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기( 클래식 2015년)

세종솔로이스츠 콘서트&바딤레핀/5.18.월/예술의 전당

나베가 2015. 5. 18. 00:00

세종솔로이스츠 콘서트&바딤레핀

 

 

Simple Symphony, Op.4

브리튼 / 심플 심포니

Benjamin Britten, 1913∼1976

 

브리튼은 어려서부터 천재적 작곡가로서 주목되었는데 소년 시절에 이미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나 모음곡, 현악4중주곡, 가곡 등을 작곡하였다. 그 후, 그는 프랑크 브리지(1879-1941)를 만나서 그 재능을 더욱 길렀으며 드디어 런던 왕립음악 학교에 입학하여 작곡공부에 정진하였다. 그가 이 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완성한 것이 이 심플 심포니 이다. 근 보름달 남짓한 사이에 이곡을 완성하였으며 1934년 2월 10일에 완성하였다. 이곡에 사용되는 주제는 작곡자가 9세 때부터 12세 사이에 쓴 작품의 소재에 따르고 있는데 주제의 전개 등, 곡의 주요 부분은 전혀 새로운 것이다. 각 장에는 내용을 암시하는 듯한 타이틀이 붙여져 있는데 표제음악은 아니며 오히려 고전적인 견고한 구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심포니라는 하기에도 너무 가벼워서 이른바 심포니와 디베르티멘토 중간적인 성격으로 생각해도 좋다.

영국이 낳은 국민 음악강니 벤자민 브리튼은 10대에 이미 성숙한 재능을 보여주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는 성년이 되기 전까지 많은 곡들을 연습 삼아 써두어 생애 말년에까지 귀중한 음악적 재료로 이용했는데, 항상 유년시절의 순수함을 간직하고 싶어했던 작곡가인 그에게는 중요한 작곡법이라 할 수 있다.

이 곡은 그가 21세에 작곡한 곡으로 기본 모티브는 10-13세에 작곡했던 스케치에서 가져왔다고 전해진다. '심플 심포니'의 '심플(Simple)'이란 제목에서 예견할 수 있듯이 구성의 아담함과 멜로디의 소박함이 특징이다. 4악장의 엄격한 고전형식에 기초한 이 작품에는 악장별 빠르기말 외에 작곡가가 영어로 붙인 타이틀이 있어 감상의 이해를 돕는다.

 

제1악장 '떠들석한 부레'라는 표제가 붙어있는 이 악장은 시종 빠르고 흥겨운 감정을 전달하는 활력 넘치는 춤곡이가. 후반부에 들어서면 악기군의 복잡한 대위법으로 이루어지는 푸카토(작은 푸카)가 있다.

제2악장 '명랑한 피치카토'로서 스케르초에 해당하는 악장이다. 현악기가 전부 활을 내려놓고 현을 손으로 뜯는 피치카토 주법을 사용하며, A-B-A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제3악장 '센티멘탈한 사라방드'. 바로크 시대 무거운 3박자의 춤곡, 사라방드를 이용하여 깔리는 g단조의 선율이 애처롭다. 하지만 곧 이어지는 중간부 주제가 분위기를 전환시킨다.

제3악장 '센티멘탈한 사라방드'. 바로크 시대 무거운 3박자의 춤곡, 사라방드를 이용하여 깔리는 g단조의 선율이 애처롭다. 하지만 곧 이어지는 중간부 주제가 분위기를 전환시킨다.

제4악장 '흥겨운 피날레'. 무섭게 돌진하는 현악기의 음형이 인상적인 악장으로 피날레에서는 힘차고 단호하게 끝난다.

 

HJSO 2011 - Benjamin Britten, Simple Symphony Op. 4

벤자민 브리튼 (1913 - 1976)

브리튼은 1913년 11월 22일 서포크의 로스토프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치과의사, 어머니는 아마추어 음악가였다. 브리튼은 다섯 살 때부터 숱한 곡을 만들었고, 피아노와 비올라를 배웠다. 그의 스승인 브릿지는 브리튼에게 타고날 때부터 갖추어져 있던 음악가의 소질을, 어려운 테크닉을 익히는 엄격한 훈련에서 연마하는 동시에, 폭넓게 현대음악(바르토크, 스트라빈스키, 쉰베르크 등)을 들어내는 귀를 길렀다. 이건, 당시의 아카데믹한 학교는 어디에서도 장려하지 않은 일이었다.

