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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응자 (The Conformist,1970)/2016.1.29.아트하우스 모모

나베가 2016. 2. 8. 19:23




 

죽기 전에 반드시 봐야할 영화 1001 선정! 

로튼토마토 신선도 100%! 메타크리틱 100점!

세계가 인정한 압도적 걸작 <순응자> 46년 만에 국내 최초 개봉!

 

<마지막 황제>, <몽상가들>을 연출한 세계적 거장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순응자>가 영화가 제작된 지 46년 만에 국내에서 최초로 극장 개봉한다. 이탈리아 문학의 거장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소설 [순응자]를 만 29세의 베르톨루치가 각색·연출한 <순응자>는 기존 사회 질서에 순응하여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파시스트가 된 청년 마르첼로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파시즘 그리고 성 정치학을 탐구한 걸작으로, 국내 씨네필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수없이 회자되었으나 아직까지 국내에서 정식으로 개봉된 적 없는 작품이다. 

 

<순응자>는 미국의 영화정보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지수 100%, 영화평론 사이트 메타크리틱에서 비평가 점수 100점이라는 이례적인 기록을 세우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역대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지수 100%를 기록한 작품으로는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 로베르트 비네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알프레드 히치콕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 로만 폴란스키의 <혐오>, 존 휴스턴의 <말타의 매> 등이 있으나, <순응자>는 메타크리틱에서도 비평가 점수 100점이라는 놀라운 수치를 기록하며 명실공히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순응자>는 로튼토마토 선정 세계 100대 영화, 토론토 영화제 선정 세계 100대 영화,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선정 100대 영화,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 1001편에 올라 있는 세계 영화사의 압도적 걸작으로, 외신들 역시 “'위대하다'는 찬사가 진정으로 어울리는 영화”(워싱턴 포스트), "이제껏 당신이 보지 못했던 눈부신 매혹과 파격"(뉴욕타임즈),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가장 위대하고 강렬한 걸작”(빌리지 보이스), “베르톨루치 최고의 작품”(필름크리틱.com), “의심할 여지 없는 마스터피스”(LA타임즈), "도덕적, 정치적 비겁함에 대한 아름다운 초상"(인디펜던트), “고전적인 이미지는 놀랄만큼 아름다우며, 스토리텔링은 그 이상으로 강렬하다”(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영화가 가장 중요한 예술이었으며 그 가능성이 무한했던 시대를 기억하게 하는 작품"(Dave Kerr) 등의 찬사를 쏟아내며 그 영화사적 가치와 높은 작품성을 입증하고 있다.



 

 

<대부> <택시 드라이버>를 탄생시킨 걸작!

내로라하는 세계적 거장들의 뜨거운 극찬과 오마주!

거장들의 거장, 베르톨루치의 위대한 유산 <순응자>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독보적·혁명적 마스터피스 <순응자>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콜세지 등 수많은 세계적 거장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순응자>는 진지한 주제를 장중하고 화려한 수사학으로 풀어내는 베르톨루치의 놀라운 연출력을 엿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세계적인 촬영감독 비토리오 스토라로가 이뤄낸 경이로운 촬영 기법,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미묘한 편집, 건축과 패션을 아우르는 스타일리시한 영상미로 이후 제작된 영화, 드라마, 광고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영화인들에게는 마치 혁명과도 같았던 작품인 <순응자>는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에 막대한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부> 시리즈와 <지옥의 묵시록>을 연출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택시 드라이버>와 <분노의 주먹>의 마틴 스콜세지에게 모더니즘의 포문을 열어준 영화이기도 하다. 실제로 <대부 II>에서 낙엽이 흩날리는 <순응자>의 명장면을 차용한 바 있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순응자>는 내게 모더니즘을 잉태시켰다.”라고 밝힌 바 있으며,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는 모호한 1인칭 시점과 표현주의 기법을 <순응자>로부터 물려받았다. 스콜세지 감독은 “<순응자>로 베르톨루치는 내게 경외의 대상이자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고 고백했으며, 2000년대에 큰 인기를 얻은 HBO의 마피아 드라마 [소프라노스]도 <순응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파고>, <바톤 핑크> 등을 연출한 조엘 & 에단 코엔 감독이 <순응자>를 두고 “새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언제나 스태프들과 함께 챙겨 보는 영화.”라고 밝힌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특히 <밀러스 크로싱>의 대표 씬인 숲 속 처형 장면을 비롯한 여러 장면들에서는 <순응자>의 오마주가 발견되며, 건조한 표정에 중절모를 쓴 두 작품의 주인공들 역시 묘하게 닮아 있다.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까운 지점에 도달한 작품.”이라며 뜨거운 극찬을 남긴 박찬욱 감독 역시 <복수는 나의 것>을 통해 이 작품을 오마주한 바 있는 등, <순응자>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세계적 거장들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빼어난 영상미와 유려한 사운드트랙, 완벽한 미학적 성취!

