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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슬립(Kis uykusu Winter Sleep,2014)/2015.아트하우스 모모

나베가 2016. 1. 28. 01:51

 





 제작: 제이넵 오브바투르 아타칸

원작:안톤 체호프

각본:에브루 체일란 (Ebru Ceylan) 누리 빌게 제일란 (Nuri Bilge Ceylan)

배급:㈜영화사 백두대간

 

주연:할룩 빌기너 (Haluk Bilginer) 아이딘 역
        멜리사 쇠젠 (Melisa Sozen) 니할 역

출연:드멧 아크백 (Demet Akbag) 네클라 역

       아이베르크 펙잔 (Ayberk Pekcan) 히다옛 역

       세르하트 무스타파 킬리츠 (Serhat Mustafa Kilic) 함디 역

        나디르 사리바작 (Nadir Saribacak) 레벤트 역

 

 




 

줄거리

소년이 던진 돌멩이 하나,
한 남자의 기만적인 삶을 깨운다!
“삶을 계속하자... 나를 용서해줘...”


전직 배우이자 작가인 ‘아이딘’은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호텔 ‘오셀로’를 운영한다. 남부럽지 않은 부를 누리고 있는 그는 양심과 도덕을 운운하며 자신이 얼마나 공정하고 자비로운 사람인지 알아주길 바란다. 하지만 여동생 ‘네즐라’는 번번히 그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독설을 던지고, 젊고 아름다운 아내 ‘니할’은 그의 위선적인 모습을 경멸하며 권태를 느낀다.

서로에게 상처와 불신만을 안기는 세 사람은 가난한 세입자의 아들의 충격적인 행동으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어느 날 아침, ‘아이딘’은 불현듯 찾아온 낯선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 epiphany ]

제67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놀라운 깨달음의 순간을 포착한 영화사의 걸작

제67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윈터 슬립>은 2014년 칸 상영 직후 IMDb 평점 9.9를 기록할 정도로 대중과 평단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걸작이다. 총 일곱 편의 작품을 연출하면서 칸 영화제에서만 무려 8회의 수상을 기록한 거장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의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윈터 슬립>은 해외 평단으로부터 “시대를 초월한 걸작! 정교한 영화적 테크닉, 깊이 있는 지적 통찰” (뉴욕 타임즈), “기념비적이고 신비로운 영화” (시카고 리더) “경이롭고 아름다운 작품” (가디언) 등의 찬사를 얻었다. 인간의 내면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의 단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이 작품은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놀라운 깨달음의 순간(에피퍼니 epiphany)을 포착하여 인생에 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마주하는 숭고한 자기 인식의 순간
제임스 조이스의 ‘에피퍼니’의 정서를 담은 서사적 영상미학

영화 <윈터 슬립>에서 호텔 오셀로를 운영하는 ‘아이딘’은 젊은 아내 ‘니할’, 이혼한 여동생 ‘네즐라’와 함께 살고 있는 은퇴한 배우이자 작가이다. 어느 날, 가난한 세입자의 아들이 아이딘의 차를 향해 돌을 던지고, 그 사건은 단단한 성벽과도 같은 그의 기만적인 삶에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사소하게 보이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갈등과 번뇌를 거쳐 아이딘은 문득 자신의 진정한 모습에 대한 자기 인식의 순간을 맞게 된다.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에 실린 <사자들 The Dead>을 떠올리게 하는 이 마지막 장면은 아름다운 설경과 함께 절묘한 ‘에피퍼니’의 순간으로 빛을 발한다. 자신의 내면과 삶의 진실을 포착하게 되는 이 순간은 주인공의 진솔한 내레이션과 함께 관객의 마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걸작이라고 칭송되는 위대한 문학 작품들에 필적할 만한 작품”(레크.아츠.무비), "무서울 정도로 지적인 작품" (텔레그라프) 이라는 해외 언론의 호평이 말해주듯, <윈터 슬립>은 인간의 영혼에 대한 이해와 탐구의 과정을 담은 거장의 진중한 걸작이다.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지적인 주제 의식과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대사,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기적처럼 찾아오는 숭고한 깨달음의 순간은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하게 만드는 깊은 울림을 선사할 것이다.




 



[ maestro ]

칸 영화제가 인정한 명실상부 동시대 최고의 거장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의 매혹적인 영상서사시

<윈터 슬립>은 터키 영화사 100주년이 되는 해에 탄생한 기념비적 작품이기도 하다. 터키 출신의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은 최근 연출한 다섯 작품이 모두 칸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으며, 한번도 빈 손으로 돌아간 적이 없는 자타공인 칸이 사랑하는 감독이다. 1993년 첫 단편영화 <코자>를 통해 칸 영화제와 인연을 시작한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은 2003년 <우작>으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과 남우주연상 2관왕에 오르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06년 <기후>로 칸 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2008년 <쓰리 몽키스>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다. 2011년에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나톨리아>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으며, 이어 지난 해 칸 영화제에서 <윈터 슬립>으로 제인 캠피온 감독을 비롯한 심사위원들로부터 “완벽한 리듬의 수작”, “3시간 16분의 전적인 행복” 등의 극찬을 받으며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여 명실상부 세계적인 거장으로 거듭났다.

