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카페카 사라스테와 러시아의 밤
무소륵스키, 호반시치나 전주곡
Mussorgsky, Prelude to Khovanshchina
(Orchestrated by Rimsky-Korsakov)
차이콥스키, 로코코 변주곡 A장조, Op. 33
Pyotr Tchaikovsky, Variations on a Rococo Theme in A major, Op. 33
차이콥스키, 야상곡 C#단조, Op. 19, No. 4
Pyotr Tchaikovsky, Nocturne in C# minor for Cello and Orchestra,
Op. 19, No. 4
휴식 (Intermission)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3번
Sergei Prokofiev, Symphony No. 3 in C minor, Op. 44
I. Moderato
II. Andante
III. Allegro agitato - Allegretto
IV. Andante mosso - Allegro moderato
지휘 ;유카페카 사라스테 Jukka-Pekka Saraste, conductor
2010/11 시즌 시작과 더불어 유카페카 사라스테는 쾰른 서독일 방송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 임기를 시작했다.
2006년 이후 오슬로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사라스테는 1987년부터
2001년까지 핀란드 방송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서 전세계 비평가와 관객의 찬사.....
유카페카 사라스테는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헬싱키 시벨리
우스 아카데미에서 요르마 마눌라와 함께 지휘자 교육을 받았다. 2010년 이후
쾰른 서독일 방송교향악단의 수석 지휘자로 재직 중이다.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과 수석지휘자를 역임했으며 동 오케스
트라 최초로 명예지휘자로 선정되었다. 그 이전에는 스코티시 체임버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 핀란드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 및 명예지휘자, 토론토
심포니의 수석지휘자, BBC 심포니의 수석객원지휘자를 맡았다. 핀란드 라티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예술고문을 맡고 있으며, 핀란드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타미사리
페스티벌을 설립하며 예술고문을 담당하고 있다.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뮌헨 필하모닉,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바바리안 라디오 심포니,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로테르담 필하모닉, 비엔나 심포니, 라스칼라 필하모니,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으며, 오페라 분야에서는 덴마크왕립극장에서 푸치니 ‘투란도트’를 지휘하였다.
주요 음반으로는 핀란드 방송교향악단과 녹음한 시벨리우스, 닐슨의 교향곡 전곡을 비롯하여 토론토 심포니와의 버르토크,
뒤티외, 무소륵스키, 프로코피예프 등이 알려져 있다. 오슬로 필하모닉과 녹음한 말러 교향곡 6번 음반과 쾰른서독일방송교
향악단과의 말러 교향곡 9번 음반은 폭넓게 인정을 받았다. 특히 서독일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해 핸슬러 레이블로 발매한 쇤베
르크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브람스의 교향곡 1번과 3번 음반은 평론가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았다.
그는 프로 핀란디아상, 시벨리우스 메달 그리고 핀란드 스테이트 음악상 등을 받았으며, 토론토 요크 대학과 헬싱키 시벨리
우스 아카데미로부터 명예박사를 받았다.
워싱턴 포스트가 이미 "경이로운 인물"이라고 칭찬했으며, 뉴욕 타임즈가
강렬한 집중력과 예술적 표현력을 칭찬했던 하크나자리안은 세계 무대에 화려하게
부상하고 있다.
나레크 하크나자리안은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노련하고 경이
로운 연주가’(워싱턴 포스트) ‘강렬한 집중력과 예술적 표현력’(뉴욕 타임스)이라
는 찬사를 받으며 세계 무대에 화려하게 부상하였다. 2014년 ‘신망받는 BBC 차세대
예술가’로 선정되었다. 아르메니아 예레반에서 1988년에 태어난 그는 바이올리니
스트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성장하였다.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공부하였고,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로렌스 레서를 사사하여 아티스트 디플로마를
취득하였다. 로스트로포비치의 가르침을 받은 뒤 2008년 영 콘서트 아티스트 오디
션 우승자로서 카네기 잔켈 홀에 데뷔하였으며, 케네디 센터에서도 연주하였다.