1930년 브리튼은 왕립음악원에 입학했다. 그곳의 학생시절이 긑날 무렵, 브리튼은 어린시절에 써놓았던 습작의 몇 가지를 묶어서, 현악을 위한 '심플 심포니'(1933)를 만들었다. 이후 이 곡은 브리튼의 가장 유명한 작품의 하나가 되었다. 화성과 구성의 면모에서 이 곡은 브리튼이 나중에 쓴 대부분의 작품보다 '진보적'이다.

1939년부터 42년 동안 브리튼은 미국에 머물렀다. 그와 친구 사이이며 유별난 파트너인 테너 피터 피어즈와 함께 다녔다. 미국에 있는 동안 브리튼은 랭보의 프랑스어 시에 화려하고 빛나는 음악을 붙인 가곡집 '일뤼미나시옹'(1939-9), 그리고 같은 시기에 월튼이 쓴 걸작과 닮은 분위기를 갖는 바이올린협주곡(1938-9) 등을 작곡했다.

1942년 고국이 그립고, 전시하의 영국의 곤경에 대한 죄책감으로 해서 브리튼과 피어즈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로서 공장노동자들과 병사들을 위한 리사이틀을 벌이는 임무가 주어졌다.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상당한 지휘자인 그는 어린이들의 음악적 기호와 같은 성향이 있어서 어린이들을 위해 격식을 내세우지 않고, 동심을 사로잡는 작품을 쓰게 된다.

브리튼의 '피터 그라임즈'는 영국인이 쓴 오페라에서는 처음으로 대륙의 극장 경영자가 갖는 영국 혐오의 편견을 깨뜨리고, 런던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들의 수도들을 열광시킨 작품이다. 아름다운 합창, 극적인 타이틀 롤, 그리고 상상을 환기시키는 관현악서법으로 해서 '피터 그라임즈'는 레퍼토리로서 정착하기에 이르렀다.

1960년대의 브리튼의 음악의 발전에는 두 줄기의 주된 흐름이 있었다. 그는 소련의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와 개인적으로 친해지고, 예술가로서도 존경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한 개의 소나타, 3개의 무반주첼로 모음곡, 그리고 첼로 교향곡이다. 첼로교향곡은 어쩌면 브리튼의 최고의 오케스트라곡일지도 모르지만, 연주가 어렵기 때문에 여간 대담한 첼리스트가 아닌 한 겁을 먹고 대들 생각을 못한다.

그는 오페라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1973년 완성하였지만, 심장판막의 수술을 받게 되고 그 수술 도중의 뇌졸중으로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되며, 결국 1976년 세상을 떠났다. 브리튼은 작곡가로서 출발한 지 얼마 안되어서부터 정도의 차는 있었다 해도, 성공과 평가를 얻을 수 있었던 점에서 행운스러웠다. 시기와 질투에 부닥쳐 적도 많았지만, 그는 영국의 오페라를 세계적으로 이름나게 했고(주로 피터 피어즈와의 오랜 협력으로), 영국가곡에 신기원을 열었으며, 어린이들에게 다시없이 즐거운 최고급의 음악을 주었다. 그의 멜로딕한 재능, 기본적인 보수성, 묵은 의장이나 형식에 신선미를 주는 능력, 풍요한 상상력, 느슨해짐 없이 통일된 구성을 짜내는 빛나는 센스, 개개의 악기와 사람의 음성의 본질에 대한 이해력,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에 대한 동정 등은 굉장히 풍부한 재능을 타고난 만능 음악가의 면모를 입증해 주고 있다.<출처: 전남중등음악사랑연구회>

 

 Bach Aria BWV 487 "Mein Jesu, was für Seelenweh" (Orchestral)

 

 

 

Siegfried-Idyll

바그너 / 지그프리트의 목가

Richard Wagner 1813-1883

 

Wagner - Siegfried Idyll - Runnicles

 


 