 

 



 

  

 
타르코프스키, 브레송, 안토니오니, 야스지로, 베리만의 계승자
그리고,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0번

존경하는 감독으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로베르 브레송,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잉마르 베리만, 오즈 야스지로를 꼽는 제일란 감독은 ‘인간의 영혼을 이해하기 위해 영화를 만든다’고 말하는 진정한 작가주의 감독이다. 뿐만 아니라, 뛰어난 사진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윈터 슬립>에서 익스트림 롱 쇼트와 롱 테이크로 터키 카파도키아 지방의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풍광을 담아내었다. 한편 인물들 간의 심리적 갈등은 고요한 풍경 속에 휘몰아치는 감정의 폭풍우처럼 드라마틱한 교차 편집으로 촬영되었다. 평화로운 서재에서 서로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남매간의 설전, 그리고 애증과 고독으로 서로 갈등하는 부부의 소용돌이치는 감정의 파고는 "잉마르 베리만을 연상시키는 밀도 높은 실내극" (DIE WELT) 형식, 즉 팽팽한 긴장감을 주는 쇼트-리버스 쇼트 방식을 취하면서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해외 언론에서는 "잉마르 베리만 감독이 찬사를 보낼만한 정교한 연기와 감성"(스크린 인터내셔널), "거장 잉마르 베리만의 작품과 견줄만한 도덕적 딜레마를 창조했다"(더 내셔널)며 호평을 쏟아냈다. 또한, 최소한의 영화 음악만을 사용하며 사실주의를 추구하는 제일란 감독은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당나귀 발타자르>에도 삽입되었던) 프란츠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0번 A장조 D.959 2악장, 이 한 곡만으로 눈 덮인 풍경과 어우러지는 서정성과 비애감을 극대화시킨다.





[ classic ]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의 원작에 기반
“영원한 나의 스승, 체호프의 영혼이 <윈터 슬립>에 깃들어 있다.”

영화 <윈터 슬립>의 출발점은 <갈매기>, <벚꽃 동산> 등의 희곡으로 유명한 극작가이자 현대 단편소설의 형식을 확립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위대한 작가 안톤 체호프였다. 체호프의 단편 소설들은 가벼운 농담과 어두운 사상이 공존하는 평범한 일상의 단면을 간결하고 명료하게 묘사하면서 아이러니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인간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윈터 슬립>은 여동생과 함께 사는 문학 평론가의 이야기인

과 자선 활동을 펼치는 젊은 아내와 그녀의 남편에 관한 이야기인 를 기반으로 하여 구상되었다. 처음 프로젝트를 구상한 후, 무려 15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완성된 <윈터 슬립>은 “체호프의 문학을 영화로 옮긴 가장 뛰어난 작품”(시카고 트리뷴) 이라는 최고의 찬사를 받은 바 있다.

 

 





셰익스피어,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등 고전의 숨결
깊고 풍성한 문학적 텍스트, 섬세한 은유와 상징

“저의 모든 영화에는 체호프의 영혼이 깃들어 있습니다. 체호프의 작품들은 제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라고 말하는 제일란 감독은 <윈터 슬립>의 엔드 크레딧에서 체호프뿐 아니라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볼테르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러시아의 화가 일리야 글라주노프가 그린 도스토예프스키의 첫 장편 소설 <네또츠까 네즈바노바>의 삽화는 영화 속 니할의 방 안에 걸린 그림이자 <윈터 슬립>의 포스터 일러스트레이션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니할과 소년의 아버지가 대면하는 장면은 도스토예프스키 <백치>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만든다. 한편 아이딘이 운영하는 호텔의 이름이 영국이 낳은 세기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와 동일한 것도 우연은 아니다.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은 주인공이 전직 배우라는 점을 감안하여 배경이 되는 호텔에 셰익스피어 작품의 주인공 이름을 붙이고, 서재에는 셰익스피어의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와 알베르 카뮈의 <칼리굴라>의 연극 포스터를 걸어 이에 대해 필연성을 부여했다. 뿐만 아니라 영화 속에서는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에 나오는 ‘양심’에 관한 대사가 인용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윈터 슬립>은 안톤 체호프, 도스토예프스키, 셰익스피어 등 위대한 고전 문학의 숨결이 살아있는 동시에, 깊고 풍성한 문학적 텍스트와 섬세한 은유와 상징으로 관객들의 마음 속에 깊은 여운을 남길 것이다.



 

 
 

 

[ Cappadocia ]

아름다운 로케이션, 신비로운 기암괴석으로 가득한 카파도키아의 절경
파졸리니의 <메데아>와 <스타워즈>가 촬영된 이국적인 풍광

<윈터 슬립>의 압도적으로 우아한 영상미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터키의 카파도키아, 그 자체의 역할이 크다. 아나톨리아 고원 중앙부 화산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카파도키아는 세계 100대 경관 중 하나이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곳이다. 인간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긴 시간 동안 자연의 변화에 의해 자연스레 생겨난 기묘한 기암괴석들이 보는 이들의 혼을 빼놓을 정도로 신비롭다. 이미 영화 팬들에게 카파도키아는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감독의 <메데아>, 조지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 1편의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며,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TV만화 <개구쟁이 스머프> 속 버섯 마을의 모티브가 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조지 루카스 감독이 “카파도키아는 지구의 자연이라고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지역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이 곳의 신비롭고 이국적인 풍광은 보는 이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아이딘의 모습을 표현한 곳으로
카파도키아만큼 훌륭한 곳을 찾기 힘들었다”
- 감독 누리 빌게 제일란