게르기예프, 발추하, 코프만, 반 즈웨덴, 소히에프 등 세계적인 지휘자와 시카고 심포니,
런던 심포니, 로테르담 필하모닉, 토론토 심포니 등에서 협연하였다. 2014/15 시즌
에는 디트로이트 심포니, LA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심포니, 헬싱키 필하모닉, 뉴질랜드 심포니와는 첫 협연을 하고 루체른 페스티벌에 데뷔하며 프라하 드보르자크 페스티벌에
서는 체코 필하모닉과 데뷔무대를 갖는다. 이번 시즌에는 서울시립교향악단 협연과 함께 일본 투어에서 게르기예프가 지휘
하는 마린스키 관현악단과 협연한다. 최근 댈러스 교향악단, 캔사스시티 교향악단 등과 협연하였으며, 링컨센터에서 세이트
루크 오케스트라와 엘가 협주곡을 연주하였다. 지난 시즌 카네기홀로 돌아와 에스토니안 국립 교향악단과 3주간 미국 투어에
서 드보르자크를 연주하였으며, 토론토 심포니 데뷔무대를 가졌고 상파울루 심포니와 레라 아우어바흐의 작품을 협연하였다.
유카페카 사라스테와 러시아의 밤근대에서 현대로,
러시아 레퍼토리의 역작들
서울시향이 핀란드의 중견 거장 유카페카 사라스테와 세 번째로 꾸미는 무대는 ‘러시아의 밤’이다. 19세기 후반 러시아 제정시대
전성기의 세 작품에 이어지는 이날의 메인곡은 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 3번. 작곡가 자신의 오페라 ‘불의 천사’에서 소재를 빌린 이 곡은
오케스트라의 역량을 최대한 ‘쥐어짜는’ 문제적 작품으로 꼽힌다.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모데스트 무소륵스키 (1839~1881)
호반시치나 전주곡(1880)
<연주시간: 5분>
‘무소륵스키의 관현악곡’이라면 역시 ‘민둥산의 하룻밤’이나 ‘전람회의 그림’(실은 피아노곡
이지만)을 떠올리게 되지만, 또 하나 놓칠 수 없는 것이 바로 ‘호반시치나 전주곡’이다. 그런
데 이 매혹적인 관현악 소품은 오페라 ‘호반시치나’를 위한 전주곡이므로 일단 오페라 ‘호반
시치나’를 간략히나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호반시치나’는 러시아 역사에 ‘호반스키의 난’으로 기록된 ‘모스크바 총병 대반란 사건
(1682년~1698년)’을 다룬 작품으로서, 제목은 ‘호반스키의 졸병들’이라는 뜻이다. 이 오페
라는 무소륵스키가 걸작 ‘보리스 고두노프’ 이후에 착수한 대작으로서, 무소륵스키 오페라의
특징적 소재인 ‘민중’을 주역으로 부각시킨 점 등에서 전작에 비해 진일보한 면모를 보인다
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이 오페라는 무소륵스키가 미완성으로 남겨두고 타계했기 때문에, 초
연은 그의 동료인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정리・가필・편곡한 형태로 치러졌다. 그리고 오늘날
에는 원작자의 의도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삭제하거나 편집한 일부 대
목들을 복원한 형태로 상연되고 있다.
이 오페라의 첫 장면에는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전과 그 옆의 강이 바라다 보이는 새벽녘의 붉
은 광장이 등장하는데, ‘호반시치나 전주곡’은 그 정경을 묘사한 일종의 ‘음화(音畵, 음으로
그린 그림)’라 하겠다. ‘모스크바 강의 새벽’이라는 운치 있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기도 한 이
전주곡이 연주되는 동안 오페라의 막이 오르고, 음악은 아직 잠에 빠져있는 모스크바, 새벽
을 알리는 새소리, 성 바실리 성당에서 흘러나오는 종소리 등등을 차례로 떠올린다. 계속해서
주부로 진입하면 러시아 정교회의 성가를 연상시키는 유장한 선율이 장중하게 울려 퍼지
고, 마지막에는 차츰 조용해지면서 마무리된다. 이 전주곡은 길이는 짧지만 그 정경 묘사적
기법과 흐름이 지극히 유려하고 러시아 특유의 향취마저 짙게 풍겨 나오기에 널리 사랑 받
고 있다.