1870년 크리스마스 날 이른 아침, 지휘자 한스 리히터를 필두로 취리히의 오케스트라에서 선발된 열다섯 명의 연주자들이 루체른 호숫가의 트립셴에 있는 바그너의 저택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바그너의 지시에 따라 부엌에서 조율을 맞춘 다음, 보면대가 놓인 계단에 조용히 늘어섰다. 그리고 저택의 안주인이 일어날 즈음인 7시 30분이 되자 바그너가 새로 작곡한 유려하고 다사로운 관현악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코지마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꿈결 같은 음악소리에 눈을 떴다. 한동안 그녀의 감각과 의식을 무아지경으로 빠트린 그 음률이 잦아들자, 다섯 명의 화동(花童)들을 앞세운 바그너가 침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에게 한 다발의 악보를 건네는 게 아닌가.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린 그녀는 감동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 모든 것은 남편 바그너가 전날 서른세 번째 생일을 맞은 아내 코지마를 위해서 준비한 ‘깜짝 선물’이었던 것이다.
이 특별한 관현악곡은 오늘날 ‘지크프리트 목가’로 불리지만, 원래는 ‘트립셴 목가’로 명명되었었다. 트립셴은 스위스의 루체른에 속한 지역으로, 바그너와 코지마가 그곳의 호숫가 언덕에 있는 저택에서 1866년 3월에서 1872년 4월까지 살았던 사실로 유명하다. 현재 그 저택은 바그너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바그너와 코지마의 아이들은 이 곡을 ‘계단 음악’이라고 불렀는데, 이 명칭은 역시 이 곡이 처음 연주된 장소에서 유래한 것이리라. 당시 연주자들은 저택의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도열했는데, 위에서부터 아래로 제1바이올린 2명, 제2바이올린 2명, 비올라 2명, 플루트 1명, 오보에 1명, 클라리넷 2명, 파곳 1명, 호른 2명, 첼로 1명, 콘트라베이스 1명의 순으로 배치되었고, 비올라를 맡은 리히터는 중간에 잠깐씩 나오는 트럼펫 연주를 겸했다고 한다.

 

Wagner: Siegfried Idyll / Haitink ·Berliner Philharmoniker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징표

이 곡은 바그너가 남긴 관현악곡들 가운데 가장 사랑스럽고 누구나 친숙해지기 쉬운 작품이다. 제목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목가적인 평화로운 분위기가 지배적이고, 전편에 따스하고 부드러운 기운이 흘러넘친다. 또 바그너가 당시에 마무리하고 있었던 오페라(악극)에서 가져온 다채로운 선율들이 절묘하게 녹아들어 아기자기한 맛을 자아내며, 클라이맥스에서는 환희에 찬 음률이 찬란히 울려 퍼진다.
제목의 ‘지크프리트’는 바그너의 대작 <니벨룽의 반지> 연작 가운데 세 번째 작품의 제목이면서, 바그너와 코지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의 이름이기도 하다. 지크프리트 바그너는 1869년 6월 6일에 태어났는데, 그의 탄생은 아버지 바그너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열리는 신호탄과도 같았다. 지크프리트가 태어나기 직전, 바그너와 코지마는 이미 트립셴에서 동거하며 두 딸을 두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합법적인 부부로 인정받지 못한 상태였다. 바그너의 첫 번째 아내인 민나는 1866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코지마는 아직 지휘자 한스 폰 뷜로의 아내였던 것이다. 더구나 뷜로는 바그너의 제자였고 코지마의 아버지는 바그너의 친구인 프란츠 리스트였기에, 두 사람의 결혼은 결코 축복받을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조우한 아들의 탄생은 바그너에게 무한한 기쁨이자 일종의 계시였다. 그는 오랫동안 중단했던 악극 <지크프리트>의 작곡을 재개했고, 코지마는 결심을 굳히고 뷜로에게 정식으로 이혼을 요구했다. 그런가 하면 그 해 9월과 이듬해 6월에는 뮌헨에서 <라인의 황금>과 <발퀴레>의 초연이 거행되었다. 비록 바그너 자신의 의도에는 부합하지 않는 사건이었지만, 그로써 당대 음악계를 주도하는 ‘위대한 작곡가’로서 그의 입지는 한층 공고해졌다. 그리고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발발한 1870년 여름, 바그너 가정에는 경사가 연이었다. 우선 7월 18일에 코지마와 뷜로의 결혼무효신청이 법적 인가를 받았다는 소식이 도착했다. 마침내 8월 25일, 바그너와 코지마는 루체른의 중앙교회에서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Ravel Tzigane, Op.76