촬영감독 비토리오 스트라로 & 작곡가 조르주 들루뤼

베르톨루치 사단이 선사하는 황홀한 영화적 경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미학의 정점을 보여주는 <순응자>에서 단연 으뜸은, 보는 이들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는 압도적인 미장센이다. 낮은 높이에서 카메라를 움직이는 현란한 테크닉, 빛과 어둠을 경계 짓는 탁월한 조명 효과, 철저하게 계산된 트래킹 숏, 완벽한 화면 구도와 대담한 앵글 그리고 공간과 여백의 미는 황홀한 시각적 경험을 선사하는데, 이는 당대 최고의 촬영감독 비토리오 스토라로(Vittorio Storaro)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거미의 계략>, <순응자>,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1900년>, <마지막 황제>, <리틀 부다> 등 베르톨루치의 작품 이력 전체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많은 작품을 함께 했던 비토리오 스토라로는, 베르톨루치의 영화 외에도 <지옥의 묵시록>, <딕 트레이시>, <탱고> 등의 촬영을 담당한 세계적 촬영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다. 당대에는 시도되지 않았던 참신한 촬영·조명 기법으로 그가 선보인 경이로운 영상미학은 이후 제작된 영화, 드라마, 광고, 시각 이미지 등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 II>, 코엔 형제의 <밀러스 크로싱>, 박찬욱의 <복수는 나의 것> 등 거장들의 대표작들에서 <순응자>의 여러 장면이 오마주된 것을 살펴볼 수 있다. 베르톨루치는 비토리오 스토라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스토라로는 그림붓이자 빛이었고, 내가 도저히 따를 수 없는 화가의 손이었다. 내게 빛과 색채의 관념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시각화하기 위한 언어밖에 없었지만, 그는 그것을 늘 현실로 바꿔냈다.”

 

<순응자>의 빼어난 영상미와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더욱 부각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작곡가 조르주 들루뤼(George Delerue)의 품격있는 사운드트랙이다. 프랑수아 트뤼포, 장 뤽 고다르, 알랭 레네, 루이 말 등 누벨바그 거장들과의 협업으로 ‘영화계의 모차르트’란 수식어를 거머쥔 조르주 들루뤼는, <순응자>에서 영화의 분위기와 정서를 십분 살리는 음악들로 완성도와 몰입도를 한껏 끌어올린다. 배신과 음모가 도사리는 도시의 냉혹함, 쫓고 쫓기며 서로의 의중을 시험하는 등장인물들 사이의 긴장감, 그 속에 소품처럼 존재하는 우아함, 낭만, 향수가 사운드트랙 안에 모두 담겨있어 관객들을 전율케 할 전망이다. 




 

시대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세월을 뛰어넘어 심장을 관통하는 거장의 강렬한 메시지!

여러 번 감상할수록 매번 다른 깊이를 선사하는 걸작!

 