표트르 차이콥스키 (1840~1893)
로코코 변주곡 A장조, Op. 33(1877)
<연주시간: 18분>
차이콥스키는 정식 ‘첼로 협주곡’은 남기지 않았지만 첼로 솔로와 오케스트라의 협연을 위
한 작품은 소수 남겼다. 그중 잘 알려진 것이 바로 ‘로코코 변주곡’인데, 이 곡의 제목에서 눈
길을 끄는 부분은 ‘로코코(Rococo)’라는 단어일 것이다. 음악에서 ‘로코코’라고 하면 바로크
시대에서 고전파 시대로 이행하던 시기에 유행했던 음악양식을 가리킨다. 이른바 ‘로코코 음
악’은 우아함, 섬세함, 경쾌함을 특징으로 하며, 18세기 중엽을 전후한 시기에 주로 발달하여
고전파 시대까지 영향을 미쳤다. 다만 차이콥스키가 사용한 ‘로코코’라는 용어의 초점은 그
시대에 활약했던 한 작곡가에게로 모아지는 경향이 있다.
차이콥스키가 모차르트를 좋아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모차르트에 대한 그의 감정은
단순한 호감이나 동경의 차원을 넘어 깊고 순수한 사랑에 가까웠다고 전해진다. 그런 그의 애
착이 단적으로 드러난 사례로서 ‘모차르티아나’라는 표제가 붙은 ‘관현악 모음곡 제4번’을
들 수 있는데, 이 모음곡을 구성하는 네 개의 악장은 모차르트 음악의 편곡으로 채워져 있다.
아울러 이 ‘로코코 변주곡’ 또한 모차르트를 향한 그의 애정과 관련이 깊다. 즉 차이콥스키의
모차르트에 대한 흠모가 고전파 음악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가 이 곡에서 단아하고 섬세하며
기품 있는 ‘로코코풍’의 주제를 취하는 방향으로 번져갔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 곡의 관현악 파트를 고전적인 2관 편성으로 꾸렸고, 전편에 걸쳐 갤런트
스타일의 디베르티멘토식 서법을 지향했다. 덕분에 이 곡은 시종 ‘로코코풍’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장식 풍부한 선율과 화사한 색채, 우미한 분위기로 넘쳐난다. 그리고 거기에 차이콥스
키 고유의 감각이 더해져 구석구석까지 온화한 감성적 뉘앙스로 충만해 있다. 아울러 첼로의
모든 기법적 가능성(음계, 아르페지오, 중음, 트릴 등)까지 아우른 까닭에 이 매혹적인 변주곡
은 첼로 협주작품 목록에서 기념비적 명작의 하나로 널리 각광받고 있다.
이 변주곡은 1876년 12월에서 1877년 1월에 걸쳐 작곡되었는데, 그 무렵은 차이콥스키가 ‘피
아노 협주곡 제1번’,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 ‘교향곡 제4번’, ‘예프게니 오네긴’ 등 작곡가 경
력에 일대 전기를 가져다준 명작들이 줄줄이 탄생한 시기였다. 또 당시는 폰 메크 부인의 후
원에 힘입어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찾아가던 시기이기도 했다. 한편 작곡을 의뢰한 사람은 독
일 출신의 첼리스트인 빌헬름 피첸하겐이었는데, 그는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현악 사중주’의 초연을 돕는 등 차이콥스키와 친한 동료로 지내온 사이였다. 마침 1875년에
명 첼리스트 칼 다비도프의 리사이틀을 접한 이후 첼로라는 악기에 대해서 호의를 품어 왔던
차이콥스키는 피첸하겐의 제의를 즉각 받아들여 단기간 내에 작품을 완성했다.
