥스키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자신 속에 환희를 찾지 못한다면 주위를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보는 겁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즐거워하고 환락에 몸을 던질까요.
그들의 감정은 소박하고 단순한 것입니다.
행복은, 단순하고 소박한 행복은 아직 존재합니다. 사람들의 행복을 기뻐하십시오.”
와아~~
엄청난 총주로 예술의 전당이 쾅 쾅 울려대며 지휘자의 두 팔이 멈춰섰을때 예술의 전당을 메운 환호는 대단했다.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제의 말러 1번에서도 마치 거인이 등극하듯 대단한 연주였는데, 오늘 4번 교향곡에서도 환희의 엑스터시에 빠진듯 대단했으니...
수없이 많은 커튼 콜이 이어지고...
마이크를 가지고 나온 무티는 오케스트라 단원들 속으로 들어가더니, 그 많은 바이올린 파트의 동양 여성 단원앞으로 가 한 단원앞에 섰다.
그리고 마이크를 건냈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단원임에도 수줍음으로 어쩔 줄 몰라하던 그녀...
한국인 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선물로 들려줄 앵콜곡명을 말했다.
아~
어제는 듣지 못했던 앵콜곡이라니...
정말 평소와는 달리 무터가 특별히 우리에게 선물로 들려주는것만 같았다.
2016년엔 굵직한 공연들이 역대 최고로 몰려있다.
오늘 무티와 시카고 심포니를 시작으로 대단한 오케스트라 연주단체뿐만 아니라 지휘자, 이름만으로도 가슴뛰게 만드는 독주 협연자, 성악가들의 향연....
기쁨을 너머 절제가 필요한 괴로운 해이기도 하다.
딸과 함께해 더욱 감동이 컸던 오늘의 공연....
그러고 보니 2010년 얀손스& 로열 콘체르토 허바우 공연에도 딸과 함께 왔었다.
그때 프로그램도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이었었는데.....ㅎㅎ
지상에 주차를 해서 쉬이 빠져나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찌나 차가 많은 지, 우린 5시간 무료 주차시간을 넘겨 추가 요금을 지불했다는...ㅠㅠ
오늘은 무터를 좀 더 잘 찍기위해 망원렌즈를 가져가 찍었는데 어제보다 되려 더 흔들렸다.
아무래도 박수를 치는 가운데 몰래 후다닥 찍으려니 흔들릴 수 밖에 없다.ㅠㅠ
대단한 활략을 보였던 트럼펫,트럼본, 튜바 주자들이 박수를 받고 있다.
목관악기와 금관악기 주자들을 가리키며 박수를 보내고 있는 무티...
늘 박수갈채를 우선순위로 받고 있는 오케스트라의 꽃중의 꽃...오보에 주자가 박수를 받고 있다.
에구~ 인물도 꽃이네~ㅎㅎ
오호~
어제 오늘 기막힌 연주를 보여준 파곳 연주자가 박수를 받고 있다.
당연하다.
역시 오케스트라의 꽃- 클라리넷 연주자가 박수를 받고 있다.
물론 다른 교향곡에서도 빛을 발하지만 차이콥스키 교향곡에선 유독 빛을 발하는 혼 주자들이 박수를 받고 있다.
타악주자들이 박수를 받고 있다.
역시 교향곡의 피날레를 확실히 책임지고 있는 주자들이다.
75세의 무티...
외모에서 풍기는 것도 정정하지만 체력 또한 장난아니다.
길이 길이 건강을 잘 보존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많은 동양인 여성중 유일한 한국인 여성인가 보다.
여성 바이올린 연주자들중 반 이상이 동양인 이었다.
중국인들의 활약이 돋보이는것 같다는...
글쎄...일본인들도 물론 있겠지만...왠지 그럴것 같다는...??
혹시 악장도 중국인이 아닐까....??
연주가 끝나고 앞의 단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있는 무티....
열열히 환호하는 관중들에게 두 주먹을 불끈 쥔 팔을 들어 올리며 답례하고 있는 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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