<순응자>는 남들과 같아지기 위해, 단지 평범하게 살기 위해 세상에 순응한 한 남자 마르첼로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 속에는 "평범함", "정상적인 삶"이라는 표현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마르첼로는 어떤 확고한 확신을 가지고 파시즘에 투신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으며, 주인공의 친구는 마르첼로에게 “다들 남들과 달라지고 싶어하는데, 자네는 남들과 같아지길 원하는군.” 이라고 말한다. 그는 “정상적인 삶”을 살기 위해 평범한 가문의 아내를 맞이하고, “정상적인 남자”가 되기 위해 무솔리니 정부의 비밀 경찰에 가담한다.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그는 평범해지려고 애쓰지만, 군중 속에서 여전히 도드라진다. 특히 파리의 댄스홀 장면에서 춤추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홀로 고립된 그의 모습은 ‘순응자’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원작 소설과는 다르게 과거와 현재를 수시로 오가는 비선형적인 서사 구조로 연출된 <순응자>는 결말 역시 원작과는 다르다. 하지만 원작자 알베르토 모라비아는 베르톨루치의 각색을 매우 만족스러워 했다고 한다. 원작의 정수를 그대로 살려낸 <순응자>는 주인공의 내면을 파고드는 예리한 카메라 워크와 회상 씬들로 직조되는 다층적인 스토리, 느와르적인 긴장감이 넘치는 화면 구도로 관객을 한껏 몰입시킨다. 더불어 마지막 장면의 반전은 영화를 두 번째, 세 번째 관람할 때 각 장면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며 감상의 깊이를 배가시킨다. 뿐만 아니라 직선적이고 차가운 파시스트 건축과 예술적이고 낭만적인 파리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이미지와 관념의 결합은 <순응자>가 얼마나 정교하고 장엄하게 연출된 걸작인지를 보여주며, ‘눈먼 자들’로 대변되는 상징은 정치 이데올로기, 국가와 개인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영화 <순응자>가 만장일치로 칭송받는 걸작의 반열에 오른 이유에는 촬영, 편집, 미술, 음악을 아우르는 매혹적인 스타일뿐 아니라 시대를 초월한 심오한 주제 의식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현 시대에도 많은 이들이 시대에 순응하며 살고 있으며, 보편적이면서도 위험한 존재인 ‘순응자’에 대한 거장의 강렬한 메시지는 관객들로 하여금 공감과 연민을 불러 일으키는 동시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 것이다. 반 세기가 흐른 후에도 여전히 유효한, 심장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순응자>는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과 여운을 선사할 것이다.




 


 

전도유망한 공무원, 아름다운 아내를 둔 남편, 사려 깊은 동료 그리고… 파시스트.

그저 평범하게 살기 위해 세상에 순응한 한 남자의 필사적인 선택!

 

로마의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마르첼로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버지로 인해 불안에 시달린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 그는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자 중산층 집안의 줄리아와 결혼하고, 대중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무솔리니 정권의 비밀경찰에 자원한다. 첫 임무로, 자신의 스승이자 프랑스에서 정치적 망명 중인 반독재 인사 콰드리 교수의 암살을 지시받은 마르첼로는 파리로 신혼여행을 떠나 콰드리 교수와 그의 아내 안나에게 접근한다. 처음엔 경계와 의심을 늦추지 않던 이들 부부는 그를 차차 신뢰하게 되지만, 안나에게 걷잡을 수 없이 끌리게 된 마르첼로는 자신의 본심과 임무 사이에서 혼란을 겪게 되는데… 








“<순응자>는 나의 머리와 삶으로부터 나온 작품이다”

연출∙각색 |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1940년 3월 16일 이탈리아의 파르마에서 태어났다. 시인이자 영화 평론가였던 그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베르톨루치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1962년 베르톨루치는 시집 [신비를 찾아서]로 문학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등단한다.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감독의 <아카토네>(1961)의 조감독을 맡으며 영화계에 입문한 그는 로마 대학에서의 학업을 중단하고 영화에 투신한다. 24세의 나이에 젊은 좌파 지식인들의 패배감을 다룬 <혁명 전야>를 만들면서 국제영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되며 1970년에 생애 최고의 걸작이라고 불릴 만한 <거미의 계략>과 <순응자>를 동시에 발표한다. 1972년작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일반 영화에서 금기시되어왔던 수준의 파격적인 에로티시즘으로 큰 흥행 성공을 거두지만 이탈리아에서 상영 금지를 당하고, 베르톨루치는 유죄 판결을 받는 등 엄청난 센셰이션을 일으킨다. 1976년 연출한 4시간 10분짜리 대작 <1900년>은 1900년부터 1945년까지 이탈리아 내의 계급 갈등을 그린 대서사시이다. 청나라 12대 황제 푸이의 일생을 그린 1987년 작 <마지막 황제>는 감독상과 작품상을 포함한 아카데미상 주요 부문 9개 후보에 오르고 그 9개 부문을 모두 수상하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세웠다. 2003년에는 파리를 배경으로 68혁명 세대의 일탈을 대담하고 도발적으로 그려낸 <몽상가들>로 젊은 세대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기도 하였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1960년대부터 영화 역사를 개척해 온 현대영화의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성적·정치적 차원에서 인간이 겪게 되는 분열과 갈등에 주목, 영화라는 것을 사회 구조를 탐구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택하고 있다. 마르크스, 프로이트, 동양의 정신 세계를 거친 그의 수많은 작품들은 세계 영화사의 위대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 2011년, 칸 국제영화제는 세계 영화사에 끼친 그의 업적을 기리며 베르톨루치에게 명예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다.