<윈터 슬립>을 구상 중이던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은 로케이션 장소로 카파도키아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었다. 이는 카파도키아의 숨막히는 절경이 아이딘, 니할, 네즐라가 겪고 있는 심리적 상황을 그려내기에는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 딱 맞는 호텔을 찾는 일이란 쉽지 않았고 오랜 고민 끝에 카파도키아에서 촬영을 감행하기로 했다.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은 시나리오 속 설정들을 장소에 어울리게 수정해가며 새로운 이야기를 완성시켰다. 카파도키아라는 장소가 영화의 스토리에 영향을 준 셈이다. 실제 겨울에도 종종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카파도키아의 모습은 주인공이 운영 중인 오셀로 호텔을 표현하기에도 매우 적합했다.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은 “<윈터 슬립>의 촬영지를 카파도키아로 최종 결정한 데에는 일반적인 삶과 단절된 아이딘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카파도키아만큼 훌륭한 곳을 찾기 힘들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의 확신처럼 눈 속에 고립된 오셀로 호텔이 자리잡은 카파도키아는 하나의 완벽한 영화적 장치로 제 몫을 해내며 영화의 완성도를 더한다. 또한, ‘카파도키아’는 터키어로 ‘훌륭한 말들의 땅’이라는 뜻이다. 광활한 초원을 달리는 야생마들의 모습,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안개, 매혹적인 기암괴석들로 가득한 영상미는 <윈터 슬립>을 극장의 큰 스크린으로 만나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이며, 이는 카파도키아와 처음 만나는 관객들에게 큰 선물로 전해질 것이다.




[ humanity ]

시대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도덕적 도발!
양심과 도덕, 정의와 권력, 자선과 명예... 지적이고 신랄한 대사의 향연

<윈터 슬립>의 주인공의 이름 ‘아이딘’은 터키어로 ‘계몽된 지식인’이라는 뜻이다. 영화는 현대 터키의 시골 지방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보편적인 호소력을 지닌 도덕적, 사회적 이슈를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시대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도덕적 도발이 담긴 <윈터 슬립>에 대해 해외 언론에서는 "우아한 영상미에 심리적, 사회적, 윤리적 통찰이 넘치는 놀라운 영화적 위업" (사이트 앤 사운드), "인간 영혼에 대한 탐구와 그리고 인간 사회에 대한 폭넓은 문제 제기" (AP), “정확하고, 강렬하고, 냉정한 메시지를 전하는 놀라운 영화” (엘 문도) 등의 호평을 쏟아내었다. 실제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갈등은 지주와 세입자, 지식 계급과 노동 계급, 종교와 세속, 대도시와 시골, 가부장적인 전통 사회에서의 남성과 여성 등 여러 가지 층위에서의 계급 사회에 대한 비판을 내포하고 있다. 예컨대 돌을 던진 소년이 의문을 갖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의(正義), 명예를 훼손시키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자선,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과 원칙의 허상 등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심오한 질문들이 숨어있는 것이다.



 




 


기만과 냉소로 얼어붙은 세상을 향한 예리한 시선
그리고 순백의 눈과 함께 찾아오는 삶의 진실

영화 <윈터 슬립>은 편안하고 안락한 삶 속에서 도덕과 윤리를 논하는, 자기 만족에 빠진 지식 계층의 위선과 불평등한 사회, 그리고 기만과 냉소로 얼어붙은 세상을 예리한 시선으로 파고든다. 가식과 위선과 허세는 관용과 자선과 용기와 대비되며, 특히, 돌을 던진 소년과 그 아버지가 자신과 가족의 명예를 지키려 애쓰는 모습은 영화 속 잊지 못할 명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영화 속 인물들 사이의 외적 갈등과 내적 고뇌는 양심과 도덕, 정의와 권력, 자선과 명예, 권태와 결핍, 그리고 사랑과 구원에 대한 철학적 논제들을 강렬하게 펼쳐낸다.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로 뒷받침된 지적이고 신랄한 대사의 향연은 관객 자신과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만들 것이며, 영화의 마지막에 순백의 눈과 함께 주인공들에게 찾아오는 깨달음의 순간, <윈터 슬립>은 마치 한 편의 고전 소설에 필적하는 날카로운 통찰을 관객들에게 선사하며 기나긴 여운을 남길 것이다.