 

for violin & orchestra

 

라벨 / ‘치간느’

 

Joseph Maurice Ravel [1875-1937]
data & makeup-shomron

 

 
 

 

라벨의 <치간>은 1924년 연주회용 랩소디(rhapsodie de concert)로 작곡되었으며(후에 라벨 자신이 관현악 반주로도 편곡), 헝가리의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옐리 다라니(Jelly d'Arányi, 1895-1965)에게 헌정되었습니다. 1922년 옐리 다라니는 한 작은 연주회에서 라벨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소나타>를 연주하였는데, 라벨은 그녀에게 집시음악을 연주해줄 것을 부탁하였고 그녀는 다음날 아침이 되기까지 곡에 곡을 이어 집시음악을 연주하였다고 합니다. 감명을 받은 라벨은 그녀를 위해 특별한 곡을 쓰기로 마음먹고 이 곡을 작곡하였다고 합니다.
 
라벨은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을 <치간>의 모델로 삼는 동시에 이 곡을 통해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의 기교에 애정 어린 마음을 담았습니다. 헝가리 민속무곡 차르다시(csárdás)를 바탕으로 느리고 긴 무반주 카덴차로 시작되어 차츰 격정이 고조되어 가면서 바이올린의 현란한 기교가 마음껏 과시되고 있습니다. 초절기교의 향연이 <치간>의 본질입니다. 라벨은 자신에게 어려운 과제를 부여하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왈츠 리듬만으로 된 <라 발스>, 같은 선율을 반복하는 <볼레로>,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등이 그러한 라벨의 열정의 소산입니다.

 
치간(tzigane_‘지간’으로도 발음합니다)은 ‘집시, 보헤미아 사람’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독일어로는 치고이너(Zigeuner)라 하며, 스페인에서는 히타노(gitano), 이탈리아에서는 징가로(zingaro)라고 합니다. 공연 프로그램 안내나 웹에 올라온 글에는 ‘찌간느’라 쓰고 있습니다만, 그것이 관행이더라도 외래어표기법에 따라 ‘치간’ 또는 ‘지간’으로 표기해야 하지 않을까 해서 ‘치간’으로 표기^
 
 
 
                                        Vadim Repin 15 years old plays Ravel Tzigane

 

 
 
 
 

 
지네트 느뵈
지네트 느뵈(Ginette Neveu, 1919-1949)는 20세기 바이올린 역사에서 가장 아깝게 요절한 천재로 기록되고 있다. 1919년 파리에서 태어난 그녀는 10세에 파리음악원에 입학, 불과 8개월 만에 1등상을 받고 졸업했을 정도로 천부적 재능을 지녔다. 16세 때인 1935년 비네야프스키 콩쿠르(Wieniawski Competition)에서 금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여겨지는 러시아 출신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27세)를 제치고 우승하였다.
 
지네트 느뵈는 카를 플레슈와 조르주 에네스쿠에게서 사사했으나 어느 특정 악파를 대표하고 있지는 않다. 그녀는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에게 가장 잘 알맞다는 것이면 그 어느 악파로부터도 다 따왔다. 이러한 그녀의 특성은 활을 잡는 모양으로 모든 바이올린 연주의 권위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녀는 어떤 날은 하이페츠처럼, 다른 날은 프란체스카티처럼, 또 어떤 날은 티보 같은 운궁법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기이한 현상을 관찰한 빈의 한 평론가는 이렇게 썼다.
 
“그녀에게 사람들이 이끌리는 것은 그녀의 실제 연주와 그 비범한 개성 사이에 존재하는 완전한 조화이다. 어떤 특별한 악파에 대한 편향을 조금도 보이지 않고 그녀의 오른손은 비할 바 없는 집중력을 지니고, 그리고 고귀한 감수성의 강한 정신에 이끌려서 톤의 갖가지 기술적인 변화를 지배한다. 그러나 온갖 광채를 내뿜으며 이룩하는 그 톤과 악마적인 피치카토를 튕기기 위해 그녀가 활을 조종하는 그 믿어지지 않는 확실함만이 지네트 느뵈의 개성에서 뛰어난 특징이라는 것은 아니다. 창조하고 또 창조한다. 여기에 그녀의 재능이 있는 것이다.”
 