FILMOGRAPHY 

<미 앤 유>(2012), <몽상가들>(2003), <텐 미니츠-첼로>(2002), <미녀 훔치기>(1996), <리틀 부다>(1993), <마지막 사랑>(1990), <마지막 황제>(1987), <루나>(1979), <1900년>(1976),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 <순응자>(1970), <거미의 계략> (1970), <파트너>(1968), <혁명전야>(1964), <냉혹한 학살자>(1962) 외 다수 




주연
장-루이 트린티냥 장-루이 트린티냥  마르첼로 클레리치 역 스테파니아 산드렐리 스테파니아 산드렐리 (Stefania Sandrelli) 줄리아 역



“난 정상적인 인생을 꾸려나갈 거예요”

마르첼로 클레리치 役 | 장-루이 트린티냥 


1955년 로저 바딤 감독의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에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장-루이 트린티냥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전세계적 흥행을 기록한 클로드 를루슈 감독의 1966년작 <남과 여>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1969년, 아카데미 및 골든글로브 수상에 빛나는 <제트>를 통해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그는 프랑수아 트뤼포의 <신나는 일요일>, 에릭 로메르의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클로드 샤브롤의 <나쁜 여인들>, 크지쉬토프 키에슬롭스키의 <세가지 색: 레드> 등 거장들의 작품에 연이어 출연하며 관록 있는 연기를 보여줬다. 2012년 미카엘 하네케의 <아무르>를 통해 칸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그는 현재 연극 공연을 하며 배우로서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순응자>에서는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파시스트가 되기로 한 마르첼로 역을 맡아 건조함과 불안함이 깃든 표정으로 디테일한 연기를 선보인다.


Filmography

<아무르>(2012), <임모르텔>(2004), <세가지 색-레드>(1994), <랑데부>(1985), <비열한 남자>(1970),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1969), <제트>(1969), <암사슴>(1968), <남과 여>(1966), <위험한 관계>(1959),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1956) 외 다수

 




“당신은 절대 못할걸, 형편없는 겁쟁이니까.”

안나 콰드리 役 | 도미니크 샌다 


프랑스 출신의 배우 도미니크 샌다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순응자>와 <1900년>, 비토리오 데시카의 <핀지 콘티니의 정원>, 릴리아나 카바니의 <선과 악을 넘어서> 등 유럽 예술영화에 주로 출연하며 1970년대를 풍미했다. <순응자>에서 마르첼로가 암살하려는 과거의 은사 콰드리 교수의 아내 안나 역을 맡아 지적이면서도 날카로운 매력을 선보이며 마르첼로 부부와 묘한 관계를 형성한다.


FILMOGRAPHY 

<생 로랑>(2014), <문 나이트>(1989), <선과 악을 넘어서>(1977), <지옥의 사막>(1977), <핀지 콘티니의 정원>(1973), <1900년>(1976), <유산>(1975), <순응자>(1970), <트루게네프의 첫사랑>(1970) 외 다수





“우린 약혼했는데, 이게 뭐 어때서요?”

줄리아 클레리치 役 | 스테파니아 산드렐리


특유의 관능미로 주로 파격적인 작품들에 출연하며 큰 사랑을 받았던 이탈리아의 국민 여배우 스테파니아 산드렐리는 <순응자>에서 전형적인 중산층 출신에 아름답지만 다소 경박한 마르첼로의 아내 줄리아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다. 


FILMOGRAPHY 

<라스트 키스>(2001), <하몽 하몽>(1992), <스트라디바리우스>(1989), <틴토 브라스의 열쇠>(1983), <관심>(1984), <순응자>(1970) 외 다수







마르첼로(장 루이 트랭티냥)와 줄리아(스테파니아 산드렐리)는 결혼을 앞둔 커플이다. 어느 날 줄리아가 클레리치 가문의 비밀을 폭로하는 익명의 편지를 받았노라고 말한다. 편지에 따르면 마르첼로의 아버지는 매독으로 인한 정신병을 앓고 있다. 실제로 마르첼로의 아버지는 정신병동에 수감 중이다. 마르첼로는 아버지를 찾아가지만, 그와 화해할 수 없다는 사실만을 확인한 채 돌아선다. 어린 시절 성인 남자에게 성추행을 당하는 등 ‘비정상’적인 것들에 둘러싸인 채 자란 마르첼로는 ‘정상’적인 것을 추구하며 산다. 줄리아와의 결혼도, 그가 파시스트가 된 것도 당대에는 그것이 평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마르첼로는 당국으로부터 프랑스로 망명한 은사, 콰트리 교수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는다.