그런데 완성된 악보를 넘겨받은 피첸하겐은 초연에 앞서 작품에 대폭 변경을 가하게 된다.
즉, 그는 자신의 취향에 맞추어 원곡의 마지막 제8변주를 삭제하고 나머지 변주의 진행순서
에도 변화를 주어 무대에 올렸던 것이다. 그것은 비록 작곡가의 원래 의도와는 어긋나는 일이
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결국 오늘날까지도 피첸하겐에 의한 수정판이 통용되고 있다.
그 판본에 따르면 전곡은 로코코풍의 주제와 이어지는 7개의 변주 및 코다로 이루어진다. 각
변주는 세밀한 변화를 수반한 리드미컬한 패시지와 아름다운 칸타빌레 등으로 느긋하면서도
탄력적으로 전개되다가, 알레그로 비보의 화려한 제7변주에 이르러 추진력을 얻어 빠른 속도
감으로 열띤 고조로 치달으면서 코다로 넘어가 전체를 매듭짓게 된다.
표트르 차이콥스키 (1840~1893)
야상곡 C#단조, Op. 19, No. 4(1873/1888)
<연주시간: 6분>
차이콥스키 특유의 애수로 가득한 이 야상곡은 원래 1873년의 피아노 소품집 ‘6개의 소품
Op. 19’ 중 네 번째 곡이다. ‘안단테 센티멘탈레(느리고 감상적으로)’라는 지시어를 달고 있
는 이 C#단조, 4/4박자의 소품은 A장조, 3/4박자의 중간부를 가진 3부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주부가 재현된 이후 ‘운 포코 카프리치오소(조금 변덕스럽게)’ 주제를 저음부에 둔 장식변주
가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차이콥스키는 1888년에 이르러 이 소품을 첼리스트 아나톨리 브란두스키를 위해서 편곡했는
데, 브란두스키는 ‘로코코 변주곡’을 의뢰한 피첸하겐의 제자이자 차이콥스키의 가까운 친구
였다. 브란두스키는 다비도프, 피첸하겐 등과 함께 러시아 첼로 악파의 비약적 발전을 견인한
탁월한 연주가였고, 차이콥스키는 그를 위해서 이 곡 외에도 자신의 오페라 ‘예프게니 오네
긴’에 나오는 ‘렌스키의 아리아’, ‘현악 사중주 제1번’의 느린 악장 ‘안단테 칸타빌레’ 등을 첼
로 독주용으로 편곡했다.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1891~1953)
교향곡 3번 C단조, Op. 44(1928)
<연주시간: 34분>
프로코피예프는 모두 일곱 편의 교향곡을 남겼다.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통상 ‘고전 교향
곡’으로 불리는 ‘제1번 D장조’이고,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제5번 B♭장조’는 일각에서 ‘20세
기 러시아 교향곡의 정점’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반면에 ‘제2번 D단조’나 ‘제4번 C장조’(두
개의 판본이 존재)의 초판 Op. 47은 거의 주목받지 못한다. ‘제3번 C단조’의 지명도는 그 중
간 정도라고 하겠는데, 그 상당 부분은 프로코피예프 자신의 오페라 ‘불의 천사’ 덕분이다.