1945년에는 런던에서 라벨의 <치간>을 연주하여 열광적인 찬사를 받고, 1946년에는 시벨리우스의 협주곡도 녹음했다. 1946년 런던에서 그녀의 베토벤 협주곡을 듣고 엘리자베스 여왕이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49년 10월 20일 살플레이엘에서 연주회를 끝내고 미국으로 돌아가던 중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집시음악
인도 북부 지방에서 시작되었다는 집시(자기들 스스로는 Rom이라 불렀다) 집단은 유럽 쪽으로 이주하면서 북으로는 러시아, 남으로는 스페인까지 들어가 정착하였다. 특히 동유럽 지방에 많이 정착하여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에 많이 살았다. 영국에서는 이들을 이집트에서 온 유랑민족으로 착각하여 이집트인(Egyptian)이라 했는데 후에 e음이 없어지고 집시(Gypsy)가 되었다. 이들은 유럽 전 지역을 유랑하면서 차별과 박해를 받아왔으며 오늘날에도 이리저리 내쫓기고 있다. 음악은 이들 생활의 주축이 되어온 문화이지만 정착지의 지방음악과 자기들 고유의 음악을 잘 조화시키면서 늘 새롭고 독특한 음악을 발달시켜 왔다.
 
클래식에서는 집시음악을 바탕으로 작곡한 곡들이 많은데 그중에 유명한 것으로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 라벨의 <지간> 등이 있다. 버르토크(Bartók), 에네스쿠(Enescu), 코달리(Kodály) 등 헝가리계의 작곡가들이 집시음악과 동유럽의 민속음악을 바탕으로 한 곡들을 많이 발표했다.
 
Tchaikovsky (1840~1893)
Souvenir d'un lieu cher, Op.42
소중했던 시절의 추억
No.3 Melodie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품 "소중했던 시절의 추억 (Souvenir d'un lieu cher)"은 1878년 메크 (N.F von Meck) 부인의 별장이 있는 시골 영지에 머믈며 "바이올린 협주곡 D 장조"를 쓰면서 작곡한 작품이다. 3월에 완성된 첫번째 악장은 애초에는 바이올린 협주곡의 느린 악장에 사용할 목적으로 작곡되었었다. 나머지 악장들은 4월에 쓰기 시작하였으며, 5월 13일 차이코프스키가 메크 부인의 별장을 떠나면서 완성된 악보를 그곳의 지배인에게 맡겨 메크 부인에게 전달을 되도록 하였다. 브라일로프 (Brailov)라고 불리는 메크 부인의 영지에게 헌정된 이 곡은 1878년에 출판되었으며 글라주노프가 1908년에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린을 위한 곡으로 편곡한 것도 많이 연주된다.

악보와 함께 메크 부인에게 전달된 편지에서 차이코프스키는 첫번째 악장이 제일 좋으며 가장 어려웠었고 두번째 악장은 활발하고 명랑하며 세번째 악장은 無言歌다고 말하고 있다.


 

 Tchaikovsky-Meditation from Souvenir d'un lieu cher op. 42 no. 1 (Orchestrated by A. Glazunov)

 

Repin - Tchaikovsky - Valse-Scherzo

 

 Tchaikovsky - Allegro (Tempo di valse) (Valse Scherzo op.34 for violin and orchestra)

 

 

앵콜연주...

1.퐁세-에스트렐리타 Little Star

2.바치니-요정의 춤 Antonio Bazzini - La ronde des Lutins - Op. 25

 

 Ponce/Heifetz -- Estrellita(Little Star)

 

 Itzhak Perlman - Antonio Bazzini - La ronde des Lutins - Op. 25 (HQ)

 

The Dance of the Goblins (La Ronde des Lutins), Scherzo fantastique, Op. 25

 

 Vengerov - Bazzini - La ronde des lutins

 

 

 

 Vadim Repin plays........

 

 Vadim Repin plays Monti "Czardas"

 

 Chardash Monti - Vadim Repin, Lendvay & Friends, Russian Folk Ensemble

 

 Paganini Variaties op Il Carnevale Di Venezia door Vadim Repin

 

 Vadim Repin - Tchaikovsky Queen Elizabeth 1989

 

Paganini:Il carnevale di venez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