“내게 영화 만들기란 아버지를 죽이는 나의 방식임을 깨달았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은 <순응자>를 만든 지 수십년 후, 다시 이 작품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서 ‘아버지’는 명망 높은 시인인 아버지 아틸리오 베르톨루치이자 그의 영화 세계에 영향을 준 장 뤽 고다르이기도 하며, 역사적으로는 파시즘이기도 할 것이다. 베르톨루치의 작품에는 정치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이 경합을 벌이며 뒤엉키는 경향이 짙은데, 이 작품은 그런 베르톨루치 영화 세계의 원형이 새겨져 있다. 누벨바그의 자장 아래에서 출발한 감독이 그 흐름에서 벗어나 작가주의와 전통의 화해를 시도하며, 특유의 스타일을 태동시킨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부성에서 파시즘의 뿌리를 찾는다는 점에서 같은 해에 완성한 <거미의 계략>과 직접 연관된다. 세심한 미장센은 영화의 메시지와 긴밀히 조응한다. 이를테면 유리를 통해 부스 밖이 내다보이는 공간과 막힌 벽 사이를 주인공이 오가는 장면에서 카메라 역시 그의 움직임을 따라 수평으로 움직인다. 이에 따라 그가 점한 공간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 한 화면 내에 공간의 성격을 분화시키면서 정상/비정상의 이분법적 구획에서 오는 폭력성과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물의 내면을 표상한다. 1972년 제6회 전미비평가협회상 감독상, 촬영상을 받았다.






 

“<순응자>는 내게 모더니즘을 잉태시켰다.”

-<대부> 시리즈, <지옥의 묵시록>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순응자>로 베르톨루치는 내게 경외의 대상이자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좋은 친구들>,<분노의 주먹>,<택시 드라이버> 마틴 스콜세지-

 

“새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언제나 스태프들과 함께 챙겨 보는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파고>,<바톤 핑크> 조엘 & 에단 코엔-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까운 지점에 도달한 작품.”

-<박쥐>,<올드 보이>,<복수는 나의 것> 박찬욱-

 

“거듭 봐도 찬탄하게 되는 스타일의 매혹.”

–김영진 평론가-

 

“학창시절 우상과도 같았던 영화.”

-류성희 미술감독-

 

“'위대하다'는 찬사가 진정으로 어울리는 영화.” 

-Washington Post-

 

"이제껏 당신이 보지 못했던 눈부신 매혹과 파격." 

-New York Times-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가장 위대하고 강렬한 걸작.” 

-Village Voice-

 

“의심할 여지 없는 마스터피스.”

-Los Angeles Times-

 

 “베르톨루치 최고의 작품.”

-Filmcritic.com-

 

“취할 듯 아름답고 대단히 충격적이다.”

-L.A. Weekly-

 

"영화가 가장 중요한 예술이었으며

그 가능성이 무한했던 시대를 기억하게 하는 작품."

-Dave Kerr-

 

"도덕적, 정치적 비겁함에 대한 아름다운 초상." 

-Independent-

 

"고전적인 이미지는 놀랄 만큼 아름다우며,

스토리텔링은 그 이상으로 강렬하다." 

-Philadelphia Inquirer-




 

1970년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 노미네이트

인터필름상 수상 

기자특별상 수상

1970년 영국 필름인스티튜트어워드 서덜랜드상 수상

1971년 뉴욕비평가협회상 감독상 수상

1971년 이탈리아 골든고블릿어워드 감독상 수상

1971년 전미비평가협회상 감독상·촬영상 수상

1972년 미국 아카데미시상식 각본상 노미네이트

1972년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노미네이트

1972년 전미리뷰연합 외국어영화상 수상

1972년 Grand Prix de l'UCC 수상 






<순응자>의 디지털 리마스터링은 일종의 '부활'처럼 느껴지는 작업이었다. <순응자>의 일부분은 볼로냐 시네마테크의 시네테카의 훌륭한 테크니션들에 의해 다시 만들어졌다고 생각될 정도로 놀라웠다. 오늘날 디지털 기술은 위대한 작업을 가능케 한다.