 

칸 영화제 8회 수상에 빛나는 이 시대의 진정한 거장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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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1월 26일에 이스탄불에서 태어난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은 이스탄불 기술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공부하다 보아지치 대학의 전기공학으로 전공을 바꾼 후 이미지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대학 내 사진 동호회에 가입했다. 그곳에서 교직원 도서관의 사서로 활동하며 접한 방대한 분량의 자료들로 비주얼 아트와 클래식 음악에 대한 안목을 확장시켰다. 이후 자연스럽게 영화 클럽에 가입해 영화에 대한 수업과 상영회 등에 참석했고, 이스탄불 시네마테크에 다니면서 영화에 대한 애정은 점점 더 깊어졌다. 1985년 졸업 후에 런던과 카트만두로 여행을 떠났고, 그 여행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미래와 삶의 방향을 고민하고 결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18개월의 군 복무를 위해 터키로 돌아온 그는 군대 복역시절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자서전을 읽고 자신의 삶을 영화에 바치기로 결심했다. 다시 미마르 시난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한 그는 전문 사진작가로 본격적인 사회 생활을 시작, 친구인 메흐멧 에릴바즈의 단편 영화에서 연기를 접하고 여러 현장에서 영화 제작 과정에 참여하며 영화 감독으로서의 발판을 마련했다. 

 

1993년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은 생애 첫 단편 영화인 <코자>를 찍기 시작했다. <코자>는1995년 5월 칸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으며, 이는 칸 경쟁 부문에 선정된 최초의 터키 단편 영화였다. 이어서 일명 ‘시골 삼부작’으로 불리는 <작은 마을>(1997), <5월의 구름>(1999), <우작>(2002)을 감독하고 연출뿐만 아니라 제작, 각본, 편집, 촬영 등 거의 모든 기술 영역까지 직접 작업하며 탄탄한 기본기를 선보였다. 2003년, <우작>이 제56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과 남우주연상 2관왕에 오르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며 주목 받았다. 칸 이후에 세계 곳곳의 국제영화제에서 23회의 수상, 모든 영화제를 통틀어 47번이 넘는 수상을 하면서 터키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상을 수상한 영화라는 대기록을 세운다. 이후 2006년 <기후>로 제59회 칸 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2008년 <쓰리 몽키스>로 제61회 칸 영화제 감독상, 2011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나톨리아>로 제64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며 명실상부 칸이 사랑하는 명감독으로 거듭났다. <기후> 이후에 아내인 에브루 제일란과 공동 시나리오 작업을 해오고 있으며, 남성과 여성의 시각을 동시에 반영하는 이러한 작업 방식을 통해 남녀 관객들의 공감을 동시에 이끌어내는 대사를 써내고 있다.

 

<윈터 슬립>은 터키 아나톨리아에서 호텔 '오셀로'를 운영하는 배우이자 작가 ‘아이딘’이 젊은 아내 ‘니할’, 이혼한 여동생 ‘네즐라’와의 반복되는 갈등 속에서 자신의 내면과 삶의 진실을 포착하게 되는 놀라운 순간을 담아낸 작품이다. 인간의 내면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단편 문학의 천재 안톤 체호프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출발한 작품으로 터키 영화 100주년이 되는 기념비적인 해에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었다. 이로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은 동시대 영화 감독 중 가장 주목해야 할 진정한 거장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삶은 붕괴의 과정이다”
- F. 스콧 피츠제럴드 -


“있는 그대로 안보고 신처럼 떠받들다가 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화를 내는 게 타당한가?”
도덕과 위선의 아이러니 | 아이딘 / 할룩 빌기너


전직 연극배우이자 상속받은 호텔을 운영하는 부르주아 엘리트 중년 남성. 지성과 언변을 앞세워 주변 사람들을 판단하고 통제하려 하지만 정작 자신의 허물은 보지 못한다. 자기 모순적이면서도 연민을 느끼게 만드는 미워할 수 없는 인물.

할룩 빌기너는 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영국을 무대로 연극과 TV를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며, 터키 연극계에서는 극단을 만들고 직접 연극을 연출하기도 하는 등 탁월한 연기력으로 정평이 나있는 배우이다.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은 <윈터 슬립> 특유의 문학적인 대사를 소화하려면 연극 무대에 오른 경험이 필요하다 판단했고, 할룩 빌기너는 그의 이상을 충족시키는 유일한 존재였다. 이에 응답하듯 할룩 빌기너는 눈빛 하나, 손짓 한 번으로 인간 내면의 위태로움과 쓸쓸한 심리를 완벽히 표현해냈다. 뿐만 아니라 방대한 분량의 대사를 소화하고, 각 캐릭터간의 고조되는 갈등과 대립을 섬세한 심리 묘사를 통해 밀도 있게 전해 놀라움을 더했다. 2014년 <윈터 슬립>에서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제26회 팜 스프링스 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 남자배우상을 수상했다.

&
“젊고 자신감 넘쳤던 여자가 공허함과 권태로 시들어 가는데 당신은 가책도 느끼지 않나요?”
권태와 구원의 아이러니 | 니할 / 멜리사 소젠


아이딘의 젊고 아름다운 아내. 세속적인 남편의 가식과 위선을 경멸하지만 그가 제공하는 물질적 풍요와 안락함을 벗어나기는 두렵다. 지역에서 기부 활동을 하면서 고독하고 불행한 결혼 생활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 애쓰는 인물.