‘불의 천사’는 러시아의 상징주의 작가인 발레리 브류소프의 동명소설에 기초한 5막 구성의
오페라이다. 그 내용은 종교개혁기를 배경으로 한 일종의 신비극으로서 무대는 16세기의 독
일 쾰른이며, 천사와 악마의 환영에 사로잡혀 고통 받는 소녀 레나타,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도우려다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는 기사 루프레히트, 그리고 레나타가 ‘불의 천사’의 현
신으로 믿고 집착하지만 그녀를 거부하는 백작 등이 중심인물이다. 그밖에도 점쟁이, 마법사,
아그리파(연금술사), 파우스트, 메피스토펠레스 등이 등장하며, 실제 사건과 초자연적 현상,
일상과 환상, 이성과 황홀경, 선과 악이 한 데 뒤엉켜 전개되는 독특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특히 악마적인 광란과 위압적인 종교재판이 동시에 펼쳐지다가 파국에 이르는 결말이 충격
적인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프로코피예프는 오페라 ‘3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을 완성한 직후인 1919년 말에 브류소프
의 소설을 읽고서 곧바로 대본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그 대본에 곡을 붙이는 작업은 만만치
않아서 완결까지 무려 7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처럼 파격적인 내용을 음악으로 표
현한다는 것은 ‘앙팡 테리블’로 일컬어졌던 프로코피예프에게조차 난해한 일이었던 모양이
다. 더구나 당시 그는 창작의 노정에서 일종의 과도기를 지나고 있었다. 아무튼 그 7년 사이에
프로코피예프는 활동무대를 미국에서 유럽으로 옮겼고, 미국에서 친해진 여가수 카롤리나
코지나(리나)와의 관계가 깊어져 결혼에 이르렀다. ‘불의 천사’가 완성된 것은 1927년 9월 말
이었는데, 그 해 초에 그는 첫 소련 연주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오페라는 작곡가 생전에는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 1926년에 지휘자
브루노 발터가 베를린 국립 오페라의 다음 시즌 공연으로 추진했으나 작품 완성이 지연되는
바람에 무산되었고, 그 후로 다시는 상연 기회를 잡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초연은 작곡가 사
후에야 성사되었다. 다만 1928년 6월 14일, 평소 프로코피예프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던 지
휘자 세르게이 쿠셰비츠키가 파리에서 제2막의 일부를 콘서트 형식으로 무대에 올린 적은 있
는데, 당시 러시아 출신으로 ‘3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에도 출연했던 소프라노 니나 코시츠
가 부른 레나타의 장면이 주목을 끌었다.
안 그래도 오랜 시간 고심하며 심혈을 기울인 작품을 썩히고 싶지 않았던 프로코피예프는 이
때의 호평을 계기로 오페라 속 음악을 발췌하여 관현악 모음곡으로 만들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그는 오페라의 작곡 방식이 교향곡과 통하는 면이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주제들을 검토했고, 그 결과 특정 주제들이 소나타 형식의 제시부를 구성하기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계획은 변경되었고, 그렇게 탄생한 ‘교향곡 제3번 C단조’는 오페라 ‘불의
천사’에 투입됐던 소재들을 바탕으로 작곡되었다. 이를테면 제1악장의 주술적인 서주는 오페
라 속에서 ‘레나타의 절망’을 나타내는 음악을 활용한 것이며, 제1주제는 ‘불의 천사 마티엘
에 대한 사랑’, 제2주제는 ‘기사 루프레히트’와 관련돼있다. 또 느린 템포의 제2악장에는 마지
막 ‘수도원 장면’에 나오는 소재들이, 기묘한 바람처럼 스쳐가는 스케르초 악장에는 악마들
이 활개칠 때의 음악이 활용되었다.
다만 이상의 내력에도 불구하고 이 교향곡을 오페라의 내용과 지나치게 결부시키는 일은 경
계할 필요가 있는데, 이에 대해 작곡가는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 바 있다.
나는 이 작품이 ‘불의 천사 교향곡’이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주제와 소재가
오페라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성돼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페라에서는 당연히 줄거리
의 영향을 받고 있다. 하지만 교향곡을 옮겨지면서 오페라적인 특색은 사라졌다고 나는 확신
하고 있다. 따라서 나는 ‘교향곡 제3번’이 순수한 교향곡으로 인식되기를 바란다.”
차이코프스키,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
Variations on a Rococo Theme, Op.33
Pyotr Ilich Tchaikovsky 1840∼1893
전곡 연속듣기
다.
36세의 차이콥스키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든 시기를 지내고 있었다.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이 원장으로 있던 모
스코바 음악원에서 화성학 이론을 가르치고 있었던 그는 경제적으로 곤궁한 상태에 처했고 정신적으로도 불안정
했으며, 자신의 천성에 맞지 않는 결혼을 고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 반려자로 어떤 여자를 확실하게
정해놓은 것은 아니었다. 이 시기에는 창작력 또한 활발하지 못해 [피아노 협주곡 1번]과 환상 서곡 [로미오와
줄리엣] 정도만을 작곡했을 뿐이다.