 

<순응자>를 만들 당시, 즉 1960년대 말에 나는 작품 세계에 변화를 주었다. 60년대는 작가주의 영화의 시대로, 나 역시 작은 규모의 예술영화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의 영화들은 일종의 독백과도 같았다. 나 자신의 내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순응자>를 기점으로 내 작품들은 '대화'의 형식으로 나아갔다. 그러니까, <순응자> 이전에는 관객을 의식하지 않고 작품을 만들었지만, <순응자>에서 나는 진심으로 관객과 대화하고 싶다고 느꼈다. 실제로 <순응자>는 전 세계적으로 꽤 많은 관객과 만난 나의 첫 작품이다.

 

미국에서의 배급은 특이하게 이루어졌는데, <순응자>를 보고 이 작품의 중요성을 실감한 나의 친구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와 스티븐 스필버그가 파라마운트에 편지를 쓰고 그들을 설득해서 결국 파라마운트가 배급을 맡았다.

 

<순응자>에서 나는 1930년대에 대한 이야기, 즉 우리 부모님이 젋은 시절이던 시기의 이야기를 다뤘다. 1938년의 이탈리아는 점점 더 악몽으로 치닫고 있었다. 독일과 연합하여 최악의 파시즘으로 물들었던 시기였다. 민족차별법이 공표된 때이기도 하다.

 

장-루이 트린티냥이 연기한 '순응자'는 어떤 인물인가 하면,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남들과 다르게 느끼기 때문에 그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남들과 같아지려고 애쓴다. 다른 모든 이들처럼 '순응자'가 되고자 한 것이다.

 

나는 <순응자>가 1970년대의 젋은 미국 감독들에 의해서 구원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그래서 이 작품에 대한 감회가 남다르다. <순응자>가 젊은 영화 학도들에게는 일종의 교과서 같은 작품이라는 얘기를 듣곤 한다. 하지만 난 여전히 모든 걸 배워야 한다.

 

내가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작품들을 만들었다고 이야기들 하지만, 난 아직도 열린 마음으로 영화를 배우려고 한다. 난 아직도 영화에 대해 더 알고 싶다.




 

-<순응자> 디지털 리마스터 버전 미국 개봉 당시 인터뷰-

 

Q) 당신에게 ‘아방가르드’ 감독이란 딱지를 붙인 사람들이 <순응자>를 보고 모두 당황하더라. 당신의 편집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기 때문이 아닐까?

 

A) 나는 하루의 촬영을 끝내고 러시 필름을 보면서 그 속에 세트에서 벌어진 모든 것이 들어있는 것을 보고 이것이야말로 가장 충실하고 중요한 성과라고 생각했다. 러시 필름에는 촬영시의 긴장감과 스탭의 창조성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단순히 영상으로 옮긴 범주를 늘 뛰어넘고 있었다. 때로는 영화의 의도, 플롯, 주인공의 심리에 반(反)할 정도라 의외성이 충만하기도 했다. 따라서 나는 편집이란 게 바로 그 러시 필름을 사람들 앞에 내놓는데 필요한 절차 정도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편집 작업을 없앨 수는 없었고 어떻게든 그 효과를 감소시킬 방안을 생각했다. 60년대 새로운 경향의 영화가 롱테이크로 구성된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커트하지 않고 길게 촬영하는 것, 극적 행위를 하나의 연속 장면으로 찍는 것은 편집을 거부하는 바에야 대단히 실제적인 방법이었다. 68년의 분위기가 떠돌던 무렵이니, 정치적 용어를 쓴다면 편집은 어떤 쇼트를 촬영한다고 하는 혁명적 행위 다음에 오는 개량주의적 과정이라고나 할까. 편집은 실험실에서 꺼낸 온기가 흐르는 살아있는 소재를 차갑게 얼어붙게 만드는 것이었네. 즉, 죽음에 가장 가까운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Q) 그때 제3의 편집가가 비집고 들어왔다. ‘킴’이라 불리던 프랑코 아르칼리 말이다.

 