멜리사 소젠은 이스탄불의 전통 있는 페라 예술학교에서 연극을 전공했으며, TV 시리즈를 통해 꾸준히 연기력을 키워오고 있다. 현재 터키에서 스타 반열에 오른 최고의 여배우이며, <윈터 슬립>에서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있지만,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아닌 권태에 빠져 하루 하루 누군가의 구원의 손길만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젊은 여자 니할로 분했다. 특히 남편 아이딘의 이중적인 모습을 비판하며 거침없이 몰아붙이는 장면들에서 신랄한 대사와 어우러지는 격정적인 감정 표현은 그녀의 탁월한 연기력을 입증해 보이기에 충분하다.

&
“오빠의 문제가 뭔지 알아? 고통 받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속이는 거야”
냉소와 용서의 아이러니 | 네즐라 / 드멧 앳백


이혼 후 별다른 하는 일 없이 오빠 내외와 살고 있는 아이딘의 여동생. 이혼한 후의 고독과 권태를 못 견뎌 하며, 실패한 결혼을 모순적인 논쟁을 통해 정당화하려 하는 고집스러운 논쟁가이자 신랄한 독설과 비판을 일삼는 인물.

터키의 극단에서 연기를 시작한 드멧 앳백은 80년대 후반 TV로 활동 무대를 옮긴 직후부터 폭발적인 사랑을 받으며 일찍이 터키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코미디 장르를 주로 연기해 온 터키의 스타 배우 드멧 앳백의 캐스팅은 누리 빌게 제일란에게 큰 결심을 필요로 했다. 네즐라라는 인물을 보여주려면 엄청난 양의 대사를 빠르게 쏟아내고 상대의 질문이나 의문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받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의 확신에 보답하듯 드멧 앳백의 타고난 순발력은 <윈터 슬립>에서 여과 없이 드러났고, 이 작품으로 그녀는 자신의 연기 영역을 한 단계 확장시켰음을 증명했다.



 




[ dialogue ]

#1
아이딘, 그리고 네즐라

나도 오빠처럼 쉽게 자신을 속일 수 있다면 좋겠어.


작가는 자기 글에 관해 무척 민감할 수도 있지만 걱정 마. 감당할 수 있어.
하지만 네 비판엔 일관성도 없고 소모적이야. 네 답처럼 네 비판도 늘 뭔가를 숨겨.
그래서 네가 싫어하는 건 바로 나란 생각이 들어. 글을 싫어하는 게 아니고.
물론 우린 서로 입장이 다른 걸 인정해야 해.
가치관이 다르고 인생관도 달라. 어쩌면 그렇게 다른 게 당연하지.
나이가 들수록 융통성이 없어지니까 얼마 못 가 싫어지는 게 자연스럽지. 어쩌면 그게 당연해.
사실 내 입장에선 오히려 기쁜 일인지도 몰라 그렇지 않아?

뭔가에 전념하고 끈기 있게 추진해야
더 깊은 통찰이 가능하고 새로운 걸 창조할 수 있어.


난 삶의 방향을 설정할 열정도 없지만 그러는 오빠는?
오빠랑 상관도 없는 일에 좋은 시절 다 날렸잖아.
연금술사처럼 무모하게 사는 거 지겹지도 않아?

오빠 문제가 뭔지 알아? 고통 받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속이는 거야.
토 달지 마. 내 말 인정해. 용감하게 진실에 직면해야 해.
더 사실적인 걸 찾고 있다면 파괴적이 돼야 해.

 




 

#2
니할, 그리고 아이딘

양심이며, 도덕, 이상과 원칙, 삶의 목적. 당신 입에서 자주 나오는데
남의 자존심 상하게 하고 폄하할 때만 쓰더군요.

하지만 누군가가 그런 단어를 당신만큼 많이 쓴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의심스러워요.


당신이란 사람 못 견디겠어요.
이기적이고 심술궂고 냉소적인 성격, 그게 당신 죄목이에요.
당신은 많이 배우고 정직하고 공평하고 양심 바른 분이에요.
대체로 그런 성격인 거 부정하고 싶지 않지만
때론 그런 장점으로 남을 옥죄고 짓밟고 남한테 굴욕감을 줘요.

당신은 고고한 원칙으로 세상을 미워하죠.
신자도 미워해요. 당신에게 신앙이라 함은 미성숙과 무식의 징후니까.
당신은 신자가 아닌 자도 미워해요. 믿음이나 이상이 결여됐단 이유로요.
한편 너무 보수적이고 융통성 없다는 이유로 노인세대를 싫어하고
동시에 젊은 세대도 싫어하죠. 사고가 자유분방하고 전통을 저버린단 이유로.

당신은 공동체의 덕목을 지키지만 모든 사람을 의심해요.
그렇게 사람을 싫어하니 당신은 거의 모든 사람을 미워해요.
하지만 젊고 건강하고 자신감 넘치고 활기찬 여자가
공허함과 권태, 두려움으로 시들어 가는 걸 보면서 당신은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았나요?


내 청춘이야말로 따분했어.
행복해지는 방법을 몰라서 남을 행복하게 할 줄도 모르나 봐.
하지만 내가 말했듯 우리한테 나쁜 의도는 전혀 없었고 좋은 의도로 시작했어.
순수한 꿈을 안고서 더 나은 삶과 사회를 꿈꿨어.
니할, 당신은 마음씨 곱고 영리하고 합리적이고 분별 있는 여자야.