조용하고 우아한 18세기 음악으로의 휴식
당시 그의 상황은 객관적으로는 나쁜 듯 보였지만, 음악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그는 여행과 음악의 풍요로움을
만났던 시기이기도 했다. 러시아의 음악을 만들고 싶어했던 그는 “나는 러시아인이다. 뼛속까지 러시아인이다”
라는 편지를 썼을 정도로, 그는 즐거운 칸틸레나와 우울한 멜랑콜리가 결부된 지극히 러시아적인 특성을 길러
나가는 방법을 터득했을 당시다. 이렇듯 자신만의 음악적 표현력을 키워나갔던 그는 1875년 이후 음악적 교제
관계를 넓혀나가게 되었다. 생상과 우정을 맺었고 리스트와 그를 열광시킨 [카르멘]의 작곡자인 비제, 마스네
등과 교제하며 음악적 사상을 함께 했다.
한편 그는 바이로이트로 가는 여행길에 바그너를 만나기를 시도했지만 실현할 수는 없었다. 이렇듯 그는 러시
아를 벗어나 서유럽의 최신 음악 사조와 음악가들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역량을 한층 넓게 키워나갔다.
한 동안 경제적,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그는 [로코코 변주곡]을 작곡한 이후 작품과 삶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부유한 미망인인 나데즈다 폰 메크 부인을 소개받아 경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이 만남을 인해 그는 안심
하고 전적으로 작곡에 매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폰 메크 부인과 차이콥스키는 평생토록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14년 동안 계속된 그들의 엄청난 양의 편지로
부터 목가적 순애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렇듯 폰 메크 부인이 정기적으로 보내준 돈 덕택에 그는 모든 재정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더군다나
가르친다는 의무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으며, 실패로 끝났지만 정신적인 홀가분함을 얻게 된 결혼과 결별(이혼은
이후에),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걸친 여행과 사교생활 등등으로 그는 정신적으로도 충만할 수 있었다.
웨딩파티에 앉아있는 차이콥스키.
차이콥스키는 불행한 결혼생활로 정신적인 고초를 겪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그의 창장력은 급속도로 팽창하여 [4번 교향곡]과 오페라 [예프게니 오네긴]과 같은 대작
들을 쏟아낼 수 있었다.
1876년 서두에 차이콥스키가 작곡한 작품은 교향적 환상곡인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로서 당시의 초조하고 격정
적인 마음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첼로를 위한 변주곡을 작곡하면서 차이콥스키는 불안한 상태의 삶에서
잠시 벗어나 18세기의 보다 조용하고 우아한 분위기에 빠져들고 싶어했다. 바로 그가 존경했던 모차르트의 음악
으로 대변되는 시대였던 것이다.
첼로의 풍부한 표현력과 관현악의 조화
과거를 재해석하려는 그의 의도에 맞추어 차이콥스키는 독주 첼로를 고전주의 규모에 맞는 실내악단, 즉 2관
편성에 두 대의 호른과 현이 반주하도록 의도했다. 이런 규모는 독주자의 멜로디와 기교적인 표현을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솔리스트의 표현을잘 살려줄 수 있었다. 한편 음악 양식에 있어서 그는 변주곡을 선택했다. 이 양식
으로 작곡가는 스스로 순서와 한계를 정하게 할 수 있었다. 그는 오리지널 주제를 모차르트가 썼을 법한 네 마디
의 균형감 있는 모양으로 단아하게 꾸몄다. 조성은 모차르트의 가장 감동적인 작품들에서 사용되었던 A장조였다.