A) <순응자>에서 제작을 맡았던 사촌 죠반니가 한번 새로운 편집가를 써보라고 하더라. 1970년이었다. 같이 일을 시작하면서 둘의 영화적 배경이 상당히 달랐던 탓에, 킴은 이전의 작업으로 나를 설득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러자 그는 며칠간 내게 편집이 무엇인가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그는 편집에 대한 내 눈을 열어주었다. 내가 깊이 알기를 거부했던 영화의 한 영역으로 나를 이끌어 주었던 것이다. 촬영과 마찬가지로 편집도 우연과 운명에 문을 열어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며칠간의 작업을 통해 편집 과정에서도 즉흥이 가능함을 발견했던 것이다. 내가 촬영을 하면서 늘 세트에 집착했던 것은 거기에 즉흥이 이뤄질 커다란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반면 편집은 즉흥과 대립하고 모든 즉흥을 부정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킴은 편집이 분석적인 작업일 뿐 아니라, 영화의 태내에 숨겨진 비밀을 캐내는 작업이기도 함을 구체적으로 밝혀 주었다. 킴은 고스란히 사용하려고 찍은 장면을 자르고는, 거기에 쓸 생각이 전혀 없었던 다른 장면을 이어붙임으로써, 그때까지 숨어있던 의미를 갑자기 드러냈다. 그와 작업하면서 난 배우가 전혀 뜻밖의 연기로 의표를 찌를 때 맛볼 수 있었던 그런 감동을 자주 맛볼 수 있었다. 




 

Q) <순응자>에서 편집된 시간은 추억의 시간이 되어, 영화가 긴 플래시백으로 되어 있다. 줄거리가 주인공의 자동차 여행을 따라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A) 난 <순응자>를 모라비아의 원작처럼 연대순으로 풀어나갈 가능성을 남기면서 촬영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나는 자동차 여행을 ‘현재’로 설정하여 얘기를 담는 그릇으로 사용하려는 생각에 매혹되어 있었다. 요컨대 주인공은 기억 가운데를 여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나는 마르첼로의 여행 장면을 수없이 찍어 두었다. 킴과 같은 대가와 일을 하다 보면, 영화의 얼개가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것이 보일 때가 있다. 영화의 얼개는 시나리오 단계에서는 단지 예고되어 있을 뿐이고, 촬영 과정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꼴을 갖추다가, 편집 단계에 와서 최종적으로 제 모습을 띠게 된다. 킴이 즉흥의 여지를 남기면서 편집했다는 건, 그가 손가는 대로 작업했다는 뜻이 아니라, 소재를 검토하는 가운데 항상 새로운 관점과 의미를 끌어내 왔다는 의미다. 나와 편집의 관계는 이렇게 겨우 며칠만에 근본적으로 바뀌고 말았던 것이다. 그후 나는 킴의 작업을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것은 대단한 볼거리였다. 마치 재단사처럼, 탁월한 장인이 필름을 다루는 멋들어진 손맵시를 보는 것 말이다. 그의 시간 감각은 실로 놀라웠다. 잘라낸 필름을 뷰어로 확인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정확했으니, 짧은 장면을 편집할 때는 팔로 필름 길이를 재고 눈짐작으로 하는 게 아주 그만이었다. 편집이란 무비올라의 롤에서 롤로 이어지는 수평적 운동을 동반하는 작업이기 마련인데, 그의 방식은 수직으로 차례차례 층을 쌓아가는 듯했다. 그는 층을 쌓아갈 때마다 깊은 의미를 끌어 내곤 했다.




 

Q) 편집을 수용함으로써 당신의 촬영 방식이 바뀌게 되었나?


A) 아니, 그 반대다. 난 러시 필름이 킴에게 맡겨지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촬영 스타일을 더 엄격히 지키게 되었다. 킴과 나는 교육 과정도, 출신 성분도, 인생 경험도 서로 달랐고 영화 성향도 달랐다. 하지만 1970년부터 그가 명을 달리한 1978년 초까지 우린 함께 작업을 하면서 서로에게 다가가게 되었다. 그리고 <루나>의 초고를 같이 쓰게 되리만치 일종의 공생관계를 맺는 데까지 나아갔다. 덕분에 내게 편집은 더 이상 욕구불만의 진원지가 아니라, 영화의 풍부함을 가져다 주는 계기가 되었다. 

 

-베르톨루치와 엔초 웅가리, 도널드 란보드의 인터뷰 [베르톨루치, 중요한 장면들] 中- 





간단 영화 후기.....


오래전 부터 가끔은 아트하우스 모모에 종일 눌러 앉아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회원을 가입해 매주 소식을 메일로 받고 있었지만...

그저 찜만 화려하게 해 놓을 뿐 좀체로 발걸음 떼기가 쉽지 않았다.


그중 이 영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순응자'는 보고싶은 영화 단연 1순위였다.

그러나 유난히 상영중 일정이 빡빡해 날짜가 여의치를 않았다.

가까스로 친구와의 약속시간을 뒤로 미루고 모모의 첫 상영시간에 맞춰 갔으나  길이 막혀 10분이 지난 시간에서야 도착을 했다.