당신 언행은 모두 아주 합리적이지. 실제로 그래.
한데, 있는 그대로 안 보고 신처럼 떠받들다가
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면전에서 화를 내는 게 당신 생각에는 타당한가?

                                                             

주연:할룩 빌기너 (Haluk Bilginer) 아이딘 역                 멜리사 쇠젠 (Melisa Sozen) 니할 역



슈베르트 소나타....기막힌 영상....



#3
다시, 아이딘

삶을 계속하자… 나를 용서해 줘…


니할, 나 안 갔어. 못 갔지.
늙어서일 수도 있고 미쳐서일 수도 있고
내가 달라져서일 수도 있지만
좋을 대로 생각해.
나도 모르겠으니까.
하지만 내 안의 새로운 내가 나를 놓아주지 않네.

나한테 가라고 하지마.
이스탄불에 갈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걸 알았어.
가 봤자 모든 게 낯설 뿐.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이걸 알아줘. 내겐 당신뿐이라는 사실.
그리고 매 순간 당신을 그리워하지만 내 자존심 때문에 말하지 못했어.

당신과 헤어진다면 정말 끔찍하고 헤어지지 못하리란 것 아는데
당신이 나를 더는 사랑하지 않기에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
그럴 필요도 없고.

나를 하인처럼 데리고 다녀.
노예처럼 데리고 다녀 줘.
그렇게 해서 우리 삶을 이어 가.
당신 방식으로라도.

 

 

               

감독:누리 빌게 제일란 남성 Nuri Bilge Ceylan

1959년 터키 이스탄불 출생. 사진작가로 활동하던 중, 1995년 단편 <코쿤>으로 데뷔했다. 첫 장편 <작은 마을>(1997)에 이어 <5월의 구름>(1999), <우작>(2002)에 이르는 ‘지방 3부작’을 완성했으며, <우작>으로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기후>(2006)로 칸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 <쓰리 몽키스>(2008)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2011년 <원스 어폰 어 타인 인 아나톨리아>로 또 한 번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배경음악....

SCHUBERT D 959, Piano Sonata No 20 in A 2 Andantino 

 

 

 

 

수상정보

40회 세자르영화제(2015)
후보
외국어영화상(누리 빌게 제일란)
35회 런던비평가협회상(2015)
후보
외국어영화상
26회 팜스프링스국제영화제(2015)
수상
국제비평가협회(FIPRESCI) 남자배우상(할룩 빌기너)
초청
최우수 외국어영화(누리 빌게 제일란)
27회 유럽영화상(2014)
후보
유러피언 작품상(누리 빌게 제일란), 유러피언 감독상(누리 빌게 제일란), 유러피언 각본상(에브루 체일란, 누리 빌게 제일란)
8회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드(2014)
수상
감독상(누리 빌게 제일란), FIAPF(국제영화제작자연맹)상(제이넵 오브바투르 아타칸)
후보
최우수작품상(누리 빌게 제일란)
28회 리즈국제영화제(2014)
후보
공식부문(누리 빌게 제일란)
25회 스톡홀름국제영화제(2014)
초청
오픈 존(누리 빌게 제일란)
11회 홍콩아시아영화제(2014)
초청
시네아스트 딜라이츠(누리 빌게 제일란)
50회 시카고국제영화제(2014)
초청
스페셜 프레젠테이션(누리 빌게 제일란)
58회 BFI 런던영화제(2014)
초청
갈라(누리 빌게 제일란)
19회 부산국제영화제(2014)
초청
월드 시네마(누리 빌게 제일란)
33회 밴쿠버국제영화제(2014)
초청
스페셜 프레젠테이션(누리 빌게 제일란)
62회 산세바스찬국제영화제(2014)
초청
진주(누리 빌게 제일란)
39회 토론토국제영화제(2014)
초청
마스터스(누리 빌게 제일란)
36회 모스크바국제영화제(2014)
초청
스페셜 스크리닝(누리 빌게 제일란)





67회 칸영화제(2014)


  


 

       


수상
황금종려상(누리 빌게 제일란)
후보
경쟁부문(누리 빌게 제일란)

 수상 황금종려상(누리 빌게 제일란)


 




 

 

 