이 변주곡은 모차르트에 대한 오마쥬라고는 할 수 있을지언정 모방작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작은 목관의
에필로그는 주제에 이어 불규칙적인 음정으로 변화하지 않고 반복되며, 이는 독주 악기가 넘겨받은 뒤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한다. 이는 18세기 오스트리아보다는 19세기 러시아 전통에 더 가까운 것이다. 그리고 주제를
이끄는 표현력이 풍부한 관현악의 도입부부터 마지막 코다의 질주하는 명인기까지, 음악의 자연스러움과 윤기는
차이콥프스키가 아니면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것이다.그러나 역설적으로 오늘날 일반적으로 감상하는 악보를
고려해볼 때, 이 작품은 완전히 차이콥스키의 작품이라고도 말하기 힘들다. 원래 이 작품은 독일의 젊은 첼리스트
인 빌헬름 피첸하겐을 위해 작곡했다고 한다. 그는 차이콥스키와 같은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였는데, 작곡 중간
피첸하겐은 독주부를 어떻게 쓰면 효과적일지에 대해 많은 제안을 했고 이 단계에서 작곡가는 그의 조언을적극
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모스크바에서 곡이 초연되던 1877년 12월과 작품이 출판되던 1878년 사이에, 첼리스트는 작품에 더 급진
적이고 다양한 수정을 제안한다. 심지어 그는 출판사에 자신이 작품에 관한 권위를 위임받았다고 주장하며 여러
차례 수정을 가했다. 앞에 있던 D단조 안단테를 작품의 끝에 두는 편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이유로 차이콥스키
가 쓴 느린 변주 두 개의 위치를 바꾸었고, 나머지 부분을 계속해서 뒤섞어 작곡가가 쓴 여덟 번째와 마지막 변주는
생략하기에 이른 것이다.
차이콥스키는 인쇄 직전 교정지를 한 번 보고서는 피첸하겐이 저지른 일을 알아챘다. 그리고 “빌어먹을!”이라고
역정을 냈지만, 이내 “그대로 진행해!”라고 말하며 피첸하겐의 수정을 바로잡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의
주제와 7개의 변주로 구성된 피첸하겐의 개작이 이 변주곡의 기준이 되었고, 이내 이 형태의 변주곡은 차이콥스키
의 가장 유명한 작품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1879년 비스바덴에서 프란츠 리스트가 참석한
이 곡은 18세기 모차르트 풍의 우아한 첼로가 매력적인 곡이다.
가운데 연주된 이 개정판은 대호평을 받았고, 이후 1956년 차이코프스키 작품집 기념 출판이라는 형식을 통해
소련에서 처음으로 작곡가의 원전판이 빛을 보게 되었다.
Thema. Moderato semplice
오케스트라의 비장한 선율에 이어 장식과 리듬이 강한 첼로 주제가 등장하며 로코코적 분위기와 차이콥스키의
개성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Variation I. Tempo della Thema
주제의 템포를 유지하며 무궁동적인 리듬과 발랄한 스타카토가 기품있는 생동감을 불러일으킨다.
Variation II. Tempo della Thema
1변주와 동일한 템포를 유지하며 한층 다채로운 표현과 환상적인 아르페지오가 전체 흐름을 고조시킨다.
Variation III. Andante Sostenuto
느린 템포의 이 변주는 칸타빌레(노래하듯)적인 성격을 강조한다.
Variation IV. Andate grazioso
서정적인 3변주와 대구를 이루는 듯 우아함과 화려함을 겸비한 이 네 번째 변주는 장식음과 붓점 리듬이 맹활
약을 떨친다.
Variation V. Allegro Moderato
카덴차가 여러번 등장하며 솔리스트의 개인기가 빛을 발하며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Variation VI. Andante
이 작품에서 가장 러시아적인 우수와 비장미를 보여주는 대목으로서, 첼리스트의 격정적이되 절제하는 표현력
을 요구한다.
Variation VII. e Coda Allegro vivo
이 변주는 본래 차이콥스키가 세 번째 변주로 사용했지만 피첸하겐에 의해 마지막에 위치하게 되었다. 질주하는
듯한 첼로의 빠른 템포가 고조감을 한껏 높이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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