이 극장은 10분까지만 극장에 입장할 수가 있고, 그 이후엔 아예 티켓 부스가 잠겨서 티켓팅 조차도 할 수가 없다 한다.

아침 부터 서둘렀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약속 시간을 당겨서 시간을 보내고, 그 담날 다시 모모를 찾아갔다.

상영 시작 시간에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사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를 매우 좋아하지만 이 영화에 이처럼 집착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홈페이지에 소개된 화려한 영화 소개와 평이 한 몫을 했다.


메타크리틱에서의 비평가 점수 100점이라는 놀라운 수치를 기록하며 명실공히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로튼토마토 선정 세계 100대 영화, 토론토 영화제 선정 세계 100대 영화,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선정 100대 영화,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 1001편에 올라 있는 세계 영화사의 압도적 걸작....

 “'위대하다'는 찬사가 진정으로 어울리는 영화”(워싱턴 포스트), "이제껏 당신이 보지 못했던 눈부신 매혹과 파격"(뉴욕타임즈),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가장 위대하고 강렬한 걸작”(빌리지 보이스), “베르톨루치 최고의 작품”(필름크리틱.com), “의심할 여지 없는 마스터피스”(LA타임즈), "도덕적, 정치적 비겁함에 대한 아름다운 초상"(인디펜던트), “고전적인 이미지는 놀랄만큼 아름다우며, 스토리텔링은 그 이상으로 강렬하다”(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영화가 가장 중요한 예술이었으며 그 가능성이 무한했던 시대를 기억하게 하는 작품"(Dave Kerr)...등의 더 이상 미사여구를 달 수 없을 정도의 절대적 외신 기사들....


이 정도 찬사의 화제작이라면 정말 죽기 전에 꼭 봐야할 영화이지 않겠는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영화는 잔잔하게 전개되었다.

파시스트라는 이미지가 주는 기대 만큼 강한 이미지는 없었지만 잔잔하게 빨려드는 긴장감이 되려 영화에 더 집중도를 높인다.

46년 전 영화라는데....믿을 수 없을 만큼 세련된 영상미와 패션 감각을 보이며 매력적인 화면속으로 끌려 들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그가 던져주는 강력한 메시지....


선과 악을 누가 강력하게 말할 수 있으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는 그저 눈앞에 닿은 삶에 그저 순응하고 살아갈 뿐....

어쩌면 삶의 가치관 마저 매 순간 눈 앞에 맞딱드린 현실에 따라 수시로 변해가는 지도 모른다.

과거엔 그래도 교과서와 사회에서 배운데로 자신을 희생하고 진실 편에 서서 살아갔는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것도 그저 거대한 이데올로기 속에 감추어져 그리 느끼며 살았는 지도 모르지만...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떤가!

온전히 하얀 이빨을 드러내놓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 어떤 강력한 정치적인 이데올로기 보다 더 강하고 추악한 경제적 논리에 휩쌓여서...

아무도 인지하지도 못한 채...

그래서 어쩌면 이 가장 보편적이고 평범한 순응자들의 집단이 가장 위험한 건 지도 모른다.


잠시 생각했다.

이렇듯 극찬이 쏟아진 걸작이 우리나라에선 왜 46년 동안이나 상영을 하지 않았을까고....

아마 파시스트 라는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도 한 몫을 했겠고....

고해성사을 보는 과정에서 잠깐 언급된 종교적인 문제....

그리고 또 살짝 비춘 동성애적인 섹슈얼리티...등등이 당시에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이기 좀 힘들지 않았을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늘상처럼 화두에 또 잠시 휩쌓인다.

답은 항상 똑같다.

그냥 사는거지....

사회에 순응하기 보다는 자연과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순응하면서....


커피를 마시며 잠시 생각에 젖었다.

근래에 쏟아붓듯 보아재낀 영화들이 이것 저것 퍼즐처럼 머릿속을 헤집는다.

마음이 묵직해져 온다.


아~그랬군.

문득 대부분 남자들이 작품성 있는 영화나 소설등을 피하고 액션 영화에 열광하는 이유를 알것도 같았다.

이런 무거워 지는 마음을 피하고 있다는 걸.....


29세에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베르톨루치 감독의 천재성과 철학에 감동을 너머 놀랍기도 한 순간이다.

베르톨루치의 빛나는 작품들을 다시 볼 수 있을 지....찾아 볼 수 있는 한 그의 영화를 다시 보고 싶은 맘이 인다.

그가 표현하고 말하고자 하는 삶을 더 가까이 다가 들여다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