interview


“소설가가 소설을 쓸 때 몇 페이지가 될지 궁금해하지 않듯이 
우리는 어떠한 고민도 없이 모험을 시작했다”
- 감독 누리 빌게 제일란


Q. 칸 영화제를 통해 <윈터 슬립>이 공개된 이후 많은 이들이 안톤 체호프의 희곡 <벚꽃 동산>에서 영감을 받지 않았나 추측하던데요.

A. 저는 그 작품은 생각하지 않았어요.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습니다. 하지만 체호프의 모든 작품은 비슷한 주제를 다루기에 당연히 <벚꽃 동산>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겁니다. 영화의 엔드 크레딧에서도 볼 수 있듯 나는 체호프의 몇몇 단편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그 가운데 하나가 15년 전부터 내 마음 속에 있었습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나톨리아>를 만든 뒤 비로소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5, 6년 동안 <윈터 슬립>에 대해 논의해왔고, 갑자기 영화 제작에 시동이 걸리더니 우리 스스로 멈출 수 없는 지경이 됐습니다. 완성된 영화를 돌아보면 그건 처음에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가 되었지만, 체호프의 이야기는 여전히 내 작품의 일부로 남아 있고 그의 영혼이 <윈터 슬립>에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시나리오 작업을 아내 에브루 제일란과 함께 하시는데, 공동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A. 우리는 <기후> 이후로 함께 작업해왔어요. 먼저 우리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 집중하고 나서 대사를 쓰죠. 사실 우리는 각자 따로 작업을 하고 나서 함께 이야기를 하는데요. 대사 하나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많은 논쟁이 오고 가죠. 때로는 격렬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그게 여러 가지 선택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데 도움이 돼요. 글을 쓰는데 걸리는 시간은 짧은데 토론을 하는 시간이 훨씬 더 길죠. 제가 감독이니까 최종 결정은 제가 내리고 싶지만, 에브루는 언제나 저를 설득할 방법을 찾아내요. 이런 논쟁은 영화가 개봉한 후에도 계속되곤 합니다. 어떤 기자가 영화의 어떤 부분에 대해 비판을 했는데 그 부분이 아내가 동의하지 않았던 부분이었다면 그녀는 결국 자신이 옳았다고 말하죠. 그러면 또 저는 제 관점을 지지하는 다른 기사를 찾아야 하고요. 

Q. 아내와의 공동 작업의 장점으로 어떤 걸 꼽을 수 있나요?

A. 그녀는 이야기의 줄거리를 정교하게 만드는 것을 특히 잘해요. 우리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나톨리아>를 작업할 때 대부분의 문제의 해결 방법은 그녀가 생각해냈어요. 저는 또한 그녀가 우리 작품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저보다 더 냉정하다고 생각해요. 매우 현실적인 스타일이거든요. 가끔 저는 여동생 네즐라를 대면한 아이딘의 심정이 되곤 해요. 네즐라는 타협을 모르는 성격이죠. 그녀의 맹공격에 직면하면 때로는 내 의견도 들어달라고 말하고 싶어져요. 에브루의 현실주의는 작품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녀는 현재와 현실에 굳건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거든요. 

Q. <윈터 슬립>은 부부의 초상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기후>와 유사한 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후>와 비교하면 훨씬 광범위한 주제를 다룹니다. 마치 위대한 소설처럼요. 처음부터 196분 길이의 대서사시를 만들 계획을 하신 건가요? 

A. 우리가 각본을 다 썼을 때 이미 짐작은 했었죠. 163 페이지나 되었거든요. 전작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나톨리아>는 96페이지였는데 말이에요. 하지만 그건 저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요. 소설가가 소설을 쓸 때 몇 페이지가 될지 궁금해하지 않듯이 저도 그런 자유를 누리고 싶었죠. 감독으로 하여금 90분이나 100분 길이의 영화를 만들도록 제약하는 것은 단지 상업적인 관점일 뿐이죠. 우리는 어떠한 고민도 없이 모험을 시작했어요.

Q. 모든 캐릭터들이 처음부터 시놉시스에 있었나요? 아니면 중간에 추가되기도 했나요? 

A. 우리는 우선 한 남자와 한 여자에서 시작했고 그 다음에 여동생이 나왔고 주변 인물들이 나오고 마지막으로 이맘 함디와 그의 형 이스마일, 그리고 아들 일리야스가 나왔어요. 우리가 애초에 썼던 첫 장면은 아이가 돌로 차 유리창을 깨는 장면이 아니었지요. 처음에 썼던 첫 장면은 남편이 아내 니할과 대면하는 장면이었어요. 그런데 우리는 이 부부와 그들이 이사한 작은 마을과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 가족을 만들어냈죠. 사실 저는 어린 시절에 겪었던 사건을 떠올렸어요. 아버지와 어떤 작은 마을에 갔었는데, 아버지가 미국에서 가져온 차를 타고 갔었어요. 그 차가 아마도 그 마을의 유일한 차였을 거에요. 한 아이가 창문에 돌을 던졌고, 삼촌은 차 밖으로 나가서 아이를 잡으러 가서는 아이를 끌고 왔어요. 영화에서처럼요.

Q. 피츠제럴드가 말하기를 ‘모든 삶은 붕괴의 과정이다’라고 했는데요. 주인공 아이딘은 가면을 벗겨내는 긴 변화를 겪은 후에 무너지는 듯이 보입니다. 

A.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덧붙이고 싶습니다. 아이딘은 정말로 파괴되어야만 했다고요. 그래야만 그가 새롭게 출발하여 무언가를 할 수 있었죠. 그건 삶에서 가끔씩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완전히 파괴되는 과정을 겪어낸 후에야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그 존재를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그렇게 술에 완전히 취하게 되는 장면을 생각해냈어요. 그리고 나서 아이딘은 약간의 자부심을 찾아서 집으로 돌아올 힘을 얻게 되고, 마침내 ‘터키 연극의 역사’를 집필하게 되죠. 마지막 장면에서 니할과 화해하게 되는 가능성이 보이긴 하지만 그가 정말 그 말들을 내뱉은 것인지 아니면 마음 속으로만 생각한 것인지 명확하지가 않아요. 또한 그 말들은 동시에 아내에게도 책임을 지우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Q. 로베르 브레송의 <당나귀 발타자르>에 삽입된 슈베르트의 소나타 20번이 <윈터 슬립>의 주요 테마인데요, <당나귀 발타자르>의 당나귀가 <윈터 슬립>의 말이 된 건가요?

A. 터키어로 ‘카파도키아’는 ‘훌륭한 말들의 땅’ 이라는 뜻이에요. 그 지역에는 최고의 야생마들이 많이 있어요. 그래서 이야기 속에 야생마들을 넣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했죠. 그들은 인간과 접촉하지 않고 지내다가 잡히게 되면 자유를 위한 싸움을 시작하죠. 저는 그것이 영화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Q. 배우들과는 어떻게 일하시나요?

A. 제가 그들에게 많은 자유를 준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저는 배우들이 대사를 각본에 쓰여진 그대로 전하기를 원합니다. 한번 그대로 찍은 후에 즉흥적으로 해보게 해서 배우가 다른 시도를 해보게 하기도 합니다. 배우들은 자신들의 연기를 좀더 자연스럽게 만드는 디테일을 보태기는 하지만 원래의 텍스트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원하던 것을 얻을 수 있도록 세트에서 리허설 촬영을 하는데 시간을 많이 쏟는 편입니다. 그리고 나서 더 나은 게 있는지 찾아보죠.






영화 후기....


터키 가파도키아의 모호하고도 매혹적인 이미지의 이 영화 포스터를 본다면 누구나 보고싶다는 강렬한 필이 꽂히지 않을까....

내가 그랬듯이...

그러나 그 매혹적인 배경은 그저 몇 장면에 그친다.

3시간이 넘는 그 기인 시간 동안 영화를 이끌어 가고 있는 인간 내면 묘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의자 등받이에 편히 기대고 앉아 볼 수 없을 정도의

긴장감 마저 주며 자신에게로 파고든다.

단순한 즐길거리의 영화가 아니라  영화가 흘러갈 수록 주인공들이 겪는 갈등의 크기와 맞먹으며 수많은 생각의 소용돌이에 파묻혀가는 것이다.

나의 삶...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한 사고가 대체 얼마나 가벼웠는 지....

그 가벼움에 잠시 몸서리가 쳐질 정도다.


영화는 여동생과 함께 사는 문학 평론가의 이야기와 자선 활동을 펼치는 젊은 아내, 그리고 그녀의 남편에 관한 이야기를 기반으로 구성되었다.

무려 15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다는 윈터 슬립은 체호프의 문학을 영화로 옮긴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가 받은 찬사는 이 뿐만이 아니다.

제 67회 칸 국제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2014년 상영직 후 IMDB 평점 9.9 를 기록할 정도로 평단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잡지사 기자들로 부터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걸작이라는 칭송을 받은 작품이다.


호텔 오셀로를 운영하는 주인공 ‘아이딘’은 젊은 아내 ‘니할’, 이혼한 여동생 ‘네즐라’와 함께 살고 있는 은퇴한 배우이자 작가이다.

어느 날, 가난한 세입자의 아들이 아이딘의 차를 향해 돌을 던지고, 그 사건은 단단한 성벽과도 같은 그의 기만적인 삶에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사소하게 보이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갈등과 번뇌를 거쳐 아이딘은 문득 자신의 진정한 모습에 대한 자기 인식의 순간을 맞게 된다는 스토리인데....

영화 시작에서 돌멩이를 던진 소년의 눈빛이 얼마나 강렬한 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저 어린 소년의 눈에서 어찌 저런 분노의 눈빛을 뿜어 낼 수 있는 지...

누구의 질문에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소년의 모습은 혹 어른에게서 풍기는 정의심 마저 느끼게 한다.


지주와 세입자, 지식 계급과 노동계급, 종교와 세속,가부장적인 전통사회에서의 남성과 여성 등에 대한 비판을 다루며

편안하고 안락한 삶 속에서 도덕과 윤리를 논하는, 자기 만족에 빠진 지식 계층의 위선과 불평등한 사회,

그리고 기만과 냉소로 얼어붙은 세상을 예리한 시선으로 파고든다.


잔잔한 영화의 흐름은  평화로운 서재에서 서로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남매간의 설전에서 부터 격정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해

애증과 고독으로 서로 갈등하는 부부의 감정의 파고에서 절정을 맞는다.

이들의 철학적 의미가 담겨있는 심오한 대화들은 우리 모두의 사고에 파문을 일으키며 자아 성찰에서 헤어나오기 힘들게 한다.

더우기 주인공들의 정교한 심리적 연기와 감성은 가슴이 콩딱거리는 팽팽한 긴장감에 강렬한 몰입감까지 선사한다.

특히 마지막 장면의 아이딘의 독백은 수많은 논제들속에 휘말려 착잡했던 심경에 느닷없는 눈물을 고이게 한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단 한 곡으로 장장 3시간 10분이라는 롱 런닝 타임을 이끌어 가면서도

인간의 감성을 완벽하게 아우른 영화 음악도 기막히다.

가파도키아의 풍광 몇 장면과 잔잔한 실내 장면으로 영화 분위기를 압도해 내듯....


한 번만 보기에는 아까운 영화다.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거의 반년에 가까운 그 기인 시간 동안 상영해준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